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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6화 (6/530)

006화. 학사 무공 수련생(1)

운현은 즉시 예를 표했다.

“가, 감사하오. 일 교두.”

드디어 그 잡서 삼만 칠천 권, 아니 삼만 육천 권을 공략할 발판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금군교두 일충현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소.”

운현의 얼굴에 돌던 화색이 단번에 걷혔다.

“무, 문제라니 어떤…….”

운현이 더듬거리며 묻자 일충현이 운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금군교두요. 무공에 대해 가르치는 방법을 나는 단 하나밖에 알지 못하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운 학사께서 무공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직접 배우는 수밖에 없소.”

운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 하지만 나는 그저 무공에 대한 것을 조금…….”

운현이 더듬거리며 일충현을 바라보았지만 금군교두 일충현은 추호도 물러설 뜻이 없었다.

“나는 금군교두이지 이야기꾼은 아니오. 황궁 십팔반(十八般) 무공을 말로 표현할 재주 같은 것은 없소. 그렇다고 금군교두가 광대가 될 순 없지 않겠소?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운 학사?”

금군교두 일충현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

운현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어.’

운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금군교두의 말마따나 어찌 무공을 말로 배울 수 있을까? 결국엔 시범이 필요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르침을 위해 시범을 보이는 것과,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보여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부심 강한 이 무관은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황태자를 위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알고 싶다면 직접 배우라는 것인가?’

그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문사이자 학사인 운현이 직접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저기, 그럼 그건 사제관계가 되는 것이…….”

“물론 아니오.”

일충현은 즉시 대답했다.

“나는 황실의 무관으로서 그저 조금 도움을 줄 뿐이니 착각은 하지 마시오.”

그건 분명히 선을 긋는 태도였지만 운현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아, 참.”

운현은 일충현을 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아까 그 젊은 금위위들과 함께 배워야 하오?”

“무공을 배우는 것이 부끄러우시오?”

금군교두의 반응은 의외로 날카로웠다.

운현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더구나 금군교두께서 직접 수고해 주시는데야……. 난 그저, 나도 그들처럼 옷을 벗어야 하는지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그들과 같은 차림을 하라고는 않겠소.”

일충현은 말했다.

“하지만 아마 일각이 채 못 되어, 학사께서는 그들이 왜 그런 차림을 하는지 아시게 될 것이오.”

“그, 그렇소? 그래도…….”

안절부절 못하는 운현을 보며 일충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글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했다.

그들은 언제나 번지르르한 외모와 말재간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그러니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는 무관들의 모습이 얼마나 같잖게 보였으랴.

‘이 학사도 지금 당장은 무공을 배우겠다지만.’

금군교두 일충현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운현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오래가지는 못할 테지.’

일충현은 이 풋내기 학사의 근심을 풀어 주기로 했다.

“내가 오전에 따로 시간을 낼 터이니.”

일충현이 말했다.

“학사께서는 내일부터 이곳으로 나오시오.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좋소.”

운현은 단번에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내 꼭 그리하리다.”

운현의 얼굴은 더없이 환했다.

당장 금군교두의 손이라도 붙잡고 흔들 기세였다.

“그럼, 이만.”

금군교두 일충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운현은 급히 따라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금군교두 일충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운현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다가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휘유.”

운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금군교두와 대화하는 동안 운현은 계속 긴장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탓도 있지만, 금군교두의 기세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금군교두라 그런가? 기세가 정말 대단하네.’

일충현 교두는 계속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은연중에 풍겨 나오는 무관의 눈빛은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 운현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성공한 것 같군.”

성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금군교두의 도움을 얻어 내는 데도 성공했고,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는 상황도 피하게 되었다.

학사의 의관을 벗고 맨살을 내놓은 채, 그것도 신입 금의위들과 같이 무공을 배운다니,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자, 이젠 문연각으로 돌아가 볼까?”

운현은 목소리는 한결 생기가 넘쳤다.

문연각에 쌓인 그 삼만 칠천, 아니 삼만 육천 권의 책들도 이젠 두렵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책 읽는 것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었던가?

무공에 대해 도와줄, 아니 가르쳐 줄 사람만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딸랑.

전각 처마에 달린 풍경(風磬)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바람이 스치는 단아한 전각을 뒤로하고 문연각으로 향하는 운현의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웠다.

하지만 그 생기 넘치는 발걸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우.”

터벅, 터벅.

문연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운현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밝았던 표정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었다.

털썩.

