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축제 (3/10)

3. 축제

지원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기에 일하는 이작의 곁에 있겠다고 했다. 이작은 그러라며 허락해 주었다. 이작은 엉망이 된 교주 옷을 벗겨 주고 평범한 티셔츠와 바지를 건네주었다. 지원은 조금 기뻐졌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강당에서 김성희와 했던 섹스도 카메라에 찍혀 스크린으로 생중계되었지만 그건 강당 안에서만 소비되고 끝이 났다. 하지만 이작과 찍은 영상은 홍보용이라는 이름하에 찍은 것이므로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보게 될 예정이었다. 지원은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만약 빚을 다 갚는다고 해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설마 누군가 알아보면 어떡하지. 살면서 만났던 사람 중 하나는 이 영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원은 문득 그 사실이 두려워졌다.

고민 끝에 지원은 결국 이작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작은 지원의 건너편에 앉아 태블릿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지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소심하게 물었다.

“이작 씨.”

“네?”

“그 영상…,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어떻게 볼 수 있는… 건가요?”

이작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접 보고 싶으세요?”

“아뇨, 아니죠! 절대 안 보고 싶죠!”

“솔직히 말하세요.”

“혹시 아는 사람이 볼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얼굴은 모자이크 되어서 나갈 겁니다.”

“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얼굴까지 다 보여 주면 교주님이 빚을 다 갚고도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지는 건데.”

“…….”

“그럼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압니까.”

차갑고 냉정한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작은 지원을 웃으며 달랬다.

“교주님은 지금 정말 잘하고 계세요. 열심히 돈 벌어서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저 아까…, 잘했나요?”

“그럼요. 아주 잘 느끼셔서 귀여우셨습니다.”

확신이 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지원에게 하는 말은 비슷했다. 지금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잘하면 된다. 지원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바로 벗어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옳은 것 같았다.

지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작은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늘 바빠 보였다.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작 씨는 늘 바쁘시네요.”

“네. 아직 인수인계가 덜 끝나서요.”

“인수인계요?”

“네. 저도 <행복의 나라> 쪽 일을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일들을 시스템화하고 분업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좀 골치가 아프네요.”

“아…….”

지원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그저 이작을 지켜보며 시간을 때웠다.

다시 보아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선이 거칠고 남성적인 외모의 김성희와 달리 이작은 섬세하고 예리한 인상의 미남이었다. 자신 같은 교주도 수요가 있으면 이작도 분명히 수요가 있을 텐데. 돈이 그렇게 필요하진 않은 걸까. 하긴 이 일을 누가 하고 싶을까. 억지로 하게 된 게 아니라면 굳이 하고 싶어 하진 않을 듯했다.

그러고 보니 김성희에게 핸드폰을 새로 받았다. 생각난 김에 얘기하기로 했다.

“저, 김성희 님께서 핸드폰을 새로 주셨는데요.”

“네. 들었습니다.”

“원래 갖고 있던 거를…….”

“그건 이미 수거했습니다. 새로 받으신 건 어차피 인터넷도 안 되고 저장된 번호와만 통화가 가능한 핸드폰이니 갖고 있어도 심심하실 거예요.”

“아…….”

언제 가져간 거지. 하여간 철저한 사람이었다. 지원은 새로 받은 핸드폰을 가져와서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고, 통화도 저장된 목록에서만 할 수 있었다. 몇 명 있지도 않았다. 김성희와 이작, 단둘뿐이었다.

“연락처가 둘밖에 없네요…….”

“교주님 곁에는 늘 제가 있을 테니 그다지 쓸 일도 없으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필요할 때 전화할게요.”

“그러세요.”

이작은 지원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지원은 이작이 일하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지루해서 하품을 했다.

지루하다니. 참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요 며칠간 일어난 비정상적인 일들에 지원은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아까 전류가 생기는 장난감으로 혹사당한 아래가 조금 아팠지만 견딜 만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래의 구멍이 그런 용도로 쓰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기는 배출구였지 삽입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와서 별별 일을 다 겪게 되면서, 지원은 조금씩 낯선 쾌락에 젖어 가고 있었다.

여전히 부끄럽고 낯설지만 조금씩 교주라는 역할을 알 것 같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예상보다 더 빨리 여기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부모님도 다시 찾아서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지원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이작 씨. 주말에 달란트 시장 한다고 했잖아요.”

“네.”

“저도 구경해도 되나요?”

“음. 실내에서 하는 거니까 괜찮겠네요. 한번 둘러보세요. 도움이 될 테니.”

“감사합니다.”

