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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22화 (322/530)

322화. 치열한 공방

당설련은 이를 악물었다.

천수 신니가 이긴다면 상관없다.

예정대로 당벽후가 천수 신니를 쓰러뜨리고, 아미의 나머지 열을 꺾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빙설이 이긴다면 어떻게 될까?

아미파를 꺾었다는 영예는 온전히 북해일문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당문이나 다른 세가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 건 결코 당설련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차선책을 써야 하나?’

당설련에게는 한 가지 계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신호 한 번이면 아미파의 경내는 단번에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하고 있는 그녀의 또 다른 전력들에 의해서 말이다.

“아서라.”

당벽후의 묵직한 목소리가 당설련의 귓가에 울렸다.

“여기서 혼전으로 몰고가면 아미파에 불복의 빌미를 주게 된다. 사태가 길어지면 일이 복잡해져.”

사천이 당문의 것이라지만 아미의 영향력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아미파 속가제자들이 세운 문파나 표국 들은 사천 이곳저곳에 산재했다.

아니, 사실 아미가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더라면 당문은 지금처럼 위세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빨리 끝내야 했다.

유력가의 안주인에게서 아미를 두둔하는 소리가 나오거나 아미파 속가제자들이 움직이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야 했던 것이다.

사박.

결정은 빨랐다.

당설련은 급히 북해일문으로 걸어갔다.

자박, 자박.

삼궁주는 고개를 돌렸다.

당설련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탁.

발걸음을 멈춘 당설련이 빙긋 웃었다.

“과연 북해일문의 힘은 대단하네요.”

“감사해요.”

삼궁주는 새침하게 고개를 숙였다.

언니에게 배운 그대로였다.

당설련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그것은 곧 미소 뒤로 사라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네?”

그건 정말 몰라서 한 반문이었다.

하지만 당설련은 미소를 머금었다.

“북해일문의 승리는 이미 충분히 강호를 뒤흔들 만해요. 허나 태평맹에는 북해일문의 지나친 개입을 반기지 않을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삼궁주는 분명히 알아들었다.

삼궁주는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 하지만…….”

“물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주어질 거예요. 태평맹은 북해일문의 배려에 감사할 것이고, 저도 빚을 하나 진 것으로 여기지요. 그리고 북해일문이 요구하는 것은 그 무엇이건 최대한 협조할 것을.”

당설련은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어요.”

그것은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삼궁주는 한숨을 쉬었다.

“안 돼요.”

당설련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삼궁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무슨…….”

“할 수 없어요.”

삼궁주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검을 뽑은 건 목숨 걸었다는 뜻이에요. 검을 든 전사 멈추는 건 큰 모욕이에요. 더구나 빙설인데요? 누구라도 결코 가능하지 않아요.”

“아니,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선택, 아니라고요.”

삼궁주의 눈빛은 진지했다.

당설련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선택이 아니라고…….’

협상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벗어났다.

빙설이 나선 순간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당설련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그러나 삼궁주는 피식 웃었다.

“안 괜찮으면요?”

당설련을 똑바로 바라보며 삼궁주는 말했다.

“책임자들 모두 동의했고, 당신 동의했어요. 태평맹 대외 총괄군사는 자기가 한 말도 못 지키는 사람이에요?”

두 여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그러나 삼궁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훗.”

당설련이 가볍게 웃었다.

“아랫사람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니 우스운 일이군요.”

“자신의 말도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는 좋아요.”

삼궁주 역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단어 선택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 의미는 당설련에게 분명히 전해졌다.

사락.

당설련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자박, 자박.

조금 거칠어진 걸음으로 당설련이 멀어졌다.

삼궁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여자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 북해 사람 같은데?”

빙혼이 나지막이 말했다.

“당설련 군사는 당문 사람입니다.”

“아니, 하지만…….”

혀를 차며 삼궁주는 말을 이었다.

“안 될 것 같으니까 인사고 뭐고 없이 바로 돌아서잖아. 여기 사람들은 예의를 중시한다더니.”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빙혼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래.”

삼궁주는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어.”

그녀의 웃는 모습은 사뭇 귀엽고 매력적이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제갈기호뿐이었다.

“역시.”

제갈기호는 빙긋 웃었다.

“저 아가씨는 웃을 때 매력적이라니까요? 몸매도 상당히 착하……. 크흠, 죄송합니다.”

모용미도 살짝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상대는 태평맹 대내 총괄군사인데 자신도 모르게 노려봤던 것이다.

“어쨌든 대단하군요. 짐작은 했지만 빙설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갈기호는 빙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 운 대인의 검을 본 영향인가?’

조금 전 빙설이 쓴 수법은 제갈기호의 눈에 익었다.

운현이 북해에서 보여 주었던 바로 그 광경을 재현하려 한 것이 분명했다.

