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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93화 (293/530)

293화. 맹주전의 독대

감찰어사 조관은 운현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일단 감찰이 시작되면 모든 것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감찰 결과 나온 사실들에 대해서는 최고위급 관료라 할지라도 은폐를 시도하지 못하지요. 자칫 자신마저 파직 당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를 운현은 역사적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관의 말은 옳았다.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고 또 그리되어야 한다.

“만일 감찰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자신이 연루될 것 같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입니다. 기획 권한을 가진 고관에게 접촉하여 자신을 감찰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입니다.”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엔 조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과연 그럴까요?”

감찰어사 조관은 운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대인의 무공은 천하를 뒤흔들 만합니다. 비록 저는 무림과 깊은 연관이 없으나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을 그리도 간단히 패퇴시키는 사람을, 저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조관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또한 대인께서는 동창 병필태감이신 박 공공께서 정중히 모시라 명한 분입니다. 그것도 황실의 예격에 준하여서요.”

다시금 쓴웃음을 지으며 조관은 말을 이었다.

“이런데도 염중부가 그리할 정도의 사람이 아니시란 말입니까?”

“으음.”

조관의 말은 운현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과연 염중부에게는 그리 보일 수도 있겠군요. 조정에 있던 문왕의 수족을 자른 사람이 저라 여기고 있으니까요.”

운현이 보기에 염중부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 그것도 황실과 운현이 깊은 연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제아무리 환우오천존이라도 천하를 상대로 싸우지는 못한다.

비록 무림인들이 관을 업신여겨도 백만 황군 앞에서는 피하는 수밖에 없다.

우물물과 강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만 그건 무림인들의 소망일 뿐이다.

국가 권력은 단 한 순간도 독점적 권위를 포기한 적이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 순간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며, 세상은 그것을 난세라 부를 테니까.

“그가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운현은 나지막이 말했다.

“알 것도 같군요.”

조관은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운현은 조관을 향해 말했다.

“이제야 염중부를 만날 수 있겠군요.”

말하는 운현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

“이리로 오시지요.”

말끔한 문사가 정중하게 운현 일행을 안내했다.

저벅, 저벅.

화려한 복도를 걸으며 운현은 영웅맹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영웅맹은 예전보다 더 크고 화려했다.

건물들의 배치도 비슷해서, 마치 과거의 무림맹이 새롭게 단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런 운현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앞서 걷던 문사가 조용히 말했다.

“황궁 외에는 천하에 이런 대단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감찰어사 조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어찌 도적들의 소굴에 황궁을 거론한단 말인가?

“그렇군요.”

운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항장익과 담소하, 진예림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영웅맹 내부 배치와 구조를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그렇게 걸었을까?

운현 일행은 유독 크고 화려한 전각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과거 무림맹의 대의사청이 있던 자리였다.

탁.

발을 멈춘 문사가 운현에게 말했다.

“맹주님께서는 오직 대인 한 분만 만나겠다 하셨습니다.”

“그럴 수 없소.”

조관이 즉시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는 대인을 호위할 책무가 있소.”

“안 됩니다.”

문사는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이 이곳까지 들어오신 것만 해도 파격적인 예우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영웅맹이 어찌 관인을 반기랴?

문사의 말은 당연했다. 하지만 조관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러나…….”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운현의 목소리가 조관의 말을 끊었다.

“다만 이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문사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곧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운현은 조관에게 미소를 보였다.

조관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운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운현이 염중부를 이겼다 해도 이곳은 적지다.

조관으로서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대인.”

마치 다짐을 받듯 조관이 말했다.

“네.”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운현은 몸을 돌렸다.

문사는 맹주전의 입구를 가리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맹주전에 들어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듯했다.

스륵.

전각의 커다란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영웅맹 맹주전을 향해, 운현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전각 내부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길게 드리운 비단 휘장이 사방을 가리고, 어디서 들어오는지 알 수 없는 환한 빛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것은 위엄 있는 전각이라기보다는 천재적인 예인의 작품 같았다.

저벅, 저벅.

운현은 앞으로 걸어갔다.

그를 따라 좌우로 드리운 휘장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스르륵.

화려하게 장식된 커다란 방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사람의 기척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운현이 지나가자 뒤에서 문이 닫혔다.

탁.

“왔느냐?”

그곳에 염중부가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붉은 비단옷을 입고, 금빛 문양을 아로새긴 커다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염중부는 거만한 표정으로 운현을 내려다보았다.

“네.”

운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의제의 시신을 돌려 받으러 왔습니다.”

염중부는 불편한 기색으로 운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독선이더냐?”

