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륵이 잠들어 있는 방 앞마당에서 놋시를 내려놓은 테스는 열흘 뒤 오겠다는 말을 하며 떠났다. 피곤할 테니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고, 용기 내서 말한 놋시에게 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바쁜 일이 있어 가야 한다니 붙잡을 말이 없었다.
내가 너무 어리게 굴어 형이 화나진 않았을까. 독버섯 물을 먹지 않아 잠투정이 심했던 스스로를 원망하며, 집 안을 둘러보고 잠깐이나마 누웠던 놋시는 그날 오후부터 닭과 염소를 돌볼 만큼 빨리 힘을 되찾았다.
보라색 독버섯을 먹지 않은 덕일까. 한 번의 일이라 확신을 갖기 어려웠지만 희망은 희망이었다.
그런 새로운 생각을 가슴에 품고서. 놋시는 차노륵의 식사를 챙기고 산의 약초를 모으며 날을 보냈고 닭과 염소를 돌봤다.
열흘 뒤 사제와 함께 마을에 온 테스는 또다시 전쟁터에 나간다고 했다. 인사로 들렀다는 그는 놋시에게 새로운 책을 선물로 줬다.
가죽으로 된 주머니에 담겨진 세 권의 책 중 한 권은 체레오의 법을 열거한 법전이었고 한 권은 왕국을 만든 이 중 제일 유명한 장군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한 권은 수도에서 학자로 유명한 베포로의 글을 옮겨 적었다고 표지에 길게 써져 있는 책이었다.
구경하러 온 이웃과 어울리던 사제를 모시고 그날 밤늦게 테스가 돌아간 뒤. 놋시는 잠든 아버지의 방문을 닫고 자신의 작은 방에서 촛불을 밝혔다.
법전과 이야기책을 넘기고 들춰 본 베포로의 책에는 마지막의 주인과 첫째가는 이가 체레오의 욍국에서 알파와 오메가로 불리며 어떻게 짝지어 사는지 적혀 있었다.
열다섯의 놋시는 마을의 아이들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성장을 하고 있었다.
시내의 또래처럼 학교를 가지 않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알았고 에기를 보고 배워 약초상에도 혼자 다니니 남보다 못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는 짝을 이루는 잔칫날 밤에 구경하러 몰려가는 마을의 남자들이 무얼 보러 가는지 알았고 사로나의 시내에서 보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는 오메가 주인님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마을의 남자들은 짝을 이룬 두 명이 새집의 방에서 불을 끄고 함께 눕는 것을 보러 가는 것이었고 사로나의 관리들도 허리를 굽히는 오메가 주인님은 수도의 귀족 출신이라 모두가 인사하는 것이었다.
마을에는 놋시와 엇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몇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하나둘 남다르게 멋을 내며 각자 길을 가기 시작해 사로나의 시내로 일을 나가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크는 키를 자랑했고 여름날 밤에는 시냇가에 모여 서로의 벗은 몸을 경쟁하기도 했다.
누가 더 큰 새를 잡아 오는지, 누가 더 큰 물고기를 잡아 오는지 대보는 것과 비슷한 놀이였지만 크기를 자랑하는 게 다리 사이의 살덩이라는 게 달랐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그것을 불렀다. 놋시는 사제의 책에 나와 있는 단어를 알았지만 그들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 사로나의 시내에 나다니는 몇 아이들 역시 그 단어를 알 테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놋시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누가 누구의 밤을 잡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남의 일로만 여겼다. 잘생겼다 소리 듣는 청년들이 마을의 여자에게 노래를 부르며 손짓하는 것도 봤지만 그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워 보였다.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인 여자애들이 가끔 놋시에게 약초의 이름이나 먹는 법을 물어보러 들르기도 했고, 여름 끝자락의 보름달 잔치에서는 함께 술을 마시자며 잔을 내주기도 했다.
놋시에게는 하나같이 어색한 일이었다. 한여름에도 항상 얼굴과 두 팔을 가리는 게 습관이 된 그는 밤의 연못에 놀러 가자는 아이들의 초대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아이들 역시 그런 놋시를 오래 알아 와 그의 몸에서 나는 연고 냄새에 눈을 찌푸리지 않았지만, 한 번 거절당한 뒤에도 다시 손을 당길 만큼 친근한 사이 역시 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로 놋시는 한창 성적인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고 집중하는 마을의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했다.
원체 혼자 지낸 지 오래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버섯을 따는 계절에는 도우러 같이 산을 탔지만 1년 내내 약초를 찾아다닐 만큼 발 빠른 아이는 드물었다.
놋시는 오히려 에기의 친구이던 몇 여자들과 더 자주 얘기를 나눴다. 차노륵의 건강과 버섯의 가격과 요새 나오는 약초를 묻는 대화들은 길어질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보름달 밤의 물놀이보다 이쪽이 더 편한 화제였다.
매일 산에 간다고 해도 혼자 있는 시간은 언제나 남아돌았다. 테스의 선물로 놋시의 방에는 제법 여러 권의 책이 쌓여 갔다.
베포로의 책을 읽기 시작한 뒤 놋시가 인상 깊게 기억한 첫 번째는 사로나의 시내에서 유명한 오메가 마님이 먼 나라에서 왔다는 걸 암시하는 이야기였다.
베포로는 알파와 오메가로 그들을 불렀다. 왕과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난 오메가는 어릴 때 짝을 맺어 또다시 왕과 귀족이 되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유명한 장군이나 기사와 짝을 맺었고, 때로는 먼 나라의 유명한 장군이나 왕자와 짝을 맺으러 보내진다고 한다.
오메가는 알파가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때로는 왕의 아들조차 짝을 얻기 위해 먼 나라에 연락한다고 했다. 체레오의 왕국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나라가 그렇다고 한다.
놋시의 머릿속에 에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이별한 에기의 언니도, 마자기오의 약초상에서 제일 부자 손님인 그 오메가 마님도 다들 이렇게 먼 나라로 짝을 이루러 오고 간 것이다.
베포로의 책에는 격에 맞는 알파와 오메가가 짝을 이루어야 그만큼 훌륭한 자식을 낳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쓰여 있었다.
체레오의 법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고 아마 사매로노의 제국도, 다른 나라들도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았다. 지금 체레오의 왕인 리제크의 여동생이 사매로노의 제국으로 짝을 맞으러 갔다고 몇 해 전에 사로나의 시내에서도 이야기가 돌았었다.
그러니 나중에는 테스도 타게신의 이름으로 오메가 짝을 얻겠지. 놋시는 에기의 말 그대로인 이야기가 글자로 되어 있어 신기했다. 그가 짐작도 하지 못한 이야기는 그다음이었다.
체레오의 왕국에서 짝을 이룬 알파와 오메가들은 1년에 네 번씩 함께 여행을 떠났다. 풍경이 좋은 바깥이 아니라 집 안의 안전한 방에서 일어나는 이 여행을 베포로는 후손을 얻기 위한 약속의 시간이라 불렀다.
짝을 이룬다는 것은 약속을 뜻했고, 약속이 깨진 오메가는 죽기 때문에, 이 약속을 지키는 일이 알파와 오메가의 결합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알파와 오메가를 노랫가락처럼 엮은 베포로의 글줄은 읽기 쉽지 않았다. 어려운 글자가 섞여 복잡한 문장을 읽으며 무슨 소리일까 싶던 놋시가 내용을 이해한 것은 다음 장에서다.
약속을 위한 시기의 오메가는 자신을 잃게 된다. 스스로 뱉는 독이 저를 죽이고 남을 홀렸다.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알파뿐이고, 함께 떠나는 여행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 여행에서 오메가를 보살피는 게 알파의 약속이었다. 후손을 만들기 위해 약해지는 오메가를 적으로부터 지켜 내는 자만이 진정한 짝이었고 그렇게 가족을 얻는 것이 알파의 명예인 것이다.
1년에 네 번. 약해지는 오메가와 중요한 약속…….
베포로의 모호하고 점잖은 글귀가 말하는 것은 놋시가 앓는 열병을 뜻하고 있었다. 짝을 이룬 오메가와 알파에게는 후손을 얻기 위한 약속의 시간이라는 그것이, 이제껏 놋시가 겪어 오던 끔찍하고 번거로운 병이었다.
책의 다음 장에서는 오메가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얘기하며 약과 열매 이름이 나열되어 있지만 놋시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약속이 깨진 오메가가 죽는다는 단언과, 그걸 지켜 주는 짝의 이야기에 사로잡혔다.
놋시는 그 책을 통해 자신이 그들이 말하는 오메가라는 사실을 새롭게 절감했다.
처음 열병이 났을 때 관리가 알았다면 수도로 데려가 짝을 지어 줬겠지만 사로나의 산 밑 마을 출신인 놋시가 수도의 첫째가는 이들과 어울릴 리 없다. 그는 분명 바다 건너 저 멀리 어딘가로 보내졌을 테고, 그것이 두려워 에기가 보라색 독버섯을 먹으며 그를 숨겨 왔다.
하지만 놋시는 이제껏 짝 없이도 죽지 않았다.
그는 짝을 이룬 둘이 무엇을 하는지 아주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새집의 방에서 불을 끄고 함께 누운 두 명이 서로의 살을 열고 몸을 섞는 게 짝이 하는 일이다.
이제껏 그는 누구와도 불을 끄고 함께 눕지 않았고, 물가에 선 남자아이들이 흉내 내는 것처럼 남의 살을 열고 몸을 섞은 적도 없었다.
그랬는데도 놋시는 아직 살아 있었다.
절벽 아래 동굴에서 열병을 넘기고, 독버섯을 먹고 온천수에 몸을 씻고 남들의 눈을 피해 얼굴을 가리고서, 에기의 말을 따라 진득한 연고를 목과 얼굴에 바르고 화상이 난 왼손을 내놓은 채로……. 형의 침을 받아먹고서.
그렇다면 이 책도 결국 정확하고 하나뿐인 진실은 아니다. 왕국의 말은 그런 것이었다.
체레오의 법이 맨 위에 쓰여 있어도 산 밑 마을 사람들은 그 아래 빈자리를 골라 다녔다. 사로나의 관리들도 그랬고 마자기오의 약초상에서 돈 계산을 맡은 하락도 그랬다.
사람들은 사정이 있을 땐 거기에 맞춰 숫자를 썼고 날씨가 나쁠 땐 거기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에기는 세상 이치가 버섯 같다고 말하곤 했다.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고, 잘못 먹으면 독이 되는 게 알고 먹으면 약이 되기도 한다고.
놋시에게는 어려운 말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어려운 글자가 가득한 책을 읽고 있으니 알 것도 같아졌다. 사람이 꼭 한 가지 방법으로만 죽는 게 아니듯 살아가는 방법 역시 여러 가지인 법이다.
차노륵은 에기가 살아 있을 때도 놋시에게 형을 따라 수도로 가라는 말을 꺼내곤 했다. 화상을 입어 감추고 다니는 아들이 불쌍해 한 말이었겠지만 놋시도 슬슬 깊은 생각을 할 때였다.
그는 마을의 여자아이들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좋은 짝이 될 자신은 없었다.
어차피 놋시는 마지막의 주인이었고, 그렇다면 첫째가는 이를 짝으로 만나야 하겠지만…….
