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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72화 (272/530)

272화. 감찰어사 조관

진예림은 감찰어사 조관을 향해 말했다.

“삼 개월 전, 호암상단의 상행이 청원 인근에서 습격을 받았어요. 호위무사들이 반격하여 습격자들 서른 명을 모두 죽였지요. 수상한 건, 당시 상행의 호위와 습격자들 모두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눈을 반짝이며 진예림은 말을 이었다.

“관이 수사에 나섰지만 제대로 된 탐문조차 없이 덮어 버렸어요. 충분히 수상하지 않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덩치 큰 항장익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상하긴 하지만, 우리 소관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담소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님이 아직 처음이라 잘 모르시나 본데, 상단과 관청의 유착 관계를 감찰하는 건 우리 업무지만 개별 사안까지 도찰원에서 관여할 수는 없다고요.”

진예림이 즉시 반박했다.

“호암상단은 광주에 진출하면서 엄청난 사재기를 했어. 그 자금 출처도 불분명하다고.”

담소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거대 상단의 자금 출처가 분명한 게 어디 있어요?”

진예림이 와락 눈살을 찌푸리는데, 듣고 있던 조관이 항장익에게 물었다.

“지방관들은 어떻던가?”

“포정사나 도지휘사, 모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관리들의 개인 비리 사건이 몇 건 있지만, 안찰사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더군요.”

“호암상단과 특별히 유착한 정황은?”

“제가 살펴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감찰어사 조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찰원 소속 감찰어사의 업무는 지방관의 부정부패를 탄핵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거도 필요 없고 법률에도 구애받지 않는 초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나, 지역 상단의 비리는 그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 비리가 민생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호암상단 문제는 일단 접어 두기로 하지.”

감찰어사 조관의 결론이 내려졌다.

진예림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쳤지만 담소하와 항장익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아, 그럼 광주도 끝이네요. 다음은 어디지요?”

담소하가 물었다.

그러나 감찰어사 조관은 잠시 침묵했다.

“……중앙에서 변동이 좀 생겼네.”

조관의 말에 세 사람의 안색이 굳었다.

“조칙에 따라, 현재 순안(巡按) 중인 모든 감찰어사는 동창의 업무를 최우선으로 수행하게 되었네.”

“동창요?”

담소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천자의 직속 기관이자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폐지되는 일 없던 권력 기관, 동창.

비록 환관이 주역이라고 하나 동창의 권위는 천자의 권위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도찰원이 동창의 일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와, 그거 잘됐군요!”

담소하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간 유명무실했던 도찰원도 이제야 좀 힘을 얻게 되겠어요.”

감찰어사가 지방관을 탄핵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방 대관(大官)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때문에 도찰원이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은 설립 초기의 이야기일 뿐, 현재 대부분의 문무감찰(文武監察) 권한은 지방 대관에게 속해 있었다.

초법적 권한 역시 지금은 대부분 유명무실하게 되어, 사실상 도찰원은 그저 이름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황제의 직속기관이자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동창이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창의 권력에 감찰어사의 초법적 권한까지 갖게 되는 셈이니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허나 우리의 책무는 변한 것이 없네.”

조관은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위로는 황상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편안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니까. 중앙에서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말이네.”

평소 조관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던 세 사람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명이 있습니까?”

항장익이 물었다.

조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웅맹과 관련한 모든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임무네.”

항장익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항주 혈사의 그 영웅맹 말입니까?”

항주 혈사와 영웅맹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무림의 일이라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고 강호의 판도가 바뀐 일대 사건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항주로 가야 되잖아요.”

담소하의 말에 조관이 답했다.

“항주 쪽은 따로 감찰하는 이들이 있네. 우선 순안하던 지역부터 살피라는 것이 도찰원의 명일세.”

그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감찰어사가 자신들만이 아니니 분명 항주를 맡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항주를 맡은 이들이 은근히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암상단도 다시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진예림이 말을 꺼냈다.