문연각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은 운현은 탁자가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돌이켜보건대 자금성에 들어와서 도무지 편안한 날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운현은 가슴이 답답했다.

“학사가 이젠 무공까지 배워야 하는 신세라니.”

조금 전까지는 그저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걸어오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니 한심하다.

애초에 자신이 금의위 훈련장을 찾은 것은 조언을 얻으려던 것이지 진짜로 무공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떨결에 무공을 배우는 것으로 정해져 버렸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지만 엄밀히 생각해 보면 달라진 것도 없다.

학사인 자신이 무공을 배우다니 말이다.

“차라리 계속 책하고 씨름하는 게 더 나았으려나?”

마음 한구석에서 후회가 일었다.

답답하더라도 그냥 책을 계속 파고드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적어도 무공을 배운다며 꼴사나운 모습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이게 대체 무슨 신세람.’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운현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주먹을 불끈 쥐며 운현은 말했다.

“어쨌든 나는 황태자 전하의 학사가 아닌가? 훌륭하게 일을 완수하여 전하의 인정을 받아야 해!”

황태자를 가르치던 학사가 다음 권력의 핵심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황태자가 아는 한 누구보다 학식이 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권력 핵심이라…….”

현재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불끈 쥐었던 운현의 손은 맥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말해 놓고 보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한숨을 쉬던 운현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가득한 서가를 바라보았다.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찬 서가만큼이나 자신의 미래가 답답해 보였다.

“아서라, 책 속에 길이 있잖느냐? 책 속에 황금의 집도, 아리따운 아가씨도 있느니라.”

운현은 서가를 향해 다가갔다.

손에 잡히는 만큼 가득 책을 뽑아낸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것이 내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젠장!”

탁.

운현은 탁자 위에 책을 가득 쌓아 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 권씩 제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반복적으로 책을 분류하던 운현은 갑자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야.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또 있었군.”

운현을 책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무림 방파에 전승되는 무공 근원의 통전적 접근에 관한 보고서’라. 거참, 제목 한번 길기도 하다.”

운현을 책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조금 두툼한 느낌이 드는 그 책은 보고서라기엔 꽤나 묵직했다.

운현은 가볍게 책을 후루룩 넘겨 보았다.

단정하게 쓰인 글씨와 깨끗한 종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표지는 꽤나 낡아 보였는데도 속지가 이토록 깨끗한 것을 보아하니 제대로 펼쳐진 적조차 없는 책이었다.

“황궁에서 집필된 보고서인 모양인데 뭐랄까, 책이 아주 깨끗하군.”

필경 이 두툼한 보고서는 읽히지 않았으리라.

마지막 글자의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 책은 이곳에 꽂히고, 도서 보관책에 한 줄의 기록만 남긴 채 잊혀졌을 것이다.

운현이 중간에 한숨을 내쉰 것은 이 책의 신세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맞았으면 꽤 아팠겠는데?”

이 보고서를 받은 상관이 책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운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누군지 모를 저자를 애도했다.

“어쨌거나 이것도 무림에 관한 책이라는 건 분명하니…….”

운현은 들고 있던 책을 따로 정리된 책들 위에 올려놓았다.

턱.

그동안 찾아낸 무림에 관한 열일곱 권의 책 위에 새로운 한 권이 얹혔다.

그리고 운현은 다른 책들의 제목을 한 권씩 확인하는 단조로운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

“무공의 수련은 형(型)으로부터 시작하오.”

금군교두 일충현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현은 행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세우고 그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형의 수련은 신체의 탄력과 유연함을 높이고 균형 감각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무공의 전부는 아니오.”

금군교두 일충현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운현을 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운현은 약속한 대로 정확히 시간을 지켜 나타났다.

역시나 일충현의 생각대로 학사의 의관을 아주 단정하게 차려 입은 채였다.

그러나 일충현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운현은 한 손에 붓과 먹, 그리고 두툼한 서책을 들고 나타났던 것이다.

바스락.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운현은 온 신경을 일충현에게 집중한 채 책장을 넘겨 가며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적는 그 모습은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서생의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무공을 배우러 와서 필기를 하는 사람은 난생처음이군.’

일충현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무공을 배울 때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받아 적는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그건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이 글을 몰라서가 아니라, 진정한 깨달음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받아 적는 걸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확실히 운현의 자세는 무공을 배우는 태도라고 보긴 좀 어려웠다.

그러나 상대는 이제껏 평생을, 물론 얼마 안 되는 햇수이긴 하지만 평생 서생으로 살아 학사가 된 사람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겠다는데 딱히 뭐라고 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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