그의 생각에 산 밑 마을에서 태어나 화상으로 일그러진 자신은 그런 짝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거짓을 꾸며내 숨기고 짝을 얻더라도 그렇게 살면서는 차노륵과 에기처럼 이루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놋시는 돈 계산을 할 수 있고 독버섯과 약초를 키울 수 있었다. 글을 배운 뒤에는 마을의 눈 어두운 노인의 부탁으로 중요한 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는 잠시 사로나의 시내처럼 복잡한 거리에서 약초사로 일하는 미래를 상상해 봤다.
바깥 벽이 있는 구석에 집을 짓고서 뒤편에 밭을 만들어서 버섯과 약초를 키우고, 텃밭에는 붉은 열매와 흰 뿌리를 키우면 닭과 염소가 없어도 괜찮을 듯했다. 아니, 닭이든 염소든 하나 정도는 키울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답답한 벽 안에서 지내지 못하겠지.
요새는 사냥도 덜 나가지만 그래도 차노륵은 사냥꾼이었다. 목소리가 폭풍 같고 걸음이 큰 아버지는 사로나의 시내를 걷는 것조차 좁다며 질색하곤 했다.
밤마다 뒷마당에 혼자 앉아 에기를 생각하는 요즘의 아버지는 테스가 돌벽을 얻어 성으로 오라고 불러도 어머니가 죽은 이 집을 떠나지 않을 듯하다.
그것은 놋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손길로 기름을 먹어 반질거리는 문틀과 부엌의 나무 바가지들을 떠나기 싫은 마음은 그도 아버지와 같았다.
여기는 놋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었다. 그는 산 밑 마을에서 살고 있는 말 한마디 안 해본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았고 아마 그 아이들도 차노륵의 둘째로 항상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놋시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놋시의 흉 있는 생김은 어디서든 번거로운 눈초리와 귀찮은 대화를 만들 테니, 어차피 그럴 거라면 모두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는 곳에서 사는 게 제일이다.
놋시는 새해가 되면 시내에 나가 마자기오의 약초상에 일찍 가보기로 날을 정했다.
보라색 버섯 말고도 잠들 수 있는 약이 따로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걸 먹지 않아도 잠들 수 있는 걸 알았으니 다른 약을 구해 조금씩 잠을 얻어 열병을 치료할 생각이었다.
산에 나는 약초 중에 잠재우는 종류로는 보라색 버섯 말고도 녹색 가시 같은 잎사귀가 있었지만 그건 한두 시간밖에 효과가 없었다.
하락이 보물처럼 여기는 환약의 이름을 물어보면 배울 수 있을까? 새로운 약을 시험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 테스는 계속 바빠져 더 멀리 나가는 첫째가는 이였고 곧 짝을 얻게 될 테니 언제까지 놋시를 도와줄 수 없다.
하지만 해가 바뀌는 시작에 더 멀리 나가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은 테스가 아니었다. 흰 여우를 봤다며 며칠이나 떠들던 차노륵이 거인의 계단을 오르다 떨어지고 말았다.
놋시는 아버지가 혼자 사냥을 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큰 사냥을 나간다기에 여럿이 함께 갔으리라 생각하던 그는 3일째 되는 날 집에 놀러 온 아버지의 친구를 보고 산을 뒤지기 시작했었다.
하루 이틀 뒤에는 사람이 늘었고 일주일이 되는 날 수색이 끝났다.
떨어지는 걸 누구도 보지 못할 만큼 깊은 숲속에서 추락한 차노륵은 마을의 어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며칠이나 산에 있었는데도 짐승이 물지 않아 깨끗한 시체를 보고 마을의 사람들이 혀를 찼다. 슬픔에 잠겨 자살한 이는 벌레도 물지 않는다는 미신 때문이다.
놋시는 차노륵이 자살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며 밤새 홀로 서 있는 그 앞에서는 가장 나이 많은 노인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시체를 모두 태운 후 집에 돌아온 놋시는 방문을 잠그고서 혼자 울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놔두고 떠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에기가 보고 싶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자꾸만 심장을 찔러 댔다.
테스가 돌아온 것은 차노륵의 장례가 끝나 집의 뒤편 커다란 보로새 나무 밑에 뿌려진 시체의 재가 흔적도 남지 않은 뒤였다. 사매로노의 제국이 물러섰다는 소문과 함께 사로나의 시내에 커다란 군대가 왔다고 말이 돌았다.
하지만 산 밑 마을까지 온 것은 왕의 갑옷과 장군의 방패를 받았다는 타게신 혼자였다. 나중에 듣게 된 마자기오의 말에 의하면 테스는 이번 전쟁의 공으로 왕이 주는 높은 신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놋시는 알지 못했다. 차노륵의 집에 혼자 남아 에기가 아끼던 사기그릇과 나무 바가지를 닦아 놓던 그는 형이 온 것만을 알았다.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것은 형제가 같았지만 그래도 시체조차 보지 못한 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놋시.”
“…….”
큰 방이 모두 비어 쓸쓸해진 앞마당에 대문을 열고 들어와 선 테스가 놋시의 이름을 불렀다. 말발굽 소리를 듣고 나오던 놋시는 매끄럽고 곧은 금발 머리를 단정히 묶고 선 눈앞의 남자가 낯설어 눈을 찡그렸다.
키가 커다란 그 남자가 입고 있는 붉은 천을 댄 가죽옷은 사로나의 관리가 입는 제복보다도 화려했고 허리에 찬 칼집 위로 늘어진 허리띠에는 해가 없어도 빛을 낼 것 같은 샛노란 보석이 달려 있었다.
타게신이 왔다고 몰려들어 수런거리는 대문 바깥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놋시는 눈앞의 남자가 그의 형이라는 걸 알았다. 깊은 눈매와 우뚝한 콧대가 한층 더 예리해져 짙어진 눈가의 그림자 속에서 어두운 숲의 늪처럼 진한 초록색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하려던 놋시는 울컥하고 쏟아지는 피처럼 눈물을 토했다. 비명으로 외쳐진 높은 목소리가 벅찬 흐느낌으로 마른 땅 위에 흩날렸다.
형이 있었다면 아버지도 산에 가지 않았을 거라는, 나 혼자로는 부족했던 거라는 서럽고 괴로운 생각이 말이 되지 못하는 슬픔의 폭발로 열여섯의 놋시를 무너뜨렸다.
테스는 한낮에 울음을 터트린 놋시를 안고 괜찮다고 등을 문질러 줬다. 돌아온 첫날은 장례를 도와준 마을의 어른에게 인사를 다니는 일로 바빴다.
그날 밤 테스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 쓰던 방에서 잠을 청했다. 차노륵의 방보다는 작지만 뒤로 뚫린 창문이 넓어 해가 잘 드는 방이었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깨끗하게 청소된 덕에 비어 있던 장소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놋시는 어제 기절할 기세로 울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운 듯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 놨다.
새파랗게 앞마당을 채워 놓은 이른 아침 공기를 들이켜며, 테스는 놋시에게 자신의 방을 쓰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소하지만 정돈된 부엌의 식탁에 앉아 뜨거운 국물에 질긴 빵떡을 적셔 먹은 테스가 보지 않는 척 놋시의 얼굴을 살펴본다. 두건에 가려진 하얀 얼굴이 무심한 입가를 보이며 식탁 끝에 놓여 있다.
어제 테스는 놋시의 횡설수설하는 통곡을 들으며 동생이 품은 자책의 속을 보고 말았다. 혼자서 열여섯이 된 그보다, 전쟁의 공을 세우겠다며 밖을 다닌 맏아들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에기를 깊이 사랑한 차노륵을 알던 테스는 짝을 잃고 반쪽이 되었던 아버지가 결국 껍데기를 버린 것이 놀랍지 않았다. 그가 안타까운 것은 그로 인해 아직 어린 놋시가 받은 상처다.
“놋시…….”
“…….”
형이 동생에게 하려던 말은 이제 쓰지 않는 자신의 방을 네가 쓰라는 이야기였지만 테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깊은 마음속의 진실이었다.
동생을 어떻게 하겠냐고 마을의 어른들이 묻기 전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오던 길부터 생겨났던 마음이다.
그는 더 이상 놋시에게 외로운 삶을 살게 하기 싫었다. 부모도 없는 마을에서 얼굴을 숨기고 몸을 가린 채 혼자 낮을 보낼 동생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이름을 부르는 첫마디로 입을 뗀 테스가 겨울 새벽처럼 회색과 푸른빛이 뒤섞인 큰 눈을 바라보다 말하고 말았다.
“나와 함께 수도로 가자.”
“…….”
“너는 혼자서도 잘 지낼 테지만 내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수도에서, 앞으로는 수도에서 계속 계시나요?”
“한동안은 그렇지 못해도 집은 구할 수 있지.”
테스는 차분하게 되돌려진 놋시의 질문에 내심 놀랐다. 말을 하면서도 다음을 미처 생각 못 한 것은 동생이 아니라 자신이다.
제국이 물러섰다고 해도 국경의 다툼은 해결되지 않았다. 체레오의 왕국이 있는 동안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사매로노의 욕심이, 바다를 통해 사막의 사절을 불러들였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타게신의 이름으로 직위를 얻은 테스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먼 곳을 다니게 될 터였다. 차마 그렇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형에게 동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마자기오의 약초상에서 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라색 독버섯이 아니라도 귀하게 찾는 약초는 항상 있고 제 발은 산 밑 마을에서만이 아니라 온 사로나에서 제일 산을 잘 탑니다.”
“…….”
“걱정을 들어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전쟁에 나가는 타게신이지요.”
놋시는 웃는 얼굴을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 슬픔과 감사함이 겹쳐지고 아쉬움과 불안이 짝지은 마음으로 형의 무사함을 소원하는 그는 혼자 남을 스스로의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나중에는, 나중에 테스가, 아니, 타게신이 가정을 만들며 커다란 돌벽에서 살게 되는 날에는, 그도 한자리 얻어 지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차분한 놋시의 얼굴을 보며 테스는 자신의 서투름이 원망스러웠다.
형이 아닌 어른을 대하듯 예의 바르게 말하는 놋시는 아직 슬픔에 잠겨 있었고 낯선 생활과 환경에 도전할 기운이 없다. 그의 형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불려 다녔고 사로나를 떠나는 군대와 함께 그날 저녁 수도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의 장례도 지키지 못하고서, 하나 남은 동생을 돌볼 사람도 부족하면서, 어떻게 편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자고 말할 수 있을까.
하루도 편하게 같이 보내지 못한 형제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헤어졌다.
말을 탄 채로 앞마당에서 머뭇거리는 금발의 남자는 더 이상 머리를 흩날리는 소년이 아니다. 열여덟의 전사가 말을 타고 있다. 깨끗하게 하나로 묶인 금발 머리카락은 청년의 곧고 높은 얼굴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다.
말 위에 높게 앉아서도 반듯한 이마는 기다리는 부하가 쫓아온 걸 알고서도 쉽게 문을 나서지 않았다. 놋시는 이제 자신 말고는 세상의 누구도 테스라고 부르지 않을 눈앞의 남자에게 직위에 걸맞은 존경을 담아 인사했다.
“타게신, 상처 없는 길이 되십시오.”
“……너도, 건강히 지내고 있어라.”
해명하기 힘든 서운함과 말하기 어려운 슬픔이 형제의 마음을 괴롭혔다. 마을을 벗어나는 타게신의 칼처럼 당당한 얼굴에서 아픔을 읽은 이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한다며 수군거렸다.
이유를 모르게 서러운 이별을 어떻게든 넘기고서. 놋시는 차노륵의 집에 남아 산 밑 마을에서의 삶을 살아갔다.
