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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48화 (248/530)

248화. 마지막 시련

콰앙.

제일 먼저 전열에 다다른 기마가 얼어붙어 있던 무사를 간단히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흑색 무인의 창이 옆에 있던 또 다른 무사의 머리를,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그대로 날려 버렸다.

퍽.

“크악!”

“으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장천호에게도 곧 한 마리의 전마가 짓쳐 들었다.

‘아직 아니야!’

장천호는 눈앞으로 짓쳐 드는 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직, 아직…….”

건장한 전마의 시커먼 말발굽이 바로 코앞에 올 때까지 장천호는 기다렸다.

얼어붙어 있던 조금 전과는 달랐다.

전마가 나뒹굴던 그 기적 같은 광경이 사라져 가던 용기를 붙들어 준 것이다.

두두두두.

‘지금!’

말이 진로를 바꿀 수 없다고 확신한 순간, 장천호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아!”

쉭.

귓가로 섬뜩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장천호를 놓친 창날이 새로운 희생자를 찾으리라는 것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탁.

‘큭.’

땅에 착지한 순간 장천호는 또 다른 전마가 자신을 덮쳐 드는 것을 보았다.

장천호는 즉시 몸을 날렸다.

탓.

그러나 이번엔 너무 빨랐다.

말은 방향을 바꾸지 못했지만 흑색 갑옷을 입은 무인은 장천호를 놓치지 않았다.

쉭.

날카로운 창날이 장천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그 창날 앞에서, 아직 자세조차 잡지 못한 장천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후웅.

쉭.

시퍼런 빛이 눈앞을 가로질렀다.

그 빛은 날카로운 창날은 물론, 창을 쥔 흑색 갑옷의 무인, 그리고 전마와 마갑까지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퍽.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전마는 그 주인과 함께 그대로 절명하고 장천호는 뜨거운 피를 뒤집어 썼다.

“독고 대협!”

장천호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바로 삼전무적 독고랑이었다.

장천호의 앞을 지키고 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곧 끝이오.”

우우웅.

독고랑의 옷은 온통 피로 뒤덮혀 있었다.

그러나 그의 검이 뿜어내는 시퍼런 기운은 여전했다.

가장 선두에서 그가 흑창기마대의 추형돌파진을 막아 낸 것이다.

“진을 정비하시오. 어서!”

“네! 대협!”

장천호는 벌떡 일어섰다.

기마대의 무시무시한 점은 미친 듯한 파괴력이다.

그러나 반면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즉 기마대의 돌격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곧장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기회에 진을 재정비하고 생존자를 도와야 했다.

“으으으.”

신음 소리에 장천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방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피와 신음이 가득하고 여기저기 쓰러진 자들이 무수했다.

그러나 의외로 아직 서 있는 자들도 많았다.

얼핏 보아도 그 숫자는 반 이상.

흑창기마대의 파괴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방패를 들어라!”

장천호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창을 쥐고 진을 펼쳐!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는 미친듯이 무인들을 독려했다.

전열을 가르고 지나간 흑창기마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미 한차례 충돌로 속력이 상당히 줄은 데다가, 그대로 가면 무림맹의 좌우진과 중앙진에 고스란히 자신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될 테니까.

그러니 반드시 돌아온다.

살아남은 전열의 무인들을 짓밟기엔 충분한 파괴력을 가지고 말이다.

“각자 방패와 창을 들어라! 서로 거리를 벌려!”

방패로 벽을 세울 수 없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확연히 속력이 줄어든 지금이라면, 게다가 창까지 더해진다면 승산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밖에 없었다.

“죽을 각오로 막아라! 죽어도 막아! 이것이 마지막이다!”

피와 신음이 가득한 곳에서 장천호는 미친 듯 외쳤다.

이제 곧 마지막 시련이 들이닥칠 것이다.

***

“놀랍군.”

문왕은 눈앞에 펼쳐진 결과에 대해 감탄하듯 말했다.

“흑창기마대가 돌격을 했는데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다니.”

사실 결과는 나왔다.

무림맹 전열의 삼분지 일이 붕괴되었고 사상자도 허다했다.

흑창기마대 역시 크지는 않지만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흑창기마대의 파괴력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돌격은 실패한 것이다.

곁에 서 있던 수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들 중에 군사 작전을 경험한 자가 있는 듯합니다.”

수하의 지적은 옳았다.

방패진을 이용한 화살 공격의 방어, 갈고리 달린 그물을 이용한 기동력의 봉쇄와 과감히 방패를 버리고 피하는 모습까지.

한낱 무림인이 할 수 있는 발상이 절대 아니다.

으득.

“……창룡검주.”

문왕이 이를 갈았다.

전장에선 흑창기마대가 이차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문왕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무림맹 전열은 철저히 소수 방패진을 유지한 채 창을 쥐고 방어하고 있었다.

이미 속력을 잃은 흑창기마대의 우위는 이제 긴 창과 높은 위치뿐이다.

물론 흑색 갑옷을 입은 무인들의 무위 또한 낮지 않으니 이대로라면 전열의 전멸은 확실하다.

“역시 움직이는군.”

문왕이 씹듯이 말했다.

무림맹의 좌진과 우진이 천천히 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결국 전멸당하는 건 흑창기마대가 될 것이다.

“단궁대는?”

수하는 즉시 답했다.

“무장 교환은 이미 끝났습니다.”

단궁대 개개인의 무력 또한 상당하다.

그들은 이미 근접전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돌격시켜라.”

문왕이 말했다.

“적은, 하나도 남기지 마라.”

수하는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펄럭.

즉시 작은 깃발이 오르고, 활 대신 검을 손에 쥔 단궁대가 전장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와아아아아!”

