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하늘을 향하는 검
쾅, 콰아앙.
길 위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비무는 엄청난 폭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힘과 내력만이 비무의 전부는 아니었다.
쉬이잉.
무제의 커다란 검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운현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하지만 운현의 목검은, 이미 처음부터 그럴 예정이었다는 듯 무제의 검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훙.
목검과 닿은 무제의 검로가 순식간에 뒤틀렸다.
힘으로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내력으로 보자면 운현의 검에 실린 기운은 무제의 것에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허나 승패는 결코 내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운현의 목검은 어느새 무제의 검로를 뒤틀고, 무제 자신을 향해 흘러들고 있었다.
마치 산책을 하다 우연히 연인을 만난 듯 자연스럽고 기쁘기까지 한 모습으로.
“음.”
나지막한 신음이 무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후욱.
이번에는 무제의 검이 운현의 검로를 뒤틀었다.
기술도, 초식도 아닌 온전히 힘으로.
‘윽.’
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억지로 비틀고 강제로 끼어드는 무제의 검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억지는 무제에게 엄청난 손해를 요구했지만 무제는 기꺼이 그것을 감수했다.
콰앙.
폭음이 터지고 흙먼지가 일었다.
바람이 불고 길 위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무제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러나 운현은 여전히 그곳에 선 그대로였다.
우웅.
운현은 천천히 목검을 세웠다.
그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대단하군.”
무제가 감탄했다.
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 그 충격이 운현을 크게 진탕시켰기 때문이다.
‘이 정도일 줄은…….’
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의형 일충현이 평생을 정순하게 쌓아 온 내력조차 무제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더 열심히 수련을 했다면, 더 일찍 심상 수련을 익혀서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의 길에 익숙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조금 전 무제의 억지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테니까.
슥.
그러나 그런 운현의 속내와는 다르게 무제는 감탄과 희열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오. 그대의 검은 내가 상대한 그 누구와도 같지 않으니, 마치 하늘에서 난데없이 내려온 검 같소.”
어쩌면 상인(上人)의 검이 그와 비슷할까?
하지만 무제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무리 그런 인상을 받았다 해도 상인과 운현을 비견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검이라.’
운현은 슬쩍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평을 들었으니 답례를 해야 했다.
“당신의 검은.”
운현의 목소리에 무제의 눈동자가 단번에 호기심으로 빛났다.
자신의 검을 운현은 과연 무엇이라 말할까?
그것은 무제로서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었다.
“전서체와 같소.”
전서체는 필법의 한 종류다.
의외의 단어에 무제가 의아한 눈빛을 했다.
“투박하나 옛스러운 멋이 담겨 있고, 굵고 강렬하나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전서체와 같이 당신의 검 또한 그러하오.”
운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전서체는 하늘이 내린 것이며 또한 하늘에 올리기 위한 것.”
모든 서체가 그러하지만 전서체는 보다 직접적으로 갑골문에서 기인한다.
하늘의 뜻을 읽고자 사용한 거북 등껍질의 문양에서 비롯된 갑골문.
그러므로 전서체는 고대로부터 돌에 새겨 하늘과 땅에 선포하는 서체로 왕왕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검은.”
무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운현이 말했다.
“하늘을 향하는 검이오.”
쿵.
무제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납득했다.
스스로도 막연하게밖에는 알지 못하던 자신의 깊은 갈망을, 지금 운현이 분명히 말해 준 것이다.
어두운 하늘 아래 선 검, 그리고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검.
그것이야말로 바로 무제 자신의 검이었다.
“……과연.”
무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조차 모르던 검을 운현이 말했다.
이것은 무제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는 것과 동시에 운현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과연.”
무제는 나지막이 되뇌었다.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운현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 운명에 대해 무제 자신의 검이 기쁨으로 환호하며 전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슥.
무제는 검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오.”
빛나는 무제의 눈빛과 달리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그의 경의는 결코 자애롭지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이 일검에.”
우웅.
무제의 검이 울었다.
“나의 모든 것을 담겠소.”
‘후우.’
운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아름다운 여인이 저런 말을 하다면.’
그래도 기분은 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와불과, 무슨 비유든 남녀 관계를 연상시키듯 말한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우우우우웅.
무제의 검은 이제 나지막한 울음을 넘어 섬뜩한 기세마저 흘려 내고 있었다.
그 앞에서 운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슥.
운현은 검을 세웠다.
사실 이 상태라면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전 무제의 억지를 운현은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아니,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운현은 운명처럼 찾아올,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결과를 각오했다.
“가겠소.”
무제가 말했다.
훅.
그리고 운현은 똑똑히 보았다.
무제의 강렬한 눈동자와, 그보다 더 압도적인 그의 검이 자신의 앞으로 짓쳐 드는 것을.
운현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스륵.
자신도 모르게 운현은 검을 내렸다.
무제의 눈빛이 한순간 흔들렸지만 운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쏴아아.
운현의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늘 중요하게 여기던 자세도 잊었다.
의형 일충현이 전해 준, 목숨보다 소중하던 내력도 놓았다.
언제나 운현 자신만의 것이던, 마음의 검조차 사라졌다.
