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이작 (7/10)
  • 6. 이작

    지원은 분명히 김성희가 무척 바쁜 사람이라고 들었다. 교세를 넓히고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 있다고. 그래서 당연히 자주 못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표정은 뭐야.”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떨떠름한 지원의 표정에 김성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원은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지원이 이 말도 안 되는 교주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해도, 어제 열정적으로 섹스한 사람을 오늘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복수를 하겠다고 나름대로 노력한 섹스였다. 그러나 결국 속셈을 다 알고 있던 김성희에게 놀아난 셈이 되어서 그 노력은 지원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다짜고짜 교주실을 찾아온 김성희는 한 덩치 큰 사내를 소개했다. 늘 흰색 정장을 차려입는 김성희와는 달리 검은 정장 차림의 사내였다.

    “구주헌이야. 교주님 보디가드.”

    “네?”

    “안 좋은 일 있었다면서. 교주님 보호해 줄 사람이야.”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주헌이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떠벌떠벌 떠들어 대던 윤재민과 달리 구주헌은 말이 없는 성격인 것 같았다. 지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겁고 진지했다.

    “주헌 씨,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작 씨.”

    게다가 이작과는 구면인 것 같았다. 이작은 먼저 웃으며 구주헌에게 악수를 요청했다. 구주헌은 두툼한 손을 내밀어서 이작과 악수했다. 둘의 인사를 지켜보던 지원이 여전히 눈치를 보며 김성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보디가드라니요…? 저는 어차피 교주실 밖으로는 잘 나가지도 않는데요…….”

    “꼭 보디가드가 몸만 지켜 줘야 해? 같이 산책도 좀 하고 운동도 해.”

    김성희는 다짜고짜 지원의 팔뚝을 붙잡고 주물렀다.

    “아…….”

    “너 갈수록 마르는 것 같은데.”

    “그야…….”

    여기에 와서 마음이 편해질 일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먹고 입는 모든 게 다 돈이고 빚인지라 더 위축되고 계산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런 속마음을 말하기 싫어서 대충 대답을 흐리자 김성희가 돌연 교주복의 갈라진 틈새 안으로 손을 넣어서 지원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힉!”

    “가슴도 너무 만지는 맛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김성희는 지원의 마른 가슴에 튀어나온 젖꼭지를 살살 건드려서 서게 만들었다. 사실 만지는 재미야 많았지만, 핑계를 만드는 것은 쉬웠다.

    “하,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도 있는데…….”

    지원이 이작과 구주헌의 눈치를 보며 김성희를 말렸다. 그러나 김성희는 애초에 그런 것에 눈 하나 껌뻑도 하지 않을 인간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지원뿐이었다.

    “괜찮을걸? 그렇지, 주헌아.”

    “편하게 있으십시오.”

    주헌은 김성희에게 꾸벅 인사했다. 편하게 있으라니. 김성희가 편하게 있을수록 불편해지는 것은 지원이었다. 결국 김성희는 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제 품에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엉덩이도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원은 울고 싶어졌다.

    “기, 김성희 님 제발.”

    “엉덩이도 마르는 것 같은데…. 주헌아. 네가 책임지고 교주님 운동시켜.”

    “알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희롱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교주실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김성희는 제 것처럼 실컷 주무르던 엉덩이에서 손을 뗐다.

    “며칠 동안 지방 순회해야 해서 못 와.”

    “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지원의 얼굴에 티가 나게 화색이 돌자 김성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원은 눈치를 보며 표정을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럴싸한 말을 대충 내뱉었다.

    “뵈, 뵙고 싶을 거예요.”

    “그럼 전화해.”

    “바쁘신데 방해될 것 같아서…….”

    “하라고.”

    “네…….”

    지원이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김성희의 미간이 풀어졌다. 김성희는 그대로 등을 획 돌려서 교주실을 나갔다. 쾅. 문이 닫히자 지원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김성희와 있으면 늘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식사량을 늘려야겠군요.”

    지난번 윤재민이 추천해 주고 간 영양제를 종류별로 먹이고,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고 있는데도 지원은 확실히 갈수록 마르고 있었다. 이작은 그 점이 계속 신경 쓰였다.

    “운동량이 부족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김성희 님 말씀대로 가끔은 산책이라도 어떻습니까.”

    “산책이요?”

    “네. 구주헌 씨와 동행하세요.”

    이작의 입에서 나온 산책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지원은 내심 좋으면서도 눈치가 보였다.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저희가 교주님을 가둬 둔 것이 아닙니다. 안전을 위한 보호죠.”

    “안전…….”

    확실히 교주라는 자리는 위험한 자리였다. 상징성만큼 환상이 크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이 종교의 교리 자체가 엉망진창 사이비니까 제정신인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더 컸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주헌은 딱 보기에도 키며 덩치가 김성희만 했다. 함께 다닌다면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네?”

    “김성희 님께서 교주님 가슴이 만지는 맛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원은 뒤로 조금 물러섰다. 이작이 성큼 다가와서 교주복 상의의 갈라진 틈 사이로 손을 넣고 지원의 가슴을 다시 끌어모아 움켜쥐었다.

    “확실히 처음보다 더 납작해졌군요.”

    “으아, 자, 잠깐.”

    안 그래도 아까 김성희가 만지고 가서 가슴이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이작이 동그랗고 통통해진 젖꼭지를 누르고 돌리니 지원의 다리 사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가랑이를 꼭 조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감도는 좋아지셨네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성희 님은 가슴이 큰 사람을 좋아하시는 편이죠.”

    “읏…. 제발.”

    이작은 아예 손을 등 뒤로 돌려 지원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톡, 톡. 단추가 풀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났다. 상의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자 지원이 어깨를 움츠렸다.

    “가슴이 커지려면, 마사지를 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해 드릴게요.”

    “지, 지금요?”

    “그럼 언제 합니까?”

    이작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지원을 커피 테이블 위에 눕힌 후 그 옆에 앉아서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펴서 지원의 납작한 가슴을 꾹꾹 눌렀다. 젖꼭지가 살짝 꺾일 때마다 지원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앞으로는 매일 해 드리겠습니다.”

    “으으…….”

    지원은 부끄러웠다. 오늘 처음 본 구주헌이 말도 안 되는 가슴 마사지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은 김성희가 한 말이 영 신경 쓰였다. 그가 가슴 큰 쪽을 좋아한다면, 조금이라도 살을 찌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안 그래도 김성희가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너무 만지는 맛이 없다고.

    “흑.”

    지원은 서러워졌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슴이 납작해서 서러워지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원은 어떻게든 김성희에게 베갯머리송사를 해야 했다. 지금은 같은 베개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힘드네요. 구주헌 씨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네?”

    이작의 말에 지원이 놀라서 고개가 튕겨 올라왔다. 지원이 말을 믿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리자 구주헌이 소리도 없이 이작의 반대편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작이 구주헌에게 마사지 방법을 설명했다.

    “가슴 주변의 유선을 자극시켜 준다고 생각하면서 문질러 주시면 됩니다.”

    “으, 으아…….”

    “젖꼭지도 같이 커지면 예쁠 테니 가끔씩 만져 주시고요.”

    그러면서 젖꼭지를 꼭 잡아 당겼다. 지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구주헌은 이작의 예시를 잠시 지켜보더니 두툼한 손으로 가슴을 만져 주기 시작했다.

    구주헌의 손은 두툼하고 거칠게 생겼으나 의외로 손끝이 섬세했다. 두 남자가 지원의 가슴을 꾹꾹 눌러 줄 때마다 아릿하면서 몸이 조금씩 움찔 튀었다. 지원은 지금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이작은 열심히 주무른 가슴을 모았다가 펼쳤다가 하면서 괴롭혀 댔다. 지원은 입술을 꾹 깨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 아응…….”

    자꾸 신음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 신음 소리에 이작이 픽 웃었다.

    “기분 좋으신가 보군요.”

    “그, 그게 아니에요.”

    “교주님이 좋으셔야 저희도 좋습니다.”

    이작은 그렇게 말하고 지원의 젖꼭지를 아예 입에 물었다. 뜨거운 입속에 들어가서 그 부분만 화끈거렸다. 지원이 놀라 이작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하자, 이작이 혀로 젖꼭지를 퉁기면서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구주헌 씨도 빨아 보세요. 맛이 좋을 겁니다.”

    지원이 말릴 새도 없었다. 구주헌은 지원의 반대편 가슴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넓은 혀로 젖꼭지를 문지르기도 하고 잇새로 살짝 씹기도 했다. 지원은 이제 아예 대놓고 울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성기가 터질 듯이 화끈거렸다.

    “교주님의 가슴은 작아도 맛이 좋습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아요.”

    “흑, 흐윽…….”

    지원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가슴을 내놓고 빨리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무릎을 세워서 숨기고 있지만, 성기도 바짝 서서 흥분해 있지 않는가.

    지원이 숨기고 싶은 비밀은 금방 들켰다. 이작은 기다란 교주복 아래로 손을 넣어서 지원의 바짝 선 성기를 움켜쥐었다. 하얀 레이스 속옷이 살짝 젖어 있었다.

    “아래로 물을 흘리시네요.”

    “그만, 그만요…….”

    “가슴으로도 흘리시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이작은 중얼거리면서 지원의 성기를 위아래로 슥슥 문질러 주었다. 가슴과 성기가 동시에 자극되자 허리가 저절로 튕기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발끝이 자꾸 안으로 모이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이작은 지원이 안달 난 것도 금방 눈치챘다.

    “이작, 이작 씨…….”

    “왜, 그러십니까?”

    스윽, 스윽. 선액으로 미끄러워진 성기를 문지르는 이작의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지원의 성기 끝에서 솟아난 액체가 성기를 따라 밑으로 흘렀다. 매끈하고 통통한 회음부를 지나 구멍 입구에 고였다. 이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구멍 입구를 손가락으로 슥 스쳤다.

    “힉!”

    “교주님, 정말 이상하시네요. 빨리는 건 가슴인데 왜 아래로 물을 흘리시며.”

    “학!”

    “여기로는 왜 기대를 하고 계신 겁니까?”

    모르겠다. 지원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양 가슴을 빨리면서 아래로 느끼는 자신이 제일 이해 불가능이었다. 그 와중에도 구주헌은 열심히 지원의 가슴을 빨아 주고 있었다.

    “아. 구주헌 씨에게는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 드려야죠. 주헌 씨, 이리 와 보세요.”

    이작이 구주헌을 불렀다. 지원의 다리를 M자 모양으로 넓게 벌리게 하고, 주헌과 이작은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교주님 성기고.”

    지원의 물이 줄줄 흐르는 성기를 툭툭 쳤다. 그리고 일부러 장난치듯이 손가락을 느리게 움직이면서 질척해진 회음부를 문질렀다.

    “그리고… 여기는, 뭘까요? 모르겠지만 교주님이 만져 주면 좋아하십니다.”

    “흐윽, 제발.”

    “그리고 여기가 교주님 구멍입니다.”

    이작의 손가락 끝이 도달한 곳은 지원의 구멍 입구였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곳이죠.”

    마치 황홀하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있으나 마나 한 하얀 레이스 끈이 살짝 덮여져 있는 구멍 위를 촉촉한 손가락이 쓰다듬으니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지원은 얼굴을 가리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제 가랑이를 빤히 보고 있다는 상황이 지원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구주헌 씨가 교주님 구멍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네요.”

    이작이 그렇게 말하며 바람을 후, 불었다. 지원의 입구가 놀라서 우물거렸다. 이작은 구주헌에게 서랍에서 핑거돔을 꺼내 오도록 했다.

    “교주님의 몸은 소중하니까 조심히 다루셔야 합니다.”

    핑거돔의 포장을 뜯고 구주헌의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에 핑거돔을 씌워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끼웠다. 이작은 구주헌에게 지원의 허벅지를 잡아 못 오므리게 고정하라고 시켰다. 구주헌은 이작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이걸로 모두에게 행복을 드리실 겁니다.”

    이작은 핑거돔이 씌워진 손가락을 구멍 입구에 대고 가위질을 하듯 손가락 사이를 벌렸다. 보송보송한 분홍빛 구멍은 부끄러움이 많았다. 어제 김성희의 것을 실컷 먹었다고 배가 불렀는지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작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고 침을 묻혔다.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워낙에 예민하셔서요.”

    그리고 축축해진 손가락 끝으로 구멍 입구를 문질렀다. 움찔거리던 구멍 입구가 조금씩 밀리면서 열렸다. 손가락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단단하게 조이는 입구를 지나면 안쪽에 야들야들하고 촉촉한 살이 있다. 이작은 그 살이 얼마나 남자의 물건을 기가 막히게 조이는지 알고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성기가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흑…….”

    “입구가 조금 뻑뻑하지만, 안은 또 다릅니다.”

    지원은 훌쩍거릴 뿐 싫다고 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싫다고,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이제 지원의 몸은 알고 있었다. 아래가 꿰뚫리는 고통 뒤에 오는 쾌락을. 그리고 그것을 내심 기대하게 되었다.

    이작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 속살을 만났다. 이작은 폭신폭신한 속살을 마구 휘저으며 눌러 댔다. 그럴 때마다 지원의 허벅지가 사정없이 튀어 올라서, 구주헌은 다리를 붙잡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다.

