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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86화 (286/530)

286화. 잘못하다간 어선이 뒤집힙니다

운현을 향한 포정사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귀인이니 뭐니 하길래 어쩌다 인연을 잘 만나 벼락출세하는 인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도지휘사나 안찰사 역시 같은 생각이리라.

“목함 안을 유심히 보면서도 절대 손을 대지 않는 것을 너도 봤지? 아마 그때 계산이 다 끝났을 거다. 짐짓 감찰어사에게 넘기는 것 하며, 그 후에 한마디 한마디까지…….”

감탄하는 듯 고개를 저으며 포정사는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는 포정사, 안찰사, 도지휘사까지 있는 자리에서 보여 주는 그 여유로움이라니!

그것은 아랫사람들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탄사가 나올 만큼 노련했다. 아주 대단했어.”

포정사는 존경의 눈빛까지 떠올렸다.

“그건 마치 중앙 정계에서 십수 년은 갈고닦은 것 같은 실력이었다. 장담컨대 고위 관료를 아주 익숙하게 대해 본 게 틀림없어.”

“그, 그렇습니까? 저는 잘…….”

“하긴, 너는 잘 모르겠지.”

딱하다는 듯 보좌관을 바라보며 포정사는 말했다.

“하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어쨌든 돌아가는 대로 그 귀인에 대해 더 알아보고, 운가상단에 대한 발주 계획과 지원 방안을 마련해.”

“운가상단 말입니까?”

보좌관의 질문에 포정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모르겠냐? 아까 그 귀인이 말했지 않느냐? 이런 상단까지 찾아와 주신 배려를 잊지 않겠다고. 어느 쪽으로 성의를 보일 건지를 알려 준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아직도 이해가 안 가냐?”

보좌관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허, 허나 제가 보기에는 그런 걸 탐탁지 않아 하는 듯 보였습니다……. 혹여 괜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닐지…….”

최후의 용기까지 쥐어짜며 보좌관이 말했다.

그러나 포정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포정사는 보좌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것은 말이다, 받는 사람이 싫다고 하더라도 밀어 넣어야 하는 거야. 정색을 하고 화를 내더라도 쥐여 줘야 하는 거라고. 알겠나? 그게 성의고, 처세라는 거야. 그게 바로 사회란 말이다. 이 답답한 사람아.”

“아, 네…….”

보좌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포정사의 처세관에 무어라 할 수는 없는 데다가, 그로서는 딱히 공감이 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뭘 바라는 눈치를 보여서도 안 된다는 거야. 꼭 하수들이 푼돈 쥐여 주고는 많은 걸 바란단 말이지. 그게 자기를 얼마나 값싸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쯧쯧.”

포정사는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이런 건 어디까지나 미래와 관계를 위한 투자다. 길게는 수십 년을 멀리 내다보는 투자 말이야. 길거리 점포에서 당과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지. 근시안적인 놈들 같으니.”

보좌관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언뜻 천박해 보이는 처세관도 저 정도면 꽤나 그릇이 크지 않은가?

역시 포정사 정도 되면 생각도 남다르다고, 그렇게 납득하며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운가상단에 발주하는 것도 너무 표시 나게 하지는 말고.”

“네?”

보좌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내일이면 포정사가 운가상단을 찾아갔다는 소식이 광주 전체에 펴질 텐데 어떻게 표시가 안 난단 말인가?

“쯧쯧, 머리하고는……. 상단 상황을 봐 가면서 발주 물량을 조절하란 말이다. 처음부터 너무 대량 발주를 하면 명분도 없고, 딱 보기에도 이상하잖아. 대략 사오 년 정도 기간을 잡고 꾸준히 물량을 늘려 가란 말야.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내 말, 못 들었나?”

보좌관은 그제야 포정사의 의도를 깨달았다.

다른 상단에 알려지는 건 애초에 상관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광동성 포정사가 왜 상단의 눈치를 본단 말인가? 오히려 광주 상단들이 포정사의 눈치를 살필 텐데.

“아,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보좌관은 급히 서책을 꺼내 포정사의 지시를 적었다.

포정사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반드시 그 결과를 물어볼 테니까.

따각, 따각.

느긋이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보좌관은 당장 운가상단에 발주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 곧 돌아오는 명절 때 포정사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포정사의 처세술은 곧 포정사 자신도 그런 걸 바라고 있다는 뜻이니까.

포정사사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보좌관의 고민은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

광주, 하청상단.

쿵쿵쿵쿵.

별실에서 난초를 돌보고 있던 상단주, 하용한은 소란스러운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덜컹.

“헉, 헉, 어르신!”

그는 바로 운가상단에 보냈던 주 총관이었다.

“오, 주 총관. 일은 잘 마치고 왔는가?”

하용한은 느긋하게 말하며 난초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평소에도 주 총관은 별것 아닌 일로 소란을 피우곤 했던 데다, 운가상단에 다녀오는 일은 의외의 요소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만날 날짜는 언제로 정했나?”

난초를 닦으며 하용한이 물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혼담을 먼저 꺼내긴 했지만 하용한 자신이 못하게 되었다는데 운가상단이 무어라 하랴?

게다가 보상차원에서 도와주겠다고까지 했으니, 운가상단에서 거절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 그게, 헉헉, 문제가, 아닙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 총관은 말했다.

“지, 지금 운가상단에……, 허억. 그, 그러니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주 총관은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하용한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허어, 이 사람. 괜찮으니 천천히 말하게. 내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포, 포정사가 왔습니다! 운가상단에 광주의, 헉헉. 고관들이 전부 모여서 귀인을 맞으러 왔는데 그게 바로, 아이고 숨차. 그게 바로 그 사람이랍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하용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 총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천히 다시 말해 보게. 그러니까 포정사사에서 운가상단에 사람을 보냈다고?”

