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성희
이작은 김성희를 이용하자고 했지만, 지원에게는 망설임이 조금 있었다. 아무래도 지원에게 김성희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동시에 빚을 얼른 청산하고 이곳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작의 말로는 여러 개의 종교가 더 있으나 <어머니의 나라>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그다음으로는 <행복의 나라>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김성희였다. 과연 그런 사람에게 베갯머리송사가 통할지도 의문이었다.
“이걸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지원은 이작이 건네는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이작은 동영상 목록을 띄워 주었다. 지원은 흠칫 놀랐지만 다행히 자신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김성희 님에 대해서 아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외에도 동영상이 몇 개 더 있으니 참고하세요. 저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필요하면 바로 연락하세요.”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던 핸드폰을 챙겨 주었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작이 잠시 침실을 나가고, 지원은 동영상을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작이 찾아 준 동영상은 김성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진짜 사이비 같다…. 지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선 김성희의 어릴 때 사진들이 나오면서 소개가 시작되었다. 생년으로 추정해 본 결과 김성희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었다. 지원이 올해 스물일곱 살이니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셈이었다. 교주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나이가 한참 있어 보였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어릴 때 사진이 흑백사진일 줄 알았는데, 컬러라서 의외였다.
김성희는 5월 5일 어린이날에 4.8kg의 우량아로 태어났단다. 그리고 성장이 빠르고 덩치가 컸어서 열세 살에 이미 키가 170cm를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적 호기심이 많았기에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첫 섹스를 했다고 한다. 지원은 조금 불필요한 정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되었으니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괴로웠다.
그 후로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섹스를 즐겼지만 피임은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아직 공식적으로 자식과 부인은 없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김성희가 모태 신앙이라는 점이었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신자였으며, 김성희 역시 신학과를 졸업했다. 게다가 졸업한 학교는 명문대였다…. 지원이 나온 대학보다 더 입결이 높은 곳이었다. 지원은 너무 황당해서 기가 막혔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김성희에 대한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의 키는 현재 188cm. 매일 아침 꾸준히 운동을 하며 체격을 유지 중이라고 한다. 취미는 독서, 특기는 섹스란다. 특기는 그렇다 쳐도 취미는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다큐멘터리에서는 김성희가 알 없는 안경을 끼고 서재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황홀한 섹스를 위한 101가지 체위>였다. 그럼 그렇지…. 지원은 혀를 찼다.
이건 한 종교의 교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김성희라는 남자에 대한 매력을 어필하는 내용에 가까웠다. 김성희는 툭하면 상체를 벗고 나와 다부진 몸을 보여 주었으며, 아침에 샤워를 마친 후 면도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진짜 가관이었다.
10분가량의 영상은 끝이 났다. 다음 편이 있는 건지, 자막으로 <2편에 계속됩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지원은 다음 편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동 재생이 되어 결국 2편을 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은 김성희가 <어머니의 나라>를 만들고 종교 시장을 개척해 나간 일대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부분은 이미 이작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라 아는 게 꽤 많았다.
김성희는 대학 졸업 후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6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종교를 세운다. 처음에는 작은 사무실을 얻어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사이비인 탓에 주변에서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때문에 아예 경기도 외곽 지역에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사실 보통 사이비 종교란 다른 종교를 모태로 하여 탄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종교 교리의 허점을 비틀어 왜곡시킨 논리로 사람을 현혹시켜 교세를 확장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김성희를 믿으면 천국에 갈 권리를 얻는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엄청난 즐거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성희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다 했다. 교인들의 소원을 접수받은 후 법의 테두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온갖 난잡한 행위를 저질렀다. 마약, 섹스, 폭력. ‘합의’라는 단어 아래에 모든 행위가 용인되었다.
<어머니의 나라>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견제가 들어오자 김성희는 쾌락의 종류를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그중 <행복의 나라>에서는 남성 간의 성행위에서 오는 쾌락을 담당했다.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고는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지원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런 걸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덜컥 교주를 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자신이 어이없는 행동을 했던 건지가 이제 와서 와닿았다.
다행히도 김성희의 일대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2부작이었다. 2부가 끝이 나자 지원은 동영상을 종료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베갯머리송사를 하라고? 이작도 진짜 보통이 아닌 사람인 것 같았다. 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건 좀 무리다. 지원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김성희는…. 하지만 김성희도 이작도 자신에게 그러지 않았는가. 재능이 있다고.
지원에게는 그 말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 작은 재능을 어떻게 해서 살릴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재능…….”
불행히도 지원은 태어나서 그런 말을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늘 어디를 가든 중간에 있는 그저 그런 인간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원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으로 빚을 다 갚을 수만 있다면…. 지원의 마음이 물속의 해초처럼 이리저리 휩쓸렸다.
지원은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행복의 나라>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운 교주를 소개합니다.> 동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30초 남짓의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사실 그래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왜 남자들에게 자극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반응은 확실히 폭발적이었다. 이작의 말은 사실이었다. 댓글은 막아 두어 따로 없었지만, 동영상의 좋아요가 3만을 넘었으며, 홈페이지의 QnA 게시판에 새 글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문의가 너무 많아서 대응이 늦을 수가 있다는 공지까지 띄워져 있었다.
QnA 게시판의 글들은 관리자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내용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몇몇 제목들이 눈에 띄었다.
“홍보 영상 풀 버전으로 보여 주세요. 2탄 없어요? 얼굴 모자이크 풀어 주시면 안 되나요…? 존나 꼴리는데…….”
이게… 그 정돈가? 지원은 얼떨떨했다. 이 상황이 그저 어리둥절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엉망이 되어서 결국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이불로 몸을 돌돌 감싸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상해…….”
다들 미쳤다. 이 세상에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인 사람보다 많은 모양이었다. 지원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너무나도 커다랗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여태까지 살아온 세계가 비정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지원은 꾸물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이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되었다.
“이작 씨.”
-네, 말씀하세요.
“저 일단 다큐멘터리 다 봤는데요…….”
-그러셨군요. 다른 것도 더 보셨습니까?
“아뇨, 아직은 김성희 님에 대한 것만 봤어요.”
-그럼 한번 연락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김성희 님이 지금… 아마 크게 바쁘지 않으실 겁니다. 한번 연락드려 보세요.
“해, 해 볼게요.”
-네. 저는 지금 좀 급한 일이 생겨서 아마 저녁쯤에 돌아갈 듯합니다.
지원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오후 5시라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으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다시 연락 주세요.
“네.”
통화가 종료되었다. 지원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김성희에게 연락해 볼 차례였다. 연락해서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여기에서 생각이 조금 멈추기 시작했다.
김성희와 자신은 아무래도 살아온 세계가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공통의 화제도 딱히 없는 것 같고 그걸 찾기 위해 시간을 쓰는 걸 싫어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김성희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너무 고민하는 것도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지원은 과감하게 김성희에게 통화를 걸었다. 평범한 신호 연결음이 들렸다. 지원의 손에서 땀이 조금씩 솟았다. 긴장되었다.
-뭐야.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원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성지원인데요.”
-알아. 왜?
“아…….”
할 말이 정말 생각이 안 났다. 지원은 눈을 꾹 감고 생각나는 화제를 아무거나 꺼냈다.
“홍보 영상 보셨나요?”
-홍보 영상?
아, 실수였나. 지원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라고 말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지원은 더듬더듬 말의 조각들을 꺼내서 이었다.
“교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서요…. 그, 그러니까, 너무 싸 보이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들요.”
-기다려. <행복의 나라> 홍보 영상 뜬 거 있어?
