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변화(1) (5/10)
  • 5. 변화(1)

    “이제는 교주님도 기획에 참여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작이 제안했다. 지원은 조금 망설여졌다. 왠지 기획까지 참여하게 된다면 뭔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2차 홍보 영상 촬영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하기만 하는 것도 싫었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런 지원의 망설임을 눈치챈 이작이 조심스레 말했다.

    “물론 제안일 뿐입니다. 하지만 김성희 님께서도 앞으로 합의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로 책을 드린 것 같아서요.”

    “…….”

    “서로 합의해서 플레이를 정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모로.”

    맞는 말이지만 여전히 망설여지는 부분이 존재했다. 괜히 싫은데도 기획 단계에서 거절하지 못해서 강제로 플레이를 하게 될까 봐 두려운 걸까? 지원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원이 망설이자 윤재민도 말을 보탰다.

    “교주님께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 주시려면 교주님부터 행복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행복이요…….”

    역시 가장 행복한 일은 이 교주 일을 때려치우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남은 빚이 너무 많았다. 이작이 말한 대로 이 일 외의 다른 일을 해서는 평생을 일해도 빚을 갚지 못할 것이다. 이자만 겨우겨우 갚으면서 뼈 빠지게 일하다가 비명횡사하게 될 게 뻔했다.

    지원은 지금 이 일에서 벗어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나마 있는 아주 약간의 희망이라고는 이작이 제안한, 김성희에게 베갯머리송사를 하는 것뿐. 그것도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아직 해 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지원에게는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휘몰아치는 일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할지.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운 건 당연히 후자였다. 뻔한 결론이 나오는걸 알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제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행복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행복이고, 똑같은 상황이어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행복할 수가 있겠죠. 저는 어느 쪽이든 교주님이 조금이라도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주님은 교주님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신 분이세요. 교주님의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 교주님이 먼저 행복하셔야 하고요.”

    한정된 상황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노력을 해야 했다.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지원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받아들이기가 조금 어려울 뿐.

    “그럼, 할게요. 저도 기획에 참여하겠습니다.”

    지원의 결심에 이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책만으로는 자료가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도움이 될 다른 자료들을 찾아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자료를 더……?”

    “아무래도 책은 기본에는 충실하겠지만, 응용은 영상만 못하죠.”

    이작의 말에 윤재민도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작은 윤재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상을 새로운 태블릿에 옮겨서 가져오라고 했다. 윤재민은 태블릿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교주실을 나갔다. 윤재민이 나가자 이작이 말했다.

    “윤재민 씨와 편해지신 모양입니다.”

    “네? 저랑 윤재민 씨가요?”

    “만난 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 보여서요.”

    “아…. 그래 보였나요?”

    “네. 윤재민 씨야 원래 말도 많고 사교적인 성격이지만, 교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내가 그런 성격이었나…? 지원은 조금 헷갈렸다.

    “…교주님은 저한테 모든 걸 다 알려 주셔야 합니다.”

    “네?”

    “저는 변수를 아주 싫어합니다. 교주님은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고 교주 자리를 그만두겠다고 하셨고 저는 거기에 협조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럼 우리는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로에게 비밀이 있었다간 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원은 이작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제가 없을 때, 윤재민 씨와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이작이 없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를 벌려 주는 남자라고 생각되고 싶지 않아.’

    윤재민은 동정심을 자극하고 눈물로 설득해서 지원의 성기를 빨았다. 하지만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은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결과만 생각한다. 결과는 명확하고 간단했다. 지원은 만난 지 30분도 안 된 남자에게 성기를 빨아도 된다고 다리를 벌려 주었다. 과정이 어쨌든 이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지원은 입을 다물기로 다시 결심했다. 어차피 윤재민과도 합의된 내용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아픈 곳은 없는지 그런 걸 물어봐서 대답했을 뿐이에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원의 말에 이작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만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작의 빠른 납득에 지원은 속으로 안도했다.

    “우선 교주님께 제안드릴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퍼포먼스요……?”

    “그렇죠. 교주님과 김성희 님의 섹스가 메인 디시라면,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 애피타이저가 필요할 테니까요.”

    “지난번에는 없지 않았나요?”

    “지난번에는 김성희 님이 먼저 나오셔서 분위기를 달구지 않으셨습니까? 선물도 나눠 주었고요.”

    “아…….”

    그런 걸 말하는 거구나.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작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필요한 거겠지 싶었다.

    “전 역시 일반 교인이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일반 교인’이요?”

    지원은 조금 겁에 질렸다. 노골적인 표정 변화에 이작이 대놓고 웃었다.

    “그런 형식을 취하자는 것뿐이죠. 예를 들면, 모든 교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중 몇 사람을 골라서 단상 위로 올라오게 해 준다거나.”

    “그건…….”

    “하지만 사전에 올라올 사람은 다 헌금순으로 선발해서 준비시킬 겁니다. 돌발 상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안전해야죠.”

    “뭔가… 좀 이상하네요. 경품 같아요.”

    “네? 당연하죠. 돈을 많이 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맛보게 해야지 헌금할 맛이 나죠.”

    그렇지. 여기 사이비였지. 지원은 너무 당연한 사실을 가끔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직 여러 명은 좀… 거부감이 들어서요.”

    “괜찮으실 겁니다. 퍼포먼스일 뿐. 지켜보게만 하고 섹스는 김성희 님과만 하실 거예요.”

    사실 그게 제일 거부감이 있다. 지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교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태블릿을 가지고 윤재민이 돌아왔다. 들어오라고 하자 윤재민은 흥분하며 태블릿을 켜서 담아 온 동영상들을 보여 주었다.

    “제가 아끼는 것들로만 엄선했습니다.”

    “…….”

    “가장 추천드리는 건 이겁니다.”

    아무래도 윤재민이 직접 고른 것 같았다. 윤재민은 자신 있어 하며 한 영상을 틀었다. ‘신부’ 복장을 한 남자와 ‘악마’ 복장을 한 남자가 나와서 섹스하는 내용이었다. 그다음 영상은 ‘천사’ 복장을 한 남자가 ‘타락 천사’ 콘셉트의 사람과 섹스하는 영상이었다. 지원은 말을 잃었다. 더 안 봐도 윤재민의 취향을 알 것 같았다.

    “저는 이런 콘셉트 의상을 입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어떠세요. 교주님은 피부가 하얗고 비율도 좋으셔서 과감한 노출을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윤재민 씨. 이건 개인적인 욕망을 풀기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교주님께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윤재민은 이작의 타박에 기가 죽으면서도 꼬박 대꾸했다. 이작은 잠시 고민했다. 정말로 이게 지원에게 어울릴 것인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지원은 생각보다 큰 거부감이 없었다. 따지고 본다면 지금도 교주라는 자리를 연기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연기를 하나쯤 더 한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지원의 말에 윤재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들떠서 이것저것 생각한 설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천사인 교주님을 타락 천사들이 희롱하고 있으면, 대천사인 김성희 님이 나타나서 구해 드리는…….”