마자기오의 약초상에 찾아가 에기가 하던 일을 달라고 말한 그에게 노인은 아편 잎을 구해 오라 시켰다. 노인과 에기만 알고 있던 작은 언덕의 위치가 놋시에게 말로 전해졌다.
연고를 바른 얼굴에 두건을 두른 소년은 이제 열여섯이고 그 나이는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며 봄이 왔다. 놋시는 밭을 가꾸고 닭과 염소를 키우며 집을 청소했다. 산 밑 마을의 이웃들은 에기를 찾아오듯 그를 찾아 왔고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옆 마을에서도 속에 좋은 뿌리와 버섯을 나눠 달라 사람을 보내왔다.
혼자 일어나고 혼자 잠드는 나날을 보내며 놋시는 점점 말이 줄었지만 건강을 잃지는 않았다. 빠르고 신중한 걸음으로 파랗게 물든 산길을 다니던 그는 곧 닥칠 한밤에 저에게 달려들 열병의 무서움을 홀로 치를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장례도 달려오지 못한 타게신이 기껏해야 동생의 병을 보살피러 오지는 못할 것이다.
시내를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해진 뒤 놋시는 보잘것없는 사로나의 시내에서나마 책을 구했다. 그것들은 테스가 준 선물과 달리 글자가 적고 허술한 몇 장뿐이다. 수액을 판 돈과 아편 잎을 구한 수고비가 쌓여 그에게는 나무 막대가 넉넉했다.
신화와 역사의 음란한 일화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름을 적어 놓은 얄팍한 종이 뭉치는 읽는 재미를 주기도 어려운 종류였지만 놋시가 찾아보는 건 따로 있었다.
시장의 이야기꾼들이 체레오의 왕족을 비웃는 것처럼, 원초적인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사매로노의 오메가와 왕국의 알파를 비웃었다.
놋시는 베포로의 책과 낡은 그림을 통해 마지막의 주인이 겪는 열병을 공부했다. 학자의 가르침과 주정뱅이의 망상으로는 세세한 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지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를 추릴 수 있었다.
베포로는 건강을 염려했다. 짝이 있는 마지막의 주인은 여행을 하는 동안 굶어선 안 됐고, 끝난 뒤에는 특히 잘 먹어야 했으며, 열이 다녀가는 며칠간은 물을 마시기 어려우니 첫째가는 이가 책임지고 돌봐야 했다.
더러운 그림들은 짝 맺은 이에 대한 헛소리들뿐이지만 거기서도 음식을 다뤘다. 흥미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동물처럼 엮인 모습으로 서로를 먹여 줬다.
놋시는 사람들의 저열함에 눈을 찌푸렸지만 이런 장난거리에도 나올 만큼 식사가 중요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물을 마시기 어려운 건 그도 아는 지식이었다. 마시기 좋은 단물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버섯 물처럼 쓴맛이 좋은 것일지 알아봐야 한다.
아무도 없어 신경 쓸 일 없는 넓은 집에서 놋시는 이전에 갖지 못했던 차분한 마음으로 병치레를 준비했다.
몸에 좋은 사양초 뿌리와 물기가 많고 껍질째 먹기 쉬운 뒷밭의 순무 몇 개를, 계속 모아 와 항상 끊어질 일 없게 된 나무 수액도 반병 가져갈 계획이 섰다.
보라색 독버섯을 먹지 않은 지난번의 열병은 그전과 다른 경험으로 놋시를 도왔다. 버섯 물을 먹지 않은 덕인지, 잠을 깰 때마다 낯선 통증을 느낄지라도 잠깐잠깐 맑은 정신이 돌아왔었다.
잡다한 지식이 생겨난 놋시의 머리는 그의 나아졌던 상황이 형의 돌봄 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걸 알기 위해서 이번에도 버섯 물을 마시지 않고 버텨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준비하면서도 놋시의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날이 되기 전부터 절벽 아래를 오고 가며 일을 늘려 봤다.
흙바닥 위의 나무 침대가 전부인 동굴에 판판한 판자를 가져와 어설프게나마 탁자도 만들었다. 시내에서 새로 무명천을 사 미리 가져다 놓기도 하고, 목이 아픈 사람도 넘기기 쉬운 마자기오의 희뿌연 물약도 사놓았다.
풀리는 봄 날씨도 모르는 것처럼 밤과 새벽에 산을 오르던 놋시가 어느 날 며칠이 남았나 확인하려 달력을 꺼내 봤다. 형이 주었던 선물은 놋시의 손에서 길이 잘 들어 뻑뻑함 없이 날짜를 보여 줬다.
3월이 어느새 한복판이다. 테스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나 있었다.
타게신의 이름은 사로나의 시내까지 소문이 닿을 만큼 유명해진 지 오래였지만 사람의 말은 칼날을 쫓지 못했다.
왕의 기사 중 첫째가는 실력이라 가장 빨리 장군이 됐다는 게 정말일까. 놋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형의 안부가 걱정됐지만 소식을 물을 것은 마찬가지로 산 밑 마을에 사는 사제뿐이었다.
싸움이 매일이라는 국경을 다닌다고, 수도에서는 타게신의 승리를 노래하는 게 유행하고 있다는 사제의 말을 들어도 놋시는 뭐가 진실이고 뭐가 과장인지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도 한참 뒤 찾아 왔던 형의 단정히 묶은 금발 머리카락과 깊은 눈매를 떠올린 놋시가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숨겼다.
놋시는 어째서 자신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생각을 피해 일을 찾아다니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테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부모가 모두 떠나 쓸쓸한 집에서 형의 생각을 애써 피해 온 건 혼자 남은 외로움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동생의 한심한 열병을 도울 필요는 없다. 놋시는 그저, 하나뿐인 형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걸 보고 싶었고, 어리석은 고집으로 인사도 싸늘했던 그날이 마지막이 될까 봐 매일이 두려웠다.
수도에 가자는 말을 들을걸. 그랬다면 하다못해 소문이라도 좀 더 나은 걸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군대가 따라다닌다는 국경이 대체 어디인지, 타게신의 승리를 노래한다는 이들이 뭘 얼마나 아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놋시는 전보다 자주 마자기오의 약초상에 들렀다. 나이가 들며 몸을 사리는 노인은 그나마 멀리 다니는 소식을 들었고 그를 볼 때마다 타게신의 안부를 묻는 습관으로 형이 죽은 소문이 없는 걸 확인해 줬다.
하루는 사로나의 시내에 지도상이 나타났다. 관리나 보는 커다란 지도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써져 있었고 많은 구경꾼들이 그것을 읽지 못해 장사치에게 사로나가 어디냐고 묻고 있었다.
놋시는 하루 걸릴 거리를 한나절에 왕복해 집에 모아 둔 나무 막대를 모조리 꺼내 와 지도를 샀다.
사매로노의 제국이 커다랗게 중앙에 있는 그 지도는 놋시가 들어 보지도 못한 수많은 나라를 보여 줬지만 그의 손가락이 더듬는 건 체레오의 왕국을 둘러싼 짙은 선이었다.
전쟁이 아니라도 싸움이 매일이라는 산의 이름과 들판의 이름을 찾은 놋시는 타게신의 군대가 오늘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하며 매일 그 지도를 봤다.
다시 보게 되거든 사과해야지. 놋시는 뭐를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소원이 됐다. 형을 다시 보고 미안하다 말하는 게 그의 요즘 소원이었다.
하지만 따뜻해지는 날씨는 아무런 손님도 반가운 소식도 불러오지 않았고 대신에 열병이 찾아 왔다.
그해 열여섯의 봄에 놋시를 찾아온 열병은 이전처럼 나른한 미열로 시작되지 않았다. 겨울이 되돌아온 것처럼 냉랭하던 그날 아침, 잠을 깬 놋시의 하체는 열이 들끓는 동굴의 밤낮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놋시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얼굴을 창백하게 질리게 한 두려운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놋시를 놀라게 한 것은 시냇가의 남자아이들이 장난칠 때처럼 붉게 부풀어 커진 자신의 성기가 아니었고 기묘한 감각으로 열린 속에서 흘러나와 다리 사이를 흠뻑 적신 스스로의 체액도 아니었다.
그의 손을 떨리게 하고 입술을 깨물게 만든 것은 기억에 선명히 남은 새벽녘의 붉고 노란 꿈이었다.
꿈인지 무엇인지 모를 습하고 따뜻한 어둠 속에서, 음란한 그림의 첫째가는 이처럼 놋시의 살을 열고 몸을 섞은 상대는 그의 형인 타게신이다.
3월의 마지막 주에 놋시는 준비해 놓은 짐을 들고서 아무도 없는 산길을 올랐다. 미열이 번졌지만 심해지는 건 낮이 끝난 다음일 듯했다.
차가운 우물물에 씻고 나온 몸은 눈 감고도 걸어갈 길을 혼자 걸어갔다. 지도가 필요 없는 오르막을 타고 올라 나무를 잡고 돌을 지났다.
쉴 새 없이 걷는 동안 놋시의 머리는 간밤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놋시는 상상해 보기는커녕 말로 만들기도 두려운 장면을, 기괴한 꿈을 꾼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미친 걸까. 짝이 없는 오메가는 이렇게 미쳐서 죽는 걸까? 끔찍한 생각이 들었지만 새파랗게 빛나는 아침 산의 공기가 놋시의 열을 식히며 이치를 되찾아 줬다.
그건 단지 요즘 계속 생각한 것들이 한데 뭉친 것뿐이었다. 다가올 열병을 준비하며 옛날이야기와 베포로의 책을 뒤지던 자신은 매일같이 형의 무사함을 빌고 있었고, 그렇다면 두 가지가 열에 들뜬 머릿속에서 섞이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분명 그런 우연한 일이었다.
놋시는 이제껏 누구를 상대로도 그런 욕구를 느낀 적 없었고 몸을 섞는 행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의 경험 없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불결한 꿈은 음란한 그림을 따라 한 서투른 환상이었고 마음이 복잡해 생겨나고 만 실수였다. 짝이 있는 마지막의 주인이 어떻게 열병을 앓는지 궁금해하던 그의 무지가 흉측한 바람을 들이마신 것이다.
혹시 이런 악몽이 병의 새로운 증세인 걸까. 소름 끼치는 생각에 놋시의 등줄기로 오한이 달렸다.
무서운 소리를 피하듯 죽은 에기의 말을 돌이켜 본 놋시가 기억해 낸다. 해가 지나며 횟수가 늘고 열이 높아지던 그가 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잤다고 했다.
그렇게 잠만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혼자 깨는 게 힘들어 어머니가 걱정했었나?
놋시는 앞으로 글을 적어 놓겠단 결심을 했다. 마자기오의 약초상에서는 자주 오는 손님의 병세를 하락이 글로 적었다. 그를 따라 해야 한다.
언제 산에 올라가 내려왔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적어 놓는 걸 왜 미처 떠올리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정신없이 걷던 놋시는 순식간에 절벽을 내려가 동굴에 도착했다. 미리 잘라 가져다 놓은 무명천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를 환영하고 있다.
주변을 살피며 가져온 곡식 가루와 뿌리를 꺼내 놓고 반이 못 되게 든 나무 수액 병을 탁자 위에 놓은 그가 물가에 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서히 올라오는 미열과 달리 갑자기 달려든 현기증 때문이었다.