김성희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 통화가 뚝 끊겼다. 지원은 핸드폰을 든 채로 무릎을 꿇고 기다렸다.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하고 행동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렸다.
잠시 후, 김성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지원은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김성희는.
-이거 보여 주려고 전화했냐? 하하하.
목청이 터지도록 웃고 있었다. 지원은 부끄러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왜 하필 이 동영상이 생각났던 걸까. 이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별로인가요……?”
-아니, 아주 좋아. 잘했어.
김성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잘…했나요?”
-내가 말했지. 넌 잘하고 있다고. 이작이 가끔 짜증 나는 면이 있어도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혀. 강아지 콘셉트, 아주 잘 어울리니 좋던데.
“아…….”
너무 긴장한 탓일까. 지원은 조금 울 것 같았다.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까 속이 간지럽고 부끄러웠다. 잘했다는 그 말 한 마디에 꽉 막힌 피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운 기분을 기쁜 기분이 점점 덮고 있었다.
“저, 정말 너무 떨려서…. 걱정됐어요.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뭘 걱정해.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 쏟지 마. 반응도 좋은 것 같던데. 내 생각에는 2탄을 찍어야 할 것 같아.
“네? 2탄이요?”
-그래. 이건, 흠. 상의해 보고 연락 주지.
“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뭔가 일을 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은 머쓱했다. 어쨌든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은 좋았다.
잠시 후, 저녁쯤에 돌아올 거라고 하던 이작이 돌아왔다.
“교주님.”
오자마자 지원을 찾았다. 지원이 침대에서 꾸물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이작은 약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일찍 오셨네요?”
“김성희 님과 통화하셨어요?”
“네. 저 그런데 오늘 저녁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김성희 님이 내일 당장 스케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요?”
“네. 홍보 영상 2탄을 찍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
전화로 했던 그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작은 지원의 손을 붙잡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네?”
“이건 정말 큰 기회예요.”
“그렇게나 좋은 기회인가요?”
“당연하죠. 2탄에는 김성희 님이 직접 기획하고 출연까지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네……?”
지원의 얼굴이 다시 새하얗게 질렸다. 그건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2탄이라고 해봐야, 원래 찍었던 것처럼 찍는 건 줄 알았는데. 김성희랑 같이 찍게 된다니?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오늘 밤 새서 내일 촬영 준비해야 합니다. 교주님은 푹 쉬세요. 컨디션이 좋으셔야 하니까요.”
“아니, 저. 내일요? 내일 당장요?”
“김성희 님이 얼마나 바쁜 분이신지 아십니까? 내일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아니면 다음 주까지 미뤄야 해요. 반응 좋을 때 빨리 이어 가야 합니다.”
“아, 네…….”
이작의 말에 지원은 조금 기가 죽었다. 김성희가 생각보다 훨씬 바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 이작은 그런 지원의 심리를 바로 눈치챘다.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교주님도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런 김성희 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게 만드셨으니까요.”
“그런가요.”
“그럼요. 내일 촬영 준비 완벽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원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얼떨떨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촬영이 결정된 후 이작은 계속 바쁜 것 같았다. 준비를 한다고 했으니 어떤 촬영을 하는지 그런 걸 정하는 모양이었는데 아직 지원에게는 아무것도 전달된 바가 없었다. 지원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가져다준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침실 밖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서 밖으로 나가니 이작이 아직 일을 하는 중이었다.
“이작 씨.”
“깨셨군요.”
이작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자기 전에는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던 슈트가 흐트러져 있었다. 넥타이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원은 바닥에 떨어진 넥타이를 주워 주었다. 이작은 넥타이를 건네받으며 한껏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더 주무세요.”
“아니에요.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그럼 한… 30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네요.”
고작 30분을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다니. 지원은 기분이 기묘해졌다. 지원은 이작의 건너편에 앉았다.
아마도 오늘 김성희와 촬영을 하게 된다면, 분명히 섹스로 이어질 것이다. 그걸 찍는 거겠지. 마치 포르노 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찝찝하면서도 깔끔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김성희는 지원에게 이작을 믿지 말라고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놈이라고. 그 말이 맞았다. 지원은 이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이작은 김성희의 촬영 제안을 받고 분명하게 기뻐했다. 좋은 기회라며 밤을 새서 촬영을 기획하고 있지 않은가. 지원은 혼란스러웠다. 이작은 자신과 김성희가 섹스하는 게 좋은 걸까. 그게 매출로 이어지니까? 그럼 이작에겐 뭐가 이득인 걸까? 지원은 의문이 들었다. 이작은 인센티브라도 받는 걸까. 그걸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
노트북을 붙잡고 열심히 대본을 짜던 이작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작업이 다 끝난 모양이었다. 이작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시고, 지원 옆에 바짝 붙어서 앉았다. 그러고는 피곤에 찌들어서 늘어진 몸을 지원에게 기댔다. 이작의 뺨이 지원의 어깨에 닿았다. 지원은 살짝 놀랐다.
“이작 씨.”
“30분만요.”
이작은 눈을 감았다. 가느다랗고 촘촘하게 돋아난 속눈썹이 가까이에서 보였다. 지원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이 되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원은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이작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양손 사이에 이작의 손을 넣고, 길쭉하지만 마디가 돋아 있는 손가락을 주물럭거렸다. 이작은 정말 피곤한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원은 신을 믿지 않지만, 천사가 있다면 그건 아마 이작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섬세하고 화려한 인상의 미남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지원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기다란 팔다리와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성기도.
수많은 말이 지원의 속에서 들끓다가 사라졌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30분이라는 시간은 길면서도 짧았다. 알람을 맞춰 두었던 건지 이작의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이작은 순식간에 눈을 떴다. 지원의 손 안에 끼워 두었던 손이 빠져나갔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이작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촬영 준비는 이전의 것보다 좀 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장소는 김성희가 종종 머무르는 교단 안의 또 다른 교주실이었다. 상주하고 있는 지원의 교주실보다 훨씬 화려하고 규모가 컸다. 그의 돋보이고 싶어 하는 성격이 보이는 부분이었다.
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되고, 조명까지 설치되었다. 자신이 돋보일 부분이라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는 김성희다웠다. 김성희는 예의 하얀 슈트를 입고 등장했다. 그의 뒤로 수행원 같은 교인들이 다섯 명쯤 따라왔다. 교주실 안은 여러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지원 역시 김성희의 지시에 따라 준비를 하고 온 상태였다. 몸을 씻고, 그가 준비한 옷을 입었다. 아니, 이것을 옷이라고 부를 수 있나? 지원은 난감했다.
지원이 입고 있는 것 중 천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 없었다. 지원은 입에 재갈을 물고 검은색의 가죽끈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강아지 귀 모양의 머리띠를 착용했다.
재갈이 물린 탓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벌어진 턱이 아팠다. 몸에 둘러진 가죽끈은 움직임을 제한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속옷을 대신해서 성기 위에 씌워진 캡은 몸을 저절로 웅크리게 만들었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김성희가 커다랗고 화려한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김성희는 지원에게 손짓했다. 지원은 사전에 무릎으로 걸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므로 엉금엉금 기어서 김성희의 발밑으로 다가갔다.
김성희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위쪽에 겹쳐진 발로 지원의 턱을 툭툭 쳤다. 지원의 고개가 위로 들려지며 김성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교주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신다는 소리를 뒤늦게 들었습니다.”
“아으…….”
“진작 알려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좋아하지 않는다. 지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성희가 더 빨랐다. 그는 지원의 목에 채워진 목줄을 잡아당겼다. 가죽끈이 팽팽해지며 지원의 목이 막혔다.
“켁!”
