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악화(惡化)
“그, 그런…….”
운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박 환관이 일충현 교두의 투옥을 전해 주었을 때 운현은 ‘결국 염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투옥된 것이 일충현 교두만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그때는 일충현 교두만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운현은 박 환관을 쳐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어떤 일이기에 고위 관리며 무장들까지 투옥되었다고 하는 건가?”
“저, 그것이…….”
박 환관은 조금 주저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꺼냈다.
“송구하옵게도 역모라고…….”
운현의 얼굴에서 단번에 핏기가 가셨다.
“역모!”
갑자기 운현을 강타한 충격이 머릿속을 온통 엉클어 놓았다.
역모란 곧 반역을 모의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황상의 지엄한 통치에 거역하는, 그 어느 때고 절대 용서받지 못할 중죄가 아닌가?
사색이 된 운현은 휘청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탁자에 손을 짚었다.
턱.
‘역모, 역모라니…….’
분명히 두 귀로 들었건만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역모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혐의를 받고 투옥된 사람치고 제대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없다.
일충현 교두가 역모라는 혐의를 뒤집어썼다면 이미 모든 일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갑자기 왜 ‘역모’라는 흉측한 단어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누명이옵지요. 허나 이젠 어쩔 도리가…….”
탁자에 손을 짚고 있던 운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이럴 게 아니네!”
“니예?”
운현은 박 환관을 쳐다보며 빠르게 말했다.
“일충현 교두께서 투옥되신 곳이 어딘가? 내 즉시…….”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듯한 분위기에 박 환관은 황급히 운현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니 되옵니다, 운 학사님.”
“아니 되다니! 뭐가 안 된다는 건가!”
운현은 화를 냈다.
일충현 교두의 투옥이 박 환관 탓은 아니련만, 운현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커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네! 일충현 교두님이 역모라니! 나라도 어서 가서…….”
“……가서 어쩌시려고요?”
싸늘한 박 환관의 목소리가 운현의 귓가를 때렸다.
착 가라앉은 박 환관의 표정에 운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니? 일충현 교두님의 결백을 밝혀야 하지 않겠나?”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박 환관의 긴 한숨뿐이었다.
“운 학사님.”
박 환관은 운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순간 운현은 할 말을 잊었다. 박 환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역모는 단지 핑계지요. 정말 역모였다면 벌써 예전에 난리가 났을 테니까요. 이건 단지 숙청일 뿐이옵니다.”
“숙청?”
운현의 말에 박 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예. 숙청이지요. 자기 사람이 아닌 이들을 쳐 내는 것 말입니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운현의 모습에 박 환관은 다시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럴 게 아니라 잠시 앉으시지요.”
박 환관의 설명은 그로부터 한참을 계속되었다.
어느 고관이 무슨 계파이고, 높은 자리에 있는 누가 누구와 친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고관들의 자리 이동이 어땠으며, 그 영향은 어떤 것인지 하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운현으로선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간단했다.
박 환관의 말대로 지금 한 계파가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을 쳐 내는 중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고 잔혹하게.
“허어.”
박 환관이 설명을 마치자 운현은 길게 탄식했다.
‘내 비록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모르던 것은 아니다.
파벌은 어디에나 있고 다툼이야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그저 순수한 충성심 하나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은 예전에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막상 그 실상을 눈앞에 대하고 보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건 일충현 교두가 직접 연관된 문제다.
“……무슨 방법이 없겠나?”
운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어보았지만 박 환관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평소라면 어떻게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차지한 쪽이 상대편을 뿌리 뽑으려 하는 숙청이다.
그것에는 자비도 없고 적당히라는 것도 없다.
게다가 지방에 있던 일부 관리들과 장수들을 소환해 한꺼번에 숙청하기 위해, 짐짓 신임 금의위의 문제인 양 연막 작전을 펼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렇다면 누가 살 것이고 누가 죽을 것인지까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니, 그 와중에 일개 학사 하나와 환관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억울한 누명이라 해도 이미 방법은 없는 것이다.
“허어.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운현의 입에서 허탈한 탄식이 새어 나오고 박 환관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허어.”
고풍스러운 문연각은 쥐 죽은 듯 조용한데 오직 운현의 탄식만이 그치질 않았다.
***
일충현 교두를 비롯한 관리들의 대대적인 투옥이 있은 후 자금성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다.
이곳저곳에서 수군대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자금성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일충현 교두가 투옥되었다는 것이 운현에게는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동요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된 것도 단지 사흘뿐이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더 이상의 충격적인 소식들이 들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의 칼부림은 없을 것이라는 집권 계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기도 했고, 투옥된 사람들의 운명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기도 했다.