    흠칫. 지원의 몸이 굳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 기색을 눈치챈 이작이 윤재민을 말렸다.

    “여러 명이서 하는 설정은 되도록 하지 않기로 하죠.”

    “네? 하지만 꼴리는데 아쉽네요. 그럼 다른 것도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윤재민은 아쉬워하며 다른 제안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지원은 윤재민의 말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윤재민의 의견에 이작이 타박을 놓으면서 계속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말 인생은 생각하지도 못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원은 맹세코 남자들이 이런 대화를 하는 걸 지켜보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행복의 나라> 교주님은 귀여우신 게 전체적 콘셉트이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귀여워해 드리고 싶으니까요.”

    “그럼 역시 교인들이 참여해서 조금이라도 귀여워해 드리는 맛을 보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결국 교인들의 행복과 연결될 겁니다.”

    “하지만 교주님께서 여러 명을 상대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으십니다.”

    이작과 윤재민은 아직도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자신보고 귀엽다느니 귀여워해 주고 싶다느니 하는 말에는 아직도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걸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창피해져서 괜히 기획에 참여하겠다고 했나 후회하는 마음도 조금 들었다.

    “그럼 이 부분은 교주님의 의견도 중요하니 교주님께서 생각이 정리되시면 다시 의논해 봅시다.”

    “네. 그러죠.”

    “…….”

    결국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지원은 조금이 아니라 많이 후회가 됐다. 우선 김성희가 빌려준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내가 이걸 김성희랑 한다고? 지원은 기겁했지만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지원이 독서를 시작하자 이작이 말을 꺼냈다.

    “아. 교주님.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종종 있는 일입니다만…. 교주님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네.”

    “대부분은 행복을 받기 위해서이지만, 교주님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네?”

    지원은 너무 놀라서 책을 떨어트릴 뻔했다. 자신을 알아본 사람이 있다고?

    “부, 분명히 모자이크를 했다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다 했습니다. 하지만 종종 있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로 아는 사이인지 확인하시고 만나기 싫으시면 거절하시면 됩니다.”

    “아…….”

    지원은 조금 안심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작은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만남을 요청한 사람들의 목록을 보여 주었다.

    “사진과 이름, 사유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이작이 말한 대로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대부분 교주님과의 접촉을 통해 행복을 받고 싶다고 사유를 적었다. 지원의 놀란 가슴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나.

    “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름도 익숙했다. 지원의 가슴이 쿵쾅쿵쾅 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골격이 도드라진 얼굴과 진한 이목구비. 그리고 커다란 덩치. 늘 자신을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

    “얘가 왜…….”

    다른 사람들이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에 반해 사유에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교주님과 함께 동문회를 열고 싶습니다.]

    그는 지원의 대학교 후배였던 박차영이었다.

    지원이 졸업한 학교는 명문대까지는 아니지만, 공대가 유명한 곳이었다. 지원은 그 학교의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학생들은 휴학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었고, 이상하게 단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후배 간의 관계가 친밀한 편이었다.

    지원은 굳이 말하자면 중심 무리의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었다. 중심에서 주목받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람을 기피하거나 싫어하는 타입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두루두루 사이가 좋은 편에 속했다. 특히 선배들이 지원을 많이 챙겨 주었다. 하지만 가끔은 지원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차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유 없이 지원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거나, 차별적인 발언을 하곤 했다. 보통은 지원이 나설 필요도 없이 지원의 친구들 선에서 정리가 되었지만, 가끔 박차영이 직접 지원에게 뭐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원은 박차영이 꺼려졌고 일부러 거리를 둘 때마다 오히려 박차영은 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지원을 바라봤다. 지원은 박차영의 그런 눈빛이 싫었다.

    “아는 분이신가 보네요.”

    “아…….”

    지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작을 바라보았다.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까?”

    “네, 조금 그런 편이었어요.”

    “그럼 역시 안 만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이라고 거절하죠.”

    “자, 잠시만요.”

    망설여졌다. 박차영을 싫어하고 그가 별로인 것과 별개로 공통의 지인들이 있다. 동영상은 얼굴에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특유의 체형이나 목소리가 있으므로 영상을 보게 되면 알아볼 수도 있다.

    게다가 박차영은 지금 동문회를 열고 싶다고 한다. 지원이 아는 박차영은 정말로 동문회를 열어서 동영상을 틀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옆에서 이게 지원이 맞다고 하면서 부추긴다면? 그래서 영상이 더 퍼진다면?

    지원의 머릿속은 불행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것처럼 수많은 상황들이 계속 떠올랐다. 지금도 홍보 영상은 올라가 있고, 조만간 두 번째 영상도 풀린다. 그럼 더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만날게요. 이 사람, 만나겠습니다.”

    만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뻔했다. 지원은 어떻게든 지금 박차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내일모레쯤 시간을 비워 둘 테니 함께.”

    “혼자 만나겠습니다.”

    “혼자 만나시겠다고요?”

    “네.”

    “…윤재민 씨라도 같이 만나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에요. 혼자가 좋아요.”

    이건 사생활이었다. 지원은 사생활적인 이야기를 교단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작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사람과 연락해서 날짜를 잡아 두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재민 씨도 다음 진료 스케줄을 위해서 잠깐 일정 조정을 하죠.”

    이작과 윤재민은 약속을 잡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지원의 손바닥이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 *

    박차영과 만나는 일정은 빠르게 잡혔다. 아무래도 홍보 영상이 추가로 풀리면 더 바빠질 테니 그 전에 만나는 게 좋겠다는 이작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지원도 거기에 동의했다.

    만남의 장소는 교주실 옆에 있는 응접실이었다. 지원은 박차영이 도착하여 응접실에서 대기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얀색 교주복을 입고 머리에 베일을 쓴 후 응접실로 향했다. 이작은 바빠서 자리를 비웠으나 혹시 모르니 윤재민이 응접실 앞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다녀오세요.”

    윤재민이 지원에게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지원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응접실이라고는 하나 내부에는 별게 없었다. 딱딱한 나무 재질의 의자와 낮은 커피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의자에 박차영이 앉아 있었다. 문이 닫히고 지원은 의자 앞으로 걸어갔다. 앉지는 않았다. 빨리 대화를 끝내고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원을 보자마자 박차영은 한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성지원. 너 걸레야?”

    지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박차영은 이런 사람이었다. 박차영은 삼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원과 동갑이었지만, 학번은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지원을 제대로 선배 취급한 적이 없었다. 야, 너, 성지원 따위로 부르곤 했다. 어차피 나이가 같으니 선배 취급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심하다 싶었다.

    지금도 그랬다. 다짜고짜 걸레냐니. 지원은 서러워서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옷은 또 무슨, 시발…. 안 입은 거보다 더 야한 걸 입고 있냐?”

    가슴팍이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의 교주복은 여전히 지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홍보 영상? 그거 봤다. 보고 연락한 거야.”

    “…….”

    “그렇게 아닌 척하더니 뒤에선 이러고 살고 있었냐.”

    “할 말은 그게 다야? 욕할 거면 지금 해. 들어 줄 테니까.”