여기에 온 이후로 교주실 밖에 잘 나간 적이 없던 지원이었다. 식사도 화장실도 모두 교주실 안에서 해결이 가능하니 밖에 나갈 일이 없기도 했다. 일을 하는 교인들이 안에 직접 들어오는 일은 적었다. 대부분 이작의 손을 거쳐서 지원에게 전달되었다.

때문에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원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대화를 하고 교류를 하진 않아도 멀리서 지켜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조용한 산속에 있는 수상한 종교 시설. 여기에 갇힌 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저는 그날 행사를 진행해야 해서 같이 있진 못할 겁니다. 사용할 수 있는 달란트를 약간 드릴 테니 구경하세요.”

“네.”

지원은 저절로 기대가 생겼다. 주말이 빨리 오면 좋을 것 같았다.

* * *

지원이 그토록 기대하던 주말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 이작은 지원에게 작은 동전 지갑과 플라스틱 동전을 건네주었다. 평범한 티셔츠에 바지도 입었다. 이작은 마지막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가면을 건네주었다.

“이건 뭔가요?”

“서로 얼굴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니까 필수 착용입니다.”

“아…….”

알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모두 사생활이란 게 있을 테니까 괜히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면을 받아서 썼다. 귀에 끈을 거는 형식이었다. 광대까지 가리는 하얀색 가면을 쓴 얼굴이 왠지 어색했다.

“저는 오늘 바쁠 예정이라서요. 다른 교인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재밌게 노세요.”

“네. 다녀오겠습니다.”

지원은 꾸벅 인사를 했다. 교주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마찬가지로 가면을 착용한 교인이 지원에게 인사를 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의 신원이 밝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여기를 벗어나면 교주님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에 도착한 후 보고하세요.”

교인은 지원과 키가 비슷한, 조금 체격이 있는 남자였다. 이작에게 꾸벅 인사를 한 교인은 말없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지원은 그를 따라 걸었다.

좁은 복도는 전부 하얀색이었다. 이 복도를 걸은 적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원은 교인에게 말을 걸까 하다가 그가 긴장한 것 같아서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복도를 걷고 계단을 여러 차례 내려갔다 올라갔다 반복하자 겨우 큰 문이 하나 나타났다. 교인은 멈춰 서서 설명을 했다.

“문을 열고 나가시면 바로 회장이 보이실 겁니다. 시간을 보내시다가 이작 님께 연락 주시면 제가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교인은 예의가 바른 사람 같았다. 마지막까지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지원은 머쓱해졌다.

문을 열자 엄청난 양의 빛과 소음이 쏟아졌다. 지원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 회장은 이전에 첫 대면식을 했던 강당이었다. 작은 노점들이 늘어서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지원은 들어온 문을 닫고 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화폐가 플라스틱 동전이라는 것만 뺀다면 평범한 시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파는 물건들은 좀 달랐다.

“…….”

대부분 성인용품들이었다. 지원은 조금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단 종교라고 해 놨으면 좀 그럴싸한 걸 갖다 놓지. 너무 노골적이라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가 없어서 기분이 낯설었다.

지원이 서성거리며 물건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모양의 딜도와 하네스, 속옷 등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구경하다가 금세 흥이 식었다. 지원은 결국 이작이 건네준 플라스틱 동전으로 타코야끼를 조금 샀다.

구석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 타코야끼를 먹고 있자 비어 있던 옆자리에 어떤 중년 남성이 털썩 앉았다. 아, 뜨거워라. 입안이 뜨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자 남자가 투명한 물을 한 병 건네주었다.

“마셔.”

“가, 감사하니다.”

병을 받아 꼴깍꼴깍 마셨다. 물인 줄 알았는데 희미하게 과일 향이 나는 음료수였다. 미지근했지만 조금 살 것 같았다. 지원은 꾸벅 인사를 하며 동전 지갑을 열었다.

“얼마인가요? 드릴게요.”

“안 줘도 돼. 내가 마시려고 가져왔던 거니까.”

“아, 네. 다 안 마셨어요. 이거라도 다시…….”

“그냥 다 마셔 버려.”

“네…….”

남자의 말에 지원은 그냥 물을 통째로 비워 버렸다. 남자도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남자는 지원에게 슬슬 말을 걸었다.

“젊은 남자애는 여기에서 보기 드문데. 취향이 이쪽이야?”

“네?”

“젊은 애들은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많아도 행복의 나라에는 별로 없거든.”

“아… 네. 그런 편이에요.”

김성희가 여러 연령대에 어필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지원은 대답하기 애매해서 그냥 대충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부터 온 거야?”

