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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84화 (284/530)

284화. 운가상단의 귀인

감찰어사 조관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안찰사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저희 일행의 관복이 필요합니다.”

“관복?”

안찰사의 반문에 조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모습으로 귀인을 뵐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조관의 모습은 여느 고관 자제와 같은 나들이 옷차림이었다.

그의 신분패가 아니었으면 감찰어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알았소. 그 정도야…….”

안찰사는 보좌관에게 눈짓을 했다.

“그럼 그 귀인은 오늘 모시러 가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가장 좋은 방을 준비해야겠군.”

황실의 예격에 준하여 모시고 가는 귀인이다.

당연히 안찰사사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명이 지엄하니 오늘 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오늘? 아니, 쉬지도 않고…….”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안찰사는 당황했다.

귀인을 안찰사사에 모셔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감찰어사의 순행을 중지하고 시행하는 명입니다.”

단호한 눈빛으로 조관은 말했다.

“이 일의 심각함을, 능히 아시겠지요?”

안찰사는 말문이 막혔다.

“음.”

하지만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안찰사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귀인을 모시는 자리에 가겠소.”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조관은 잠시 갈등했다.

그의 속내가 뻔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황실의 예격에 준하라 하셨으니, 지방 대관 된 자로서 어찌 귀인께 예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외다.”

안찰사는 강경했다.

조관 역시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수행원은 최소한으로 해 주십시오.”

“그리하리다.”

서로가 원하는 결론이 내려지자, 조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조관이 보좌관을 따라 떠나고, 안찰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이제부터 준비할 것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아.’

방을 나서려던 안찰사는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가져야 했던 당연한 질문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런데 그 귀인이 대체 누구지?’

하지만 감찰어사 조관은 이미 없다.

안찰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곧 볼 테니.’

이름이야 천천히 알아도 상관없었다.

귀인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이후라도 충분한 일이니까.

화려한 관복을 휘날리며, 안찰사는 자신의 내실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

운가상단의 집무실, 상단주인 운일평은 하청상단의 주 총관을 맞아 차를 나누고 있었다.

“허어, 그러셨구려.”

운일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청상단의 주 총관은 머리를 조아렸다.

“네,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본래라면 저희 어르신께서 직접 찾아오셔야 할 일이오나…….”

“아니, 아니오. 서로 좋은 인연을 맺고자 한 일이었으니 어찌 흉허물을 따지겠소이까?”

“그리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 총관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저희가 먼저 꺼낸 혼담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두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 운일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로써 조카에게 어려운 결정을 떠맡기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일과는 별개입니다만…….”

주 총관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이야기라 함은…….”

미소를 지으며 주 총관이 대답했다.

“상인들이 할 이야기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요즘 광주의 상계에 대한 것이겠지요. 어르신께서는 평소에도 운가상단의 신용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계시니까요.”

쓴웃음이 운일평의 입가에 스쳐 지나갔다.

주 총관의, 아니 하청상단의 제의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청상단은 이번 혼담의 결례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려는 것일 터이다.

‘결국 조카의 신세를 지게 되는군.’

입맛이 썼지만 운일평은 곧 그 감정을 지워 버렸다.

이렇게 해결된다면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다.

조카에게 짐을 지우지도 않고, 상단도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알겠소. 편한 때에 연락을 주시면…….”

운일평이 말하던 때였다.

갑자기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그것은 강 총관의 목소리였다.

하청상단의 총관이 와 있는데 그걸 방해할 정도라니, 운일평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인가?”

달칵.

문이 열리고 강 총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관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관(官)?’

그건 매우 애매한 표현이었다.

아마도 손님을 의식한 강 총관이 단어를 신중히 고른 결과리라.

하지만 운일평은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알았네. 우선 별실로 모시도록 하게. 그리고…….”

“아닙니다.”

강 총관은 운일평의 말을 끊었다.

“지금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운일평은 의아한 표정으로 강 총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 총관의 눈빛은 지금 나가 보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종용하고 있었다.

“알겠네.”

운일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실례하겠소.”

“아, 네. 그러시지요.”

상황이 심각해 보이니 하청상단의 주 총관도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운일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강 총관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의 다급한 발소리가 멀어지고, 혼자 남은 주 총관은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분명히 뭔가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었다.

평소 엄숙한 표정으로 유명한 강 총관이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라면 더더욱 말이다.

“크흠, 크흠.”