    “아니. 욕하려고 온 거 아닌데?”

    박차영의 표정은 험악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지원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지원의 어깨를 붙잡아 눌러 무릎을 꿇게 했다.

    “귀여워해 주려고 왔지.”

    “…뭐?”

    “귀여워하러 와 달라며? 그래서 와 줬잖아.”

    그러고는 지원의 머리통을 우악스럽게 붙잡고 자신의 사타구니에 비볐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웠다. 박차영의 사타구니는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그가 발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실컷 귀여움 받아 봐, 나한테.”

    박차영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의 얼굴을 사타구니에 실컷 비빈 후 입고 있는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드러난 흉악한 성기 윤곽에 지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 하는 거야! 싫어! 꺼져!”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의외로 박차영은 빠르게 물러섰다. 지원이 의아해서 박차영을 올려다보았다. 박차영은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네가 이러고 살고 있는 거 학교 사람들한테 다 소문내도 상관없으면 안 해도 되고.”

    “뭐?”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지원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예상을 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 박차영이 협박을 할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래서 욕 좀 듣고, 돈 좀 뜯길 예상을 하고 나왔다. 그렇게 적당히 맞춰 줘서 입을 막으려고 나온 거였다.

    하지만 귀여워해 주겠다니. 귀여워해 주러 여기까지 온 거라니. 그건 마치 지원과 섹스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지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나한테 이러고 싶어?”

    “그래. 존나 이러고 싶어. 예전부터 이러고 싶었어.”

    박차영의 눈빛은 맛이 가 있었다. 지원의 기억이 빠른 속도로 재정립되었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기묘한 눈빛으로 보던 박차영이었다. 그런데 그 무시가 성적 욕구에서 기인한 거였다면? 지원을 동갑내기 학우이자 두 학번 위의 선배로 본 게 아니고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었던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줄 알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야 좋지. 네가 걸레로 소문나면 맨날 따먹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할 거 아니야. 걸레를 걸레로 써 주는데 뭐가 문제겠어.”

    “미친, 박차영…….”

    “그러니까 지원아. 좀 대 주라. 응? 다른 새끼들한테는 대 주면서 왜 나한테는 안 대 줬어. 나 서운하다. 우리 친구잖아.”

    친구?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나? 어이가 없고 황당했지만 현실이었다. 만약 여기에서 거절하고 응접실을 나간다면 박차영은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지원이 뭘 하고 있는지 다 얘기할 것이다. 소문이 나면 빚을 다 갚고 나서도 사회에서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그건 두려웠다. 미래가 없어지는 것. 지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박차영과 섹스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지원이 고민하는 동안 박차영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뭘 고민하고 있어 지원아.”

    “…….”

    아무래도 지원이 망설이는 게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기회를 줬어 나는. 네가 거절한 거지.”

    박차영이 풀었던 바지 버클을 추스르고 있었다. 지원은 다급해져서 박차영의 허벅지를 덥석 붙잡고 매달렸다.

    “기, 기다려 봐. 고민하는 중이었잖아!”

    “아니, 네가 고민할 처지냐고.”

    “씨발, 할 수도 있지!”

    억울해서 욕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고민이 안 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고민은 다 했어?”

    박차영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지원은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박차영의 추스른 바지 버클을 풀었다. 속옷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성기가 보였다. 손가락 끝에 걸어서 속옷 밴드를 내리자 성기가 정말로 퉁, 튀어나왔다.

    “맛있게 생겼지?”

    지원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원래도 박차영의 성기는 크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만 이작이나 김성희 것에 비하면 작았다. 괜히 말해서 성격을 긁고 싶지 않았기에 지원은 그저 행동하는 쪽을 택했다.

    턱에 힘을 빼고 입을 벌려서 박차영의 성기 끝을 물었다. 나름대로 씻고 온 건지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따끈하고 축축한 입속에 성기가 들어가자 박차영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신음했다.

    “하아, 씨발…….”

    “우웅, 웅…….”

    지원은 눈을 질끈 감고 목구멍 안쪽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작에게 배운 걸 차분히 떠올리면서 그대로 따라 했다. 말랑한 입안 속살과 달리 탄력 있는 목구멍이 성기를 조여 주었다.

    혓바닥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성기를 꼼꼼히 훑었다. 한 손으로는 박차영의 허벅지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환을 매만지면서 사정을 유도했다.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박차영은 뚫어질 것 같은 뜨거운 눈으로 지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역시 이 눈이었구나…….’

    지원은 박차영이 자신을 늘 보던 시선을 확신했다. 지원을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 박차영을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늘 모른 채로 지나갔었다.

    “뭘 쳐다봐. 개 꼴리게.”

    “우, 우우.”

    박차영은 지원의 뒤통수를 붙잡고 세게 앞뒤로 흔들었다. 지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박차영은 일부러 사정감이 오기 직전에 지원의 입에서 성기를 빼냈다. 그러고는 꿈틀거리는 성기를 붙잡고 지원의 얼굴 위에 정액을 흩뿌리며 사정했다.

    “흐, 흐아아…….”

    “계속 이러고 싶었어 지원아. 응? 너 정말 좆물이 잘 어울린다. 알아?”

    이마에 뿌려진 정액이 얼굴 골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속눈썹에 엉겨 붙고, 콧대 옆을 따라 턱으로 떨어졌다. 박차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직 여운이 남은 성기를 지원의 얼굴에 비볐다.

    “아. 진짜 개꼴려. 이제 엎드려 봐.”

    “더, 더 할 거야?”

    “이걸로 될 거 같아? 빨리 엎드려서 뒤돌아.”

    박차영이 명령했다. 지원은 얼굴에 묻은 정액을 손날로 대충 닦아 내고 뒤를 돌아서 바닥에 엎드렸다. 하얀 교주복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박차영은 성의 없이 기다란 교주복을 위로 휙 젖혔다.

    “씨발 진짜…….”

    박차영이 다시 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란 교주복 안에 지원이 입고 있는 속옷은 하얀색 레이스 속옷이었다. 그것도 뒤쪽에는 끈만 있는 티 팬티였다. 이런 속옷 정도는 이제 지원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박차영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지원에게는 있어야 할 털이 한 가닥도 없었다. 이작이 꼬박꼬박 밀어 주는 탓이었다.

    “빠, 빨리 하고 꺼져.”

    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차영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줄곧 기다려 왔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겨우 찾아왔는데 어떻게 차분하게 있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자신을 싫어하는 그 성지원이 야한 속옷을 입고 엉덩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상하게 자신한테 욕을 할수록 더 꼴렸다. 이딴 속옷을 입고 있으면서 자기랑 하기 싫어서 망설인 것도 발칙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박차영은 떨리는 손길로 지원의 엉덩이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손에 착 감기는 보드라운 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움켜쥔 엉덩잇살을 옆으로 벌리니 가느다란 레이스 옆으로 옅은 분홍빛 구멍이 드러났다. 움찔거리는 게 귀여워서 귀두 끝으로 훑어 주니 지원이 허리를 튕기며 자지러졌다. 지원은 울기 시작했다.