“쉿. 강아지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듣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목이 졸려서 순간적으로 지원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김성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의자에 지원의 상체를 기대게 하고 허리를 길게 빼서 엉덩이를 내밀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성희의 손에 쥔 것은 목줄이었다. 목줄이 목을 옥죄는 괴로움에 지원은 도망가려 몸을 움직였으나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착하지.”
“큭…….”
무서웠다. 그때의 통증과 쾌락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원이 겁에 질린 표정을 할수록 김성희는 입꼬리를 당기며 웃을 뿐이었다.
“귀여워하러 와 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와 줬는데 뭐가 불만이야.”
“아으…….”
그건 이작이 시켜서 한 말일 뿐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원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성희는 강아지 꼬리 모양 딜도의 털 부분을 지원의 몸에 살살 문지르며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폭 패인 겨드랑이와 도드라진 젖꼭지, 허리를 살살 훑을 때마다 지원의 몸이 움찔거리며 튀었다.
“우리 교주님이 어떤 교주님이신데. 친절히 귀여워해 드리죠.”
김성희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거친 목소리가 교주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김성희는 들고 있던 강아지 꼬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런 것은 김성희의 성미와 맞지 않았다.
김성희는 지원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옆으로 잡아당겨 벌렸다. 꼭 다물린 구멍을 보고 입맛을 다신 후 팔을 뻗자 수행원이 손 위에 젤과 콘돔을 올려 주었다. 김성희는 콘돔 포장을 이빨로 물어뜯고, 바로 바지 지퍼를 내려 성기를 꺼냈다.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에 콘돔을 끼웠다. 그 위에 젤을 대충 치덕치덕 발랐다.
잔뜩 흥분해서 흉흉해진 귀두 끝을 지원의 구멍 위에 문질렀다. 지원의 구멍이 지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기대하며 조금씩 우물거렸다. 김성희는 감탄했다.
“그렇게 좆이 먹고 싶어?”
“으으…….”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김성희는 성의 없이 구멍 위를 대충 귀두 끝으로 문지르더니 푹 소리가 나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조금의 경고도 없었다.
“아으!!!”
장기가 위로 밀려나는 듯한 거북감과 함께 김성희의 성기가 지원의 안으로 쑥 들어갔다. 온몸이 순식간에 멈춰 버렸다.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지원의 몸이 벌벌 떨렸다. 재갈이 채워진 입으로는 숨쉬기가 힘들어서 숨이 가빴다.
“교주님 구멍은, 큽. 늘 처음 같으십니다.”
김성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감상을 늘어놓았다. 빠듯하게 성기를 조여 오는 구멍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김성희는 지원의 목에 채워진 목줄을 손에 말아 쥐었다. 그러고는 지원을 달랬다.
“쉬- 착하죠. 아무리 좆이 좋아도 잘라먹으면 안 돼. 버릇없잖아. 응?”
“큭, 크응…….”
입이 막히고 콧소리만 나오니 정말 강아지 같은 소리가 났다. 지원은 낑낑거리며 김성희의 성기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김성희에게는 그다지 자비가 없었다. 그는 허리를 조금 뒤로 뺀 후, 퍼억 소리가 나게 성기를 다시 끝까지 집어넣었다. 지원의 허리가 쭉 펴지며 파들파들 떨렸다. 순식간에 성기를 콱 조이는 쾌감에 김성희가 목줄을 잡아당기며 경고했다.
“컥!!”
“힘 풀어.”
뒤로 빼내기에도 뻑뻑할 정도로 세게 조여 대고 있었다. 지원은 힘을 풀고 덜 조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퍽, 퍼억, 퍽. 지원의 몸이 볼품없이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김성희는 목줄을 잡아당기며 지원이 정신을 차리도록 했다. 지원은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이 올 때마다 구멍을 조이면서 김성희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수간은 취미가 없지만.”
“카윽, 악, 하윽!”
“교주님 같은 강아지는… 키워 보고 싶네요.”
김성희는 강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정말로 잡아먹힐 것 같아서 두려웠다. 성지원이라는 인간의 존재감이 김성희라는 인간에게 완전히 짓눌리고 있었다.
지원의 얼굴은 줄줄 흐른 눈물로 엉망이었다. 머리에 끼워 둔 강아지 귀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한참을 퍽 퍽 소리가 나게 박아 대던 김성희가 허리 짓을 멈췄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서 부르르 떨렸다. 그는 지원의 안에 사정했다.
“후우…….”
지원은 조금 안심했다. 이대로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김성희는 지원의 허리를 붙잡고 끌어당겨 지원의 안에 더 깊숙하게 성기를 밀어 넣었다. 지원의 몸이 파들파들 떨리고 재갈이 물린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아으, 아, 아아으아…….”
이 순간 지원은 인간의 말을 할 줄 몰랐다. 정말로 한 마리의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김성희는 지원의 가슴을 주무르고 젖꼭지를 매만지면서 감상을 말했다.
“우리 강아지가 수캐가 아니라 암캐였나? 가슴이 커진 것 같네.”
“아으으, 아, 응!!”
깊숙이 박힌 채로 가슴이 만져지니 온몸이 쾌감으로 저릿저릿했다. 김성희는 골반을 위로 퍽퍽 쳐 대면서 지원의 안을 자극했다. 꿰뚫린 아래가 아프면서도 동시에 쾌감이 퍽퍽 튀었다.
김성희는 지원을 위로 쑥 들어 안에 들어간 성기를 빼냈다. 정액으로 질척해진 콘돔을 잡아 뺀 후 바닥에 철퍽 던졌다. 다른 교인이 새 콘돔을 건넸지만,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개는 한 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잖아. 우리 교주님은 몇 마리를 낳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어.”
지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리였다. 자기는 남자이고, 강아지는 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김성희는 조금 진심 같았다. 그는 콘돔을 끼지 않은 성기를 지원의 안에 다시 밀어 넣었다.
“카윽, 컥!!!”
젤로 인해 미끌거리고 질척해진 안으로 성기가 쭈욱 들어갔다. 김성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콘돔을 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지원의 내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내벽이 김성희의 성기를 꼭 조이면서 쫀득하게 달라붙었다.
“씨발, 이거…….”
김성희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다. 지원과 처음으로 섹스했을 때의 이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여러 명과 섹스를 했지만 이런 감각은 느낀 적이 없었다.
“존나 타고났네…….”
“커윽, 아으아…….”
지원이 괴로워서 몸부림칠 때마다 오히려 성기를 꼭꼭 씹으며 삼켜 먹었다. 김성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다시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지원의 내부를 마음껏 맛봤다.
“이런 구멍은, 진짜 처음입니다. 진짜로, 큭. 하아…. 너무 좋네.”
“하으아아…….”
지원의 정신 역시 혼미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지원과 김성희의 섹스를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작이었다. 팔짱을 낀 채로 지원과 김성희의 섹스를 지켜보고 있는 이작의 표정은 조금 심각했다.
‘왜 말리지 않는 거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원은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이 가죽끈으로 구속되어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입이 막혀서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쾌감까지 느끼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김성희는 지원의 내부에 사정했다. 그러고도 슬슬 허리를 움직이며 다시 성기를 세우기 시작해서 지원은 경악했다. 젤과 정액이 뒤섞여 질척한 액체가 접합부 사이로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김성희는 그 액체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질척거리면서 늘어나는 액체를 카메라에 담게 했다.
“교주님의 뒤를 지금은 저만 귀여워해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으으으…….”
“다른 분들도 꼭, 귀여워하러 와 주십시오.”
