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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206화 (206/530)

206화. 북해 사절단의 귀환

변기량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냥 소문이 그렇다고요.”

관지부는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소문 퍼 나르지 말고 일이나 해라.”

“넵.”

변기량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아, 참. 관지부 님.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일 안 하냐?”

날카로운 관지부의 반응에 변기량이 움찔했다.

그는 억울한 듯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운 서기님이 돌아오신답니다.”

이번엔 관지부가 움찔했다.

“오늘 새벽에 북경 지부에서 연락이 왔다더군요. 그 머나먼 북해에서 대체 무슨 활약을 하셨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크으, 역시 검성의 후계자시라서…….”

변기량은 신이 난 듯했지만 관지부는 오히려 한숨이 나왔다.

운 서기, 운현은 공식적으로는 지객당 소속이다.

자신의 아랫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는 검성의 후계자다.

그러니 관지부로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 더 느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후우.’

관지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서류에 집중했다.

자신의 처리를 기다리는 온갖 불만과 불평 들이 산더미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주류에서 밀려난 중소 문파들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사람은 넘쳐나고 준비된 것들은 부족하다.

결국 거대 문파, 혹은 소위 정파라 하는 주류 문파들을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소외된 문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 갈 테고 말이다.

탁.

‘어디서든 차별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차별은 피할 수 없다.

특히 결정권을 쥔, 소위 높은 분들이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러다 혹시.’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관지부를 엄습했다.

그건 어쩌면 다년간 지객당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생겨난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지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힘이 없다면 노골적인 홀대를 받아도 아무 말도 못 하는 곳이 바로 무림맹이다.

그것이 곧 무림이고 말이다.

관지부는 다시 쌓인 서류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변기량이 여전히 ‘우리 운 서기님’에 대해 떠들고 있었지만 관지부는 아예 귀를 닫고 있었다.

***

북경을 지난 후, 운현 일행은 상단과 헤어지기로 했다.

상행은 가능한 많은 대도시들을 들러야 하는 반면, 운현 일행은 바로 항주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전혀 상관없습니다.”

상행을 책임지는 행수는 두손을 내저었다.

“어디까지나 대인들의 일이 최우선이니까요. 저희야 나중에라도…….”

하지만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상행이 대도시들을 그냥 지나쳐서야 어찌 이익을 보겠습니까? 마차 한 대만 내어 주시면 족하니 저희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허, 허나…….”

“북해 빙제께는 제가 따로 감사의 서신을 써 드리겠습니다. 상단에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행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운현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행수의 걱정은 그것이었다.

“아,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 운현이 말했다.

“혹시 동정호 부근에 가실 계획이 있습니까?”

행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동정호 부근은 곡창지대로 유명해서 꼭 들르는 곳이지요.”

“그래요?”

운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혹시 호암상단과도 거래가 있습니까?”

호암상단에는 운현의 의형, 일충현의 딸 일아영이 있다.

그 호암상단이 자리한 곳이 바로 동정호 인근의 도시, 장사이니 운현이 물어본 것도 당연했다.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행수는 고개를 저었다.

“허나 호암상단이라면 천하삼대상단 다음으로 손꼽히는 거상입니다. 특히 요즘은 의욕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어서…….”

호암상단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던 것이 아니던 운현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제가 소개장을 써 드리면 어떨까요?”

행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급히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대인의 소개라면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허나 이런 과분한 호의를 저희가 감히 감당할 수 있을지…….”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운현은 잘 알 수 있었다.

“걱정마십시오. 그저 이번 여정에 대한 감사의 뜻이니까요. 그리고 겸사겸사 개인적인 서찰을 좀 전해 주셨으면 해서요.”

“서찰요?”

“네. 호암상단에 제 친인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행수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찰 심부름으로 호암상단과 거래를 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소개장은 호암상단의 이서연 소저 앞으로 쓰겠습니다. 괜찮습니까?”

행수의 눈이 커졌다.

“호암상단의 영애 이서연 소저 말입니까?”

“네. 아십니까?”

운현이 묻자 행수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알다마다요. 이서연 소저라면 호암상단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사람입니다. 날카로운 안목은 따를 자가 없고, 대금 지불도 매우 정확해서 상단들 사이에서 매우 평이 좋습니다.”

조금 흥분한 듯 행수는 말을 이었다.

“보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품의 정확한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는 사람이 신뢰를 얻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 장사란 결국 사람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대로 두면 하루 종일 말할 기세라 운현이 얼른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면 지필묵을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즉시 대령하지요.”

행수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후 급히 자신의 마차로 돌아갔다.

그가 떠나자 옆에 있던 제갈기호가 감탄하듯 말했다.

“이야, 의외로 발이 넓으시군요. 호암상단에도 아는 분이 있다니요.”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하긴 뭐, 운 서기님 정도라면…….”

이해한다는 듯 제갈기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그 이서연 소저는 예쁩니까?”

제갈기호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나 제갈기호다운 물음이라 운현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즉시 자신의 무례를 깨닫고 급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흠. 미의 기준이라는 게 사람마다 각기 상이한 것이라…….”

“아니, 누가 소개해 달랍니까? 제가 만나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묻는 겁니다. 예쁩니까?”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같이 고생한 제갈기호에게 매몰차게 대할 수도 없어서 결국 정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쁘긴 합니다.”