    “흐아. 흑, 흐윽.”

    하지만 박차영은 지원이 울든 말든 달래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저 이 작은 구멍 입구를 비집고 성기를 집어넣어서 박을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지원을 닮은 남자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진짜만 못했다.

    지원은 박차영이 바로 넣지 않고 구멍 위를 문지르며 애를 태우자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빨리 하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기 때문이었다.

    “빨리, 흑. 하라니까!”

    “난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네가 빨리 하라고 했다.”

    지원의 재촉에 박차영이 구멍을 풀어 주지도 않고 성기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당연히 성기는 단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원의 침과 정액으로 미끄러워진 귀두가 입구 위를 긁었다.

    “후우…….”

    지원은 입에 베일을 쑤셔 넣고 울었다. 바깥에서 대기 중인 윤재민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누구에게도 이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엉덩이를 세게 움켜쥔 박차영이 오른손을 놓았다. 결국 직접 성기를 쥐고 입구를 뚫는 쪽을 택했다. 최근에 뒤로 하지 않아서 꽉 다물린 구멍이 꼭 제 주인처럼 고집스러웠다.

    “흡!”

    푹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한 번 입구를 뚫자 그 후로는 쉬웠다. 지원의 내벽을 박차영의 성기가 쭉쭉 밀고 들어갔다. 지원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신음을 삼켰다. 박차영은 바닥에 거의 엎드려서 엉덩이만 들고 있는 지원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으으.”

    박차영이 움직일 때마다 전립선이 쿡쿡 찔렸다. 지원은 미칠 것 같았다. 이딴 상황에서 느끼고 싶지 않은데, 자꾸 느끼려고 하는 제 몸이 미웠다. 박차영은 지원의 벌어진 가슴팍 안으로 손을 넣어서 젖꼭지를 마구 할퀴며 예민한 속살을 건드렸다.

    “하응, 읏! 만지지 마! 그냥 박기나 하라고!”

    “가슴 긁어 줄 때마다 조이지나 말아.”

    “으아앗.”

    말 그대로였다. 박차영이 지원의 가슴을 자극시켜 줄수록 지원의 내벽이 박차영의 성기를 꼭꼭 조이면서 자극하고 있었다. 지원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박차영이 지원의 허리를 붙잡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박아 댔다. 박차영의 수북한 음모와 대조되는 지원의 깨끗한 음부가 마찰되어 따끔거렸다.

    지원은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참았지만 박차영은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지원아, 너 걸레인 거 소문 내 줄까? 너무 잘해서 나 혼자만 쓰기 아깝네.”

    “끄흑, 흡, 흐으윽…. 닥치라고…….”

    “그동안 왜 안 대 줬어, 존나 억울하게.”

    찔꺽,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며 지원의 엉덩이 사이로 박차영의 성기가 드나들었다. 지원은 오히려 그 소리를 듣느니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교주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윤재민이 지원을 불렀다. 지원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입을 한껏 틀어막았지만 박차영의 허리 짓은 멈추지 않았다.

    “헉, 허억, 하.”

    “교주님?”

    “야, 너 부르잖아. 대답해야지?”

    입을 틀어막고 눈물만 흘리는 지원에게 박차영이 대답을 재촉했다. 지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오히려 구멍을 꼭 조였다. 빨리 싸고 끝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박차영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미친 새끼가… 밖에 사람 있으니까 더 흥분돼? 어?”

    “교주님, 뭐 하세요?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되었습니다.”

    “하, 하지, 아, 아아아!!!”

    흥분한 박차영이 퍽퍽퍽 허리를 박아 올렸다. 지원의 눈앞이 흐려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박차영이 입안에 쑤셔 박은 베일을 빼내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하응, 앙, 하으!”

    “들어오라고 할까? 와서 같이 하자고 할까?”

    “시러, 안 대애애…….”

    박차영은 지원을 조롱하며 지원의 내부를 탐했다. 지원은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고통과 쾌락에 신음하고 있었다.

    “교주님. 들어가겠습니다.”

    “아, 앙대애…. 흐윽, 시러어…….”

    “뭐가 싫어. 좋으면서.”

    박차영이 지원의 엉덩이를 세게 쥐면서 희롱했다. 결국 문이 발칵 열렸다.

    윤재민이 문을 열자마자 본 것은 박차영에게 꿰뚫려 바닥을 기며 신음하는 교주님이었다.

    “교주님……?”

    “보지 마, 안 돼. 싫어. 나가!”

    지원이 소리쳤지만 이미 굳어 버린 윤재민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윤재민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철컥 잠갔다. 그 소리에 지원의 눈물이 순간 멎었다. 지원은 고개를 올려 윤재민을 바라보았다.

    “교주님…….”

    윤재민의 안경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윤재민은 지원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지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행복을 나눠 주고 계시는군요.”

    “하, 하으으…….”

    “아름답습니다.”

    지금의 지원은 이작이 만든 대로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주님이 아니었다. 쾌락에 발발 떠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윤재민에게는 이조차도 신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아,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교인에게 행복을 나눠 주고 있는 교주님.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인가. 윤재민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 저에게도 행복을 나눠 주셔요.”

    “아, 아아…….”

    “저를 행복하게 해 주셔야죠.”

    윤재민은 미소 지으며 입고 있는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지원은 고개를 미친 듯이 저었다. 싫다. 싫었다. 한 번에 여러 명은 싫어. 하지만 윤재민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생각했을 뿐이다.

    ‘교주님의 자지를 빤 것만으로 그렇게 행복해졌는데, 교주님이 직접 내 자지를 빨아 주시면 얼마나 행복할까.’

    윤재민의 믿음은 맹목적이고 일직선이었다. 그의 생각은 다른 데로 튈 겨를이 없었다. 윤재민은 반쯤 선 성기를 속옷 안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지원의 턱을 들게 한 후 성기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우욱!!!”

    “하아…. 이건, 너무 좋아요. 정말 최고예요, 교주님…….”

    윤재민의 눈에 힘이 풀렸다.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지원의 입안에 자신의 성기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박차영이 허리를 움직이며 퍽퍽 박을 때마다 지원의 몸이 움직이며 윤재민의 성기를 더욱 깊숙이 삼키게 됐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눈을 찡그렸지만, 윤재민은 지원의 얼굴을 붙들고 성기를 빼내지 못하게 했다.

    “너무 행복해요. 교주님. 이게 행복인가요? 네?”

    “미친, 헉, 새끼네.”

    박차영이 윤재민을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차영에게는 지원이 단 한 번도 성스러운 존재로 보인 적이 없었다. 그에겐 늘 언젠가 한 번 따먹어야 할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지원을 신처럼 모시고 따르는 윤재민이 비정상으로 보였다.

    윤재민은 박차영에게 말했다.

    “빨리 쓰고 넘겨주시겠어요? 그쪽만 교주님께 행복을 받을 순 없잖아요.”

    지원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크게 커진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 어차피 윤재민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빼내어 주기는커녕 자신도 하겠다고 할 줄이야.