“그… 새 교주님이 오셨을 때부터요.”

“그렇지? 나도 그래. 아는 분이 소개해 주셔서 첫 대면식에 갔었거든.”

남자는 흥분하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원은 남자가 좀 부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까지 주면서 얘기를 붙여 오자 거절하기가 애매했다. 아직 타코야끼도 다 못 먹었고. 지원이 타코야끼를 쪼개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온 교주님이 아주 물건이야.”

“그런…, 가요.”

“그럼. 하얗고 야들야들하니 따먹는 맛이 아주 있어 보이던데.”

“아…….”

남자는 목소리를 낮추고 몸을 가까이 붙여 왔다.

“김성희 님이 쑤셔 주니까 좋아서 자지러지는데, 아주 간드러져서. 나 그거 듣고 거기서 두 번 쌌잖아.”

“그러셨군요.”

“그런 기분은 오랜만이더라고. 너는 몇 번 쌌어?”

“저는… 한 번……?”

지원은 대충 대답했다. 이런 얘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이 대충이라도 대답해 주자 남자는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너도 좀 밝히는구나. 그래,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 제정신인 놈이 별로 없어.”

“네…….”

지원은 묵묵히 타코야끼를 해체했다. 옥수수와 가짜 문어 조각을 푹푹 쑤셨다. 이 대화를 얼른 끝내고 싶었다.

“저…….”

“응?”

“이만 일어나 볼게요. 더 둘러보세요.”

“벌써?”

지원이 자리를 뜨겠다고 하자 남자는 아쉬워했다.

“얘기 덜 했는데. 좀 더 하고 가지.”

“아직 다 못 둘러봐서요.”

“그래. 그럼. 몸은 괜찮고?”

“네?”

왜 갑자기 몸을 걱정해 주는 거지. 지원은 조금 알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네?”

“네가 마신 물 말이야. 누구든 10분이면 기절시키는 약이거든.”

남자가 흐릿하게 웃었다. 이상하다. 지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지원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 흐릿해진 시야에 남자가 웃는 것이 보였다.

“거봐.”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작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도움을 청해야 해. 지원은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힘이 없는 손가락은 핸드폰을 쥐지 못했다.

털썩.

지원은 회장 바닥에 그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떠야 하는데, 서서히 감겼다. 미칠 지경이었다.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감각은 살아 있었다. 지원은 모든 소리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며, 이곳이 춥고 습한 곳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불행에 가까웠다.

* * *

“이번에는 괜찮은 애 골라 왔네.”

“저번에는 좀 그랬지.”

지원을 둘러싼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같이 목소리가 텁텁하고 거친 것이 다 나이가 꽤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앞을 보기 위해서 눈에 힘을 줘 봤지만 아주 살짝만 떠질 뿐이었다. 그 가느다란 틈으로 시야가 조금 보였다.

“눈 떴네?”

지원에게 물을 줬던 남자가 눈앞에 보였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지원의 보드라운 뺨을 만지작거렸다. 거친 손바닥에 볼살이 사정없이 눌려지고 문질러졌다.

“우으…….”

무언가를 말해야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뱉어진 소리는 말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었으므로 지원은 지금 상황을 둘러보았다.

물을 건네주었던 남자를 비롯해 중년 남성이 네 명이 있었다. 이곳은 산속이었다. 바닥에는 관리가 되지 않은 잡초들이 사정없이 자라 있었고 사방에 잡목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어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성한 잎사귀들이 햇빛을 가려 낮일 텐데도 어두웠다.

춥다. 젖은 풀 위에 눕혀진 몸은 속옷까지 전부 다 벗겨져 있었다.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도 사라져 있었다. 지금 계절은 봄이었지만 아직 겨울에 가까웠다. 그동안 따뜻한 실내에만 있느라 날씨 감각이 무뎌진 지원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경계심이 없으면 어떡해.”

“그래서 잘됐잖아. 우리한테는.”

가장 마르고 키가 큰 남자가 혀를 차며 말하자, 가장 뚱뚱한 남자가 농담을 던졌다. 그 말에 남자들이 와하하 웃었다.

한 남자가 지원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 사이로 물 한 병을 집어넣고 억지로 삼키게 했다. 아까 마셨던 물과 비슷한, 약하게 과일 맛이 나는 물이었다. 물을 받아 마시니 조금 정신이 들어서 몸에 약간씩 힘이 들어갔다.

“우리도 너무 억지로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

남자는 그렇게 변명했다. 끔찍하게도 지원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떤지 눈치를 채고 말았다. 남자들은 지원을 납치해서 강간하고자 모인 것이었다.

