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은총의 밤 (9/10)
  • 8. 은총의 밤

    <은총의 밤>은 이미 진행한 적이 있었고, 또 진행하려다가 중단되었던 행사였으므로 준비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성희가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로 했다. 신고가 여러 번 들어와서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행사의 규모도 크지 않게 해야 했고, 관계자를 늘릴 수가 없었다.

    참가 역시 지난번에 입장권을 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기에, 입장권을 갖고 있는 교인들을 상대로 암거래가 시도될 정도였다. 입장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20명 내외로, 그 수는 적지만 각자 최선을 다해서 <어머니의 나라>에 헌금을 한 사람들이었다. 행사가 다시 진행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 모두 기뻐하며 일정을 조율했다.

    사실 이런 식의 소수만을 위한 행사는 김성희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의 취향은 늘 한결같아서 되도록이면 뭐든지 크고 화려한 게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 진행해도 위험한 행사였다. 그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장소 선정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행사의 성격에 맞게끔 장소는 비밀스럽고 소수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김성희가 생각하기에 그곳은 교단 안의 기도실밖에 없었다. 기도실의 내부를 통째로 비워 공간을 마련하고, 교단의 보안을 강화했다. 당분간 신입 교인을 받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일정과 장소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뿐이었다. 1주 후의 토요일. 그 날이 다가오는 건 한순간이었다.

    <은총의 밤>이 열리는 토요일 오후. 이작이 보여 준 것은 여태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흰색 교주복이었다. 온몸에 달라붙고 가슴팍 가운데가 트여 있는, 발목까지 오는 기장의 교주복이 평소처럼 익숙했다.

    잠옷에서 교주복으로 환복을 하는 동안 이작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평소보다 배는 더 신중한 손동작으로 등의 단추를 채워 주었다. 구주헌은 그 모습을 평소처럼 조용히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검붉은 로브가 걸쳐졌다. 금색 자수가 들어간 로브는 지원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 덮었다.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옷을 다 입히자 이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행사는 늦은 오후서부터 저녁 시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미리 가서 대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성희 님도 이미 대기 중이라고 하시네요.”

    기도실 쪽과 연락을 주고받던 이작이 지원을 안내했다. 행사가 <어머니의 나라> 교단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고 <행복의 나라> 교단에서 열리는지라 지원은 건물 안에서만 이동해도 되어서 경로가 짧았다.

    교주실을 나와 걷는 흰 복도가 조용했다. 이작이 앞장서서 걸으면 그 뒤를 지원이, 다시 또 그 뒤를 구주헌이 따라서 걸었다. 중요한 행사인지라 고위 관계자를 제외한 교인들은 전부 자리를 비우게 했다. 개미 한 마리조차 없는 듯이 발소리가 복도를 공허하게 울렸다.

    기도실은 지원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자의로 온 것이 아닌 교단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도 여유도 없는 탓이었다. 기도실 안쪽에는 작은 방이 있어, 김성희가 이미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지원이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이작과 구주헌은 문을 닫아 주었다.

    김성희가 지원과 같은 대기실에서 만나는 것은 1차 공개 설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그때 김성희는 지원을 보자마자 성기를 빨게 시켰었다. 그리고 많은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졌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막연하게 느껴졌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던 김성희는 작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지원을 보고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교주님 왔어?”

    꽤 능청스럽게 건네진 인사와 다르게 검붉은 로브를 걸친 지원은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김성희는 자신의 옆자리에 지원을 앉게 하고, 와인을 잔에 따라 건넸다. 잔을 받아 드는 지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에서 긴장을 눈치챈 김성희는 더 능청스럽게 굴었다.

    “마셔 봐. 저번 거보다 더 맛있어?”

    와인 잔을 손에 들고만 있던 지원이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와인을 홀짝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눈을 굴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이건 싼 건데. 마트에서 팔아.”

    “…….”

    “교주님 막입이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놀리는 중임을 눈치챘다. 지원은 억울해하며 항변했다.

    “그게 아니라…. 김성희 님이 주신 거니까 맛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성희의 입꼬리가 시원스럽게 당겨 올라갔다. 지원은 잔에 남은 와인을 전부 다 마셔 버렸다. 훅 올라오는 알코올 향기와 함께 미약하게 취기가 돌았다. 여러모로 제정신이기 힘들었다.

    <은총의 밤> 일정이 잡힌 후로 지원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매일 가볍게 운동을 하고 마사지만 받았다. 어떤 행사인지는 이작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 현실감은 없었다. 사실 교주가 된 후로는 줄곧 그런 상태였다.

    지원이 잔을 비울 때마다 김성희는 마치 취하라는 듯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잔을 채워 줬다. 그렇게 한 병을 전부 비우자 시야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원했던 것 같았다.

    똑똑.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교주님.”

    김성희가 일어나 지원을 불렀다. 그 소리를 듣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세상이 빙글 돌았다. 몸을 둘러싼 로브가 무거워서 벗어 버리고 싶었다. 휘청거리는 지원을 김성희가 부축하자 문이 열렸다. 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몸에 힘을 줘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에 이작이 빠르게 다가와 지원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혼자 걸을게요.”

