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행의 시작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겨우 졸업한 성지원은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들었다.
“이제 너도 다 컸으니 혼자 살아도 되지?”
보여 준 것은 필리핀으로 가는 편도 티켓이었다. 최소 한 달, 어쩌면 1년 이상. 필리핀에 머물다가 정착을 하는 게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줄지어 사건들이 펑 펑 펑 터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지원의 부모님이 행방불명되었다. 도착한 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있는 돈 다 털어서 필리핀으로 날아갔으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학교까지 나오면서 그동안 배운 영어로 물어보았지만, 현지의 경찰들은 수사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도 아니고 타국에서의 실종 사건이라 도와줄 사람을 찾기에도 막막했다. 의미 없는 체류 시간이 흐르고 지원은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물일곱 살.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졌다. 앞으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너무 막막했다. 그 사실에 절망하기도 전에 새로운 불행이 찾아왔다.
“성지원 씨.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도, 돈이요?”
험상궂게 생긴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집으로 찾아왔다. 구둣발이 깨끗하게 닦인 거실 마루를 밟았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큰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제1 금융부터 시작해 사채까지 쓸 수 있을 만큼 끌어다 쓰고 필리핀으로 날았다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서류 가방을 팔과 몸통 사이에 끼워 놓고 서 있었다. 그가 손짓을 하자 졸개 같은 남자가 가방을 받아 서류를 꺼냈다.
“자 보자보자. 빌린 돈만 3억 7천만 원. 거기에 이자를 더하면…. 야! 얼마냐. 세 봐라.”
“네!”
졸개는 핸드폰을 꺼냈다. 계산기 어플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두머리는 졸개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야! 없어 보이게. 어플 쓰지 말고! 계산기 꺼내, 계산기!”
졸개는 그제야 넵! 하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계산기를 꺼내 두들겼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계산기를 들이밀었다. 계산기는 에러가 나 있었다. 한참을 껐다 켰다 만지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계산기를 집어넣었다.
“아무튼. 한 대충 12억 정도네. 푼돈이라도 꼬박 갚아서 봐줬는데 갑자기 잠수를 타니까 우리도 열이 받지.”
“…….”
대답해 줄 말이 없어 지원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의 이자였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것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받아 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그 불법적인 방법을 알게 되는 게 무서웠다. 우두머리는 집 안을 흘겨보며 물었다.
“그래서 부모님께선 어디 가셨다고?”
“필리핀에 가셨는데, 실종되셔서…….”
“실종?”
우두머리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실종! 하하하! 아드님, 그런 거 믿어?”
“네?”
“그딴 거 다 개뻥이야, 개뻥. 돈 갚기 싫어서 튄 거지. 그렇게 돈을 많이 빌렸는데 출국 비자가 나올 거 같아?”
우두머리는 물어보지도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좁은 집 안이 연기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 그럼 전부……?”
“그런 놈들이 정말 많아.”
“도대체…….”
“이거 읽을래?”
건네받은 건 A4용지 묶음이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부분을 보니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자녀에게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생긴다.>는 조항이 번듯하게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내 인감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골치가 아파도 정도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부모님은 대체 왜…….
“거 뭐냐, 죽을 생각은 하지 마. 어설프게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이자는 늘어나니까, 네가 더 손해야.”
우두머리는 꼴에 동정이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갑자기 12억 정도 되는 빚이 생기면 인간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건 설마 꿈인 게 아닐까? 지원은 스스로의 뺨을 후려쳐 봤지만 아플 뿐이었다.
성지원 27세. 그는 완벽하게 좆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단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안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며 각각 외가, 친가와 절연했다고 했다. 그나마 지원이 알고 있는 것은 ‘삼촌’ 단 한 명이었다. 그것도 피가 통하지는 않는, 그냥 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연락하니 아버지의 실종 소식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약속 당일이 되어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원은 허탈해하면서 그에게 연락을 했지만 연락 두절이었다.
그나마 기댔던 희망마저 박살이 났다. 연이은 불행에 지원은 치가 떨렸다.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거리를 맴돌았다. 빨간 딱지로 가득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늘어나는 이자를 한 시간마다 보고해 주는 사채업자들에게 이건 불법이며 법대로 하자고 한다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법보다 주먹이 더 빠를 것 같아서 포기했다.