“호암상단은 영웅맹이 장악한 장강의 상행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잖아요.”

“누님, 장강에서 이득을 본 상단이 하나둘이에요?”

담소하의 말에 진예림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항장익이 웃으며 말했다.

“그쪽은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야. 우선 이곳 관리들 중 영웅맹과 결탁한 자들이 있는지 살피자고, 진 매.”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감찰어사 조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으로 결론은 났다.

“그럼 다들 수고하게. 무림의 일이 얽히게 되었으니 각별히 조심하고.”

감찰어사 조관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수행원인 이 세 사람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비록 드러내 놓고 직함을 부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결의는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저벅, 저벅.

감찰어사 조관은 먼저 자리를 떴다.

조관이 사라지자마자 진예림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너 나한테 불만 있어?”

그녀의 눈총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담소하였다.

“불만이라니요? 저만큼 누님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첫 임무시니까 도와 드린 거잖아요.”

“그런데 왜 내 말 끝마다 걸고 넘어지는 거야?”

“그럼 어사 대인께 부결당하는 게 더 좋단 말씀이세요? 그건 어차피 안 될 일이었다고요.”

확실히 진예림이 앞서 나간 면이 있었다.

하지만 호암상단이 수상한 건 사실이었다.

“자, 자. 이제 그 이야긴 그만하고.”

체격이 큰 항장익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광주 시내로 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지.”

“와! 좋아요!”

담소하가 반색을 하고 반겼다.

“사실 광주에 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 돼요? 여기는 음식의 도시 광주라구요!”

광주는 갖가지 요리로 유명했다.

풍부한 해산물에 발달한 음식 문화까지, 식재광주(食在廣州)라 하여 가히 음식의 도시로 불릴 만한 곳이 바로 광주였다.

“자, 어서 가요! 그렇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요.”

담소하가 씩씩하게 앞장섰다.

저벅, 저벅.

세 사람이 길을 따라 월수산을 내려가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어라?”

진예림의 목소리에 담소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길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뭔데요?”

담소하는 진예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연약해 보이는 한 서생과, 그를 둘러싼 서너 명의 험상궂은 사내들이었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담소하가 무심코 물었다.

“응.”

놀랍게도 진예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주 오는 마차에서 본 사람인데…….”

그들은 각기 다른 경로로 광주에 도착했다.

말하던 진예림은 곧 눈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지금 저것들이 뭐 하는 거야?”

뭐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내들 중 한 명이 서생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

그날, 운현은 오랜만에 홀로 운가상단의 저택을 나왔다.

새벽 내내 마당을 쓸어도 마음이 정돈되지 않아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시내로 나선 것이다.

그렇다고 이름난 곳을 찾아갈 형편도 아니어서, 운현은 운가상단의 하인에게 적당한 곳을 물었다.

하인은 거리도 가깝고 그리 높지도 않은 월수산을 알려 주었고, 운현은 그의 조언에 따라 월수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만 운현이 몰랐던 것은, 그 하인이 하청상단에서 일하는 하녀와 요즘 한창 뜨거운 사이라는 사실이었다.

탁탁탁.

“아가씨!”

하녀가 급히 뛰어오며 하영령을 불렀다.

막 손톱 단장을 시작한 하영령은 귀찮은 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왜?”

“아가씨, 아가씨! 글쎄 있잖아요. 그때 그분 있잖아요?”

하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분이라니, 누구 말야?”

손톱을 조심스럽게 단장하며 하영령이 물었다.

“아, 왜 아가씨와 혼인하실 학사님…….”

“내가 왜 그놈과 혼인을 해!”

하영령이 홱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녀는 움찔했지만 다년간 단련된 그녀는 그 정도에 주눅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이미 다 정하신 데다가, 그쪽 반응도 나쁘지 않다던데요? 이 정도면 혼인은 이미 성사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누구 마음대로 성사얏! 누구 마음대로옷!”

하영령은 성질을 내며 소리질렀다.