    “구주헌 씨도 해 보시죠.”

    이작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지원은 숨을 헐떡였다. 이번에는 이작이 지원의 다리를 붙잡았다. 구주헌은 잠시 망설이다가 지원의 구멍 안에 손가락을 푹 소리가 나게 쑤셔 박았다.

    “으아아…….”

    지원의 몸이 벌벌 떨렸다. 구주헌은 지원의 구멍이 손가락 뿌리 쪽을 세게 조여 와서 놀랐다. 그 안쪽의 살이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것을 알고는 더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폭폭 누르고 싶을 정도였다.

    “아, 아으으으…….”

    지원의 성기는 바짝 서서 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작은 잠시 손을 놓고 어디론가 가더니 가느다란 막대를 하나 가져왔다. 카테터였다. 그러고는 지원의 성기를 붙잡고 요도구에 카테터를 집어넣었다.

    “아윽!!!”

    처음 느껴 보는 통증이었다. 좁은 요도구가 벌어지면서 안이 꽉 찼다. 지원의 다리가 벌벌 떨렸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하으, 으, 으아…. 왜, 왜…….”

    지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아래에는 구주헌의 손가락이 넣어져 있고, 이작은 카테터가 딱 맞게 들어간 지원의 성기를 감상하고 있었다. 괴롭고 부끄러워서 당장 숨고 싶었다.

    “교주님은 이제부터 뒤로만 가시는 걸 연습하셔야 합니다.”

    “어, 어떻게…….”

    “앞은 되도록 만지지 마세요.”

    이작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정장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지원이 이미 알고 있는 이작의 성기가 속옷 안에 꽉 차서 빵빵했다. 이작은 두툼하게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그리고 지원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교주님이 제 좆을 잊으셨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핏줄이 단단히 선 검붉은 성기를 쥔 이작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기둥을 움켜쥐고 끝을 구주헌의 손가락에 문질렀다. 지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안 돼. 같이, 안 돼요.”

    “구주헌 씨, 빼 보세요.”

    지원이 버둥거리며 애원하자 구주헌의 손가락이 쑥 빠졌다. 완전히 다물어지기까지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이작의 귀두가 지원의 구멍에 푹 꽂혔다. 입구가 벌어지며 안으로 거대한 성기가 밀려들어오자 지원의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악, 아아, 흑, 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장기가 온통 위로 밀려나서 짓눌리는 것 같았다. 이작은 인상을 찌푸리며 지원의 안에 성기를 빠득빠득 밀어 넣었다. 뿌리까지 박아 넣은 성기를 좁은 구멍이 벅차게 받아들였다. 이작은 숨을 낮게 쉬며 감탄했다.

    “하아……. 역시 이 맛이네요.”

    오랜만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이작은 지원의 허벅지를 붙잡고 앞뒤로 슬슬 허리를 움직였다.

    “흐윽, 너무, 커어…….”

    “어제 김성희 님 것도 잘 드시지 않았습니까.”

    “하윽, 그치만, 어제는…….”

    어제는 이작이 공을 들여서 구멍을 풀어 주었다. 지원의 몸에 힘이 풀리도록 따뜻한 물에 몸을 데워 주고, 손가락으로 아주 오랫동안. 구멍이 녹진녹진해지도록.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없었다. 한 번 안을 휘저은 게 전부였다.

    “어제는 그렇게 해 줬으면서…….”

    “지금은 제가 좀 급하네요.”

    지원은 조금 서러워졌다. 하루 만에 돌변한 남자의 태도가 신경 쓰였다. 그러나 이작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말캉하고 야들야들한 지원의 속살이 제 성기를 오물오물 삼키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빠듯하게 조여 오는 입구가 기둥을 삼킬 때마다, 허벅지가 움찔거리며 떨릴 정도로 강한 충동이 왔다.

    “교주님.”

    “흑, 흐윽.”

    “제가 교주님 구멍을 따먹어도 되겠습니까?”

    이작은 정중하게 물었다. 지원은 대답하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자 이작이 허리를 동그랗게 움직이며 내부를 휘젓기 시작했다.

    “싫으십니까?”

    “아, 읏!”

    어차피 싫다고 해도 할 거면서 왜 물어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원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지금 느낄 수 있는 쾌락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리를 뻗어 이작의 허리를 감쌌다. 허락의 신호였다. 이작은 지원의 골반을 고쳐 잡았다.

    “감사, 합니다.”

    “흣!”

    “교주님의 구멍을, 따먹게 해 주셔서…….”

    “아, 아!”

    “정말 감사합니다.”

    이작이 감사의 뜻을 표현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지원의 좁은 내부에 성기가 쾅 쾅 부딪히며 머릿속에 쾌락이 가득 찼다. 뻥 하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지원의 몸이 이작의 움직임에 따라 밀리며 입에서 가쁜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아, 흑, 아, 이작, 아, 응!”

    “교주님, 존경하고, 사랑하는, 하아, 교주님.”

    “흐읏, 아, 아, 아아!”

    이작은 지원이 느끼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려 귀두로 짓눌러 댔다. 지원은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숨 쉬기가 벅찼다. 쉬는 방법을 잊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쾌락이었다. 하지만 성기 끝이 꽉 막혀 있어서 사정을 할 수가 없었다. 쏟아 내고 시원해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싸, 싸고 싶어, 싸게 해 줘어.”

    “안, 됩니다.”

    “흐윽, 아, 아파, 흑, 터질 것, 같아!”

    지원의 성기가 붉게 달아올라 빵빵해지고 있었다. 지원은 무서웠다. 정말로 성기가 터져 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이작의 성기에서 나오는 액체가 지원의 내부에 물을 꽉 채웠다. 차박차박 하는 소리가 나며 액체가 교접부 사이로 줄줄 흘렀다.

    “뒤로만, 후. 가셔야 한다고 했지요?”

    어린애를 가르치듯이 다정한 말투였다.

    “어, 어떻게? 몰라, 시러, 무서워, 이작 씨, 하지 마. 안 돼…….”

    “구주헌 씨, 교주님 가슴을.”

    지원의 몸이 흔들리면서 알 수 없는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지원의 갈 곳 없는 쾌락이 온몸을 쾅쾅 치면서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작이 지시하자 구주헌이 다시 지원의 가슴을 빨아 주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반대편 가슴은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성감을 도왔다. 지원은 미칠 것 같았다.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개운해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교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쑤셔 드리잖아요?”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이작은 지원에게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가 정말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안 그래도 뒤로 문질러서 여러 차례 사정을 하던 지원이었다. 그렇다면 싸지 않고 절정을 느끼는 것도 곧 가능하다고 믿었다.

    속도를 높였다. 이작은 점점 허리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지원의 내부를 오갔다. 지원의 온몸이 달달달 떨렸다. 시야가 하얗게 번지면서 쾌감이 펑 펑 터졌다. 꽉 막힌 요도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어딘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쾌감이 줄줄줄 새어 나왔다. 경련하듯이 몸을 떨며 울었다.

    “흑, 흐윽, 아, 하으, 흑, 끕, 끄흑…….”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빨리고 있어서 예민해진 가슴이, 잔뜩 짓눌러져서 기분 좋아진 내벽이, 꽉 차서 좋은 성기가. 모든 게 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황홀했다. 이런 기분을 평생 느끼고 싶었다. 동시에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었다.

    “하아, 하아…….”

    허리를 열심히 움직이던 이작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작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면서 지원의 안에 사정했다. 물이 차서 찰박한 내부에 정액으로 가득 찼다. 이작이 허리를 조금 뒤로 빼내자 정액이 투둑 떨어졌다.

    “구주헌 씨, 보셨지요?”

    “…네.”

    “교주님은 정말 음란하고 예민한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구주헌 씨가 잘 보호해 드려야 합니다.”

    이작은 구주헌에게 말했다. 구주헌은 지원을 바라보았다. 고개가 뒤로 바짝 젖혀져서 눈물을 쏟아 내고 있는 교주님의 모습은 음란하고 아름다웠다. 제 입안에서 잔뜩 빨려서 통통하게 부어오른 젖꼭지는 귀여웠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주님.”

    구주헌은 지원에게 인사했다. 지원의 귀에는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잔뜩 벌어진 다리가 아팠다. 쑤셔진 구멍도, 꽉 막힌 성기도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더 괴로운 것은 쾌감이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질 정도로 좋았다. 이작의 말대로 앞으로 싸지도 않았는데 절정을 맛본 것이다.

    “교주님. 구주헌 씨가 잘 부탁드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원이 쾌락에 빠져 대답을 하지 않자 이작이 허리를 움직여 내부를 퍽, 쳤다. 그제야 지원의 입에서 대답이 나왔다.

    “응! 읏, 그래요. 저도, 저도 잘 부탁드려요…….”

    “가슴도 빨아 주셨고요.”

    “가슴도 빨아 주셔서, 감사해요…….”

    지원은 멍한 얼굴로 이작이 시키는 대로 대답했다. 구주헌은 홀린 듯이 지원의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작은 지원의 요도구를 막고 있던 카테터를 천천히 뽑아냈다. 성기 끝에서 맑은 물이 조금 나왔지만 정액은 아니었다. 다만 지원의 고환이 정액으로 빵빵하게 차 있었다. 이작은 그것을 무시했다.

    지원은 가슴을 들썩이며 울었다. 처음 맛 본 드라이 오르가즘의 여운이 너무 강력했다. 쾌감이 지나쳐서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흑, 끅, 흐윽…….”

    온몸을 축 늘어트린 채였다. 이작은 지원의 몸을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지원은 이작의 품 안에 착 달라붙어 다시 또 울었다. 이작이 입은 정장 재킷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을 만큼.

    “씻을까요?”

    이작이 물었다. 지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뒤만으로 느껴서 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작은 아닌 것 같았다. 이작의 손길이 지원의 허리를 훑었다.

    “허리가 가늘어서 보기는 좋지만, 힘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앞으로 구주헌 씨가 교주님의 체력에 도움을 많이 드릴 겁니다. 조금 쉬셨다가 운동을 시작하죠.”

    지원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뭔가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졌다.

    이작은 조금 진정된 지원을 소파에 앉혀 주었다. 더럽혀진 교주복을 벗겨 주고 구주헌을 시켜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물수건으로 정액이 흘러나온 다리 사이를 정성껏 닦아 주었다. 지원은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손길이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구주헌 씨가 가슴을 잘 빨아 주셔서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예쁘시네요.”

    이작은 지원의 살짝 도톰해진 것 같은 가슴팍을 문질렀다.

    “끅. 하, 하지 마세요.”

    “가슴 마사지는 매일 받으셔야 합니다.”

    이작이 마치 어린아이의 생떼를 교정하듯이 엄격하게 말했다. 지원은 그것이 왠지 서러웠다.

    이작은 교주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부엌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지원에게 차를 주기 위함이었다. 따뜻한 차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머릿속을 비우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작은 지원이 편해지기를 바랐다.

    “…….”

    구주헌은 마사지의 효과로 살이 살짝 오른 지원의 가슴을 저도 모르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지원이 흠칫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이작 앞에서는 나신으로 있는 것이 익숙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늘 부끄러웠다. 구주헌은 지원의 그 경계심이 아기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구주헌은 작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했다. 덩치가 크고 좋아서 다들 오해하기 쉬웠지만 원래 취향은 그랬다. 지원처럼 저보다 덩치가 작고 쌍꺼풀 없는 눈이 날카로운, 그런 사람.

    “…예쁘십니다, 교주님.”

    “네?”

    구주헌은 저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실수했다 싶었지만 이미 말은 꺼내졌다. 지원은 고개를 살짝 들어 구주헌을 올려다보았다.

    “…….”

    그러나 다시 닫혀 버린 구주헌의 입에서는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지원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코를 살짝 훌쩍였다. 이작은 담요를 가져와 지원에게 둘러 주었다.

    이작이 따뜻한 차를 세 잔 내왔다. 셋이서 나란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 차는 평범한 티백 녹차였다. 펄펄 끓는 물을 부었기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아직 정신이 없는 지원은 티백을 집고 휘휘 저으며 차를 식혔다.

    구주헌은 아직도 뜨거운 녹차를 단번에 마셨다. 식도가 익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온도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지원은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섹스를 하는 것은 여전히 부끄럽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잘 아는 사람 앞에서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냥 그건 사람들 앞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원은 계속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게 이작이 말하는 지원의 재능일 터였다. 매번 있는 일을 처음처럼 느끼는 것. 그걸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에 재능이 될 수 있다. 그 아이러니가 지원을 괴롭혔다.

    차라리 아예 익숙해져 버린다면 편해질까?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벌리고, 수많은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어림도 없었다. 지원의 평범하게 살아온 자아가 현실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현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섹스를 하고 나서 다 같이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실컷 짓눌린 가슴이 아직도 욱신거렸다. 지원은 충분히 식은 차를 조금씩 마셨다.

    지원이 차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이작이 말했다.

    “건물 앞에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일단 거기부터 가보죠.”

    지원은 이작이 가져다 준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늘 신던 흰색 클리퍼를 벗고 회색 운동화도 신었다. 속옷은 여전히 레이스 속옷이었지만, 이제 이 정도는 완전히 적응해 버렸다.