어제 먹은 음식이 적어서구나. 일어선 놋시가 물가로 걸어가 옷을 벗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온천수의 수증기가 두건에서 풀려난 검은 머리를 적시고 들뜬 가닥을 가라앉힌다.
손으로 물을 모아 얼굴을 씻은 그가 걸음을 내디뎌 몸을 담근다. 살이 익을 것처럼 뜨거운 물이 놋시의 속에 모이던 열을 억누르듯 시원한 감각을 줬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해가 져 있을까. 열이 나기 전에 꺼내 놓을 걸 준비해 놔야겠지.
잠시 후 기다란 무명천으로 온몸을 감싼 놋시가 나무 바가지를 꺼내 와 흘러가는 온천수를 떴다. 향이 시큼한 말린 열매 몇 개를 그 안에 넣고서 나뭇가지 침상 머리맡의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생으로 씹어 먹어도 좋은 뿌리 몇 개를 꺼내 놓자 다 된 기분이다.
보라색 버섯이 남아 있는 상자에 자꾸 눈이 갔지만 놋시에게는 그걸 대신해 가져온 마자기오의 환약이 있었다.
작은 주머니를 꺼내 뿌리가 놓인 자리에 얹은 그가 침상에 누워 본다. 며칠 전 올라와 나뭇가지를 엮은 침대에 짚을 넣은 얇은 바닥을 더해 놨다.
집에서 자는 것만큼 편안해진 그 위에서 천에 둘둘 감긴 몸을 웅크린 놋시가 잠깐 사이 잠들어 버린다. 습하고 따뜻한 동굴의 어둠이 흰 천을 덮고 누운 길고 마른 몸 위로 서서히 내리깔렸다.
말하자면 놋시는 낮잠을 자고 일어날 계획이었다. 열이 심해지는 건 아직도 한참 뒤의 일일 것 같았고 일찍부터 산을 올라와 뜨거운 물에 씻고 나자 병이 아닌 피로에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미열과 섞이며 깊어진 잠은 놋시의 정신을 혼란시켰고 그다음 눈떴을 때 그는 자신이 또 붉고 노란 꿈을 꾸는 거라고 착각했다.
석양의 빛이 새어 들어와 노랗게 번진 습하고 따뜻한 공기 속에서, 벗은 어깨와 가슴을 드러낸 테스가 놋시를 안고 있으니 그렇게 착각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놋시는 꿈을 깨려 발버둥 쳤다.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천에 휘감긴 그의 팔다리는 이미 열로 달궈져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고, 그의 입술을 열고 들어온 형의 혀는 너무나 시원해 숨을 터주는 유일한 것이니, 현실에서와 같이 꿈에서도 놓기가 어려웠다.
꿈에서라도 보게 되어 다행인 걸까. 그리워한 체취를 맡으며 놋시는 눈을 감았고 입안에 흘러드는 서늘한 물기를 받아 삼켰다.
젖어 부푼 그의 아랫입술과 연약한 턱을 타고 테스의 침이 흐른다. 입안에 들어온 혀를 빨며 이를 대는 작은 입이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을 밖으로 흘리지만 넣어 주는 이는 멈출 줄 모른다.
그러다 나뭇가지 침대를 짚은 채였던 테스의 커다란 손이 놋시의 등허리를 받쳐 일으켰다. 누운 어깨를 안고 있던 다른 손이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을 헤집고 뒤통수를 고쳐 잡는다.
테스는 계속해서 놋시의 입으로 타액을 흘려 넣었다. 그 차고 시원한 습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수록 놋시의 이성이 사라졌다. 아직 열에 휩쓸리지 않았는데도 달콤한 듯 씁쓸한 숲의 향처럼 서늘한 체취에 취하고 만다.
놋시의 손이 형의 단단한 어깨에 매달려 긴 팔을 뻗었다. 하얗고 미끈한 팔과 흉으로 자국 난 팔이 젊은 나무 같은 테스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첫째가는 이의 체온과 냄새를 따라가듯 열이 오른 놋시의 하체에서 질척하고 투명한 체액이 흘러나오자 나무 수액의 병이 쏟아지듯 갑작스러운 단 냄새가 진동했다.
“후으, 놋시…….”
“으음, 으응…….”
입술이 비벼지고 혀가 부딪힌다. 놋시는 자신을 부르는 테스의 한숨을 침과 함께 받아 삼켰다. 몽롱해진 머리는 체취와 맛에 취해 눈뜰 줄 몰라 그를 보는 형의 눈빛을 알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을까. 벌거벗은 놋시를 감쌌던 무명천이 테스의 넓은 어깨와 근육으로 날 선 허리가 만들어 낸 충돌과 마찰에 밀려나 버린다.
살과 살이 맞닿고 피부와 피부가 겹쳐졌다. 벗은 상체가 마주 닿아 심장 박동을 주고받듯 서로의 살을 맛보고, 흥분으로 곤두서 예민해진 놋시의 유두가 테스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다.
섬세한 돌기를 감각한 순간 테스의 입에서 놀란 신음이 터졌다. 흐읍, 숨을 멈추고 저릿한 전율에 사로잡힌 그의 입술 밑에서 놋시의 작은 입이 속삭였다.
“타게신…….”
어릴 적 부르던 이름이 아니다. 왕과 적이 부르는 첫째가는 이의 이름으로 형을 부르는 동생의 입술이 젖은 속을 열어 보이며 뜨거운 열기를 내쉰다.
알파의 체취와 타액에 취해 버린 오메가의 몸이 빠른 발정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눈을 뜬 걸까. 놋시는 형을 알아보고도 사람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테스의 품 안에서 첫째가는 이로 이름난 타게신의 마지막을 움켜쥔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테스는 그런 동생의 몸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손만이 아니라 입술과 눈도 멀어질 수 없었다. 알파의 오감이 도취되며 사로잡혔다. 벗은 윗몸에 맞닿아 겹쳐진 오메가의 살결에 전율하고 흥분한 탓이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그림자처럼 늘어뜨린 놋시의 잡티 하나 없는 하얀 어깨가, 살이 없어 뼈를 드러낸 가슴이 테스의 터질 것 같은 심장과 겹쳐져 버렸다.
놋시의 마른 가슴이 테스의 두터운 몸통에 붙어 오르락내리락 두근거릴 때마다 작게 솟은 유두가 충돌해 짓눌린다. 그럴 때마다 동생의 하얀 목에서 가느다란 웃음처럼 높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입술에 혀를 물리고 침을 쏟으면서도, 깨진 사탕처럼 달고 뾰족한 작은 혀끝을 핥고 빨면서도 테스는 그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놋시의 몸에서 만들어 내는 모든 소음과 신호를 듣고 있었다.
피가 뛰는 맥박과 작고 빠른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도, 감겨 있는 눈꺼풀의 떨림과 목구멍에서 솟는 짧은 신음도, 모두 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서.
한계까지 확장된 알파의 신경이 품 안의 오메가에게 집중하고 몰두해서는, 열렬한 구애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하나의 목적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테스는 놋시를 놓지 못했다. 잠든 몸에서 힘이 빠지며 가라앉는 걸 느끼고서도 그는 감히 그의 주인을 바닥에 눕히지 못한다. 힘든 몸을 위로하고 보살피며 기다리라는 본능의 명제가 그의 의식을 잡고서 새로운 명령을 내리고 있다.
잠든 입술에 계속해서 입을 맞추고 안타까운 숨을 묻히던 테스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든다. 그의 손이 결국에는 자세를 바꿔 놋시를 고쳐 안는다. 꽃잎 속의 꽃술처럼 부드러운 몸이 혹시라도 다칠 게 두려웠다.
나뭇가지 침대 위에 주저앉은 테스는 힘을 잃고 놓여 있던 놋시의 다리를 모아 들어 품에 앉혔다. 젊은 나무 밑동처럼 길고 탄탄한 그의 허벅지 위로 열에 풀린 몸이 앉혀지고 기대졌다.
움직여진 놋시의 긴 다리에서 아직 덜 젖어 가벼웠던 무명천이 흘러내리자 희고 탄력 있는 살이 그대로 보인다. 흐르기 시작한 체액으로 젖은 허벅지는 바닥에만 남아 있는 석양의 흔적으로도 촉촉한 표면을 드러냈다.
달고 화사한 체취가 바람을 맞은 꽃처럼 가벼워지고 위와 아래로 번졌다.
하지만 놋시의 벗은 몸을 끌어안고서도 테스의 손은 등허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잠들어서도 열에 뒤척일까 봐 감긴 눈매를 주시하고, 새된 숨이 빨라진 순간 계속해 입을 맞추고 침을 먹였다.
그렇게 등을 쓰다듬고 뺨을 맞닿고서 몇 번이나 더 혀를 섞자 간신히 놋시의 박동이 다시 느려졌다. 열에 잠겨 눈 감은 얼굴이 드디어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크고 느린 숨을 만들어 냈다.
놋시는 열에 지친 흐느낌 없이 안락한 잠에 빠진 것처럼 평온해져 있었다. 안전한 모습을 보며 진정된 테스의 머리가 가까스로 생각을 시작했다.
오늘은 많은 것이 평소와 달랐다. 지금의 그도 그랬고 방금 전의 그도 그랬다. 품에 안겨 있는 놋시의 몸도 지난번의 열병과 다른 모습이다.
들끓는 열보다 향이 먼저 쏟아졌다. 빠르게 찾아온 발정으로 젖어 든 하체에서 테스의 머리를 취하게 만드는 화사한 체취가 터져 나왔다.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보며 테스는 이번의 시작을 돌이켜 봤다.
테스는 봄의 태양이 막 떨어지던 때 동굴에 도착했다. 그는 잠들어 있는 놋시를 확인한 뒤 저 아래 풀이 있는 물가로 타고 온 말을 끌고 가 묶어 뒀다.
흰 털 망토를 입은 것 외에는 가벼운 옷차림인 청년의 걸음은 흙과 돌을 밟으면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늘, 동굴에 들어온 테스는 사냥을 나가는 이처럼 장식이 적은 모습이었다. 허리에 있는 긴 칼과 손에 들린 작은 주머니가 짐의 전부였다.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빈 벽 아래에 칼을 놓은 그는 온천수가 샘솟는 중앙으로 걸어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며칠 내 말을 달려와 땀이 난 몸을 놋시가 깨기 전에 씻을 생각이었다.
그동안 마지막의 주인이 어떻게 열병을 앓는지 공부한 것은 놋시만이 아니다. 테스 역시, 이전에는 무시하던 기사들의 술주정을 귀 기울여 듣고 의사의 책을 구해 가며 지식을 얻어 놨다.
이제 테스는 놋시의 몸에서 나는 체취가 어떻게 변하며 시작을 알리는지 알고 있었다. 미열만 오르며 체취가 진해지는 처음은 아직 괜찮다. 땀이 맺히지 않는 오메가의 살 아래서 체액이 흐르며 새로운 향이 더해질 때가 알파가 필요한 발정의 시점이라고 한다.
그때를 놓치면 고열이 오르고, 잘못된 병이 되면 속과 겉이 함께 위험해진다.
이번에 놋시는 날짜를 따져 일찍 온 것 같았다. 그가 잠들어 있는 동굴 안에는 아직 평소의 체취만이 감돌고 있었고 그래서 테스도 이상하게 여유로워졌던 것 같다.
소매가 긴 겉옷과 가벼운 윗도리를 벗은 청년은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곳을 피해 미지근하고 맑은 물줄기 옆에 무릎을 꿇었다. 바지를 벗지 않고서 얼굴과 목을 먼저 씻던 그의 눈에 놋시가 벗어 놓은 옷가지가 보였다.