    “행복? 씨발, 맞네. 존나 행복하다, 지원아.”

    쪽쪽. 박차영은 지원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속삭였다. 지원은 그럴 때마다 소름이 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목에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역겹고 불쾌했다. 하지만 더 불쾌한 건 여기서 느끼는 자신이었다.

    지원의 성기는 배에 거의 닿을 듯이 바짝 서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건 박차영이었다. 박차영은 지원의 성기를 가볍게 쥐고 한 번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다.

    “우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원의 성기에서 진한 정액이 퓻 쏘아져 나왔다. 박차영 역시 지원의 안에 사정했다. 안 그래도 불편하던 속이 더부룩해졌다. 겨우 두 남자를 버티고 있는 팔다리에 힘이 풀어졌다. 몸이 축 늘어지자 박차영과 윤재민이 힘을 합쳐서 지원의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이내 다시 무너졌다. 지원의 앞과 뒤를 채우던 성기들이 빠져나갔다. 지원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울면서 부탁했다.

    “시, 시러어…. 나 이제, 이제 안 할래…….”

    “교주님, 조금만 더 해 주세요. 예? 저도 교주님 뒷구멍으로 행복해질래요.”

    윤재민이 간절히 부탁하면서 헤집어진 교주복 사이로 젖꼭지를 끌어내 꼬집고 깨물었다.

    “흐윽, 싫어, 시러…. 윽!!”

    윤재민의 한껏 부푼 성기가 지원의 얼굴에 정액을 쏘아 냈다. 지원의 얼굴이 정액과 눈물로 섞여서 엉망이 되었다. 더 이상 우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흐윽, 끕, 흑.”

    “하아, 교주님. 교주니임…….”

    윤재민이 지원의 늘어진 다리를 붙잡고 발가락 끝부터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박차영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지원의 교주복을 찢고 가슴을 빨았다. 안 그래도 큼직한 편이던 젖꼭지가 더 크고 땡땡하게 부어올랐다.

    “하아…. 너무 아름다우세요.”

    윤재민의 입술이 지원의 허벅지 깊은 안쪽에 도달했다. 박차영의 정액이 구멍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윤재민은 감탄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교주님. 저도 조금만요…. 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이작이 돌아온다. 윤재민은 그 전에 끝을 낼 생각이었다. 사정을 해서 죽었던 윤재민의 성기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윤재민은 부드럽게 풀린 입구에 성기를 문질렀다. 쑥 하면서 구멍 안에 성기가 빨려 들어갔다. 그런 단어 표현이 옳았다. 지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게걸스러운 구멍은 성기를 원했다.

    “하아, 교주님도 참.”

    “컥, 아, 아아…….”

    축 늘어진 지원의 몸이 위아래로 튕기며 윤재민의 허리 짓을 받아 냈다. 한껏 옆으로 꺾인 목구멍 안쪽으로는 박차영의 성기가 꽉 채우고 있었다. 새하얀 교주복이 새하얀 정액으로 얼룩져 엉망이 되었다. 윤재민은 레이스 팬티가 찢기지 않게 조심하며 퍽퍽 허리를 박아 올렸다.

    지원의 입안에서 신음 소리가 웅웅 퍼졌다. 오늘 처음 본 두 남자는 지원을 공유하며 극상의 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하아, 성지원, 후. 존나 잘해.”

    “교주님의 뒤가 정말 맛있으셔서 저 너무 행복해요. 교주님이 얼마나 제 자지를 잘 조이고 있는지, 하. 직접 보여 드리고 싶어요. 못 보시겠지만요.”

    시끄러웠다. 질꺽거리는 삽입 소리와 퍽퍽거리는 마찰음, 두 남자가 동시에 떠들어 대는 소리까지. 지원의 머릿속은 과부하 상태였다. 머리는 더 이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다. 지원이 이 상황을 잊으려고 눈을 감을 때마다 박차영이 뺨을 때려 깨웠다.

    “지원아, 정신 차려.”

    “흐으…….”

    온몸의 수분이 다 마르는 것 같았다. 두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사정했다. 박차영은 지원의 입안에, 윤재민은 지원의 뒷구멍 안을 꼭 채웠다. 지원의 다물리지 못한 입과 구멍 사이로 정액이 슬금슬금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후우.”

    체력을 완전히 써 버린 지원이 바닥에 누워서 간헐적으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프고 쑤셨다. 윤재민에 대한 배신감과 박차영에 대한 증오감은 이미 쾌락에 지워진 지 오래였다.

    이 상황에서 착실히 느끼고 있던 지원의 성기가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윤재민은 서둘러 지원의 성기를 물었다. 그리고 혀로 요도구를 파면서 자극을 줘서 사정을 시켰다. 꿀꺽. 지원의 정액을 전부 목 뒤로 삼켰다. 조금의 행복도 놓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주님.”

    윤재민은 자신의 옷을 추스르면서 지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윤재민을 박차영은 미친놈 보듯이 바라봤다.

    “교주님은 정말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존경하고, 늘 사랑합니다.”

    “쯧쯧…….”

    윤재민의 신앙 고백에 박차영이 혀를 찼다. 그러면서 박차영도 입고 있던 옷을 추스르며 정리했다. 이제 이 응접실에서 엉망인 것은 지원뿐이었다.

    “이작 님이 오시기 전에 정리합시다.”

    윤재민은 일어나서 응접실 한구석에 있는 휴지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지원의 얼굴의 정액을 대충 닦아 주고 아래와 옷도 닦아 주었다. 다행히 교주복은 크게 더러워지지 않았다.

    “교주님, 일어나세요.”

    지원이 부축당해 일어나자 다리 사이로 정액이 주르륵 흘렀다. 박차영은 불만스러워하면서 휴지를 더 가져와 다리 사이를 닦아 주었다.

    “너도 즐겨 놓고 꼭 억지로 당한 사람처럼 군다.”

    박차영은 투덜거렸다. 지원은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자신이 느낀 건 사실이었으니까. 온몸이 떨릴 정도로 좋았으니까. 차라리 자신도 즐겼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해질 텐데. 왜 자꾸 인정하지 않는 걸까.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런 자신에게 조금씩 혐오감이 들고 있었다.

    * * *

    윤재민의 부축으로 교주실로 돌아온 지원은 넋이 나가 욕실에 들어갔다. 일부러 문을 안에서 잠가서 누구도 못 들어오게 했다. 교주복을 제대로 벗지도 않은 채로 욕조에 찬물을 틀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갔다. 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왜 자꾸 느끼는 걸까. 싫은데, 분명히 싫은데 왜 자꾸 동시에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정말 이렇게 태어난 걸까?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지 않았고 분명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점점 모든 게 비틀렸다. 지원은 이 현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저 평범하게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던 박차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윤재민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원은 그 사실이 벅찼다.

    박차영과 윤재민은 단 한 순간도 지원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본 적이 없었다. 둘이 생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크게 차이는 없었다. 지원은 그 사실이 비참하고 서러워서 이대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흑, 끄윽, 끕…….”