    * * *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달란트 시장 때 이후 두 번째였다. 지원은 일부러 왼쪽에는 구주헌, 오른쪽에는 이작을 두고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에는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어서 누가 보아도 긴장한 게 보였다.

    건물을 나와 공터에 도착했다. 지원은 운동화 발로 흙을 밟는 게 어색했다. 구주헌은 말없이 앞으로 나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지원 역시 구주헌을 따라 꾸물꾸물 몸을 움직였다. 몸이 삐그덕거렸다.

    가볍게 몸을 풀어 준 후에는 교단 건물들의 외곽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교단은 생각보다도 더 외진 곳에 있었다. 주위에는 정말 산뿐이었다. 심지어 주변에 사람이 다니는 길마저 나지 않았다. 지원은 이런 곳에 끌려갔었지만 결국 발견 되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쯤 걷자 지원은 조금씩 힘이 들었다. 가볍게 운동을 한다는 것도 어쩌면 벅찬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구주헌과 이작은 아주 쌩쌩해 보였다. 조금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지원의 발걸음이 점점 처져서 둘이 앞장서서 걷는 형태가 되었다. 지원은 힘을 내서 둘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방금 전까지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지원은 벤치를 발견하자 바로 달려가서 앉았다. 조금 살 것 같았다.

    “힘드십니까?”

    지원이 지쳐서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자 둘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지원은 울컥했다. 둘이야 별일 없어서 괜찮았겠지만 지원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어제는 김성희를 받아 내고 오늘은 이작을 받아 내느라 지원의 몸이 무리를 한 상태였다.

    “힘들어요.”

    축 늘어진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이대로라면 체력 증진은커녕 산책 중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지원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게 사실이라는 게 무서웠다. 구주헌과 이작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지원의 양옆에 가서 앉았다.

    ‘왜 굳이 양옆에 앉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옆에 큰 남자 둘이 앉으니 자리가 좁아졌다. 휴식을 취하려고 한 건데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왼쪽에는 구주헌, 오른쪽에는 이작이 앉아 있었다.

    “날이 좋습니다.”

    이작이 문득 하늘을 보며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지원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확실히 푸르렀다.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니 좋은 날이었다. 여기에 와서 좋다는 감정을 느껴 본 것이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만 더 걷고 들어갈까요.”

    그 말에 지원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지금이라도 당장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한 시간만 더 걷자고? 무리였다.

    “이제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요……?”

    “왜죠?”

    “이작 씨도 바쁘실 테고…….”

    “오늘은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아…….”

    지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상황을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힘든데, 진짜 힘든데…. 속으로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건지 이작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힘드십니까?”

    “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그럼 두 시간만 더 걷죠.”

    두 시간? 지원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고민하게 되었다.

    “싫으신가요?”

    “그게 아니구요…. 저 체력 정말 좋아요. 정말, 운동을 굳이 안 해도 된다구요.”

    “하지만 매번 기절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그건 당신들의 체력이 너무 좋은 탓이 아니냐고, 지원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이작은 지원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게다가 구주헌 씨는 저와 달리 욕구를 풀지 않으셨으니 운동을 해서 해소를 하셔야 합니다.”

    “해소를……?”

    “교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구주헌 씨는 교주님 안에 싸지 못했습니다.”

    지원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정말 이 남자는 왜 이런 수치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게다가 구주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금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지원의 속이 무거운 것을 얹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러면…….”

    “그렇네요. 꼴리게 해 놓고 싸지는 못하게 한 교주님 때문입니다.”

    이작이 분명하게 말했다. 놀리는 게 분명한 말인 걸 알면서도 지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속에 얹힌 무거운 것은 책임감이 분명했다. 꼴리게 해 놓고 싸지는 못하게 했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다. 구주헌의 체력도 말이 안 될 정도로 좋을 게 분명했다. 그 욕구가 다 해소가 될 때까지 걷다간 지금도 후들거리는 다리가 무너지고 말 터였다.

    “넣는 것은 힘들 테니, 빨아 드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던 지원은 결국 구주헌을 향해 물었다.

    “구주헌 씨…. 빨아 드릴까요?”

    아래에 넣는 것은 안 됐다. 이미 어제에 이어서 오늘 아침에도 썼기 때문에 지원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지원의 말을 들은 구주헌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구주헌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나직하게 대답했다.

    “교주님이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구주헌의 부탁을 들은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주헌의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벅지 안쪽을 더듬어 잡고, 벌려서 그 공간 안에 들어갔다.

    사실 아까부터 구주헌의 가득 찬 욕망을 지원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구주헌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정장 바지의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커다랗게 발기한 짙은 갈색의 성기가 지원의 눈앞에 보였다. 구주헌은 나지막하게 감사를 전했다.

    “교주님의 입을 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밖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부끄러웠다. 그래서 지원은 대답 없이 그냥 기둥을 잡고 그 끝을 입으로 머금어 버렸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살덩이의 냄새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원은 생각했다. 두 시간을 더 걷는 것보다는, 몇 분 빨아 주는 게 체력 보존에 더 이득일 거라고. 추릅, 츕. 침에 젖어서 미끄러워진 성기가 지원의 입안을 바쁘게 오갔다. 지원은 매끈한 표면을 혀로 문지르고, 성기 밑의 고환을 매만지며 사정을 유도했다.

    “큿…….”

    구주헌이 입을 가리고 짧게 신음했다.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원은 이 기세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눈을 치켜뜨고 구주헌의 표정을 확인하며 열심히 기둥을 빨았다. 성기에 선 단단한 핏줄이 손에 느껴질 때쯤, 구주헌은 지원의 입안에 사정했다.

    “아으…….”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진한 맛이었다. 지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정액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구주헌은 약간 힘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

    “제 정액을 마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

    매번 감사하다고 할 필요는 없는데….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구주헌은 힘이 빠진 제 성기를 속옷 안에 집어넣고 바지를 추슬렀다.

    “교주님께 직접 행복을 받은 기분이 어떠십니까?”

    “무척…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나요.”

    지원이 소심하게 물었다. 아침부터 여러모로 지치는 하루였다. 그러나 이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이작 씨?”

    지원이 다시 이작을 불렀다. 이작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늘 그랬듯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러죠. 교주님의 좆 빠는 솜씨가 많이 느셔서 기쁩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지원은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손등으로 살짝 달아오른 뺨을 누르며 식혔다. 순수한 칭찬인지 놀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지원에게 남자 좆을 빠는 일 정도는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교주실로 돌아온 지원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뻗어서 잠에 빠져들었다. 중간에 이작이 깨워서 밥을 먹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졸면서 먹었다. 결국 대충 밥을 먹고 오후 시간마저 잠으로 쓰고 말았다. 평범한 교주의 일상이었다.

    * * *

    “교주님. 정산서입니다.”

    이른 아침. 지원은 멍한 얼굴로 정산서를 받았다. 처음이었다. 벌써 여기에 온 지 한 달이나 지난 걸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산서는 꽤 두툼한 양이었다.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정산서를 읽기 시작했다.

    수입 항목이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지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믿을 수 없는 숫자의 나열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작이 처음에 교주가 가져가는 수입의 단위를 넌지시 말한 적이 있었다. 예상 그 이상이었다. 확실히 반응이 있는 것인지, 백 단위의 숫자가 모여 천 단위의 숫자가 만들어졌다. 지원은 흥분했다. 마음이 들떴다. 처음 한 달이 이 정도면, 앞으로 더 빨리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지난 시간 동안 했던 고생이 전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저 행복했다. 이게 정말 행복인 것 같았다. 지원의 표정이 밝아지며 너무 좋아하자 이작이 경고했다.

    “이제 다음 장부터는 지출 부분입니다.”

    “그래요?”

    지원은 싱긋 웃었다. 수입이 천 단위인데, 여기서 얼마나 빠져나가려고? 그리하여 손이 가볍게 팔랑, 종이를 넘겼다. 숫자를 읽는 지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계약서부터 각오했지만 교주의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생각보다 더 상당했다. 몇 벌씩 있는지 모를 교주복도 한 벌에 백만 원을 넘긴 금액이었다. 지원은 황당했다. 내가 이걸 원해서 입은 것도 아닌데 여기서도 돈을 뜯어 간다고? 볼수록 가관이었다. 식비는 그렇다고 해도 교주실의 전기세, 수도세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

    지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안 좋아졌다. 지원은 서둘러 종이를 넘겼다. 얼른 넘겨서, 최종 정산액을 보고 싶었다. 펄럭, 펄럭. 빠른 손길이 멈췄다. 지원은 마지막의 숫자를 보고 경악했다.

    “최종 정산액… 0원?”

    “교주님의 수입은 전부 빚을 정산하는 데에 들어갔습니다.”

    “뭐라고요?”

    이작의 말에 지원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진정하자. 진정해야 했다. 그래, 여기에 온 것도 빚을 갚으려고 온 거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돈을 천 단위로 벌어도 억 단위의 빚 앞에서는 귀엽고 깜찍한 숫자에 불과했다. 이작이 설명을 해 주었다.

    “이번 달 순수익은 538만 5340원이시네요. 이만큼이 빚 변제에 사용되었습니다.”

    애매했다. 애매하고 또 애매한 숫자였다. 한 달에 500만 원이 넘는 수입은 많은 돈이었다. 확실히 사회 초년생인 지원이 벌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별별 일이 다 있었는데 그 짓들을 다 하고도 538만 5340원. 그마저도 전부 다 빚을 갚는 데에 쓰여 지원의 수중에 남는 돈은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이 지원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공대를 나온 지원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진행됐다.

    지원의 빚 총액은 14억 원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빌린 게 많아서 다 합치면 그 정도쯤 되었다. 이번 달에 500만 원을 갚았다고 가정하고 1년 동안 계속 이만큼 번다고 예상했을 때의 상환액이 6천만 원이었다. 6천만 원은 확실히 큰돈이었지만, 14억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그럼 약 24년 동안 일해야 했다. 24년 동안 이 교주 일을 해야, 빚을 모두 갚고 자유의 몸이 될 수가 있었다. 14억은 그런 돈이었다. 지원의 머리가 아찔해졌다. 속은 기분이었다. 아니, 속았다. 지원은 이작에게 속았다! 분명 그때는… 아니, 일 년에 억 단위의 돈을 벌어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에 말씀하신 거랑 숫자가 너무 다른데요!”

    “매출액을 다시 확인해 보세요.”

    지원은 재빠르게 매출액을 다시 확인했다. 매출액은 분명히 천 단위가 맞았다. 그러니까, 일 년에 억 단위를 버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지출이 없다면. 하지만 살아서 숨 쉬는 것에서도 전부 돈을 떼 가는데 어떻게 지출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게다가 인건비도 상당했다. 이작의 인건비, 잠시 다녀간 윤재민의 진료비와 출장비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김성희의 출장비도….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틀리진 않는데. 틀린 말은 아닌데…. 여기서까지 돈을 떼 간다고? 싶은 항목이 너무 많았다. 지원은 멍한 표정으로 정산서의 첫 장을 덮었다. 이작이 지원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습니다. 첫 달에만 지출되는 항목도 있으니까요.”

    “…….”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구주헌도 지원을 위로했다.

    “교주님이라면 분명히 앞으로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뭘 앞으로 더 잘해야 하는데요……?”

    지원의 물음에 구주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작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섹스죠.”

    “…….”

    “교주님.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교주님이 처음에 여기 오실 때만 해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젠 많은 일을 하실 줄 알게 되셨습니다. 펠라티오도 많이 느셨고 이제는 뒤만으로 가실 줄도 알게 되셔서 제가 얼마나 기쁜지…….”

    “그만, 그만요!”

    직접적으로 말로 들으니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지원은 화끈하게 열이 오른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해서 식혔다. 거기다가 구주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하고 있었다. 얼굴의 열이 통 식지가 않아서 지원은 이게 위로인지 아니면 수치를 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교주님은 정말 재능이 있으십니다.”

    “…….”

    “뒤만으로 가시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작은 굉장히 진지했다. 지원은 더 이상 이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대충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정산서를 손에 꼭 쥐었다.

    이대로 가만히 끌려 다니면 평생 여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원은 생각했다. 이작도 그러지 않았는가. 차기 교주를 구하든가 부모를 찾으라고. 그것도 아니면 김성희에게 베갯머리송사를 하라고. 그게 이작의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지원도 그 부분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지원은 좀 더 다른 생각을 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겠다고 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는 살아도 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원은 너무 막막했다. 빚을 만들어 놓고 도망쳐 버린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섣불리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선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아. 교주님.”

    “네?”

    “다음 주쯤에 제가 한 3일 정도 자리를 비울 겁니다.”

    “왜요?”

    “김성희 님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작은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분이 그렇게 안 보여도 비행기 공포증이 있으셔서요.”

    “아… 아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안심이 되셔서 같이 가시는 건가요?”

    “아뇨. 같이 죽을 놈 하나는 있어야겠다고 해서 같이 가는 겁니다.”

    지원은 입을 다물었다. 정말 김성희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구주헌 씨가 옆에 계실 테니 큰 걱정은 마시고요. 그때는 스케줄도 비워 놨으니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의 머릿속에 조금 불순한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순한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작이 없을 때 잠깐이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교주실 밖이 아니고, 교단 밖으로.

