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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12화 (212/530)

212화. 모용진의 비무

“필요없소.”

“네?”

장호달이 놀라 반문하는데 순찰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필요없소. 총채주께서는 그저 장 채주의 기개와 기량을 높이 사신 것뿐이오. 그러니 앞으로 신녹림에 의리를 다해 주시길 바라오.”

“물론이오!”

장호달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의리 하면 또 나 아니겠소? 아, 글쎄 일전에도 내가 아무것도 안 받고 친구 놈의 복수를 해 주지 않았겠소? 그 마누라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리고.”

순찰사는 장호달의 말을 끊었다.

“이 대력천신기혼단에 대해서는 각별히 함구하시오. 알겠소?”

“여부가 있겠소? 내가 입은 아주 무겁다오. 하하하.”

장호달이 장담했지만 순찰사는 믿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소문이 퍼져 갈 것을 바라고 있었다.

덜컥.

순찰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쿠, 벌써 가시려 하오? 이거 제대로 대접도 못 했는데…….”

“나는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오.”

“그래도 이렇게 귀한 영약을 전해 주셨는데…….”

순찰사는 피식 웃었다.

“그런 환단은, 우리 신녹림엔 흘러넘칠 만큼 있다오.”

그 말에 장호달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단번에 내력을 증진시켜 주는 귀한 환단이 흘러넘칠 만큼 있다니?

“가겠소.”

순찰사는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가볍게 발을 굴렀다.

탁.

그를 따라 나서려던 장호달은 순찰사가 높은 산채 울타리를 단번에 날아 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신술!”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깜짝 놀란 자신이 부끄러워서 장호달은 짐짓 헛기침을 흘렸다.

다행히 자신의 모습을 본 자들은 없었다.

장호달은 어둠 속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녹림이라.”

의심스러운 것은 많다.

총채주가 누군지조차 순찰사는 말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고수가 자신을 속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기껏해야 화살받이로 쓰는 정도인데.’

그러나 순찰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 안에 천하가 깜짝 놀랄 일이, 신녹림과 장강수로채 연합의 이름으로 벌어질 것이라 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본 후에 움직여도 되고.’

슥.

장호달은 손안에 들린 환단을 내려다보았다.

‘……그때까지 먹지 말고 기다려 볼까?’

어쩌면 그것이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방금 순찰사가 펼친 경신술이 눈앞에 선하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그렇게 날아다닐 수가 있단 말이지?’

장호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스륵.

주위를 한번 돌아본 장호달은 환단을 품 안에 숨기고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달칵.

며칠 기다려 보는 게 분명 옳은 일이겠지만, 당장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조차 장호달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

무림맹 천하무림대회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와 함께 과거의 무림맹 십팔대문파라는 호칭 대신 대회의 순위를 따라 새로운 용어들이 나타났다.

신흥오대세가 중 단목세가는 남해검문과 함께 십육대문파에 이름을 남겼고, 당문과 제갈세가는 팔대문파에 올랐다.

무당과 화산은 천하사대문파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소림이 세번째로 합류했다. 물론 소림의 비무는 형평성을 위해 무당에서 진행을 맡았다.

물론 천하사대문파니, 십육대문파니 하는 것들은 호사가들이 하는 말일 뿐이었다.

이 비무대회의 결과로 문파 순위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본선에서 패배한 청성파 역시 여전히 무림맹 십팔대문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비무는 사람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문파들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에 오른 문파는 다름 아닌 하남성의 모용세가였다.

“그러고 보니 모용세가도 제법 역사가 깊지?”

“깊다 뿐인가? 오히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게 이상할 정도지.”

비무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서로 침을 튀기며 말했다.

“하지만 공손세가도 만만치 않아. 사파계라지만 전통의 명가인 데다가 무엇보다 무림맹 십팔대문파 아닌가?”

“그래도 쉽지 않을걸? 지난 비무에서 자네 못 봤나? 모용진의 그 검은 분명 검기발현이었다고.”

“에이, 설마.”

모용세가는 기세를 타고 있었다.

제자들의 탄탄한 검술과 내력도 훌륭했지만, 대제자 모용진의 검술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내로라하는 세가의 제자들, 핵심 전력이라 평가받던 무인들이 모용진의 검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특히 흑도회의 일대제자 셋과 대표자인 묵혈엽을 연달아 꺾은 것은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모용진의 검에서 일렁이던 기운이 과연 검기였는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논란거리였다.

“한순간 아니었나? 기껏해야 초입 정도겠지.”

“기껏이라니? 초입만 해도 엄청나! 한순간이라도 대단한 거라고!”

“워, 워. 진정들 하게.”

듣고 있던 사람이 그들을 말렸다.

“공손세가의 대제자도 검기발현의 초입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있으니, 어차피 이번 비무에서 확인되지 않겠나? 안 그런가?”

공손세가의 대제자 공손강 역시 검기발현의 초입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정말로 검기발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오늘 비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여든 사람들은 기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 오라버니.”

“응? 나 말이냐?”

모용진이 고개를 돌렸다.

모용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조금 긴장한 거 같아서요.”

“긴장이라…….”

모용진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래, 솔직히 긴장된다.”

모용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상대는 공손세가니까요. 게다가…….”

“아니, 그게 아니야.”

모용진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운 대인께서 보여 주신 그 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모용미는 살짝 놀랐다. 모용진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여 독고 대협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공손세가는 전혀 두렵지 않아.”

철정산에서 독고랑이 보여 준 검기는 모용진을 크게 자극했다.

독고랑이 회복된 이후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무공에 대한 열정과 창룡검주라는 공통 요소가 두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독고랑과 운현이 모용세가를 떠난 이후 모용진은 엄청날 정도로 수련에 매진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가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수련에 힘쓰던 모용진이다.