지원에게 물을 준 남자는 허겁지겁 입고 있던 바지를 벗었다. 사각형의 속옷을 내리자 드러난 것은 볼품없는 성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기능을 제대로 하는지 반쯤 서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이 지원의 몸을 붙들고 억지로 앉혔다. 허리에 힘이 없어서 상체가 앞으로 꼬꾸라지자 지원의 콧대에 남자의 성기가 문질러졌다.

그래도 씻고 오긴 한 것인지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지원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남자들이 다시 지원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벌려 남자의 성기를 집어넣었다.

입안에 성기가 들어오자 구역질이 났다. 지원은 눈을 치켜떠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는 잔뜩 흥분해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원이 가만히 있자 뒤통수를 붙잡고 억지로 입안에 성기를 쑤셔 넣었다.

“우욱!”

혀 위로 성기가 사정없이 문질러졌다. 지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남자는 지원의 입안에 성기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흥분했는지 금방 사정을 했다. 혀 위로 정액이 고였다. 뱉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입가를 타고 정액이 흘러내렸다.

“아깝게, 삼켜!”

한 남자가 지원의 뺨을 내려치며 강요했다. 지원은 눈을 감아 버렸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정신을 분리시켜 버리고 싶었다.

왜 이런 일을 겪게 된 걸까. 오랜만에 교주실을 나와 바깥 구경을 조금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사람을 믿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될 이유일까.

지원은 김성희와도, 이작과도 섹스를 했었지만 그건 1대 1의 관계였다. 아직 다수를 상대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약을 먹어서 몸에 힘이 없어서 반항도 힘들었다. 힘이 있다고 해도 네 명의 남자를 이길 수는 없을 거였다. 그래도 우선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제발 그냥 놔주세요. 신고 안 할게요. 가만히 있을게요.”

“뭔 헛소리를 하고 있어. 여기서 바로 죽고 싶어?”

“악!”

남자가 지원의 머리채를 붙잡고 바닥에 내리쳤다. 바닥에 머리가 박힌 지원이 부들부들 떨자 어떤 남자가 말했다.

“잘하면 무사히 돌려보내 줄 테니까 열심히 해.”

“그, 잘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좆 예쁘게 잘 받으라고.”

“그럼 저, 정말…. 돌려보내 주실 건가요……?”

지원은 입가로 정액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을 평생 감금한다거나,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섹스를 즐기고 싶을 뿐이지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다만 그들의 취향이 젊은 남자였고, 그 한 명을 여러 명이서 범하는 것이었을 뿐.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표정 풀고, 웃으면서 하자. 웃으면서.”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이 생겼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텨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지원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자 다른 남자들도 서둘러 바지를 벗었다. 남자들을 구분하기를 포기한 지원은 저절로 차오르는 서러움과 눈물을 꾹 감고 그들의 지시를 따랐다.

흥분한 남자들이 지원의 몸에 성기를 멋대로 비벼 대기 시작했다. 한 남자는 지원의 뺨과 귀에 성기를 문지르며 자위를 시작했다. 다른 남자는 지원에게 성기를 만져 줄 것을 요구했고, 지원은 손바닥으로 성기를 쥐고 문지르며 사정을 유도했다.

시야가 남자들의 사타구니로 가득 찼다. 지원은 눈을 돌릴 데가 없어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자 누군가 지원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 당겼다.

“눈 떠!”

“흑…….”

제정신으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엉겨 붙은 속눈썹이 떨어졌다. 그 위로 후드득, 정액이 쏟아졌다. 얼굴로 정액을 받는 것은 지원에게 꽤 익숙한 일인지라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나 곧 남자의 경고를 떠올리고 눈을 떴다.

“살다 살다 정액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 새끼는 처음 보네.”

한 남자가 거칠어진 목소리로 지원을 능욕하기 시작했다. 지원의 팔을 들게 하고 겨드랑이에 성기를 문질렀다. 옴폭 파인 곳에 귀두를 문지르며 남자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웃자, 웃으라고.”

그러면서 지원에게 웃음을 강요했다. 지원은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며 희미하게 웃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솟았지만 웃어야 했다. 온몸에 남자들의 성기가 문질러지는 것은 역겹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전혀 원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좀 교주님 닮지 않았어?”

한 남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남자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좀 닮았네. 씨발, 걔도 언젠가 한 번 따먹어야 하는데.”

“얘가 교주님 보면서 한 번 쌌다고 하던데.”

“저도 꼴에 남자라고 따먹고 싶었나 봐?”