    “왜 그러십니까?”

    “아니, 이작 씨가 없으시면 심심할 것 같아서요.”

    “심심하시면 독서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독서요……?”

    지원은 지난번 김성희가 주고 간 <황홀한 섹스를 위한 101가지 체위. 제2부>를 떠올렸다. 그건 그다지 읽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안 심심할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이작이 가볍게 웃었다. 지원은 따라서 웃는 척을 했다. 사실은 울고 싶었다.

    * * *

    이른 새벽, 이작은 조용히 교주실에 방문했다. 세상모르고 자는 지원을 보며 상념에 잠겼지만 금방 끝났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여 여유가 별로 없었다.

    “교주님, 얌전히 계세요.”

    이작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로 그 목소리가 들린 건지 지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잠꼬대를 했다.

    “우으…. 김성희, 시러어…….”

    꿈속에서 김성희에게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작은 조용히 침실 문을 닫고 나왔다. 구주헌이 이른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교주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구주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2박 3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다. 이작은 그동안 별일이 없기를 빌며 교주실을 나왔다.

    달칵. 교주실 문이 닫히자마자 지원의 눈이 번뜩 떠졌다. 지원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24년을 썩을 수는 없었다. 김성희에게 하는 베갯머리송사가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거침이 없어졌다.

    오전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난 지원이 하품을 하며 침실 밖으로 나왔다. 새벽부터 나와서 대기 중인 구주헌이 보였다. 지원은 나른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주헌은 매번 지원을 볼 때마다 저렇게 인사했다. 처음에는 정말 불편했지만, 이제는 슬슬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삶은 닭가슴살 한 덩이와 계란 두 개, 우유 한 컵이었다. 보기만 해도 퍽퍽하고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웃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면서 소파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먹어야 뭐라도 할 테니까. 먹다 보니 우유 한 컵으로는 모자라 두 컵을 더 마셨다. 너무 목이 막혔다.

    “산책이나 하러 갈까요?”

    지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구주헌에게 트레이닝복을 준비하도록 했다. 지금 입고 있는 교주복은 너무 치렁치렁해서 100m도 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계획은 이러했다. 구주헌과 함께 산책을 한다고 밖에 나온 다음,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산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서 도망친다.

    지원은 산이 무서웠지만, 그래 봤자 산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무서워도 빚보다 더 무서울까 싶었다. 무작정 걷다 보면 인가가 나올 것이고, 거기에서 도움을 요청해 이 산만 벗어나면 기억을 잃은 척하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24년 동안 교주 일을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원은 힘들었고 지쳤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쩌면 부모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들도 빚을 지고 도망치지 않았는가. 아들인 지원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도망치다가 다시 잡힌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지원은 시도해 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작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최적의 기회였다. 이 기회는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 기회를 그냥 보내 버린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구주헌은 순순히 트레이닝복을 준비해 주었다. 친절히 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도와줬다. 둘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강요 아닌 강요로 산책을 하게 된 지가 꽤 되었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체력이 좀 붙는 기분이 들었다. 지원은 그 기분이 꽤 나쁘지 않았다.

    “날이 좋네요.”

    “그러게요.”

    하늘을 보며 감상하는 척도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걸었을까. 슬슬 신호가 왔다. 아까 마신 우유 세 잔의 효과였다. 게다가 이미 건물에서 꽤 떨어져서, 인적이 드문 산 어귀였다.

    “저, 구주헌 씨.”

    “말씀하세요.”

    “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예?”

    구주헌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지원은 난감하다는 듯이 눈썹을 늘어트리고 부탁했다.

    “저, 저기서 잠깐 싸고 오면 안 될까요?”

    “그게…….”

    “아까 우유 너무 마셨나 봐요. 쌀 것 같아서 그래요. 네?”

    지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산 중턱이었다. 구주헌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산은 위험하니까 제가 보이는 곳까지만 가셔야 합니다.”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지원은 정말로 조금 급하기도 했기에 산속으로 뛰어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구주헌은 무르다. 정말 무르다. 이작이라면 옆까지 따라와서 성기를 붙잡고 소변을 싸게 했을 것이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재빨리 안에 찬 것을 빼낸 후 옷을 추슬렀다. 지원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구주헌은 부끄러운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살그머니 산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구주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다 되셨습니까?”

    “아직요. 멈춰지지가 않네요.”

    지원은 태연히 거짓말을 하면서 더 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 뒤로 숨어서 뛰기 시작했다.

    “교주님?”

    구주헌의 목소리가 더 멀리서 들렸다. 지원은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는 도망치기에도 딱이었다.

    “교주님!!”

    구주헌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산을 울렸다. 지원의 몸이 흠칫, 흔들렸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됐다. 끝장이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원은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성난 구주헌을 보고 쫄까 봐였다. 그 모습이 무서워서 발을 멈추면 안 되니 지원은 앞만 보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밝은 하늘이 나무로 빼곡하게 가려져 사위가 어두워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휘청거렸다. 지원은 번듯한 나무에 살짝 기대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하아…….”

    다행히 산을 바로 올라가지 않고 산 어귀를 따라 뛴 탓인지 길이 엇갈린 것 같았다. 구주헌은 따라오지 않았다. 일단 구주헌을 떼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뿌듯한 일이었다. 지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리에 힘이 들어갈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이제 더 평지로 내려가서 민가를 찾자. 도로만이라도 찾아도 좋다. 사람이 지나가면 도움을 요청하자. 지원은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도로는 쉽게 나왔다. 지원은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었다. 터벅터벅. 슬슬 힘들어서 쉬고 싶었지만 여기서 쉰다면 언제 사람을 만날지 모르니까 열심히 걸었다.

    산, 산, 산. 대한민국 국토의 70%가 산이라더니 정말이었다. 도로는 존재했지만 차는 지나다니지 않았다. 이런 으슥한 곳까지는 잘 다니지 않는 게 분명했다. 지원은 울컥했다. 어떡하지. 이대로 길을 잃어버린다면? 영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아냐,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불안한 생각이 자꾸 튀어 올라왔다. 지원은 그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며 걸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자동차 소음이 들렸다. 지원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트럭이 오고 있었다. 지원은 차도로 뛰어들었다.

    끼익-!!

    지원의 앞에 파란 트럭이 멈춰 섰다. 운전사가 얼굴을 내밀고 소리 질렀다.

    “미친 새끼 아냐!! 안 비켜?!”

    하지만 지원은 비킬 수 없었다.

    “도,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운전사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지원을 미친놈 보듯 봤다. 차를 후진시켜 옆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게 보였다. 지원은 운전석으로 달려들어 애원했다.

    “저, 태워 주세요! 경찰서까지, 데려다주세요!”

    “안 떨어져? 확 밀어 버린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여기가 어딘지, 제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혼신을 다한 연기였다. 지원은 자신이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뭐?”

    지원의 말에 의아함을 느낀 운전사의 목소리가 좀 누그러들었다.

    “제발, 조금만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 경찰서로 데려다주세요.”

    “이거 참…….”

    운전사는 난감하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러고는 살짝 눈짓을 했다. 철컥, 조수석의 문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지원은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탔다.

    “경찰서까지는 못 가고… 이 앞에 사람 사는 데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태워다 줄 테니 알아서 가.”

    “감사합니다. 연락처라도 알려 주시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됐어. 정말 딱 거기까지만이야.”

    운전사는 딱 선을 그었다. 아무래도 일이 복잡하게 되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지원은 속으로 웃었다. 아무래도 신이 정말로 있다면 그건 지원의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트럭은 10분 정도를 달렸다. 운전사의 말대로 사람 사는 곳이 나타났다. 듬성듬성이지만 집이 있고, 논과 밭이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 동네였다. 지원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평범함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제 내려.”

    운전사는 냉정하게 지원을 내리게 했다. 지원은 차에서 내려 시골 동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흙과 바람의 냄새. 사람이 사는 냄새…. 낯설고 익숙한 풍경을 보며 걸어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지원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동네 역시 외딴곳에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외곽의 집 너머서 산줄기만 보였다. 다른 동네들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원은 사람이 좀 더 많은 곳까지는 더 가야 한다는 추측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우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섰다.

    “저, 뭐 좀 물을게요.”

    “…….”

    원래 이런 소규모 동네는 외지인이 자주 찾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경계할 수 있다. 지원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

    “제가 기억을 잃어서요…….”

    남자는 말없이 지원을 수상하단 눈빛으로 바라봤다. 수상하다. 수상할 것이다.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어봐야만 했다.

    “저기요……?”

    그러나 남자는 지원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이 너무 단호해 보여서 다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지원을 못 본 체를 하며 자리를 피했다.

    혹시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나? 생김새가 수상한가? 스스로를 점검했다. 사실 생긴 것보다는 하는 행동이 수상했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지원은 다시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이 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두 지원이 온 것을 알고 도망이라도 친 것처럼. 그리고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금 불안해졌다.

    “어떡하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까? 하지만 이미 지쳤다. 아침에 먹은 음식들은 이미 소화가 된 지 오래였다. 목도 말랐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이 절망에 빠져 있자 저 멀리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어딘가 화가 나 있어 보였다.

    “어?”

    왜 화가 난 걸까?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낫, 호미, 누군가는 노끈. 지원은 겁이 났다. 도망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포에 눌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잡아라!”

    흰머리가 성성한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의 걸걸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람들이 지원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팔과 다리가 붙잡히고, 몸에 노끈이 칭칭 감겼다.

    “공용 창고에 넣어.”

    “저, 저기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입에 뭔가 약 같은 것이 넣어지고, 곧바로 청테이프가 붙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원은 그 상태로 사람들에게 이끌려 커다란 창고에 던져졌다. 창고는 말 그대로 창고였다. 낡은 농기구들과 바스러질 것 같은 포대가 몇 개 보이는. 그나마 포대들 위에 던져 줘서 몸이 바닥을 구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지원을 묶은 노끈이 튼튼한지 검사한 후, 사람들이 창고를 우르르 빠져나갔다. 혼자 남자 서러움이 몰려왔다.

    ‘서러워…….’

    그렇게까지 수상했나? 그래도 혼자서 다 부수고 다닌 것도 아닌데. 그냥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여전히 판단이 안 섰다.

    ‘왜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건데.’

    묶어서 가둘 필요까지 있었을까? 이대로 죽는 걸까? 머릿속에 온갖 불안한 생각이 다 떠돌아다녔다. 테이프로 입이 붙여져서 코로만 숨쉬기가 벅찼다. 창고 안의 공기는 습했고 그게 지원을 더 서럽게 만들었다.

    배고프다. 목도 말랐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도 지쳤다.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입에 넣어진 정체불명의 약 때문인지 머리가 아팠다.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지원은 성냥팔이 소녀가 되는 꿈을 꿨다. 맛있는 고기를 물어뜯는 꿈. 매콤한 막국수에 고소한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 꿈…. 행복의 냄새가 났다.

    지원의 눈이 번뜩 떠졌다.

    꿈이 아니다. 진짜로 냄새가 났다. 치이익 하는 기름 튀기는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밖에서 나고 있었다. 창고 안은 어두웠지만 시간이 밤이 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밤이 되어서 먹고 놀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결속력이 좋은 것 같았다.

    ‘미치겠네…….’

    냄새가 나니까 더 괴로웠다. 지원은 몸을 꾸물거려 일으켰다. 그 바람에 포대가 밀려나 몸에 흙먼지가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꾸물거리며 창고 문 앞까지 기어갔다. 창고 문의 좁은 틈새로 보이는 밖은 상상한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창고 앞 공터에서 버너를 여러 대 갖다 놓고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눈물이 한 방울 주르륵 흘렀다. 왜 그랬을까. 교주실에 얌전히 있었다면 그래도 굶어 죽진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만, 후회가 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지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꾸물꾸물 돌아갔다. 어차피 지켜보고 있어 봤자 의미가 없다. 저들은 지원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와서 먹을 걸 주지도 않을 것이다.

    아까 먹여진 약이 아무래도 계속 신경 쓰였다. 몸이 평소와 다른 게 느껴졌다. 피곤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더 나른하고 몸이 무거웠다.

    지원이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안 사람들의 작은 축제는 끝이 났다.

    바깥에서 들리던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가 사라지고 축축하고 습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지원이 다시 눈을 뜬 건, 철컥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창고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철컥거리면서 창고 문이 열렸다. 지원은 무거운 눈을 치켜뜨고 문을 바라봤다.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창고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저벅저벅 걸어서 지원의 앞에 섰다. 지원의 고개가 천천히 위로 솟았다. 아까 지원을 묶으라고 명령하던 머리가 희끗한 남자였다. 그는 지원의 앞에 앉아서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 주었다. 찌익. 살에 붙은 접착제가 뜯어지면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지원은 비명을 지를 힘도 없었다.

    “미안하네.”

    남자는 지원에게 사과했다. 지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까 지원을 보고 소리치던 때와 달리 정중하고 신사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잠시 가둬 두었어. 그래. 기억을 잃었다지?”

    “…네.”

    “쯧쯧.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만.”

    남자는 지원을 동정했다. 남자가 손짓하자 다른 사람들이 지원의 앞에 일회용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가져다주었다. 아까 냄새만 맡았던 음식들이었다. 잘 익은 삼겹살 몇 조각과 흰 쌀밥, 김치였다.