“이름이 빙설인가요?”

모용미의 목소리에 제갈기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아니라 직위 같은 것이던데요? 북해 사람들은 이름을 안 가르쳐 주더라고요. 저 빙설은 따로 북해십이비라고도 불리더군요.”

“북해십이비요?”

질렸다는 듯 제갈기호가 말했다.

“네. 저런 사람이 열두 명이나 있다는 뜻이지요.”

모용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미파 십이선사를 단번에 날려 보낼 정도의 무력을 가진 이가 열 둘이나 되다니!

“아, 물론 전부가 저 빙설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빙설은 북해십이비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군요.”

모용미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제갈세가가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빙설이라는 여인은, 단순한 호위는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호위는 저 빙혼이에요.”

“그렇다면.”

모용미는 빙설을 쳐다보며 말했다.

“빙설은 어째서 예전 무림맹 용봉지회에 왔던 거지요?”

“네?”

“절정고수는 결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요. 북해십이비라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고수가 무림맹에 왔다는 건 그에 걸맞은 중대한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지금처럼 아미파를 상대한다든가 하는 일 말예요.”

“그럴듯하군요.”

제갈기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예전 무림맹 용봉지회에서 중대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해의 소궁주 일행은 본선 전에 비무를 포기했고, 이후의 연회에서 잠시 말썽이 있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렇다면 빙설은 왜 왔던 걸까요?”

그때 무림맹에서 절정고수가 모습을 드러낼 만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빙설은 왜 동행했던 것일까?

“글쎄요?”

제갈기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 수 없지요. 본래 강호에는 감춰진 일이 허다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용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제갈기호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그때 무림맹에는 검성이 있었다.

검성과 북해의 인연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도 정말 아무 일이 없었을까?

문득 모용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운 학사님.’

그때 운현은 북해빙궁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그는 후에 검성의 후계자로 알려졌고, 제갈기호와 함께 북해에 다녀왔다.

그 일련의 일들이, 저 빙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억측일까?

“드디어 나서는군요.”

제갈기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모용미는 고개를 들었다.

법영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노승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두 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천수 신니와 빙설의 비무가 시작된 것이다.

***

사박.

낡은 승복을 입은 천수 신니가 빙설 앞에 멈춰 섰다.

천수 신니는 합장으로 예를 표했다.

“나는 천수라 하네.”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천수 신니가 물었다.

“자네는 스스로를 어떻게 칭하는가?”

빙설이 나지막이 말했다.

“빙설.”

천수 신니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빙설이 북해의 언어로 답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울림이 좋군.”

펄럭.

천수 신니가 팔을 가볍게 벌렸다.

낡은 승복의 소매가 바람을 품고 부풀어 올랐다.

천수 신니는 천천히, 다시 한번 두 손을 마주했다.

“오늘 그대와 마주하게 되어 기쁘네.”

펄럭, 펄럭.

합장한 천수 신니의 소매는 계속 펄럭이고 있었다.

바람은 이제 불지 않는데도, 그녀의 소매는 바람을 맞은 돛처럼 더욱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로써 내 마지막 미련을 떨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일세.”

스릉.

빙설이 검을 뽑았다.

지심을 상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나오지 않던 그녀의 검이 천수 신니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수 신니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꺾는다면, 나도 능히 천하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지 않겠나?”

후우우욱.

폭풍 같은 기세가 천수 신니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훅.

천수 신니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와 함께 빙설과 천수 신니가 서로를 향해 짓쳐 들었다.

쉬익. 콰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맨손과 칼이 부딪혔는데 마치 천둥 같은 충격음이 들려온 것이다.

“마, 맙소사.”

지켜보던 누군가가 탄식을 흘렸다.

태평맹은 물론 아미파의 승려들도 안색이 굳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무위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아!”

천수 신니의 일장이 빙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빙설은 바람처럼 천수 신니의 공격을 흘려 냈다.

콰앙.

터져 나온 충격음은 천수 신니의 공세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검광이 번뜩였다.

쉬익.

허공을 가르는 빛의 궤적과 함께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쾅, 카강, 콰앙.

검기가 번뜩이고 강맹한 위력의 권장이 바람을 갈랐다.

두 사람의 공방은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이 격렬했다.

하지만 누가 우세한지, 어떻게 비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움직임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미파 승려들은 손에 땀을 쥐고 초조한 마음으로 비무를 지켜보았다.

이 비무에 사실상 아미의 운명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태평맹 무사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북해일문의 빙설이 나섰을 때만 해도 이런 무위를 보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오는 천수 신니의 강맹한 권격은 그들의 안색을 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이라면 저 일격을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들은 아미파를 무릎 꿇리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당설련의 표정만은 무엇인가를 각오한 듯 싸늘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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