    문 밖으로 나가니 김성희의 교주실 거실보다 작은 기도실이 한 눈에 보였다. 기도실 가운데에는 넓은 침대 하나와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스무 명 남짓 보였다. 그들은 침대 주변에 둥그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지원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휘청거리듯 걸어가자 남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로브를 이작이 벗겨 내 주자, 남자들은 입을 꾹 다물고 지원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만 보던 교주님을 실제로 보자 각자의 마음속에 기묘한 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지원은 침대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전에 순서를 미리 정해 둔 듯, 한 남자가 먼저 지원의 앞으로 일어나서 다가왔다.

    “교,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원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지원은 흐릿해진 초점을 그대로 유지했다. 잠시 후 이작이 은색의 화려한 세공이 들어간 쟁반을 들고 왔다. 그 위에는 두툼한 검은색 딜도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 본 적 있는, 1000달란트짜리 상품이었다.

    딜도를 손에 받은 남자는 마치 황송하다는 듯이 손을 덜덜 떨었다. 김성희가 지원의 옆으로 다가와 상체를 가볍게 밀었다. 꿇린 다리를 가볍게 벌리게 하고 교주복 자락을 들췄다. M자 모양으로 벌어진 다리 사이로 검은색 레이스 팬티가 보이자 남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김성희는 다리를 더 넓게 벌리게 하고, 교주복 가슴팍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의 윤곽을 살짝 건드렸다.

    “여기, 빨고 싶으시죠?”

    “네, 네. 빨고 싶습니다.”

    남자의 욕망은 노골적이었다. 김성희가 이작에게 눈짓을 하자, 이내 가위를 하나 들고 왔다. 가위를 든 김성희는 가슴팍의 갈라진 틈새를 가로로 잘라 냈다. 십자 모양으로 천이 벌어지며 살짝 살이 붙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올라오세요.”

    김성희의 허락이 떨어지자 남자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지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동그랗게 벌린 입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젖꼭지를 입안에 머금고 쭉쭉 빨기 시작했다. 돌기가 도드라진 혓바닥이 작은 살덩이를 문지르고 짓눌렀다.

    “으…….”

    조금씩 오기 시작한 성감에 오므라드는 무릎을 남자가 붙잡고 벌렸다. 오른손을 지원의 아래에 가져다 대고, 더듬거리며 회음부를 만지다가, 그 아래에 있는 구멍 위를 문질렀다. 순간적으로 지원이 움찔거리자 김성희가 남자를 달랬다.

    “교주님의 소중한 구멍이니까, 소중히 다뤄 주셔야 합니다.”

    “우움, 네…….”

    가슴을 빠느라 정신이 없는 남자 대신 이작이 지원의 구멍 위에 젤을 흠뻑 짜 주었다. 남자는 미끌거리는 구멍 입구를 부드럽게 만지다가 이내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최근 사용하지 않았던 구멍 입구는 뻑뻑했다. 남자는 주변에 묻은 젤을 안쪽에 조금씩 펴 바르며 구멍을 넓혀 주었다.

    지원은 자신의 가슴을 빨며 아래를 쑤시고 있는 남자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취기가 올라 몽롱한 상태라서 그런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조금 덜 풀린 것 같지만, 침입을 허락하기로 했다.

    “이제… 넣으셔도 돼요.”

    허락이 떨어지자 남자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두툼한 검은 딜도의 뭉툭한 끝을 지원의 구멍 위에 문질렀다. 그 강도가 약하고 손이 자꾸 떨려 위치가 엇나가면서 감질이 났다. 그래도 지원은 기다려 주기로 했다.

    쑤욱. 두껍고 말랑한 실리콘 재질의 딜도가 드디어 입구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쩝쩝 소리가 나게 지원의 가슴을 빨며 아래에 넣은 딜도 끝의 고리를 쥐고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아래를 채우는 감각에 상체를 버티던 팔에 힘이 풀리고 침대에 몸이 눕혀졌다. 남자는 아예 지원의 위에 올라타서 딜도를 쑤셔 주기 시작했다. 남자의 힘이 잔뜩 들어간 팔이 흔들릴 때마다 지원의 몸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읏…….”

    젤로 풀어 줘서 그런지 부드럽게 들어온 딜도는 이작이나 김성희의 것에 비하면 작은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부족한 성감에 미약한 신음을 흘리자, 다른 남자가 또 한 명 침대 위로 올라와서 지원의 반대편 가슴을 물었다. 양쪽 가슴이 힘 있게 빨리자 평소 같은 안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아…….”

    다른 남자들도 참을 수가 없는지 잔뜩 격양된 숨소리를 내며 저마다 바지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바짝 선 성기를 쥐고 지원에게 다가와 부드러운 피부에 사정없이 문질렀다.

    “교주님, 교주님…….”

    수많은 남자들이 지원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이 지원의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지원은 몸을 살짝 일으켜 목을 세우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입안 점막과 혀로 부드럽게 빨아 주자 행복한 신음이 울려 퍼졌다.

    “저, 저도 부탁드립니다.”