저급한 농담에 남자들이 다시 와하하 웃었다. 한 남자가 흙이 묻은 구둣발로 지원의 성기를 살짝 누르며 자극했다.

“흐윽.”

“너 조루야? 왜 안 서.”

그야 이 상황이 전혀 꼴리지 않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지만 남자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너도 즐기라고. 응? 우리 좋게 웃으면서 하기로 했잖아.”

“노, 노력하고 있…, 어요.”

지원은 여전히 한 손으로는 남자의 성기를 매만져 주고 있었다. 손바닥에 선액이 질척거려서 미끌거렸지만, 최선을 다했다.

“싼다, 윽, 아!”

사정감이 찾아온 남자가 지원의 얼굴에 정액을 쏟아 냈다. 다른 남자들도 연이어 지원의 얼굴에 정액을 뿌려 댔다. 하얀 얼굴이 탁한 정액으로 젖었다.

“흡…….”

“웃으랬지.”

울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뺨을 성기로 치며 웃으라고 강요했다. 지원은 억지로 웃었다. 정신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괴롭고 괴로워서, 생각을 멈춰 버리고 싶었는데 계속 시간이 흐르고 정신은 점점 멀쩡해졌다.

결국 남자들은 지원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팔꿈치와 무릎이 땅에 닿았다. 엉덩이가 솟자 남자들이 지원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옆으로 벌렸다. 분홍빛 구멍의 입구가 드러나자 한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콧대로 그 위를 문질렀다.

“힉, 아!”

부끄럽고 기분이 이상했다. 이 상황과 남자들이 더럽고 불쾌한데, 이미 남자를 받아들일 줄 알게 된 몸은 조금씩 기대를 품고 있었다. 남자는 혀를 내밀어서 지원의 구멍 위를 꼼꼼하게 핥았다.

“아, 안 돼요. 싫어…….”

“구멍도 이쁘긴.”

지원이 싫은 소리를 하자 반항할 것 같았는지 팔다리를 남자들이 붙잡았다. 구멍을 핥던 남자가 다시 자신의 성기를 쥐고 지원의 허벅지를 붙이게 했다. 그러고는 그 사이에 성기를 넣어 앞뒤로 허리를 움직이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앞이 비었다? 내가 써야지.”

한 남자가 지원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지원의 머리를 붙잡아 다시 자신의 성기를 빨게 시켰다. 지원은 성의 없이 혀로 성기를 핥았다. 이제 자신이 핥았던 성기가 뭔지, 안 핥았던 성기는 또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허벅지 사이로 성기가 문질러질 때마다, 남자의 묵직한 고환이 허벅지에 철썩 부딪혔다. 남자는 헉, 흑, 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허벅지도 맛있네.”

“빨리 쓰고 넘겨. 나도 쓰게.”

“기다려, 후, 좀 더 조여 봐. 응?”

누군가 손을 뻗어 지원의 가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손톱 끝으로 젖꼭지를 긁으며 문질러 댔다. 손가락 사이에 넣어서 짓누르기도 하고 살살 튕기기도 했다. 지원의 허리가 움찔거리면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얘 가슴으로 느끼는 거 봐.”

남자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지원은 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죽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서 견뎌 내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가슴 좋아? 응? 만져 주니까 좋냐고.”

“조, 조아요. 흑.”

입에 들어간 성기 때문에 발음이 불분명했다. 지원이 좋다고 대답하자 남자들은 웃으면서 더 열심히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한 남자는 성기를 지원의 가슴에 문지르며 허리를 흔들었다.

“좋아하는 거 다 해 주는데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웃으랬잖아!”

남자가 지원의 뺨을 쥐고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지원은 울면서 항변했다.

“이, 이베 자지가 이써서, 웃기 힘드러요.”

“자지래. 걸레같이.”

“자지 좋아? 응?”

지원의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문지르던 남자는 이내 사정감이 찾아왔는지 성기를 빼내 지원의 구멍 위에 정액을 뿌렸다. 그러고는 구멍 위를 성기로 질척거리면서 문질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울 수도 없어서 억지로 계속 웃어야 했다. 성기가 계속 문질러지고, 정액이 쉴 새 없이 뿌려졌다. 남자들은 지원의 온몸에 정액을 손바닥으로 펴 발랐다. 젖꼭지를 꼬집듯이 괴롭히면서 지원에게 계속 물었다.

“좋지? 좋잖아. 너 이렇게 당하려고 온 거잖아. 그치?”

“흐윽, 아.”