    죽으면 어떻게 될까. 빚도 안 갚아도 되고 이런 짓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죽는 게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찬물이 점점 차올랐다. 배꼽 부근에서 맴돌던 수위가 어느새 쇄골까지 올라왔다. 지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물에 얼굴을 박았다.

    “흐읍.”

    꾹 다물린 입 대신 코로 물이 들어왔다. 욕조는 깊고 넓어서 물이 차오르는 데 한참이 걸렸지만 대신에 지원이 잠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부모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어차피 부모님도 빚을 만들고 튀었으니 똑같은 걸로 치자고 하고 싶었다. 지원은 그 정도로 절박했다.

    쿵쿵. 커다란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지원은 무시했다. 어차피 귀로도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온전히 물에 잠길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으지직. 문손잡이 부근의 나무가 으깨지면서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지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박살 나서 너덜거리는 문이 획 열렸다. 거기에는 이작이 서 있었다.

    “이작 씨…….”

    이작은 화가 나 있었다. 왜 화가 나 있는지 지원은 이유를 몰랐다. 그저 그가 화가 나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싶었다. 이작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지원의 머리채를 쥐고 그걸 그대로 물속에 처박았다.

    지원은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해서 온몸이 저릿저릿해질 때까지 이작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원의 의식이 흐려질 때쯤 손을 들어 지원의 머리를 물속에서 빼냈다.

    “하윽!”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와 빛에 눈이 부셨다. 지원의 몸이 크게 들썩이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체온이 내려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죽고 싶으세요?”

    이작이 물었다.

    “그러면 안 돼요?”

    지원이 되물었다. 이작은 하, 하고 짧게 웃더니 욕조의 마개를 빼내어 찬물을 빼냈다. 그러고는 따뜻한 물을 틀어 지원의 몸에 끼얹기 시작했다. 얼듯이 차가운 몸에 따뜻한 물이 끼얹어지자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지원은 절망했다. 하다못해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다니.

    “아직 죽으시려면 일러요.”

    “왜요? 저는 왜… 왜 안 되는데요?”

    “…….”

    “부모님이 빚을 만들고 튀어서? 빚 갚아야 하니까? 그럼, 제가 이렇게 사는 게 이작 씨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데요?”

    “교주님.”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지원은 교주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거,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평범하게 취직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해서 애 낳고, 아내랑 사랑하면서 사는 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여 버린 걸까.

    “다, 다 싫어. 당신도 싫어. 당신이 오지만 않았어도. 나한테 교주 자리를 권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텐데. 서럽고 비참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듬거리면서 하는 욕을 이작은 전부 듣고 있었다.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지원도 알았다. 지금 지원은 누군가 탓할 대상이 필요했다. 박차영이 그랬고 윤재민이 그랬듯이 지원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탓을 하고 싶었다. 지원은 지금의 모든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교주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지원은 소리쳤다.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솟구쳤다. 아까 실컷 울어서 이제 눈물이 더 이상 안 날 거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계속 났다.

    “박차영은 붙잡아서 가둬 놨고, 윤재민도 같이 넣어 놨습니다.”

    “…네?”

    “둘 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여기서 있는 일은 모두 밖에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

    “그러니까 둘의 처분은 모두 교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주님이 둘 다 죽이라고 하시면 바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지원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 상태로 눈이 따가워져도 깜빡이지 못했다.

    “왜,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그 두 사람을 주, 죽이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하지만 교주님은 죽으려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그건…….”

    그건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를 죽이는 것과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는 어차피 살아도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거니까…. 계속 당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네?”

    “빚 다 갚아서 여기를 뜨는 게 교주님 목표 아니셨습니까? 왜 여기서 인생을 끝내려고 하시는데요?”

    이작의 말이 맞았다. 지원은 분명 김성희를 이용해서 빚을 갚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지면 사람은 모든 욕구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이작은 그런 지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주님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끝을 내서도 안 되고요.”

    “…….”

    “정신 차리세요. 찬물로 바꿔 드릴까요?”

    “…됐어요.”

    지원은 흠뻑 젖은 채로 욕조에서 일어났다. 기다란 교주복이 물에 젖어 무거웠지만 꿋꿋하게 일어났다. 이작도 계속 쏟아지던 물을 잠갔다. 대신에 욕실의 서랍장으로 가서 커다란 바스타월을 가져왔다. 지원이 입고 있던 교주복을 벗겨 주고 바스타월로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교주님은 어떻게든 살아서 여기를 나가세요.”

    “…….”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제가 도울 거고요.”

    이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반대로 지원이 이작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것은 이작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셔도 됩니다. 침실로 가서 누워 계세요. 따뜻한 우유를 드릴 테니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세요.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하시면 그때 저한테 알려 주시고요.”

    “이작 씨.”

    “사실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그 둘은 서서히 굶어 죽을 테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죠.”

    이작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지원은 약간 경악했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원은 포근한 이불에 누워서 따뜻한 우유를 마실 거다. 그리고 이작이 틀어 주는 이름 모르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을 텅 비워야지. 그러는 동안 그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벌벌 떨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괜찮았다.

    몸이 보송보송해진 지원은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늘 관리가 잘되어서 바스락거리는 이불이 지원의 몸에 감겼다. 지원은 이작을 붙잡고 말했다.

    “이작 씨. 우유는 안 가져다주셔도 돼요.”

    “하지만 목이 마르지 않으신가요?”

    “네. 그런데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요.”

    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지원이 잠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완전히 잠든 지원을 보며 이작은 스스로가 안일했다고 생각했다. 김성희가 꽂아 준 인물인 윤재민을 너무 믿었으며, 박차영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바빴다는 것은 변명이 안 됐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이작은 조용히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 * *

    교단의 지하 주차장보다 더 아래에는 이런 곳이 있었다. 축축하고 습한 지하. 벽도 없이 기둥만 서 있는, 형태만 갖춰 둔 곳. 어떤 쓰임새로 쓸지 정하지 않은 곳. 그러나 사실은 쓰임새가 명확한 곳이었다.

    지하의 기둥에 두 남자가 묶여 있었다. 기둥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므로 두 남자는 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박차영이었고, 하나는 윤재민이었다.

    둘 다 눈은 안대로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았고 입에는 수건을 쑤셔 넣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감각은 촉각과 청각뿐이었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여기가 어딘지, 왜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남은 두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박차영은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토록 벼르던 지원과 섹스도 했겠다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야한 모습으로 반항하지 못하고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다시 꼴렸다. 게다가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셋이서 했다는 점도 이상하게 즐거웠다. 공범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교단을 떠나려고 하던 중, 교단의 철문이 갑자기 눈앞에서 잠겼다. 박차영은 이곳까지 택시를 타고 왔으므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택시를 불러야 했다. 택시가 철문 앞에서 멈춰 있는데 탈 수가 없었다. 한 남자가 나와서 택시 기사한테 뭐라고 얘기를 하자 택시가 떠났다.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따지기 위해서 그 남자에게 가자 뒤에서 누군가가 목덜미를 세게 쳤다. 어쩌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용케 살아 있었다. 그 후로는 계속 이 상태였다. 이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서 있는 채로 온몸이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 옆에 묶여 있는 윤재민도 상황은 비슷했다. 윤재민은 지원에게 행복을 받은 후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통화를 하기도 전에 김성희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위치를 물어서 대답하자 바로 김성희가 교인들과 함께 왔다. 그리고 바로 얻어맞아서 기절했다.