    누군가가 지원의 손목을 쥐고 제 성기를 잡게 했다. 손바닥으로 성기를 감싸고 문질러 주자 이내 행복에 차오른 남자가 가쁜 숨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감사를 표현했다. 그때, 사정감이 금방 차오른 남자가 급하게 지원의 얼굴 위로 정액을 뿜어냈다. 흰 얼굴을 타고 흐르는 반투명한 액체를 보며 남자들은 감탄하며 또 감사를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취기가 돌아서인지 각오를 해서인지 지원은 평소보다 마음이 너그러웠다. 살짝 웃으며 입에 문 성기를 더 열심히 빨아 주었다. 이윽고 입에 물린 성기에서도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지원은 입을 벌려서 혀에 고인 정액을 보여 주었다. 남자의 흐릿한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혀에 고였던 정액은 금방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많은 남자들이 지원을 만지고 빨면서 행복해지고 있었지만, 지원은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뒤를 채우고 있는 딜도로는 턱도 없었다. 남자들이 수차례 싼 정액으로 교주복이 얼룩지자, 이작이 다가와서 교주복의 등판 단추를 풀어 옷을 벗겨 내 주었다. 나체가 된 지원이 멍하니 남자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자 평소와 같은 정장을 차려 입은 구주헌이 다가왔다.

    구주헌이 왜? 지원이 살짝 어리둥절해하자 김성희가 설명을 해 주었다.

    “주헌이도 오늘은 <은총의 밤> 입장권으로 들어온 거야.”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

    구주헌은 지원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벨트를 푼 후 잔뜩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딜도 끝의 고리를 잡아 빼내자 구멍이 작게 벌름거렸다. 구주헌은 핏줄이 잔뜩 불거진 성기를 입구부터 천천히 문지르며 넣기 시작했다.

    “교주님의 구멍을 따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주헌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지원 역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섹스를 쉬었다고 속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그리웠다. 거대한 성기가 안을 가르고 들어오자 다리를 더 벌리고 더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받아 내려고 허리를 비틀었다.

    “아, 끅…….”

    딜도로는 닿지 않았던 곳까지 꽉 눌러지며 슬슬 문질러지자 머릿속이 짜릿해지면서 안달이 났다. 지원의 엉덩잇살이 구주헌의 음모가 수북한 사타구니에 맞닿아졌다. 허리를 조금씩 돌리며 성기를 조이고 감싸 주자 구주헌이 탄성을 터트렸다.

    “하아…….”

    “으응, 으으…….”

    지원의 허리가 움직이면서 구주헌의 성기를 조였다 풀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눈빛에 힘이 풀렸다. 구주헌은 지원의 허리를 움켜쥐고 성기로 안을 퍽 퍽 쳐 올렸다.

    “교주님, 헉, 좋으세요?”

    “아!! 조, 좋아…. 으응, 거기 좋아…….”

    아래로 힘 있게 박아지는 성기가 드나들 때마다 좋아서 정신이 흐려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지원은 다른 교인들을 돌봐 주었다. 아래가 철퍽거리면서 몸이 크게 흔들리자, 가슴을 빠는 남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도 해 주었다.

    “가슴도, 더 세게, 응…! 빨아 주세요…, 계속 귀여워해 주세요…….”

    “귀여우세요. 하아, 흐윽…….”

    “헉, 허억. 교주니임.”

    그 말에 교인들은 기뻐하며 지원의 온몸을 물고 빨았다. 귀엽다는 말을 잔뜩 들으면서 사랑받는 기분이 좋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정액이 얼굴에 또 뿌려졌다. 행복해지고 있었다.

    “아, 힉, 읏, 으아, 으응, 좋아아…….”

    목소리가 맥없이 흔들렸다. 구주헌은 이를 악물고 지원의 안을 마구 문지르며 쑤셨다.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었다. 쾌감으로도 부족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행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헉, 허억, 큭, 하아.”

    “더어, 아! 으아, 힉, 응!”

    퍼억, 지원의 가장 깊은 안 속까지 치고 들어온 성기 끝에서 정액이 쏟아졌다. 안에 퍼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지원은 훌쩍거렸다.

    “흐윽, 끅…….”

    “교주님, 하아, 행복합니다. 정말…….”

    “힉!”

    “좋은 구멍을… 가지고 계셨군요.”

    구주헌의 눈빛이 존경으로 물들었다. 칭찬을 들은 지원은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에 잔뜩 달라붙는 점막이 뜨끈했다. 많은 남자들의 욕망을 온몸으로 받아 낸 지원의 몸이 지쳐서 축 늘어졌다.

    “잠시 쉬죠.”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이작은 물수건을 가져와서 지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구주헌은 아쉽지만 지원의 안에서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그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서 지원은 일부러 안을 살짝 조여 주었다.

    성기가 빠져나간 후, 한 남자가 지원의 구멍 안에 손가락을 두 개 집어넣고 사이를 벌렸다. 남자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벌어진 구멍 사이로 흘러나오는 정액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행복이 탄생하는 곳이었다. 이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정도였다.

    “아름답습니다.”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관찰하며 남자들은 잠시 체력을 보충했다. 이제 첫 차례가 끝났으니 곧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올 것이었다. 지원 역시 잔뜩 빨려서 퉁퉁 부어오른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을 골랐다.

    “교주님은 자지도 귀여우시죠.”

    다음 차례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지원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안에 들어온 손가락 끝이 내벽을 긁었다. 힉. 지원이 조금 놀라자 모두 웃었다.

    “귀여우셔라.”

    “으응, 갑자기…….”

    “이젠 제 차롑니다.”

