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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106화 (106/530)

106화. 천하제일 서기님

운현이 돌아가고 나서 관지부는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관지부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다행히 목은 무사히 잘 붙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명이 적어도 십 년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젠장. 고수를 상대로 이 무슨…….’

상대가 손만, 아니 손가락만 까딱해도 자신들의 목은 뎅겅 날아간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감히 훈계조로 말을 하다니, 관지부는 자신이 방금 생사의 경계를 넘어들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음, 그래도 곤란한데요.”

옆에서 변기량이 태평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평서기로 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총서기라든가 아니면 서기장 같은 직위라도 만들어 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말에 그만 관지부의 속이 확 뒤집어졌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자식아?”

콰당.

득달같이 자리에서 일어난 관지부는 필생의 공력을 다해 변기량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꽝.

“어이쿠!”

변기량은 즉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왜 이러십니까요!”

“죽으려면 혼자 죽을 일이지! 뭐가 억울해서 나까지 걸고 넘어가려는 것이냐! 이 녀석아!”

“죽긴 누가 죽습니까요?”

“그래도 이 녀석이!”

핏대가 오른 관지부가 다시 손을 치켜들자 변기량이 얼른 옆으로 도망갔다.

“아니, 척 보면 모릅니까? 저런 거물은 우리 같은 잔챙이들에게는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법이라구요. 저분이 처음에 정중하게 나오실 때부터 알아봤어야죠.”

“인마! 잔챙이니까 수틀리면 그냥 목을 따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지! 자기가 서기하고 싶다는데 네가 뭐라고 나서고 난리야? 엉?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냐?”

진실과 진심이 담긴 관지부의 외침에도 변기량은 굴하지 않았다.

“저분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부귀와 공명을 떠안겨도 마다하시는 분인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대협이라면 저 정도 품격은 갖춰야죠. 맨날 서로 물고 뜯고 잡어먹지 못해서 난리들이니, 쯧.”

혀까지 차는 변기량에게 관지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허. 뭐? 저분이 그럴 리가 없어? 저분을 언제 봤다고 이 자식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 관지부를 보고 변기량이 움찔했다.

관지부는 한숨을 쉬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조직이란 게 그렇게 만만한 건 줄 알아? 사람은 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법이야.”

한탄처럼 관지부는 말을 이었다.

“검성의 후계자면 당연히 대표자 급은 돼야지. 제 마음대로 서기를 하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안 불편하겠냐? 당장 우리가 고생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잖아!”

하지만 변기량은 관지부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도 저런 소탈하고 초연한 사람이 한 분쯤 있어야 세상이 삭막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어쨌든 전 저분이 마음에 듭니다.”

“에라이, 이 멍청한 놈 같으니!”

관지부가 다시 주먹을 쳐들었다.

하지만 이미 기세는 없어서 변기량은 움찔하지조차 않았다.

“소탈 같은 소리하네! 아직도 모르겠냐? 비교 기준이 검성이나 신승인데 소탈하긴 뭐가 소탈해! 내 살다 살다 저런 교만한 분은 난생처음 본다!”

‘교만한 분’이란 어법은 조금 이상한 것이었지만 관지부의 철저한 직업 정신은 그 어느 때라도 무례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관지부가 말해도 변기량은 요지부동이다.

입술을 비죽 내민 변기량을 보며 관지부는 한탄했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런 미친놈을 거둬서는…….”

관지부가 답답해하는 것은 그저 변기량이 말을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었다.

“이제 보고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이냐?”

대표자들 앞에 이 일을 보고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온갖 질문이며 추궁이 쏟아질 텐데…….’

관지부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처럼 대표자들 역시 그럴 것이다. 진의를 의심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관지부가 해 줄 말은 없다. 관지부는 운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젠장.’

관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제일 정확한 대답은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는 관지부로서는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는 없었다.

***

“뭐라고?”

제갈연의 어이없는 목소리에 관지부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대답했다.

“저, 그것이 운 대인께서는 그저 서기만으로 족하시다고…….”

방금 자신이 무얼 잘못 들었나 하고 제갈연은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다른 대표자들을 돌아보았지만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대표자들은 물론이고 늘 도도하던 당문설화 당설련, 무엇에든 심드렁하던 매화검 영호준까지,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욱하는 성격의 묵혈엽이 대번에 일갈을 내질렀다.

“감히!”

쿵.

흑도회 대표 묵혈엽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우리를 어찌 보았기에 이따위 장난을 한단 말이오!”

몇몇 대표들 역시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묵혈엽의 말처럼 이것은 무림맹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이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당장 그를 찾아가서…….”

“찾아가서, 그래서 어쩌실 셈이신가요?”

당문의 눈꽃, 당설련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으로 그를 꺾고 무림맹에서 내쫓으실 건가요? 아니면 강제로 그를 끌고 와서 직위를 안겨 줄 건가요?”

당설련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론 둘 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군요.”

당문설화 당설련의 입술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묵혈엽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나 생각해 보세요.”

싸늘한 그 말에 묵혈엽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당설련의 말은 옳다.

이곳 무림맹에서 감정을 앞세우는 건 자멸이나 마찬가지다.