그 물음이 무슨 의미인지 운현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독선이 치료해 주었느냐는 질문이리라.

“아닙니다.”

염중부의 굵은 눈썹이 꿈틀했다.

독선이어도 믿기 힘들지만 그조차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내력을 회복한 것일까?

하지만 염중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독선이 연관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당문과도 무관할 터이고, 결국 태평맹과는 상관없다는 뜻이니까.

슥.

“나는 영웅맹의 맹주다.”

염중부가 짐짓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아니지.”

그 말은 의외였다.

운현의 의아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염중부는 말을 이었다.

“나는 황실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평생 수많은 관원을 죽였으나 개의치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염중부의 굵은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허나 타의로 관을 대적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나는 매우 싫어하니까.”

“그렇다면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 역시 원하지 않으시겠군요.”

운현이 조용히 말했다.

“영웅맹은 장강의 주인이 되었으나, 동시에 모든 일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으니까요.”

“바로 그렇다.”

염중부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장강은 영웅맹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일대상인이 일으켰던 모든 일들이 영웅맹, 정확히 말하자면 염중부의 탓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결국 염중부가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태평맹과 당문은 달콤한 과실만을 챙기고 있는데 말이다.

“너는.”

운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염중부가 물었다.

“……문서의 주인이냐?”

“문서의 주인이 무엇입니까?”

도리어 운현이 물었다.

“바르게 묻지 않으면 옳은 대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문서의 주인은 무슨 뜻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으음.”

염중부는 신음을 흘렸다.

운현의 말이 옳다. 그러나 그 말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염중부가 아니었다.

“네가 모르고 있다는 건 알겠다. 허나 모른다고 해서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염중부에게 운현은 어쩌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일대상인이 주목하는 문서의 주인이자, 조정에서 문왕의 세력을 단번에 파탄 내 버린 사람이 바로 운현이다.

사실상 가장 큰 위협이지만, 동시에 운현은 염중부의 족쇄를 끊어 줄 가능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염중부는 운현을 손에 넣으려 했다.

비록 그의 검 앞에 무너져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대상인은 여전히 너를 문서의 주인으로 의심할 것이다.”

염중부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이 그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유일한 이유다.”

그 말의 의미는 컸다.

남궁세가와 공손세가를 무너뜨리고, 무림맹을 불태우며, 장강의 주인을 바꿔 버린 것조차 일대상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숨어 있다.

“일대상인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운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염중부의 눈동자가 순간 빛났다.

설마 운현이 그것마저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염중부를 똑바로 쳐다보며 운현은 말했다.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마치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흐음.”

먼저 물러난 사람은 염중부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군.”

커다란 의자에 몸을 기대며 그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리된다 한들 내가 얻을 건 뭐지? 나로서는 그가 어찌 되든 아무 상관 없는 일인데 말이지.”

“그때가 되면.”

운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오직 자신의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꿈틀.

염중부의 눈썹이 경련했다.

그는 운현은 죽일 듯 노려보았다.

철혈사왕 염중부에게 감히 누가 이토록 무례하고 오만한 말을 했던가?

그러나 운현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흥.”

염중부는 코웃음을 쳤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의 죄에 책임을 지기 마련이다. 그 죄가 무지이건, 혹은 무력함이건 간에.”

없는 죄를 애매히 덮어썼다는 말을 염중부는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죄요, 책임이다.

그것이 순박한 무지이건, 혹은 단지 힘이 없었던 탓이건 말이다.

“하지만.”

으득.

이를 악물고 나서 염중부는 말했다.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지.”

그것이면 족했다.

일대상인과 염중부를 별개로 보겠다는 것을 운현은 분명히 약속한 셈이니까.

슥.

염중부는 손을 내저었다.

“이 방을 나가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축객령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염중부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운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운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독고랑은 죽어 가며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 무슨 말을 남기진 않았을까?

마지막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 왔다.

“마지막이랄 것도 없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은…….”

문득 기분이 나빠진 듯, 염중부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건 직접 보도록 해라.”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듯 염중부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운현에게는 아직 물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신승께서는.”

그 말에 염중부도 움찔했다.

“어찌 되셨습니까?”

“흥.”

염중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결코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운현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놈 일은 소림에 물어라. 내게 따지지 말고.”

사뭇 즐겁다는 듯 염중부는 말했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운현을 내려다보던 염중부가 말했다.

“가라.”

염중부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끝나자 커다란 휘장이 내려와 염중부의 모습을 가렸다.

사박.

운현은 몸을 돌렸다.

그렇게 운현과 염중부의 만남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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