검은 무복을 입은 그들의 손에 쥔 칼날이 햇빛에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

문왕이 단궁대에 돌격을 명하기 직전.

놀라고 있던 사람은 문왕만이 아니었다.

중앙진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세가의 대표자, 제갈연 역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의외로군.”

검은 화살비와 흑창기마대에 맞선 전열의 대처는 놀라울 정도였다.

“설마 저들이 살아남을 줄은 몰랐는데.”

그것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흑도회의 기마대를 괴멸시킨 적이다.

중소 문파와 무관, 그리고 낭인 들로 급조된 전열이 이렇게까지 버티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삼전무적……. 누구지?”

제갈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독고랑의 새로운 별호는 아직 그에게까지 알려지진 않았다.

허나 전열의 놀라운 전투 뒤에 삼전무적이라는 인물이 있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화살 공격에 대비하여 방패진을 구성하고, 흑창기마대의 돌격에 그물을 던져 발을 묶는 작전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장악력이다.

오백여 무인들, 그것도 온갖 문파와 낭인으로 이루어진 저들을 이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니.

그야말로 감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곤란하군.”

제갈연은 전황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이제 남아 있는 건 흑창기마대뿐이어야 했다.

그러면 좌진과 우진, 중앙진이 포위하여 섬멸하는 것이 그의 작전이었다.

그런데 전열의 예상치 못한 분투로 인해 중대한 착오가 발생했다.

화살을 날릴 수 없는 것이다.

“궁수들이 대기하고 있소.”

혁련세가의 혁련필이 재촉하듯 말했다.

그러나 제갈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소이다. 전열이 아직 살아 있지 않소?”

생존자가 거의 없다면 화살을 쏘아 흑창기마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살아 있는데 어찌 화살을 날릴 수 있겠는가?

“쯧.”

혁련필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제갈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군.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전열을 이용해 흑창기마대를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좌진과 우진에 신호를 보내라.”

제갈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이제 전열에 자비를 베풀 때였다.

“화살 공격은 중지한다. 좌진과 우진, 전진하라.”

“전진하라!”

커다란 깃발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좌진과 우진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제갈연은 적 사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녹림 사이로 흑색 무복을 입은 새로운 적이 쏟아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하긴 저들도 바보가 아닐 테니 이대로 손을 놓지는 않으리라.

‘문왕이라 했던가?’

제갈연은 운현의 보고를 떠올렸다.

적의 배후라 할 수 있는 문왕은 매우 치밀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것이 그가 준비한 전부일까?

단궁대와 흑창기마대, 그리고 저 흑색 무복의 집단으로 과연 끝일까?

‘아니, 더 이상은 없다.’

철혈사왕이 나온다면 각 파의 수장들이 나선다.

아무리 철혈사왕이라 해도 스물에 이르는 수장들의 협공을 당해 낼 수는 없을 터이다.

삼태상이라는 정체모를 고수들이 가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제갈연은 그렇게 확신했다.

“전진!”

둥, 둥.

커다란 북 소리에 맞춰 좌진과 우진, 중앙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하에 이름이 쟁쟁한 거대 문파들의 정식제자들로 구성된, 말 그대로 무림맹 진짜 본진이 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커억!”

전열의 무인 한 명이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옆에 있던 젊은 무사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애도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자신의 무공은 기껏해야 이류에 불과하고 적의 창은 지금 코앞에 짓쳐 들고 있었으니까.

“하아!”

휙.

그는 내력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챙.

하지만 그의 검은 부질없이 튕겨 났다.

말 위에 탄 흑색 무인의 창은 그가 감당할 것이 아니었다.

쉬릭.

날카로운 창날은 그의 목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윽.’

훅.

“커헉!”

하지만 뒤이어 튀어나온 비명은 흑창기마대의 것이었다.

“도, 독고 대협!”

무너지는 흑색 갑옷의 무사 뒤로 독고랑의 모습이 보였다.

피로 뒤덮인 독고랑의 모습은 흡사 사신인 양 섬뜩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지금은 그 무엇보다 반갑고 믿음직했다.

“포기하지 마라.”

독고랑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독고랑은 말했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라. 길은 반드시 열린다.”

“네, 네! 대협!”

탓.

독고랑은 그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몸을 날렸다.

그의 푸른 검기가 번뜩이고 또 다른 흑창기마대가 쓰러졌다.

‘처, 천신이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천신이었다. 비록 적에겐 사신이겠지만 말이다.

독고랑만이 아니었다.

그가 선별한 서른 명의 정예들은 다섯씩 진을 이루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을 구해 내고 있었다.

둥, 둥.

문득 들린 북소리에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둥, 둥.

“보, 본진이 움직인다.”

무림맹 본진, 즉 좌진과 우진 그리고 중앙진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름도 쟁쟁한 거대 세가와 문파의 일류 제자들로 구성된, 말 그대로 정예 중의 최정예가 드디어 나선 것이다.

“본진이 움직인다!”

“물러나라! 뒤로 빠져!”

“빠져라! 어서!”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무림맹 본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로 빠져야 한다.

흑창기마대도 무림맹 본진을 상대하기 위해 진형을 가다듬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여기서 머뭇거리거나, 혹 공을 세우겠다고 남아 있다간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공을 탐하면 죽는다.”

무사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살아남으면, 그것이 이기는 거다.”

그건 독고랑이 객청에서 했던 말이었다.

무사는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물러섰다.

무림맹과 녹림의 진짜 전투는 바야흐로 시작이었지만, 적어도 전열 무사들에게 이제 싸움은 끝났다.

가혹한 죽음의 시련을 드디어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쥐어질 것이 과연 그에 걸맞은 것일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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