“절대! 결코! 반드시! 그럴 일은 없어! 알았어?”

‘반드시는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닌데.’

하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하영령의 성질을 돋울 생각은 없었기에 얼른 본제로 들어갔다.

“하여간 그분이 지금 운가상단에 있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내전의 삼순이 고년이 앙큼하게도 운가상단의 삼돌이하고 요즘 그렇고 그런 사이걸랑요. 계집애, 어쩐지 지난번에 즉석 만남 하러 가자니까 뭐, 자기는 그런 가벼운 만남은 싫다면서 꼬리를 빼더니 역시 이유가 있었어. 대체 언제 삼돌이를…….”

“야.”

하영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건이 뭐야? 빨리 말 안 해?”

“아! 내 정신 좀 봐. 헤헤. 하여간 삼순이 고것도 아가씨의 혼사에 관심이 무지 많걸랑요. 그래서 삼돌이가 만날 때마다 삼순이한테 그 학사님에 대해 아주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고 있다네요? 그러고 보면 삼돌이도 겉은 멀쩡한데 참 속이 없어요. 그렇죠? 남자들은 여자한테 빠지면 다 그렇게 되나 봐요. 지난번에 진가상단의 왕삼이도…….”

“야!”

드디어 하영령의 참을성도 바닥이 났다.

“당장 말 안 하면 이거 던진다?”

그녀의 손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자그마한 분곽이 잡혀 있었다.

뾰족 튀어나온 분곽의 모서리가 불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워, 월수산에 간대요. 월수산에.”

앞뒤 잘라먹은 본론에 하영령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누가?”

“누, 누구긴요. 그 학사님 말이에요. 오, 오늘 아침에 월수산으로 나갔대요.”

하영령은 그제야 하녀의 말을 이해했다. 요는 운가상단에 머물고 있는 그 남자가 월수산으로 갔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아가씨가 그러셨잖아요. 어디 간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 달라고.”

하영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 그때 뒷골목 깡패 몇 명 안다고 그랬지?”

“아, 알긴요? 누가 깡패를 안다고 그래요?”

하녀는 두 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그때 그랬잖아! 아는 오빠들 중에 주먹깨나 쓰는 놈들 있다고. 그게 깡패지 뭐야?”

“아이, 알기는 뭘요. 그냥 즉석 만남 하다가 잠깐……. 그리고 깡패 아니에요. 그 오빠들은 이제 싸움 안 하고 무슨 사업한대요. 사업.”

“어쨌든!”

하영령은 하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가서 용돈 좀 쥐어 주고, 월수산에 가서 그 사람 혼 좀 내 주라고 그래.”

“아이 참. 이제 싸움 안 한다니까…….”

“죽을래?”

눈을 부라리며 하영령이 말했다.

“후배든 동생이든 그런 애들 있을 거 아냐! 잘 알아서 해. 알았어?”

“…… 네.”

하녀는 기가 팍 죽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말을 마친 하영령은 고개를 돌려 다시 손톱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근데…….”

하영령의 눈치를 살피며 하녀가 슬그머니 말했다.

“아가씨는 안 가 보세요?”

“내가 왜? 남이 맞는 거 구경하는 취미는 없어.”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하영령은 대답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붓을 놀리며 손톱을 꾸미고 있었다.

“아니이, 구경이 아니구우.”

답답하다는 듯 하녀는 말했다.

“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딱 구해 줘야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나중에 결혼해서 그분이 얼마나 잘해 주겠어요? 역시 연애란 건 그런 짜릿한 맛이 있어야…….”

하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쏘아보는 하영령의 눈초리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요. 아가씨.”

슬그머니, 그리고 잽싸게 하녀는 자리를 피했다.

혼자 남게 된 하영령은 여전히 손톱 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영령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 자업자득이야. 자업자득.”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눈살을 팍 찌푸렸다.

“에이 씨.”

하영령의 고운 아미가 한껏 일그러졌다.

“실수했잖아!”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하청상단의 저택 한구석에서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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