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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열병(2) (24/24)

서글픈 자리에서도 놋시는 깊게 잠들었다. 눈 떴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생각을 지우는 잠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뜬 놋시의 주변은 새카맸고 누워 있는 바닥 역시 익숙한 감촉이 아니라 위아래를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흐릿한 온기는 작게 사그라진 화롯불이었다.

불빛을 바라보던 놋시는 곧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해 냈다. 테스. 테스의 열병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금단의 숲에 숨었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인 것처럼 등이 서늘하지. 황급히 일어나 앉은 놋시는 자신이 어느새 담요를 둘둘 말고서 넓은 침대의 가장자리에 굴러와 있는 걸 알았다. 분명 잠들 때까지 그를 꼭 안아 줬던 테스는 반대편에서 홀로 누워 있었다.

놋시는 어둠에 묻혀도 알아볼 수 있는 반듯한 이마와 높은 콧대를 목표 삼아 다가갔다. 닿기도 전에 테스의 온몸이 열로 들끓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의 서늘함을 잃은 체취에는 땀 냄새가 없지만 그보다 위험한 열기가 늘어 있고 소리 내 떠 들리는 가슴팍도 힘겨워 보였다.

무작정 테스에게 손을 뻗은 놋시가 입을 맞추기도 하고 침을 흘려 넣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발정을 일으킬 거라면 아직 테스의 정신이 맑던 저녁에 했어야 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냥 자버렸을까. 테스의 고집에 물러선 자신을 탓하던 놋시는 잠시 후 일어서 흰 털 망토 하나로 몸을 감쌌다. 테스는 잠을 깨지 못할 만큼 열에 취해 있었다. 어떻게든 열을 내려야만 그가 깨어날 것 같다.

작은 천막을 벗어난 놋시가 어두운 바닥을 둘러보지만 저녁에 물을 데웠던 큰 화로 옆에는 찾고 있던 물동이가 없다. 나무로 된 물바가지를 들고 어둑한 주변을 서성이던 그가 결국에는 밖으로 나선다.

풀숲을 밟으며 달려간 맨발이 향하는 곳은 검은 하늘처럼 보이지 않는 호수였다. 가까워 보이던 호수는 내리막길인데도 생각보다 멀었다. 간신히 도달해 차가운 물을 뜬 놋시는 바가지에 담긴 검은 하늘이 넘치지 않기를 빌며 왔던 길로 돌아섰다.

흔들리는 물을 보는 작은 머릿속에서 온갖 질책이 시끄러웠다. 테스는 이미 열병의 고열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을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왜 테스는 고집을 부리며 자신을 안지 않았을까? 타들어 가는 속으로 다급히 걷던 놋시가 순간 휘청거렸다. 힘을 놓친 발이 풀잎을 짓이기며 멈췄다.

훤히 열려 있는 풀밭에서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검은 천막이 어둠에 묻혔는지? 놋시의 앞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빽빽한 숲은 여전히 세상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들의 천막은 보이질 않고 사방은 그가 모르는 암흑이었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꼴이지. 놋시의 심장이 제자리에서 뒤엉켰다. 쉬지 않던 걸음으로 몇 번이나 주변을 돌아봤지만 갈 곳이 없었다. 호수는 다시 멀어져 있지만 그들의 잠자리는 사라진 것이다.

적막한 숲에서 고향의 추억을 떠올렸던 놋시는 속임수에 당한 듯 막막해졌다. 이곳이 금단의 숲인 까닭은 단순히 황제가 그렇게 정해서가 아닐 터였다.

나오면서 등불을 가져올걸. 어째서 말조차 보이지 않을까.

저녁을 치우던 놋시는 마차를 몰고 온 두 마리 말이 천막에서 떨어진 몇 그루 나무에 묶여 있는 걸 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차도 있다.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 경사를 피해 숲 가까이 놔뒀던 마차 역시, 아무리 어두워도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이제껏 모르던 밤의 냉기가 놋시의 맨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물이 담긴 바가지를 내려놓은 그는 망토를 고쳐 잡은 뒤 호수를 향해 방향을 정했다. 호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둘러싼 숲처럼 그 자리에 머무르는 목적지였다.

놋시는 뱀도 동물도 무섭지 않지만 길을 잃게 만드는 땅은 무서웠다. 다시 물가로 돌아가 천막이 있는 곳을 찾는 게 나을 듯했다.

물안개가 늘어 습해진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걸음을 서두르던 놋시는 한참 뒤 다시금 멈춰 섰다. 그의 등 뒤에는 내려다보는 검은 숲이 있고 그의 눈앞에는 밤하늘을 담은 호수가 있지만 아무리 걸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어디선가 까마귀가 울었다. 물에 빠진 듯 먹먹해졌던 놋시의 귀가 찢어지는 울음에 뚫리고 온갖 잡음이 밀려들었다. 바람에 소스라치는 풀잎의 비명을 들으며 주저앉은 그가 흰 털 망토를 붙잡고서 눈을 감는다. 저절로 테스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렇게 헤매는 동안 테스가 다치고 있을 텐데. 포악한 열병이 그를 삼키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싫다는 말을 하지 말걸.

뒤늦게 후회가 닥쳐 왔다. 그래서 테스가 자신의 열병을 숨기던 게 아닌지, 죄스러워하며 감추던 게 아닌지 싶어 놋시의 눈이 무거워진다. 지금에 와서야 알아차린 스스로가 믿기지 않았다.

처음 소리가 들렸을 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놋시는 호수의 물비린내와 숲의 가득 찬 적막에 갇혀 있었다.

빛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를 구하러 나타난 테스였다. 붙잡아 일으키는 손이 너무 뜨거워 망토 밑에서 얼어 있던 팔까지 열이 닿았다.

“놋시!”

“아!”

물에서 건져진 사람처럼 숨이 트인 놋시는 테스의 허리를 끌어안고 매달렸다. 테스가 무사하다는 게 구해진 것보다 기뻤다.

피로와 걱정에 짓눌려 있던 놋시는 테스를 만났다는 흥분으로 앞이 안 보이고 귀가 들리지 않았다. 만져지고 살아 있는 테스를 안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만끽하느라 무슨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쁨으로 부풀었던 가슴이 벅찬 울음으로 가라앉고 나서. 그 후에 놋시는 듣게 된다. 그를 다그치는 테스의 울지 못하는 외침을.

“어디로 가려고! 이 숲은 밤에 다녀선 안 되는 곳이야!”

“물을, 제가 물을 뜨려고 나왔다가…….”

“아버지의 집도 이제 없다. 동굴에도 다른 이가 있는데 어디를 가겠다고. 갈 곳이 없는데도 나를 떠나려고 해?”

“아닙니다! 물로 열을 내리려고 했어요!”

“또 나를 버릴 순 없다! 다시는 아기를 주지 않으마. 다시는 힘들게 하지 않을 테니까…….”

테스는 떠나지 말라고 놋시에게 절규했다. 놋시는 눈을 마주치고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끌어안은 팔이 너무나 거세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테스의 맨가슴에서 뛰는 심장의 박동은 안겨 있는 놋시의 몸을 뒤흔들 정도로 컸다. 어쩌면 세상이 모두 흔들리는 걸지도 모른다.

놋시를 붙잡은 테스는 새까만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고서 상처 깊은 속을 내보였고 아니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무슨 소리도 듣지 못하는지 처절한 고백이 그치질 않는다.

가지 말라고, 가지 않는다고, 악몽처럼 되풀이되는 애원이 수없이 오고 간 다음에.

눈물이 흐르는데도 닦을 정신이 없던 놋시는 테스가 열에 미쳐 있는 걸 뒤늦게 알았다. 밤이 이리도 차가운데 그를 쫓아온 테스는 벌거벗은 몸이었다. 열에 눌려 눈도 못 뜨던 테스가 그를 찾으러 여기까지 나온 것이다.

떠나지 않았는데. 다시는 떠나지 않을 텐데.

품에 안겨 있고 어디도 가지 않는데 알지 못하는 테스를 보며 놋시의 속도 뒤집혔다.

“저는 이 숲이 어떤지 몰랐습니다. 호수의 물을 떠서 돌아가려고 했어요. 정말입니다…….”

힘겨워진 놋시의 목소리가 끈질기게 속삭였지만 무엇도 닿지 않는 듯하다. 어깨를 가둔 팔에서 힘들게 고개를 뺀 놋시는 손을 뻗어 테스의 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가까스로 닿은 얼굴을 당겼다. 풀과 흙에 얼어붙은 발꿈치를 올리고 손에 감기는 머리카락을 이끌자 테스의 턱에 숨이 닿았다. 떨리는 입술에도 닿을 것 같다.

“제발. 저는 몰랐어요. 이 숲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모르지. 아무도 오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인데.”

“말해 준 이가 없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물을 뜨려고 나왔던 거예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

“정말입니다.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지 않아요.”

“…….”

“저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말라 가는 목소리를 이어 가느라 쌔근대고 숨이 새던 놋시는 마침내 테스의 눈이 자신을 향한 걸 봤다. 어긋나 있던 얼굴이 서로를 보자 겹치는 것도 금방이었다.

열리지 않는 입술을 핥아 열게 만든 것은 발끝을 올리고 목을 당기던 놋시였지만, 혀가 섞이고 숨이 통하며 그의 발을 뜨게 만든 것은 테스였다.

놋시를 덮쳐 온 테스의 온몸은 절절 끓고 있었다. 닿는 곳마다 뜨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쩌면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더욱 뜨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무서운 열기였다. 놋시의 허리를 잡은 테스의 손은 붉게 열을 품은 숯처럼 벌겋게 빛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그런데도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은 달랐다. 놋시는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의 살을 열고 들어온 테스의 성기는 거슬림 없는 체온으로 녹아들었고 무겁고 선명한 결합은 안도하게 되는 익숙함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행위는 그렇지 않다. 바람과 풀잎의 다툼과 그를 닮은 외침이 떠돌던 풀밭에 아픈 신음이 울려 퍼졌다.

“흐윽! 읏! 아! 하윽…….”

놋시는 절제되지 않은 힘으로 파고드는 테스에게 밀리고 당겨지며 몸부림쳤다. 미처 젖지 못한 살결 틈새를 침입한 알파의 성기가 연약한 내벽을 찌르고 머리를 박을 때마다 어둠을 가르고 뻗어 나간 두 다리가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피하는 머리와 달리 잡혀 있는 손목은 갈 곳이 없다. 놋시의 눈은 까만 밤의 별빛을 봤지만 날것의 욕구로 그를 원하는 알파의 거친 숨소리와 속을 두들기는 무자비한 자극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테스의 성기가 살을 파고들 때마다 피부와 피부가 부딪히고 뼈가 눌리는 척척한 소리가 때리듯 요란했다.

“아! 테스! 으응, 흐읏.”

그래도 놋시는 테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양 손목을 쥔 손바닥의 뜨거움과 몸을 가를 듯 파고드는 고통도 서서히 앞이 보이듯 정교해졌다. 배를 드러내고 누운 상체가 한기를 느끼지만 꿰뚫린 하체는 불이 붙듯 뜨거웠다. 어지러운 혼란이 정체를 드러내며 안심하게 되는 현실이 돌아왔다.

규칙을 만들어 가는 박자와 교묘하게 방향을 찾는 머리가 깊은 곳을 짓누르자 풀밭을 짚고 버티던 발이 끝을 굽히며 떨려 왔다. 아아, 후으. 허공을 찌르던 놋시의 신음도 허물어지는 한숨으로 뭉개져 더운 입김을 흘린다.

길고 곧은 머리카락이 흩뿌려지는 달빛과 다른 선명한 감촉으로 놋시의 배를 스치던 순간, 낯설던 그림자가 다가와 더운 가슴과 팔로 변해 그를 안았다. 뿌리까지 들어올 듯 깊게 잠겨 있던 테스의 성기가 달라붙은 내벽을 이끌고 움직이자 놋시의 목에서도 가늘어진 신음이 솟아났다. 하지만 밖을 볼 새도 없이 안에서 잡아 먹힌다.