빈자리는 빠르게 메워졌고 자금성은 벌써 희생자들을 잊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현은 그럴 수 없었다.
철컹.
어둠 속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운현은 문 앞에 서 있는 금의위에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시했지만, 금의위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방금 전에 그가 문을 여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석상으로 착각이라도 했을 듯한 모습이었다.
끼익.
운현이 살짝 힘을 주자 두꺼운 문이 낮은 소리를 내며 밀려 나갔다.
‘음.’
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환하게 불을 밝힌 바깥쪽에 비해 안쪽은 유난히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엄습해 왔다.
하지만 운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후우웁.’
한차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운현은 어둠과 악취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끼이익, 쿵.
운현이 들어서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동시에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
쾨쾨하고 비릿한 냄새와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 그리고 희미한 신음 소리가 어두운 불빛 속에 떠돌고 있었다.
“으음.”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양쪽 통로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굵은 나무 격자들, 그 너머에 형편없이 망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바로 이번 사건으로 투옥된 사람들이다.
운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옥 안을 살폈다.
‘우욱, 이건…….’
사람들을 살피던 운현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옥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무자비한 고문의 흔적인 듯 곳곳이 터지고 상한 상처투성이였다.
이곳에 떠돌던 비릿한 냄새의 정체는 바로 피 냄새였던 것이다.
운현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손으로 코를 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록 이들 모두가 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것은 무고하고 의미 없는 피 흘림이었다.
운현은 마치 순례자처럼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일충현 교두를 찾았다.
“아!”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통로의 끝에서 운현은 일충현 교두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는 마치 묵상이라도 하는 듯 정좌한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그의 몸 이곳저곳에도 예외 없이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스락.
가까이 다가갔지만 일충현 교두는 반응이 없었다.
운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으련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충현 교두님.”
운현이 나지막하게 부르자 그제야 일충현 교두가 눈을 떴다.
“……이곳엔 어쩐 일이오?”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게다가 어쩐지 책망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운현은 말을 흐렸다.
“일충현 교두님…….”
“어쩐 일이냐고 묻지 않았소?”
일충현 교두의 눈빛은 매서웠다.
하지만 그 눈빛이 오히려 더 서글퍼 보여서 운현은 가슴 아팠다.
“이곳은 학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니 그만 돌아가시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일충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운현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교두님께서 억울하게 투옥되셨는데 제가 어찌 와 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박 환관이 아는 사람을 통해 힘을 써 줘서…….”
“허어.”
나지막한 탄식이 일충현 교두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박 환관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더니 말릴 생각은 안 하고…….”
“일충현 교두님.”
일충현 교두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운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찌 그리도 생각이 없소?”
“네?”
운현이 반문하자 일충현 교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왜 이곳의 출입이 허락되었겠소? 그들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들일 것 같소?”
일충현 교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이오?”
운현은 그제야 일충현 교두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역모 혐의를 쓴 죄인을 만난다는 것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방치한 까닭도 있었다.
남아 있는 동조 세력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알았으면 이제 가시오. 그들의 눈에 벗어나면 자칫 운 학사까지 곤욕을 치르게…….”
“괜찮습니다.”
일충현 교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운현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운현의 목소리는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
“벗어나면 좀 어떻습니까? 제겐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올라갈 곳도 없습니다.”
“허어.”
일충현 교두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운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운현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하지만 교두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목숨까지 잃게 되셨으니…….”
어느새 운현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또르륵.
운현의 빰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굴러 내렸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운현은 채 말을 맺지 못했다.
고개 숙인 운현의 뺨에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보고 있던 일충현 교두도 어느덧 가슴이 뭉클해졌다.
‘허어. 이런, 이런…….’
죽음도 두려워 않는 철석간담(鐵石肝膽)의 무관이 일충현 교두다.
그러나 지금 운현의 뺨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뜨거운 정(情)이라, 일충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것을 감추기라도 하듯 일충현 교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툭, 투둑.
떨어지는 눈물만 운현의 앞섶을 적실 뿐,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일충현 교두였다.
“한때는, 강호를 종횡하는 대협의 꿈을 꾸기도 했다네.”
자신을 위해 울어 주는 운현이 남 같지 않아 보인 탓일까?
일충현 교두의 어조는 마치 형제를 대하듯 부드럽고 친근했다.
“허나 아버님의 유언을 거역할 수 없어, 거친 강호 무림을 떠나 군문에 몸을 담았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는 무림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기에, 뜻있는 일이라 믿고 교두의 직분도 마다하지 않았네.”
일충현 교두는 먼 곳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응시하듯.
운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힘을 가진 이에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내 한시도 잊은 적이 없건만, 하늘이 때를 허락하지 않아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일충현 교두는 말을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운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결국 이것이 나의 운명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