주머니가 텅 비어서 어쩔 수 없이 겨우 집에 들어가자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소파에 앉아서 지원을 반겼다. 또 돈 빌린 데가 있었나? 힘이 없었다. 이러니까 집에 오고 싶지 않았던 건데. 휘청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는 지원에게 물었다.
“놀라지도 않으시네요? 낯선 사람이 집 안에 있는데.”
“이미 여러 명이 다녀가셔서요…….”
“예?”
남자는 조금 당황하더니 이내 작게 웃었다. 어라. 지원은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남자는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요?”
“돈을 뜯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전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냈다. 얼핏 보기에도 윤기가 흐르는 고급 가죽 지갑이었다. 엄청나게 비싸겠지…. 밖을 떠도는 동안 하루 삼만 원짜리 모텔도 아까워서 24시간 카페를 번갈아 가면서 돌아다녔던 지원이었다.
지원은 반사적으로 남자를 훑었다. 입고 있는 정장도 핏이 딱 맞는 게 엄청나게 비싸 보였다. 앞머리를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마저 깔끔하고 부자처럼 보였다.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그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았다.
“<행복의 나라>……?”
미세하게 빛을 발하는 고급 종이로 만들어진 명함은 기품이 있었다. 거기에 적힌 <행복의 나라>라는 단어가 영 생뚱맞게 느껴질 정도였다. 스마일 로고 밑에는 이름이 두 글자 적혀 있었다.
“이작……?”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그 이름이 편합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자의 직함이 없는 정도일까. 지원은 명함을 꾸욱 쥐고 다시 읽었다. 그게 전부였다. 행복의 나라, 이작. 뭘까. 이 기묘한 명함은.
남자는 웃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싸늘했다. 그 기묘함을 느낀 지원이 눈치를 보다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저에겐 어떤 일로…….”
“권선형 씨를 아십니까?”
지원은 그 이름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바람맞힌 삼촌의 이름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작이 부드럽게 짓던 미소를 숨기고 싸늘한 표정을 드러냈다. 지원은 어쩐지 긴장이 잔뜩 되어 손바닥의 땀을 바지에 닦았다.
“아는데, 왜요……?”
“권선형 씨가 사망하셨습니다.”
“네?”
“그에게는 자식이 없기에 그나마 가까운 사이인 성지원 씨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남자, 이작이 말하는 모든 문장의 모든 단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삼촌이 죽었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운데, 그래서 왜 자신을 찾아왔다는 거지?
“뒤를 이으셔야 합니다.”
“네?”
“이해 못 하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권선형 씨는 행복의 나라라는 신흥 종교의 1대 교주입니다.”
“…네?”
이작이 늘어놓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삼촌이 만든 종교인 행복의 나라는 죽음과 생의 사이가 연결되어 있어 오갈 수 있다는 게 주요 포인트인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는데, 거기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그 대가란 <행복>이었다.
인간은 모두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 행복하면 할수록 일종의 게이지가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신기한 일을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사이비구나. 이건 사이비다.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삼촌이 좀 이상한 면이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
“권선형 씨가 사망함에 따라 2대 교주를 찾아야 하는데, 혈연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에겐 자녀가 없기 때문에 저희는 필사적으로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을 찾다가 바로 당신을 알게 됐습니다. 권선형 씨의 조카인 성지원 씨요.”
지원은 어이가 없었다.
“저, 친조카 아니에요. 그냥 아버지랑 친해서…….”
“그걸 누가 모릅니까?”
날카로운 말에 지원은 이작의 눈치를 봤다. 이작은 입꼬리를 당겨 웃고 있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작은 지원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지원 씨 빚 있죠?”
“네…. 그걸 어떻게…….”
이작은 집 안에 있는 물품들에 빼곡히 붙어 있는 빨간 딱지를 가리켰다. 지원의 얼굴이 수치로 붉어졌다. 모르는 게 바보일 정도로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저희 쪽에서 빚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네?!”