“아으, 흐으읏, 으읍, 흐음…….”

입술과 입술이 겹치고, 혓바닥이 서로를 찔러대고, 큰 손이 마른 어깨를 끌어안고 벌려진 허벅지를 잡아당겼다. 좁은 구멍을 한계까지 몰아가는 테스의 전신에 놋시의 팔다리가 모두 달려들었다. 풀려나 버려졌던 놋시의 손이 테스의 목을 휘감고 차가운 머리카락 속의 뜨거운 피부를 더듬고 귓가를 어루만진다.

조금씩 조금씩, 테스의 포악한 욕망이 줄을 따른다. 길을 찾았다. 오메가의 연한 몸과 섞이듯 뒤엉킨 알파의 육체가 배가 닿을 듯 깊어진 삽입을 이어 갔다. 비좁은 구멍을 채우고 머리를 비비며 몸통을 부풀렸다. 자리 잡은 충돌이 맞물린 피부를 누르고 떨어지며 내밀한 집착으로 변하자 놋시의 아픈 속이 쾌감에 마비되며 젖어 들었다.

“읏, 흐읏, 흐응…….”

“하아, 후읏…….”

세상을 가리듯 높았던 테스의 그림자가 품속의 몸으로 바뀌고도 놋시는 하늘을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들어 올린 손에 안겨 접힌 몸은 바닥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테스는 놋시를 세상과 떨어뜨려 품에 안고 있었다. 마치 발에 닿는 흙도 싫다는 것처럼 들어 안은 그 덕에 놋시에게 닿은 것은 테스뿐이었다.

그러니 놋시가 보는 것은 그를 안고 차지한 알파의 육체였다. 그는 목덜미를 물고 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풀어 꿈틀거리는 넓은 등과 온몸을 조이듯 안고 있는 커다란 어깨를 내려다봤다.

세워진 무릎 사이에 안겨 있는 테스의 하체는 미끄러운 박자를 쫓아 움직였고 뗄 수 없게 붙어 있는 속에서는 한낮의 아지랑이처럼 끊임없고 어지러운 쾌감이 피어올랐다.

그런데도 그들을 둘러싼 밤은 아직 그 자리였다. 소리를 뺏긴 차가운 바람이 휩쓸 때마다 놋시의 이마와 굽혀진 팔과 맨살로 던져진 두 다리가 차가움에 떨었지만 안아 주는 테스의 몸이 하도 뜨거워 견딜 만했다. 불이 타오르는 화로를 끌어안은 것만 같았다.

어둡고 적막한 세상과 전혀 다른 열렬한 갈망을 느끼며, 더운 햇볕처럼 따스하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만족에 젖어 들면서, 놋시는 테스도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 서로가 있어 부족한 게 없었다.

놋시의 살을 열고서 한참이나 몰두하던 테스의 육체는 점점 사나움을 잃었다. 그의 속에 씨를 뿌리고 엮는 것만을 원하듯 맹목적인 행위에도 열렬한 입맞춤과 느슨한 애무가 더해졌고 더 이상 아픔을 만들지 않았다.

맞잡은 손이 주먹 쥐듯 안긴 놋시는 근육이 곤두선 어깨와 등을 쓸어내리며 테스를 기다렸다. 뼈와 살이 고스란히 섞여 하나로 웅크린 결합이 계속될수록 원래의 테스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테스는 아직 놋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 역시 괴로움이 아닌 환희를 뱉고 있었다. 뼈의 살을 긁어내듯 거칠게 씹히던 호흡은 놋시의 귀에 반가운 낮은 숨으로 옅어졌고 도망치려는 동물을 잡는 것처럼 힘을 풀지 않던 손도 절박함을 덜며 욕망을 전해 왔다.

질척해진 좁은 구멍에 거칠게 충돌하던 힘이 미끄럽고 친밀한 자극으로 늦춰지고 아프게 잡았던 손도 노골적인 손짓으로 변해 갔다. 테스는 놋시를 달래듯 벗은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맥박이 뛰는 목덜미를 물고 빨다 쇄골을 핥고 내려간 입술이 차고 더운 감각으로 도드라진 유두에 닿은 순간 놋시의 몸이 굳지만 막는 손은 없었다. 그는 불안으로 숨죽이고도 테스의 욕구를 받아들였다.

무엇이 닿고 떨어지는 걸 느끼는 게 고작일 만큼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놋시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주 천천히 그의 시야가 달라졌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땀에 젖은 어깨 대신 검은 하늘이 보이고 그 사이의 별이 먼지처럼 떠돈다.

부들거리는 흰 털 망토에 다시 놓인 등줄기가 흠칫 떨면서도 가만히 눕는다. 놋시는 스르륵 흘러내리듯 바닥에 머리를 두고 테스를 바라봤다. 그들의 하체는 아직 하나처럼 섞여 있었고, 드러난 배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은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다.

테스의 입은 두근거리고 들썩이는 놋시의 가슴에 닿고 나서 몇 번이나 거친 숨을 토했다. 깊고 끈덕진 삽입에 지쳐 떨리는 배와 옆구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이 올라와 마른 가슴을 잡았다. 유두와 주변의 살을 모으듯 움직인 긴 손가락 위로 곧은 콧대가 찔러오더니 혀가 나와 길게 핥는다.

“아, 테스, 흐읏! 하으…….”

놋시는 저절로 조여들고 들뜨는 몸을 막지 못했다. 테스의 뾰족한 혀와 얇은 입술이 마른 가슴에서 도드라진 돌기를 핥고 빨 때마다 온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무 밑동처럼 단단한 허리에 눌려 기대기도 어렵던 그의 허벅지도 조르듯 피부를 비볐고 미끄럽게 젖어 빠듯하게 벌려진 구멍도 혼자 떨렸다. 추위와 거친 행위로 감각이 마비된 듯 둔해졌던 놋시의 전신이 되살아났다.

“놋시, 후, 너는…….”

“흐읍, 으응, 으읏…….”

마침내 사람의 말을 하게 된 테스가 이름을 부르자 놋시의 가슴이 그 혀에 닿고 그 숨에 젖었다. 그럴 때마다 버겁게 벌어져 둔감해졌던 좁은 구멍이 움찔거리며 거대한 성기에 감겨들었다. 숨 쉬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살덩이에 민감한 점막이 달라붙고 매달리며 새로운 열기를 만들어 낸다.

그때부터 모든 게 급해졌다. 작아졌던 신음이 다시금 커지고 테스는 흉포하지 않은 대신 끈질겨졌다. 미끄럽게 엉겨들어 있던 그의 성기가 놋시의 속을 길게 훑고, 깊은 안쪽을 두들겨 멍들게 만들고, 비좁은 속살을 헤집고 나왔다 다시금 들어가 놋시를 소리 지르게 했다.

그러다 침에 흠뻑 젖은 놋시의 가슴에 별빛이 닿고, 속을 밀릴 때마다 들썩이던 그의 배도 차가운 공기에 뜨끔거리고, 반쯤 선 채로 끝을 적시던 오메가의 성기도 눈물처럼 묽은 정액을 흘리고 만 순간. 좁은 허리를 꿰뚫고 살가죽을 들뜨게 하며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던 테스의 성기가 뜨겁게 분출하기 시작했다.

울컥 올라올 만큼 드센 기세로 자신의 속을 적시는 알파의 절정을 느끼며 놋시의 고개가 젖혀지고 등허리가 올라서지만 그것뿐이다. 가슴을 만지고 배를 만지던 테스의 두 손이 버거워하는 놋시의 허리를 잡고 놔주지 않고 있다.

“흐윽, 아읏…….”

놋시는 입술을 깨물며 테스의 절정을 견뎠다. 여러 번의 분출로 쏟아진 알파의 정액은 오메가의 배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나왔다.

피와 본능이 내뿜는 날것의 냄새가 밤공기를 데우며 퍼져 나가고. 넘쳐 난 정액이 맞닿은 피부 틈새로 흘러 열이 오른 살결을 타고 밑으로 떨어지지만 잠시 후에는 멎고 만다. 따듯한 속에서 소원을 이룬 알파의 성기 뿌리에서 귀두구가 부풀어 오르며 놏을 이루고 그의 욕심을 완성했다.

다음에 놋시가 눈떴을 때 테스는 그를 보고 있었다.

초록을 되찾은 눈동자가 숨이 트인 입가를 훑고 멀어지다 놋시에게 돌아왔다. 그에게 들리는 테스의 속삭임은 껍질을 벗긴 사과 속살처럼 살캉거렸다.

“……다치지 않았니.”

“그…….”

놋시는 괜찮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바짝 마른 목에서 나온 소리는 말이 되지 못하고 끊어졌다. 급히 숨을 들이쉬다 기침이 터지자 힘이 빠졌던 가슴팍이 내려앉고, 그러자 꽉 막힌 속이 뒤틀려 여러 차례 신음이 샜다.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은 놋시는 숨을 돌리고도 한참 뒤에야 테스를 마주 봤다.

“저는……. 괜찮습니다.”

“…….”

“아프지 않아요.”

조금 더 또렷하게 말이 덧붙어도 테스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조용히 내려다보는 눈동자에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아 놋시의 심장이 시큰거렸다.

천천히 어깨를 돌려 바로 누운 놋시는 자신의 손을 모았다. 테스의 큰 손은 간간이 떨리고 움찔대는 그의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핏줄이 불거진 손등을 침과 땀으로 축축해진 놋시의 손바닥이 붙잡는다.

멈춰선 서로의 몸과 진득한 결합을 새삼 느낀 놋시가 작게 미소 지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첫 고비는 넘긴 것 같다. 테스는 짙은 슬픔을 드러내고도 온전해 보였고 놋시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정말입니다. 괜찮아요.”

재차 말하는 놋시에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조금 더 믿음직한 목소리였다면 좋을 텐데. 놋시는 아쉬움을 뒤로 넘겼다. 메마른 목은 아직 큰 소리를 내기 힘들었고 그의 호흡은 쉽사리 깊어지지 못했다. 속을 채우고 있는 테스의 성기가 여전히 커다란 탓에 얕은 숨으로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웃음은 어렵지 않았다. 놋시는 테스의 침착해진 얼굴에 안심하고 있었다. 긴 눈썹과 깊숙한 눈매가 만드는 우아하고 분명한 눈빛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름다운 얼굴을 뒤덮고 폭발할 것 같던 격렬함은 씻은 듯 사라졌고, 분노와 욕구와 원망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마음도 열린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더하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놋시는 하늘 저 바깥으로 흘러가는 한숨을 들었고, 시선의 끝에서 테스는 보일 듯 말 듯 입 끝을 올려 보였다. 그만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웃음은 어떤 약속보다도 믿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니 놋시는 이미 충분했지만, 그 순간 테스는 조금 더 다가왔다. 힘든 몸에 온기를 주던 테스의 손이 뒤집혀 놋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가락을 얽으며 가까워진 곧은 얼굴이 이마를 맞대고서 말해 줬다.

“그래. 이제는 괜찮을 거다.”

이후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모든 게 괜찮았다.

놋시가 추워하는 걸 알게 된 테스는 곧바로 천막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놏이 두둑하게 차올라 내밀한 속살에 박힌 상태로는 들어 올리기도 쉽지 않다. 테스는 할 수 있지만 놋시의 몸이 견디지 못했다.

살을 열고 몸을 엮은 테스의 성기가 놏을 풀 때까지 기다리며 놋시는 많은 말을 들었다. 하나같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지만 놋시의 마음에 전해지는 건 똑같았다.

놋시의 차가운 이마를 감싼 뜨거운 손바닥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서늘하게 식은 다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바닥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달래는 듯했다.