    내벽을 긁던 남자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는 구주헌의 것에 비하면 작은 편인 성기를 쥐고 지원의 벌어진 구멍 사이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른 남자들도 이미 퉁퉁하게 부어오른 가슴에 다시 달라붙어 젖꼭지를 빨아 주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이미 녹진하게 풀린 구멍 안은 따뜻하고 야들야들했다. 남자는 골반을 둥글게 돌려 대며 지원의 안에 파고들었다. 지원은 안을 꼭 조이면서 남자의 움직임을 받아 내 주었다.

    “안이, 움찔거리십니다.”

    “다른 분들이, 아, 계속 귀여워해 주셔서…….”

    “이게 행복이군요…….”

    남자는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지원의 가슴이 빨릴 때마다 안이 쫄깃하게 조여지며 축복받는 기분이 들었다.

    김성희는 한 발짝 뒤에 서서 수많은 교인들에게 행복을 나눠 주는 지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벅지가 불끈거리며 자신도 뛰어들어 지원과 하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참는 중이었다. 저들에게 받은 돈이 있으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김성희는 미약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작이 어디 갔지? 아까까지 여기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옷을 정리하고 있는 구주헌에게 물었다.

    “이작은?”

    “네?”

    이제 정해진 순서대로 교인들이 지원과 섹스를 하고 나면 끝나는 행사였다. 중간에 나가야 할 일은 전혀 없는데, 이작이 없어졌다.

    “물수건 가지러 가신 게 아닐까요?”

    구주헌은 아직도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아직 지원에게서 느낀 행복함으로 충만한 상태여서 김성희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잠깐만 멈춰. 교주님.”

    “하아, 응, 아으응……!”

    남자가 안을 계속 쑤셔 주자 지원의 바짝 선 성기 끝에서 정액이 튀어나와 배 위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지원은 가쁜 숨을 내쉬며 교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성희는 결국 이작을 찾기 위해 기도실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앞으로 다가섰다. 문고리를 잡고 철컥,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작이 아니었다.

    “강 형사님?”

    “또 신고가 들어와서요. 매번 죄송합니다. 안에 잠깐만 보겠습니다.”

    이미 김성희와 안면이 있는 강력계 형사였다. 김성희가 재빨리 문을 닫으려고 하자, 강 형사의 운동화 발이 반사적으로 문틈으로 쑥 들어왔다.

    “김성희 씨?”

    “힉, 응, 끄윽, 아, 으으응……!”

    문틈 사이로 지원의 교성이 들렸다. 강 형사를 따라온 형사들이 문에 달려들어 기도실 안으로 진입했다. 김성희의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형사들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경악했다.

    거대한 침대 위에 누워진 한 남자를 다른 남자들이 범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윤간의 현장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들을 보자 지원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형사를 보고 교인들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형사들이었다. 김성희와 <어머니의 나라>에는 이미 여러 차례 신고가 들어왔었고, 그에 따라 현장까지 나왔지만 별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죄목을 말할 수가 있었다.

    “귀하를 현 시각으로 특수 강간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에는 김성희가 간간히 뇌물을 주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었다. 김성희는 강 형사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에이, 강 형사님. 특수 강간이라니요? 오해입니다.”

    “이 사람부터 당장 체포해.”

    “강 형사님?”

    철컥. 형사들이 김성희를 붙잡고 그에게 수갑이 채워지자 다른 형사들이 교인들을 하나씩 체포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바닥에 떨어진 제 옷을 주워 입으며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은밀한 일탈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계획이 틀어지자 교인들의 언성이 높아지고, 누군가는 도망을 시도하려다가 붙잡히기까지 했다.

    정황상 피해자인 지원은 체포가 시작된 즉시 형사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교인들도 하나둘씩 형사들에게 끌려 이동되기 시작했다. 강 형사가 다가와 김성희를 붙잡았다.

    “우리가 그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참 아쉽습니다.”

    “가시죠.”

    김성희는 자신을 붙잡은 강 형사의 손을 보며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강 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이날이 올 줄 알았다. 다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다.

    김성희는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강 형사의 태도가 당황스러웠지만 곧 이해하고 말았다. 자신이 준 뇌물 이상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게 분명했다. 김성희가 아는 강 형사는 그렇게 정의 구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좀 더 큰 거 먹일걸. 김성희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김성희는 그동안 지원을 세뇌하고 설득한 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분야에서는 자신 있었다.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칠 줄 몰랐다. 작은 방에서 대기할 때에도 와인이 맛있다며 그렇게 애교를 떨어 댔었으니 더 믿기가 힘들었다.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뒤통수를 처맞은 기분이었다. 부모를 볼모로 잡고 있는데 성지원이, 감히. 어떻게?

    가능성은 하나였고 답도 하나였다. 중간에 홀연히 사라져서 지금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더 확실했다. 꾸준히 들어오던 신고는 이작의 소행이었다. 그리고 지원을 교묘하게 움직인 것도 이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했다.