자신의 편의보다 동생을 먼저 위하는 형의 손이 그리로 향했다. 흐트러진 옷의 흙먼지를 털고 팔에 얹은 테스가 놋시가 누운 나뭇가지 침상 곁으로 걸어갔다.
보라색 버섯이 상자에 들어 외롭게 있던 벽에는 어느새 낮은 탁자가 놓였다. 놋시가 만들어 놓은 단순한 나무 탁자 위에 모아 온 옷을 놓고서 테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가 둔감해 살피지 못한 게 너무 많다.
스스로를 탓하며 고개 돌린 눈에 이번에는 나뭇가지 침대 위에 새로 놓은 얇은 바닥이 들어왔다. 소박한 침대를 혼자 만들어 잠자리를 꾸며 놓은 놋시가 그 위에 웅크리고 덮은 무명천의 하찮음에 테스의 가슴이 지끈거렸다.
한걸음에 달려가 자신의 흰 털 망토를 가져온 테스는 깨끗한 안쪽이 닿게끔 무게감 있는 천을 들고서 놋시의 몸을 감싸 줬다. 어깨와 얼굴에 닿은 부드러운 털이 가려운지 뒤척인 놋시가 몸을 바로 누이며 따뜻한 망토를 밀어냈다.
혹시라도 잠을 깨운 걸까 봐 선 채로 굳어 있던 테스가 잠시 후 고르게 이어지는 잠든 호흡을 듣고서야 빈자리에 주저앉았다. 얇은 바닥은 표면이 서걱거리고 거칠다. 벗고 누운 놋시의 몸에 상처가 날 것만 같다.
잠에서 깨거든 망토를 밑에 깔아야겠군. 여기에 무엇을 더 가져올 수 있을지, 늦은 생각을 하며 잠자리를 살펴보던 테스의 시선이 잠들어 있는 놋시의 얼굴에서 멈췄다.
감긴 눈꺼풀 아래 숱 많은 속눈썹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직 열이 들끓지 않은 얼굴은 평소의 맑은 색으로 윤이 흐른다.
바깥에 남아 있는 햇볕이 길고 옅게 닿아 온 부연 공기 속에서 동생은 아직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테스는, 열에 들뜨지 않고 가만히 잠든 놋시에게는 자신이 입 맞출 수 없다는 현실을 기억해 낸다.
테스는 놋시의 형이다. 그는 동생의 열병을 낫게 하고자 입을 열고 침을 먹였고 벗은 몸에서 흐르는 오메가의 향에 취해 신음을 터트렸지만 동굴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손 하나 가볍게 댄 적 없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세월이 쌓이며 멀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두 살 차이 동생은 어느새 그의 어깨에 닿을 만큼 키가 컸지만 그의 눈에는 아직도 어렸다. 열여섯 소년의 팔다리로 자라난 유연한 육체는 어른이 되기에 시간이 더 필요했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테스는 그것을 탐할 수 없다.
그는 차노륵과 에기의 큰아들로 태어나 놋시와 피와 살을 나눈 친형제였다.
하지만 이 어둡고 따뜻한 동굴에서 그들은 입을 맞댔고 혀를 물었다.
수도의 높은 벽에서 갖게 된 크고 넓은 방과 전쟁터의 황폐한 밤을 가리는 커다란 천막 안에서, 혼자 잠을 깬 순간 테스가 떠올리는 감촉과 냄새는 모조리 놋시의 것이었다.
아름답고 값진 얼굴이 아무리 열렬히 타게신의 이름을 찾아와도 테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급급한 전투가 끝나면 수도의 왕과 귀족이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앞다퉈 열어 그를 불러 앉혔다.
타게신은 금처럼 비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적나라하게 다가오는 살가운 손길을 멀리했다. 첫째가는 이로 이름을 알리고 왕의 기사로 모인 알파 중 한 번에 하나씩 또는 열씩 서열이 올라가자 더 비싼 것들이 그에게 바쳐졌다.
하지만 레드자의 등줄기 밑, 사로나의 산에서 왔다고 알려진 타게신이 저열한 뇌물과 교묘한 향락을 경멸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승리의 노래보다 더 크게 퍼진 이야기였다.
올해서야 겨우 열여덟이지만 청년의 키는 이미 그보다 큰 이를 찾기 어려웠다. 키에 맞춰 커진 등골과 직선으로 뻗은 넓은 어깨 아래 말처럼 질긴 근육과 탄탄한 살이 채워졌다.
살이 없어 단단한 허리는 잘게 조각조각 들러붙은 힘으로 강인해졌고 옷을 입은 모습에 속지 말라는 말이 돌았다.
성인이 된 열일곱 이후 열여덟이 된 올해는 테스에게도 어른의 첫해였다. 봄이 만개한 3월에 동생을 도우러 절벽 아래 동굴로 찾아온 그는 성숙한 청년의 몸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또래의 이들처럼 수도의 고운 얼굴과 다채로운 색깔에 물들지 않았다.
체레오의 왕국을 지키려 국경의 가장자리에서 불씨를 밟으며 수많은 전투를 치른 타게신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주인으로 앉은 것은 산 밑에 숨어 사는 그의 동생 놋시다.
테스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었다. 욕망에 뒤따르는 부정과 자책의 순간이 끝없이 반복됐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마음속의 전쟁터보다 편안했다.
허리까지 자란 금발 머리카락을 내려 묶고 달려가는 타게신의 등 뒤로 깃발과 환호가 흩날렸다. 동생의 하얀 몸과 화사한 체취를 떠올리지 않으려 칼을 들고 앞장서는 그 밑으로 부하가 늘었고 이름이 드높여졌다.
때로는 잠을 잊으며 다친 부하를 돌봤고 때로는 식사를 아껴 굶는 이를 살폈다. 철로 된 몸이라는 첫째가는 이도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피를 먹어 무거워진 몸으로 자리에 누워도 타게신은 곧장 잠들지 못했다.
거친 바람으로 살벌한 밤에 잠깐의 어둠에 기대 눈을 감는 테스의 꿈에는 놋시의 검은 머리카락과 청회색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살기와 폭력을 맛봐 둔감해져 있던 몸이 감촉과 체취를 기억해 내고 되살아났다.
세게 누르면 으스러질 것처럼 부드러운 놋시의 입술이, 그의 혀를 물고 빨던 작은 입이, 닿아 오는 달콤한 혀끝이, 열에 취해 형의 목덜미에 매달리던 동생의 긴 손가락이 꿈과 기억을 오가며 밤을 점령했다.
마침내 다시 보게 된 그리운 얼굴이 편히 잠든 것에 감사하면서도 테스의 가슴이 빠개지듯 아픈 이유는 그것이다.
어깨를 흔들어 깨우면 그를 보고 이름을 부를 놋시를, 걱정하는 얼굴로 안부를 물어 올 동생을, 그는 껴안고 입 맞출 수 없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이 어둡고 따뜻한 동굴에서 그들은 입을 맞댔고 혀를 물었다. 여러 날과 밤을 그리 보내며 서로의 입천장과 목구멍에 숨을 묻히고 침을 섞었다.
죄인이 된 자신이 놋시의 병을 이용해 추악한 욕심을 채웠던가.
테스의 마음에 검고 깊은 구름이 피어났다. 무색의 소박한 바닥 위에 흩뜨려져 있는 놋시의 머리카락보다 더 검고 구불거리는 욕망이 그의 마음속 죄책감과 어울려 자라났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햇빛 아래서 외면당하고 짓밟히던 욕정의 뒷면에는 친밀한 인사와 부르는 이름을 구하는 애정이 가득하다.
열이 들끓는 오메가의 체취가 퍼지지 않은 동굴의 공기는 아직 산의 맑은 향을 품고서 온천수의 습기를 머금었다. 떨어진 해가 붉어지며 석양으로 변해 갈 듯 물들고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일어나는 하늘의 변화는 동굴에 닿지 못하고 밀려났다. 빛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테스의 몸이 어느새 기울어진다. 그의 흰 망토를 덮고서 바로 누운 놋시의 옆자리에서 비스듬히 엎드린 넓은 어깨 아래로 그림자가 늘어났다.
그 그림자가 가리며 더워진 것처럼 마른 어깨가 들썩이고 팔이 빠져나왔다. 흉터가 길게 붙은 왼팔과 티 없이 하얀 오른팔이 털이 보송한 망토를 밀어내며 가슴께에 놓였다.
테스의 길고 굵은 팔 하나는 어느새 바닥을 짚고 있다. 동생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이 지금 막 꺼내진 왼팔과 짙고 반질거리는 흉으로 일그러진 손등을 쳐다봤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걸까. 이제라도 약을 쓰면 나을 수 있을까.
사이의 허공을 배회하던 테스의 오른손이 놋시의 왼손을 조심스레 잡아 본다. 거스러미가 일어난 손가락 끝에 닿았던 입술이 조금씩 위로 향하며 흉한 피부에 입을 맞췄다.
따뜻한 호흡으로 닦아 내듯 빈틈없이 전부를 맛보며 길을 따라간 테스의 입술이 어느덧 팔꿈치를 지나 매끄러운 피부에 닿았다. 산길을 타며 힘을 얻어 탄력 있는 마른 팔 안쪽의 연한 속살에 자신도 모르게 혀를 대어 보게 된다.
뼈가 도드라진 어깨에도 입술을 부비고 숨을 묻히고. 그러던 테스의 입술이 조금씩 벌어지며 혀를 내 살을 핥고 있었다. 움푹 들어간 그림자 아래 선명히 드러난 쇄골 위를 더듬다 멈춰 선 그의 입술이 놋시의 가는 목덜미에서 긴 숨을 들이켰다.
단내가 나지 않아도 중독적인 따뜻한 살 냄새가 테스의 머리를 흐리게 하자 아직도 왼손을 잡고 있던 오른손에 무심코 힘을 주고 만다.
“으음…….”
테스는 놋시의 목덜미에 닿아 있던 입술로 소리가 만들어 낸 진동을 느꼈다. 작은 신음을 귀로도 듣고 고개를 뗀 그가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위를 향하고서 다물려 있던 놋시의 입술이 살짝 열려 있지만 그것뿐이다.
깊은 잠에 묶여 있는 동생의 얼굴이, 그 입술이, 테스의 내쉬는 숨에 닿고 있었다.
절제와 욕망을 뛰어넘는 순간의 충동으로 테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잠든 채로 작게 열린 놋시의 입술에 닿기만 했던 그의 입이 두 번 숨을 내쉬고 움직였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녹여 먹듯 물어 본 그가 저릿하게 목덜미를 달리는 전율에 몸을 굳혔다.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 밑에서 놋시의 손을 놓은 테스의 오른손이 왼손과 나란히 맞추듯 바닥을 짚었다.
다른 것은 무엇도 닿지 않고서. 하얀 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서. 테스는 그렇게 열에 취하지 않고 잠들기만 한 놋시의 입술을 훔쳤다.
닿아 버린 최초는 충동이다. 하지만 머무르고 탐하는 그다음은 그렇지 않다.
처음, 테스의 입술은 감히 그 이상을 하지 못하며 놋시의 입술을 맛봤다. 아랫입술을 물고서 숨을 내쉬다 벌어진 윗입술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다른 것은 하지 못했다.
몇 번의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놋시의 체취와 잠든 호흡을 삼키던 그의 얼굴이 느리게 떨어졌다.