입으로 나온 말도 적지 않았다. 테스는 금단의 숲이 소토르의 물처럼 아무나 다니지 못하는 곳이라고 알려 줬다. 어둠이 모든 걸 지우고 뒤덮어 호수만이 남아난다고도 했다.

“들어간 자는 누구도 나오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모르면서 다니기에는 위험해. 중요한 이야기라 처음에 알려줘야 했는데…….”

“제가 생각 없이 다닌 탓입니다. 등불을 갖고 나오는 걸 잊었어요. 마음이 급해서.”

“…….”

“물동이가 있는 걸 알았는데, 그때는 눈에 보이질 않아서…….”

중얼거리던 놋시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게 위험한 곳인데 테스는 어떻게 그를 찾아냈을까. 소토르의 물을 건널 때도 괜찮았던 것처럼, 타게신은 다닐 수 있는 곳일까?

물어봐도 될지 고민하던 놋시는 테스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망설이는 걸 알아봤다. 자신의 궁금증을 뒤로한 놋시가 웅크리고 있던 손을 풀어 조금 멀어진 가슴팍을 더듬었다. 그를 덮은 팔뚝과 어깨를 타고 올라가 어지럽게 흩어진 머리카락을 잡고 당기자 코끝이 닿지만 입술은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놋시는 끄는 대로 끌려와 놓고도 입 맞추지 않는 테스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발가벗겨져 토해 내고 만 두려움과 원망에 대해 사과하고 싶을 것이다. 사실은, 무엇도 미안한 일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놋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리치고 슬퍼하느라 듣지 않던 테스에게 매달릴 때처럼 혀를 내밀어 그를 맛봤다. 작고 메마른 놋시의 혀가 굳게 다물린 아랫입술을 핥자 오래 걸리지 않아 테스의 입이 마주 열렸다.

낮은 숨 사이로 나온 테스의 혀가 끝머리를 겹치며 따라오자 놋시는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입술 안쪽이 간지럽고 손발이 들뜨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뜨거운 살이 비벼지며 서늘한 침이 흘러나와 지친 입 안을 적시자 간지러움도 금세 야릇한 자극으로 바뀌었다. 놋시는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닳지 않는 욕망에 자신을 내주고 휩쓸렸다.

작은 입에 들어온 테스의 혀는 곧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듯 입 안을 헤집었고, 놋시의 몸속에 갇혀 있던 커다란 살덩이도 따라 하듯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정이 일어났다. 테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놏이 가라앉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놋시가 생각하기에는 평소보다 이른 움직임이었다.

한쪽 팔로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세운 테스는 놋시의 허벅지 안쪽을 손등으로 훑으며 자신의 성기를 조심스레 빼냈다. 사정의 직후라서인지 놋시에게는 유난히 생경한 감각이었다.

놋시는 얼얼한 여운으로 둔해진 살결 틈새에서 느리게 빠져나가는 테스의 성기를 봤다. 담요도 무엇도 없는 바깥에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밖으로 나온 테스의 성기는 아직도 크기를 잃지 않고 일어서 있었다. 핏줄이 불거진 굵은 몸통은 온통 젖어 있고 두툼한 머리끝에는 안에서부터 따라온 희뿌연 흔적이 끊어질 듯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져 있다. 알파의 정액과 오메가의 체액으로 흠뻑 젖은 표피가 적은 빛에도 번들거리는 통에 모습을 알아보기 쉬웠다.

사정하고도 힘이 남는 순간은 잦았지만, 지금 놋시의 눈에 보이는 건 아무리 봐도 섣부르게 중단된 무엇이었다.

그래서 테스가 손을 써 주의 깊게 빼냈을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던 것 같다.

놋시는 이래도 되는지 테스에게 묻고 싶었지만 망토가 먼저 그의 얼굴을 덮었다. 테스는 풀잎에 더러워진 흰 털 망토로 놋시를 감싸 안아 들었고 한마디 말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큰 걸음이 이어질 때마다 망토의 모자로 가려진 놋시의 좁은 시야에 테스의 목덜미와 턱 끝이 들어왔다. 워낙 가까워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돌아온 천막은 환했다. 막막하던 어둠에서 돌아온 놋시에게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실제로 불이 밝혀져 있는 건 등불 하나와 커다란 화로 두세 개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후끈한 온기가 감돌았다.

테스는 안쪽 천막의 침대에 놋시를 내려놓고 흰 털 망토를 벗겼다. 대신 여러 장의 담요로 그를 덮어 줬고, 조금 뒤에는 미지근하고 깨끗한 물을 가져와 놋시에게 마시게 한 뒤 그의 몸을 닦아 줬다. 놋시가 찾지 못한 물동이를 테스는 쉽게 찾은 듯했다.

“물동이가 어디에 있었나요?”

“……왼쪽으로, 바깥에 가까운 구석에 있지.”

“예. 그렇겠어요. 입구에 가까우면 위험하니까…….”

“…….”

춥지 않냐 묻는 테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지만 놋시는 추위를 몰랐다. 작은 천막은 하루 사이 그리운 곳이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맸던 잠깐이 꿈만 같았다.

테스는 신중한 손짓으로 놋시의 몸을 보살폈다. 풀과 흙을 털어낸 뒤 물을 갈아 왔다. 부드러운 천을 새롭게 적셔 놋시의 얼굴을 닦아 준 자상한 손은 가슴과 팔다리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편안하게 누워 테스의 손에 몸을 맡겼던 놋시는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온기가 돌아온 무릎을 어루만지는 손을 따라 다리를 굽혀 벌린 그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만다.

정사 후 테스의 손이 그의 속살을 만지는 것이나 상처를 살피려 연한 입구를 더듬는 건 모두 익숙한 절차나 다름없었다. 지금 놋시의 얼굴에 열이 오른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풀밭에서 몸을 섞고도 아무렇지 않던 놋시가 침대에서 어색한 이유는 테스가 벗은 그대로여서다. 섣불리 끝난 게 아닐까 걱정되던 테스의 성기는 놋시를 씻기고 살펴 주는 동안에도 머리를 쳐든 상태였고,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수없이 몸을 섞은 뒤에도 놋시는 테스의 성기를 밝은 빛 아래서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다. 따져보면 제대로 볼 기회가 적었고, 숨김없이 드러낸 알파의 육체는 놋시에게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무엇이었다. 그가 보게 된 단단한 몸은 침착한 손길과 다른 노골적인 욕망을 보였고 야릇한 대비를 이루며 놋시의 가슴 안쪽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테스의 성기를 품고 있던 놋시의 좁은 구멍이 열병에 옮아 허기를 느끼는 걸까. 욱신거리는 마음에서 솟아 몸으로 퍼진 전율은 어쩌면 두려움이고 또는 기대감이다.

내가 참 바보 같다 생각하며 천막 안의 은은한 그림자를 힐끗거리던 놋시는 순간 주룩 흘러내리는 감각에 놀라 벌떡 고개를 들었다.

“다친 곳이 있구나.”

“아니, 아무것도…….”

“…….”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입구의 주름을 벌리며 들어온 테스의 손가락이 좁아진 내벽을 열자 뭉쳐 있던 것들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젖은 내벽이 열리고 닫히며 만드는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놋시에게는 너무나 크게 들렸다.

놋시는 열 오른 얼굴을 어쩌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다. 뜨거워진 뺨이 푹신한 바닥에 짓눌렸다.

테스의 손가락은 계속해 그의 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주변을 휘저었고 흘러나온 흔적을 다른 손에 들린 천이 닦아냈다. 수치심과 그것만이 아닌 다른 감정에 당황하던 놋시는 자꾸 모이려고 하는 무릎을 살짝 열린 그대로 버티는 데 온 정신을 쏟아야 했다.

더운 공기에 노곤해진 놋시의 등줄기가 몇 차례나 한기를 느끼듯 떨리고, 어쩌면 그의 발도 몇 번이나 발등을 굽힌 다음에.

천을 갈아가며 놋시의 허벅지와 무릎 뒤쪽을 닦아 준 테스는 새로 물을 떠 자신의 손발을 다시 씻었고, 그러고 나서야 침대 위에 올라왔다. 씻겨 주는 대로 가만히 있느라 웅크리고 있던 놋시는 다리 사이에 들어오는 그를 막지 않았고 미는 손을 따라 허리를 폈다.

그러고서 놋시는 바라보기만 했다.

놋시는 무릎 꿇은 테스의 한 손이 다가와 벌려진 허벅지를 잡는 것을 봤다. 다른 손으로 일어선 성기를 길게 훑은 테스가 말없이 묻는 눈빛을 봤고, 그를 위해 조금 더 열리는 자신의 몸을 봤다.

살짝 옆을 보고서 비스듬히 누운 놋시는 그의 눈앞에서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걸 봤고, 새롭게 흘러나와 몸을 적시는 오메가의 체액이 공기 중의 열기에 더하는 단내를 맡았고, 그의 살을 열고 몸을 섞느라 가까워진 테스의 어깨너머에서 곧고 긴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리기를 원했다.

지독한 참을성으로 기다리던 알파의 성기가 오메가의 좁은 구멍에 머리를 문질렀다. 흥분으로 젖은 귀두가 축축해진 살결 틈새를 열어 뜨거운 내벽을 벌리고, 느리고 진득한 삽입이 이어지며 굵은 몸통까지 모두 들어가자 짧게 먹히던 숨이 유일한 소리인 시간이 끝났다.

길었던 결합의 여운이 남아 있던 오메가의 육체는 거대한 성기에 순응하며 고통 없이 삽입을 견뎠고 가득 차 버거워진 아랫배를 커다란 손바닥이 눌러 오는 순간조차 불처럼 뜨거운 자극에 신음할 뿐이다.

‘여기에는 이제 나뿐이지.’

놋시는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테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곧바로 닥쳐 온 폭력적인 쾌감에 사로잡혀 나중에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밤에 일어난 수많은 일 중 제대로 된 대화는 한 번뿐이었다. 더는 나오지 않는다고 흐느끼던 놋시를 들은 체도 안 하며 묽은 정액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탐내던 테스가 어느 순간 손을 멈췄다. 지나치게 끈질긴 자극에 녹초가 된 놋시는 계속해 그를 말렸다.

‘열병은 제게 없습니다. 이제, 나올 게 없어요…….’

‘그 말이 맞지.’

‘흐읏, 으응.’

‘너는 자도 괜찮아. 억지로 버티지 말고.’

‘아, 흐읍…….’

놋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 테스의 성기가 박혀 있던 몸속에서 또다시 무딘 충돌이 일어났고, 집요하게 끄집어내진 절정으로 몇 방울 묽은 정액을 뱉고 나서는 잠들어 버린 것만 같다.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바깥의 천막을 물들인 회색빛 공기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한순간에 잠을 깬 놋시는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었다. 저게 내 잠을 깨웠구나.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멎어 있던 몸이 크게 숨을 들이켰고, 신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온몸 어디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빨라진 놋시의 심장이 쿵쿵거리고 늘어져 있던 목과 어깨가 뻣뻣해진다. 전신을 관통하는 통증이 하나둘이 아니라 구분할 수 없지만 몸을 꿰뚫은 단단한 살덩이는 헷갈릴 수도 없는 압도적인 감각이다.

놋시는 생각이 아닌 직감으로 그를 안고 있는 팔이 테스의 것이고 몸속에 머물러 있는 열기가 그의 성기임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지 몰랐다. 겪을 때마다 머리가 텅 비고 마는 일이었다. 열에 취해 있을 때도 그랬고, 정신이 맑을 때는 더욱 그랬다.

“하으, 으읏.”

바닥에 고개를 박은 놋시는 매끄러운 담요를 입에 물고서 흐릿한 신음을 그 밑에 묻었다. 그렇지만 몸속의 열기는 뜨거워지기만 했다. 잠에서 깬 그가 만든 미약한 신호를 잠든 테스의 육체가 알고서 크기를 키우고 있다.

“안 돼, 지금은…….”