    김성희는 늘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신은 지원일지도 모른다고 언제부턴가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아무리 공들여서 계획한 세뇌가 효과가 있어도 그렇지, 그게 자신에게도 효과가 있는 건 아닐 텐데 정말로 지원이 교주님으로 보이지 않았던가. 모두에게 행복을 줄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행복을 받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게 전부 거짓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거짓이었다. 그 행복 자체가 김성희가 만들어 낸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김성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

    김성희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상황이 워낙에 급박한지라 아무도 김성희를 바라보지 않았다. 주목받기 좋아하는 김성희도 지금은 주목받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쌓아 놓은 재산, 명예, 신념까지 다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울지 않는 것은 김성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김성희는 웃었다. 입꼬리에 경련이 올 때까지 웃었다. 언젠가는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는 올 줄 몰랐던 날이었다.

    * * *

    지원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이미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되어 있었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김성희를 꼬시기 위해서 연기하고 노력하느라 그동안 너무 힘들었었다. 구주헌도 속여야 했기에 평소에도 계속 연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하루였지만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잘 곳은커녕, 돈이 백 원도 없었다. 지원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한 형사가 입을 옷과 십만 원을 빌려주었다. 그게 지원의 전부였다. 그것도 빌린 것이기에 완전한 소유물이 아니었다. 조만간 갚아야 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지금 지원은 신분증조차 없다. 그걸 다시 찾기 위해서는 교단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경찰서에서 교단까지는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지원은 터덜터덜 밤의 길거리를 걸었다. 빌려 신은 낡은 슬리퍼의 사이즈가 커서 걷기도 불편했다.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서 구석에서 재워 달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작은 어디로 간 걸까. 김성희에게 <은총의 밤>을 열게 하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해 놓고선 중간에 사라진 이후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 한다의 범위가 신고까지였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지만 조금 씁쓸했다. 그럴 사람 같지는 않았다. 사이비 종교에서 일하는 사람을 신뢰한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역시 경찰서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교주님.”

    경찰서에서 하루라도 재워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작 씨.”

    이작이었다. 교단 밖에서 보는 것은 첫 번째 만남 이후 겨우 두 번째였다. 평소 단정하게 차려입던 정장이 엉망으로 구겨졌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도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그대로였다. 지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 믿음을 약속하던 그때와 같았다.

    “경찰서로 갔는데… 제가 늦어서 길이 엇갈렸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지원의 앞으로 뛰어온 이작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뛰어오느라 숨은 약간 헐떡였지만,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분했다. 영문 모를 말에 지원이 되물었다.

    “네?”

    “교주님이 머무르실 곳을 준비했습니다. 가시죠.”

    그 말을 듣자마자 지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말문이 꽉 막혀서 뭐라도 해야 할지 몰랐다.

    “교주님?”

    “저는… 이제 교주가 아니에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이작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교주님을 교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릅니까?”

    “네?”

    “교주님을 믿어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를 믿고 싶으면 믿으라고 했지만 그건 제가 교주였을 때고, 이제는 아니잖아요. 김성희도 체포되었으니 교단도 이제 무너질 텐데…….”

    “교단이 무너지는 거랑 제가 교주님을 믿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작은 지원의 말이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길거리에서 두 남자가 서로 목소리를 높여서 대화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힐끔거리면서 쳐다봤다. 하지만 이야기는 해야 했다.

    “저는 정말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제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알아서 살도록 할게요.”

    “교주님.”

    지원이 선을 긋자 이작은 조급해졌다. 지원의 반응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원이 정말 자신이 없는 삶을 알아서 살아갈까 봐 두려워졌다. 하지만 지원은 사람들이 대화 내용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역시 제가 부족한 탓입니까?”

    “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하지 못하셨군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고치겠습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이작 씨는 저한테 잘해 주셨어요.”

    “그럼 왜 더 이상 모실 수 없게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작에게 지원은 행복을 주는 신이기 때문에 지원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했다. 지원이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믿지 않아도 좋으니까 지원을 믿게 해 달라고까지 말했다. 이 모든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제 지원은 교주가 아니다. 김성희와 핵심 교인들이 체포되었으니, 교단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종교가 없어지는 판에 지원이 계속 교주일 리가 없다. 교주가 아닌 자신은 이제 뭐가 되는 걸까? 원래의 아무것도 아닌 보통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연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태양은 영원히 태양이고, 달은 영원히 달이듯이 이작에게 지원은 영원히 신이었다. 그렇게 정해 두었는데, 본인이 아니라고 부정하자 심장을 누가 움켜쥐고 짜는 것 같았다.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결국 이작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교주님이라는 호칭이 싫으시면, 지원 님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까?”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지원이 대답이 없자 이작은 더 조급해졌다. 지원의 앞에 다가서지도 못하고 결국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땅에 박을 듯이 고개를 깊게 숙이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놓고 멈춰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원 님을 계속 모시게 해 주세요.”

    “이작 씨.”

    현실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 당장 갈 곳도 마땅히 없으니 이작이 준비했다는 곳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원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교주로 있으면서 지원이 원했던 것은 부가 아니었다.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목표고 전부였다. 갑자기 뒤집혀 버린 일상은 이전까지의 지원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없었다면 아예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지원은 교주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포기하고 변한 부분들을 되돌려 놓고 싶었다. 이전의 지원은 남자를 성적인 존재로 인지해 본 적도 없었고, 섹스를 한다는 것은 더욱 생각도 안 해 봤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대방과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스스로 움직일 줄 알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던 변화였다. 그러니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가야 했다. 그 원래의 삶에 이작은 없는 게 옳다.

