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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7화 (7/530)
  • 007화. 학사 무공 수련생(2)

    문득 운현의 목소리가 일충현의 귓가에 울렸다.

    “저기……, 중간에 질문을 좀 해도 되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받아 적는 것도 놔두는 판에 질문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괜찮소. 질문이 있소?”

    “아,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하리다.”

    웃는 운현을 보며 일충현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모질게 뭐라고 했다간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흠, 그럼 계속하겠소. 형의 수련이 무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고수가 되기 위해선 다른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오.”

    운현은 눈을 반짝이며 일충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의 손에 들린 붓 역시 금방이라도 춤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호의 고수들은 바로 내공의 고수요.”

    금군교두 일충현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무공은 크게 외공과 내공으로 나누고 있소. 여기서 외공이라 함은 기골과 근력을 극대화함을 이르는 것이고, 내공이라 함은 호흡을 통해 단전에 기를 모아 진기를 형성하는 것을 이르오.”

    일충현의 말이 빨라짐에 따라 운현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비록 외공이 그 성취가 빠르고 당장 효과를 볼 수는 있으나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곧 한계에 다다르게 되오. 반면에 내공은 수련 과정이 길고 익히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외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오.”

    단호한 눈빛으로 일충현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외공이라 하여 반드시 빠른 성취를 보는 것만은 아니오. 외공의 수련은 신체 조건에 따라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강호의 고수들이 모두 내공의 고수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소. 내공 수련의 무한한 가능성에 비하면 외공 위주의 수련이 그리 이점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자, 잠깐만.”

    일충현의 말은 운현의 목소리에 끊겼다.

    그 와중에도 운현은 바삐 붓을 놀리며 받아 적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질문이 있소?”

    일충현이 묻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그의 필기가 끝났다.

    급하게 써 내려가느라 그랬는지 운현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외공은 대강 이해가 가는데 내공이 그……, 호흡이라고 하지 않았소?”

    운현은 자신이 적어 놓은 것을 흘깃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자신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때쯤엔 이미 금군교두 일충현도 운현의 질문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흡으로 무공의 고수가 된다는 게 무슨…….”

    “그건 이런 것이오.”

    쉬릭.

    일충현의 허리에서 검광이 번득였다.

    그가 갑자기 검을 빼어 들자 운현은 몸을 움찔하며 놀랐다.

    그러나 일충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잘 보시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검을 든 팔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타핫!”

    휘이익.

    외마디 기합 소리와 함께 일충현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난데없이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져 버리자 운현은 깜짝 놀랐다.

    “이, 일 교두…….”

    바로 그때였다.

    위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운현을 덮쳤다.

    운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헉!”

    일충현 교두는 거기 있었다.

    운현의 머리 위 높은 곳, 마치 새처럼 일충현 교두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사, 사람이 어찌 저렇게…….’

    운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일충현 교두가 보여 주려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휘릭.

    일충현 교두가 몸을 틀자 그의 손에 들린 검이 한순간 빛났다.

    그것은 결코 햇빛이 반사된 것이 아니었다.

    파아앗.

    날카로운 기운이 대기를 가르고 운현을 스쳐 지나갔다.

    비록 운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지나갔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파바박.

    운현의 옆 땅바닥에서 먼지가 일며 바닥에 길게 검흔이 그어졌다.

    조금 전 운현의 느낌이 결코 착각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였다.

    탁.

    일충현 교두는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보셨소?”

    일충현이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말했다.

    조금 전 그렇게 높이 뛰어오른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운현은 간신히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어, 어떻게…….”

    “선천적으로 다리 힘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가 도약한 정도는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아무리 팔 힘이 좋은 사람이라도 공중에서 휘두른 검으로 이렇게 흔적을 남길 수는 없소.”

    일충현 교두는 바닥의 검흔을 내려다보았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약도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바닥에 검흔을 남기는 건 더더욱 무리다.

    제아무리 팔 힘이 좋은 사람이라도 말이다.

    “물론 강호의 진정한 고수들에 비하면 이런 건 그저 여흥거리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오.”

    일충현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하지만 운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게 호흡의 수련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거요?”

    “호흡은 내공 수련의 시작에 불과하오.”

    일충현 교두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호흡이란 대자연의 기를 내 몸에 받아들이고 다시 되돌려 주는 것이오. 그것은 거대한 순환의 한 부분이며 나와 대자연이 하나가 됨을 의미하오. 기(氣)란 천지간에 충만한 것이며 우주의 근원이자 존재 그 자체의 힘이니까.”

    운현은 멍하니 눈을 껌뻑이며 일충현을 보았다.

    생각지 않게 심오한 단어들이 일충현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운현의 표정을 바라보던 일충현 교두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형(型)의 수련에…….”

    “자, 잠깐!”

    운현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시 한 번만 얘기해 주시오. 미처 못 적었소.”

    그는 황급히 책을 펼치며 붓을 들었다.

    일충현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흡은 내공 수련의 시작으로서…….”

    “이, 이왕이면 좀 천천히…….”

    운현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일충현에게 부탁했다.

    눈부신 햇살 탓이었을까? 일충현의 눈매가 약간 일그러졌다.

    그러나 운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을 뿐이었다.

    ***

    필기를 마치자 일충현은 지필묵을 치우게 한 후 실제 수련에 들어갔다.

    “십팔반 무예 중에서 가장 먼저 수련해야 할 것은 바로 백타(白打)요.”

    운현은 조금 어정쩡한 자세로 일충현 교두 앞에 서 있었다.

