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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27화 (227/530)

227화. 장강수로채 연합

화려한 옷을 입은 이무심은 한탄했다.

“아, 오늘의 감격을 어찌 표현할 것인가? 지극한 도는 말로 전할 수 없다더니, 이래서 염화시중의 미소라 하셨던 것인가?”

“시중 말입니까? 지금 기녀 연화를 불러다가 시중을 들라고 할까요?”

이무심이 왜 갑자기 기녀를 찾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장삼채는 최선을 다해 말했다.

하지만 이무심은 눈살을 찌푸렸다.

“쯧, 무식한 녀석.”

장삼채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젠장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 연화는 부르랬다가 말랬다가……. 쳇!’

장삼채는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그보다 이제 슬슬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무심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와아!”

밖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문사 복장을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로 이무심의 모사, 장자방이었다.

“오, 장자방.”

이무심이 환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매서운 눈빛을 가진 장자방은 수채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겨 내고 있었다.

장자방은 이무심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총채주님.”

“오오! 그래. 이제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이무심은 감격에 겨운 듯 말했다.

“대력천신기혼단은 모두 복용하던가?”

“물론입니다.”

대력천신기혼단은 얼마 전부터 수로채 연합에 나돌기 시작한 환약이다.

비밀이라며 쉬시했지만 사실 채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내공이 크게 증진되고 감각이 날카로워져서 단번에 고수의 경지에 오르게 해 준다는 영약, 그것이 바로 대력천신기혼단이었다.

남궁세가를 패퇴시킨 황천대는 물론, 암천무제의 무위 역시 이 환약 덕분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 채주들 중 몇몇은 환골탈태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그 탓에 환약에 대한 수상쩍은 말들은 아무도 모르게 묻혀 가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무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장자방, 자네가 지금까지 나를 도와 노고가 많았네.”

옆에 있던 부채주 장삼채가 혀를 찼다.

‘돕기는 뭘 도와? 막말로 저놈이 다 한 거지.’

장자방은 채주 이무심이 갑자기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처음엔 모두가 의심했다.

하지만 이무심은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장자방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이무심은 장강수로채 연합의 새로운 총채주로 올라섰고, 장자방은 유명무실하던 연합을 재정비했다.

연합의 조직 구성과 인사는 물론이고 자금과 재정의 집행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저런 놈이 대체 왜 이무심 밑에 있는거야?’

장삼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본 장자방의 능력은 진짜였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개파대전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 그럼 나가지.”

촤락.

이무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갖 현란한 장식과 금은보석으로 수놓은 옷이 소리를 냈다.

바닥에 닿고도 한참을 끌리는 긴 옷이다.

“밟지 말고, 각별히 조심스럽게 따라오도록.”

“네.”

장삼채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촤르륵, 촤르륵.

옷 끌리는 소리와 함께 이무심은 대전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대전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오오오오!”

사람들의 함성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대전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은 될 듯한 사람들이 그곳에 도열해 있었다.

수많은 수채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손에 든 병장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후후후.”

이무심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남궁세가를 패퇴시키고 봉문하게 만든 효과는 대단했다.

장강의 수채들이 이무심 휘하로 몰려든 것은 물론이고, 무림맹에 억눌려 지내던 낭인들과 문파들까지 연합에 가담했다.

장강수로채 연합이 반무림맹의 선봉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장강의 이권과 관계있는 문파들이라는 한계도 분명했지만 말이다.

“와아아아!”

“철면무심! 철면무심!”

이무심의 호, 철면무심을 연호하는 사람들 위로 무수한 깃발들이 펄럭였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슥.

이무심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의 환성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여러 동도들이여!”

이무심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력을 실은 그의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귓가에 확실히 들리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무림맹으로부터 받은 수모와 고난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다.”

스스로 감동에 북받친 듯, 이무심은 부르르 떨었다.

“저 거만한 무림맹에 의해 우리는 짓밟혔고, 억눌렸으며, 산산이 찢겨져 왔다!”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간 무림맹으로부터 받은 핍박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복용한 환약의 효과 또한 분명히 있었다.

“왜 우리가 그들의 횡포를 잠자코 당해야 했는가? 왜 우리는 그들이 때리는 대로 개 맞듯 처맞을 수밖에 없었는가? 바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이무심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대전 좌우에는 온통 누런 빛의 무복을 입은 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우리는 뇌검을 죽이고 남궁세가를 봉문시켰다. 장강이 다시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바로 우리의 힘으로 말이다!”

“와아아!”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황천대와 암천무제가 장강수로채의 힘인가에 대한 의문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오랜 형제인 녹림 또한 잠에서 깨어나 그 힘을 떨치고 있다! 공손세가를 보라! 그들의 본가가 지금 어떠한 꼴이 되어 있는가!”

이무심은 더욱 크게 외쳤다.

“공손세가는 무너지고 불타 버렸다! 녹림의 흑창기마대가 그리한 것이다!”

“와아아!”

사람들은 칼과 도, 창을 들어 올리며 미친 듯 환호했다.

“이제 무림맹의 시대는 끝이다! 바로 우리의 손으로, 무림맹의 시대는 끝장이 날 것이다!”

이무심은 스스로의 연설에 도취한 듯, 도를 뽑았다.

스릉.

그리고 곧, 그 도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울려 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라! 뜻을 같이하는 영웅들이여!”