김성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지원은 소파 손잡이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몸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이루지 못했다. 지원은 결국 눈에서는 눈물을,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시 기절하고 말았다.
김성희는 정신을 잃은 지원을 붙잡고 계속 허리 짓을 해 댔다. 보다 못한 이작이 촬영 감독에게 촬영 중단을 요구했다. 김성희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씨발, 한참 좋은데 왜 끊어.”
“기절하셨잖아요.”
이작은 지원에게 다가갔다. 평소보다 더 새하얗게 질린 육체가 힘없이 늘어진 게 보였다. 이작은 감독에게 지시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죠.”
“누구 맘대로!!”
짜증 난 김성희가 결국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교주실을 울렸다. 이작은 지원을 붙잡고 아직도 안에서 자리 잡고 있는 김성희의 성기를 빼냈다. 성기가 빠져나오면서 질척한 액체가 구멍 사이로 주륵 흘렀다.
“한 번 쓰고 버릴 거 아니잖습니까.”
“너 이 새끼가.”
“다음에 또 쓰러 오세요.”
이작은 기절한 지원을 훌쩍 들어 품에 안았다. 축 늘어진 몸은 무거웠지만 그럭저럭 들 만했다. 촬영 팀들은 슬금슬금 이작과 김성희의 눈치를 봤다. 이작은 감독에게 물었다.
“촬영 분량은 다 뽑았습니까?”
“아, 넵. 그건 이미 다 찍었습니다.”
감독이 김성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김성희는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르고 말했다.
“…후. 그럼 여기까지 하지. 정리해.”
김성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풀지 못한 성욕이 남아서 찝찝했지만 이작 말대로 기절한 사람을 붙잡고 더 이상 하는 건 못 할 짓 같았다. 아니, 사실은 더 하고 싶었다. 몰아붙여서 정신을 차리게 한 후 촬영을 핑계로 더 박아 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작의 말도 맞았다. 한 번 쓰고 버릴 거 아니니까. 앞으로 또 쓰러 오면 된다. 기절한 지원을 품에 든 이작은 교주실을 나갔다.
김성희가 아직 죽지 않은 성기를 덜렁거리고 있자 한 교인이 와서 정성껏 김성희의 성기를 수건으로 닦은 후, 입으로 빨아 주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응? 미안.”
김성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교인의 뒤통수를 붙잡고 앞뒤로 퍽퍽 움직였다. 교인의 목구멍 끝까지 성기가 들어갔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김성희는 눈을 질끈 감고 공포와 쾌락에 벌벌 떨던 지원을 떠올렸다. 그리고 세 번째로 사정했다.
사정을 마치자 교인은 수건에 김성희의 정액을 뱉었다. 그러고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수고했어.”
“김성희 님의 성기를 빨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성희는 정성껏 성기를 빨아 준 교인을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은 교인은 기뻐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김성희의 기분은 미묘했다. 목표로 했던 분량도 뽑았고, 다 좋은 것 같은데 어딘가 찝찝했다. 아무래도 지원이 기절한 탓에 끝까지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김성희는 이작과 지원이 사라진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다.
이작은 지원을 데리고 원래의 교주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정신이 돌아온 지원은 훌쩍거렸다. 이작은 지원의 입에 채워 둔 재갈을 풀어 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원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흐윽, 흡, 끅.”
아팠다. 쾌락은 지독했고 고통은 끔찍했다. 섹스하는 것보다 입이 막히고 목이 조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하는 지원을 보며 이작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작은 지원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가죽끈들을 풀어 주었다. 끈의 안쪽은 부드러운 재질로 되어 있어 자국이 남지 않았지만 목에는 선명하게 붉은 자국이 남았다. 김성희가 흥분해서 목줄을 여러 차례 끌어당겨 목을 졸랐기에 남은 흔적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흡.”
지원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죽는 줄 알았다. 목이 졸리고 쾌감에 질식되어 죽음의 문턱을 올라갔다 내려온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싶었다. 김성희는 섹스를 좋아하는 만큼 경험이 많은 인간이라고 했다. 프로라고 했다. 그런 김성희가 합의도 없이 이렇게까지 상대를 봐주지 않고 섹스할 줄은 몰랐다. 정말 한 마디의 예고도 없었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펑펑 쏟아졌다. 서럽고 서러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원을 바라보던 이작이 지원의 마른 등을 쓰다듬으며 끌어안아 주었다.
“영상은 사용하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사전에 기획된 시나리오와 달랐습니다. 김성희 님의 독단적인 행동입니다. 이 건은 철저하게 대응해서.”
“…니에요.”
“네?”
“그냥, 써요.”
“교주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다시 찍는 게 더 싫으니까…, 그냥 써 주세요.”
재촬영을 한답시고 다시 또 김성희와 이런 과격한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은 김성희를 또 보는 것이 무서웠다. 지원은 이작의 품에 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처음 이작이 기획한 시나리오는 가벼운 본디지 플레이였다. 몸에 두른 가죽끈과 목줄은 그저 구미를 돋게 하기 위한 장식일 뿐이었다. 김성희가 지원에게 수치스러운 말과 행동을 요구하면, 지원은 그 말을 부끄러워하면서 따르는 정도로 기획했다. 플레이의 순서도 대본을 작성하여 보냈다. 때문에 김성희가 정말로 목줄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여러 번.
이건 이작의 불찰이었다. 진짜 도구를 사용할 게 아니라 가짜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 정말로 사용하려고 하면 망가지게끔 해야 했다. 이작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알겠습니다. 교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옆에서 잘 보좌해 드려야 했는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
지원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체력이 전부 다 빠진 것 같았다. 이작은 지원을 데리고 욕실로 가서 씻긴 다음 침대에 눕혀 주었다. 그리고 지원이 완전히 잠에 빠져들고 나서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침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작은 지원이 깨지 않게 조용히 침실을 나왔다. 불청객이 와 있었다. 교주실의 소파에 김성희가 앉아 있었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아주 불쾌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작은 커피를 준비하며 태연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아직 안 가셨군요. 기다리세요. 마실 것을 드릴게요.”
“성지원 어딨어? 나오라고 해.”
“기절한 사람이니 좀 쉬게 해 드리죠. 하고 싶으신 말은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탁. 이작이 얼음으로 꽉 찬 아이스커피를 김성희의 앞에 내놓았다. 김성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이 아무리 봄이라지만 이 정도로 날씨가 덥진 않았다. 아무래도 빨리 마시고 꺼지라는 뜻 같았다.
김성희는 불쾌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알았기에 얌전히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목을 타고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자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사과하려고 왔다.”
“네?”
“미안하다고 하려고 왔다고. 그러니까 성지원 깨워서 데리고 와.”
“안 됩니다.”
이작이 거절하자 김성희의 표정이 거칠게 구겨졌다. 김성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침실 앞으로 걸어갔다. 쿵쿵,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김성희 님!”
지원은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온몸이 아프고 목이 욱신거렸다. 아파서 다시 잠들고 싶었다. 진통제를 달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김성희가 더 빨랐다. 김성희는 침실 문을 벌컥 열었다.
“안 자고 있었네.”
“…….”
김성희는 지원을 바라보았다. 지원은 차마 김성희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다만 뒤에서 걸어오는 이작을 볼 뿐이었다. 이불을 온몸에 돌돌 감싸고 이작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나가 주세요.”
“너나 나가.”
“김성희 님.”
이작이 단호하게 말했지만 김성희는 손을 휘저으며 무시했다. 성큼. 김성희가 침실 안으로 발을 딛자 지원이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김성희는 지원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지원이 놀라 몸을 뒤로 빼다가 침대 밖을 벗어났다.
