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제 계획을 망치기 위해서겠지요
감찰어사 조관이 운현에게 물었다.
“연관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음.”
운현은 잠시 찻잔을 매만졌다.
“예컨대 태평맹과 관계가 좋지 않다거나, 분쟁 가능성이 있는 문파들 말입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아미파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분쟁 말씀입니까?”
“네.”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은 말했다.
“힘을 키운 이후에는 잡아먹을 상대를 찾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니까요.”
조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태평맹은, 특히 당문과 제갈세가는 이미 공격적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태평맹은 보다 큰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강호 무림에 충격을 줄, 사람들의 인식을 뿌리채 바꿔 버릴 수 있는 일을 말입니다.”
“그 대상이 아미파가 될 것이라는 뜻이군요.”
“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미는 무림맹이 무너질 때 큰 피해를 입었다.
만일 태평맹이 아미를 집어삼킨다면 강호 무림은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이다.
태평맹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군요.”
조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태평맹은 정파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문 정파인 아미와 분쟁을 일으킨다면 비난을 받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입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욕심은 그런 당연한 것마저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이 바로 사람의 탐욕이지요.”
말하던 운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고 정당하다 여길 테지만요.”
조관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운현의 명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미를 포함하여 가능성이 있는 문파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시 주저하던 조관이 물었다.
“태평맹이 아미와 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대인께서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막을 겁니다.”
운현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현재 강호 무림의 구도는 일대상인이 의도한 대로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가 이어 놓은 것을 끊을 것이고, 모은 것은 헤쳐 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태평맹이 아미를 집어삼키고자 한다면 당연히 막아야지요.”
빙긋 웃으며 운현은 말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당설련 군사에게 이미 말했거든요.”
그 말은 조관에게도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관은 운현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그 말씀은…….”
굳은 표정으로 조관이 말했다.
“태평맹의 배후에도 일대상인이 있다는 뜻입니까?”
“증거는 없습니다.”
찻잔을 들어 올리며 운현은 말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조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운현의 말대로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호 무림 전체가 이미 일대상인의 손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관군을 동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볍게 웃으며 운현이 말했다.
“우리 둘이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강호 무림에는 아직 나머지 절반이 있으니까요.”
‘둘? 절반?’
조관은 운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조관 자신을 포함시킨 이유도, 그리고 강호 무림에 있다는 ‘나머지 절반’도.
그러나 운현은 조용히 차를 음미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또 하명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여쭤 봐야겠군요.”
달칵.
찻잔을 내려놓으며 운현은 말했다.
“장강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조관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관을 바라보는 운현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
아미산, 아미파 산문 앞.
천수 신니와 빙설의 대결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창룡검주 운현이었다.
“창룡검주!”
“창룡검주다!”
사람들은 운현을 즉시 알아보았다.
얼마 전 태평맹 무림용봉지회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사람이 바로 창룡검주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당설련은 이를 악물었다.
아득.
‘또!’
또다시 운현이 나타났다.
그것도 당설련이 엄청난 공을 들여 놓은 계획 한복판에.
운현을 주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도를 나서는 그 순간까지 당설련은 운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일에 운현이 개입할 명분도 없었다.
아무리 신승의 사제이며 조정의 전권 대리인이라 해도 아미와는 전혀 무관했으니까.
“저자는 왜 이곳에 나타난 거냐?”
옆에 서 있던 노인, 당벽후가 물었다.
그 역시 창룡검주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다.
“왜겠어요?”
당설련은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제 계획을 망치기 위해서겠지요.”
당벽후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운현을 노려보던 당설련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당설련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원독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벽후가 굳은 표정으로 막 무어라 말하려던 때였다.
“오랜만입니다.”
운현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인사를 한 사람은 바로 북해일문, 그중에서도 삼궁주였다.
“오래 아니에요.”
삼궁주가 사뭇 냉랭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난 번 연회에서 우리 봤어요.”
그녀의 말투는 예전처럼 조금 어색했다.
외워 두었던 문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운현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때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네요.”
팔락.
삼궁주의 옷소매가 우아하게 흩날렸다.
짐짓 큰 동작으로 두 손을 모은 삼궁주는 운현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온 지혜로운 푸른 늑대께.”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북해일문의 모든 이들이 삼궁주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삼궁주가 예를 표해요.”