길고 강인한 두 팔에 안긴 놋시가 몸을 비틀자 굴곡진 테스의 성기가 반쯤 빠져나갔다. 놋시의 생각에는 그렇지만 사실은 어떤지 모를 일이다. 잠에 취해 풀려 있던 자신의 육체가 자꾸만 깨어나 조절할 수 없이 숨 쉬고 꾸물거렸다.

벌어졌던 내벽이 경련하며 두툼한 귀두를 무는 걸 알고서는 놋시의 귀까지 열이 올랐다. 안팎으로 얼얼하게 둔해진 육체에서도 은근한 쾌감이 번져 왔다.

“후으…….”

그 뜨거운 귓가에 서늘한 숨결이 퍼지고, 느슨해졌던 팔이 허리를 조여 와 놋시의 심장이 덜컥대지만, 테스는 잠꼬대처럼 그의 어깨에 뺨을 비벼 왔다. 아직 잠을 깨지 못한 듯하다.

잠든 테스의 성기를 몸에 품고서, 놋시는 입술을 짓이기며 숨을 골랐다. 질척한 통로를 미끄러지듯 파고들어 제자리를 찾은 살덩이가 참기 어려운 자극으로 그를 들쑤셨다. 잠에 취한 테스의 한숨이 그의 어깨를 지분거리자 힘이 밀려왔다. 비좁은 살을 열고서 섞인 몸을 흔들려 단단한 허벅지가 모여들었다.

얕게 겹치는 쾌감에 헐떡이던 놋시는 바닥에 고개를 묻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고, 눈앞이 먹먹해짐과 동시에 머릿속이 환해지며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의 몸을 씻겨 주던 테스의 손이, 눈물을 핥던 테스의 혀가, 네가 어떤 맛인지 아는 건 자신뿐이라며 살을 깨물던 테스의 목소리와 그 이의 집요함이 혼잡한 노래처럼 놋시의 머릿속을 차지했다.

그러고서 몇 번이나 몸을 섞었을까? 모를 일이다. 놋시는 그전에 몰랐던 자신의 상태를 눈치챘다. 뜨거운 몸에 안겨 제대로 보이지 않고 욱신거려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그의 전신에는 정사의 흔적이 고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겹쳐진 허벅지의 끈적거림이 전과 달리 생각되고 둔해진 허리 여기저기에 말라붙은 무엇이 속속들이 느껴졌다.

테스가 그만큼 지쳤던 걸까? 아니면 원해서 남겨 둔 걸까?

생각에 빠져들던 놋시가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갑작스레 떠오른 간밤의 기억은 돌이킨 순간 꿈처럼 흩어졌지만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다.

놋시는 테스가 깨기 전에 벗어나고만 싶었다. 잘못한 것 없이도 미칠 듯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늦었다. 놋시의 귓가에 닿은 테스의 입술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젖은 살에 파묻혀 있던 알파의 성기가 먼저 움직여 대답을 얻어 냈다.

“아! 흐윽, 잠깐, 테스, 읏, 으응…….”

“놋시, 후으, 놋시…….”

테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속삭였고 놋시는 뜨겁고 굵은 성기가 들어오고 나가며 만드는 열기에 붙들렸다. 무력하게 흔들리며 낮고 새된 신음을 뱉던 놋시는 한탄과 환희가 뒤섞인 울음을 막고 싶었지만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크기를 달리하며 바람과 어울렸고 사람의 잡념을 씻겨주듯 공기를 맑게 했다.

늦게 눈뜬 놋시는 처음 듣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빗줄기가 바깥 천막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침대 옆의 빈자리를 돌아본 그가 고개를 바로 하자 어느새 테스가 다가와 있다.

“내가 잠을 깨웠구나.”

“그…….”

말하려던 놋시가 자신의 목에서 나는 긁히는 쇳소리에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목을 가다듬던 그는 테스가 건네준 잔에 입을 댔고 조금씩 마시라는 말을 따라 입술을 먼저 적셨다. 테스는 놋시가 물을 마실 동안 잔을 들어 줬고 마신 뒤에는 이마와 귀를 가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돈해 줬다.

“무리해서 말할 필요 없다. 졸리면 다시 자고.”

“…….”

“간밤에도 그렇고, 아침에도 깨서 얼마 자지도 못했을 텐데.”

점점이 떠오르는 기억에 놋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마자 테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침에는 어떻게 됐을까? 그를 밀어내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부끄러웠을 뿐이다.

“괜찮습니다. 아침에는, 놀라서…….”

놋시는 테스의 성기가 절정을 맞지 않고 빠져나가 자신의 등을 적신 걸 기억했지만 그것이 아침의 일인지 간밤의 일인지 몰랐다. 테스가 그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언제 자신이 다시 잠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테스는 괜찮은 걸까? 하룻밤으로 끝나진 않을 텐데. 시작이 어제가 아니라 나아진 걸까? 내가 과연 도움이 됐을까?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테스는 놋시의 얼굴에서 그의 생각을 모두 읽은 것 같았다. 손등을 간지럽히듯 닿아 온 손끝은 무섭도록 뜨겁지 않았지만 평소의 서늘함과는 다른 온기였다.

지금은 안 해도 되는지, 아프지 않은지, 그도 자신이 그러했듯 끔찍한 허기를 참고 있는지……. 물어볼 생각에 머뭇거리며 고개 든 놋시는 기다리던 테스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비 내리는 한낮의 청량한 흰빛 속에서 밝게 드러난 테스의 눈동자는 깊은 숲처럼 짙고 푸르게 빛났다. 늪의 어두운 바닥에는 나뭇잎 사이 햇살처럼 반짝이는 금빛이 박혀 있었다.

놋시는 잡아 오는 손을 맞잡고서 천천히 나타난 테스의 미소를 봤다. 그의 입술도 저절로 끝을 올리고 있었다.

아침의 정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몰라 불안하던 놋시는 쉬라는 말에 걱정을 내비쳤지만 테스는 네 몸이 상하지 않아야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그를 말렸다. 놋시가 듣기에도 옳은 소리 같았다.

놋시의 몸은 엉망이었다. 피를 본 상처는 없더라도 잇자국과 작은 멍이 피부 곳곳에 남았고 다리 사이 부드러운 살도 쓰라렸다. 속이 얼얼한 만큼 허벅지 안쪽이 시큰거려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째선지 팔뚝과 다리에도 멍이 남았고 보이지 않는 등허리도 욱신거렸다.

테스는 쉽게 뒤척이지도 못하는 놋시를 대신해 그의 약 보따리를 풀었고 아픈 몸에 연고를 발라 줬다. 아프지 않다 말하고 괜찮다 우기던 놋시도 길고 각진 손가락이 부어오른 속살을 만질 때는 찌푸려지는 눈썹을 막지 못했다.

“뭐든 먹고 푹 자면 훨씬 기분이 나을 거다.”

“그렇지만, 열병은 아직 끝이 멀었지 않나요.”

“한나절 쉬는 정도는 괜찮아.”

“…….”

테스의 말은 그를 위한 배려였지만 놋시는 하루 이틀로 살이 내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자신을 생각해 참는 것 같았다. 정작 위험한 것은 테스인데도.

고집을 꺾기 힘든 상대를 알아 고민한 놋시는 자신을 핑계 삼아 자리를 얻어 냈다.

“침대에 누워 있기 싫습니다. 몇 달 내내 그렇게 지냈는걸요.”

“여기에 있어야 편히 잘 수 있다.”

“밖이 보이는 곳에 있겠습니다. 저와 같이 있으세요.”

“그러면 밖에 앉아 식사하자. 그러고 쉬면 되겠지.”

놋시의 기대대로 테스는 밖에 있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어줬다.

테스는 궤짝 안에 남아 있는 푹신한 침구를 가져다 바깥 양탄자 위에 자리를 만들었다. 덮고 있던 털가죽째로 옮겨진 놋시는 바깥의 비가 가벼워진 걸 봤다. 아침의 천둥벼락이 착각이었다는 듯, 봄이 오는 걸 알리듯 조용한 비였다.

화로의 온기를 즐기며 부슬비와 물안개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담요를 둘러싼 놋시의 앞에 테스가 가져온 음식을 차렸고 그들은 함께 고요한 호숫가를 바라봤다.

입맛이 없는 놋시는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테스를 생각해 억지로 고기를 씹었다. 그가 먹어야 테스도 먹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삼키기 어려웠고 결국에는 메스꺼워 뱉고 말았다.

놋시는 아까운 음식을 낭비한 게 창피해 기침을 숨겼지만 테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등을 문질러 줬다. 그의 손은 놋시의 기침이 가라앉은 후에도 떠나지 않았고 시고 단 과일과 부드러운 과자를 입에 가져와 물렸다.

“이런 것은,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

“뭐를 말이지.”

“열병을 앓는 짝을 보살피는 건 지금 제가 할 일입니다.”

“…….”

“그런데 오히려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모자란 탓에 일만 만들고…….”

간밤의 사고가 생각나 눈을 찌푸리던 놋시가 말끝을 흐렸다. 테스에게 실수를 떠올리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왜 자꾸 쓸모없는 말을 하는 걸까.

그는 혹시라도 테스가 전날 밤처럼 미안해할 것이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다가온 입술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테스는 놋시의 귓가에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서 안겨 있는 어깨를 쓰다듬기만 했다.

테스는 놋시에게 침대로 돌아가 낮잠을 자라고 다그쳤지만 버티는 그를 억지로 옮기진 않았다. 놋시는 테스가 그를 걱정해 산처럼 쌓아 준 털가죽과 담요 덕분에 이곳도 편하다고 말했다. 화로의 온기에 둘러싸여 바깥바람이 닿지 않으면서도 훤히 밖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놋시는 테스의 곁에 붙어 있고 싶었다. 실수로 떨어져 있던 간밤의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아 놋시를 괴롭혔다. 순간의 당황으로 테스를 고생시킨 스스로가 한심했다.

“여기서 같이 비를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쉴 시간이 필요해.”

“자면서 혼자였지 않나요. 지금은 같이 있는 게 더 따듯합니다.”

놋시는 자기 말이 옳다는 듯 테스의 손을 잡고 졸랐다. 어젯밤처럼 뜨겁진 않았지만, 지금도 테스의 손바닥은 담요에 숨어 있던 놋시의 손보다 더웠다.

“지금은 그렇게 열이 심하지 않아.”

“그러면 더욱 따듯하게 있어야죠.”

“…….”

놋시는 열병이 있든 없든 추위를 타지 않는 테스를 알면서도 손을 놔주지 않았고 옆자리에 그를 앉힐 수 있었다. 테스는 마치 자라는 것처럼 어깨를 빌려줬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놋시의 손에 닿은 테스의 벗은 가슴은 뒤편의 화로보다도 뜨거웠다. 곧은 얼굴은 언제나처럼 태연한 척해도 그의 몸은 다른 것이다.

열이 올라 정신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젯밤에도 그래서 물을 찾느라 소동을 피운 건데.

놋시는 테스의 품에 기대 소리 내 한숨 쉬었다. 자신이 미덥지 못해서일까. 익숙한 그의 침묵이 원망스러웠다. 동생은 나눠야 할 걱정마저 혼자 끌어안는 형이 새삼 답답했다.

습해진 낮은 한가롭게 흘러갔다. 테스는 놋시에게 차를 끓여 주고 벌집 조각을 가져다 먹여 줬다. 약초를 쓰고 싶은지 묻기도 했고 놋시의 몸에 새롭게 연고를 발라 주려 했다.

놋시는 다 나았다며 고집부렸고 남아 있는 연고를 닦고 상처를 살피는 것까지만 이뤄졌다. 무명천으로 씻은 몸을 감싸주는 테스를 보면 누가 열병을 앓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은 열에 삼켜질 때마다 짐승처럼 정신을 놓쳤었는데, 테스는 어찌 이리 바를 수 있는 걸까.