“교주님!”
이작이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지원을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이불을 몸에 말고 있어서 다치진 않았지만,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씨발…….”
김성희는 이 상황이 짜증 났다. 기껏 사과하려고 왔는데 아직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니까 불쾌했다. 더 불쾌한 것은 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꼴리기 시작한 자신이었다. 이런 데에 취미가 있었나. 김성희는 스스로 물었다.
남자 여자 상대를 가리지 않는 김성희였지만, 그는 늘 쌍방 쾌락을 추구했기에 서로 즐거운 플레이를 했다. 아까처럼 강제로 하는 것은 김성희의 철학과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고 말았다. 최악이었다.
“미안하다.”
“…네?”
김성희의 사과를 받은 지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서 이작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김성희는 그 모습이 같잖아서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목적은 달성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네가 반응하는 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해 버렸네.”
“아…….”
“너도 싫으면 싫다고 하지 그랬어. 난 너도 즐기는 줄 알았지. 아무튼 미안하게 됐다. 많이 아파?”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많이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그리고 김성희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말하려고 했는데 입을 막아 두셨잖아요. 말 못 하게…. 전 싫었는데…….”
“나도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했잖아.”
“그치만…….”
이게 사과인가? 지원은 어이가 없었다. 김성희는 오히려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자고로 한국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었고, 김성희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너도 그럼 꼴리게 하지 말았어야지. 응? 그렇게 잘 조여 댔으면서 싫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네가 기절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을걸?”
“네?”
“네가 너무 잘 조인 건 사실이잖아. 씨발. 아직도 꼴린다고. 오히려 끝까지 못 해서 찝찝한 건 나야!”
김성희가 쩌렁쩌렁하게 소리치자 지원은 움츠러들었다. 상대가 저렇게까지 나오니까 자신이 잘못한 건가 싶었다. 기절해 버려서, 김성희를 끝까지 만족시키지 못한 게 그렇게 나쁜 짓이었나…….
지원은 이작을 바라보았다. 그가 답을 내주기를 바랐다. 이작은 작은 목소리로 지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충 알았다고 하고 넘어갑시다.”
“…….”
“김성희 님 화나면 무슨 일 하실 줄 알고요.”
맞는 말이었다. 이 교단에서 절대자인 김성희의 비위를 거스르면 안 되니까 이쯤에서 굽히는 게 옳았다. 무엇보다 김성희를 살살 어르고 달래면 빚을 한 번에 청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주님.”
이작이 옆에서 보챘다. 지원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알겠어요.”
“뭐?”
“알겠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 주세요. 저도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요.”
“하.”
김성희가 혀를 찼다. 지원은 말실수를 했나 싶었지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라서 가만히 있었다. 김성희는 잠시 말이 없더니 머리를 거칠게 넘기며 말했다.
“그럼 이걸로 마무리 짓자.”
“네.”
“괜히 이 일로 이제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게 하자고.”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사과인가 싶었다. 안 받는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했지만 상대가 김성희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리 와 봐.”
김성희가 지원에게 손짓을 했다. 지원은 이불을 여전히 몸에 감싼 채로 일어나 김성희 앞으로 쪼르르 와서 섰다. 김성희는 거친 손바닥으로 지원의 양 볼을 쥐고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예상외의 행동에 지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가볍게 꾹 눌려진 입술이 떼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키스도 안 했잖아.”
“…네?”
“앞으로 잘해 보자.”
김성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원의 입가를 슥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 잠시 후 교주실의 문이 열렸다가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지원은 얼이 빠져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래도 교주님이 정말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사과까지 하시고.”
이작이 뒤에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 거 같지 않습니까?”
지원은 대답해 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이작은 침대에 걸터앉아 지원을 재촉했다.
“교주님?”
“잘래요.”
지원이 입을 꾹 다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작은 지원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교주님 잊지 마셔야 합니다. 김성희 님을 이용하셔야 해요.”
“…알아요.”
“적당히 비위 맞춰 드리는 거 힘들겠지만 노력합시다.”
“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일단 약이라도 지어 드려야겠네요. 자꾸 기절하셔서 저도 너무 속상합니다. 내일 사람을 부를게요.”
“이것도 빚에 포함되는 거죠?”
“투자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작의 시큰둥한 말투와는 별개로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웠다. 지원의 가슴이 이상하게 쿵쾅거렸다.
“저 원래 이렇게 약하지 않아요. 군대도 갔다 왔고요.”
“압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에는 누구나 체력 소모가 심한 법이죠.”
“…….”
지금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진 동정이었다고 놀리는 건가. 지원은 조금 헷갈렸다.
“그러니까 지금은 푹 쉬세요. 앞으로 더 힘드실 일이 많을 겁니다.”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둘 다 입니다.”
이작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지원은 짜증이 났지만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작은 가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그의 엉뚱한 면이 지원을 웃게 만들었다.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저기, 저 아까 김성희 님이랑 한 게 첫 키스였어요.”
“그게요? 그건 키스라고 보기도 어려운데요.”
“…….”
짜증 난다. 이작의 솔직한 말에 지원은 기분이 조금 상했다. 이작은 작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건 입맞춤이고… 진짜 키스는 다릅니다.”
“안 해 봐서 몰라요. 어차피 저는 여자한테 인기도 없었거든요.”
“남자한테는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없었어요.”
지원이 질색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이작은 허리를 숙여 지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진짜 키스를 알려 드릴까요.”
“…네?”
이작의 입술이 지원의 입술에 닿았다. 지원은 이게 아까 김성희랑 한 것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이작은 지원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가볍게 물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살짝 열려진 입술 사이로 이작의 혀가 파고들었다. 이작의 혀는 지원의 말랑한 입안을 실컷 헤집었다. 지원은 순간적으로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공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정신없게 입안을 헤집던 혀는 금방 빠져나갔다. 어쩐지 그게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아셨죠? 아까 그거는 키스가 아니에요.”
이작이 입술에 묻은 침을 슥 닦으며 말했다. 지원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첫 키스를 하기도 전에 첫 섹스를 먼저 하신 거네요.”
“아니 그건…….”
“음란하셔라.”
스물일곱 살 때까지 키스도 한 번 안 해 봤는데 음란하다고 놀림당하다니.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니.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제 처지가 어이가 없었다.
* * *
다음 날, 이작이 말한 대로 의사가 왔다.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든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제가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서 교주님을 도와드릴 분을 구했습니다. 마침 의대를 나오셔서 의사 면허도 있으시다고 해요. 주치의가 되어 교주님의 건강을 돌봐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몸 상태가 좋아지실 때까지는 옆에 계실 겁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재민이라고 합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정말, 정말 영광입니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낀 의사는 지원보다는 조금 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교인이지만 동시에 의사여서 그런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지원은 하얀색 교주복을 입고 있었다. 기장이 발목까지 오고 칼라가 목 끝까지 올라와 있는 옷이지만, 목과 허리에만 단추가 있고 가슴팍에는 없어서 가슴이 훤히 보이는 이상한 옷이었다.
이작의 말로는 지원의 체형과 매력을 잘 살리기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옷이라고 했다. 지원은 이 옷은 또 얼마짜리인 건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빚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교주님이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말수가 적으십니다. 편하게 해 드리세요.”
“네. 물론입니다.”
윤재민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해맑은 미소였다.
“제가 인수인계를 해 드려야 하는데…. 아.”
이작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이작은 윤재민에게 말했다.
“김성희 님의 호출이네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교주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교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이작은 지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교주실을 나갔다. 교주실 안에는 윤재민과 지원 둘이 남았다.