    “먹고 싶지?”

    “네.”

    “하지만 그냥 줄 순 없지.”

    “…네?”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남자가 말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맞아, 맞아 하며 동의하기 시작했다. 지원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물수건으로 지원의 꼬질해진 얼굴을 닦아 냈다.

    “맞다니까?”

    얼굴을 닦아 주던 남자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지원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지원의 눈앞에 손전등의 인공적인 밝은 빛이 쏟아졌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누군가 지원의 턱을 붙잡고 돌려 가며 얼굴을 살폈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떠들었다. 지원의 귓가에 그 목소리가 쏙쏙 박혔다.

    “교주님이랑 똑같이 생겼어.”

    “진짜 교주님인가.”

    “쌍둥이는 아닐 테지.”

    킥킥. 누군가가 웃기 시작하자 웃음소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하하하. 하하하하. 여기서 웃고 있지 않은 것은 지원뿐이었다.

    “열심히 살았더니 복을 받는구만.”

    “그러니까. 이런 행복이 굴러들어 올 줄이야.”

    “좋은 일은 이어서 일어난다더니.”

    교주님. 그 단어 때문이었다. 지원은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묘한 위화감을 확신했다. 이 동네에는 여자가 없었다. 전부 남자뿐이었다. 처음 이 동네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원은 여자를 한 명도 못 봤다.

    선택지가 없었다. 아까 잡은 기억을 잃은 설정을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입장을 밝혔다.

    “교주님…, 이라니.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목소리도 똑같아.”

    누군가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재생했다. 지원은 그 동영상에서 나는 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흑, 귀…, 여워해 주러…, 와 주…, 끅, 세…, 요.’

    파들파들 떨리는, 형편없는 목소리.

    ‘모, 몰라…. 부끄러워…. 이젠, 흑. 싫어…….’

    결국에 울어 버리고 끝나는 짧은 목소리지만 모를 수 없었다. 지원이 찍은 <행복의 나라> 홍보 영상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지원에게 외설적인 영상을 들이밀며 강요했다.

    “따라서 말해 봐.”

    “네?”

    “‘귀여워해 주러 와 주세요.’라고 해 보라고.”

    지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왠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시선을 내리깔자 다시 한번 창고 안에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이거는 안 해 봐도 뻔하지.”

    “귀여움이 그렇게 받고 싶으셨어?”

    “먼저 찾아올 만큼?”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무슨 소리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다고요.”

    지원은 울먹거렸다. 지금 이 상황이 지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눈치챈 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인 척해 봤자 이미 들킨 것 같았다. 이들은 지원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교주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는 것 같았다.

    “기억이 다시 돌아올 만큼 귀여워해 드릴게요.”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지원은 그제야 이 동네가 평범한 동네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이비 교단 근처에 있는 동네. 그 종교의 교인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끅.”

    지원의 숨이 턱 막히면서 머리가 텅 비었다.

    처음에 지원을 보고 가 버린 남자가 시발점이었다. 그는 지원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자마자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했다. <행복의 나라> 홍보 영상은 이미 닳도록 본 것이었으니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홍보 영상을 또 보고 확신했다. 이방인은 교주님이다.

    그래서 그는 이장에게 달려가 사실을 말했다. 지금 <행복의 나라> 교주님이 동네로 왔다고. 그런데 기억을 잃었다며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봤다고.

    이장은 조금 당황했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만약 정말 교주님이 맞다면 극진하게 모셔야 할 터다. 하지만 기억을 잃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일단 이장은 지원을 묶어서 창고에 넣어 두었다. 하루 일정이 끝난 후 다시 가 볼 거라고 교인들에게 미리 이야기도 해 두었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에 모두 모여 창고로 향한 것이다.

    “밥은 끝나면 드릴게.”

    남자들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치웠다. 지원의 안타까운 시선이 접시를 따라갔다. 먹고 싶은데, 먹고 싶은데. 하지만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뭐, 뭐가 끝나면 주신다는 건데요?”

    “당연히 행복 나누기지.”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한번 모르는 척을 하기 시작한 이상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 이제 와서 아는 척을 해 봤자 죽도 밥도 안 됐다. 하지만 기억이 온전하건 아니건 이들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응, 몰라도 돼. 시작하자.”

    머리가 희끗한 이장이 그렇게 말하자 남자들이 주섬주섬, 입고 있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열 명 정도의 남자들이 동시에 움직이자 창고 안이 꽉 찼다. 그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속옷마저 다 벗어서 축 늘어진 성기들이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지원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 상황이 뭔지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기억이 난다고 해? 기억이 다 나서, 손이라도 댄다면 모두 저주해 버리겠다고 할까? 그렇게 말을 하면 믿을까? <행복의 나라> 교리에 교주에게 함부로 대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얘기가 있었나?

    지원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러자 신발만 신은 남자들이 저벅저벅 걸어와 지원의 얼굴 앞에 성기들을 들이밀었다. 땀 냄새와 체취가 뒤섞여 기분이 나쁜 냄새가 났다.

    이장은 지원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가 만족할 때까지 상대해 주면 밥 줄 테니까 열심히 하자.”

    “…안 먹으면, 끅. 안 돼요? 그냥 굶을게요. 저 이런 거 할 줄 몰라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흡.”

    “머리는 몰라도 몸은 기억할걸?”

    가위를 든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지원의 몸을 묶은 노끈을 잘라 냈다. 어차피 그들도 다 아는 것이다. 노끈 따위로 몸을 묶지 않아도 지원은 여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툭, 툭. 질긴 끈이 잘려 나가자 지원의 몸은 자유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는 잠깐이었다. 남자들이 지원에게 달려들어 입고 있는 얇은 트레이닝복을 벗겨 낸 것이다. 신발과 양말마저 순식간에 벗겨 내서 지원은 알몸이 되어 버렸다.

    “흑, 끅.”

    눈물이 펑펑 났다. 서럽고 서러워서 멈춰지지가 않았다. 지원이 부끄러워서 몸을 웅크리려고 하자 남자들이 팔다리를 붙잡고 몸을 펴게 했다. 그러자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아침마다 구주헌과 이작이 빨아 주고 만져 줘서 통통하게 부어 있는 가슴팍과 젖꼭지를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다.

    “젖꼭지 봐.”

    “그새 더 커지셨네요.”

    하하하. 다시 웃음소리가 났다. 지원은 절망했다.

    지원에 입에 이장의 성기가 쑤셔 넣어졌다.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 입가에 까슬한 음모가 마구 비벼지고, 성기가 혓바닥 위에 문질러졌다.

    손이 빠른 남자들이 지원의 양손에 제 성기를 쥐게 했다. 단단하게 흥분된 살덩이가 손에 쥐어지자 미끌한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손을 떼려고 했으나 그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부탁을 했다.

    “문질러 주세요, 교주님. 배고프시잖아요?”

    “아니면 좆물로 배 채우고 싶으세요?”

    존댓말을 쓰며 교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지원을 깔보고 있었다. 지원은 훌쩍거리면서 착실하게 성기를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꿈틀거리는 감각은 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불쾌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건 사실이었다.

    선액으로 질척해진 성기들이 문질러지면서 창고 안에 가쁜 숨소리와 기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장은 지원의 입안에 사정했다. 지원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정액을 입에 머금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정하는 그를 보자 다른 남자들도 사정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지원의 얼굴 가까이에 성기를 들이밀고 제 고환을 주물렀다. 핏. 성기 끝에서 분출된 정액이 지원의 얼굴에 후드득, 떨어졌다. 다른 남자들도 흥분한 성기에서 쏟아진 정액을 지원의 얼굴에 떨어트렸다.

    “아, 아으…….”

    놀라서 입안에 고인 정액을 꿀꺽, 삼켜 버렸다. 눈물과 정액으로 더러워진 얼굴이 가학심을 자극했다. 남자들은 지원의 몸을 아무렇게나 쥐고 성기를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겨드랑이와 귓바퀴, 무릎 뒤. 조금이라도 파인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통통한 젖꼭지도 성기로 계속 문질러졌다.

    그들에게 지원은 이래도 되는 분이었다. 아니, 이 행위가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래야만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운명을 타고난 교주님이시니까.

    꽉 붙잡힌 탓에 꼼짝도 할 수가 없어서 지원은 그대로 성기들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평범한 부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식해 본 적도 없었는데. 온몸에 성기가 문질러지니 그 부위들이 저마다 성감대가 되었다. 데인 것처럼 간지럽고 화끈거렸다. 그러나 서러움과 흥분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끅, 흐윽.”

    “헉, 교주님, 허억.”

    “귀여우셔라.”

    온몸에 듬뿍 받은 정액이 밑으로 흘렀다. 남자들은 지원의 다리를 붙잡고 양옆으로 벌렸다. 통통하고 붉은 입구가 정액으로 촉촉이 적셔진 모습이 보였다. 이장이 흥분한 남자들을 진정시켰다.

    “차례대로. 응? 차례대로 쓰자고. 약속했지. 기다리면 다 쓸 수 있어.”

    “빨리요.”

    “급합니다.”

    이장은 거친 손등으로 지원의 구멍을 적신 정액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그곳에 얼굴을 파묻고 혀를 넓게 펴서 회음부를 핥아 올렸다. 지원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대로 더 위로 올라가 지원의 고환을 앙 물어 혀로 톡톡 쳐 댔다.

    “읏!!!”

    “츕, 츄릅, 하아…….”

    그렇게 고환과 회음부를 핥아 대던 혀가 밑으로 내려와 구멍을 핥고 끝이 뾰족해지며 주름을 쑤시기 시작했다. 지원의 몸이 불쾌감으로 비틀렸지만, 팔다리가 붙잡힌 채라 움찔거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맛있습니다. 정말 행복해요.”

    이장은 황홀한 얼굴로 지원의 구멍을 맛봤다. 축축한 혀가 살을 문지르고 빠는 난잡한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지원의 구멍이 움찔거리며 조금씩 벌름거렸다. 그 공간으로 이장의 혀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지원은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벌벌 떨었다.

    “읍, 끅.”

    지원은 벌을 받고 있었다. 얌전히 교주실에서 휴식이나 취하고 있을 것을 괜히 탈출하겠다고 일을 벌인 죄처럼 느껴졌다.

    “교주님의 구멍을 따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는 선물이었다. 이장은 예를 차려 인사를 한 후, 한 차례 사정을 마쳐 흐물거리는 성기를 쥐고 구멍 위를 문질렀다. 혀로 빨아 주어 힘이 풀린 구멍 사이로 성기가 밀려 들어왔다.

    “하아, 하아아…….”

    이장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지원의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창고의 낡은 문을 정중하게 노크하는 방문자가 도착했다. 이장은 지원의 안에 성기를 반쯤 넣은 채 방문자에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방문자는 자신의 신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중한 목소리의 위압감과 특유의 발음으로 모두가 누군지 알아챘다. 지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작이었다.

    “문 여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장은 지원에 안에 넣고 있던 성기를 쑥 빼냈다. 그리고 서둘러 사람들에게 눈짓을 했다.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바지를 대충 아무거나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시간을 기다리기 싫었는지 재촉이 들어왔다.

    “문 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지금 열어 드리겠습니다!”

    철컥철컥. 결국 반 정도는 바지를 입지 못한 채로 문이 열렸다. 서로의 옷이 섞여서 엉망진창이었다. 창고 문의 잠금이 풀리자 농촌과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작이 서 있었다. 이작은 창고 안을 대강 훑어보았다. 지원은 벌어진 팔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둥글게 모았다.

    “깜짝 선물은 행복하셨습니까?”

    문득 툭 던져진 말이 누구를 향한 건지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장은 안 맞는 바지를 입은 채로 이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교주님을 맛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맛있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장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가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지원은 얼이 나간 채로 이작을 바라봤다. 이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지원의 앞에 섰다.

    “교주님도 행복하셨습니까?”

    “아…….”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서 압력이 느껴졌다. 지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랬다. 행복했다. 그래야 했다. <행복의 나라>의 교주는 주인 모를 정액을 온몸에 받으면서 행복해야 하는 자였다.

    “그럼 이만 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던 이작은 바로 지원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 지원에게 제 정장 재킷을 걸쳐 주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작은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원과 함께 창고를 나왔다. 지원의 몸이 떨리면서 휘청거리자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달빛 아래를 걸으면서 지원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해외 출장을 갔다는 사람이 왜 이 동네에 있는 걸까? 어떻게 자신이 창고에 있다는 걸 안 걸까?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람은 누구인 걸까? 의문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어떤 것도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았으므로 대답 역시 없었다.

    이작은 지원을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당연히 <행복의 나라> 교주실로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동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한 교회였다. 그 옆에는 단층짜리 집이 한 채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이작은 지원을 데리고 작은 욕실로 갔다. 걸치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기고 몸에 말라붙은 정액을 닦아 냈다. 몸을 닦아 내는 그 손길이 너무 익숙하고 반가워서 지원은 다시 훌쩍대며 울었다.

    “끅, 끄흑.”

    “교주님은 이 동네에 행복을 나눠 주러 깜짝 방문을 하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작의 어조는 태연했지만 지원은 그가 화난 상태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 결국 물을 수밖에 없었다.