테스의 굽혀진 두 팔 사이에서 잠들어 있는 놋시의 얼굴은 평온하다. 그림자에 가려서도 하얀 이마가 주변의 검게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대조되며 돋보인다.
조금 전 형의 욕심에 짓눌려 물기가 묻은 입술도 아무렇지 않게 잠든 숨을 내쉬고 있다.
이것은 죄인의 짓이다. 추악한 욕정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테스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은 이미 무게를 잃고 뛰기 시작했고 떨림이 따라붙은 등은 돌이 된 것처럼 자리를 버텼다.
그래서 그들의 입이 다시 닿았다. 잠든 동생의 입술에 겹쳐진 형의 입이 소리 없는 찬사를 바치듯 벌어지자 서늘한 혀가 작게 열린 사이로 빠져든다.
깊어지려는 본능에 어긋나게 움직인 입술이 틈 없이 맞춰지자 놋시의 입안에 들어간 테스의 혀도 자리를 내달라 애원하기 시작한다.
잠든 혀를 지그시 누르고 들춘 침입자가 아랫니를 핥고 촉촉한 바닥을 더듬었다. 움직임에 맞춰 더 크게 열린 놋시의 입에서 어느덧 호흡이 흐트러지지만 테스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는 마침내 꿈틀거린 작은 혀를 감미하고 꽃봉오리를 마시듯 그 끝을 빨았다.
“흐으, 후으으…….”
테스는 동생의 잠든 입술을 탐하던 자신의 목에서 어느덧 소리가 는 것도 놓치고 만다. 녹아내리며 뭉개지는 놋시의 입술 사이로 테스의 더운 숨이 쏟아지고 뒤섞였다. 작은 혀를 간지럽히고 이끌어 내 침을 흘려 넣는다.
놋시를 감쌌던 흰 털 망토는 이미 저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무명천에 감겨 그림자 속에 묻혀 있던 놋시의 하얀 어깨가 점점 가까워졌던 탄탄한 가슴에 닿을 듯 올라섰다.
그러더니 그 입에서 바람이 터졌다.
“흐으읍.”
“…….”
숨이 막혀 벌어진 놋시의 입술이 헉헉거리는데도 테스는 떠나질 못한다. 얇은 턱을 핥고 깨물던 테스가 가라앉은 얼굴에 뺨을 비비고 신음을 쏟았다.
어느새 땀이 난 등허리는 여전히 돌처럼 그 자리 그대로다. 바닥을 짚은 그의 두 팔 아래에서 동생의 하얀 얼굴이 찡그리자 짙은 속눈썹이 눈꺼풀에 짓눌렸다.
“놋시…….”
잠에서 깨듯 찌푸린 얼굴을 보면서도 테스의 입술은 멀어지지 못한다. 당장이라도 닿을 것처럼 바로 위를 배회하던 그의 목소리가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애절한 부름에는 말로 하지 못하는 고백이 가득하다.
하지만 놋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크게 벌려져 숨을 토하는 입술은 다물리지 않고서 얕은 호흡을 쏟아 냈다.
호소하듯 방황하던 테스의 시선이 떠질 듯 떠지지 않는 커다란 눈을 기다리다 결국에는 세게 감겨 버린다. 감긴 눈 아래로 저릿한 신음을 삼키며 또다시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닿고, 침이 섞이고…….
나뭇가지 침대를 짚은 채였던 테스의 커다란 손이 놋시의 등허리를 받쳐 일으켰다. 누운 어깨를 안고 있던 다른 손이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을 헤집고 뒤통수를 고쳐 잡는다.
놋시의 고개를 젖힌 테스는 계속해서 입 맞추며 침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테스의 그림자 속에서 움츠려 있던 놋시의 두 팔이 눈꺼풀보다 먼저 움직였다. 닿아 온 어깨를 안고 목덜미를 파고든 손이 엉클어진 금발 머리카락에 파묻히며 매달린다.
갑작스럽게 감겨든 두 손에 잡힌 테스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동생의 작은 입을 크게 벌리며 깊게 더 깊게 파고들던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어느덧 짙어진 화사한 체취가 사방을 채우며 가득 찬 때였다.
저 밑에 곧게 뻗은 놋시의 하체에서, 살결 사이로 새어 나온 체액이 무명천을 적시고 그 바깥까지 향과 맛을 퍼뜨리고 있다.
열보다 먼저 시작된 강렬한 향의 유혹에 테스는 온몸과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살과 뼈를 뚫을 만큼 세게 뛰는 심장을 겹치고, 동생이 부르는 타게신의 이름을 듣게 된다.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잠깐 사이 석양이 사라져 어둠이 더해졌다.
어둑해진 동굴의 나뭇가지 침대 위에서 잠든 몸을 안고서 어루만지던 테스는 놋시의 잠이 깊어진 걸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자리에 그를 눕혔다. 수증기로 습한 공기만으로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장소였고 테스의 등에서도 그사이 솟았던 땀이 식어 있었다.
그런데도 테스는 화로의 불을 키웠다. 놋시를 위해서다.
노랗고 따뜻한 불빛이 일렁이게 만든 뒤 물가로 가 얼굴을 닦던 그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손이 힘을 조절하지 못해 물소리가 크게 났다.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마시고 속을 막으며 이어진 생각은 전과 달랐던 오늘의 흐름을 일렬로 가다듬었다.
열에 들뜨지 않고 잠들었던 놋시의 몸, 그걸 탐하던 자신의 흥분과 욕심, 어느 틈에 흘러나온 오메가의 단내와 젖어 들던 하체까지.
놋시의 발정이 일어난 것만은 과거와 같았다. 열이 끓기 전에 테스의 입술이 닿은 것과, 그의 침이 먼저 섞였다는 부분이 전과 달랐다. 하지만 흥분한 육체를 아프게 하는 고열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열이 끓지 않을 수 있을까?
열병의 시작을 막을 수 있는 걸까? 자연스러운 흥분이 발정을 이끌어 온다면 고열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발정을 이루고 완성되는 걸로 열을 잃게 된다면……. 그래서 그들이 짝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거라면?
인과의 관계를 밝히러 달려가던 테스의 사고가 우뚝 멈춘다.
잠을 깨거든 말을 꺼내자고, 그러고서 무엇이든 먹이고 몸을 씻기자고, 앞일을 생각하던 그의 의식이 일부러 놓친 것처럼 감춰 놓은 진실을 들이민다.
오늘 놋시는 열병에 휩싸이지 않은 몸으로 테스와 입을 맞췄다. 그의 침을 받아먹고 그의 혀를 물고서 흥분한 신음을 뱉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메가의 발정이 일어나 열린 틈으로 체액을 쏟아 몸을 적시게 된 것이다.
그저 잠들었을 뿐인 동생에게 자신이 입을 맞춰 그 몸을 흥분시켰다.
그날 밤 놋시의 옆에 누운 테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른 숨을 내쉬는,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어깨를 끌어안고서 새까만 머리카락에 코를 묻어도 마음이 떨렸다. 보라색 독버섯 하나를 전부 씹어 삼킨 뒤였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심장이 열 개로 쪼개진 것처럼 온몸이 소란스러워 눈을 감기조차 어려웠다. 추하고 악한 욕정이 아니라 애절하고 진실한 마음이 습기를 먹은 이끼로 자리를 키우고서 위험한 소망을 만들어 냈다.
네가 나처럼 바라봐 준다면. 알파를 원하는 오메가로, 이치를 따라 필요한 입술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본능에 취하지 않은 몸으로 나를 알아봐 손 내밀어 준다면…….
아니. 이것은 죄인의 생각이다. 망상에 잠기던 테스가 입안의 살을 깨물며 스스로를 탓했다. 피와 살을 나눈 친형제 사이에서 금지된 죄인의 소망을, 감히 어린 동생에게 바라다니.
하지만 테스의 영혼은 이미 욕심의 형태를 봤다. 열여덟의 소년은 청년이 되어 있다.
잠든 동생을 안고서 지켜 주는 형의 머릿속에서 열에 취하지 않은 놋시의 온전한 정신이, 마음이, 그의 하얀 손이, 자신을 끌어안고 마주 숨을 섞는 찬란한 상상이 끝 모르게 이어졌다.
그 밤에 보지 않으려 도망치던 욕망의 형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테스 혼자가 아니었다. 그 봄의 열병은 놋시의 기억에도 전과 다르게 지나갔다.
첫날 밤 따뜻하고 습기 찬 어둠에 묻혀 잠을 자던 그는 여전히 중간중간 테스의 침을 먹고 혀를 핥았고, 불시에 찾아오는 둔중한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젖은 하체를 떨었지만, 머리를 데우는 열은 들끓어 녹일 만큼 오르지 않았다.
눈가를 뿌옇게 만들며 머무르던 미열은 다음 날 낮에도 햇빛을 볼 만큼 놋시의 의식을 남겨 주었다.
놋시는 동굴에서 첫 밤을 보내고 아침을 보는 게 처음이었다. 들뜬 숨을 내쉬다 눈을 떴을 때 이미 훤한 세상을 본 그는 벌써 며칠이 지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팔다리는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죽은 가지였고 밤새 젖어 든 하체에서는 어지러운 냄새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뭇가지 침대 위에서 고개를 뒤척인 그가 저편의 소음을 들었다. 소리를 쫓는 동물처럼 돌아간 고개가 물가에 선 키 큰 뒷모습을 본다.
어느새 테스가 왔구나. 꿈처럼 흐릿한 기억을 뒤로한 채 눈앞의 현실에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놋시의 입이 열리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기도 미안한 마음이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알고도 숨어들게 만들었다.
어쩌면 힘든 몸이 아직 소리를 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테스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일어난 놋시를 보고 다가와 곁에 앉은 형의 큰 손이 아침 공기에 조금이나마 식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
“괜찮아.”
놋시는 자신을 다독이는 형의 낮은 목소리에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그를 살리겠다고 어디서부터 밤길을 달려왔을까.
눈앞에 닿을 듯 다가오는 테스의 체취에는 피 냄새와 쇠 냄새가 숨겨져 있었다. 뜨거운 습기를 밀어내고 들어온 산의 아침 공기가 서늘하고 무거운 날것의 향을 놋시의 폐에 불어넣는다.
첫째가는 이의 강인한 힘과 알파의 동물 같은 본능이 그 안에 흐르며 오메가의 발정에 휘말린 마지막의 주인을 달래 줬다.
하아아. 놋시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감겼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솟아난 환영의 신음을 듣고도 모른다. 바닥으로 꺼지듯 가라앉는 마음이 질척한 불편과 통증을 잊고서 몸 안의 불씨를 키우는 체취의 맛과 색에 취해 갔다.
테스는 잠든 것처럼 조용해진 놋시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독버섯과 열에 휘둘리지 않아도 지쳐 있는 몸을 위해 음식과 물이 필요했다.
굴곡진 나뭇등걸처럼 굵고 긴 테스의 팔이 푸르스름하고 얇은 긴소매 옷 아래에서도 힘을 드러내며 움직였다. 뼈대가 솟은 손목에서 날카로운 손끝까지 직선이 그어지다 굽혀진다.
놋시가 가져다 놓은 나무 바가지 안의 물은 밤새 열매의 맛이 우러나 향긋해져 있었다. 병에 담긴 수액의 냄새를 맡아 본 테스는 그것을 나중으로 미루고 가져온 짐을 풀었다.