놋시는 다행스러운 일을 의아해하는 마음을 꾸짖으며 테스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생각해 보면 각인의 의식에서도 이런 때가 있었다. 본능의 허기에 사로잡히고서도 그를 위해 참던 테스는 놋시에게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놋시는 테스의 곁에서 그를 기다렸다. 넓은 품에 안긴 채로 그들이 그저 놀러 나온 것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소풍을 나온 것 같습니다. 드물게 비가 오는 날을 골랐지만요.”

“다음에는 맑은 날에 나가자. 네 몸도 좋아졌으니 다디스바의 바깥을 구경해야지.”

“저택에는 별일 없을까요. 물이 넘치면 힘들 텐데. 제딘이 천둥벼락에 울지나 않을지.”

“타게신의 아들은 천둥소리에 겁먹지 않는다.”

“갓난아기는 겁먹지 않아도 잘 웁니다. 아직 말을 못 해 답답하겠죠.”

“…….”

테스의 침묵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참는 것만 같았다. 놋시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저는 어릴 때 무서웠습니다. 한번은 벼락이 나무에 떨어지는 걸 봤는데……. 너무 무서워 가까이 갈 수도 없었어요.”

“그건……. 나도 기억하는데. 네가 아버지에게 벼락 맞은 나무를 봤다고 했지. 그 덕에 잘라다 팔았고.”

“예. 제가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아버지를 불러야 했어요.”

“넌 그때 열 살도 되기 전이었을 텐데.”

“무서워서 떨어져 나온 가지도 못 만졌습니다.”

둘은 온갖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놋시가 레드자 산맥의 추억과 저택의 안부를 두서없이 떠올려 물으면 테스가 답을 줬다. 이렇게 저택을 떠나 있어도 되는지 걱정하는 놋시에게 테스는 다른 저택의 알파들이 약속을 지켜 줄 거라고 말했다.

“무슨 약속인가요?”

“아주 오래된 약속이지. 사람이 아닌 그들만은 동류의 약점을 노리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게 정해진 일이다.”

“…….”

문득 떠오르는 걸 되는대로 묻던 놋시는 마음에 걸리던 일도 묻기 시작했다.

어젯밤 테스는 분명 열병의 허기를 놋시로 채웠다. 그런데도 테스의 체취는 그대로였다. 쇠와 피의 기운이 짙어져도 바탕은 변한 게 없었다. 바깥에선 밤의 숲이 뺏어 갔을지 모르지만 안에 들어온 뒤에도 알 수 없는 건 기이했다.

“제가 넋이 나가 몰랐나요? 예전에는 향을 써서……. 냄새가 어땠었는지…….”

“달라지는 건 없어. 짙어질 뿐이지. 너도 그렇다. 원래도 있던 단내가 진해지는 거다.”

“원래도 단내가 있었나요.”

“그럼. 익어서 터지는 과일처럼 달콤한 향기가 나지.”

“…….”

태연하고 노골적인 말에 쑥스러워진 놋시가 고개를 기울이자 테스의 입술이 그를 쫓아왔다.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서 깊게 숨을 들이쉰 그의 입술이 비밀을 말하듯 놋시의 귀에 닿았다.

“주인의 열병은 단내를 널리 보낸다. 첫째가는 이를 찾아야 하니까. 하지만 첫째가는 이는 그렇지 않아. 그의 열병은 남을 원하는 게 아니다.”

“…….”

“열병을 얻는 건 각인한 알파뿐이다. 약속한 짝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소용없으니, 불러모을 이유가 없지.”

이치를 알려 주는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놋시는 섬뜩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젯밤 테스가 그를 찾지 못했다면 더욱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터였다.

근심하는 놋시의 마음을 알아봤을까. 테스는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화한 손에 긴장이 사라진 놋시는 스르륵 밀려오는 잠기운을 버텼지만 부족한 잠에 져버렸다.

이번에 놋시가 눈떴을 때 보이는 것은 잠들어 있는 테스의 얼굴이다. 그들은 어느새 얼굴을 마주하고 누워 있었다.

등 뒤의 세상이 아직도 훤한 걸 살핀 놋시는 둘러진 팔 안에서 테스의 가슴에 바짝 다가갔다. 그의 몸을 감쌌던 무명천은 어느새 땀에 젖어 있었다. 털가죽 밑의 온기에 테스의 체온이 더해져 잠깐 사이 땀이 날 만큼 더워진 것이다.

들러붙은 천을 벗어나며 놋시가 들썩거리는 동안에도 테스는 미동 하나 없이 고른 숨을 내쉬었다.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놋시는 어쩌면 테스가 자고 싶어 자신을 재우려고 했던 게 아닌지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억지 쓰지 않았다면 테스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밤을 기다릴 기세였다.

무명천을 젖히고 테스의 맨살에 닿은 놋시가 높은 쇄골을 더듬다 눈가를 기댄다. 매끄러운 피부에 눌린 속눈썹이 혼자 날갯짓하다 가라앉았다.

그들을 둘러싼 숲의 냄새와 아늑한 고독 때문일까. 놋시는 어릴 때의 동굴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때 일을 자꾸 떠올렸다. 더러운 짐승의 길이고 죄의 구덩이라고 죽을 듯 괴롭던 시간인데, 왜 마치 추억을 돌아보듯 잊었던 순간이 기억나는 걸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끔찍하진 않았다. 놋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어린 그를 업고 나르던 시절은 떠오르는 장면이 적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기억나는 게 늘어 갔다.

놋시는 자신의 열병이 어땠는지 되돌아보며 테스의 아픔을 추측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동굴에서 병을 넘기던 시절, 언젠가는 테스가 그들의 몸을 엮은 채로 음식을 먹여 줬었다. 놋시가 광기를 버티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한나절도 비어서 넘기지 못했었는데…….

가만히 접혀 있던 놋시의 손이 슬그머니 테스의 가슴에 얹혔다. 크고 늘씬한 몸에 정교하게 붙은 근육이 그의 손등 너머에서 심장과 함께 움직였다. 첫째로 뛰어나고 신만큼 용맹한 타게신의 육체도 결국 짝으로 인한 쇠사슬에 묶이고 말았다.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 될까.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 믿어 줄까.

그것은 테스의 말버릇이었다. 열병에 붙들린 놋시가 끔찍하고 무서워 울 때마다 테스는 그를 안고 귓가에 속삭여 주곤 했다. 괜찮다고. 그 말을 들으면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다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괜찮지 않은 걸 알아도 추악한 죄라는 걸 알아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놋시는 그것이 부족한 말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괜찮다 말해도 테스는 마음 놓고 놋시에게 기대지 못했다.

어쩌면 테스도, 동굴의 어둠 속에서 어린 동생에게 말하던 그 말이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걸지도 모른다.

놋시는 영원히 묻지 못할 질문을 깊은 마음 밑바닥에 묻으며 테스의 체취를 들이켰다. 바깥의 숲이 아무리 무섭고 높아도 그만의 향기는 약해지지 않았다. 고여 드는 열기를 옅게 하려 벽이 없는 곳에 누워 있어도, 짙은 늪의 서늘한 뿌리처럼 무겁고도 날카로운 테스의 체취는 흩어지지 않고 놋시에게 스며들었다.

넓고 더운 가슴에 귀를 대고 테스의 박동을 지키던 놋시는 선잠을 자듯 눈을 감고 있었다. 깜박일 때마다 드러나는 청회색 눈동자는 앞을 보지 않고 생각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하나둘 늘어난 소리가 그를 깨웠다.

벽처럼 조용하던 테스의 육체가 조금씩 소란해지고 있다. 고르던 숨이 몇 번인가 끊기더니 거칠게 긁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고 곧은 목에 돋아난 힘줄이 어깨와 팔까지 이어져 칼날을 세우듯 근육을 일으켰다.

“테스, 테스…….”

또 어젯밤처럼 깨지 않을까 겁먹은 놋시는 서둘러 테스의 목을 끌어안고 이름을 불렀다. 웅크렸던 등을 펴고 매달리는 그에게 반가운 구속이 다가왔다. 허리를 조이고 어깨를 감싸며 놋시를 끌어안은 테스의 높은 코끝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목덜미의 얇은 살갗을 찾고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더 자라. 피곤할 텐데.”

“지금 해야 합니다.”

“…….”

“어제도 이랬을 거예요. 열이 너무 높아 일어나지 못하고…….”

나머지 말을 삼킨 놋시가 테스의 품을 파고들었다. 더는 가까워질 수 없이 붙어 있는데도 부족한 마음에 초조해졌다. 그대로 깨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놋시의 마음속에서 천둥벼락처럼 번쩍였다.

“아니다. 알파의 열병은 오메가와 달라. 내가 눈뜨지 못하는 때는, 네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일 거야.”

“하지만 어제는, 흐읍, 흑, 흐흑…….”

놋시는 아기를 갖고 늘어난 자신의 눈물이 처음으로 밉지 않았다. 울어서라도 테스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테스의 목덜미에 눈물을 쏟으며 헉헉거리는 숨을 토하던 놋시가 그제야 생각난 것처럼 손을 내린다. 세게 안겨 맞닿은 허리 틈새로 비집고 들어간 그의 손이 크게 일어나 위를 향한 알파의 성기를 붙잡았다. 얇은 바지 자락에 갇혀서도 손마디 밑에 불거진 핏줄이 만져질 만큼 발기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순간 놀라 소리 지른 목소리는 놋시의 것이었다.

“아!”

놋시를 안고 있는 테스의 두 팔이 부풀어 오르듯 커져 조여왔다. 테스는 가까워질 수 없어 안타깝던 놋시의 마음을 들은 것처럼 그를 세게 끌어안았다. 벌거벗은 가슴이 맞닿고 두 개의 몸이 하나처럼 겹쳐지자 놋시의 소리가 아닌 거친 신음이 터진 것도 같다.

이걸로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속이 아니라 겉이 아픈 걸까? 오메가의 열병과는 다르게?

놋시는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걱정이 넘쳐흘러 생각이 돌아가지 않고 뜨거운 몸이 짓누를 듯 그를 안는데도 흥분되기는커녕 속이 차가워졌다. 비좁아진 세상에서 애써 손을 움직여 테스의 흥분을 도우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소용없다. 지금은 그런 게 통하지 않아.”

“그러면 되는 걸 하면, 읍, 어서, 흐읏.”

입을 막으려는 듯 시작된 입맞춤이 점점 깊어졌다. 놋시는 온몸이 삼켜지듯 거칠게 혀를 빨리고 입술을 물려 말을 잇지 못했다.

조이는 팔에 무게가 실리자 안긴 채로 바닥에 눕혀진 놋시가 급한 숨을 몰아쉬었다. 테스의 입술은 그의 숨통을 터주고서도 기다리기 어려운 것처럼 입가의 연한 살과 부드러운 뺨을 연신 아프지 않게 물어 왔다.

혼이 날아가는 격렬한 애정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놋시의 머릿속에는 테스의 몇 마디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더욱 커져 허벅지와 아랫배를 누르고 있는 테스의 성기 또한 답을 원하듯 몸을 흔들었다.

열병을 함께하던 테스는 놋시에게 꼭 침을 먹였었다. 나중에는 정액을 먹였고, 그걸로 부족해진 후에는 몸속에 가득 쏟아 놓곤 했다.

테스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걸까? 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놋시를 들이켜 마셔야 할까?

“제, 제 침을 드세요.”

거친 입맞춤 사이로 말하던 놋시는 웃는 것처럼 길어지는 얇은 입술을 느꼈다. 그의 말을 따르듯 혀끝을 물어온 테스의 목에서 가라앉은 소리가 났지만 놋시의 귀가 먼저 먹먹해졌다.

“흐읍, 아, 어떻게 해야, 으음, 읍…….”

뜨거운 혀가 놋시의 입 안을 온통 휘젓고 입술을 눌러 왔다. 내밀기를 바라는 것 같아 작은 혀끝이 나오자 그 밑을 파고들어 간지럽히고 새는 소리를 막듯 위로도 올라가 들쑤셨다.