“물론 저희 쪽에서 빚을 사들이는 셈이 되니 이쪽에 변제를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빚이 있는 건 똑같으니 큰 의미가 없겠죠. 그러니 이자는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전 교주님의 조카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솔깃한 이야기가 귓바퀴를 타고 들어왔다. 지원은 정신이 얼얼했다.
“그럼…….”
“유동적이지만 주로 교주님께서 1년에 받아 가시는 성금이 이 정도쯤 됩니다.”
이작은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 메모했다. 0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지원의 눈이 핑핑 돌았다.
“이 정도의 액수라면 빚 변제도 금방이겠죠?”
이작이 지원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원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액수의 돈. 그리고 이작의 미소가 주는 신뢰감은 지원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오늘부터 <행복한 나라>의 2대 교주가 되는 겁니다.”
“아…….”
교주.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진로였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대로 사채업자들에게 영원히 쫓기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착취당하거나, 교주가 되는 길뿐이었다.
“싫으십니까?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고민이 길어지자 남자가 말을 교묘하게 흩트리며 지원을 애타게 했다. 결국 지원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아, 아닙니다! 할게요. 하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할 테니 가볍게 짐을 싸고 주차장으로 내려오세요.”
이작은 벌떡 일어나 유유히 현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지원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캐리어에 짐을 대강 넣었다. 넣을 짐도 별로 없어 옷가지와 노트북 정도였다.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에도 지원은 뭔가에 홀린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드라마에서나 보던 리무진을 보니 더 그랬다. 이작은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고 문까지 열어 주었다.
푸른 냄새가 가득 느껴지는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검은 리무진은 한참 동안 산길을 들어갔다.
지원은 까맣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 나무들을 보고 있었다. 거의 변하지 않는 풍경이었지만 하나하나 기억하듯이 빤히 바라보았다.
살고 있던 곳과 점점 멀어지면서 이전의 자신과 작별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원은 다짐했다. 교주라는 걸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 보겠다고. 그렇게 해서 빚을 전부 다 갚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 보겠다고.
운전석과 분리된 넓은 뒷좌석엔 지원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주 보는 자리에는 이작이 앉아 있었다.
이작은 미리 준비해 둔 교주 매뉴얼을 꺼내서 지원에게 건넸다. 마음가짐부터 걸음걸이까지 모든 게 적혀 있었다.
“조카와 삼촌은 그다지 닮지는 않은 사이지만 신자들 앞에서는 닮은 듯하게 보여야 합니다. 지원 씨를 보면서 전 교주가 떠오르게끔이요. 여기 촬영한 동영상들이 있으니 체크해 두십시오.”
태블릿을 받아 들자 수십, 수백 건의 동영상들이 보였다. 아래로 스크롤하다 보니 혼자서 잠금이 걸려 있는 폴더가 보였다. <은총의 밤>이라는 이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터치해서 열어 보려고 하는 순간, 이작의 목소리가 귓가로 꽂혀 들었다.
“딴짓할 시간이 없으실 텐데요.”
“…….”
지원은 대답하지 않고 슬쩍 고개를 숙여서 동영상을 차례대로 감상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단상 위에, 화려한 장미 무늬 양복을 입은 삼촌이 보였다. 신자들을 향해서 연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눈에 띄고 귀에 쏙 들어오는 뭔가가 있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정확한 발음, 화려한 장식들과 배경 음악…….
자신이 이걸 과연 할 수 있을까? 지원은 대학에 다닐 때, 조별 과제를 하면서도 늘 발표만은 맡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자 이작이 말했다.
“지원 씨는 이제부터 행복의 나라의 교주입니다. 저는 지원 씨의 행복을 위해 서포트할 테니, 지원 씨도 그 행복만큼 그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생각으로 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였다.
“…노력하겠습니다.”
“함께 힘내 봅시다.”
이작은 지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게 뻗은 아름다운 손가락이 지원의 손을 감쌌다. 지원이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도착한 곳은 마치 작은 대학교처럼 다양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도 더 넓고 그럴싸한 외관에 지원은 이질감을 느꼈다. 운전기사가 트렁크를 열어 지원의 캐리어를 꺼내고 그걸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의아해하는 지원에게 이작이 말했다.
