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검전 리마스터-231화 (231/530)

231화. 무력 정찰

장강수로채 연합의 선언은 폭풍처럼 강호 무림을 강타했다.

무림맹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는 것 자체가 전대미문인 데다가, 그 주체가 수로채 연합과 녹림이라는 것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미 무림맹에 의해 무너진 것으로 알고 있던 그들이 누구도 예상못한 역습을 가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세상은 들끓었다.

수로채 연합과 녹림의 ‘포고문’을 받은 무림맹 역시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건 저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하아.”

숙소로 돌아온 모용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구나. 회의가 이리도 길어지다니…….”

대제자 모용진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여동생 모용미에게 말했다.

“그래, 결론은 어찌 났냐?”

“결론이 났으면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을 거예요.”

의자에 털썩 앉으며 모용미가 말했다.

“아직도 결론이 안났다고?”

“네.”

“언니! 이거 마셔.”

모용상아가 얼른 차를 밀어 주었다.

조금 식었지만 모용미에겐 오히려 그것이 좋았다.

“고마워, 상아야.”

모용미는 차를 들어 그대로 마셨다.

모용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렇게 오래 회의를 하고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상황은 어떻더냐?”

가주 모용단천이 물었다. 모용미는 차분히 대답했다.

“문파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어요. 적극적인 대응으로 단기간에 사태를 종결 짓자는 측, 그리고 오히려 움직여선 안 된다는 쪽이에요. 무림맹이 나서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된다는 것이지요.”

수로채 연합이나 녹림을 경계하는 문파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한낱 수적과 산적 떼들이 감히 무림맹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무림맹 문파들은 ‘어떤 모양으로 이겨야 좋을까’를 논의할 뿐, 저들을 물리칠 것에 대해선 누구도 염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 안에서도 서로 의견이 달라요. 적극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문파들은 서로 자신이 선봉을 서겠다고 하고 있고, 움직이지 말자는 문파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에 대해 다투고 있어요.”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모용미가 말했다.

이 상황에 책임 소재를 따지다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흠, 뭐 그들로서야 그게 당연하긴 하겠다만…….”

모용진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마음에 걸려요.”

찻잔을 쥔 모용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전에 운 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번 일은 그저 잠깐의 혼란 정도가 아닐 테니까요.”

운현은 이미 암천무제와 일대상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런 자들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이런 무의미한 짓을 벌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미심쩍은 점도 많아요.”

“미심쩍다고?”

모용진의 물음에 모용미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첫째로 저들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요. 무림맹에서는 저들이 천에서 삼천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조차도 추정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에요.”

“천에서 삼천이라……. 너무 많은 것 아니냐? 고작 수적과 산적 들이 어찌 삼천씩이나…….”

모용진의 말에 모용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개파대전에 모였다는 수채들의 수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요.”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다. 수로채의 개파대전이라면 더욱 믿을 수가 없지 않겠느냐?”

“오라버니.”

모용미가 한숨을 쉬며 모용진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대의사청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진 않아요.”

모용진은 찔끔했다.

왜 대표자 회의가 결론조차 내지 못하고 길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그래. 그럼 두 번째로 미심쩍은 건 무엇이더냐?”

“저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뭐?”

모용진은 의아한 눈으로 반문했다.

“수천의 사람이 움직이는데 그걸 모른다고?”

“무림맹은 본질상 문파 연합체예요. 독립된 정보 조직이나 자체적인 무력 집단을 어느 문파가 반기겠어요?”

연합체라도 하부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림맹만의 정보조직이나 무력 집단을 창설하면 그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특정 문파에 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신승에게 힘을 싣는 건 모두가 꺼려 한다.

결국 무림맹의 정보 수집이나 무력행사는 전적으로 소속 문파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지부를 창설했지만, 아직 초기라서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한 상태예요. 게다가 하필이면 가장 가까운 남궁세가와 공손세가가 없으니…….”

현재 무림맹은 일시적인 정보 공백 상태에 처해 있었다.

자신들의 문파와 연락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직접 척후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자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 수적과 녹림이 쳐들어온다는 데도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일단 장강을 따라 무림맹으로 향하는 무리가 있는 건 확인되었어요.”

모용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장강 유역의 무관과 문파 들이 수로채 연합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안휘성과 호북성에서 들어왔어요.”

“안휘성과 호북성이라면 무림맹 반대쪽이지 않느냐?”

“네. 그래서 미심쩍다는 거예요. 그들도 수많은 수적 떼와 산적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했거든요.”

모용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들이 전력을 나누었다는 뜻인가?”

모용미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무림맹을 치러 오면서요?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느냐?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모용미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더욱 논의가 복잡해지고 있어요.”

“당문은?”

문득 가주 모용단천이 물었다.

당문은 공손세가와 함께 남창에 있는 공손세가 본가로 향했다.

정확한 정황 파악이든, 공손세가의 긴급한 무력 지원이든 그들이 가장 가깝다.

“연락이 되지 않아요.”

모용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며칠 전 정기 보고를 보내온 것 외에는 아무 소식도 없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바로 무림맹, 그것도 거대 문파들의 가주와 고수 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잘못되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우선 관에 연락을 취하자고 제안했어요.”

“관군의 도움을 받자고?”

모용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모용미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대표들도 똑같은 반응을 하더군요. 무림맹이 관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천하의 그 어느 문파가 무림맹을 두려워하겠느냐고 말예요.”