그가 가져온 작은 주머니 안에는 수도의 값비싼 과자와 제국에 가까운 국경 지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구슬 열매가 있다.
아침 공기를 밝히며 해가 높아졌을 때 다시 깬 놋시는 그의 어깨를 일으켜 준 테스의 품에 안겨 주는 물과 먹여 주는 과자를 먹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두 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그의 등허리가 테스의 가슴에 기대 안겼다. 납작한 배를 감싸고서 어루만지는 테스의 큰 손이 쓰린 속을 고쳐 주는 듯하다.
테스의 다른 손은 계속해서 놋시의 입을 찾아 왔다. 물기가 많고 새콤한 과일을 속살만 발라내 먹여 준 그 손가락이 즙이 흐른 입술을 닦아 주고 턱을 어루만진다.
입에 넣으면 녹아 버리는 과자를 혀에 얹어 준 손끝이 놋시의 이에 부딪히며 머무르다 빠져나갔다. 몇 개를 먹이고도 계속하려는 그에게 놋시는 이제 됐다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작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
“그래. 더 먹지 못하겠구나.”
귓가에 떨어지는 형의 목소리가 뜨거운 수증기처럼 스며들어 놋시의 몸속까지 닿아 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서 심장과 아랫배에 모여 있던 열기가 덩어리로 몸을 구른다. 둥둥둥 북을 치는 듯 속이 울렸다.
자야지. 자면 이런 것도 다 사라지겠지.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며 누우려던 놋시에게 테스는 열매를 우려낸 바가지의 물을 가져다 대줬다. 하지만 놋시는 그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향기로운 물을 마시려 애쓰다 기침을 터트린 그의 등이 굽혀지고, 테스의 손이 들썩이는 놋시의 앞가슴을 문질러 달래 줬다.
“억지로 마실 것 없다.”
“네…….”
놋시는 벌써 눈이 가물가물했다. 배가 부르자 밀려온 잠이 먹구름처럼 막막하다.
낯익은 미열에 잠겨 드는 머리로 눈 감았던 놋시가 어느새 누워 있는 스스로를 알아차린다. 부족한 물에 갈증이 타오른 목이 입을 열고서 색색거리자 서늘하고 시원한 습기가 입안으로 흘러내렸다.
놋시에게는 입술을 벌리고 들어온 테스의 혀를 느끼며 그 침을 받아 마신 것이 그 낮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첫 밤과 첫 아침만이 아니었다.
열병의 두 번째 밤에 놋시는 화로의 불빛도 꺼진 묵직한 어둠 속에서 눈떴다. 세상이 사라진 것처럼 꽉 막힌 시야는 엊그제 그를 놀라게 한 악몽과 흡사했다.
아니면 같은 것은 경악하는 마음뿐이고, 실제로는 전혀 달랐으며, 그는 그저 또다시 그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
그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커다란 손 두 개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림의 누군가처럼 그의 살을 열고 몸을 섞는 타게신을, 형의 밑에서 다리를 벌리고 몸을 떠는 자기 자신을 기억해 내며 놋시의 숨이 콱 막혔다.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수치스러운 상상과 무분별한 공포에 사로잡혀 굳었던 육체가 귓가에 들리는 호흡과 온몸에 닿아 있는 체온을 감지하며 서서히 풀려났다.
지금은 꿈이 아니다. 놋시는 지금 동굴에 있고 테스는 그를 보살피다 함께 잠들었을 뿐이다.
그 증거로 테스는 벌거벗지 않았다. 놋시의 등은 닿아 있는 피부와 돌 같은 가슴을 느끼고 있었지만 허벅지 아래로 닿아 있는 테스의 다리는 사로나의 관리가 입는 얇고 통이 좁은 바지에 감싸여 있었다.
벗고 있는 것은 놋시 혼자다. 놋시는 항상 그랬던 자신이 왜 그 사실에 놀라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천천히 놀란 마음이 가시자 뭐가 다른지 알게 된다. 그의 벗은 몸과 젖은 하체를 가리던 무명천이 사라져 있다. 그의 전신은 발끝까지 뭔가를 덮고 있었지만 장막 안에는 온기를 나누는 몸 하나가 늘어 있었다.
등 뒤에서 그를 안고서 모로 누워 있는 테스의 육체도, 품에 안겨 벗고 있는 자신도, 낯설지 않아야 할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긴장과 초조를 불러오는 예상 밖의 현실이 놋시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어쩌면 낯선 것은 그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깨닫는 온전한 의식이다. 잠이 깬 정신으로 당장의 순간을 깨우친 놋시가 진정한 차이를 알아차린다.
지금 그는 고열로 끓고 있지 않다. 독버섯 물도 마시지 않은 몸은 더운 밤에 잠을 깬 것처럼 축축하고 뜨거웠지만 머리를 녹이고 있어야 할 열기는 발끝을 적시는 물처럼 가물가물했다.
열병이 나아가는 건가. 내가 잠을 설치다 무명천을 치워 버렸나.
어두워 보이지 않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로 꾸무럭거리고 손을 내밀던 놋시의 몸짓에 가슴께에 얹어져 있던 손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벼운 소리를 내며 추락한 테스의 왼손이 잠결의 행동으로 다시 자리를 찾아온다. 바닥에 놓인 테스의 왼팔은 놋시의 몸에 깔려 있는데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손쉽게 굽혀졌다.
안는 힘을 더하며 새롭게 가슴께를 가로지른 테스의 왼손이 놋시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허리에 얹어져 놋시의 배를 끌어안은 오른손도 따라 하듯 힘을 더했다.
그러자 공기가 통할 만큼 생겨나 있던 틈이 사라지며 등과 가슴이 바짝 붙었다. 저절로 몸이 굽혀지는 걸 놔두고 있던 놋시는 다음 순간 알지 못한 최초를 하나 더 얻었다.
뼈가 도드라지게 굽혀진 놋시의 등허리 아래에, 불에 달궈진 칼집처럼 굵고 뜨거운 테스의 성기가 닿아 눌렸다.
망치질을 해놓은 쇠처럼 단단한 알파의 성기가 크기를 과시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맞대어지는 그 감각이, 이제껏 알고도 모른 척해 온 형의 발정을 동생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놋시도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다. 그는 개와 새가 제각기 짝을 지어 새끼를 낳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무심하게 알게 되는 것처럼 테스의 흥분을 인식해 왔다.
자신의 열병을 함께 보내는 형의 육체에 때때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정도는 혼미한 정신으로도 모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의 생각에 테스의 그런 반응은 자연스러운 사고였고 엄밀히 말해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놋시도 이제는 자신의 열병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형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 만한 일이지만 이제까지는 정확하게 의식조차 하지 않아 왔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 같다. 그런 걸 말하기 쉬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제였고 서로를 아꼈다. 하지만 친근한 사이는 되기 어려웠다. 테스는 열 살부터 사원에서 생활하는 날이 많았고 놋시는 집에서 에기의 뒤를 쫓아다녔다.
다른 형제들은 여름의 물가나 겨울의 방 안에서 서로의 벗은 몸을 본 적이 많을 테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껏 놋시가 테스의 벗은 몸을 본 것은 손에 꼽을 만한 경우고 대부분 이 동굴 안에서 얻게 된 모호한 장면이었다.
테스는 철의 육체를 가졌다는 첫째가는 이였고 놋시가 이제껏 본 사람 중 가장 키가 컸다.
차노륵은 테스가 추월하기 전까지 마을에서 제일 큰 남자였고 에기는 여자치고도 큰 키였다. 놋시 역시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닮은 테스는 어깨 넓이부터 평범한 이들과 달랐다.
테스의 성기는, 불순한 상상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 몸에 맞는 크기일 게 예상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놋시는 지금 테스의 육체를 상상하거나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겁고 따뜻한 어둠 속에서 테스의 두 팔에 끌어안긴 채 그 몸의 발정을 느꼈다.
얇고 미끈한 천 하나로 가려진 그것은 보이지 않는데도 모양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분명한 형태를 주장하며 놋시의 의식을 자극했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할 일인데도 적나라하게 몸에 닿아 있어 무시하기 불가능한 테스의 성기.
흥분으로 커진 형의 본능을 고스란히 느끼고 만 그 순간, 꿈과 기억을 혼동시켰던 어둡고 따뜻한 감각이, 그림을 흉내 내 만들어졌던 어설픈 망상이 새롭게 놋시의 머리를 차지했다.
번쩍하고 지나가는 번개처럼 확 떠오른 불결한 장면은 다급히 놋시의 의식 저편으로 던져졌지만 그의 몸은 그렇지 못했다.
얼어붙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는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이제껏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초조함이 자리를 틀고 구멍을 냈다.
하지만 놋시는 갑작스레 솟아난 기묘한 허기가, 광기 어린 필요가 무얼 뜻하는지 아직 몰랐다. 막혔던 숨을 터트리며 벌어진 입이 애원할 말을 몰라 구걸조차 하지 못한 채 긁히는 쇳소리를 냈다.
이게 뭐지. 순식간에 차오르는 괴상한 공허에 사로잡히며 놋시는 흠뻑 젖어 드는 하체와 쿵쿵거리는 심장을 느끼지만 모조리 남의 몸 같을 뿐이다.
그의 정신을 쥐어튼 공포는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무엇을 모르고 방법을 모르는 놋시에게는 따를 길이 없었다.
순식간에 열이 올라 놋시의 숨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지만 잡을 게 없고 부를 게 없다. 그때, 막힌 목구멍을 뚫으려 벌린 입으로 버둥거리던 고개가 뭔가에 부딪혔다.
놋시의 쇄골 아래 들썩이는 가슴 위에 놓여 있던 테스의 왼손이 몸부림치며 고개 숙인 턱 끝에 닿았다.
그래서 놋시는 그 손을 잡았다. 힘줄이 튀어나온 손등과 칼날처럼 곧은 손목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마디가 길고 각진 형의 손가락을 입에 넣자 저도 모르게 몸속 밑바닥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흐, 흐읍, 으으음…….”
움직이는 대로 따라온 테스의 둘째손가락이 놋시의 혀에 놓인다.
두 번째 마디까지 이를 댄 놋시가 숨을 가라앉히며 짧게 깎인 손톱과 그 아래 길쭉한 첫 마디를 핥아 봤다. 짠 기운은 알자마자 사라지고 남는 것은 그 굵기와 형태뿐이다.
다듬은 화살대처럼 강인한 손가락을 자연스레 굽혀진 대로 머금은 놋시의 입이 새처럼 쪽쪽 빠는 소릴 낸다.
그 소리가 점차 흩어져 불지 못하는 휘파람 같아지더니, 빼곡해진 속이 버거워져 코와 입으로 숨 쉬는 게 고작이다. 놋시의 의식에서 세상이 지워지며 입안의 포만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므로 놋시는 어느 틈에 입에 넣어진 테스의 손가락이 셋으로 늘어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하체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테스의 바지를 적실 만큼 흥건해져 있는 것도 모르고,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테스의 오른손이 어느덧 가슴을 더듬으며 작은 돌기를 매만지고 있는 줄도 모른다.
유두를 어루만지고 짓누르는 박자에 맞춰 온몸이 들썩거리며 입안의 신음이 높아지는 줄도 모른다.