상인에게 관원이란 그다지 좋은 의미가 되지 못한다.

특히 관에서 먼저 사람을 보냈다면 말이다.

“요즘 운가상단의 상황이 안 좋다더니, 혹시 밀매 같은 것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혹여 그런 일이 있다면 하청상단은 바로 발을 빼야 한다.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묻는 하용한의 말에 총관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이고 답답해. 포정사사에서 사람이 온 게 아니라, 포정사가 왔단 말입니다! 포정사가!”

“뭣?”

하용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포정사가 왔단 말인가? 운가상단에? 본인이 직접?”

“포정사뿐입니까? 안찰사에 도지휘사까지 왔습니다. 전부 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말입니다.”

못 미더워하는 하용한이 답답했는지 총관은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며 말했다.

하지만 하용한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혹시 뭔가 잘못 본 건…….”

“아이고, 아닙니다!”

총관은 강하게 두 손을 내저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그렇게 못 미더우시면 지금이라도 운가상단에 사람을 보내시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대체 그들이 왜 운가상단에 간단 말인가? 그것도 포정사에 안찰사, 도지휘사라니.”

하용한이 못 믿는 것도 당연했다.

자발적인 성금이란 명목 아래 엄청난 돈을 받아먹으면서도 상단에는 발도 들이지 않던 포정사다.

공적인 행사가 아니면 포정사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형법을 관장하는 안찰사라면 상인들에겐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병권을 총괄하는 도지휘사라니.

“그게 바로 그 사람, 아니 그분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제야 총관이 말하고 싶은 본론이 나왔다.

총관은 침을 튀기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장황한 총관의 설명에 하용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잠시 후, 간신히 상황의 핵심을 파악한 하용한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털썩 자리에 앉은 하용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알고 보니 중앙 정계에 줄이 있었더란 말이지?”

“아아주 튼튼한 줄입지요.”

총관은 유난히 강조하는 어투로 말했다.

운현이 가진 그 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총관은 실감하고 있었다.

중앙의 감찰어사는 물론이고 포정사와 안찰사, 도지휘사까지 달려오게 만드는 줄이 아니던가?

“이미 혼담 얘기는 했다고 했지?”

혹시나 싶어 하용한이 물었다.

그 속도 모르고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다 끝났습니다.”

“끄응.”

하용한은 신음을 흘렸다.

“……아깝군.”

“아이고, 아닙니다요.”

총관이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먼저 혼담을 거둔 것이 잘된 일입니다. 보나 마나 퇴짜를 맞을 텐데, 그러면 그게 무슨 꼴입니까?”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하청상단이라 해도 지방 대관들이 귀인이라 부르는 사람과 사돈을 맺는다는 건 균형이 너무 맞지 않는다.

“놓친 물고기가 너무 크니 그런 거 아닌가?”

“물고기도 물고기 나름이지요.”

총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잘못하다간 어선이 통째로 뒤집힙니다. 정계의 일이란 게 어찌 될 줄 알고요?”

“끄응.”

하용한 역시 총관의 말에 공감했다.

거지 꼴로 낙향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고관들에게 귀인이라 불리며 특별 취급을 받고 있다.

본래 권력이야 하룻밤에 천지가 뒤집히는 것도 흔한 일이라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된다면 도저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성공의 열매가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큰 일이 아닌가?

‘하긴, 이미 물 건너간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처음부터 되지 않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용한은 상인답게 깨끗이 미련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포정사가 줄을 대려고 했다고?”

“예. 아주 대놓고 노골적으로 손을 뻗치더군요. 물론 그걸 넙죽 받을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아 보였습니다만…….”

“중앙 정계에 줄이 있을 정도라면 당연히 그럴 테지. 하지만 포정사도 그 정도로 그만둘 사람은 아니란 말이야.”

“아주 집요한 데가 있지요.”

총관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정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익히 알고도 남았다.

광주 상인으로서 그와 지낸 시간이 어디 한두 해던가?

“운가상단과 만날 날은 언제로 정했나?”

“아직 정하지는 않았고, 저희 쪽에서 날을 잡아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럼 가급적 빨리, 아니 내일 당장 만나자고 하게. 그리고 우리가 발주하기로 했던 주문을 두 배로, 아니 세 배로 늘리게.”

총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일요? 아니 그보다 세 배면 거래가 너무 커지는…….”

“클수록 좋네. 빠를수록 좋고.”

하용한이 말했지만 총관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다른 상단과 형평성 문제도 있고…….”

“허어, 이 사람.”

하용한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직 모르겠나? 아마 운가상단은 곧 포정사사의 물자 조달을 맡게 될 걸세. 그것도 큰 규모로.”

“그, 그렇겠죠?”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정사의 성격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제껏 하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러니 그 전에 신뢰 관계를 맺어 둬야 우리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 아닌가 말일세.”

규모가 큰 거래의 물자 조달, 그것도 포정사사 정도의 상대라면 그 어떤 상단이라도 혼자서 소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다른 상단에서 물량을 구하게 될 터이고, 광주의 모든 상단이 운가상단에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우리가 운가상단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운가상단이 우리에게 특혜를 주게 만들란 말일세.”

“오오, 과연.”

그제야 납득한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운가상단에 기별을 넣어 내일 만나자고 하게. 포정사사에서 조달 건을 발주하고 나면 이미 늦어.”

“알겠습니다.”

총관은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게. 나도 운가상단에 제안할 거래 내용을 다시 검토할 테니까.”

바쁜 걸음으로 총관이 별실을 떠나고, 하용한은 상단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집무실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한쪽 손에는 난초를 닦던 흰 천이 여전히 꼭 쥐어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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