“지원 씨가 쓸 방으로 옮겨 주시는 겁니다. 지원 씨는 앞으로 많은 사람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그 위치에 익숙해지도록 하세요.”
지원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안내해 주는 대로 여러 건물을 스쳐 지나가면서 걸었다. 여기는 기숙사입니다. 여기는 행복홀입니다. 연설을 할 때 씁니다. 여기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설명을 들으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저곳들은 자주 갈 일이 없으실 겁니다. 주로 교주실에 계실 테니까요.”
이작을 따라간 곳은 행복홀과 연결된 2층짜리 건물이었다. 이작은 이곳의 2층이 전부 교주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원이 쓰게 될 교주실은 엄청나게 커서 작은 집과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면 소파와 테이블 등이 놓인 거실이 보이고, 더 들어가 그 옆을 가로막은 문을 열면 침실이 나오는 구조였다. 침실의 침대는 혼자 자기엔 지나치게 컸다. 화려한 자수가 놓인 베일에 감싸여 있었다.
이작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베일을 쓴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여섯 명은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지원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작이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이분들은 교주님께서 생활하시는 데에 도움을 주실 분들입니다. 교주실에서 생활하실 교주님과 자주 만날 일은 없겠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원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금 지원 씨 사이즈에 맞춰 옷들을 제작 중입니다. 일단 오늘은 시간도 늦었으니 잠옷으로 먼저 갈아입도록 합시다.”
이작이 손짓을 하자 테이블 위에 옷 한 벌이 덜렁 놓인 채 베일 쓴 사람들이 사라졌다. 지원은 그 옷을 잡아 들었다. 그러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교주님의 잠옷입니다. 마침 어울리실 것 같네요.”
그건 옷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저 하얀 천 조각을 이어 놓은 것에 불과해 보일 정도로 민망한 옷이었다. 옷 자체는 여러 겹의 천을 겹쳐 놓아 부드럽고 화려했지만, 그 천 자체가 극도로 얇은 재질인 게 문제였다. 이걸 입으면 안 입은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 같았다.
이런 게 어울릴 거 같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지원은 당황스러워서 물었다.
“저, 잠옷을 챙겨 왔는데 그걸 입으면 안 되나요…….”
캐리어에 넣어 놓은 회색 추리닝이 그리웠다. 이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잠자는 순간까지 지원 씨가 어떤 사람인지 책임감을 갖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건…….”
“어차피 잘 때만 입는 것 아닙니까? 자는 걸 누가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태도에 지원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그렇게 할 정도로 설득력 있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럼 입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입으세요. 혼자 못 입습니다.”
혼자 못 입는 옷이 대체 옷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걸까? 지원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무척이나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작을 보며 자신이 틀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이작은 태블릿으로 업무를 하는 중이었는데, 지원이 옷을 벗기 시작하자 테이블에 태블릿을 내려놓고 대놓고 지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원은 이작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손가락 끝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바들바들 떨렸다. 손이 헛돌자 이작이 상냥하게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아뇨 괘, 괜찮습…….”
“옷 갈아입는 데 밤새도록 걸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작은 지원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원 앞에 섰다. 지원은 고개를 숙였다. 이작의 가슴팍이 보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작은 손을 뻗어 나머지 단추들을 풀었다. 지원은 오늘 아침, 별생각 없이 단추 달린 셔츠를 집은 자신을 원망했다. 지원은 그냥 조용히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작은 시큰둥한 말투로 자꾸 말을 던졌다.
“얼굴뿐 아니라 속 피부도 하얗네요.”
“네……?”
“연해 보이는 게 자국도 잘 남을 것 같고.”
“…….”
지원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이작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작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입술 색하고 똑같네요.”
뭐가 똑같다는 거지? 지원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뒷걸음질 쳐 이작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작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막았다.
“저! 이제 바지는 제가 벗을게요.”
“예.”
지원은 빠른 손길로 바지를 벗었다. 검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팬티가 왠지 부끄러웠다. 옷이 놓인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자 이작이 옷을 집어 들며 말했다.
“속옷까지 벗으세요.”
“속옷까지요? 도대체…….”
좀…. 조금이 아니라 많이 이상했다. 이럴 필요까진 없는 것 같은데…….
