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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65화 (265/530)
  • 265화. 창룡지회(蒼龍志會)

    장열해는 이때다 싶었는지 얼른 영웅맹 무인들에게 말했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그 후에 천천히 송가장 일을…….”

    “아니.”

    날카로운 눈빛의 사내가 장열해의 말을 끊었다.

    “우선 일부터 끝내지. 지금 바로 송가장으로 간다.”

    장열해는 당황했다.

    하지만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진하겠습니다!”

    슥.

    쌍검문 문주 장열해는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가자! 송가장으로!”

    “가자!”

    “와아아아아!”

    사십여 문도들이 일시에 함성을 질렀다.

    영웅맹의 이름을 등에 업고, 칼을 찬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송가장을 향해 발을 옮겼다.

    ***

    송가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장주 송한방과 큰 아들 송시원은 물론, 칠십여 제자들은 긴장 된 얼굴로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이 무거웠을까?

    큰아들 송시원이 슬그머니 장주 송한방을 보았다.

    “아버님…….”

    콰당.

    “쌍검문이 옵니다!”

    제자 한 명이 요란하게 문을 열며 외쳤다.

    송가장 사람들이 일제히 검에 손을 가져가고, 동시에 쌍검문 문주 장열해의 외침이 들렸다.

    “너 이놈! 송가야!”

    장열해를 선두로 쌍검문 문도 사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송가장 칠십여 제자들 앞에서도 그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네놈이 감히 영웅맹을 대적하고도 살기를 바랐더냐! 당장 나와서 목을 바쳐라!”

    송가장이 영웅맹을 적대한 일은 없다.

    그저 준위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지방 도시 두 문파의 싸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쌍검문이 막대한 돈을 바쳐 영웅맹을 등에 업었으니 시시비비는 의미가 없다.

    저벅.

    송가장 장주 송한방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어느 분께서 영웅맹의 고인이시오?”

    “우리다.”

    저벅, 저벅.

    쌍검문 문도들이 옆으로 물러서고 세 명의 중년인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모습에 송한방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중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세 분을 영접하지 못한 점, 사과드리오. 허나 이 일은 송가장과 쌍검문의 문제이니…….”

    “이젠 아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매서운 눈빛의 중년인에게서 흘러나왔다.

    “우리가 나선 이상, 이것은 이제 영웅맹의 문제다.”

    그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장주 송한방은 이를 악물고, 쌍검문 문주 장열해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어, 어째서 이곳 일에 영웅맹이 나서는 것이오?”

    송한방의 항의는 정당했다.

    이곳은 장강에서 수백 리나 떨어진 곳이다.

    어째서 영웅맹이 이 먼 지방 도시의 분쟁에까지 나선단 말인가?

    “어째서냐고?”

    중년인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송한방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영웅맹이 바로 천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송가장은 물론 쌍검문의 사람들도 한순간 말을 잊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하하하하!”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냐!”

    매서운 눈빛의 중년인이 즉시 주위를 살폈다.

    “영웅맹이 천하의 주인이라고? 으하하하하!”

    또 다른 방향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미친놈의 헛소리를 듣는구나. 우하하하!”

    웃음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매서운 눈매의 중년인은 물론 영웅맹에서 온 다른 두 사내도 급히 검을 빼어 들고는 크게 외쳤다.

    “어떤 놈들인지 썩 모습을 보여라!”

    휘리릭.

    지붕 위로부터 두 사람이 날아내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높은 수준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었다.

    휘릭, 휘리릭.

    모습을 나타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송가장의 담을 가볍게 날아 넘어온 다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나와 있던 영웅맹 사내들은 순식간에 다섯 명의 괴한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이 되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괴한들은 하나같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는 창룡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다.”

    “창룡? 설마……. 창룡검주!”

    영웅맹 사내들의 안색이 일시에 변했다.

    장강에 나돌고 있는 ‘영웅맹과 맞설 자는 창룡검주뿐이다’라는 소문을 그들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쳐라!”

    대화는 필요없었다.

    복면 괴한들은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영웅맹 사내들도 검과 도를 뽑아 응전했다.

    챙, 채채챙.

    쌍검문도 송가장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던 데다, 검광이 번득이는 살벌한 모습은 그들이 끼어들 곳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었다.

    영웅맹에서 온 세 명의 중년인들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형님!”

    비대한 중년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혼단을 써라!”

    매서운 눈빛의 중년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영웅맹 사내들은 다급한 와중에서도 일제히 품속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복면의 괴한들 역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웅.

    다섯 괴한들의 검이 나지막이 울었다.

    ‘허억!’

    지켜보던 송가장과 쌍검문 사람들은 경악했다.

    괴한들의 검에 피어오르는 은은한 기운은 말로만 듣던 검기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타하아!”

    검기가 피어오르는 검이 일제히 영웅맹 사내들을 향해 짓쳐 들었다.

    막 기혼단을 삼키던 그들은 그 검격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걱.

    “커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털썩.

    “흥.”

    쓰러진 그들을 내려다보며 복면 한 사내가 비웃듯 말했다.