관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건 그저 자존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무력 집단인 문파들로서 관에 기대는 건 사실 존립의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손세가를 습격했다는 흑창기마대나, 수로채 연합과 녹림이 무림맹에 선전포고를 한 건 엄연히 황법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나중을 위해서라도 도지휘사에게 분명히 알려 둬야 해요.”

도지휘사는 지역 일대의 군정을 관할하는 지방관이다.

모용미의 말은 옳았다. 물론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고 있을 게다.”

가주 모용단천의 말에 모용미가 고개를 돌렸다.

모용단천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진 않겠지. 하지만 차후 무림맹의 대응을 묵인하겠다는 정도의 협의는 이미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을 게다.”

무림맹과 항주 지방관의 유착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군정의 책임자인 도지휘사는 물론이고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관인 포정사, 감찰과 죄형을 맡은 안찰사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모용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문득 대제자 모용진이 신음을 흘렸다.

“운 대인께선 남궁세가로 가셨는데, 괜찮으신가 모르겠구나.”

모용미의 눈앞에 운현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탈한 문사 차림의 모습과 그 느긋한 분위기, 그리고 사람좋은 편안한 미소까지.

“……괜찮으실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 모용미는 말했다.

“운 대인이시니까요.”

그는 창룡검주다.

어쩌면 세상에 가장 걱정할 필요 없는 사람이 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검기발현의 절정고수인 독고랑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모용미는 걱정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사락.

모용미는 자신도 모르게 찻잔을 꼭 쥐었다.

하지만 그녀의 잔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

수로채 연합을 이끄는 철면무심 이무심의 행보는 강호 무림을 놀라게 했다.

무림맹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물론이고, 장강 유역에서 무림맹 문파와 무관 들의 현판을 모두 내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장강은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긴 강이다. 당연히 문파와 무관들의 숫자도 무수하다.

남궁세가와 공손세가도 장강을 기반으로 일어섰을 정도니, 군소 문파와 무관들의 숫자는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였다.

철면무심의 이 선언은 놀랍게도 수로채 연합의 세를 더욱 불렸다. 그간 무림맹에 인정받지 못하던 군소 문파들이 대거 수로채 연합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무림맹에 밀려 은거했던 전대 고수들까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어느새 수로채 연합은 반무림맹의 상징이 된 것이다.

소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수로채 연합과 녹림의 군세가 수만에 이르렀다는 말은 물론이고, 그들의 군세가 이제 무림맹 지척, 진강 유역에 이르렀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반면 무림맹의 대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수로채 연합과 녹림, 그리고 남궁세가의 봉문과 공손세가의 본가가 불탄 것에 대해 떠들어 댔다.

그리고 이제는 무림맹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수근거렸다.

세상이 며칠 만에 뒤바뀐 것 같았다.

“허어! 수만이라고?”

흑도회 대표인 묵혈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헛소리! 수적과 도적 떼들이 어찌 수만에 이르겠으며, 그들이 어찌 진강에 있는 관의 검문을 통과할 수 있겠소?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오.”

장강과 대운하가 만나는 진강은 대대로 수운 교통의 요지로 여겨져 왔다.

남쪽으로는 무림맹이 위치한 항주까지, 그리고 북으로는 북경까지 이르는 대운하는 주요 군사 거점이기도 했다.

그러니 수로채 연합과 녹림, 그것도 수만의 군세가 진강에 이르렀다는 건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제갈연이 묵혈엽의 말을 받았다.

“허나 이미 항주 전체에 이 소문이 파다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난리를 피해 떠나는 이들까지 나올 정도지요. 게다가 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진강 유역에 무장 집단이 나타난 것도 사실입니다.”

묵혈엽의 눈썹이 꿈틀 경련했다.

“무장 집단이라니, 그걸 관이 그냥 좌시했단 말씀이오?”

제갈연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도지휘사사에 사람을 보내 사실관계를 문의했으나, 현재 도지휘사가 자리에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대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아무리 소문이라지만 이런 시기에 지방 군권의 총책임자인 도지휘사가 자리에 없다니?

“도지휘사 문제는 차후의 일이오.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소림의 진명이 나지막이 불호를 외며 말했다.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게 된 것 같으니까요.”

결론이 나지 않는 회의는 결과적으로 무대응으로 반응한 셈이 되었다.

그 결과 수로채 연합과 녹림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지고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부풀려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는 후회가 일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소림에서는 어찌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갈연이 물었다.

“먼저 수로채 연합과 녹림을 무림공적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그것도 당장.”

진명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무림공적 선언은 무림맹이 끝을 보겠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명분과 주도권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 결속 또한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수로채 연합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은 소림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흠, 무림공적이라…….”

묵혈엽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의 군세가 지척에 이르렀는데 선언 따위나 하고 있겠다는 것이오? 지금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요.”

진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행동이라 함은 무엇을 말씀하시오?”

덜컹.

묵혈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흑도회가 직접 확인하겠소. 도적 떼들이 진짜 진강에 이르렀는지, 그들의 군세가 과연 수만에 이르는지 알아보겠다는 뜻이오.”

소림의 진명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갈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도회에서 정찰을 맡겠다는 뜻입니까?”

즉각적인 무력 개입을 주장하던 흑도회에서 정찰이라니?

대표자들이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소. 정찰이오.”

묵혈엽은 당연한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칼과 기마로 직접 부딪혀 알아보는, 힘에 의한 무력 정찰 말이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