“잘 때도 속옷을 입고 주무시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되실 분이 아프시면 안 됩니다.”
이상하게 이작의 말에는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지원은 하는 수 없이 휘청거리며 속옷을 벗었다. 검은 음모가 나 있는 사타구니가 부끄러워 양손으로 가렸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옷을 입혀 드릴 테니 팔을 벌리세요.”
어쩔 수 없이 사타구니를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팔을 벌렸다. 부드러운 천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감쌌다고 해 봐야 투명에 가까운 천이라 지원의 나신이 거의 그대로 드러났다.
지원은 열심히 빚을 생각했다. 대충 한 계산으로는 한 5년만 이 짓을 참으면 빚을 다 청산할 수 있었다. 5년이면 약 1825일. 참을 수 있다.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계속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목을 감싼 천에 이어진 잠금장치를 잠그고 나니 모든 절차가 끝났다. 정말 쓸모없고 비정상적인 옷이었다. 내일부터는 갖고 온 잠옷을 입으면 된다. 단 하루뿐이니 괜찮을 거라고. 지원은 침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이작이 방을 나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침실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저 이제 잘 건데요…….”
“내일 아침에 교인들과의 첫 대면을 해야 합니다.”
이작은 태블릿을 조작해 이미지 파일을 띄워 지원에게 건넸다. 지원은 이미지 파일을 받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내일 교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이작이 보여 준 사진은 커다란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사진이었다. 얼핏 평범해 보이기도 했지만, 단상 쪽을 클로즈업하니 이상한 사진이었다. 단상 위에는 삼촌이 다리를 벌린 채로 앉아 있었고, 그 사이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의 다리 사이에 앉아서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원은 자신이 상상하는 그게 아니기를 기도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작에게 물어보았다.
“저 이건…. 아니죠? 그렇죠……?”
“교주님의 행복이 곧 저희의 행복.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그거, 그거잖아요…. 그…….”
“구강성교.”
“네, 그거…? 그거예요 진짜……?”
“아니면 펠라치오. 그렇게도 부르죠.”
지원은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저는 못 해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하셔야 합니다.”
“못 해요!”
이작의 단호한 목소리에 지원은 화를 냈다. 이작은 후 숨을 내쉬었다.
“뭐 어떻습니까. 교주님이 빨아 주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빨아 주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 않습니까. 구강성교.”
“…해 본 적 없으니까 그렇죠!”
여자를 사귀어 본 적도 없었다. 지원은 자신의 치부를 말해 버린 것 같아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말은 공중에 흩어진 후였다. 이작은 잠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행복하실 겁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바라고 있어요. 교주님의 좆을 빠는 순간을요. 그 행복이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무슨 소리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전 하나도 안 행복한데 누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건지.”
이 순간만큼 지원은 아무도 없는, 빨간 딱지가 잔뜩 붙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괜히 여기까지 와서 이상한 소리나 잔뜩 듣고, 서러웠다. 눈물이 글썽거리자 이작이 지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주님.”
“…네.”
“행복하실 겁니다.”
“무리예요.”
이작의 단호한 말이 위로로 다가왔다. 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작은 지원이 입고 있는 여러 겹의 잠옷을 헤집어 지원의 성기가 드러나게 했다. 지원이 놀라 기겁하며 이작의 손을 떼어 보려 했지만 부족했다.
“연습해 보죠.”
“이작 씨!”
“말랑하고, 귀엽네요.”
이작이 지원의 성기를 감싸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끝단을 살짝 물어 혀로 쑤시듯 빨았다.
“하, 하지 마세요…. 제발…….”
“기분 좋지 않습니까? 교주님 좆은 점점 좋아하고 있는데요.”
“그런, 그런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해야 했는데 단어가 속으로 삼켜졌다. 이작이 말한 대로였다. 성기가 빨리는 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작은 능숙하게 아래 뿌리부터 혀로 쓸어 올렸다.
날것 그대로 드러난 성기 자체보다 그걸 빠는 이작이 더 외설적으로 보였다. 이작의 붉은 혀가 성기를 감싸듯 핥았고, 그럴 때마다 혀에 난 미세한 돌기에 예민한 피부가 긁히는 기분이 들었다.