    하지만 반대로 이작은 지원이 있어서 행복을 느꼈고 삶의 이유를 찾았다. 그의 세계는 지원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지원은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조금 이기적이지만,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원 님…….”

    그러나 정말로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저 맹목적이고 올곧은 시선을 없던 걸로 할 자신이 없었다. 살면서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헷갈렸다. 다만 자신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어 버릴 것 같은 남자를 외면할 정도로 지원은 무자비하지 못했다.

    “일단… 일어나세요.”

    이작은 계시를 받은 성자처럼 벌떡 일어났다. 지원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기쁜 표정이었다.

    “사실 지금 당장은 갈 곳이 마땅치 않기도 하니까 이작 씨가 괜찮으시다면 당분간은 같이 지내고 싶어요.”

    “원하던 바입니다.”

    그 말투가 어딘가 어색하고 긴장이 들어간 게 느껴져서 지원은 조금 웃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앞으로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 거예요. 취업도 할 거고, 돈이 모이면 집을 구해서 나갈 겁니다.”

    “…….”

    “하지만 그렇게 되어도 이작 씨와 아주 안 만나지는 않을게요. 가끔 만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지내면 좋겠어요.”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취업을 방해하지는 마세요.”

    이작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저는 제 삶을 살 테니까, 이작 씨도 이작 씨의 삶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원래 다들 급할 때만 가끔 신을 찾지 매일 의지하고 매달리지는 않잖아요. 저를 믿는 건 자유이지만, 이작 씨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금방 이해하기 힘들어 보였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정신이 없고 힘들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말하지 않아도 상태를 눈치챈 이작이 지원을 이끌었다.

    “집으로 가시죠.”

    “집이요.”

    “네.”

    아주 오랜만에 들어 보는 단어였다. 지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작은 바로 택시를 잡았다.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고 했다. 피곤할 테니 잠시 눈을 붙이라는 권유에 눈이 스르륵, 저절로 감겼다. 아주 긴 하루가 겨우 끝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가 멈추면서 꿈도 꾸지 않은 짧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작이 문을 열어 줘서 택시에서 내리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아파트 단지였다.

    “등록되지 않은 차는 단지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요. 피곤하시겠지만 조금 걷겠습니다.”

    “…잠시만요.”

    아파트는 지원이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는 이 도시도 지원이 한 번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집을 마련했다고? 지원이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면서 이작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집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급한 대로 준비하긴 했습니다. 더 좋은 곳이 발견되면 즉시 이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작은 지원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 집값이 얼마더라. 아마 지원이 취직해서 평생 월급을 모아도 사지 못할 것이었다.

    “…일단 집에 가죠.”

    지원은 어리둥절한 채로 이작의 안내를 따라 단지 안을 걸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문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층에 한 집밖에 없는 아파트였다. 이작은 황급히 문을 열었다.

    흰색을 베이스로 써서, 푸른색과 베이지색으로 산뜻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였다. 둥근 아치형 장식이나 높은 천장이 종교 시설을 연상케 했다.

    “교주님, 아니 지원 님과 어울릴 것 같아서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뭐가 어울린다는 걸까. 인테리어 자재들도 하나하나 다 비싸 보였다. 김성희의 교주실이 티 나게 돈을 발랐다면, 이 집은 그보다는 화려하지 않아도 돈을 바른 티가 났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들어요…….”

    어떻게 안 들 수가 있을까. 지원의 대답을 듣자 이작은 안심을 하며 몸을 씻겨 드리고 싶다며 욕실로 안내했다. 지원이 원래 살던 집의 방만 한 크기의 욕조가 보였다. 이미 따뜻한 물을 욕조에 가득 채워 놔서 욕실이 후끈했다. 이작은 늘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지원의 옷을 벗겨 주려고 했다. 그 손길에 지원은 흠칫 놀랐지만,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기에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옷이 전부 벗겨지고 지원은 욕조 안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데워 주면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샤워 제품을 준비하는 이작을 물끄러미 보던 지원은 하나 제안을 했다.

    “같이 씻어요.”

    이제는 정말 교주도 뭣도 아닌데, 온전히 시중을 받을 기분이 영 나지 않았다. 제안을 받은 이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실례하겠다고 하며 정장을 벗었다. 생각해 보면 이작의 쉬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 같은 걸 못 본 것 같았다.

    정장을 벗은 이작의 균형 잡힌 몸이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욕조가 널찍해서 서로 몸이 닿지 않았지만, 어쩐지 긴장되었다. 지원은 머리가 좀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고 이제 몸을 데웠으니 씻고 싶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이작이 준비해 둔 바디워시를 퍼프에 짜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작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닦아 드리겠습니다.”

    손바닥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손에 쥔 퍼프를 달라는 손바닥이 간절해 보였다. 충동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닦아 드릴까요.”

    “예?”

    “그동안 받기만 했으니까…….”

    이제는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 탓이었다. 이작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지원 님께.”

    “해 주신 만큼 받으실 수도 있죠.”

    “하지만…….”

    “싫으신가요.”

    지원이 교묘하게 몰아갈수록 더 당황스러워하는 이작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다. 결국 그의 턱이 느리게 끄덕이며 허락을 해주자, 지원은 살짝 웃으며 퍼프를 주물러 거품을 만들어 냈다. 이작이 해 주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넓은 가슴팍부터 거품을 묻히며 문질러 주기 시작했다.