    “백타?”

    운현의 눈이 반짝였다.

    새로운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소. 말 그대로 병기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싸우는 기술을 말하오.”

    “백타, 백타…….”

    운현은 잊지 않으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일충현은 그것을 못 본 척하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백타에는 기본적으로 손을 이용한 타(打), 발을 이용한 퇴(腿)가 있소. 그밖에도 조이기나 던지기 등의 여러 가지 기술이 있지만 일단은 이 두 가지가 기본이라 할 수 있소.”

    “타, 퇴, 타, 퇴…….”

    운현은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단어들을 받아 적고 싶은 듯, 운현은 연신 손을 꼼지락거리며 치워 놓은 지필묵 쪽을 힐끔거렸다.

    “천하에 많은 병기가 있다 하나 결국 손의 연장, 즉 사람의 손을 길게 한 것에 불과하오. 더구나 백타의 수련은 신체를 단련시키는 데 있어서 으뜸이니, 모든 무공 수련의 시작이 바로 백타에 있다 하여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오.”

    “병기는 손의 연장, 병기는…….”

    운현이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넘어가려 한 일충현이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질 수밖에 없었다.

    “운 학사, 그 중얼거리는 것 좀 그만할 수 없소?”

    그때까지 계속 웅얼거리고 있던 운현이 움찔하며 일충현을 쳐다보았다.

    “혹시 잊어버릴까 해서……. 저기, 그럼 나중에 다시 한번 말해 주실 수 있을지…….”

    “그리하리다.”

    일충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현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일충현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앞으로 황궁 십팔반 무예의 기본형을 수련할 것이오. 비록 기본형이라 해도 운 학사께는 그리 쉽지 않을 터, 단단히 마음을 먹고 따라와 주시기 바라오. 그럼, 먼저 서는 자세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소.”

    금군교두 일충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입에서 마치 천둥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일식(第一式)! 서는 것은 산과 같이, 정립여산(正立如山)!”

    ***

    자금성 한구석에 위치한 자그만 전각은 매우 조용했다.

    가끔씩 지나는 바람이 전각의 처마에 달린 풍경을 흔들고, 울려 퍼지는 조용한 풍경 소리가 마치 향내처럼 주위를 떠돌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 서 있는 운현에게는 이 조용한 시간이 고역 그 자체였다.

    평범히 선 자세에서 살짝 몸을 낮추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금방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 서 있는 일충현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아무 말도 없는 것 역시 거북했다.

    “저, 저기 말이오…….”

    적막을 깨며 운현이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운현의 이마에서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르고 있었다.

    “이, 이대로 얼마나 있어야 하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선다는 것은 모든 무공 수련의 기초요. 제대로 서지 못하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니 조금 더 참으시오.”

    묵직한 목소리로 말한 일충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일충현이 눈을 지긋이 감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현은 그렇지 못했다.

    ‘아까부터 계속 서 있기만 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수련이란 말인가?’

    “하, 하지만 이러다가는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쓰러질 것 같소만…….”

    처음엔 별것 아니었는데 오래 버티다 보니 생각보다 부담이 상당했다.

    금방 팔이 아파 오더니 이제는 다리까지 떨린다.

    하지만 일충현은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옛 병법서에도 이르기를 ‘서는 것은 산과 같이, 움직임은 벼락 치는 것과 같이 하라’고 했소. 산과 같이 대지에 굳게 뿌리박히지 못한다면 벼락 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은 결코 나올 수가 없소.”

    일충현의 목소리는 사뭇 엄격했다.

    “전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전력으로 서 있다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전력을 다해 서 있도록 노력해 보시오.”

    만일 운현이 금의위였다면 설명 대신에 먼저 주먹이나 발이 날아갔을 것이다.

    누가 감히 교두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한단 말인가?

    설명을 요구하는 것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저, 저기…….”

    귓가를 울리는 운현의 목소리에 일충현은 눈을 떴다.

    그의 사나운 눈매를 접한 운현이 찔끔하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안하지만 방금 그 말씀을 나중에 다시…….”

    금군교두 일충현의 눈초리에서 한순간에 힘이 빠졌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럽시다.”

    일충현이 다시 말해 주겠다고 하자 운현은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뻘뻘 땀을 흘리며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문득 일충현의 눈에 운현의 이마에 가득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불편하면 옷을 벗으시는 것이 어떻소? 이곳은 사람의 눈이 없으니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듯하오만.”

    “아, 아니오. 괜찮소. 아직은 견뎌 볼 만하니……. 하, 하하.”

    운현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일충현의 눈에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소? 그런데 호흡은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하고 계시는 거요, 운 학사?”

    “아! 미, 미안하오. 후우읍.”

    일충현의 지적에 운현은 급히 호흡을 가다듬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까 말하던 내공을 기르기 위한 호흡이지만 놀라운 힘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땀만 더 빼게 하고 있었다.

    어색하게 숨을 내쉬는 운현을 보며 일충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견딜 만하다는 말과 달리 운현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저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옷을 벗지 않는 것은 학사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거겠지.’

    무공 수련이 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학문은 엄격한 마음가짐과 그로부터 표출되는 단정한 의관에서 시작한다.

    자고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 문사들이니, 따지고 보면 사제 간의 도리가 가장 엄한 곳은 강호 무림이 아니라 서원인지도 모른다.

    금군교두 일충현은 운현에게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엄하게 한마디 더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다.

    “자세가 흐트러졌소, 운 학사.”

    조금 풀어져 있던 운현의 몸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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