그럴 리가 없었다. 지원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지원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아!”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남자는 지원의 엉덩이를 연이어서 때렸다. 철썩, 철썩, 철썩. 하얗던 엉덩이가 빨갛게 물들어졌다. 지원은 결국 울면서 거짓을 말했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말 잘하니까 얼마나 예뻐?”

원하는 답을 받아 낸 남자들은 서로 웃으며 지원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오늘은 이쯤 할까? 슬슬 시간도 꽤 지났고.”

“씨발, 존나 꼴리는데. 아깝다.”

남자들의 목적은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희롱하고 갖고 놀고 싶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자기들끼리 세워 둔 규칙이 있었다. 거기에는 시간도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쓰지 말 것.

정해 둔 시간이 슬슬 다가오자 남자들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지원은 여전히 벗겨진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착하게 있으면 아저씨들이 또 찾아와 줄게.”

“예쁘게 써 줬으니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지원이 아무 말 하지 않자 다시 또 엉덩이를 내리쳤다. 엉덩이가 얼얼해져서, 지원은 울면서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뭐가 고마운데?”

“예쁘게 써 주셔서, 고맙, 습, 흑…….”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눈물이 펑펑 솟았다. 여태까지 견뎌 오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주체가 안 되었다. 지원이 고마움을 표현하자 남자들은 마지막으로 지원의 가슴을 만져 주며 속삭였다.

“오늘 일은 우리들끼리의 비밀이야. 알지?”

“네, 네…….”

“그래. 착하다. 다음에 또 보자?”

옷을 다 추스른 남자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지원을 등진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축축한 잡초가 밟히는 소리가 나면서 남자들이 사라졌다.

지원은 이대로 죽고 싶었다. 이건 사람 취급도 아니었다. 자위 도구 취급에 지나지 않았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팔을 세워 바닥을 짚었다. 풀 위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흑, 흐윽. 끕.”

옷은 더러워져 있었지만 안 입을 수 없었다. 옷을 입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서럽고 괴로워서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교주님-!”

이작의 목소리였다. 지원은 몸이 더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옷을 입어야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고 싶었다. 지금의 이 엉망인 꼴을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작이 지원을 찾는 것이 더 빨랐다. 이작은 지원을 향해 뛰어왔다. 지원을 찾아 헤맸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원은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이, 이작 씨. 보지 마세요.”

“교주님. 이게 무슨.”

이작은 지원의 모습을 빠르게 훑었다. 꼴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얼굴에 묻은 것은 누가 봐도 정액이었다. 이작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걸로 지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지원은 그 손길을 밀어내며 울었다.

“보지 마, 싫어. 싫어…….”

“이렇게 만든 새끼들 얼굴 기억납니까?”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까지 본 얼굴들이었지만, 떠올리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교주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셔서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흑, 끕, 흐윽.”

“일단 돌아갑시다.”

이작은 지원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다리가 휘청거리며 허벅지 사이에 잔뜩 묻어 있던 정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이작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씨발…….”

“제발, 제발 없었던 일로 해 줘.”

지원은 이작을 붙잡고 애원했다. 이작은 잠시 말이 없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릴게요.”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조금 안심할 수가 있었다.

이작은 지원을 데리고 교주실로 돌아왔다. 지원은 이작의 등에 업혀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우선 욕실로 가서 몸을 씻겨 주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이작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목욕이 끝나자 이작은 지원을 침실로 데려가서 눕혀 준 후,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져다주었다.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게 해 주었다. 따뜻한 머그잔을 손에 쥐자 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분간 일정을 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

“쉬세요.”

말을 마친 이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자 지원은 다시 두려워졌다.

“가지 마요.”

“네?”

“옆에 있어요…….”

지원은 지금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했다. 이작은 잠시 고민하더니 의자를 끌고 와서 지원의 옆에 앉았다.

지원은 이작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너덜너덜하게 윤간당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습니다.’

‘1억 달란트짜리 상품입니다. 전 교주께서 하기 싫다고 자살했거든요. 대기 기간이 길어져서 다들 언제 차례가 오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누군가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 흔치 않잖아요.’

게다가 김성희도 말하지 않았는가.

‘너에게 교주의 위엄 같은 건 없지. 이런 얄팍한 옷을 걸치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남자 새끼에 불과하잖아. 그러니까 넌 내 후광을 빌려서 써야 한다는 거야. 손도 대면 안 될 거 같은 높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그럴수록 탐이 나잖아.’

‘갖고 싶어서, 뭐든지 하고 싶어지잖아?’