“으읏…….”
어쩔 줄 몰라 하며 신음을 내자, 이작이 살며시 웃었다. 지원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약한 자극에도 성기는 곧 파정했고, 이작은 아무렇지 않게 그걸 손바닥에 뱉은 후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좆을 빨렸다. 문장의 모든 부분이 말이 안 됐다. 지원은 수치심과 쾌락에 눈가가 붉어졌다. 숨이 저절로 가빠지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작의 손에 곧 떼어졌다.
“흑, 으흑…….”
“거보세요. 좋아하실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작은 지원의 얼굴이 수치심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하얗고 단정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날 밤, 지원은 잠을 못 잔 것과 마찬가지인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침은 찾아왔고 이작이 찾아와 지원을 침대에서 끌어내 소파에 앉혔다.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정신이 혼미했으나 이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작이 내민 것은 두꺼운 계약서였다. 도장이 없으니 지장을 찍으라며 인주까지 들이밀었다. 지원은 보통 한국인처럼 수많은 글씨에 질겁했다.
이작이 옆에서 재촉하자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장을 찍기 시작했다.
“여기도 찍으세요.”
“네…….”
지장을 찍어야 하는 곳이 왜 이렇게도 많은 걸까. 지원은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백 장에 달하는 계약서에 지장 찍기를 마치고 소파에 늘어지자 얇은 천 옷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어제 알려 드린 대로 오늘 오전에는 교인들과의 첫 대면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작은 차분히 일정을 설명했다. 지원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가기 싫었다. 하지만 첫 일정이었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쩡대는 지원에게 이작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젠 처음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네?”
“좆 빨리시는 거요.”
지난밤의 일이 저절로 생각이 나서 수치스러움이 몰려왔다. 침대에 앉은 채로 다리를 벌려서 이작에게 성기를 빨렸던 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하지만…….”
“빨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는 건데요. 가만히 있으시면 금방 끝날 겁니다.”
그 말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걸 별일이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정말 아무래도.
“이작 씨. 이건 정말로…….”
“성지원 씨.”
성까지 붙여진 이름 석 자가 들리자 지원의 어깨가 떨렸다. 이작은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CCTV 화면인지 여러 개로 분할된 영상이 보였다.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강당의 단상 앞에는 역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작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말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교주님을 뵈러 온 겁니다. 아무나 교주님의 좆을 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줄에 선 사람들, 얼마를 냈는지 아십니까?”
이작이 귓가에 구체적 금액을 속삭였다. 지원의 눈이 저절로 크게 떠졌다. 믿을 수가 없는 금액이었다.
“그중에서 30%를 교주님이 가져가시게 됩니다. 지금은 30%이지만, 더 많은 분이 모일수록 교주님이 가져가실 금액이 더 높아집니다.”
이과를 갔어도 숫자 계산에는 약하다고 생각했었건만. 지원의 머릿속에서는 빠른 속도로 계산이 되고 있었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빚은 사라진 게 아니다. 이곳에 고스란히 묶여 있었다. 심지어 지원에겐 다른 사람에겐 없는, 빚을 빨리 갚을 방법도 있었다.
아주 작고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빚을 다 갚으면 이곳을 떠날 테니, 아무도 산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자신의 성기를 빨기 위해서 돈을 낸단 건지…….
“시, 실망하지 않을까요. 제 거를 왜…….”
“그럴 리가요. 교주님은 그럴 가치가 있으신 분이신데요.”
“저한테요?”
“네. 없어도 저희가 그렇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이작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지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옷부터 갈아입으실까요.”
이작이 건네준 옷은 잠옷처럼 여전히 옷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외설적인 의상이었다. 상반신은 아주 얇은 천으로 되어 대충 가려지지도 않고, 하반신도 기다란 천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리 실루엣이 훤히 보였다.
지원은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하얗고 얇은 천 속으로 밋밋한 가슴팍이 보였다.