    저벅, 저벅.

    저 멀리서 습한 바닥을 걷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윤재민과 박차영은 기대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을 구해 주었으면 했다.

    “잘 있었어?”

    그 목소리는 윤재민이 익히 아는 것이었다. 김성희의 목소리였다. 윤재민은 대답하기 위해서 목구멍을 열었지만 입안을 가득 채운 수건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시 또 저벅, 저벅.

    김성희는 윤재민의 앞으로 다가가서 안대를 벗겨 주었다. 어두운 실내였지만 교인들이 손전등을 들고 있어서 앞이 보였다. 김성희는 늘 입는 흰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잘 있었냐고 묻잖아.”

    퍽. 김성희가 구둣발을 들어 윤재민의 배를 걷어찼다. 등 뒤에는 기둥이 있어 김성희의 발길질이 그대로 배에 충격으로 전달되었다. 커헉. 윤재민은 입으로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코로 숨을 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왜 대답을 안 해. 짜증 나게.”

    퍽. 김성희가 다시 한번 윤재민을 걷어찼다. 이번에는 사타구니였다. 김성희는 발로 윤재민의 성기를 으깨듯이 짓눌렀다. 공포를 느낀 윤재민의 성기에서 힘없는 오줌 줄기가 팍 터져 나왔다.

    “재민아.”

    “…….”

    “너한테 뭐 하라고 그랬지?”

    “…….”

    “내가 너한테 교주님 따먹으랬어?”

    열받게. 김성희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성기를 팍 밟았다. 연골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윤재민이 몸을 벌벌 떨며 눈을 까뒤집자 교인들이 와서 윤재민의 입에 수건을 한 장 더 넣었다.

    “나도 딱 두 번 따먹은 거를. 네가 왜?”

    “…….”

    “열받네…….”

    김성희는 이미 으깨진 성기를 다시 으깼다. 김성희의 하얀 구두에 핏물이 묻자 한 교인이 와서 정성껏 닦아 주었다.

    “왜 너 혼자 행복하려고 그래, 재민아.”

    “…….”

    “내가 너를 교주님 옆에 붙인 건, 이작 새끼 감시하라고 붙인 거잖아.”

    “…….”

    “일을 그르쳐, 왜?”

    김성희는 윤재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한 질문이었다. 김성희는 윤재민의 대답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재민아. 너 의사니까 네 좆도 스스로 고칠 수 있지?”

    “…….”

    “나는 너한테 스스로 치료하라고 했어. 네가 안 한 거다?”

    여전히 윤재민은 대답이 없었다. 김성희는 싱긋 웃더니 휙 뒤를 돌았다. 옷이 구겨지고 신발이 더러워져서 기분이 나빴다. 빨리 여기를 나가고 싶었다. 저벅, 저벅. 김성희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손전등을 든 교인들도 사라져, 다시 지하는 조용해지고 말았다.

    그동안 박차영은 떨고 있었다.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을 소리로만 듣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공포였다. 언제 자신이 그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해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머릿속으로는 온갖 불행한 상상이 떠올랐다.

    잠시 후, 다시 저 멀리에서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까 그 남자가 다시 온 걸까?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인 걸까? 박차영은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발소리가 박차영 앞에 멈춰서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기다렸습니까?”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박차영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친히 박차영이 착용한 안대를 벗겨 주었다. 박차영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천사 같은 얼굴을 한 남자였다.

    “저 말고 옆을 보세요.”

    남자는 박차영의 눈물과 땀으로 젖은 뺨을 툭툭 쳤다. 박차영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피와 흙먼지로 얼룩진 윤재민이 기둥에 묶여 있는 게 보였다. 상상만 하던 끔찍한 꼴을 직접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박차영은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동문회가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까?”

    박차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지원을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정말로 할 생각은 없었다. 남자는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박차영에게 속삭였다.

    “저 남자를 저렇게 만든 사람, 아직 당신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건데 그게 언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박차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멀쩡한 사람을 저 꼴로 만든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자신을 똑같은 꼴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니 몸이 공포로 벌벌 떨렸다. 박차영은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눈물이 여러 줄기로 갈라져 흘러내렸다.

    “그때까지 잘 살아 있으세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곧장 등을 돌려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난 후에는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박차영은 그 누구도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박차영을 찾아온 남자, 이작은 김성희에게 박차영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원래 특별한 용도로만 쓰이는 곳인지라 굳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작은 박차영이 언제 올지 모르는 김성희를 기다리면서 공포에 벌벌 떨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하로 가는 문의 입구를 열쇠로 잠가 버리고, 그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제 식의 복수를 끝낸 이작은 서둘러 교주실로 돌아갔다.

    김성희는 지하 주차장으로 올라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는 다른 지부에서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느라 시간을 조금 썼다.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으니 귀찮았다.

    직접 오셔야겠다는 말에 시간을 계산했더니 여유가 별로 없었다. 전화만이라도 할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집어넣었다. 전화도 좋지만 얼굴을 직접 보는 게 나았다. 지원의 교주실이 바로 코앞이었다.

    “흠흠~ 흠~.”

    김성희는 방금 적당히 지어낸 콧노래를 불렀다. 똑똑. 예의상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바로 보이는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성희는 조금 더 걸어 침실 앞에 섰다. 그러자 문이 달칵 열렸다. 김성희의 얼굴이 구겨졌다. 보이는 것은 지원이 아니었다.

    “조용히 하세요.”

    이작이었다. 하여간 재수 없는 새끼였다.

    “교주님은?”

    “주무시고 계세요.”

    “걔는 왜 그렇게 많이 자?”

    김성희가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작은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김성희는 문틈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야. 뭐 해. 안 비켜?”

    “주무시고 계시다니까요.”

    “알겠으니까 비키라고. 나 바쁜 사람이야. 방해하지 마.”

    “바쁘시면 일에 충실하세요. 교주님 귀찮게 하지 마시고요.”

    “내가? 내가 쟤를 귀찮게 군다고?”

    김성희는 어이가 없었다. 이작은 태연하게 김성희의 발을 밀어 빼내려 하고 있었다.

    “쟤가 그래? 내가 귀찮다고?”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씨발, 그럼 네가 귀찮아하는 거지. 쟤가 나 귀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가요.”

    “아. 씨발. 이작아.”

    하여간 따박따박 말대꾸나 하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새끼였다. 김성희는 이작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것을 이용해서 안을 봤다. 확실히 지원이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보셨으니까 됐죠.”

    “독한 새끼. 그래. 됐다. 됐으니까 너도 발 치워!”

    “네.”