지원을 본 윤재민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윤재민은 <어머니의 나라>의 열렬한 교인으로, 특별 권리를 얻어 <행복의 나라>의 새로운 교주 대면식에 갔었다. 그곳에서 보았던 교주님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고 모실 권리까지 얻게 되다니. 믿기가 힘들었다.
하얀 교주복을 입고 머리에는 하얀 베일까지 두른 지원은 말 그대로 신이었다. 하얀 교주복의 가슴팍, 갈라진 틈새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살결은 윤재민을 미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젖꼭지가 보일 것 같은데…. 윤재민이 자신의 가슴을 뚫어져라 보는 걸 느낀 지원은 몸을 조금 웅크렸다.
‘역시 부끄러워.’
저 남자는 자꾸 왜 가슴을 보는 걸까. 아무것도 없는데. 지원은 이 상황 자체가 부끄럽고 피하고 싶었다. 윤재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저기.”
“네!”
“의사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면허가 있습니다.”
윤재민은 묻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줄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아까 들으셨겠지만, 윤재민입니다. 재주 재에 옥돌 민을 씁니다. 뛰어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 주신 이름이지요. 아, 제 나이는 서른셋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형이 한 분 계십니다. 형님께서는 약대를 나오셔서 약사를 하고 계시고요.”
“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모님 아래에서 컸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을 대하는 데에 익숙한 편입니다.”
“그래요…….”
“교주님은 저번 대면식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부터 교주님을 정말 모시고 싶었습니다.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대면식이라고 한다면, 교인들 앞에서 다리를 벌린 채 성기를 빨렸던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때가 생각나서 지원은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끌려서 대면식을 진행했던 그때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자꾸 기절하시고, 쓰러지신다고요.”
기분이 이상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다 이유가 있었던 일들인 것 같다. 그 일들이 없었다면 쓰러질 일도 없었을. 게다가 전부 이 교단으로 와서 생긴 일들뿐이지 않은가.
“교주님의 몸이 상하시는 건 안 될 일입니다. 교주님은 모두에게 행복을 나눠 주시는 존재인데, 교주님이 우선 행복하셔야 합니다. 교주님의 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신앙심이 지나치게 열렬한 사람인 것 같았다. 지원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이작이 그럴싸하게 포장해 준 겉포장에 속아서 자신을 교주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데.
“조심하신다고 하셔서 될 일이 아닙니다. 우선, 이작 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신체검사를 하겠습니다.”
“신체검사요?”
“네.”
그런 걸 하라고 했었나…. 들은 적이 없었지만 의사에게는 검사를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윤재민은 가져온 가방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펼쳤다. 익숙한 여러 의료 기기들이 보였다. 면허도 있다고 했고, 도구를 늘어놓으니까 신뢰가 갔다.
“교주님.”
“네.”
“검사를 하기 위해서, 탈의해 주시겠습니까?”
바닥에 무릎 꿇고 앉은 채로 윤재민이 부탁했다. 지원은 그의 반짝거리는 안경에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윤재민이 다시 말했다.
“전부 벗어 주십시오.”
“…네?”
전부 벗으라고? 원래 신체검사를 그렇게 하나? 지원은 조금 의아했다. 그 의문에 윤재민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원래 병원에서는 가운으로 갈아입지만, 제가 부득이하게 가운을 챙겨 오진 못해서요.”
“아…….”
조금 납득이 갔다. 다들 신체검사는 가운을 입고 하지. 하지만 가운이 없다면 할 수 없다. 어차피 여기에는 윤재민과 자신 둘뿐이니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이 옷은 혼자 입고 벗을 수 없어서요. 도와주세요.”
“물론입니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란 옷자락이 바닥에 쓸렸다. 뒤를 돌아 등을 보여 주었다. 등에는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었다. 윤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원의 등 뒤에 섰다. 그리고 등을 가린 베일을 걷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톡 톡. 단추 푸는 소리가 교주실 안에 울렸다. 지원은 어쩐지 등 뒤가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윤재민은 지금 흥분 상태였다. <행복의 나라> 교주님을 실제로 만난 것 자체도 흥분할 일인데, 그 교주의 옷을 직접 벗기고 있었으니까. 숨이 가빠지고 뜨거워졌다. 차분하게 단추를 풀던 손이 떨려 몇 번 손길이 어긋났다.
윤재민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열심히 집중하여 모든 단추를 풀어냈다. 단추는 엉덩이까지 달려 있었다. 지원의 하얀 등허리와 엉덩이가 조금 보였다. 윤재민은 벌어진 교주복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저기?”
“배가 차가우시네요.”
“네?”
“이러시면 아무래도 건강에 좋지 않죠.”
윤재민은 팔을 끌어당겨 지원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여유가 생긴 팔을 위로 헤집어서 지원의 가슴팍을 만졌다.
“아……!”
지원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윤재민의 손가락 사이에 지원의 젖꼭지가 끼워졌다. 윤재민은 말랑한 젖꼭지가 단단해지도록 손끝으로 문지르며 튕겼다.
“다행히 가슴은 작으시지만 젖꼭지는 크신 편이네요. 잘 서는 것 보니 제 기능을 하는 것 같구요.”
“으, 자, 잠시만요. 이게 무슨…….”
이게 무슨 신체검사란 말인가. 윤재민은 잠시 손을 빼서 지원의 어깨에 걸쳐진 교주복을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교주복을 다 벗겨 냈다. 지원은 머리에 하얀 베일을 쓰고, 양말과 구두만 신고 있었다. 동그란 엉덩이가 바로 보이자 윤재민은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었다.
“속옷은 입지 않는 편이 좋지요. 혈액순환을 방해하니까요. 혈액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기절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저기, 이제 그만해요. 이건 신체검사가 아닌 것 같아요.”
“아닙니다. 맞습니다. 교주님은 신이시니까요. 신의 몸을 제가 감히 검사해 드리는 겁니다.”
윤재민은 지원을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허벅지를 움켜쥔 채로 빠르게 옆으로 벌렸다. 말랑한 성기가 뽀얀 살 가운데에 보였다. 지원은 깜짝 놀라 다리를 모았다. 손바닥으로 성기를 가렸다. 윤재민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아….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교주님의 자지를 빨 기회를 주십시오!”
“네? 뭐라고요?”
“저에게도 행복을 나눠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윤재민은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부탁했다. 지원은 어쩔 줄을 몰랐다.
“교주님. 저희 할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십니다. 가끔 생사의 경계를 오가실 때도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때문에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었지만 현대 의학의 힘으로는 할아버지를 완전히 치료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윤재민 씨…….”
“하지만 교주님은 다르지 않으십니까. 신이시지 않습니까. 행복의 힘으로 뭐든지 가능하지 않으십니까. 교주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교주님은 그 힘으로 저희 할아버지를 낫게 해 주세요.”
그건 지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현대 의학의 힘으로도 안 되는 일을 자신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눈앞의 윤재민은 지원을 누구보다 간절히 믿고 있었다. 지원이 정말 신이라고. 행복의 힘으로 뭐든지 가능한 전지전능한 이라고.
“교주님의 첫 대면식을 보고 난 다음 날, 할아버지의 병세가 좋아지셨습니다.”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지원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교주 자리에 있었고, 이작도 없는 상황에서 괜한 말을 해서 일을 그르치고 싶지가 않았다.
“김성희 님과의 공개 설교를 보고 난 후에는 더 좋아지셨습니다.”
그 또한 우연의 일치일 게 분명했다.
“교주님, 저는 교주님의 주치의 역할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수행하겠다고 김성희 님께 약속드렸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약간의 행복만 있으면 됩니다. 교주님, 행복을 저에게 나눠 주세요.”