대답이 이상한 건 이서연이 결코 어여쁘기만 한 꽃이 아니라서다.

운현이 보기에 이서연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오히려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상대에 가까왔다.

하지만 제갈기호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갈기호는 은근한 눈빛으로 운현을 쳐다보았다.

“이야, 부럽네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운현은 다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운현 일행은 상행과 작별을 했다.

떠나는 행수의 품속에는 이서연에게 보내는 소개장과 일아영에게 전할 서찰이 소중히 모셔진 채였다.

***

운현 일행은 곧장 항주의 무림맹으로 향했다.

때로는 배를 타고 운하를 지났고, 때로는 마차로 관도를 내달렸다.

천하무림대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운현도, 제갈기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운현은 순수한 호기심이 앞선 반면 제갈기호는 무림맹의 판도를 뒤흔들 중요한 대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말이다.

무심한 사람은 고삐를 쥔 독고랑뿐이었다.

그가 운현의 뜻에 충실한 데다 마차 모는 실력도 뛰어난 덕분에, 운현 일행은 예상보다 일찍 항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반긴 것은, 말 그대로 사람으로 넘쳐나는 항주의 모습이었다.

따각, 따각.

“이거 완전히 딴 도시가 되었군요. 항주 특유의 멋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제갈기호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운현도 그 말에 동의했다.

옛스러운 멋이 넘치던 항주의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름난 음식점과 다루에는 기다리는 줄까지 생겨 있었고, 못 보던 노점들도 여기저기 가득했다.

“뭐, 활기찬 건 나름대로 좋습니다만……. 오우, 저 아가씨 예쁜데요?”

그 와중에도 제갈기호는 지나는 여자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독고랑은 능숙하게 마차를 몰아 복잡한 항주 거리를 지났다.

그리고 도착한 무림맹은, 항주의 번화가보다 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으음.”

제갈기호가 신음을 흘렸다.

운현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무림맹 정문은 사람과 마차 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진짜 난리로군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 예선 중일 텐데…….”

예선에 참가하는 이들은 중소, 혹은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는 신진 문파들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 문파들, 소위 무림맹 십팔대문파들과 겨룰 자격을 가지는 것이다.

차별적이지만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무림맹은 사실상 십팔대문파의 것이고 무림은 강한 자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운현은 생소한 무인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어쩌면 이 모습이야말로 운현이 생각하던 무림맹과 가장 비슷했기 때문이다.

“들어가시지요.”

“아, 네.”

제갈기호의 말에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독고랑은 사람들을 피해 무림맹 안으로 천천히 마차를 몰았다.

그렇게 북해 사절단의 기나긴 여정은 끝이 났다.

***

무림맹에 돌아온 운현 일행은 먼저 제갈세가의 대표자, 제갈연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가 사실상 대표자 회의의 진행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달칵.

“오, 어서 오시오. 운 서기.”

서류를 살피던 제갈연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 길을 왔는데 제대로 마중도 못 했구려. 보셨겠지만 상황이 이래서 말이오.”

제갈연은 운현을 매우 정중히 대했다.

“마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보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상대는 제갈세가의 대표자이고 운현은 서기이니 당연한 말이었다.

중년의 제갈연은 빙긋 웃었다.

“가주님의 옥패를 받은 분께 어찌 감히 무례를 행할 수 있겠소? 운 서기께서야말로 신경 쓰실 필요 없소이다. 허허허.”

그제야 운현은 제갈세가의 가주가 주었던 초록색 옥패를 떠올렸다.

가주 제갈명은 별말이 없었지만 역시 범상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작 그 옥패는 오랫동안 짐 속에 처박힌 채여서 어떻게 생겼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말이다.

달칵.

대표자 제갈연과 운현, 제갈기호는 탁자에 마주 앉았다.

시비가 차를 가져오고 제갈연은 웃는 낯으로 운현에게 말했다.

“북해에선 좋은 결과가 있다 들었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사절단의 성과에 대해서는 간략한 보고를 북경 지부를 통해 전한 바 있었다.

앞으로 무림맹의 정책을 좌우할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수고는요.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제갈연은 웃었다.

그리고 제갈기호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수고했다.”

운현의 말에 제갈연은 웃으며 제갈기호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대사형.”

공식적으로는 사절단 정사인 제갈기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후에 대표자 회의에서 정식 보고를 받을 것이니 잘 준비하도록 해라.”

“네.”

“어, 저기 그런 건 제가…….”

운현의 말에 제갈연은 고개를 저었다.

“운 서기께서 수고하실 필요는 없소. 어차피 정식 보고는 사절단의 정사가 하게 되어 있으니까.”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하지만 그 준비까지 제갈기호가 한다는 건 운현을 배려한 것이 분명했다.

달칵.

찻잔을 들어 올리며 제갈연이 말했다.

“북해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지만, 맹이 대단히 분주하니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구려. 나중에 좋은 자리를 마련해 보겠소.”

제갈연의 태도는 매우 친근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흘깃 제갈기호를 보았다.

“저기…….”

제갈기호가 빙긋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운 서기님. 저도 공과 사는 가릴 줄 아니까요. 이상한 내용 같은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운현은 그제야 안도했다.

혹여 제갈기호가 운현의 개인적인 내용이라도 쓰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운 서기께서도 오랜만에 돌아와 바쁘실 터이니, 이만 가 보셔도 좋소.”

제갈연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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