머리가 아프다. 여태까지 지원이 외면하려고 했던 현실들이 휘몰아쳐 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지원은 살면서 이런 건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을 여기 와서 처음 겪었다. 억지로 범해진다는 것은 당연히 더욱 없었다. 하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 지원은 네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당하기만 했다.

이작이나 김성희와 섹스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무서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느꼈으니까 견딜 수가 있었다. 어쨌든 둘 다 잘생겼으므로 거부감이 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남자들은 달랐다. 일단 외모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이작이나 김성희와의 섹스가 비현실이라면, 이것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게 교주가 된 지원의 의무였다.

지원의 두려움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이작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종종 있는 일입니다. 교리 자체도 그렇고 모든 게 비일상적이지 않습니까. 낯선 환경에 흥분한 교인들이 사고를 치는 일이 적지 않아요.”

“…….”

“그리고 죄송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설명드리자면 저희 종교에서는 교인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잡는 것도 처벌도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교인들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교주님이셨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힘들어요. 항의가 빗발칠 겁니다.”

그 말에 지원의 고개가 떨궈졌다.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깨닫게 된 기분이었다. 지원은 상품이었다. 거액의 돈을 바쳐야만 얻을 수 있는 상품. 그런 상품을 누군가 공짜로 얻었다고 하면 당연히 항의가 쏟아질 터였다.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절대 혼자 있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교주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이작의 말에도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지원은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그냥 다 그만, 그만하고 싶어요.”

“교주님.”

“…교주라는 자리가 저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교주가 된다는 것이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정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온몸으로 깨닫게 된 기분이었다.

지원의 말에 이작은 곤란한지 말을 아꼈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시 말을 꺼냈다.

“교주님.”

“네.”

“중간에 그만두시려면, 지금까지 발생한 이자를 저희 쪽에 위약금으로 내셔야 합니다.”

“…뭐라고요?”

“교주님과 저희의 계약 기간은 교주님의 빚이 수익으로 전부 채워질 때까지 입니다. 저희가 교주님의 빚을 사들였으므로 계약 기간 동안 이자를 갚으실 의무가 없지만, 이자 자체는 존재합니다.”

“저는 몰라요. 그런 얘기 들어 본 적도…….”

“계약서를 확인해 보세요.”

이자라니. 이자를 내라니. 정말이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계약서. 계약서…. 졸려서 대충 지장을 찍고 말았던 그 계약서가 문제였다. 현재 지원에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돈은커녕 뭣도 없었다. 지원이 집을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캐리어에 든 모든 것이 지원의 전부였다.

“교주님. 죄송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지금 그만두시는 게 아닙니다. 교주님께서 밖에서 어떤 일을 하신다고 하셔도 이 빚을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갚으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만 다른 방법은 제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이작은 목소리를 낮췄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원의 모든 신경이 이작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두 가지 방법을 제안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해 주세요.”

“일단 첫 번째는 교주 자리를 물려줄 다른 사람을 찾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 소개금으로 위약금을 면제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채무는 존재하고, 교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기에 채무에 대한 이자도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하…….”

골치가 아팠다. 교주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문제였다. 그럴 만한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인 데다가 다시 또 빚이 생기는 셈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이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건 희생자를 또 만드는 방법일 뿐이었다.

“그럼 다른 방법은요……?”

“교주님의 빚은 부모님의 빚이죠. 빚을 진 사람, 교주님의 부모님을 찾아서 갚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

허탈하고 허탈했다. 방법이라고 해서 희망을 가졌는데, 둘 다 가능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이상적이었으나, 지원의 부모는 현재 행방불명이었다. 필리핀에 갔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작정하고 잠적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원은 지금 교단 안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주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부모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즉, 지원이 지금 교주 자리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망한 지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작은 서둘러 눈물을 닦아 주며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교주님,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교주님은 정말 잘해 주고 계십니다. 교주님처럼 이 일을 잘 해내실 분은 없으세요. 김성희 님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정말…….”

“교주님…….”

지원이 고개를 돌리며 훌쩍였다. 이작은 잠시 또 고민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아야 했다.

“정 그러시면 김성희 님께 그만두시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도 먹히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저는 다른 방법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

“김성희 님을 이용하세요.”

이작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그러나 분명하게 들렸다. 김성희를 이용하라고. 지원은 이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전권을 쥐고 있는 건 김성희 님입니다. 김성희 님의 말 한 마디면.”

“…….”

“빚이 전부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지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조금 희망이 있어 보이는 이야기였다.

“어, 어떻게…?”

“베갯머리송사라고 있지 않습니까. 김성희 님과 더 친밀해지세요. 그리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베갯머리송사……?”