    “화, 나셨나요.”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으니 괜찮습니다.”

    “…….”

    하나도 안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구나. 얼마나 헛짓거리를 한 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해, 해외 출장 가신다고…….”

    “그건 이미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이쪽의 교인들 동네 순회였죠. 이 근처에는 교인들이 사는 동네밖에 없거든요.”

    “…….”

    “교주님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아직 근처에 있을 것 같아서 이장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는데 이쪽의 반응이 미심쩍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방문했죠.”

    “그랬군요…….”

    수많은 의문에 비해서 진실은 별것 없었다. 그러나 그 별것 아닌 진실이 지원을 창고에서 나오게 해 주었다.

    “교주님은 또다시 깜짝 선물이 되시는 겁니다.”

    “깜짝 선물요?”

    “네.”

    그의 말은 늘 의문투성이였다. 이작은 지원의 몸을 다 씻겨 준 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보송보송해진 몸을 데리고 집 안의 한 방문 앞에 섰다.

    “아직 김성희 님은 교주님이 사라졌던 걸 모릅니다. 여기까지는 일부러 오신 걸로 하죠.”

    “김성희 님?”

    “잊지 마세요. 베갯머리송사를 하실 때입니다.”

    이작이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는 것은 익숙한 인물이었다.

    “교주님?”

    김성희였다. 이 늦은 시간에도 흰색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피곤에 찌들어 있는 얼굴로 지원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지원을 보고 놀라 하며 성큼 다가왔다.

    “나 보러 왔어?”

    “…네.”

    눈치를 보던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희는 픽 웃고는 손을 뻗어 지원의 허리를 감쌌다.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대고 문질렀다.

    “씨발…. 존나 귀엽게 구네. 야, 너 빨리 나가.”

    “좋은 밤 되세요.”

    이작은 꾸벅 인사를 하고 금방 사라졌다. 탁. 방문이 닫히자마자 김성희가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콧날을 깨물고 입을 맞췄다. 김성희는 입고 있던 양복을 허겁지겁 벗으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피곤했거든. 하루 종일 비행기 타고, 차 타고. 토하는 줄 알았어, 씨발. 옆자리에는 이작 새끼가 앉아 있으니까 더 짜증 나고.”

    “…….”

    “그런데 네가 나 보러 왔다고 하니까 좋네.”

    선이 두껍고 골격이 장대한 김성희의 육체가 드러났다. 김성희는 지원을 이끌고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옆으로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그 뒤에 붙어서 누운 후, 지원의 다리를 벌리게 해서 회음부를 만지작거렸다.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미약한 냄새를 잡아냈다.

    “비누 냄새 난다.”

    교주실에서 늘 사용하던 제품이 아닌, 이 집의 욕실에 있는 비누로 온몸을 씻은 탓이었다. 김성희는 그 단순한 사실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 보송보송하고, 어린 느낌…. 반쯤 발기한 성기가 지원의 엉덩이 위쪽에 문질러졌다.

    “진짜 하고 싶은데… 오늘은 힘이 없어서 못 하겠다.”

    “…괜찮아요.”

    “썅…. 대신에 만지기만 할게.”

    김성희는 다른 한쪽 손을 위로 올려 지원의 가슴을 만졌다. 매일 마사지를 해 줘서 살이 오른 가슴은 이전과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가슴 커졌네.”

    “읏.”

    김성희는 한 손으로는 통통하게 부푼 젖꼭지를 손끝으로 짓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기를 사정없이 만져 댔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김성희의 손목이 눌러지자 그 부분이 찌릿찌릿했다. 아까 이장이 풀어 준 뒷구멍이 벌름거리는 기분이었다. 지원은 애타는 목소리로 불렀다.

    “김성희 님…….”

    “씨발. 그냥 넣고만 있을까? 그래도 되지.”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끄덕였다. 김성희는 꾸물거리면서 허리를 움직여 반쯤 발기한 성기를 지원의 뒤에 천천히 넣기 시작했다.

    김성희는 나른한 숨을 쉬면서 제 성기를 지원의 뒤에 완전히 넣어 두었다. 안이 벌어지면서 제 성기를 옴찔옴찔 조여 오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김성희는 지원을 더 세게 껴안았다. 결합이 더 깊어지면서 지원의 몸이 살짝 떨렸다.

    “이러고, 자자…….”

    김성희는 그 채로 이불을 덮었다. 바스락거리는 얇은 이불이 몸 위에 덮어지자 이상하게 잠이 왔다. 피곤한 하루였다. 지원은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주무실 건가요?”

    “하.”

    김성희는 혀를 찼다. 지원은 자신을 껴안은 김성희의 단단한 팔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베갯머리송사. 이작이 놓고 간 그 단어를 잊지 않았다. 지원은 천천히 내벽을 조이면서 허리를 살살 움직였다. 입에서 나오는 신음을 숨기지 않았다.

    “읏, 응…….”

    “교주님…. 하아.”

    김성희는 애타는 숨을 쉬더니 지원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참지 못하고 허리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넣고만 있으려고 했거든?”

    “아, 응, 좋아…….”

    “미치겠네…….”

    처음 자신을 보고 벌벌 떨던 교주님은 어디로 가고 음란한 교주님이 여기에 와 있는 건지. 김성희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웃었다. 야하게 변한 지원이 마음에 들었다. 지원의 안에서 부피를 더하는 제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가 넣기를 반복했다. 촉촉하게 젖은 내부에서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씨발, 나 복상사하면 다 교주님 때문이야.”

    김성희는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지금의 이 부귀영화를 되도록 오래 쥐고 싶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김성희는 죽을 것 같았다. 지원과 당장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껏 귀여워, 해 주세요.”

    지원은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김성희는 대답도 하지 않고 퍼억, 거세게 허리를 박았다. 지원의 몸이 벌벌 떨리면서 구멍 안쪽이 움츠러들었다. 그 감각이 너무 좋아서 김성희는 또 죽을 것 같았다.

    “하아, 훗, 교주님.”

    “응, 아아…….”

    “존나 귀엽게 구네, 진짜…….”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풀린 내부는 김성희의 성기를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때때로 불규칙하게 움찔거리며 조여 왔다. 마치 마사지를 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부드러운 마사지에 아침부터 여기저기 다니느라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녹는 기분이었다.

    “교주님, 후. 나 좋아?”

    “응, 좋아요. 좋아해요…….”

    “왜? 잘생겨서?”

    “잘생기고…. 자지도 커서 좋아요, 읏.”

    지원은 김성희의 비위를 맞춰 주며 적당히 말을 내뱉었다. 그럴수록 김성희가 허리가 잘게 움직이며 지원의 내부에 더 파고들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들어왔다. 지원은 그게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힘을 풀며 김성희의 것을 더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교주님이 내 매력을 이제 알았나 보네?”

    김성희는 저도 모르게 히죽거리며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바쁜 하루고 여러모로 좆같은 일도 많았지만 그 끝에 이런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걸 알았다면 덜 좆같았을 것 같았다. 옷을 벗고 제 방에 찾아온 교주님이 자신을 귀여워해 달라고 말했다. 귀여워해 줄 수밖에 없다.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응, 처음, 읏, 부터?”

    지원의 마른 배에 제 성기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는 게 좋았다. 김성희는 지원의 배를 쓰다듬다가 꾸욱 눌렀다. 지원의 고개가 푹 숙여지면서 몸이 발발 떨렸다.

    “건방지게 반말이네.”

    “죄송, 아, 흑, 해요…….”

    “귀여우니까 봐드릴까.”

    응? 김성희는 일부러 트집을 잡으며 지원을 괴롭혔다. 가슴을 잡아당기고, 뽀송한 비누 향이 나는 목덜미를 마구 물어뜯었다. 허리를 잘게 떨면서 전립선을 계속 문질렀다. 그러면서 지원이 사정하지 못하도록 성기를 꼭 쥐고 있었다.

    “싸, 싸고 싶어요. 흑, 갈래. 싸고 싶어어.”

    “섹스 안 한다고 했잖아.”

    “지금도, 흡. 하고 있잖아요……”

    “안 쌌으니까 아니야.”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지원은 불안해졌다. 좀 더 확실하게 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꾸물거리며 결합이 된 채로 김성희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수염이 북실북실한 거대한 남자를 제 밑에 깔았다는 데에서 쾌감이 왔다.

    “확실히 볼륨이 생겼네.”

    김성희는 살짝 둥그렇게 그림자가 진 지원의 가슴을 손끝으로 콕 찔렀다. 그러다가 탱탱하게 살이 오른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마구 튕기며 장난쳤다.

    지원은 눈물이 찔끔 나는 걸 참고 김성희의 몸 위로 제 몸을 천천히 겹쳤다. 더 깊숙이 들어오는 성기의 감각이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황홀한 섹스를 위한 101가지 체위>에서 본 자세였다. 체중과 중력, 자세 때문에 성기가 더 깊이 들어올수록 만족감이 마구 치솟았다.

    “흣, 아! 으응, 끅, 히익!”

    지원은 엉덩이를 퉁기며 스스로 김성희의 성기가 제 안을 사정없이 때리도록 했다. 너무 느껴서 눈물이 또 나오고, 아침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힘도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간절했다. 어떻게든 김성희를 만족시켜야 했다.

    다행히 그 수작이 통한 건지, 김성희는 지원의 등에 팔을 둘러 껴안은 후 골반을 쳐 올렸다. 지원은 김성희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꾸물꾸물 위로 올라가 스스로 입을 맞췄다. 땀과 눈물에 젖은 입술에서는 짠맛이 났다.

    김성희는 지원의 입술을 이로 물어뜯었다. 피가 안에서 뭉칠 정도로 탱탱하게 부어올랐다. 지원은 통통해진 입술로 김성희의 뺨에 뽀뽀를 퍼부었다.

    “성희 님, 아, 응, 좋아해요. 좋아요…. 귀여워, 끅, 해 주세요. 네?”

    “귀엽지. 씨발, 교주님, 하아, 존나 귀여워.”

    “읏, 응! 더! 아!! 아아!!!”

    지원은 자꾸 튕겨지는 허리에 힘을 주고 김성희의 몸에 제 몸을 밀착하려고 노력했다. 단단하고 거대한 몸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김성희 역시 제 위에 달라붙어 끙끙거리는 지원이 귀엽게 느껴졌다.

    김성희가 결국 지원의 내부에 사정하자, 지원은 온몸을 파들파들 떨면서 눈물을 쏟았다. 앞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으니, 뒤만으로 느낀 것이었다. 김성희는 이제 뒤만으로 갈 줄 알게 된 지원이 기특하고 좋았다.

    “아, 아으, 아…….”

    지원의 힘이 풀려 초점이 나간 눈이 허공을 바라봤다. 벌어진 입에서 흐르는 침마저 색기가 돌았다. 김성희는 지원의 마른 등을 쓰다듬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김성희가 완전히 기절한 후 뒤로 느끼느라 잠시 넋이 나간 지원의 정신이 돌아왔다. 지원은 제가 저질러 버린 일이 창피했다.

    베갯머리송사를 하겠다고 다짐해 놓고 빚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관계에 몰입했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직도 뒤에 김성희의 것이 넣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빼려고 했으나.

    “읏.”

    김성희가 지원을 워낙에 세게 껴안고 있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지원 역시 피곤하고 졸린지라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짹짹.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김성희가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제 품 안에 안겨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지원이었다. 정말 죽은가 싶어서 코 밑에 손을 대 볼 정도로 얌전했다. 그러나 아직도 지원에 안에 성기를 넣어 두고 있어서, 아침을 맞아 피가 쏠린 성기가 빳빳하게 발기했다.

    “으응…….”

    내부가 꾹 눌리는 이물감을 느낀 지원의 눈이 조금씩 떠졌다. 김성희는 그게 왠지 아쉽다고 느꼈다. 눈을 반쯤 뜬 지원은 멍하니 김성희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교주님?”

    “…….”

    지원은 몸을 잘게 떨었다. 제가 어젯밤에 한 일이 떠올라서였다. 정말 별짓을 다 했다. 이작의 말대로 김성희를 한번 꼬셔 보겠다고 별소리도 다 했다. 피곤에 찌들어서 내뱉었던 소리들이 그대로 다 기억이 나니까 돌 지경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지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아직도 제 안에 들어와 있는 김성희의 것을 빼내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지원이 일어나면서 쑤욱, 성기가 빠져나가자 김성희는 더 아쉬워졌다.

    “잘… 주무셨어요?”

    지원은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김성희와 여러 번 섹스를 했지만, 같이 잠을 잔 것은 처음이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김성희 역시 그런 지원의 반응이 낯선지 잠시 말이 없었다.

    “교주님은?”

    “저는… 잘 잤어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낯부끄럽고 창피했다. 이런데도 어떻게 어젯밤에는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지. 진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지잉. 김성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성희는 바닥에 널브러진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받았다. 이작이었다.

    “뭐야.”

    -교주님하고 같이 계십니까?

    “…어.”

    -저는 일정이 있어 이미 출발했습니다. 교주님 좀 데려다주세요.

    “이 새끼가 은근슬쩍 나한테 일을 시키네?”

    -대놓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끊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김성희는 황당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이 없는 날이었다. 어제 무리한 일정이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오늘 하루 편히 쉬기 위해서. 아무리 에너지가 넘쳐 나는 김성희에게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했다.