윤재민은 다시 머리를 땅에 박으며 빌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작이 있으면 그가 어떻게든 대처해 주었겠지만 지금은 이작이 없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작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한 상황인 것 같았다.
“교주님…….”
지원이 아무 말이 없자 불안해진 윤재민은 지원의 종아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안경이 걸리적거리자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기까지 했다. 윤재민은 울고 있었다. 지원은 자신 때문에 누군가 울기까지 한다고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약해졌다.
“…한 번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성기를 빨리는 일이라면, 여기에 온 처음부터 하지 않았는가. 불행하게도 점점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지원이었다. 지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벌렸다. 윤재민은 지원의 다리 사이에 바짝 가까이 가서 앉았다. 그의 숨결이 맨살에 닿았다.
“교주님 자지는 정말 예쁘십니다. 보송보송하니 복숭아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걸 빨게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정성껏 빨아 드리겠습니다.”
“입 좀 다물어요…….”
지원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교주실의 욕실 안에 비치된 바디워시가 복숭아 향이었다.
“입을 다물면 빨아 드리지 못합니다. 아, 얼른 빨라는 뜻이셨군요. 네, 제 이해가 늦었습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윤재민이 드디어 말을 멈췄다. 그는 지원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고, 성기를 입에 물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입속에 성기가 들어가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윤재민이 혀를 굴려 성기를 핥고, 입천장에 귀두 끝을 비비게 했다.
“읏…….”
츄릅, 츕, 츄웁…. 성기에 침을 묻히고 빠는 행위가 계속되었다. 지원의 허리에 힘이 풀렸다. 발끝이 움찔거렸다. 남자의 성기 빠는 솜씨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집요한 스타일인 것 같았다. 윤재민은 지원의 성기를 입에 가득 머물고 빨면서 자신의 성기 위를 누르며 만져 댔다. 다른 남자의 것을 빨면서 느끼다니. 이 사람도 보통 변태가 아닌 것 같다고 지원은 생각했다.
“아응, 아…….”
지원의 눈에 힘이 풀리고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성기를 빨리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도저히 적응이 될 거 같지 않았다. 윤재민은 지원의 고환을 매만지면서 사정을 유도했다.
“아……!”
예민한 부위를 살살 간지럽히는 감각에 도저히 견디지 못한 지원이 사정을 했다. 남자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침과 지원의 정액이 섞인 액체를 꿀꺽 삼켰다. 지원은 순간적으로 찾아온 쾌락에 저절로 감기는 눈을 치떠서 윤재민을 바라봤다. 그는 정말로 황홀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주님.”
“후으…….”
몸에 힘이 빠졌다. 이러니까 체력이 남아나지를 않는 것이다. 윤재민은 사정을 마친 지원의 성기를 정성껏 핥아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지원의 교주복을 집어 들어 다시 입혀 주었다. 힘이 없어서 그냥 해 주는 대로 몸을 맡겼다. 윤재민은 무척 기뻐 보였다. 수많은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 주면서 빠른 속도로 중얼거렸다.
“교주님의 자지는 정말 맛있고 좋았습니다. 저절로 행복해지는 맛이었습니다. 크기도 두께도 딱 좋았습니다. 교주님께 어울리십니다. 교주님께서는 정말 좋은 성기를 가지고 계세요.”
“제발 입 좀…….”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말이 많은 편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이 많은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걸 좋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요. 교주님,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단추를 다 채워 준 윤재민은 지원의 허리를 잡고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사이가 벌어져 드러나 있는 지원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다음에는 이쪽도 꼭, 부탁드립니다.”
“…안 돼요.”
된다고 할 리가 없었다.
“제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앞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교주님. 교주님을 믿고 따를 것을 약속합니다.”
윤재민은 다시 지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며 신앙심을 되새겼다. 지원은 나른한 눈을 느리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윤재민은 자기도 흥분했으니 자위를 하고 오겠다며 교주실 밖으로 잠시 나갔다. 건물의 화장실을 쓰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교주실 안의 욕실은 지원만 사용하고 있었다.
잠시 후 윤재민이 돌아왔다. 윤재민은 이상하게 교주실을 나가기 전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주님!”
“병원요?”
지원은 나른하고 힘이 없어서 그저 소파에 앉아만 있었다. 윤재민은 지원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 지의, 흑. 상태가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흡. 정말 기쁩니다. 교주님은 정말 신 같으세요. 아뇨, 신이십니다!”
“네?”
지원의 기분이 얼떨떨하고 떨떠름해졌다. 사람의 상태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것일 텐데. 그게 지원의 덕이라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는 윤재민을 보니 기분이 조금 나빴다.
‘진짜 신이 있다면 내가 벌 받는 거 아니야……?’
지원은 그저 빚을 갚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뿐이다. 거창한 대의가 있어서 교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상관없는 게 아닐까? 지원은 그런 생각까지 했다. 눈앞의 윤재민이 너무 기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는 정말 의사 같은, 평범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잠은 잘 주무시고요? 꿈은 꾸시나요?”
“꿈은 거의 꾸지 않아요. 잠은 안 깨고 푹 자는 편이고요.”
“그렇군요. 평소에 불편하신 곳은?”
지원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역시 아까 했던 신체검사를 해야 하니까 옷을 벗어 보란 말은 가짜였구나 싶어서였다.
윤재민은 가져온 차트에 지원의 말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소견을 말했다.
“일단 어디가 크게 아프진 않아 보이십니다. 이작 님 말로는 허약하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가벼운 운동을 시작하시면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네.”
“그러고 보니 저번 공개 설교 때도 김성희 님이 사정하시기 전에 사정을 못 하시던데…. 사정이 좀 느리신 편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면 아직 뒤로 가는 게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러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뒤로 가는 거요……?”
“네. 성기를 만지지 않고 전립선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남자는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쾌감으로 인해 사정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원 님이 아직 경험이 적으시다면 쾌감보다는 고통이 더 크실 수가 있습니다.”
윤재민은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계속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의 흐름에 지원은 기겁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도움이 될 만한 얘기인 것 같아서 계속 들었다.
“김성희 님과 섹스하신 게 처음이라고 하셨지요? 아무래도 처음에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성희 님의 자지가 워낙 큰 편이셔서…. 그래도 교주님은 처음치고는 잘 느끼신 편이죠. 이걸 보통 개발이라고 부르더군요.”
“개…발이요?”
“네. 교주님께서는 잘 개발되실 것 같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몸도 예쁘셔서 보기도 좋은 데다가 잘 느끼기까지 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 주실 수 있습니다.”
윤재민은 좀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홍보 영상도 잘 봤습니다. 아주 반응이 좋았지요. 제가 아는 <어머니의 나라>의 교인분들이 이번에 <행복의 나라>에도 새로 들어가시겠다고 얘기를 많이들 하십니다. 아무래도 김성희 님은 쾌락만을 약속하셨지만, 교주님께서는 행복을 약속하셨으니까 그 점도 다르게 작용한 듯싶습니다.”
“행복이요…….”
“예. 모두 홍보 영상을 빔 프로젝터로 틀어 놓고 함께 자위를 했답니다. 30초도 안 되는 영상이었지만, 정말 잘 느끼고 얼마나 예쁘시던지요.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교주님의 자지를 빨았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지원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이작이 말한 조회수 10만 중에 1만은 윤재민과 그의 지인들이 담당한 것 같기도 했다. 지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저기, 윤재민 씨. 아까 일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제가 교주님께 비공식적으로 행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함부로 말하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일어날 기적들이요! 교주님의 행복을 많은 사람들이 꼭 나누어 받았으면 합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일이었다. 지원은 웃어 줄 힘도 없어서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식단을 조절하겠습니다. 교주님께서는 더 드셔야 한다고 봅니다.”