지원은 어제 이작이 한 말이 떠올랐다. ‘입술 색하고 똑같네요.’ 입술 색과 색이 비슷할 부위는 단 하나밖에 없다. 젖꼭지였다. 수치심에 볼 어귀가 저릿했다. 혈액순환이 너무 빨라 피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입는 것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어제와는 달리 대강 옷을 꿰어 입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천이 덜 비치는 재질이라는 점이 지원을 안심하게 했다. 그러곤 기다란 로브를 지원에게 걸쳐 주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와인색 로브였다. 지원은 이작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걷는 동안 궁금한 걸 물어봤다.
“저, 그런데 아까 사진을 보니 남자밖에 없던데…….”
“저희 <행복의 나라>는 남성 교인밖에 받지 않습니다.”
“예? 왜요?”
“남자인 편이 더 돈을 뜯기 쉬우니까요.”
사이비라는 인식은 있는 거구나. 지원은 그나마 그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는 그랬다.
강당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이작이 지시했다.
“들어가시면 의자가 보일 겁니다. 의자에 앉으세요. 그리고 바로 로브를 벗지 마시고 제가 지시할 테니 그때 천천히 벗으십시오. 이 모든 과정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절대로.”
“왜요?”
“계약서에 적혀 있습니다.”
이작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지원은 계약서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분위기를 돋울 필요가 있으니 흥분하는 모습은 조금 보여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흥분하는 모습이요……?”
“예. 어제 하신 것처럼 하시면 됩니다.”
이작이 문을 열자 지원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하얀 조명이 쏟아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원은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 옆을 이작이 따라 걸어왔다. 지나치게 밝은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앞이 조금씩 보였다.
강당은 대학교의 대형 강의실만 한 넓이였다. 많은 사람이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앉아 있었다. 지원은 그 사람들을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눈앞에 의자가 바로 보였고, 그곳으로 걸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이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지는 느낌이 낯설었다. 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의자는 지나치게 화려했고 그만큼 쿠션이 푹신해서 앉기가 편했다. 이작이 지원의 옆에 서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로브를 벗으라는 신호 같아서, 지원은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로브를 내리자 안 그래도 조용했던 강당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뭘 잘못한 건 아니겠지. 지원은 불안했다. 이작이 지원이 입고 있던 로브를 받아서 대기 중이던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다.
지원은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어서 살짝 내리깔았다.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후끈한 조명의 열기와 시선들이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술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데에 위치한 줄을 선 사람들의 침 삼키는 소리도 들렸다.
이작이 지시한 대로 지원은 입을 꼭 다물었다. 불안해져 이작을 곁눈질로 지켜보았지만, 이작은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지금부터 대면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새로운 교주님께 인사를.”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강당을 흔들 듯이 크게 울렸다. 지원은 불안해져 팔걸이의 천 부분을 손톱으로 긁었다. 다시 곁눈질했지만,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이작은 관중을 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더욱 증폭되어 갔다. 울고 싶은 심정에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래 기다리신 만큼 즐거우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분명히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인데 온몸이 꽁꽁 묶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망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쉬기도 어려웠다.
식이 시작되자 아까부터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동해 지원의 앞에 섰다. 맨 앞에 선 남자가 지원의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이작의 말대로라면 이자가 최고 금액을 낸 자일 것이다.
남자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지원의 옷 같지도 않은 옷을 헤쳤다. 하얗고 적당히 살집이 붙은 허벅지가 드러나자 강당 안에 탄식이 울려 퍼졌다. 지원의 짙은 분홍빛 성기가 쪼그라든 채 차갑게 식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지원을 바라보았다. 얼마 정도의 나이일까. 아마 지원보다 열 살은 더 많은 것 같았다. 끈덕진 눈빛이 지원을 핥아 내렸다. 지원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한 방울 톡, 하고 떨어졌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남자는 손을 뻗어 지원의 성기를 살짝 쥐었다. 아직 때가 타지 않은 듯, 깨끗한 색의 성기였다. 그 모습이 무언가를 부추긴 듯했다. 남자는 가쁜 숨을 쉬며 지원의 성기를 천천히 입안으로 삼켰다.
지원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작의 경고를 어기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남자의 돌기가 돋아난 혀가 지원의 성기를 핥기 시작했다. 축축한 입속에서 빨리는 압력에 의해 성기에 자극이 가고 있었다. 지원은 울고 싶었다. 몸이 살짝 떨렸고 눈물이 조금 차올랐다.