    “이작 씨인가요?”

    “나보고 교주님 모셔다드리라네.”

    “아…….”

    지원은 머쓱했다. 어젯밤에 그 난리를 쳐 놓고 김성희의 얼굴을 보기가 영 민망했다. 하지만 이작이 깔아 주고 간 판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김성희는 벌떡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정장을 주워 입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지원에게는 중요한 게 없었다.

    “저… 옷 없을까요?”

    옷이 없었다. 김성희는 어제 지원이 맨몸으로 방에 들어왔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제 여행 가방을 뒤져 잠옷으로 입으려고 가져왔던, 김성희가 입기에도 커다란 티셔츠를 하나 꺼내 주었다. 반바지도 꺼내 주었지만 너무 커서 차라리 안 입는 게 나을 정도였다.

    지원은 우선 티셔츠를 입었다. 속옷이 없어서 아래가 휑하니 부끄러웠다. 그래도 엉덩이가 가려져서 어떻게든 조심하면 교주실로 돌아갈 수 있을 듯했다.

    “<어머니의 나라> 교단이 이 근처니까 거기서 속옷 입고 가지 그래.”

    “아…….”

    김성희가 제안을 했다. 바로 <행복의 나라>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다. 솔직히, 김성희는 지원과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지원은 그렇게 말하고 김성희의 옆에 섰다. 같이 가자는 뜻이었다. 김성희는 픽 웃고는 하룻밤 신세 진 집을 나왔다.

    김성희가 차를 주차해 둔 동네 입구로 가는 동안 지원은 의아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게 동네가 너무 조용했다.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농촌의 아침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는 꼴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농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차를 찾은 김성희가 운전석에 타자 지원은 조수석에 앉았다. 몸을 움직이느라 올라간 티셔츠 밑단을 잡아 무릎까지 잡아당겼다. 김성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운전을 시작했다.

    김성희의 운전 실력은 훌륭했다. 도로에 차도 별로 없었지만, 안전 속도를 지키면서 조용히 운행했다. 지원은 괜히 창밖을 봤다. 산길을 굽이굽이 한참을 들어가자 <어머니의 나라> 교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성희는 자신의 교주실이 있는 본관까지 간 후에 차를 멈췄다. 자신이 먼저 내리고 보조석 문을 직접 열어 주기까지 했다. 지원은 민망해하며 차에서 내렸다.

    <어머니의 나라> 교단의 본관은 김성희의 이미지 그대로 화려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뾰족한 첨탑들이 가장 먼저 보였고, 김성희의 얼굴이 조각된 벽도 보였다. 정말 대단한 자기애였다. 지원이 화려한 건물을 보며 감탄하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번 구경할래?”

    “…옷 먼저 입고 나서요.”

    지원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끄러웠다. 김성희는 자신의 교주실로 가는 동안 보좌해 주는 교인에게 연락을 해서 지원의 사이즈에 맞는 속옷과 바지를 준비하게 했다. 티셔츠는 계속 입고 있게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교주실에 도착하자 이미 속옷과 바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지원은 서둘러 속옷부터 입었다. 몸이 숙여지면서 동그란 엉덩이가 보였다. 김성희는 그 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엉덩이가 속옷 안으로 들어가서 사라지자 아쉽다는 생각까지 했다.

    몸에 맞는 옷을 갖춰 입자 지원은 조금 안심했다. 아까까지는 불완전한 인간 같아서 부끄러웠다.

    김성희는 지원을 이끌고 교주실 밖으로 나왔다. 우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젯밤에 보니 엉덩이만 제법 토실하지 온몸에 살이 별로 없었다.

    김성희가 지원을 데리고 식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식사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조리 중인 음식 냄새를 맡으니 식욕이 돌았다. 지원은 너무 배가 고파서 배가 고프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눈앞에 음식이 나오자 눈이 돌아갔다. 메뉴는 평범한 한식이었다. 부추가 들어간 재첩국과 떡갈비를 메인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반찬들이 나왔다. 지원은 힘이 없어서 잘게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원은 어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굶은 지원에게 밥을 미끼로 겁탈까지 했다. 온몸이 성기로 문질러지는 느낌은 아직까지 끔찍했다.

    그러니까 지원이 어제 먹은 것은 아침에 먹은 계란과 닭가슴살, 우유 세 컵. 그리고 이장의 정액이 전부였다.

    텅 빈 배에 음식물이 들어가자 몸에 조금씩 활기가 돌았다. 미세하게 떨리던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김성희는 그 모습을 보며 어제 자신이 그렇게 무리를 시켰던가, 하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어느새 지원의 앞에 놓였던 밥 한 그릇이 다 비워졌다. 김성희도 밥을 먹기는 했지만 아직 3분의 1가량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더 먹을 거야?”

    “배불러요. 감사합니다.”

    입가심으로 물을 마신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만 24시간을 굶었더니 위가 줄어든 모양이었다. 충분히 배가 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성희가 넌지시 제안을 했다.

    “좀 있다가 가지 그래.”

    “네?”

    “바로 데려다줘?”

    갑작스러운 제안에 지원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지원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김성희가 다그쳤다.

    “빨리 말해. 있다가 갈 거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리자 지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김성희가 씩 웃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원의 팔을 잡고 따라서 일으켜 세웠다. 거의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하며 어디론가 향했다.

    팔, 아프다.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걸었지만 흥분한 김성희의 발걸음이 지나치게 빨라서 힘들었다. 김성희가 향한 곳은 엘리베이터였다. 안에 들어가서 최상층, 7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위로 향했다. 7층에 멈춰 서자 김성희가 다시 지원을 질질 끌고 내렸다. 7층에는 긴 복도와 문 하나만 덜렁 있었다. 김성희는 지문 인식을 해서 문을 열었다.

    “내 교주실이야.”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마치 유럽의 궁전 같은 화려한 인테리어의 집이었다. 금색을 베이스로 청록색, 빨간색을 포인트로 사용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고 곳곳에 신전에서나 있을 법한 화려한 기둥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는 김성희를 본뜬 조각상까지 있었다.

    “…….”

    지원은 말을 잃고 내부를 저도 모르게 훑어보며 감탄했다. 정말 엄청난 자기애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특히 저 조각상이…. 지원이 멍하니 조각상을 보자 옆에서 김성희가 속삭였다.

    “지금은 몸이 더 좋아져서 실물이 더 나아. 알지?”

    그 말이 내포한 뜻을 눈치챈 지원의 고개가 느리게 끄덕였다. 하여간 김성희는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수많은 교인들을 착취해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성희는 지원을 끌고 커다란 TV 앞에 놓인 소파에 앉혔다. 소파 역시 금색이었다.

    김성희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조작하더니 영상을 하나 띄워 줬다. 지원은 더 말을 잃었다.

    “3편이 나왔거든. 봐라.”

    김성희의 다큐멘터리 3편이었다. 도대체 다큐멘터리가 3편까지 나올 만한 인생이란 무엇인지 지원은 잠시 고민이 들었다. 멍하니 화면을 보자 만족한 김성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1편이 김성희의 생애, 2편이 김성희의 <어머니의 나라> 설립기였다면 3편은 그 후의 김성희의 삶을 다뤘다. 김성희는 교인들의 의견을 늘 귀 기울이며 그들에게 쾌락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만든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받았을까. 지원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돈을 많이 줘야 했겠지만, 왠지 교인들의 노동력을 그대로 가져다 썼을 것 같았다.

    김성희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교인들과 만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높은 제단에 올라가 있는 김성희가 손 키스를 날릴 때마다 교인들이 좋아서 쓰러졌다. 카메라는 김성희를 보고 혼절하려고 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집요하게 담았다.

    “…….”

    이걸 언제까지 봐야 하나…. 조금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화면은 교인들의 모습을 풀 숏으로 잡고 있었다. 김성희를 향해 환호하는 모습들이 쓱 훑어 지나갔다. 그때였다.

    “…어?”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지원은 멍하니 그 순간을 지나쳤다가 서둘러 리모컨을 찾아 화면을 일시 정지시키고 조금씩 뒤로 돌렸다.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손이 뻣뻣하게 굳었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그렇게 믿으며 아까 본 화면을 다시 보았다. 그러니 이젠 좀 더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김성희를 보며 환호하고 있는 교인들 가운데에 있는 중년 부부. 그 사람들을 지원은 모를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지원의 부모였다. 필리핀에서 실종된 지원의 부모가 김성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원은 좀 더 영상을 뒤로 돌려, 아까 무심코 지나쳤던 화면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스쳐 지나갔지만 현수막에는 날짜가 써져 있었다. 그 날짜가 중요했다.

    고작 2주 전의 현장이었다. 2주 전. 지원이 <행복의 나라> 교주가 되어서 말도 안 되는 교주 일을 하는 동안, 지원의 부모는 저곳에서 김성희를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지원의 부모는 <어머니의 나라>의 교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열렬한.

    지원은 우선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여기서 계속 멈춰 있다가 김성희에게 들키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은 김성희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계속 보내 주었지만 지원에게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지원의 부모는 부부 간의 사이가 좋았지만 너무 좋았던 탓에 막상 유일한 아들인 지원을 조금 방치하면서 키웠다. 지원이 크면서 대학에 가고, 혼자서 낑낑거리며 사는 동안 그들은 <어머니의 나라>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주말마다 데이트를 한다며 사라지던 모습과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필리핀에 간다고 했던 것. 빚을 수금하러 온 사람들도 말했다. 진짜로 필리핀에 갔을 거 같냐고. 그렇게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 외국으로 튀려고 하는 걸 빚쟁이들이 가만뒀을 것 같냐고.

    모든 의문들이 하나의 가설로 해결이 됐다. 지원의 부모는 필리핀에서 실종된 게 아니고 한국에 있었다. 이 산골의 교단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빚은 전부 다 김성희에게 갖다 바쳤겠지. 김성희의 화려한 교주실을 꾸미는 데에 일조했을 것이다.

    지원은 자신의 부모가 일개 평범한 신자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행복의 나라>의 초대 교주라고 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촌과 지원의 부모는 모두 <어머니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하위 교단의 교주를 지인으로 둔 사람이 일개 신자일 리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터질 것 같았다. 지원의 머리통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온갖 생각을 하는 동안 김성희가 돌아왔다. 그는 양손에 와인 두 병과 안주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있었다. 지원은 다시 TV를 보았다. 영상은 끝이 나 있었다. 김성희는 소파 앞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지원을 보며 물었다.

    “어때?”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현실이 와닿지가 않았다.

    김성희는 다 알고 있겠지. 자신이 교주 후보로 선발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거다. 다 알고 뽑았겠지. 교주 일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 알고…….

    “교주님.”

    지원이 대답이 없자 김성희가 팔을 뻗어 지원의 뺨을 가볍게 쥐었다. 두툼한 손가락이 뺨을 잡아당기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무 멋있어서 또 반했어?”

    지원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성희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뺨에서 손을 떼고 와인병을 들었다. 오프너를 손에 쥐고 코르크 마개를 땄다. 검붉은 와인이 잔 두 개에 따라졌다. 김성희는 잔 하나를 들어 지원의 손에 쥐여 주었다. 지원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 오전이었다. 술을 마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이작한테 물었는데 너 오늘 스케줄 없다며.”

    “…네.”

    그랬다. 이작이 출장을 간 동안 스케줄이 없다고 했으니 오늘도 휴일이었다. 김성희는 기껏 따른 와인을 한 모금에 다 마셔 버렸다. 텅 빈 잔을 내려놓고 안주로 가져온 치즈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이거 되게 비싼 와인이야.”

    “…….”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지원은 모든 게 다 짜증이 났다. 차라리 필리핀으로 가서 실종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성희가 와인의 가격을 들먹이는 게 무슨 뜻인지 대강 알았다. 지원은 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금 마셨다. 막입인 지원은 차이를 알지 못했다.

    “맛있네요.”

    하지만 억지로 맛있다고 했다. 지원의 머릿속은 여전히 빙글빙글 바쁘게 돌았다. 이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실권은 다 김성희가 쥐고 있으며 그를 꼬셔야만 교주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부모님이 김성희를 따르는 교인이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지만, 그 분노를 지금 표출해 봤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늘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게 김성희였다. 그러니 지원은 정말로 이번 기회를 잡아야 했다.

    지원은 입꼬리를 당겨 배시시 웃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원이 할 수 있는 일 역시 단 하나였다. 김성희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 그 대답에 김성희가 코웃음을 쳤다.

    “너 와인 맛 알아?”

    “몰라요. 그냥 김성희 님이 주신 거라서 맛있나 봐요.”

    그 대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김성희는 다시 씩 웃고는 아직 와인 맛이 맴도는 지원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지원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그 안으로 김성희의 두툼한 혀가 들어왔다.

    지원은 손을 뻗어 아직 와인이 남아 있는 잔을 테이블 위에 겨우 내려놓았다. 그게 신호였다. 김성희는 지원을 소파 위에 눕혀 버렸다. 입은 지 두 시간도 안 된 바지와 속옷을 단번에 벗겨 버리고 지원의 다리를 벌리게 했다.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성희의 것이 들어가 있었던 구멍이 보였다. 밤 동안 내내 성기를 물고 있었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꼭 다물려 있었다.