지원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 단어의 뜻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성희 님이 교주님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요?”

이작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지원은 망설여졌다. 김성희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던가? 그랬던 것 같긴 했다. 어떤 종류로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그게 성적인 호기심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작은 확신하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어요. 저는 섹스도 잘 못하고…….”

“교주님.”

이작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지원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이 상황에서 보고드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게 뭔데요…….”

지원은 얼떨떨해하며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화면에 뜬 것은 홈페이지였다. <행복의 나라>의 공식 홈페이지. 하얀색과 파란색, 검은색이 적당히 섞인 디자인은 기묘하게 신뢰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의 썸네일에는 <새로운 교주님을 소개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이건.”

“저번에 촬영한 홍보 영상입니다. 봐 주세요.”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이작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이작은 완강했다. 직접 손으로 눌러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똑바로 봐 주십시오.”

강요였다. 전혀 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앞에 동영상이 억지로 재생되고 있었다. 지원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동영상을 향했다. 재녹음되어 깔끔한 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교주님은 가슴을 만져 주는 걸 좋아하십니다.’

지원의 얼굴은 모자이크되어 있었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꼿꼿하게 선 채로 짓눌려지며 괴롭힘당하는 지원의 젖꼭지가 보였다. 작게 들리는 신음 소리를 증폭시킨 건지 작은 노이즈가 들렸다.

‘흡, 아응, 아…….’

‘그런 교주님의 은밀한 곳은…….’

지원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게, 화면에는 지원의 엉덩이가 꽉 채워져 있었다. 이작이 뿌리는 젤이 털이 하나도 없는 성기를 타고 흘렀다.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이 구멍 입구를 매만지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보였다.

‘놀랍게도 털이 깨끗하게 밀려서 보송보송합니다.’

진중하게 녹음된 이작의 목소리에 지원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그만…….”

“끝까지 보세요.”

지원은 부끄럽고 창피해서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하지만 이작은 그럴 수도 없게 지원을 막았다. 질척거리는 축축한 소리와 함께 이작의 손가락이 지원의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 역시 모두가 궁금하시겠죠.’

‘으응…….’

‘신음 소리도 예쁜 교주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건 바로 섹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진짜, 그만! 그만 볼래요!”

“거의 다 끝났습니다.”

‘교주님 구멍 안쪽이 어떤 느낌인지…. 이건 직접 만져 보셔야 알 겁니다. 진짜 촉촉하고, 빨아 먹는 것 같거든요.’

‘부끄러워…….’

화면은 바로 넘어가서 지원의 엉덩이에 강아지 꼬리 모양 딜도가 꽂혀 있었다. 이작의 손이 꼬리를 쥐고 흔들자 지원이 경련하며 바닥에 엎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작 지시대로 다리를 벌리고 성기에서 맑은 묽을 핏핏 쏟아 내는 모습이 보였다. 지원은 창피하고 또 창피해서 거의 울고 싶었다.

‘교주님의 은밀한 욕망을 풀어 드릴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

이작의 목소리와 함께 지원의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흑, 귀…, 여워해 주러…, 와 주…, 끅, 세…, 요.’

‘어떻게 하면 귀여워해 드릴 수 있나요?’

‘모, 몰라…. 부끄러워…. 이젠, 흑. 싫어…….’

그리고 동영상이 끝났다. 그 후에는 교인 모집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적혀 있었다. 30초 남짓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영원한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지원은 아까 있었던 일을 다 잊을 만큼 커다란 부끄러움에 짓눌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이, 이게 뭐예요…….”

“이게 조회수가 정말 엄청납니다.”

이작은 기뻐하며 동영상 정보를 클릭했다.

“벌써 10만 명이 교주님의 영상을 봤습니다.”

세상에…….

그때의 모습이 이렇게 음란하고 난잡하게 편집되어 올라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신규 교인도 벌써 일주일 만에 지난 분기 대비 250% 이상 급상승했습니다. 매출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모두 다른 영상은 더 없냐고 난리예요.”

“그, 그럼 제 빚은.”

“당연히 매출만큼 실시간으로 정산되고 있습니다.”

“이작 씨…….”

“교주님은 정말 재능 있으세요. 그만두지 마세요.”

이작은 지원의 손을 붙잡고 부탁했다.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 제안을 잊지 말아 주세요. 김성희 님을 이용하시는 겁니다. 교주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일단…, 알겠어요.”

“구체적인 방법은 같이 생각해 봅시다.”

“네, 그럴게요.”

지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대답을 얻은 이작이 미소 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