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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53화 (53/530)

053화.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무렵, 운현은 개봉과 항주 사이의 관도를 헤매고 있었다.

“후,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운현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계획은 이게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꽤 괜찮은 여행 계획을 세웠었는데, 초반부터 벌써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모용세가에서 나온 후, 운현은 개봉에서 하루를 묵으며 나름대로 여행 계획을 짰다.

“자고로 음식은 광주요, 풍광은 서호라 했으니……, 조금 돌더라도 서호는 가 봐야 되겠지?”

운현은 사뭇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일단 항주와 소주를 들러보고 장강을 거슬러 동정호까지 올라온 후, 그곳에서 장가계를 거쳐 광주로 내려가는 것이 운현의 여행 계획이었다.

사락, 사락.

모용세가의 실망도 잊을 겸, 운현은 객잔에 앉아 열심히 글까지 적어 가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 보지 않으면 백 세가 되어서도 늙었다고 할 수 없다 하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가 봐야지, 암.”

자신의 계획을 적으며 운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실은 장강을 더 거슬러 장강삼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면 너무 길이 멀어질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게다가 마침 일충현 형님의 본가가 동정호 부근에 있다 하니 잘된 일이기도 했다.

“느긋하게 가야지.”

어차피 광주까지는 먼 길이다.

은자가 넉넉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절경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으랴?

운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모용세가에서의 일을 겪은 후, 자신이 서찰을 보낸 사람들을 찾아간다는 생각마저 접고 나니 발걸음이 더욱 가벼웠다.

“자아, 이걸 다 보러 간다 이거지.”

부스럭.

종이에 가득 쓰인 지명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훑어보며 운현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랬는데…….”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쪽이 항주 쪽이 맞긴 한가…….”

어제 객잔에서 만난 노인의 말을 들은 것이 잘못이었다.

외곽으로 나가는 마차를 타면 멋진 절경도 볼 수 있고, 항주까지 직통으로 가는 마차도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마차를 갈아타는 것에 지겨워져 있던 참이었다.

운현은 즉흥적으로 예정을 변경했다.

여행 중이라 들뜬 마음도 아마 한몫했으리라.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운현이 도착한 곳은 아주 외진 작은 마을이었다.

경치는 좋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객잔조차 없는, 궁벽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남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면 자신이 실수한 것일 뿐, 노인은 선의로 가르쳐 주었는지 모른다.

하나,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마을에서부터 더욱 일이 꼬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돌아갔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자신이 왔던 마을로 돌아가는 마차는 며칠 후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진 운현은 기다리는 대신 바로 그날 떠나는, 다른 마을로 향하는 마차를 잡아탔다.

그 결과 운현은 더더욱 외지고 마차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는 이곳에 이르게 된 것이다.

“후우우.”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지나친 거 아닐까?”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운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촌장쯤 되는 노인이 조금만 가면 마차가 자주 지나는 관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계속 길을 따라왔으니 지나쳤을 리는 없다. 실제로 관도도 만났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휑한 관도뿐, 마차는 그림자조차 없다.

“이 관도가 맞겠지?”

운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때껏 자신이 길을 못 찾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길이 꼬인다.

앞을 쳐다 보니 인적 하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마치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고즈넉하니 좋긴 한데…….”

길을 잃은 상황만 아니라면 말이다.

운현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발을 옮기는 것이 나을 테니까.

터벅, 터벅.

주변 경관은 밋밋하고 동행이 없는 걸음은 더욱 외롭다.

운현은 낯선 세상에 홀로 된 느낌을 안고 허탈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응?”

한참을 걷던 운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기분이 이상한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색하고 거북한 느낌이 운현을 괴롭혔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대단히 기분 나쁜 시선을 받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운현은 걸음을 멈추고 이 어색한 기분의 정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그저 ‘저 길을 가기 싫다’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이상할 것 없는, 특별히 바뀐 것도 없는 관도인데 왜 갑자기 가기 싫어졌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음. 그래도 안 갈 수도 없고.’

그저 기분이 나쁘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운현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관도를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갑자기 길옆 수풀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운현이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요!”

파삭.

“에이, 젠장!”

거친 목소리와 함께 대여섯 사람이 수풀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보기에도 험상궂은 사내들이 저마다 칼이며 몽둥이를 들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뭐야? 하루 종일 기다려서 겨우 이런 놈이야?”

사내들은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러게 진작 딴 데 가자니까……. 아, 뭐가 지나가야 영업이든 뭐든 할 거 아니오?”

사내들은 투덜거리며 운현에게 다가왔다.

운현은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어이, 보소. 서생 나으리.”

그들 중에 한 사내가 운현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은 말 할 때 그 보따리 내놓고 사라지시오.”

“에이, 주머니를 뒤져 봐야 한다니까요, 형님.”

다른 도적이 앞사람의 말에 토를 단다.

“저런 서생들이 꼭 가랑이 사이에 몰래 전낭을 숨기고 다녀요. 냄새나게시리…….”

처음 말을 걸었던 도적이 다시 운현에게 말했다.

“들었소? 보따리 내려놓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 줘야겠소.”

운현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배, 백주 대낮에 이 무슨 흉폭한 짓이오. 그대들은 황법이 두렵지도…….”

“에이 씨!”

운현의 소심한 저항은 칼을 든 또 다른 도적의 커다란 목소리에 묵살되어 버렸다.