눈앞에서 검기발현을 목도하고, 운현이 보여 준 검의 새로운 지평을 맛본 모용진이 지금의 경지에 이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가주 모용단천의 전폭적인 후원 또한 한몫을 했고.

“그러고 보니 운 대인은?”

모용진의 물음에 모용미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무림맹에 알아보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전혀 회답이 없어요. 일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 아쉽구나.”

애초에 모용미는 대회의 모든 비무를 참관해야 한다.

세가의 외당 당주로서 한 문파의 전력이라도 더 많이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도 그녀는 세가의 급한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당연히 시간이 없고, 운현에 대해 수소문할 겨를도 없었다.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슥.

모용진은 눈을 들어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이겨서 좋은 소식으로 만나면 되니까.”

그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모용미는 오라버니의 승리를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상아가 작은 손을 움켜 쥐고 말했다.

“진 오빠, 힘내!”

“그래.”

모용진은 상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비무대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

탁.

서류를 놓으며 관지부가 말했다.

“이것으로, 일단은 끝입니다.”

“후와아아.”

변기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이군요. 이놈의 서류들.”

운현은 가볍게 웃으며 붓을 정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탁.

오랜 습관에 따라 운현은 붓과 종이, 먹과 벼루까지 꼼꼼히 정돈했다.

“아, 저기, 그, 수고하셨습니다. 운 서기님.”

관지부가 주저하며 말했다.

바쁠 땐 몰랐는데, 이제 일이 끝나고 보니 죄송하기 그지없다.

자그마치 검성의 후계자에게 잡일을 시켜 버린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수고는 두 분이 더 많이 하셨지요. 저야 조금 도운 것뿐이라…….”

“아이고, 조금이라니요. 그나저나 괜찮으십니까? 본선 비무도 이제는 막바지라는데요?”

변기량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운현은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남은 비무라도 보면 되지요. 아, 오늘은 어디지요?”

“중앙 비무대에서 공손세가와 모용세가가 합니다.”

“모용세가요?”

운현은 놀랐다.

“네. 요즘 한창 뜨겁지 않습니까? 특히 모용세가의 대제자 모용진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용진의 인기가 높다니 자신도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혹시…….”

“아, 하지만 자리가 없을걸요? 귀빈석이건 일반석이건 모두 꽉 찬 데다가, 비무가 이미 시작했을 테니까요.”

아직 시작하지 않은 비무라면 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해 버린 비무에서 앉아 있는 사람을 끌어낼 수는 없다.

“어떻게, 다음 비무부터라도 자리를…….”

“아니, 괜찮습니다.”

무리라는 걸 운현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특권을 남용하는 것도 운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저와 같이 왔던 독고 대협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그분이라면 동편 비무대에 있을 겁니다. 장외 비무가 열리는 곳이지요.”

변기량이 말했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도 그는 여전히 소문에 빨랐다.

“장외 비무요?”

처음 듣는 말에 운현이 의아한 눈빛을 했다.

“네. 정식 비무는 아닙니다만, 그곳도 꽤 사람이 몰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무림인들은 성정이 거칠고 참을성이 부족하다.

무조건 억누르는 것보다 장외라는 명목으로 배출시키는 편이 낫다. 무림맹이 장외 비무를 내버려 두는 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게다가 독고랑이라면 그런 자리에 끌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본래 고독객이라 불리던 검객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운현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관지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변기량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답례했다.

“푹 쉬십시오, 운 서기님.”

“수, 수고하셨습니다.”

관지부와 변기량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운현은 두 사람에게 웃어 주고, 지객당을 나왔다.

‘하늘이 푸르군.’

며칠간 계속 지객당에 박혀 있어서일까?

유난히 하늘이 높고 푸르게 느껴졌다.

사박, 사박.

느긋한 마음으로 운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의제 독고랑이 있는 곳, 동편 비무대였다.

***

웅웅웅.

방금 전의 격돌이 남긴 여운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애검, 비월에서 들려오는 낮은 울음이 공손강의 귀를 간질였다.

하지만 공손강의 마음은 자신의 검보다 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비월검으로 펼쳐 내는 검식, 비월승천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검식 중 하나였다.

공손세가의 가주조차 감탄했으며, ‘너는 이 비월승천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리겠구나’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만큼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검식이었다.

그런 그의 비월승천이, 무당이나 소림도 아닌, 모용세가의 모용진에게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어떻게…….’

공손세가의 대제자 공손강은 눈을 들어 자신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웅.

한 자루 검을 쥐고 당당하게 선 모용진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검에서 일렁이는 희미한 기운은 바로 검기였다.

‘어떻게, 검기를.’

모용세가라면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올라온, 그저 운이 좋은 세가라 여겼다.

실제로 신흥오대세가라 불리던 문파들은 본선 초반, 잘해야 십육대문파에서 멈췄다.

객관적으로도 모용세가는 공손세가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였다.

그런데 모용진의 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검기였다.

비록 자신과 비슷한 초입의 경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공손강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으득.

공손강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가주가, 다른 문파들의 문주와 장문인 들이 지켜보고 있는 시합이다.

자신 다음에는 세가의 무림맹 대표 공손창과 외당 당주가 버티고 있지만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무당이나 화산이 아니라 모용세가를 상대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우웅.

그의 애검 비월이 희미한 기운을 머금었다.

그리고 공손강은 거친 기합을 내뱉으며 짓쳐 들었다.

“하아!”

파라락.

섬뜩한 기운과 함께 비월승천이 모용진을 향해 펼쳐졌다.

그러나 모용진의 눈동자는 차분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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