    어지간히 타고난 몸이었다. 김성희는 지원의 허벅지 안쪽을 혀로 쓸어내렸다. 지원의 몸이 가볍게 떨리면서 제 다리를 붙잡고 있는 김성희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김성희 님…….”

    지원은 이를 악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성희는 지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흣…….”

    김성희의 혀가 지원의 구멍 위를 가볍게 핥았다. 지원의 허리가 움츠러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지원의 머릿속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김성희는 모두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가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전부. 부모님이 갑자기 왕창 만들고 사라진 그 빚을 갚아 주겠다고 먼저 다가온 것은 교단이 아니던가. 그리고 김성희는 그 교단의 정점에 서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개새끼, 나쁜 새끼. 언제부터 나를 갖고 놀았어? 도대체 어디부터 짜 놓은 판인 거지? 지원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울고 싶었지만, 지금은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 소리를 내는 척했다.

    “으응…, 김성희 님. 빨리요…….”

    그러면서 재촉했다. 김성희는 서둘러 입고 있던 정장을 벗었다. 제 티셔츠 하나만 입고 다리를 벌린 채 애원하는 지원이 너무 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두툼하게 윤곽이 선 속옷마저 벗어 내자 성기가 퉁 하고 튀어 올랐다.

    “교주님은 지금부터 성자를 잉태할 거야. 안에 내 정액으로 가득 채워서… 임신할 때까지 박아 줄게.”

    이럴 때마저 교활하고 계획적인 김성희였다. 지원은 더 재촉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가득 채워서… 김성희 님의 성자…. 가지게 해 주세요.”

    “씨발.”

    김성희는 욕을 했다. 이를 꽉 깨물고 발기한 성기를 쥐고 지원의 구멍에 곧장 꽂아 넣었다. 푹, 소리와 함께 성기가 뒤로 파고들었다. 지원은 그제야 눈물을 터트릴 수 있었다.

    “흑, 끅…….”

    “그렇게 좋아?”

    넣자마자 우는 지원을 보고 김성희가 물었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꽉 채운 김성희의 성기가 좋았다. 남자의 성기로 느끼는 몸이 되어 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김성희는 지원에게 성자를 잉태시켜 주겠다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계속 지원의 안에 정액을 쏟아부었다. 성기를 빼내자 살짝 벌어진 구멍 사이로 빠져나오는 정액을 보며 혀를 찼다.

    “꽉 물어야지, 교주님. 이러면 임신 못 하잖아.”

    “죄송, 흣, 해요…….”

    어차피 남자의 몸이라 임신이 불가능한데도 지원은 반쯤 넋이 나가 사과를 했다. 그 반응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김성희는 씩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안목에 새삼 감탄했다. 하도 여러 번 절정을 맞아서 초점이 나간 눈과 멍한 얼굴, 축 늘어진 몸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원에게는 정말로 재능이 있었다. 아니, 재능 이상의 뭔가가 있는 듯했다. 김성희는 그게 뭔지 알고 싶어졌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지원 역시 김성희의 감정을 느꼈다. 이 남자가 점점 자신에게 진심이 되어 가고 있는 걸 그냥 놓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조금 더 깊게 만들기로 했다. 자신에게 완전히 빠져서 뭐든지 다 하려고 할 때가 곧 올 것 같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김성희는 지원을 행복의 나라 교단으로 데려다주었다. 기다리고 있던 이작이 지원을 맞아 주었다. 지원은 여전히 배 속에 김성희의 정액을 품고 있어 김성희가 돌아가자마자 욕실로 달려갔다. 욕조에 들어가서 샤워기를 틀고 정액을 긁어냈다.

    거친 소리를 내는 물줄기를 뚫고 지원을 부르는 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원은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일부러 한참 동안 몸을 씻고 나갔다. 이작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교주님.”

    부드러운 목소리가 지원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쌍꺼풀이 없는 뾰족한 눈매가 이작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작은 엄한 표정을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확인을 시도했다.

    “계속 김성희 님과 있으셨습니까?”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는 지원에게서는 교주실에 비치된 바디용품의 냄새가 났다. 지원이 그 채로 스쳐 지나가려고 하자 길쭉한 손이 올라와 팔을 탁 붙잡았다. 그 손이 몹시 차가워서 지원은 눈을 질끈 감고 힘겹게 말을 꺼냈다.

    “화내실 건가요?”

    “아뇨. 화 안 냅니다.”

    “그럼 왜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없는 기운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지원은 숨 쉴 기운도 없어 그저 이작을 바라보았다. 섬세하고 화려한 인상의 미남이었지만 그 얼굴 밑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지원이 먼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작 씨.”

    “네.”

    “제 부모님을 찾으셨나요?”

    그 질문에 이작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연하게 말했다.

    “네, 찾았습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조금 됐습니다. 언제 말씀드릴지 상황을 보고 있었습니다. 교주님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성희 방에서 다큐멘터리 3부를 봤어요. 거기에 찍혀 있더라고요. 두 분 다.”

    “…그랬군요.”

    풍성한 속눈썹 밑에 가려진 눈에 초점이 선명했다. 그러나 그 맹목적인 시선은 앞에 서 있는 지원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이작은 곡선이 아름다운 입매를 열었다.

    “…교주님의 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건강히 계십니다. 현재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계세요.”

    “…예?”

    “<행복의 나라> 교주님의 부모님이니 당연한 위치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계십니다.”

    “하…. 언제부터예요?”

    “예?”

    “이 모든 좆같은 일들이, 다 언제부터 일어난 거냐고요!”

    “…교주님의 부모님께서 <어머니의 나라>를 접하신 건 최소 10년 전부터입니다.”

    “10년요?”

    10년 전이라면 지원이 아직 고등학생일 때였다. 그가 여러모로 열심히 부딪치며 살아가는 동안, 지원의 부모는 사이비 종교에 발을 디뎠다. 머리 한구석이 아찔해졌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 후로 열정적인 종교 활동을 하셨습니다.”

    “…열정적으로 돈을 바쳤겠죠. 빚까지 내서 다 끌어다가 바치고…. 그렇게 바치고 바치고 또 바쳐서 바칠 게 없으니까. 그렇게까지 되니까.”

    “…….”

    “저까지…, 바친 건가요?”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볼품없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원하는 대답이 있었고 그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교주님을 새로운 교주 후보로 추천하셨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지원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믿기가 어려웠다. 부모니까. 부모가 그러면 안 되잖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지원과 부모의 유대 관계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그들은 늘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고, 지원은 방치되어 자랐다. 부모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기대를 한 것은 오히려 지원이었다. 지원의 부모는 최소한의 의무는 따랐지만 그 이상은 해 준 적이 없었다.

    도대체 그 어디에서 기대를 시작했던 건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제가 교주가 되면 부모님한테 뭐가 이득이라고…….”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죠.”

    “채무…….”

    다시 한번 머리가 크게 어지러웠다. 지원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최대한 정리하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없었다.

    “그럼…. 하. 부모님이 처음부터, 저한테 빚을 다… 떠맡길 작정이었다는 건, 아니겠죠?”

    “교주님.”

    “아니라고 해요. 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원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흐려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을 틈도 없이 이작이 지원을 부축해 주었다.

    “아, 아…….”

    답답하고 묵직한 것이 가슴을 치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지원은 마치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신음만 뱉어 냈다. 그러다가 별안간 이작의 정장을 마구 손으로 움켜쥐고 벌벌 떨었다. 누를수록 커지는 생각이 입 밖으로 뱉어졌다.

    “기, 김성희는. 그럼, 그 사람은.”

    “그분은 사업가입니다. 득과 실을 잘 구분할 줄 알고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아아…….”

    “교세의 확장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 하는 분이죠.”

    “끅, 끄윽…….”

    “김성희 님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를 수가 없습니다.”

    힘이 빠진 지원의 몸이 이작의 품속으로 쏟아졌다. 이작은 지원의 어깨를 붙잡고 가볍게 흔들어 자신을 보게 했다. 흐리멍덩한 눈빛이 느리게 초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정신을 차린 지원이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이작 씨도… 알고 있었겠네요.”

    “…그러니까 김성희 님을 이용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김성희를 어떻게 이용하라고 하는 건데요! 남의 인생을 갖고 노는 사람을! 제가 어떻게요!”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머릿속은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았다. 이작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교단의 그럴싸해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실 다 김성희 님의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들입니다. 교주님이 원하시는 원래의 인생. 그것도 사실은.”

    “…….”

    “다 김성희 님이 뺏은 거잖습니까.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작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원의 속내를 이해라도 하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이 원하신다면 조금 위험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김성희 님을 설득해서 <은총의 밤>을 열게 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은총의 밤>이 뭔데요?”

    몇 번 들은 적은 있었지만 아직 정확한 뜻을 모르는 단어였다. 지원의 말에 이작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난교 파티입니다.”

    “…뭐, 뭐라고요? 나, 난.”

    “난교 파티요.”

    경악의 연속이었다. 이 종교가 제정신이 아닌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난교 파티라니?

    “그런 걸, 해도 돼요?”

    “물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설마.”

    “김성희 님을 체포할 수가 있고, 최종적으로 교주님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낯선 단어였다. 지원의 눈이 이번에는 빠르게 깜빡였다.

    “그런데 저한테 왜 그런 걸 알려 주세요?”

    “…….”

    “그게…. 제가 김성희에게 복수해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는 게, 이작 씨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이작 씨는 뭘 위해서 김성희를 배신하려고 하는데요?”

    대답이 없었다. 초조해져서 다그치기 시작했다.

    “설마 이작 씨, 경찰이에요? 아니면 기자, 그런 거예요?”

    “경찰 아닙니다. 기자도 아니고요. 평범한 시민입니다.”

    “평범한 시민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라고 하는 건데요?”

    날카로운 눈이 이작을 쏘아봤다. 한번 말문이 터진 입은 쉽게 다물리지 않았다.

    “그쪽도 이상하다고요! 종교가 만들어질 때부터 일했다면서요? 그럼 왜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어요? 그딴 사이코 밑에서! 멀쩡한 사람이면 진즉에 때려치우고도 남았을 텐데?”

    “진정하세요.”

    “진정 못 해요! 여긴 진짜 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지원은 자신을 끌어안은 이작을 퍽 소리가 나게 밀쳐 냈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소름이 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채로 창가로 달려갔다. 이작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분노와 혼란으로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 본 이작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교주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난교 파티를 열라면서요!”

    “그건…. <은총의 밤>에서도 일반 교인들은 교주님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되도록 옆에서 보호해 드릴 겁니다.”

    “말도 안 돼요.”

    “저를 믿어 주실 수 없습니까?”

    “못 믿어요.”

    냉정하게 대꾸한 지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작은 뭔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지원은 그게 답답했다. 저 남자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보이는데 알 수가 없으니까 더 가슴이 무거웠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이작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질문을 하나 건넸다.

    “교주님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지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그딴 거 안 믿어요.”

    “저는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믿음으로 인해서 신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신은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건 믿음이죠.”

    사이비 종교의 고위 간부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틀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교주님을 믿는 신자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교주님은 이미 신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있으니까요. 저 역시 교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

    “교주님의 행복이 곧 저의 행복이니까요.”

    “제… 행복이 이작 씨의 행복이라고요? 왜요?”

    머리가 얼얼해질 정도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지원이 아파 오는 머리를 짚자 이작이 서둘러 말을 덧댔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주님의 옆에서 일하면서 점점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슨 확신이요?”

    “교주님은 신입니다.”

    미쳤다.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원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신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사람이에요. 보통 사람이라고요. 이작 씨랑 다를 바가 없어요. 그냥…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를 데리고 온 건 이작 씨잖아요! 아시잖아요!”

    “시작이 어쨌든, 지금 저에게는 행복을 주는 신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주님의 행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랍니다. 교주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맹목적인 시선은 오롯이 지원을 보고 있었다. 어딘가 조금씩 떨리고 있는 목소리가 진심같이 느껴졌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흥분 상태였다. 떨리기 시작한 것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몸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털썩.

    이작은 지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무릎으로 기듯이 걸어 지원의 앞에 바짝 다가왔다. 지원은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모양새가 맞지 않는 블록을 억지로 쌓아 둔 것처럼 아슬아슬하던 형태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천천히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던 말들. 가끔씩 느껴지던 위화감. 그 모든 것들.

    김성희는 지원에게 이작을 믿지 말라고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놈이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성희에게 이작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김성희는 알기 쉬웠다. 그는 돈과 성욕만 아는 사람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겠지만 오히려 그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종교란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작은 진심으로 신을 찾고 있었다. 김성희에게 종교는 수단이지만 이작에게는 목표였다. 이작은 누군가를 믿고 따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작은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담긴 지원은 신 그 자체였다. 이작은 차마 지원을 붙잡지도 못하고 손을 애매하게 공중에 띄웠다. 그러다 두 손을 겹쳐서 제 가슴께에 가져다 댔다. 눈썹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며 애원했다.

    “교주님밖에 없습니다. 교주님은 저를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

    “제발 교주님을 믿게 해 주세요.”

    물기에 젖은 눈빛이 애처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원은 차마 그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이작이 입꼬리를 당겨 화사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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