“으응, 읏, 하아, 뭐가, 흐흑, 뭐가 필요한지…….”

눈물이 샘솟아 힘들어진 놋시의 숨을 골라 주는 걸까. 순식간에 부드러워진 테스의 혀가 가만히 놋시의 입술을 덧그렸다. 살짝 열려 달싹이는 틈새에 다가와 윗입술 안쪽을 쓸며 달래 준 그의 혀가 멀어지더니 낮고 갈라진 속삭임이 들려왔다.

“알파는……. 마시는 게 아니라 삼켜져야 해.”

“예?”

“네 속에 들어가야지.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자. 넌 아직 지쳐 있어. 한나절 쉬고 나면 괜찮을 거다.”

“…….”

놋시를 안고 있던 테스의 한 손은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 꼬리뼈 끝에 닿아 있었다. 둥근 살을 어루만지고 살결이 갈라지는 틈새 위로 스치듯 움직이던 손가락이 살짝 부어 있는 연약한 주름을 건드렸다. 아침의 시큰한 둔통은 한가로운 낮잠으로 옅어져 있었다.

엉망이 된 숨을 고르며 침묵하던 놋시는 잠시 후 맞닿아 문지르는 입술 밑에서 소곤거렸다.

“제가, 입으로 삼키면……. 그러면 되는 건가요.”

그러자 테스가 웃었다. 이를 보이며 소리 내 웃는 얼굴에서 가늘게 접힌 깊은 눈매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이렇게 작은 입에 뭘 넣을 수 있다고.”

“그…….”

“끝만 삼켜도 찢어질 텐데.”

“…….”

놋시도 말하자마자 깨달은 일이었다. 그의 입은 두툼한 머리를 삼키는 것도 버거울 터였다. 바보 같은 소리였나 싶어 울적해 내쉰 한숨을 들었을까. 테스는 웃음이 남은 목소리로 그에게 다정하게 말해 줬다.

“내게 힘든 건 열병의 허기가 아니다. 너를 다치게 하는 게 더 두렵고, 네가 힘들어하는 게 제일 괴로워.”

“…….”

“아침에 너를 보고……. 등에도 멍이 남아서, 바닥에 누우면 아플 텐데.”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흔드는 놋시에게 테스는 코끝을 부딪쳐 왔다. 찌르듯 닿아 온 초록빛에 놋시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만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들어 있는 마음이 너무 애틋해 심장이 따끔거렸다.

“이런 짐승의 욕구 따위는 참는 데 익숙하지. 너는 걱정할 것 없어.”

다시금 겹쳐진 테스의 입술 끝은 아직도 올라가 있었고, 놋시는 그것이 다행스러워 입을 열었다. 입술과 혀가 맞물리는 야릇한 감촉에 놋시의 숨결이 들뜨며 눈앞이 밝게 번졌다.

분명히 괴로울 텐데도 테스는 다시는 놋시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바깥의 빗소리처럼 끊임없이 벗은 몸을 쓰다듬었고 계속해서 작은 입술과 연한 뺨에 입 맞췄지만 거센 자극으로 놋시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듯 힘을 주지 않았다. 익숙한 무게는 따듯한 털가죽처럼 놋시를 감싸 줬고 스르륵 감기는 그의 눈꺼풀 위에도 더운 숨결이 번질 뿐이다.

놋시의 몸과 마음은 온화한 애무에 취하고 녹진한 피로에 눌려 따로 떠다녔다. 그는 음란한 꿈과 평화로운 낮잠 사이를 바람에 실려 오고 갔고 섬뜩한 한기와 이름 모를 위협에 쫓겨 눈을 뜬 순간마다 테스가 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눈을 뜨고 몇 번이나 신음하던 놋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를 안고 있던 테스의 온몸은 화로 속의 숯처럼 불을 품고 있었다.

테스의 거센 호흡은 깨어 있는 것이 힘든 사람처럼 듣는 귀를 소름 돋게 했다. 뻗어 나간 놋시의 손이 높은 몸통을 더듬어 올라가 어설프게 쓰다듬었다. 어깨와 팔을 조이는 힘이 너무 강해 제대로 안을 수도 없었다.

“테스, 테스…….”

이름에 담긴 수많은 감정을 알아들은 것처럼, 또는 놋시가 깨어나 자신을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날개 뼈를 짓누르던 테스의 손이 떨림을 숨기지 못하며 밑을 향했다.

타오르듯 뜨거운 손가락이 등줄기를 스치자 놋시의 배가 긴장하고 마주 부딪친 젖은 피부가 질척하게 서로 미끄러졌다.

놋시는 그들의 배를 적신 게 약간의 땀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잠과 꿈을 오가며 쏟아졌던 그의 묽은 정액이 남아 있었다. 언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는 놋시의 입에서 놀란 숨이 나오지만 다음 순간 테스의 손에 허벅지가 당겨져 그의 살결 틈새가 벌어졌다.

아, 아. 축축한 속살을 누르며 열고 들어오는 뜨겁고 뭉툭한 끝은 이보다 절실할 수 없는 현실로 놋시를 끌어 내렸고 작게 열린 입에서는 익숙한 시작의 버거움이 만들어 낸 짧은 감탄이 만족의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놋시의 등허리가 들뜨며 바닥을 두들겼다. 테스의 한 손은 끌어 올린 놋시의 한쪽 허벅지를 놓지 않았다. 위아래로 열리고 굽혀진 다리 사이에서 갈라진 살결 틈새가 당겼지만 놋시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사소한 거슬림은 그보다 큰 순응에 묻혔고 사슬이 엮이듯 자극이 이어지며 놋시의 전신이 요동쳤다.

살을 열고 들어온 거대한 성기가 내밀한 속에 머리를 박고 한 번 두 번 얕게 움직이고. 짧은 마찰에 만들어지던 질척한 잡음은 굵은 몸통이 비집고 들어오며 사라졌다. 입을 막고 목구멍까지 찌르는 혀처럼 뿌리까지 깊게 들어오자 소리를 만들 틈조차 사라지는 것 같다.

속이 막히며 억눌렸던 놋시의 귀가 멍해졌다 돌아왔을 때 처음 들은 것은 공기를 씹고 뱉는 거친 숨소리였다.

“허억, 헉, 후으, 후우…….”

놋시의 열린 살에 몸을 묻은 테스는 한참이나 허리를 굳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멀어진 테스의 얼굴은 쏟아진 머리카락의 그림자에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잘못됐냐고 물으려던 놋시는 그의 몸을 꿰뚫은 성기의 크기와 갑갑한 힘을 버티느라 말을 놓쳤고, 그다음에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허리가 들뜨며 심장이 굴러와 목구멍을 막은 것만 같다.

올려 잡았던 허벅지를 팔에 걸고 놋시의 벌려진 하체를 한 손으로 받쳐 든 테스가 멈췄던 찰나를 착각으로 만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밀한 주름을 한계까지 밀어붙인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배를 뚫고 없던 길을 만들 것처럼 머리를 흔들더니, 나가기 싫어하며 자꾸만 파고들었다. 아! 아! 너무 깊은 침입에 숨 막혔던 놋시는 몸속의 둔덕을 짓누르는 충돌에 소리 질렀다. 나가기 싫다는 듯 속으로만 파고들던 테스의 성기도 그때부터 물러서는 걸 기억해 냈을까.

예민해진 내벽을 훑으며 빠져나온 몸통이 바깥 공기에 몸을 식히고서 다시 들어온다. 놋시의 살이 닫히지 못하게 입구를 막고 섰던 두툼한 머리가 위를 찌르며 박아 오자 허리가 들썩이고 아랫배가 들떠 올랐다. 그러다 내려앉고, 끌려가고, 흔들리며 짓눌린다.

공기 중에는 순식간에 달콤한 향기가 퍼뜨려졌다. 놋시의 살을 잡고 있는 테스의 손바닥 위로 단내 나는 체액이 줄줄 흘렀다. 무겁고 빠른 자극에 두들겨진 놋시의 몸이 순식간에 물을 쏟듯 흥건해졌다.

“놋시, 놋시…….”

“흐읏! 흐응, 으흣, 읍, 흐읍…….”

턱턱 시끄럽게 부딪히는 뜨거운 육체 밑에서 놋시는 비명을 참았다. 테스가 부르는 그의 이름에 귀 기울이며 바닥을 움켜쥐고 열기를 삼켰다.

한 번씩 박힐 때마다 허리가 뜨고 가슴이 내려앉으며 담요 밑 땅에 뒤통수를 박았지만 아픔은 느낄 수 없었다. 뜨거운 살덩이에 뚫린 깊은 속이 어디를 한 번씩 찔릴 때마다 온몸이 울컥거렸다. 눈앞이 온통 부옇게 흐려져 어둡고 밝은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아읏, 아! 흣, 흐응, 테스, 아, 아윽…….”

언젠가부터는 아예 눈앞이 깜깜하다. 놋시의 두 손 역시 무엇도 잡을 수 없게 힘을 잃었다. 가슴이 들떠 오를 때마다 얹힌 손이 들썩이지만 그뿐이었다.

놋시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허리를 뚫고서 들어오는 크고 뜨거운 살덩이의 단단함뿐이다. 쇠처럼 무겁지만 입술 안쪽의 살갗처럼 매끄럽고 촉촉한 테스의 성기가 그의 살을 열고서 속을 두들기는 지금, 두툼한 머리와 굵은 몸통에 끌려 나가던 내벽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짓눌리며 전율하는 지금, 놋시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쉬고 신음하며 테스의 이름을 부르는 게 전부다.

“테스, 아, 흐으, 읏, 테스, 테스!”

테스의 성기는 멈출 줄 모르는 것처럼 그의 속을 찔러 왔다. 젖은 살을 뭉개며 들어온 커다란 살덩이가 빠듯한 속을 벌려 놓을 때마다 숨이 먹혔고 깊은 속의 끝에 닿을 때마다 땀이 솟았다. 몸속 모를 곳에서 시큰하게 퍼지는 쾌감이 놋시의 온몸을 떨리게 했고 흠뻑 젖은 살결을 새롭게 적셨다.

그러다 놋시의 눈이 길게 위를 향하고, 뒤로 넘어가고, 젖혀진 고개가 바닥을 밀어 목이 들뜨고, 어둠을 보면서도 빛을 본 그가 소리도 못 내며 입을 벌리고 목구멍 사이로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을 때.

혼자 세워져 흔들리고 몸부림치던 오메가의 성기가 절정을 빠져나와 묽은 정액을 뱉었다.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미끈거리는 점막과 하나처럼 엉겨 있던 테스의 성기가 나온 것도 그때였다.

풋풋한 물기가 번진 하얀 배 위에 붉게 피가 몰린 거대한 성기가 머리를 놓고 몇 차례 몸을 비비더니, 위아래로 꺼덕인 끝에서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불꽃이 튀듯 폭발한 처음의 기세로 놋시의 가슴이 젖고 턱 끝까지 방울이 튄다. 피와 쇠의 냄새가 밴 알파의 정액이 떨고 있는 오메가의 배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절정의 여운에 감겼던 놋시의 눈이 뜨겁고 축축한 감각에 떠졌을 때도 테스의 성기는 계속해서 그의 배를 적시고 있었다. 가슴께에 튈 만큼 높았던 끝이 젖은 피부를 타고 내려가며 몇 번이나 쏟았을까. 희뿌연 테스의 정액이 힘을 잃은 놋시의 성기 주변으로 흐르며 다리 사이에 고여 들었다. 매끈한 살결 위로 흘러내려 좁아진 구멍에 닿은 그것이 섬세한 주름을 적시자 벌려진 허벅지가 움찔거린다. 젖은 것은 바깥이었다.