    “그리 나올 줄 알았다. 쓰레기들이 의지할 것이 기혼단밖에 더 있겠느냐?”

    피를 흘리던 영웅맹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너, 너희는 누구…….”

    “알 것 없다.”

    가볍게 휘두른 그의 검은 사내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촤악.

    피가 튀고 사방에 정적이 감돌았다.

    쌍검문도, 송가장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복면의 사내가 말했다.

    “영웅맹의 세상 따위는 없다!”

    슥.

    그는 피 묻은 검을 높이 들며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영웅맹과 맞설 자는 창룡검주뿐이다! 우리는 창룡의 뜻을 따르는!”

    복면의 사내들이 일시에 검을 치켜들고 크게 외쳤다.

    “창룡지회(蒼龍志會)다!”

    휘리릭.

    외침과 함께 그들은 일시에 몸을 날렸다.

    복면의 사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이게 대체…….’

    송가장 장주 송한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 꿈이나 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겨진 세 구의 시신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장주.

    난데없이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송한방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음!’

    송한방은 자신에게만 들리는 이것이 전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방금 전 사라진 복면의 그 사내라는 것도.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이어지는 전음에 송한방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안색이 점점 어둡게 변해 갔다.

    하지만 잠시 후, 송한방은 자신의 검을 들고 일어섰다.

    “송가장의 제자들이여!”

    갑작스러운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송한방에게 집중되었다.

    쌍검문의 문주 장열해는 불안한 마음으로 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복수의 기회가 왔다! 쌍검문을 쳐라!”

    송한방은 이를 갈았다.

    문주 장열해를 비롯한 쌍검문 문도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처음부터 영웅맹만을 믿고 나선 일이다.

    감히 송가장이 영웅맹에 검을 빼 들리 없다 생각하고 안이한 마음으로 온 것이다.

    반면 송가장의 제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서슬 퍼런 독기를 내뿜고 있던 참이었다.

    숫자로도 압도당하는 판에 기백까지 밀리고 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모두 죽여라! 한 사람도 남기지 마라!”

    “와아아아!”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송가장에 울려 퍼졌다.

    쌍검문 문도들도 그제야 검을 빼어 들었지만 이미 승패는 기울어 있었다.

    그날, 송가장에서는 준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혈전이 벌어졌다.

    쌍검문 문주를 비롯한 총관과 사십여 문도들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혈전이 끝난 후, 송가장 장주 송한방은 영웅맹 세 사람의 시신을 정성들여 수습했다.

    최고급 관에 시신을 안치한 송한방은 영웅맹 중경 지부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하게 적은 장문의 서찰을 보냈다.

    흉수들이 검기를 발현한 것과 스스로 창룡지회라 칭한 것, 그리고 영웅맹 고수들이 도착하는 날짜는 오직 쌍검문만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적었다.

    영웅맹 중경 지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즉시 영웅맹에서 관 셋을 인수해 갔고, 살기등등한 영웅맹 사람들이 준위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송가장은 영웅맹 사람들을 내내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사건은 결국 유야무야되었다.

    애초에 검기발현의 고수가 준위에 없었던 데다가, 의혹을 풀어 줄 쌍검문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 후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의 무림맹 같았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준위가 장강 유역에서 워낙 먼 곳인 데다가, 송가장이 수습을 위해 찔러 준 엄청난 돈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물론 쌍검문이 사라짐으로써 얻게 될 송가장의 이득은 그보다 더 컸다.

    그렇게 송가장과 쌍검문의 혈전은 잊혀져 갔다.

    하지만 창룡지회에 대한 소문은 날개를 단 듯 천하에 퍼져 나갔다.

    ‘영웅맹에 맞설 자는 창룡검주뿐이다’라는 소문 역시, 장강을 따라 곳곳으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

    운현이 운가상단에서 머문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운현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새벽 청소와 마당 쓸기는 물론이고 지금은 물 긷기와 장작 패기까지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마치 일을 못 해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운현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당연히 초저녁부터 졸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보다 일찍, 아예 새벽도 되기 전에 운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상하게 바라보던 운가상단의 사람들도 이제는 운현의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어느 새벽이었다.

    사락, 사락.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었지만 운현은 빗자루질에 여념이 없었다.

    “일찍 나오셨군요.”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운현은 고개를 들었다.

    “아, 나오셨습니까?”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 총관이었다.

    운현이 공손히 예를 표하고, 강 총관도 정중하게 답례했다.

    강 총관은 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네?”

    강 총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누가 봐도 폐인이라고는 하지 않겠군요.”

    폐인.

    한 달 전 운현의 모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어도, 초점 없는 눈빛과 축 처진 어깨, 그리고 퀭한 얼굴을 가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운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또렷한 눈빛은 운현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을 걷어 냈다.

    어둡고 자신 없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과 행동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오랜 학문으로 형성된 학자적 분위기는, 비록 빗자루를 들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

    그저 체력이 없어서 그리 보이는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폐인이라…….’

    운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누가 봐도 그랬을 것이다.

    “좋습니다.”

    난데없는 강 총관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제게 도와 달라고 하셨죠?”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총관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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