“안 두려워. 알았어? 안 무섭다고! 이제 됐지?”

도적은 커다란 칼을 든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서 보따리 내려놔. 우리도 여러 말 하기 귀찮으니까.”

운현은 보따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은자를 빼앗기는 것도 싫었지만 안에는 일충현 형님의 유품이 들어 있다.

이걸 함부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시, 싫소.”

“뭐?”

운현의 대답에 도적들은 어이가 없었다.

“참 내, 별게 다 반항이네.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뭐, 대단한 서생 나으리한테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 근데…….”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칼도 우습게 보이시나? 응?”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닥.

도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현은 즉시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엇, 튄다!”

“야! 잡아!”

“에이 씨, 그러게 뒤를 막아야 한다니까!”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운현은 오던 길을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겨를 따윈 없었다.

여기서 전낭을 빼앗기면 여행이고 뭐고 몽땅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야! 거기 안 서?”

“야, 이 개자식들아, 빨리 뛰어! 잡아야 할 거 아냐!”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고 도적들이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운현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왔던 길을 전력으로 질주할 뿐이다.

다다다다.

인적 없는 관도에 갑자기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쫓는 도적들도, 쫓기는 운현도 각자 전력을 다해 관도를 내달리고 있다.

“야, 이 자식아! 서라니까!”

‘어림없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운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절대 설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누가 서겠는가?

운현은 오로지 달아나는 것만 생각하며 전력으로 달음질했다.

바로 그때였다.

쉭.

귓가에 희미하게 들리는 섬뜩한 소리에 운현은 있는 힘껏 몸을 틀었다.

무슨 일인지조차 몰랐지만 그 판단은 옳았다.

휘리릭.

커다란 몽둥이가 운현의 머리 부근을 스쳐 지나갔다.

만일 급히 몸을 틀지 않았다면 그대로 머리를 맞았을 터였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지만 그 탓에 운현은 몸의 균형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어이쿠.”

운현은 달리던 기세 그대로 땅에 뒹굴었다.

와당탕.

쓰러진 운현이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는, 건장한 도적이 운현을 향해 덮쳐들고 있었다.

‘윽!’

그 와중에도 운현은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콰당.

운현에게 덮쳐들던 도적은 꼴사납게 길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뒤따르던 도적들은 한 명이 아니다.

“이놈!”

운현은 다시 한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도적들에게 둘러싸인 후였다.

“이, 이 자식. 헉, 헉…… 자, 잘도 뛰게 했겠다. 헉, 헉…….”

퇴로를 막은 도적이 숨찬 목소리로 운현에게 엄포를 놓았다.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젠 어쩔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운현이 외쳤다.

도적들이 시선이 집중되고, 유일하게 호흡이 가쁘지 않은 운현이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내 가진 은자를 숨김없이 모두 내놓을 테니 짐만은 그냥 놔둘 수 없겠소?”

운현의 말에 도적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도적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짐이 뭔데?”

운현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돌아가신 형님의 유품이오. 당신들에겐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니 그냥 보내 주시오. 내 은자는 모두 드리겠소.”

“뭐? 유품?”

도적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유품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듯했다.

그때 다른 도적이 입을 열었다.

“형님, 저놈이 대가리 굴리는 겁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유품이란 말은 핑계죠. 오히려 저 짐이야말로 귀한 물건임이 분명합니다. 저걸 지키려고 은자를 다 내어주겠다고 하는 걸 보십시오.”

“그렇지 않소!”

운현이 항변했지만 도적들은 눈빛은 이미 의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그 도적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 것이 될 텐데 왜 저놈 말에 따른단 말입니까? 그냥 다 가지면 되는데요.”

도적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어차피 손에 든 떡이니 그들이 운현의 제의에 응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래. 일단 조져 놓고 시작하자.”

부우웅.

경고 같은 건 없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덩치 큰 도적이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렀다.

“헉.”

휙.

그러나 몽둥이는 애매히 바람만 가르고 말았다. 운현이 급히 몸을 옆으로 뺐기 때문이다.

“에이, 쌍.”

운현이 피하는 바람에 휘청한 도적은 자존심이 상한 듯 이를 갈았다.

그는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운현을 향해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부웅.

“어쭈, 또?”

이번에도 몽둥이는 허공만 갈랐다.

운현이 살짝 몸을 비틀어 몽둥이를 피해 낸 것이다.

“야, 이 자식아. 그거 하나 못 맞춰?”

“쯧쯧, 허우대가 아깝다. 자식아!”

“아, 그러게 저놈은 빼고 다니자니까요, 형님.”

둘러섰던 도적들이 킬킬거리자 몽둥이를 든 도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단단히 작정을 한 듯 그는 두 손으로 몽둥이를 쥐고 신중하게 운현을 향해 다가왔다.

“에잇!”

부우웅.

힘을 잔뜩 실은 몽둥이가 허공을 갈랐다.

맞으면 뼈가 부러질 정도였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덕분에 운현은 더 쉽게 몽둥이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다.

슥.

당연히 운현은 공격을 피했고 도적은 그만 제 풀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콰당.

“어이쿠!”

도적이 나뒹굴자 둘러섰던 이들의 얼굴이 심상찮게 변했다.

스륵.

칼 든 도적이 눈짓하자 나머지 도적들도 무기를 단단하게 틀어쥐고는 운현 주위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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