더 하려고 그러는 걸까. 허공을 향한 채 생각하려 애쓰던 놋시는 닫힌 구멍을 더듬는 손가락을 느꼈다. 흘러내린 정액과 체액으로 질척한 틈새를 길쭉한 손마디가 매만지며 몇 번인가 들어왔다 나가더니, 다음 순간 얇은 담요가 닿았다. 그러고선 놋시의 고개도 들리고 만다. 젖은 배와 허벅지를 닦아 준 테스가 그를 안아 들었다.

어두워진 바깥이 설핏 시야에 들어왔지만 놋시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는 테스에게 안겨 흐릿한 세상을 지나쳤다. 끊어질 듯 가늘어진 숨이 느리게 되돌아온 뒤에는 부드럽고 푹신한 기운이 놋시의 전신을 감싸 왔다.

침대에 놓여 엎드린 놋시의 어깨 너머 저편에서, 테스의 손에 불붙은 노란 등불이 타올랐다. 드리워진 그림자를 짙게 하며 타오른 불꽃이 놋시의 몸에도 옮겨 와 붙었다.

테스는 작은 천막 안의 등불과 화로를 정돈한 뒤 곧바로 놋시를 다시 안아 왔다. 절정의 여파로 힘이 돌아오지 못한 놋시의 몸은 테스의 성기를 수월히 받아들였다.

보들보들한 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를 닦던 놋시는 허리를 세울 여력도 없었다. 테스의 손이 허리를 들어 준 덕에 무릎이 푹신한 바닥을 짚었지만 뺨은 여전히 눌려 있었고, 팔을 세울 틈조차 얻지 못했다.

“아아, 아, 흐읏, 흐윽…….”

높게 트였던 놋시의 외침은 바닥에 뭉개지며 쇳소리를 뺏겼다. 다물지 못해 열려 있는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입 안에서 돌아 나온 신음이 연이어 나왔다. 녹진하게 풀려 있던 그의 몸은 끝까지 들어온 처음을 조용히 넘겼지만 거듭 박아 오는 힘이 거센 탓에 속이 밀려 저절로 아픈 소리가 샜다.

그래도 괜찮았다. 테스의 성기는 몇 차례 성급히 굴다 침착해졌다. 젖어 있는 속을 아프게 몰아붙이지 않으며 길게 움직인 귀두와 굵은 몸통이 체액으로 미끄러운 길을 즐기듯 돌아다녔고 들러붙는 내벽을 간지럽혔다.

묵직한 무게가 거짓말인 듯 빠르다가도 느려지면서, 놋시의 살결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가는 테스의 성기는 체액에 다시 젖으며 한층 질척한 소리를 냈다. 처덕처덕, 축축한 살이 부딪히는 소리도 끈끈해지며 늘어났다. 그 사이로 하나둘 다른 소리가 껴들고 있다.

테스의 커다란 날숨과 놋시의 끊어지는 신음이 습하고 뜨거운 공기로 천막 안의 허공을 채우며 겹겹이 쌓였다.

흐응, 흐응 목을 울리는 놋시의 눈은 가늘게 떠져 침대 옆의 허공을 향했지만 무엇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알 것들은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보다 명확했다.

그의 허리를 잡은 뜨거운 손가락도, 굽혀진 허벅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 주는 커다란 손바닥도, 비밀스러운 입구를 열고서 끝없이 파고드는 테스의 성기도, 어느 하나 흐릿한 게 없었다.

놋시는 살을 누르는 손마디의 체온과 내벽을 밀어내는 귀두의 불퉁한 생김까지, 열 오른 몸통 위로 불거진 핏줄까지, 연한 살에 부딪쳐 와 치대다 깊은 끝에 닿을 때마다 멈춰 서는 단단한 몸까지 모두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놋시의 무릎이 쓰러진다. 일정하고 끈질긴 박자가 조금씩 드세질 때마다 흔들리던 허벅지가 옆으로 누워 버려도 허리를 잡은 손은 떠나지 않았다. 하나로 바뀔 뿐이다.

받아주던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 머리가 나올 만큼 밀려났던 알파의 성기가 다시 깊게 들어오고, 놋시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지만 곧 무너져 내린다. 옆으로 접힌 하체에서 달라진 깊이와 방향이 만들어 준 새로운 쾌감이 솟아났다.

“아흑, 흣, 흐응…….”

“놋시, 헉, 후읏.”

테스의 목소리가 들려도 놋시는 뒤쫓지 못했다. 모로 누운 놋시는 두 손으로 바닥을 쥐어 잡았다. 손에 감겨든 얇은 천을 밧줄처럼 움켜쥐고 매달린 어깨 위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의 엎드린 등줄기 위로 테스의 뜨거운 숨이 쏟아지는 것과 함께 놋시의 몸속에도 같은 온도의 배출이 일어났다.

터질 듯 빠르게 놋시의 속을 적신 테스의 정액이 밀착된 내벽을 역류하며 흘러나왔다. 거죽을 벗긴 야생의 냄새가 쏟아지고 넘쳐 퍼뜨려진다.

무게를 덜던 테스의 성기 뿌리에서 귀두구가 부풀며 놏으로 솟아난 뒤에. 놋시는 안심하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 밤이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열병이 끝날 터였다. 예고 없이 닥쳐 온 알파의 열병이 무사히 끝나는 것이다.

맹목적이던 순간이 벌써 서로를 엮었지만 격렬한 행위는 따라붙지 않았다. 테스의 정신이 광기를 피하고 살아남은 걸까. 욕망에 취한 알파의 육체는 끈덕지게 놋시를 탐하고 있었지만 괴로운 외침도 쓰린 신음도 없었다. 그들을 둘러싼 것은 안전한 밤의 적막과 짝 맺은 이들의 흠뻑 젖은 호흡뿐이다.

놀랄 일은 이제 없겠지. 안도한 마음으로 빠듯한 쾌감에 밀려다니던 놋시는 이대로 잠들 수도 있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문득 기묘한 기운이 스쳤다. 농축된 공기를 헤집고서 아지랑이처럼 냄새가 나타났다. 풋풋한 절정의 향기처럼 새콤하지만 풍요롭고 윤기 흐르는 냄새가, 피부 위를 흐르는 미지근한 감각이 놋시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바닥을 짚고 웅크린 그의 팔 안에서, 어깨를 모으고 버티느라 얄팍한 살이 모인 가슴께에서 희뿌연 방울이 맺히고 있다. 테스의 열병을 근심하느라 까맣게 잊어버렸던 놋시의 젖이 부푼 유두 끝에서 제멋대로 솟은 것이다.

놋시가 처음 한 짓은 감추는 것이었다. 침대 바닥을 움켜쥐고 어깨를 뒤튼 그는 부드러운 천에 가슴을 문질렀다. 시큰한 통증이 흘렀지만 아픔은 아니었다. 아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아무 생각도 못 하며 흐르는 젖을 닦기 급급했던 놋시는 안에서 나오는 신음을 모조리 침대에 쏟았다. 하나로 엮인 살이 두 개의 호흡으로 맞춰지다 어긋나며 미세한 아픔과 은근한 쾌감을 번갈아 일으키고 있었다.

놋시는 가쁜 숨을 씹으며 색이 밝은 바닥에 자국을 만들 만큼 침을 흘렸지만 그때까지도 젖은 마르지 않았다. 흔적처럼 나타난 가느다란 줄기가 그칠 줄 모르며 놋시의 가슴을 타고 나와 번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놋시는 그제야 생각하려 애썼다. 그때 발목을 잡힌다. 속에서 속으로 박힐 때마다 움찔대고 무릎을 떨던 굽혀진 다리가 위로 들렸다. 발목을 거머쥔 테스의 손은 몸속의 살덩이만큼이나 뜨거웠다.

“놋시…….”

“읏, 테스, 으응.”

“이리, 하아, 이리로 와라.”

땅속의 흙처럼 깔끄럽던 테스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지더니 뚜렷한 말을 만들어 냈다. 어디로 오라는 거지. 고개를 뒤척인 놋시는 자신을 보라는 테스의 뜻을 알아들었다. 테스의 손에 잡힌 그의 무릎이 다시금 바로 누울 수 있게 위를 향하고 있었다. 도드라진 뼈에 입술이 닿고 더운 손바닥이 종아리를 쓸어내렸다.

지금은 안 된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데도 놋시의 팔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였다. 열병을 겪고 있는 테스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테스의 모든 욕망을 품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놋시는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누며 눌려 있던 어깨를 폈다. 비틀어졌던 그의 등도 바닥에 반듯하게 누웠다. 굽혀져 있던 나머지 다리 역시 무릎을 띄우고 디딜 곳이 생긴다.

그러는 잠깐 사이에도 몸속의 크기에 읏, 읏, 숨이 끊겼지만 꽉 막히는 압박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타듯이 뜨거운 열기가 덮쳐오지 않고 머무르기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얼굴을 봐야 하지. 망설이던 놋시는 어설프게 가슴을 가리고 테스를 올려다봤다. 그림자가 깊은 눈매에서 불씨가 남아 번쩍이는 눈동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우는 줄 알고 걱정했다.”

“…….”

“고개를 감춰서, 아픈 데가 있는 줄…….”

한결 편안해진 테스의 목소리가 놋시에게 닿았다. 놋시는 그의 전신이 느끼는 만족을 전해 들었다. 단단한 알파의 육체에서 낮은 호흡이 움트고 다듬어진 허리가 들뜰 때마다 놋시의 속에까지 떨림이 전해졌지만 그것뿐이다. 온기 속의 뜨거움은 밀착된 내벽과 함께 조용한 박동으로 잠잠해져 있다.

“졸리면 자도 된다. 피곤하지.”

“아니, 으음, 괜찮습니다.”

힘들게 나간 작은 대답을 들었을까. 길고 곧은 입매가 미묘하게 만들어 내는 그것은 놋시만 알아볼 수 있는 테스의 웃음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깨지 않게 조심할 테니까.”

“무슨, 흐읏…….”

물으려던 놋시가 말을 놓치며 턱을 당겼다. 가파른 눈으로 밑을 보자 비밀처럼 다가와 있던 테스의 손이 놋시의 아랫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긴 손가락이 반쯤 부풀어 머리를 눕힌 오메가의 성기를 지분거리기도 하고 불퉁한 생김을 품고 불룩한 배를 더운 손바닥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마치 그대로 밤을 지새울 것처럼 여유로운 손짓이었다.

멍해진 놋시의 머리에 갑자기 뜻 모를 생각이 솟아났다. 테스는 혹시 아기를 낳고서 다시 홀쭉해진 배가 좋은 걸까?

아니, 그보다는 성취의 기쁨일 것이다. 열병이 주는 무분별한 허기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놋시의 눈에 테스는 행복해 보였다. 테스는 지금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가 정말 밤새 이대로 머물러 있고 싶다면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억지로 엮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을, 온전히 그의 것인 짝의 몸이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다른 어떤 짓을 원하더라도…….

놋시는 테스가 어떤 짓을 해도 괜찮았다. 젊은 나무처럼 아름다운 몸이 허기를 참다 곪지 않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열병으로 끌려 나온 테스의 진실은 숨겨 둔 욕망이 아니었다. 놋시가 보게 된 것은 감춰 둔 마음뿐이었다. 그가 떠나길 두려워하는 죄책감의 발로와, 그를 아프게 하느니 자신이 다치고 말겠다는 고집스러운 애정이…….

정말 그것뿐일까. 테스의 열병이 이대로 끝난다면, 이것이 과연 제대로 이뤄진 약속이었을까?

생각에 빠져들던 놋시는 늘어난 미온의 물기를 느끼고 자신을 탓했다. 슬금슬금 솟아난 젖에 팔목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지금은 여유로울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지금 놋시는 무엇도 테스에게 숨겨선 안 되고, 사실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것쯤은 부끄러움을 견디기만 하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 밖의 설명 못 할 감정들은 더욱 어쩔 수 없다.