호위무사인 빙혼은 물론 빙설조차도 운현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들이 이런 예를 표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당설련은 이를 갈았다.
‘지금 대체 뭐하자는 거야!’
승부를 방해하고 아미를 편든 자에게 예를 표하다니, 이래서야 북해일문이 어느 편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게다가 북해일문의 정중한 예는 운현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켜 주고 있었다.
당설련으로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운현은 북해일문의 예에 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제게 예를 표하셨다는 건 저와 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까?”
“네.”
삼궁주가 빙긋 웃었다.
“푸른 늑대께서 막아서시면 감히 그 누가 대적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냥 물러나요.”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듣기는 좋지만 일이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운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허나 그뿐이에요.”
삼궁주는 조용히 말했다.
“무림맹 무너졌으니 모든 것은 새로 정해야 해요.”
운현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빙제의 약속은 운현이 아니라 무림맹과 한 것이다.
그때에는 그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는데, 이런 식으로 여파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운현은 문득 삼궁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운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보니 십이궁주께서는 소궁주님과 정말 많이 닮았군요.”
“정말요?”
삼궁주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하지만 삼궁주는 곧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굳혔다.
“크흠. 난 이제 삼궁주예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소궁주께서는요?”
“일궁주이자 대궁주가 되셨어요. 빙제님의 권한을 대리하는……. 아, 이거 말해도 되나?”
삼궁주가 흠칫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다.
고민하던 삼궁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서기 오빠니까 괜찮겠네요.”
“저도 이젠 서기가 아닙니다.”
운현이 말했다.
“창룡검주이자 조정의 전권 대리인이지요.”
삼궁주는 눈을 크게 떴다.
“뭔지 모르지만 대단해요. 역시 운 오빠는……. 크흠.”
당설련의 따가운 눈길을 느낀 삼궁주는 얼른 말을 끊었다.
제갈기호가 ‘여전히 귀엽네요’라고 중얼거린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물러나요.”
삼궁주가 사뭇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요?”
“네. 우리는 푸른 늑대께 대적 안 하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북해일문을 다들 싫어하시니.”
슥.
당설련을 똑바로 쳐다보며 삼궁주가 말했다.
“나머진 알아서 하겠지요.”
북해일문은 이미 넘칠 정도로 얻었다.
아미의 천수 신니가 패배를 인정했고 태평맹에 북해일문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제 강호 무림에 북해일문의 이름은 더욱 크게 울려 퍼질 것이다.
사락.
당설련이 삼궁주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
“북해일문의 협조에 감사드려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당설련은 말했다.
“과연 태평맹의 일원이 되기에 걸맞은 역량이군요. 다만 그 검이 한 사람에 의해 멈춰 섰다는 건 아쉽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 어쩌겠어요?”
은근한 비난이 섞인 말이었지만 삼궁주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북해일문이 거둔 성과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락.
당설련은 운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당신에게 물을 차례군요.”
그녀의 입가에 사뭇 환한 미소가 걸렸다.
“중요한 승부에 무례히 난입하고 여러 사람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니 마땅한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만일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당문의 눈꽃, 당문설화 당설련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그에 상응할 책임을 지실 각오를 하셔야 할 거예요.”
운현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책임이라니, 어떤 책임 말입니까?”
당설련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승부에 관해서라면 이미 두 분께서 양해를 해 주셨습니다. 승패 또한 분명하게 인정하셨지요.”
비록 운현이 난입했다지만 빙설도, 천수 신니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
또한 천수 신니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제가 여러 사람의 심기를 어지럽혔다고 하셨는데.”
운현은 당설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까지 제가 책임을 질 필요가 있을까요? 심기가 어지러우시다면 조용히 명상을 하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마침 이곳은 유서 깊은 사찰이군요.”
말하는 운현의 표정은 뻔뻔스러울 정도였다.
제갈기호가 ‘와우, 운 서기께서 비아냥거릴 줄도 아시는군요.’라고 중얼거리는데, 당설련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 말은.”
당설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태평맹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인가요?”
운현의 말은 태평맹이 적으로 돌아서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였다.
“무엄하다!”
조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당설련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자 조관이 정식 관복을 입고 운현 뒤쪽에서 나타났다.
“감히 조정의 전권 대리인이신 운 대인을 협박하다니, 네가 정녕 죽고 싶더냐! 나 감찰어사 조관이 결단코 용납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