“식단을요…….”
“네. 고기 위주의 식단으로 변경하겠습니다.”
고기는… 비싸지 않나? 비싼 것을 먹으면 빚이 더 늘어날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영양제 따로 드시는 것 있으실까요?”
“없습니다.”
“그럼 영양제도 필요한 것 위주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특히 추천드리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과 유산균을 우선적으로…….”
윤재민은 말이 많았다. 진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원이 한 마디를 하면 윤재민은 다섯 마디로 돌려주었다. 지원은 좀 피곤해져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지원이 먹을 영양제 종류까지 정하자 지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가 왔다. 이작 아니면 김성희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원은 누군지 확인했다. 김성희였다.
“아…….”
받기 싫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받으세요.”
윤재민 때문이 아니고 그냥 받기 싫은 건데.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빚을 생각하며 참았다. 김성희를 구슬리고 친해져서 나쁠 일이 없었으니까. 지원의 빚은 김성희가 쥐고 있었고 지원은 어떻게든 그 빚을 갚아야 했으니까.
“여보세요.”
-의사는 만났나? 몸은 괜찮고?
윤재민의 이야기였다. 지원이 눈짓을 하자 윤재민이 교주실 밖으로 나갔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렇지. 걔도 보통 애가 아니야.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까 늘 옆에 붙여 둬.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보 영상은 지금 편집 중이야. 늦어도 3일 안에는 공개가 될 거고, <어머니의 나라>에서도 영상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사실 신경 안 써도 돼. 아마 신규 교인이 또 폭발할걸?
“…감사합니다.”
-조만간 2차 합동 공개 설교를 계획 중이니까, 이건 이작한테 전달해 둘게. 아마 이전에 했던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갈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너.
“네?”
-말이 짧다.
갑자기 김성희가 툭, 시비를 걸었다. 지원은 당황했다.
“제, 제가요?”
-그래. 기껏 내가 먼저 전화까지 했는데. 반응이 그게 뭐야? 좀 더 싹싹하게 굴어. 말도 좀 예쁘게 하고.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아무거나 말해 봐. 그래. 다음 공개 설교에 어떤 걸 할지 너도 생각해 봐.
“공개 설교요…….”
그건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공개 설교를 또 하는구나. 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김성희와 섹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이 와닿을 뿐이었다. 지원은 원래 성경험도 없었으니, 아는 것은 더욱 없었다.
-왜 말이 없어?
“어떤 걸 해야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아 그렇지. 너 동정이었지? 하하하.
김성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다.
-싫은 건 안 할게.
“네?”
-앞으로 목줄 그런 거 안 한다고. 나는 좀 강압적인 걸 좋아하긴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뭐가 괜찮은지 네가 먼저 제안해 보라는 얘기야.
“네, 좀 생각해 보고 찾아도 볼게요.”
-그래. 정 모르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 걔 아주 그런 데에 도가 텄을걸?
“그건 좀 싫은데요.”
-왜?
“제가 낯을 가려서요.”
-낯도 가려? 가지가지 하네.
“얼굴도 가려요.”
-하하하.
농담 아닌데 김성희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그 가리는 얼굴에 나는 통과인 거지?
“김성희 님은 솔직히 잘생기셨으니까요.”
-그렇지. 그럼 이작은?
“네?”
-이작하고 나랑 비교하면, 어떤데.
“글쎄요. 너무 타입이 달라서 모르겠어요.”
이작은 섬세한 미남이라면, 김성희는 야성적인 호남형에 가까웠다. 둘은 체형도 생김새도 전혀 달랐다. 비슷한 게 있다면…….
‘둘 다 거기가 무지하게 크다는 거?’
지원은 방금 떠오른 생각이 스스로도 너무 지독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었다.
지원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김성희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냥 이럴 땐 내가 무조건 더 잘생겼다고 하는 거야. 너 사회생활 안 해 봤어?
“김성희 님도 사회생활 6개월밖에 안 하셨잖아요.”
김성희의 지적에 울컥한 지원이 쏘아붙였다. 헉. 지원은 조금 말실수를 한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싶었는데.
-너 내 다큐멘터리 봤구나?
오히려 김성희는 좋아하며 웃었다. 어라…. 좀 얼떨떨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으니까 다행인 것 같았다.
“네. 2편까지 봤습니다.”
-잘 나왔지? 그거 찍는다고 일주일을 굶었어. 그래야 화면발 잘 받는다고 해서.
“네, 잘 나오셨더라고요.”
-너도 한 편 찍어 줘?
“저는… 괜찮습니다.”
지원은 김성희처럼 일대기를 당당하게 펼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일대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뭔가가 있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 아쉽네.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또 보자고.
뚝. 짧은 통화가 끊겼다. 김성희의 기분은 좋아 보였지만, 사실 왜 통화를 한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용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개 설교를 할 예정이나 홍보 영상 편집 중인 건 이작을 통해서 전달해도 충분한 이야기니까.
“왜 전화한 거지. 그냥 한 건가……?”
설마 싶었다. 이작이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는가. 김성희가 얼마나 바쁜 인물인지. 그러면서도 잠깐 시간을 내서 자신에게 통화를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똑똑.
교주실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접니다.”
이작이었다.
“들어오세요.”
지원이 말하자 문이 달칵 열리고 이작과 윤재민이 교주실로 들어왔다.
“김성희 님이 2차 합동 설교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하셔서요. 급히 다녀왔습니다.”
“아…. 방금 들었어요.”
“방금요?”
“네. 전화하셨거든요.”
지원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이작은 잠시 지원의 핸드폰을 보더니 입꼬리를 당겨 미소 지었다.
“아아. 이제 자기는 바쁘니까 니들끼리 알아서 기획 짜라고 하시고는 교주님께 전화를 거신 거군요?”
“어……?”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이었나 보네요. 회의 도중에 나가실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바쁘고 중요한 일이었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윤재민 씨와는 아까 인사 나누고 잠시 진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 별일은 없었습니까?”
“네?”
“제가 알아 둬야 할 일은 없었냐고요.”
알아 둬야 할 일…. 지원은 윤재민을 바라보았다. 윤재민은 여전히 기쁘고 신이 난지 웃고 있었다. 지원이 먼저 윤재민에게 비밀로 하자고 했으니 이작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일이다.
“없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 이 책 받으세요.”
“네?”
이작이 책을 한 권 건넸다. 지원은 책을 받았다. 그 책은 어딘가 낯익은 것이었다. 지원은 중얼거리며 책 제목을 읽었다.
“<황홀한 섹스를 위한 101가지 체위. 제2부>.”
“김성희 님이 꼭 참고하라며 정독을 권유하셨습니다. 아끼는 책이니 조심히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아. 생각났다. 김성희의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이게 2부도 있었나? 지원은 책을 폈다. 양장으로 된 책은 쓸데없이 크고, 종이는 두껍고, 삽화는 풀 컬러였다.
“세상에…….”
안에는 정말 101가지 체위의 방법과 팁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이성 간의 섹스가 아닌 남성 간의 체위였다. 아 이래서 2부구나 싶었다. 인기가 있으니 새로운 버전으로 나온 것이다.
지원은 차마 첫 페이지를 다 읽지 못하고 표지를 덮어 버렸다.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르는 세계의 문을 강제로 열어 버린 기분이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읽고 나서 직접 전화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드는 체위를 골라 달라고도 하셨습니다.”
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김성희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