    닦아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자, 이작은 눈을 번뜩 뜨고 지원을 바라봤다. 모든 모습을 하나라도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서툴지만 그동안 받았던 만큼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몸을 꼼꼼히 닦아 주자 이작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아.”

    그 변화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작의 성기가 바짝 섰다.

    지원은 모르는 척 팔과 어깨를 문지르며 닦아 주었다. 막상 본인도 별로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상반신은 거의 다 닦았고, 등을 닦아 주든가 바짝 선 성기가 있는 하반신을 닦아 주든가 해야 했다.

    잠시의 고민 끝에 지원은 손을 점점 아래로 내렸다. 배꼽 부근을 지나 음모에 뒤덮인 성기를 퍼프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바짝 선 검붉은 살기둥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며 닦아 주자 이작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원은 퍼프를 아예 바닥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성기를 문질렀다.

    “꼼꼼하게 닦아 드릴게요.”

    손가락 끝이 성기를 문지르다가 손바닥으로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가득 차는 단단한 살덩이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위아래로 문지르며 탁탁 치자, 이작이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건…….”

    “안에 것도 빼야죠.”

    목소리가 꽤 단호했다. 바디워시 거품 때문에 탁하게 변한 욕조 물이 첨벙거리며 위아래로 흔들렸다. 육안으로도 이작의 배와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이내 탁한 액체를 성기 끝으로 뿜어냈다.

    지원은 사정 후 힘이 빠져 말랑거리는 성기를 다시 양손으로 주물럭거리면서 조금씩 세웠다. 점점 단단해지는 성기가 재밌기도 했고 이작의 눈빛이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것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지원 님.”

    낮게 긁히는 목소리에는 만져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지원은 성기를 만지던 손을 떼고 몸을 가까이 당겨 붙였다. 넓은 품을 껴안으면서 이작의 성기를 제 엉덩이 사이에 놓았다. 근육이 박힌 뱃가죽을 손끝으로 쓰다듬자 이작의 손이 지원의 엉덩잇살을 꽉 움켜쥐었다.

    “넣어도 됩니까.”

    “글쎄요.”

    일부러 애매한 답을 내놓아 주었다. 이작의 손아귀에 붙잡힌 엉덩잇살이 말랑거리며 사이가 벌어졌다. 그 힘에 살짝 벌어진 입구가 느껴질 정도였다.

    “넣게 해 주십시오.”

    좀 더 간절한 요청이 들어왔다. 지원은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이작의 얼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충동이 들었다.

    “넣어 보세요, 그럼.”

    충동적인 허락이 떨어지자 이작은 지원의 벌어진 엉덩이를 그대로 제 성기 끝에 맞추더니 욕조의 물이 첨벙, 소리가 나며 출렁일 정도로 세게 박아 넣었다. 단번에 끝까지 치고 들어오는 뜨거운 살기둥의 느낌이 좋았다. 안이 꽉 차는 부피감과 온도까지도 익숙했다.

    그러고 보면 지원의 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도 이작이었다. 타고났고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해 주면서 실실 웃지 않았나. 그때는 처음인 지원을 창부처럼 다뤄 놓고서는 지금은 소중하게 다루는 게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하지만 미끌거리며 빠듯하게 조여 오는 내부는 늘 처음 같았다.

    “하아, 지원 님…….”

    이작은 나른한 한숨을 내쉬며 지원의 등줄기를 어루만졌다. 이 안에 자신의 성기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지원의 몸을 어루만지는 손이 가슴팍을 향했다. 처음에는 작고 분홍빛이었으나 이제는 색이 꽤 짙어지고 통통하게 익은 젖꼭지도 아름다웠다. 그 모양새를 감상하며 젖꼭지를 문지르던 이작의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정성을 다해 만져 줄 때마다 지원의 내부가 조금씩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기분 좋으시죠.”

    “하아, 으응, 네…….”

    “저도 좋습니다.”

    이작은 골반을 조금씩 움직이며 지원의 내부를 문질러 주었다. 아까 교인들은 무식하게 쑤실 뿐이었다. 지원은 쑤시는 것보다 문질러 주는 걸 훨씬 좋아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으응, 아, 좋아, 흐읏…….”

    “지원 님…….”

    자칫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 붉게 달아올라 야해졌다. 지원의 몸이 벌벌 떨리면서 이작을 껴안았다. 더 깊어진 결합이 성감을 돋웠다. 지원은 스스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이작의 것을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윽, 앙, 힉, 으응, 이자악, 아, 아!!”

    “큿, 지원 님, 하, 큽, 허억!”

    이작의 뱃가죽에 문질러지고 있는 지원의 성기가 꿀럭, 정액을 내뱉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머리가 쾌락에 더럽혀져 생각이 사라졌다. 그마저도 좋았다. 지원은 배시시 웃으며 이작의 머리통을 붙잡고 짙은 눈썹과 높은 콧대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지, 지원, 아, 지원 님.”

    이작이 드물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원은 콧대를 지나 아래에 있는 단단해 보이는 입술에도 입을 맞췄다. 혀로 핥자 입술이 금방 열렸다. 그 안으로 혀를 집어넣고 정신없이 안을 헤집었다. 목이 뻐근할 정도로 각도를 틀어 가며 입을 맞췄다. 이작의 것이 지원의 안을 마구 문지르며 박아 대도 입술을 떼 내어 주지 않았다.

