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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28화 (328/530)

328화. 창룡맹의 시작

영호준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창룡맹은 커질 것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는 말했다.

“여러분이라면 영웅맹과 손을 잡겠습니까? 그들은 그야말로 정통 사파인 데다 관에서도 골칫거리로 주목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그들과 손잡는 건 자살행위지요.”

‘정통 사파’라는 표현에 혜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태평맹으로 가나요? 그럴 리 없지요. 태평맹은 기존 문파들을 집어삼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번에 아미를 삼켰다면 대세라도 되었겠지만 그조차 실패했으니 사람들은 태평맹을 더욱 경계할 것입니다.”

아미파 승려들의 불편한 기색은 아랑곳 않고 영호준은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신승의 사제시자 무림맹의 적통을 잇는 훌륭한 우리 ‘맹주님’께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영호준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운현은 생각했다.

하지만 영호준의 말은 옳았다.

진예림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반영웅맹이 아니라 반태평맹이 되는 셈 아닌가요? 창룡맹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태평맹이 더 심각한 것 같은데요.”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영호준은 과장스레 손까지 내밀며 말했다.

“역시 감찰어사님을 보좌하실 만하군요. 진예림 소저라고 하셨지요? 소저께서도 저와 일 좀 하시지요.”

진예림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영호준은 아랑곳 않았다.

“아 참. 항주의 정예라던 그 서른 명은 언제 옵니까? 이미 연락 다 하셨다면서요?”

진예림은 독고랑과 함께했던 서른 명의 젊은 무인들에게 이미 서찰을 보냈다.

운현이 그들과 함께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올 때 아는 사람들 다 데려오라고 하십시오. 전부 취직시켜 드리겠습니다. 맹에는 사람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요.”

“돈은요?”

담소하가 물었다.

“맹주님이 최고위직 대관(大官)이신데 뭐가 걱정인가?”

“아, 저는 대관까지는…….”

운현의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 듯, 영호준은 담소하에게 답했다.

“나랏돈의 좋은 점은 주는 대로 다 써도 된다는 걸세. 안 쓰면 직무태만이거든. 그리고 나중엔 문파에서도 받을 테니 맹의 재정은 걱정 말게.”

“윽.”

담소하는 할 말이 없었다.

박 공공의 권한이라면 맹 한둘쯤은 쉬운 일이다.

가맹한 문파들 역시 기여를 할 테고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맹주님께서 설립을 선언하신 순간 창룡맹은 이미 강호 무림의 삼대세력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겁니다. 우리 훌륭한 맹주님께서 계시는 한 말입니다.”

“삼대세력요?”

진예림의 말에 영호준은 주저 없이 말했다.

“네. 영웅맹, 태평맹 그리고 창룡맹이지요. 정통성이나 명분으로 따지면 첫째고요. 다 맹주님께서 맹을 세우겠다고 하신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운현을 향했다.

영호준의 말대로라면 운현은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크흠.”

운현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진예림 소저의 지적대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태평맹입니다. 그러니 맹주님께서는 당분간 제 곁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이상한 결론이었다.

“왜요?”

담소하가 묻자 영호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당설련 군사의 독이라면 제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당해 봤거든요.”

아는 게 아니라 당해 봤다니, 어쩐지 이상한 근거였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태평맹이 운현을 적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득 진예림이 말했다.

“운 대인, 아니 맹주님께서 관인이신 건 괜찮겠어요? 무림 문파들은 관인을 꺼려 하잖아요.”

“신승의 사제시고 검성의 후계자이신 데다가 영웅맹에 맞설 유일한 자라는 창룡검주님을 말입니까?”

영호준은 피식 웃었다.

“아마 조정조차 우리 맹주님을 인정한 거라고 좋아할 겁니다. 그게 사람들 심리거든요. 물론 적들이야 못마땅해 하겠지만 말입니다.”

진예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해 봐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저기, 저는 검성의 후계자는 아니…….”

“그러고 보니 창룡지회인가 하는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구였어요? 보아하니 거대 세가의 대제자급들 같던데.”

영호준의 물음에 운현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제 명호를 이용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진예림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영호준이 한탄했다.

“아이고, 왜 그렇셨습니까?”

안타깝다는 듯 영호준은 말했다.

“다 이해한다고, 기꺼이 받아 줄 테니 일단 연락하라고 그러셨어야죠.”

“아니, 잠깐만요.”

진예림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그런 자들과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게 좋지 않아요? 그들은…….”

“집권도 하기 전에 숙청부터 할 셈입니까?”

영호준의 말에 진예림은 말문이 막혔다.

“숙청은 권력을 잡고 난 다음에 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따지고 잘라 내면 아무것도 안 남아요. 물론 진 소저처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길 것 같으면 불만이 있더라도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잘라 내더라도 비슷하다 싶으면 끌어모아야 해요. 그게 정치이고 세력 싸움입니다.”

운현도, 진예림도 아무 말 못 했다.

영호준은 혀를 찼다.

“아깝네요. 당설련 소저 좋은 일만 시켜 줬어요. 그들 중에 분명히 태평맹 대제자급도 있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하던 영호준이 혜천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지요. 오늘부터 혜천께서 창룡지회의 회주입니다. 자, 맹주님. 가맹을…….”

“자, 잠깐만.”

혜천이 다급하게 말했다.

“회주라니요? 게다가 창룡지회는…….”

영호준은 빙긋 웃었다.