    이작은 발을 뺐다. 김성희도 그제야 발을 뺄 수 있었다. 세게 짓눌린 발이 아팠다. 아, 진짜 짜증 나는 새끼다.

    “교주님 깨어나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내키면요.”

    “썅! 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희 님, 다음 스케줄 가셔야 합니다.”

    김성희의 뒤를 따라온 교인이 그를 재촉했다. 김성희의 스케줄은 시간 단위로 쪼개져 있었고, 그는 늘 바빴다. 김성희는 하는 수 없이 교주실을 나가야 했다. 김성희는 이작에게 다시 확언을 받아 냈다.

    “꼭 전해.”

    “네.”

    저렇게 말을 해도 안 전달할 새끼라는 걸 김성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있다가 시간 나면 자기가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쟤는 잠 좀 작작 자야 해. 저렇게 자니까 애가 힘이 없지. 잘 시간에 운동이나 좀 하면 나을 텐데. 쯧.’

    직접 운동을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게 아쉬웠다.

    지원이 눈을 떴을 때 이작은 옆에 앉아 일을 하는 중이었다. 지원은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김성희 님 다녀가셨나요…? 잠결에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아뇨. 안 다녀가셨습니다.”

    “그렇구나…….”

    지원의 질문에 이작이 딱 잘라서 대답했다. 졸려서 착각했나 보다. 지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비록 잠자리는 개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자고 나니까 기분도 몸 상태도 좀 나았다.

    “물을 드릴까요?”

    “아, 괜찮은데…….”

    “목이 마르실 텐데. 마시세요.”

    이작은 생수병을 하나 따서 내용물을 물컵에 따랐다. 그리고 지원에게 물컵을 건넸다. 지원은 괜찮다고 말했으면서 물컵을 받아서 물을 마셨다. 꼴깍꼴깍.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갈증이 일어난 상태인 것 같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이 왠지 달게 느껴졌다.

    물을 다 마신 지원은 이작이 일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 그, 사람들이요.”

    “생각이 좀 정리가 되셨습니까?”

    “네. 생각해 봤는데 저는 그냥… 이작 씨에게 맡길게요. 다시는 안 보게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고드릴까요?”

    “아뇨, 그것도… 됐어요. 나중에, 나중에 제가 물으면 그때 알려 주세요.”

    지원은 애써 웃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교주님께서 만족하실 만큼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이작은 열쇠를 창밖에 던지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 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찾아가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작 씨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늘 너무 바빠 보여요.”

    “제가 맡고 있는 게 많아서요. 하나씩 정리되고 여유가 생긴 겁니다, 지금은.”

    “그럼 원래는 더 많았나 보네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시킨대요?”

    “아…….”

    지원의 질문에 이작은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설명하기 귀찮으면 안 하셔도 돼요.”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교주님이시니까 전부 말씀해 드릴까요?”

    “전부는… 괜찮아요, 저도. 결론만 말해 주세요.”

    “그럼 결론을 말하자면, <행복의 나라> 설립 때부터 제가 참여해서 그렇습니다.”

    “…네?”

    이작의 말에 지원은 의아했다. 이작이 <행복의 나라>의 설립에 참여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김성희가 어디서 일 잘하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꽂아 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떻, 어떻게요? 보통은 종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김성희 님도 만드셨잖아요.”

    “김성희 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요…….”

    지원은 한 번도 김성희가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모든 부분에서 비범한 사람이었다.

    “저번에 <어머니의 나라>에 교인이 너무 몰리자 종교를 분업화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때 <행복의 나라>라는 이름을 짓고 김성희 님께 구체적인 제안을 드린 것도 접니다.”

    “세상에.”

    지원은 마치 세계가 만들어진 원리를 들은 사람처럼 놀라고 있었다.

    “저는 종교라는 건 뭔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 줄 알았어요. 여기 와서 종교를 기획적으로 만든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러시겠죠. 저도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

    이작의 대화 페이스는 가끔 따라가기 힘들었다. 지원은 괜히 바쁜 사람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나라>를 모태로 하지만 교인을 모집하는 방식부터 운영하는 방식까지 서로 다릅니다. <어머니의 나라>가 쾌락을 주는 김성희 님을 모시고 따른다면 지금 <행복의 나라>는 교주님을 귀여워해 드리는 개념으로 가고 있어요.”

    “귀여워해 드리는…….”

    “그래서 그런데. 이런 옷은 어떻습니까?”

    이작은 지원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 뜬 것은 성인용품 사이트들 페이지로, 이작은 고양이 의상들을 띄워 놓고 비교하는 중이었다.

    “교주님께 제일 잘 어울릴 만한 것으로 골라 봤습니다.”

    의상은 자원 절약형이었다. 털 재질의 손바닥만 한 상의와 손바닥만 한 하의, 꼬리와 귀가 전부였다. 그래. 여긴 이런 곳이었지. 일도 이런 일이었겠구나. 지원은 새삼 깨달았다.

    “역시 좀 부끄러운데요…….”

    “어울릴 것 같으신데. 아쉽네요. 이건 다음에 다시 제안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원의 반려에 이작은 다시 태블릿을 가져가서 열심히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지원이 물었다.

    “2차 공개 설교 때문에 준비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교주님께서는 김성희 님처럼 말을 잘하시거나 존재감이 강한 타입은 아니셔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존재감은 아마 전 평생 가도 못 가질 건데…….”

    “그냥 타입이 다른 거죠. 교주님께는 교주님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이작은 가끔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지원은 부끄러워졌다. 지원은 작게 웃었다.

    “가끔 보면 저보다 이작 씨가 저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오히려 자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죠?”

    “네. 교주님도 잘 모르셨잖아요. 가슴이 예민하시고, 회음부가 매끈하니 예쁘신 부분을…….”

    “아뇨, 잠깐만요. 그런 얘기가 아니었어요.”

    “그것도 교주님의 일부분이죠.”

    이작은 태연했다. 진땀이 나는 건 지원뿐인 것 같았다. 지금 지원은 샤워를 마치고 바로 잠들어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왠지 이 상태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이불로 몸을 감쌌다.

    “공개 설교를 미룰까요?”

    “네?”

    이작이 갑자기 물었다.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며칠 미룰 수는 있습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으십니까?”

    “그냥 하루라도 빨리 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지원의 말에 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마침 2차 홍보 영상도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아직 편집이 덜 끝났지만 보시겠습니까?”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영상 자체는 잘 나왔습니다. 김성희 님께 귀여움 받으시는 모습이 잘 찍혀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원은 영상을 촬영하던 날을 떠올렸다. 김성희가 반쯤 돌아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쾌락을 느끼던 날을. 그리고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을 해 냈다.

    “그, 설교 말인데요.”

    “네.”

    “이건 어때요?”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 이작은 진지하게 듣더니 감탄했다.

    “좋네요. 김성희 님께 바로 말씀드리죠.”

    “아뇨, 말씀드리지 마세요.”

    “그럼 언제 말씀드립니까?”

    “서프라이즈로 하죠. 김성희 님에게는.”

    지원은 마치 장난을 꾸미는 어린아이처럼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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