우우우웅.

높이 치켜든 이무심의 도에서는 시뻘건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무심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가자! 무림맹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출진 선언이었다.

장강수로채 연합이 천하의 무림맹을 향해 개전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언에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가자!”

“우오오오오!”

“가자! 가자! 무림맹으로!”

대전 앞에 가득한 이들이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수많은 깃발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강수로채 연합의 총채주, 철면무심 이무심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

남궁세가에 새로운 날이 밝았다.

바로 남궁세가의 미래를 이끌, 잠룡을 선발하는 날이었다.

잠룡선발의 후보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계파들은 각오를 다지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나 정작 잠룡선발의 심사관, 운현은 아직도 숙소에 머물러 있었다.

“흐음.”

운현 앞에는 서찰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지금 손에 들고 읽는 것 역시 그중 하나였다.

“대인.”

바깥에서 독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독고 제.”

문이 열리고 독고랑이 들어왔다.

그는 서탁에 쌓인 서찰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제 이미 다 보신 것들 아닙니까?”

“응. 그래도 혹시 놓친 것이 있나 해서…….”

운현은 서찰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이나 써 내라고 했는데도 내용이 하나같이 비슷하더군.”

심사관으로서 운현이 후보들에게 요구한 첫번째는 ‘무엇이든 써 내라’는 것이었다.

주제도, 분량도 정해 주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서탁에 쌓여 있는 서찰 더미였다.

“다들 자신이 익힌 놀라운 무공이나 강호행에서 얻은 커다란 명성에 대한 것들 뿐일세.”

놀라운 무공이나 커다란 명성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과장이었다.

아직 연륜이 짧은 젊은이들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 그리고 남궁비연 소저의 서체가 생각보다 괜찮더군. 남궁진휘라는 청년도 글을 써 냈고.”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남궁비연의 말과 달리, 남궁진휘 역시 글을 써 냈다.

그 역시 잠룡선발에 나올 것이라는 의미다.

“뭐, 어차피 본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사락.

운현은 서찰을 내려놓았다.

“본래 목적이라 하심은 무엇입니까?”

독고랑의 물음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증거 말일세. 나중에 자신들은 심사관인 날 인정한 적 없다느니, 아니면 아예 원천 무효라느니 할 것 같아서.”

모든 서찰은 심사관 운현에 대한 예로 시작한다.

어떤 것은 낯 뜨거울 정도의 찬사도 담겨져 있었다.

이것은 저들이 심사관 운현을 인정했다는 더없이 확실한 증거다.

“그리고 혹시 필체에서 저들의 성취를 알아볼 수 있진 않을까 했는데…….”

“필체에서 그런 것도 보실 수 있습니까?”

운현은 피식 웃었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하지만 모르겠더군.”

고수의 검은 때로 명필의 붓에 비유된다.

운현 역시 이야기꾼들에게서 그런 일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정작 강호 무림에 나와서는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직 내 안목이 부족한가?”

운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독고랑의 표정에 쓴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금방 사라졌다.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오늘은 남궁세가의 잠룡을 선발하는 날이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가지.”

덜컥.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준비는 끝나 있었다.

북해의 검, 미명을 들고 운현은 독고랑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

잠룡선발이 치러지는 곳은 남궁세가의 대연무장이었다.

돌로 바닥을 다진 대연무장 주위에는 이미 많은 계파 사람들과 원로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심사관인 운현은 물론이고 가주인 철검 남궁벽과 중경 지부장 남궁철과 늙은 노원로 가장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젊은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대연무장으로 들어섰다.

가장 유력하다는 남궁진휘라는 청년과 남궁준, 그리고 남궁비연을 비롯한 열다섯 명의 이 젊은이들이 바로 잠룡선발 후보들이었다.

스륵.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성거리던 소음들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저벅, 저벅.

운현은 후보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 앞에서 멈춰 섰다.

“제출하신 글은 잘 보았습니다.”

열다섯 젊은이들의 표정에 긴장이 스쳤다.

글을 내라는 운현의 과제가 일차 관문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 탈락자의 이름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잠룡선발의 정당한 참가자로 인정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다들 안도하고 지켜보던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로군.”

앞줄에 앉아 있던 중경 지부장 남궁철이 짐짓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글 몇 줄로 탈락을 시킨다면 아무도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슥.

운현은 뒤로 돌아 사람들을 향했다.

“저는 이들을 정당한 참가자로 인정했습니다. 이의가 있으십니까?”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지만 이의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운현의 처사가 납득할 만한 것인 데다가, 선발이 시작되려는 지금 심사관인 운현과 대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방계인 남궁진휘나 가주의 딸인 남궁비연의 참가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손해를 무릅쓰고 나서려는 계파나 사람은 없었다.

“이의가 없군요. 그럼 잠룡선발을 시작하겠습니다.”

운현은 가주와 원로들에게 예를 표했다.

그리고 후보로 나온 젊은이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모두 뒤로 물러서십시오.”

젊은이들은 무슨 뜻인지 의아해 했다.

사락.

남궁비연이 먼저 뒤로 몇 발 물러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그녀처럼 뒤로 물러났다.

“더요.”

운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젊은이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운현의 말을 따라 계속 뒤로 움직였다.

그들이 대연무장의 중심쯤 서게 되었을 때야 운현은 손을 내렸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운현이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끝까지 남는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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