하청상단의 주 총관은 짐짓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허, 여기 측간이 어디더라?”

아무도 없지만 주 총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슬그머니 방을 나왔다.

“크흠.”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고, 하청상단의 주 총관은 운일평과 강 총관이 사라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투철한 직업의식의 발로였다.

만의 하나 운가상단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라면, 결코 자신과 무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일평은 강 총관을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강 총관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가?”

운일평이 물었다.

저벅, 저벅.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 총관은 말했다.

“허나 어르신께서 반드시 가 보셔야합니다.”

운일평은 한숨을 쉬었다.

그저 나쁜 일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운일평은 운가상단의 정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왜 강 총관이 ‘관에서 나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대체…….”

히힝, 푸르륵.

말들의 울음 소리와 커다란 마차들, 그리고 살벌한 창날을 빛내며 서 있는 수많은 군사들.

운가상단의 정문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 모두가 관복과 군복을 차려입고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뭔가 큰일이 났구나.’

심상치 않은 그 기세에 운일평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곧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저는 운가상단의 단주 운일평입니다.”

군병과 관인 들의 시선이 일제히 운일평에게 향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을 느끼며, 운일평은 말을 이었다.

“어느 분께서 책임자이신지요?”

저벅.

말에 탄 한 사내가 내려섰다.

정식으로 관복을 차려입은 훤칠한 체격의 사내는 운일평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죄송합니다.”

지극히 공손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러나 관복을 입은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저는 감찰어사 조관입니다. 지엄한 명을 받아 귀인을 모시러 왔습니다.”

운일평은 그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저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것이…….”

최대한 정중하게 운일평이 말했다.

그러나 감찰어사 조관은 빙긋 웃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운씨 성에 현 자를 쓰시는 귀인께서 이곳에 머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대단히 여유로운 미소였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운일평의 이해를 돕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운일평은 더더욱 큰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운현은 숙부 운일평이 급히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아한 마음으로 객청으로 들어서던 운현은 멈칫했다.

객청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숙부 운일평과 숙모, 사촌동생 운희연과 강 총관처럼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아, 저들은…….’

낯선 사람들 중에서 운현은 기억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관복이라는, 전혀 의외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분명 난화주루와 월수산에서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없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여인, 진예림이었다.

그사이, 객청에 있던 사람들도 운현을 발견했다.

덜컹.

몇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사람들도 뒤늦게 일어서고, 조용하던 객청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소란은 금방 잦아들었다.

“크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운현은 짐짓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사락.

운현은 숙부 운일평과 숙모에게 예를 표했다.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음, 그래. 그게…….”

숙부 운일평은 말을 흐렸다.

무언가 설명을 해 줄줄 알았던 운현은 의아한 눈빛을 했다.

하지만 운일평 역시 해 줄 말이 없었다.

슥.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객청의 다른 이들을, 특히 화려한 관복을 입은 중년인들을 쳐다보았다.

운현도 시선을 돌렸다.

“이분들은 누구신지…….”

저벅.

그때까지 계속 서 있던 젊은 관리 한 사람이 한 발 나서며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실례지만 운 대인이십니까?”

그는 강한 눈빛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대인?’

운현은 의아했다.

“제가 운현이긴 합니다만…….”

그건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니냐는 의미였다.

대인이라는 표현은 운현보다는 숙부 운일평에게 사용해야 마땅한 호칭이다.

그러나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도찰원 감찰어사, 조관입니다.”

‘도찰원.’

운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도찰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운현도 알고 있었다.

“도찰원 감찰어사께서 어째서…….”

운현의 표정은 사뭇 굳어 있었다.

그것은 의형 일충현을 잃고 황궁을 떠나게 했던 권력 투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허허허.”

그러나 조관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화려한 관복을 입은 뚱뚱한 중년인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광동성의 포정사 왕시중이외다.”

운현은 사뭇 놀랐다.

포정사라면 광동성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 대관이다.

“아, 네.”

운현은 정중하게 답했다.

“저는 운현입니다.”

“귀인께서 광동성에 계셨다니, 참으로 기쁜…….”

“크흠.”

무관 차림의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운현의 시선이 향하자, 중년 무관은 사뭇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도지휘사 이엄한이오.”

‘도지휘사?’

운현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지휘사라면 광동성의 군정을 책임지는 최고위직 아닌가?

그러나 운현이 채 답례를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안찰사 장영환이오. 만나서 반갑소, 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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