묵혈엽은 입을 다문 채 이해득실을 따져 보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있습니까?”

말을 꺼낸 것은 화산의 매화검 영호준이었다.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내줄 준비가 되어 있고, 그는 서기의 자리를 원합니다. 그럼 서기 자리를 주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호준 대협.”

무당파의 청진 도사가 입을 열었다.

“그를 어찌 서기로 놔둘 수 있겠습니까?”

매화검 영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반문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서기 모집에 수석으로 합격한 사람에게 서기직을 맡기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건 그런 문제가…….”

“그런 문제입니다.”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매화검 영호준이 말했다.

“그가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결론은 이것 아니었습니까?”

대표자들은 침묵했다.

각자 생각은 번잡했지만 한 가지만은 모두들 동의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군.’

사람이 부귀와 공명을 거절하는 것에는 대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정말 고결한 성품을 지닌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애초에 고결한 성품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특히 이곳 무림맹에서는 더더욱.

“크흠, 어쨌든.”

제갈세가의 제갈연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를 무림맹에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하되, 시간을 두고 지켜보도록 하지요. 결국 언젠가는…….”

제갈연은 잠시 말을 끊었다.

“결론이 나게 될 테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그건 많은 것을 내포한 말이었다.

검성의 후계자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검성과 신승의 후광일 뿐이다.

이곳 무림맹에서 조금이라도 틈을 내보인다면 그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설령 그가 정말 거목이라 해도 상관없다.

무림맹은 검성의 후계자가 가지는 명성과 영향력으로 더욱 살찌게 될 테니까.

어느 쪽이건 그들로서는 전혀 손해될 바가 없는 것이다.

“관지부.”

“네, 넷.”

제갈연의 부름에 관지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네는 입단속을 엄히 하고 주변에도 각별히 주의하도록 이르게. 알았나?”

“뼈에 새겨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지부의 공손한 대답을 끝으로 회의는 끝났다.

대표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품은 채 대의사청을 빠져나갔다.

싱글거리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 매화검 영호준도, 유독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당설련도 대의사청을 떠났다.

그렇게 무림맹 대표자들이 빠져나간 빈 회의실에서, 관지부는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드디어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커다란 짐을 벗은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아니야. 방심은 금물이지.’

입단속을 각별히 하라던 제갈연의 말이 관지부의 귓가에 생생했다.

그리고 각별히 입단속을 해야 할 사람 첫 번째는 바로 변기량이었다.

‘이놈이 또 뭔 짓을 저지르기 전에.’

관지부는 급히 몸을 돌렸다.

변기량이 무슨 사고를 치기 전에 어서 입단속을 해야 했다.

탁탁탁.

‘……하지만 생각할수록 대단하네.’

무림맹 복도를 지나며 관지부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저분들의 그런 표정은 정말이지 드문 건데.’

조금 전 본 광경을 관지부는 잊을 수가 없었다.

대표자들의 그 멍한 표정을, 난데없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단 몇 마디의 말로, 난다 긴다 하는 각 문파의 대표자들을 한꺼번에 말이다.

“저 무서운 분들을 말 한마디로 쩔쩔매게 만들다니…….”

과연 검성의 후계자다.

관지부는 내심 혀를 휘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하제일 서기님의 탄생이군.”

무림맹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자들조차 그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이제 무림맹의 그 누가 감히 운현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천하제일 서기의 탄생을 실감하며, 관지부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

무림맹 신입 서기들을 위한 합숙 훈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운현은 무림맹 식당을 나오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왜 그러시오, 운 형?”

앞서 가던 안수재와 조두식이 운현을 돌아보았다.

“아니, 저기…….”

무언가 말하려던 운현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크흠. 어, 아무래도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아서……. 크흠, 으흠.”

“저런. 밥 잘 먹고 나서 목에 뭐가 걸리면 어떡하오?”

조두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운현은 몇 번 헛기침을 하다가 말했다.

“잠시 물 좀 마시고 올 테니 먼저들 가 계시오.”

“알았소. 늦지 않게 빨리 오시오. 괜히 벌점 먹지 말고.”

안수재의 말에 조두식과 편어두도 고개를 끄덕이곤 곧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운현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주름 가득한 노인이 운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초라한 행색에 주름 가득한 그 모습은 영락없이 무림맹에서 일하는 늙은 종으로만 보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운현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안녕 못 하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신승 불영 대사가 말했다.

“너도 늙어 봐라. 매일 온몸이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는데 어떻게 안녕하겠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꾀죄죄한 승복을 입은 신승은 운현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저…… 대사님?”

“쯧.”

신승은 혀를 찼다.

“결국 서기가 되긴 되었구나. 그래, 서기가 되니 행복하더냐?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고?”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만…….”

미소를 지으며 운현은 말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분수에 맞는 자리가 참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무림맹 서기라는 새로운 직업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동료들도 좋았다.

생각해 보면 본래 운현 자신이 바라던 바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파벌이니, 정략이니 하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자신의 일에 성실하며 마음 맞는 이들과 웃음을 나누는 것 말이다.

이제 훈련이 끝나고 정식으로 서기의 직분을 갖게 되면 일충현 형님 댁의 형수님께나 일아영에게도 소식을 전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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