그야말로 완전한 무방비 상태.
‘설마?’
스스로 죽으려는 것인가라고 무제가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사락.
도도한 그녀가 운현을 향해 눈을 들었다.
천하에서, 아니 모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가 운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흐름이 운현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후우우.
운현의 마음은 단번에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무제의 기세도, 그 압도적인 검도 더 이상 운현의 마음에는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아름다운 그 흐름과 알지 못할 향기뿐.
그 마음을 운현의 목검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순간 무제는 보았다.
‘헉.’
운현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모습을 감춘 것도,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운현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운현의 목검이, 그 한 자루가 무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더 이상 목검이 아니었다.
아무런 내력조차 담기지 않은 그 검은 어느새 거대한 태산이 되어 하늘과 땅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무제에게 허락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압도적인 절망뿐이었다.
으득.
그러나 무제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당신의 검은 하늘을 향하는 검이오.
그 말이 무제를 움직였다.
운현의 그 한마디가 무제를 절망 가운데서 나아가게 했다.
콰과곽.
무제의 검이 기이한 기운을 뿜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처럼 운현의 목검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몸부림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승천을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명처럼 이미 결정된 결과가 선언되려는 순간.
파아악.
‘아.’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운현의 목검이 부서져 나갔다.
무제의 검이 닿기도 전에 운현의 목검이 스스로 바스러진 것이다.
‘큭.’
무제는 급히 내력을 거두며 검로를 뒤틀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검을 거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엄청난 기세가 사방을 휩쓸었다.
“주군!”
“무제 님!”
독고랑과 비련이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섣불리 뛰어들지 못했다.
엄청난 흙먼지와, 그보다 더 짙은 폭풍 같은 기세가 그들의 시야와 감각을 가렸기 때문이다.
쏴아아.
바람이 불고 흙먼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독고랑과 비련은 보았다.
부서진 목검을 들고 있는 운현과, 그를 지나친 채 커다란 검을 들고 있는 무제의 모습을.
“큭.”
운현이 먼저 신음을 흘렸다.
그의 손 안에서 목검이 바스러져 흘러내리고 운현은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였다.
“주군!”
독고랑은 즉시 운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윽.”
무제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제 님!”
비련이 움직이려 했지만 무제는 한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숨을 골랐다.
‘후우우우.’
내력을 갈무리하는 데 성공한 무제는 몸을 일으키고는 먼저 검을 거뒀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이 검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릉.
커다란 검이 칼집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무제는 몸을 돌렸다.
운현이 거기 있었다.
독고랑에게 반쯤 몸을 기댄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목검의 잔해뿐이었다.
“……안타깝군.”
나지막이 무제가 말했다.
마지막 순간 운현의 목검이 바스러지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검은 운현의 목검을 꺾고 승천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압도적인 절망 앞에 땅으로 스러져 버리고 말았을까?
운현은 천천히 눈을 들어 무제를 보았다.
“안타깝소.”
나지막이 운현이 말했다.
마지막 순간 운현의 목검이 부서져 버렸다.
예전에 똑같이 그러했듯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만일 무제가 힘을 거두지 않았다면 운현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운현이 패배를 인정하려 했을 때였다.
슥.
무제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운현을 향해 예를 표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경외를 담아서.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니었던 듯하오.”
무제가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 다시 만나게 될 날을, 나는 기쁘게 기다리겠소.”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운현은 모르지 않았다.
운현도 독고랑의 부축을 벗어나 몸을 바로 했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운현은 두 손을 모아 무제에게 답례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대의 검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들을 수 있겠소?”
무제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운현 앞에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검은 상인(上人)께로부터 온 것이오.”
비련이 순간 움찔했지만 무제는 상관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이라도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건 무제의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방해가 있을 것 같군.”
무제가 고개를 돌렸다.
운현도 무제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림의 승려들과 산문을 지키던 무승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소림 바로 지척에서 그토록 난리를 쳤으니 말이다.
“보중하시오.”
문득 들려온 무제의 목소리에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강렬한 눈동자로 무제가 운현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그대는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의미니까.”
그 말에 운현은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렇게 말해도 별로 기쁘지 않은데.’
아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말은 절세가인에게 들어야 한다.
저런 무서운 눈빛이라면 과연 기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휙.
무제는 몸을 돌렸다.
비련이 운현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것과, 독고랑이 무제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는 것도 무시했다.
“가자, 비련.”
“네.”
비련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탁.
무제가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비련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모습은 순식간에 운현과 독고랑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거 참.”
운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독고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운현의 몸은 무너지듯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슥.
독고랑이 즉시 운현을 받아 안았다.
품에 안긴 운현은 독고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큰일이었소. 그렇지 않소?”
“네.”
독고랑이 운현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주군.”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호칭은 그만두라고 내가…….”
그러나 운현은 채 말을 맺지 못하고 스스르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리며 정신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운현의 얼굴은 사뭇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꾹.
행여 놓칠세라 독고랑은 운현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하지만 독고랑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소리치는 것밖에는.
이래서야 무슨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며, 어떻게 운현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독고랑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소림의 무승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