    입술이 떼어진 것은 이작이 지원의 안에 사정했을 때였다. 지원은 일부러 구멍을 조이며 이작의 입술을 느리게 핥았다. 이작의 동공은 선명하게 지원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토록 찾고 기다렸던 신이 자신에게 키스해 주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루어지는 행복이었다. 신이 이작에게 주는 자비였고 선물이었다. 이작은 그 신을 지원이라고 불렀다.

    “지원 님…….”

    이름이 불린 지원은 나른하게 미소 지었다. 오늘 무리를 한 탓에 지원은 곧 축 늘어졌다. 이작은 지원의 몸을 마저 씻겨 주고 물기를 닦아 주었다. 막상 이작 자신은 대충 물기만 닦아 내고 샤워 가운을 입었다. 품에 안아 들어 침실로 갈 때까지 지원은 피곤한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침실은 이작이 급하지만 공들여 꾸민 곳이었다. 킹사이즈의 침대에는 캐노피가 설치되어 있었다. 흰색 천이 살랑거리는 침대는 이작이 생각하는 지원에게 딱 어울렸다.

    이작은 조심스럽게 침대에 지원을 내려놨다. 따로 옷을 입혀 주지 않았으므로 추울까 봐 포근한 이불도 덮어 주었다.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방을 나가려고 했는데 지원이 좀처럼 눈을 감지 않았다. 가느다랗게 눈을 깜빡거리며 이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하실 테니까 주무세요.”

    “이작 씨는 어디서 자나요?”

    “저는 다른 곳에서…….”

    “같이 자요.”

    킹사이즈 침대는 둘이 누워도 넉넉할 정도로 컸다. 지원은 꾸물거리며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럼에도 이작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어서요.”

    “제가 어떻게 지원 님과 같이 잡니까.”

    “그럼 누워만 있어요.”

    지원이 재차 요구하자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작은 조심스럽게 지원의 옆에 누웠다. 지원은 이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이작 씨는 저를 신이라고 하지만… 저는 이작 씨가 더 신같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잘생겼기는 하지만, 신에 비교하는 것은 신성 모독입니다.”

    “…제 말에 토 다는 건 신성 모독이 아니에요?”

    이작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지원은 졸린 눈으로 이작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인상의 미남이었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쩌다가 사이비에 빠져서 자신을 신이라고 믿고 따르고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듯했다. 이런 좋은 집을 마련할 정도로 돈 많고 잘생기고 섹스까지 잘하는 남자는 흔하지 않았다. 좀 바보 같은 부분이 있어야 균형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지원은 이작을 착취해 보기로 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어디까지 믿고 따를지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갑자기 궁금한 게 마구 생겼다.

    “이작 씨.”

    “네.”

    “외국에서 살아서 그 이름이 편하다고 했었잖아요. 진짜 이름은 뭐예요?”

    “이작이 진짜 이름입니다.”

    “그럼 성은 뭔데요.”

    “센데즈. 이작 센데즈가 본명입니다.”

    “…외국인이에요?”

    “국적이 미국입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에 계세요.”

    잠이 조금 달아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섬세하고 화려한 이목구비가 한국인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로 외국인일 줄은 몰랐다. 지원은 본능적으로 되물었다.

    “그럼 군대 안 갔겠네요.”

    “네.”

    “존나 부럽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이작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한국 이름 같은 건 없어요?”

    “어머니가 붙여 주신 이름은 있습니다.”

    “뭔데요?”

    “장서진이요.”

    “아…….”

    기억이 났다. 공개 설교 때 일반 교인으로 위장하며 썼던 이름이었다. 지원은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하암. 제가 이작 씨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네요.”

    “그렇네요.”

    “앞으로 많이 알려 주세요.”

    “또 뭐가 궁금하십니까?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그런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예?”

    “이작 씨 덕분에 결국 자유를 되찾게 된 거니까요.”

    지원은 꾸물거리며 이작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작이 놀라서 몸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이게 왜 기분이 좋은 걸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쁠 것도 없었다. 부모마저 사이비에 미쳐서 자식을 속여 팔아넘긴 판에, 지원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은 이 사람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작의 손이 지원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지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저야말로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무십시오.”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더 이상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감긴 눈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지만 미래가 있었다. 앞으로 할 일을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작의 지원을 향한 마음이 진짜인지는 천천히 알아볼 시간과 자유도 있는 셈이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믿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아볼지 방법을 궁리하던 지원은 자신의 생각이 마치 신앙심을 시험해 보는 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작은 지원이 완전히 잠에 빠져들어 느릿하게 숨을 쉬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원을 진정으로 모시게 된 때부터 계속 묘한 각성 상태가 유지되어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상태였다.

    형태가 없고 불분명한 건 믿을 수 없었지만, 지원은 믿을 수 있었다. 그가 주는 행복은 분명했고, 지원은 만질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지원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이작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제는 다른 누구와 지원을 공유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금 귀찮은 과정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충 끝났다. 지원은 돈이 모이면 집을 구해서 나가겠다고 했지만, 한번 부의 맛을 본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기 위해 이작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에게 충성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이 집과 자신에게 익숙해져서 밖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였다. 계산상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진정한 신을 찾은 거룩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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