모든 게 이상했다. 지원은 머릿속 한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을 열심히 채워 넣었다.
지금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나는 일을 하고 있을 뿐. 남자한테 성기 좀 빨린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빚까지 갚을 수 있고, 괜찮은 일이다. 입속이야 어차피 50대 아저씨든 10대 소년이든 똑같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남자는 지원의 성기를 정성껏 빨았다. 빨리는 건 지원이었는데 흥분하는 것은 남자였다. 남자는 하반신을 비틀고 지원의 다리에 문질러 댔다. 지원은 다리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발기한 성기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떨쳐 낼 수도 없었다.
지원은 지금 일을 하는 중이었다. 교주직에서 잘리고 싶지 않았다. 지원은 억지로 좋은 척 미약한 신음 소리를 냈다.
“하아…….”
그 소리에 남자가 더 흥분하여 집요하게 성기를 빨아 댔다. 지원의 뽀얀 허벅지를 움켜쥐고 옆으로 더 세게 벌렸다. 다리가 쩍 벌어지자 지원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떨궜다.
“으응…….”
그때였다. 띠리릭. 시계 소리가 들렸다. 시간제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타이머를 손에 든 이작이 남자에게 말했다.
“시간 끝났습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땅에 머리가 닿을 듯이 숙여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지원은 차마 그 꼴을 보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다음 차례로 온 남자는 지원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학생이었다. 무척 긴장한 건지 이를 세워 지원의 성기를 살짝 깨물어 버렸다.
“아!”
지원이 찡그리며 소리를 내자 곧장 교인들이 달려와 끌고 나가려고 했다. 깨물려서 아프기는 했지만 여기서 바로 쫓겨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계속하세요.”
“교주님…….”
남자는 지원의 아량에 감동받았다. 그는 정성을 다해서 지원의 성기를 빨았다. 그 후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지원은 성기를 빨렸다. 결국 바깥 피부가 빨갛게 헐 때까지 빨렸다.
중간에 사정도 두 번 했다. 입안에 사정을 했는데도 남자들은 분출된 사정액을 먹어 치우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지원이 지쳐하자 이작이 이제 열 명도 남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고 했다. 힘이 되기는커녕 절망스러운 정보였다. 지원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지원의 삼촌도 잘생긴 편이었다. 그리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이런 행위쯤은 별거 아닌 것처럼 했을지도 모른다. 그라면 오히려 즐기면서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원은 아니었다.
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지원이 입고 있던 성의 없는 옷은 다 땀으로 젖어 입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겨우 마지막 교인이 지원의 성기를 빨 때쯤에는 성기에서는 맑은 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첫 대면식에 와 주신 교인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작의 인사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 쳤다. 지원은 정신이 혼미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힘이 없는 지원을 이작이 부축해서 일으켜 주었다. 강당에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원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작게 헐떡이는 숨은 무리했다는 증거였다. 이작은 재밌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 교주님과 정말 딴판이시군요.”
“그야…….”
삼촌과 나는 생판 남이니까.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하기가 벅차서 말하지 못했다.
“앞으로 교주님이 배우셔야 할 게 산더미입니다. 오늘은 오후 일정이 없으니 편하게 쉬십시오. 교육은 내일부터로 미루겠습니다.”
이작은 일정을 체크하면서 웃었다. 이 상태로는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부축을 받아 다시 방으로 돌아온 지원은 바로 침대에 누워 뻗어 버렸다. 잠을 설친 데다가 아침부터 강제로 두 번이나 사정을 했으니 지칠 만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네…….”
“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연기를 꽤 하시는 것 같았지만, 진짜로 흥분했을 때랑은 역시 좀 다르셨습니다. 연기 연습을 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바른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쉬십시오.”
지원은 이작이 방을 나가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버석거리는 이불이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이 좋았다. 그래도 오늘 있었던 대면식으로 인해 벌써 꽤 돈을 벌었다. 방세나 식대도 들지 않으니 엄청난 이득이었다. 머릿속으로 비윤리적이라며 누군가 비난하고 있었지만, 그건 곧 사라졌다. 윤리나 비난 따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제일 무서운 건 빚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