“창룡지회가 하나란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만들면 그게 창룡지회지요. 맹원의 보호를 위해 신상은 밝히지 않겠다고 할 거니까 안심하십시오. 아, 그래도 활동 내역은 있어야 하니까 아미의 무승 몇 분과 함께 적당한 영웅맹 지부도 하나 털어 주시고요. 복면 쓰는 것하고 소리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영호준은 주먹까지 쥐고 구호라도 외칠 듯 번쩍 들어 보였다.

“그럴 필요가 있나요?”

진예림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럼 복면 대신…….”

“그게 아니라 굳이 창룡지회를 끌어들여야 할 이유가 있어요?”

“있습니다.”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영호준이 말했다.

“첫째는 그들이 내걸었던 대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창룡맹의 명분이 더욱 강화될뿐더러, 셋째로는 그래야 우리가 창룡지회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그들의 내부 분열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영호준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맹원은 하나라도 더 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진예림과 혜천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반론은 없었다.

“자, 그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대외적으로 무력이 필요한 활동은 혜천께서 맡아 주십시오. 조 대인께는 지금처럼 조정과의 연락을 부탁드리고, 진 소저와 담 소협은 제 일을 도와주시지요. 저는 나머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요?”

“맹의 조직 정비와 인사, 재정, 맹원 간 의견 조절, 맹주님의 호위까지 전부 다요. 이야, 이거 일이 많아서 아주 곤란한데요?”

너스레를 떠는 영호준의 모습에 진예림은 어이가 없었다.

“말은 그래도 기뻐 보이시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영호준이 말했다.

“아까부터 생각이 저절로 막 떠오르는데요? 아무래도 저는 이쪽이 천직이었나봅니다.”

사람들을 돌아보며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대강 역할도 정했으니까 한번 다 같이 외쳐 봅시다.”

영호준이 불끈 주먹을 쥐어 올리며 외쳤다.

“우리는! 창룡검주의 뜻을 따르는 창룡맹이다!”

그러나 따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호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담소하만이 들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있었다.

***

아미산에서 일어난 일은 천하를 들썩이게 했다.

창룡검주가 홀로 태평맹에 맞서 아미파를 구해 낸 것은 그야말로 일대 영웅의 풍모가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세운 창룡맹에 즉시 아미가 가맹하고, 소림과 화산에 이어 남궁세가까지 합류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창룡검주가 본래 신승의 사제라는 말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의 창건자인 신승의 사제라면 사실상 무림맹의 적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강호 무림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장강의 영웅맹과 사천의 태평맹에 이어 드디어 일대 정파맹, 창룡맹이 탄생한 것이다.

본래 창룡검주가 검성의 후계자로도 알려졌다는 것과 기이한 서찰의 주인이었다는 이야기들과 함께, 창룡맹의 소문은 온 천하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사천성 성도, 당문.

“곤란하군.”

문주, 청염군 당천벽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앞에는 당설련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시가 바쁜 때에……. 쯧.”

당천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허나 이 일은 대외 총괄군사의 잘못만은 아닐세.”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푸른빛의 화려한 옷을 입은 중후한 풍모의 노인이 흰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창룡검주가 아미산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하지 않았나?”

“또한 그는 조정의 전권 대리인이기도 하지.”

붉은 옷을 입은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푸른 옷의 노인과는 쌍둥이라 해야 할 정도로 닮았지만, 눈빛은 대단히 날카로웠다.

“당벽후가 발길을 돌렸으니 대외 총괄군사에겐 불가항력일 수밖에. 클클.”

당벽후는 독기공의 고수다.

그로서도 안 되는 일이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문주 당천벽은 당설련에게 말했다.

“청홍쌍노께서 이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하신다.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불가능을 가능케 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당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설련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사람의 일에 불가항력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후후.”

문주, 청염군 당천벽은 웃음을 흘렸다.

“과연 당문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답이군.”

그는 당설련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허나 우리는 시간이 없다. 알고 있겠지? 내가 왜 네게 대외 총괄군사를 맡겼는지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태평맹은 일곱으로 갈라진 조각의 모임이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현실적 이익이라는 지극히 강력하고도 당연한 이유 하나뿐, 그 외에는 어떠한 명분도 결속력도 없다.

그러므로 태평맹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다.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하여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다른 문파를 먹어치우고 사방으로 영향력을 뻗어, 그 누구도 태평맹을 대적하거나 그 절대적 우위를 의심치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태평맹은 단번에 갈라지고 말 테니까.

“그러므로 이번 일은 대외 총괄군사로서 대단히 치명적인 실수다.”

“네.”

당설련이 조용히 답했다.

푸른 옷의 청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외 총괄군사의 이번 대회는 크게 평가할 만하지.”

청노는 당설련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대외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 맹 내에서도 당문을 크게 높였으니 말일세. 그로 인해 발생한 이익도 매우 크고.”

“물론 그렇지.”

붉은 옷의 홍노가 피식 웃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전권 대리인과 밀약을 성사시키고, 아미파를 무릎꿇게 했다면 더더욱 좋았을 텐데 말이야.”

홍노의 눈빛은 증오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청염군 당천벽은 당설련을 향해 몸을 굽혔다.

스윽.

“한 번.”

속삭이듯 당천벽은 말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알겠느냐?”

당설련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이제 그녀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청염군 당천벽에게 허언이란 없으니까.

“밀약이 성사되지 못한 것도, 아미산의 실패도 모두 한 사람 때문이더구나. 그렇지?”

당설련은 이를 악물었다.

“네.”

“대책은?”

당설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당천벽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무엇이든, 누구든 원하는 대로 사용해도 좋다. 당문과 적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철저히 깨닫게 해라.”

“알겠습니다.”

당설련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당천벽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내 딸은 결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당문의 문주, 청염군 당천벽과 청홍쌍노는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 속에서, 당설련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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