어색하게 가슴을 가렸던 손목이 움찔거리자 비 맞은 땅처럼 젖은 소리가 났다. 놋시는 답답한 목에 침을 모아 삼키고 천천히 손을 내렸다. 테스의 손끝이 서성이는 아랫배까지 닿진 않지만 가슴이 보일 만큼은 내려갔다.

젖이 흐르는 가슴을 고스란히 내보이고서, 놋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머리가 멍하고 얼굴이 뜨거웠다. 목구멍에 불덩이가 들어온 것처럼 숨이 막혔다.

또 젖을 먹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열을 품고도 미치지 않은 테스가 억지를 쓸 것 같진 않지만 어떻게 보면 억지가 아니다. 놋시의 젖은 애초에 양이 적어 곧 마를 테고 그게 사라진 가슴은 항상 물리고 빨리던 것이다.

테스가 원한다면 괜찮은 거라고. 되새기던 놋시는 조금 뒤에야 낯설게 메마른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눕게 해주마.”

“…….”

“닦아 주고, 보지도 않을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놋시는 천천히 깨달았다. 테스는 그에게 숨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루만지던 더운 손가락도 한자리에 멈춰 있고 편안하게 숨 쉬던 단단한 허리도 얼어붙은 듯 딱딱해졌다. 불빛을 등지고 선이 뚜렷해진 큰 어깨와 넓은 가슴도 심장을 붙잡힌 것처럼 멈춰 있었다.

밤의 숲처럼 어두워진 테스의 눈은 놋시를 상처 줄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만 같다.

놋시는 불꽃이 튄 것처럼 속이 따끔거렸다. 언뜻언뜻 흔들리던 늪의 눈동자는 한참을 숨죽여 그를 내려다봤고, 천천히 멀어진 커다란 손이 바닥에 밀려나 있던 화려한 담요를 끌어왔다. 놋시의 배를 가려 준 테스의 손이 닿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처럼 허공에서 주먹 쥐었다.

굳어 버린 입매와 어깨로, 안타깝게 멈춰 선 손까지 따라 다니던 놋시의 시선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지 봤다. 색이 짙은 담요의 모서리가 한쪽에서 배를 가려 줬지만 모두 감추진 못했다.

완만한 굴곡으로 허리와 몸통이 그어 낸 선에도 가느다란 젖 줄기가 닿아 있었다. 얄팍하게 부풀어 끝을 적신 가슴은 빠르게 들썩였고 그러다 유독 크게 빛을 반사하고는 했다. 손목에 눌려 번진 흔적 위로 희뿌연 온기가 새로 흐르는 순간이다.

놋시의 떨리는 한 손도 부들거리는 털 담요 밑에 가려져 있었다. 꼼짝할 수 없던 손을 조심스레 끄집어낸 놋시가 담요를 움켜쥐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쥐가 난 것처럼 손끝이 둔했다.

“그…….”

한숨처럼 소리 냈던 놋시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뒤를 잇지 못했다. 한기를 느낀 어깨와 팔다리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엮여 있는 몸속은 불을 품은 것처럼 더웠지만 바깥은 마치 혼자인 것처럼 스산했다.

남의 것 같은 자신의 손과 제멋대로 떨리는 허벅지를 헤매던 놋시의 눈이 끔찍한 무게를 들어 올리듯 힘겹게 테스를 올려다봤다.

언제나처럼 곧고 아름다운 얼굴에서 새까만 것이 타고 있었다. 어두워진 눈동자 안에서 놋시가 처음 보는 미움이 들끓었고 그것은 밖이 아닌 안을 태우는 소용돌이였다.

테스는 자신의 욕망을 미워하고 있었다. 생살이 타들어 가듯 섬뜩한 아픔이 상상이 아닌 현실로 번뜩이며 놋시의 눈을 깜빡이게 했고, 그 순간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도 괜찮아요.”

“…….”

“만, 져도 괜찮고……. 먹어도 괜찮습니다.”

둔해진 놋시의 손이 담요를 끌어 내리자 갑자기 드러난 하얀 배가 속을 조였다. 부싯돌처럼 번쩍이는 자극이 숨을 키웠지만 놋시는 테스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나온 순간부터 식어 가는 젖으로 미끄러운 가슴 위를 더듬어 잡았다. 손끝에 닿는 습한 피부가 덫을 가린 잎사귀처럼 차갑다.

하지만 테스의 목소리는 그보다 더 서늘했다.

“그렇게 참고 받들지 않아도 된다.”

“…….”

“네가 싫은 건 하지 않아.”

낮고 깊숙한 목소리의 독한 감정을 놋시도 들을 수 있는데 테스는 전혀 모르는 걸까. 용기보다 절박한 무엇으로 숨을 모은 놋시가 떨리는 손에 힘을 더했다. 부풀어 떨리는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가두며 젖은 살을 누르자 어느덧 멎어 있던 젖 줄기가 울컥 솟아 차가운 손등을 타고 흘러 손바닥 그늘에 떨어졌다.

깊은 눈매의 먼 바닥에서 무언가 움직인 것만 같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입술을 여닫은 놋시가 소리를 낸다. 어떤 말인지는 하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가슴을, 빨릴 때마다 좋아요.”

“좋다고?”

나지막한 되물음은 땅 밑의 돌을 긁어내듯 속에서 갈라진 외침이다.

“좋아요……. 예전부터요.”

“…….”

“젖이 나오고서는 이상하지만 그래도…….”

들쑥날쑥해진 숨을 고르며 빠르게 눈을 깜빡인 놋시가 다음 말을 찾지 못한다. 죄와 벌이 탄생시킨 야릇한 자취를 확인하듯이 그의 손이 움직였다.

쥘 게 없는 가슴을 만지던 손이 단단하게 차오른 돌기를 짓누르자 가늘던 젖 줄기가 큰 방울을 떨구며 주르륵 늘어났다. 흔적을 넓히듯 따라간 젖은 손바닥이 배를 스치자 놋시의 속이 떨리고, 숨이 들뜨고, 눈앞의 어둠 위로 열기가 덧씌워진다.

놋시는 젖이 묻은 손으로 버려져 있던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머리를 문지르던 손이 바닥으로 몸통을 잡고 전체를 감싸자 가시와 꽃잎이 한 번에 쏟아지듯 어지러운 자극이 신음을 끌어낸다.

“흐읍, 으읏…….”

오메가의 성기가 섬세한 표피를 팽팽히 당기며 흥분하자 바닥에 굳어 있던 놋시의 다른 손도 그를 맞잡아 감쌌다. 바짝 말라 있던 오른손과 흠뻑 젖은 왼손이 한데 얽히며 더워진 몸통을 조이자 쾌감에 허리가 들뜨고 어쩌면 비명이 나온 것 같다.

좁혀진 어깨 아래 길게 뻗은 팔뚝 사이로 부푼 유두가 모이고 눌리자 신음이 높아진다. 젖이 흐르는 가슴이 몇 번을 들썩이자 놋시의 성기 끝에서도 질척한 무엇이 흐르기 시작했다.

놋시가 모를 수 없다. 질척하게 맞닿은 피부와 피부 사이로 습기가 늘고 떨리는 배와 들뜨는 가슴 위로 열기가 솟았다. 놋시는 위아래로 젖어 있는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차마 보지 못할 정도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세게 눈 감은 놋시의 눈언저리가 하얗게 질리지만 두 뺨은 그렇지 않다. 얇은 턱과 목덜미로 번진 열기가 귀까지 잡아 삼키자 귓불의 반점이 빛을 내듯 밝아진다.

공포와 용기가 만들어 낸 낯선 흥분에, 만지고 만져지는 감각에 붙잡힌 놋시가 입술만을 움직여 중얼거린다. 얕은 숨 사이로 들릴락 말락 테스의 이름을 부른다.

“아, 하아……. 테스, 테스…….”

그 모든 게 부끄럽고 추하다 느끼면서도 놋시는 테스가 봐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온통 어두워지고, 그 안에서 눈이 마주치고, 커다란 숨이 터지며 놋시의 심장을 적셔 온몸이 잠겨 든다. 놋시의 부끄러움을 모조리 감춰 주는 넓은 어깨 밑으로 뜨거운 신음이 뒤섞이자 틈 하나 없이 채워져 있던 속이 끓어오른 물처럼 넘쳐 올랐다.

사정으로 민감해진 오메가의 성기가 커다란 손에 눌리자 놋시의 입에서 비명이 흘렀다. 저절로 몸이 젖혀지고 도망치지만 잠시뿐이다.

목덜미를 잡은 뜨거운 손바닥에 고개가 들린 놋시는 닿을 듯 가까워진 초록색 눈동자 속 빛을 보고 눈 감았다. 힘없는 입술 사이로 들어온 테스의 혀를 물고 빨자 마른 목을 살려 주는 시원한 물기가 흘렀다.

닿지 못하는 심장 사이로 피비린내 나는 고백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너는, 후으, 누구에게도 안 된다.”

“흐응, 으읍.”

“네가 어떤 맛인지 아는 건 세상에 나만이…….”

“아! 아읏, 흑, 테스, 테스…….”

놋시의 숨을 터주며 뺨을 깨무는 입술 밑에서 테스의 목이 핏줄을 세우고 그의 손이 가슴을 쥐었다. 심장을 꺼내 잡듯 달려든 손아귀가 움켜쥔다. 견고한 손마디에 짓눌린 돌기가 젖은 살과 같이 전율하고 심장이 쿵쾅거리지만 놋시는 밀어내지 않는다. 그는 가두듯 다가온 넓은 어깨를 마주 안았다.

흠뻑 젖은 손바닥이 단단한 팔에 매달리고 손톱을 박자 테스의 입에서도 놋시의 이름이 나온다. 세상에 중요한 게 그것뿐이라는 듯 서로의 이름만이 되풀이된다.

놋시는 언제나 테스의 입술을 좋아했다. 엄격한 입매가 그만을 위해 웃는 것도 좋았고, 부드러운 입맞춤이 한없이 계속되는 것도 좋았고, 욕심을 내는 속삭임으로 상상도 못 할 소원을 고백하는 것도 좋았다.

죄의 슬픔과 수치로 한 번도 그렇다 말할 수 없었지만 언제나 알고 있었다.

놋시가 갇혀 있는 쇠사슬은 영원히 벗겨지지 않을 테지만 그는 누구와도 그것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몸을 억죄는 그런 족쇄는 테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밤을 넘겼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나자 방 안의 그림자가 옅어진다.

빗줄기가 사라진 고요한 세상에서도 놋시의 귀에는 고르게 이어지는 테스의 호흡만 들려왔다. 그들을 가둔 호수와 숲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손등 너머 단단한 가슴이 두근거리는 박동으로 생을 계속하고 더운 체온으로 온기를 나눠 줬다.

온몸이 아팠지만 놋시의 심장은 평화로웠다. 죄의 무게와 소중한 마음이 함께하며 피를 뱉고 삼킨다.

테스의 턱 밑에 머리를 기대고 눈 감은 놋시는 기다리고 있을 아기와 그를 지키고 있는 저택의 식구를 떠올렸다. 동료와 부하로 만나 믿고 의지하는 그들이 테스와 놋시의 가족이었다.

남들이 따르는 것은 테스가 아니라 타게신이지만. 그들도 분명 같은 마음일 것이다.

놋시는 벌을 나누려는 테스를 보기 싫었다. 자신이 죄에 매여 있더라도 테스는 그러지 않길 원했다.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는 테스를 보는 것은 열병의 광기보다 끔찍한 형벌이었다.

테스는 놋시의 하나뿐인 짝이었고 유일한 형제였다. 약속한 삶으로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아 나갈 그들은, 죄의 길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마음이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서로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거름이 되고 그래야만 새싹이 핀다.

어떤 길에서든 마찬가지다. 힘들어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환해지는 세상을 등 뒤로 느끼며 놋시는 테스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비가 그친 새벽을 가르고 떠오른 해가 잠든 그들의 발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하베스트』 외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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