놋시는 그의 목덜미에 퍼지던 테스의 잠든 숨결이 어느새 귀에 닿아 뜨거워져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그의 등허리에서 짓눌리는 테스의 성기가 바지의 천 한 겹을 찢을 기세로 비벼지는 것도 알지 못하고, 그의 입에 물려져 있던 테스의 손가락이 혀끝을 넘어 혀뿌리에 닿을 만큼 깊어졌다 얕아졌다 움직이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것은 테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 놋시의 벗은 몸을 끌어안고 만지게 됐는지, 어떻게 해서 작은 입에 손을 물렸는지, 어떻게 해서 누구와도 닿아 본 적 없던 은밀한 살을 매끄러운 등허리에 짓누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것은 귓가에 들리고 코에 맡아지고 손에 만져지는 동생의 신음과 체취와 살결뿐이다.
놋시의 상체를 붙든 테스의 오른팔에 근육이 세워지며 힘이 들어간다.
살이 없는 가슴을 헤매며 애무하는 손은 그렇지 않았다. 정교한 기술로 피가 적은 죽음을 만들 줄 아는 전사의 왼손과 오른손은 놋시의 입술과 작은 혀와 살이 없는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며 숭배하고 있지만 나머지 육체는 달랐다.
테스의 거대한 성기는 무절제하고 격렬한 움직임으로 저 위의 박자를 따라갔다. 얇은 천에 구속된 채 놋시의 매끈한 등허리에 부딪히고 비벼지는 그것은 때때로 어긋나는 박자를 만들며 몸부림쳤지만 주인은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 지금 테스는 자신의 성기 말고도 느낄 것이 너무 많았다.
이제 놋시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쾌감에 흔들리는 신음뿐이다.
“으응, 으, 흐으응…….”
테스의 입에서는 품 안의 귀에 숨을 뱉고 촉촉한 목덜미에 혀를 대느라 소리가 만들어질 새가 없다.
“후으, 흐, 흐읍…….”
섞이고 어우러지는 둘의 체취처럼 신음과 호흡이 맞춰지고 있었다. 본능으로 박자를 찾게 된 테스의 육체가 놋시의 입안을 헤집는 왼손을 따라가자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게 밀착된 하체의 굴곡이 맞춰지며 다리와 다리가 엉켜든다.
놋시의 마른 허벅지 사이로 테스의 무릎이 들어간다. 탄탄한 그의 허벅지가 동생의 연한 다리를 벌리며 파고든다. 놋시의 좁고 작은 무릎뼈가 테스의 길고 늘씬한 종아리에 깔려 그 자리에 붙들려 버렸다.
위도 아래도 꼼짝할 수 없게 붙잡히고서도 놋시는 그것을 몰랐다. 그는 열과 독보다 무서운 것에 휩쓸려 있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알파와 오메가의 조화로운 체취와, 마지막의 주인이 외치는 환희의 비명에 취해 버린 놋시의 육체는 주어지는 자극에 맞춰 흥분했고 그렇게 진정한 처음이 나타났다.
두 개의 심장이 함께 뛰며 통하지 못한 피가 몸부림치고 피부의 마찰이 만들어 낸 열기가 독을 품은 열병보다 높아질 때.
그 순간 놋시의 가슴과 배를 탐하고 감탄하며 뜨거워진 테스의 오른손이 밑을 향했다.
떨리는 아랫배를 누르며 펼쳐진 그의 손가락이 걸리는 것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를 가로지르다 알고 만다. 민감한 표피를 팽창시키며 발기된 놋시의 성기가 테스의 오른손에 잡혔다.
놋시의 생생한 흥분을, 욕정으로 부푼 소년의 성기를, 만지고 잡고 알게 된 그 순간 테스의 허리가 크게 들썩이고 그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독버섯 물의 독기가 부재한 반년과 고열로 막히지 않은 시작의 덕분일까. 처음으로 열과 독에 짓밟히지 않은 마지막의 주인이 마침내 최초로 완전한 발정을 겪게 되었다.
눈을 뜬 본능이 전신을 차지하고 놋시의 육체를 깨우쳐서는, 젖어 드는 살결과 발기된 성기로 그의 육체를 일으킨 것이다.
그렇게 붙잡힌 순간. 테스의 왼손을 붙들고 매달려 있던 놋시의 두 손이 한순간 손톱을 박았다. 전혀 모를 감각이 등허리를 질주하며 전신을 뒤흔들고서 나왔던 자리로 돌아가지만 한 번은 시작일 뿐이었다.
조여들고 옥죄며 매끈한 성기를 자극하던 테스의 오른손이 부들거리는 끝을 감싸고 길게 훑는다. 놋시의 고개가 젖혀지고 입에 물린 손가락을 놓친다.
벌어진 그대로 굳어 헉헉거린 입은 다시 다물리지 못했다. 이어진 반복이 쏟아 놓는 처음 맛보는 자극에 휘둘리며 놋시의 입에서 신음이 이어졌다.
“하으응, 으응, 흐우…….”
“놋시, 놋시…….”
세상이 지워진 어둠 속에서 높아진 호흡과 낮아진 목소리가 뒤엉켰다.
놋시의 침이 흘러 손목까지 젖어 있는 테스의 왼손이 거센 숨으로 덜컥거리는 몸통을 잡아챈다. 집요하게 만져져 뾰족해진 유두와 살이 없는 가슴을 더듬고서 도망치듯 흔들리는 허리를 잡은 그가 성기를 붙잡은 오른손에 다시 한번 힘을 줬다.
젖혀졌던 놋시의 고개가 크게 숙어졌다. 처음 겪는 쾌락에 놀라고 겁먹은 소년의 육체가 오메가의 발정을 뚫고 뛰쳐나갈 듯 몸을 굽힌다.
그러자 질척하게 흐른 오메가의 체액과 자신이 흘린 습기로 천을 적시고 있던 알파의 성기에 부드럽고 둥그런 살이 무게를 더했다.
테스 역시 처음 겪는 자극이었다. 끝에서부터 끝까지 온기와 압박이 전해진다. 놋시의 체온, 놋시의 몸이다.
그렇게. 헉, 하는 소리도 없이 놋시의 허리를 잡고 있던 테스의 몸이 한순간에 일어섰다. 열병이 난 건 저라는 듯 정신을 잃게 만드는 흥분에 붙들려 허리를 세워 앉고서도 그의 두 손은 놋시를 놓지 않았다.
어둠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처럼. 가슴에 안겨 주저앉힌 몸을 붙든 테스의 두 팔이 도망칠 곳 없게 놋시를 가두고 있다.
갑자기 일으켜져 휘청거린 놋시의 머리가 테스의 어깨에 기대어지고 더워진 등허리가 근육이 쪼개 놓은 배에 붙여진다. 그 벗은 몸의 모든 살이 촉촉하지만 끊임없이 젖어 드는 하체의 뒤편이 제일 질척하다.
그리고 그 둥근 살결이, 따뜻한 무게가, 미끈거리는 체액이 한 겹 옷을 사이에 두고 테스의 성기에 앉혀졌다.
그때 놋시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두 팔도 두 발도 그저 거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연이은 자극이 너무 커 흥분으로 터졌던 머리는 일으켜진 잠깐 사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지만 움직일 기운이 생기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한계를 넘을 것처럼 민감해져 있었다. 너무 민감해져 전해지는 자극을 모조리 느끼는 통에 의식을 버겁게 할 수준이다.
놋시의 머리는 여전히 자신의 허리를 붙들고 있는 길고 강한 팔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 그의 성기를 감싸 쥔 커다란 손을 알고 있었다.
그가 다음으로 알게 된 것은 불이 밝더라도 보이지 않을 일이었다.
느슨히 벌어진 채로 나무처럼 딱딱한 허벅지와 돌처럼 판판한 아랫배 사이의 뜨겁고 커다란 성기를 깔고 앉은 채, 이게 무슨 일이지 정신없던 놋시의 머리가 마침내 젖은 살이 감지하고 있는 형태와 열기와 그 힘을 느꼈다.
“테, 테스…….”
놋시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형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 것 또한 그의 이름뿐이었다.
“놋시…….”
그의 이름을 부르는 형의 낮은 목소리가 동생의 귓가를 적시며 밑바닥까지 스며든다. 보이지 않아도 반짝거리는 색이 떠오르는 테스의 길고 곧은 머리카락이 후두둑 놋시의 어깨와 가슴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집요한 자극이, 열렬한 애무가 재개됐다.
테스의 두 손이 품 안에 놓인 놋시의 온몸을 어루만지고 억죄며 소년의 몸에 무서운 쾌감을 퍼뜨렸다.
가슴 위에 넓게 펴진 채 버티던 테스의 왼손이 느리고 집요한 원을 그리며 유두와 살을 꼬집고 누르자 놋시는 그만 입술을 깨물어 버린다.
으읍, 으응, 그의 막힌 신음이 목구멍 속에서 울리는 동안에도 부풀어 솟은 놋시의 성기를 조이며 위아래로 훑는 테스의 오른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 멈추지 않는 자극에 어느덧 놋시의 허리가 끌려다닌다.
바닥에 널브러져 자연스레 굽혀진 무릎이 모이고 위아래로 어긋나며 높이가 달라지자 떨어져 있던 허벅지가 서로 붙는다. 달라붙은 놋시의 허벅지 위로 테스의 오른손등이 살을 누르다 멀어지는 반복을 이어 갔다.
아, 아, 으응, 아아. 흔들리는 기운에 맞춰 열렸다 닫히는 놋시의 입이 습한 소음을 만든다. 테스의 입에서도 거칠어진 숨이 늘어난다. 끝까지 발기된 그의 성기가 젖어 들러붙은 천을 이끌고서 놋시의 부드러운 살결에 충돌하고 마찰을 일으켰다.
형의 손이 당기는 대로 흔들리는 놋시의 하체가 깔려 있는 알파의 성기를 압박하며 만들어 낸 자극은 이제껏 테스가 상상조차 못 해본 감각으로 그를 중독시켰다.
지금 테스는 동생의 벗은 몸을 만지며 그 살에 성기를 비벼 대는 자신이 혐오스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몰두한 의식은 품에 안긴 놋시의 몸이 얼마나 매끄럽고 부드러운지, 길고 마른 팔다리가 얼마나 애처롭고 소중한지, 손아귀에 들어차는 놋시의 젖은 성기와 손가락에 만져지는 부푼 유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만 감각했다.
이 몸을 끌어안고 놓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만이 아는 흔적을 남기고 가질 수 있다면…….
“놋시, 놋시, 놋시…….”
기도처럼 되풀이되는 이름은 이미 숨소리나 마찬가지다.
테스의 어깨에 뒷머리를 기댄 채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흥분한 호흡을 이어 가던 놋시의 고개가 움찔거리고 돌려진다. 힘을 잃어 던져졌던 두 팔도 정신을 차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인 놋시의 두 손이, 뼈가 드러난 옆구리를 매만지던 테스의 왼손을 잡은 순간. 잡힌 손이 끌려가 다시금 놋시의 입에 물린 순간.
테스의 둘째손가락을 핥은 놋시의 혀가 마디를 다 지나 손바닥에 닿을 만큼 깊숙이 그를 머금은 순간.
테스는 생애 최초의 순수한 절정에 도달해 사정했다. 오메가와 알파의 결합된 체취와 육체의 어우러짐으로만 가능한 극치의 쾌감이었다.
그것은 이제껏 테스가 가져 본 모든 절정의 도합을 뛰어넘었다. 혼자인 밤에 피할 수 없는 꿈으로 얻어지는, 피 냄새에 취해 들뜬 육체가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그리워하는 기억으로 얻는 그런 처량한 절정은 지금 그가 느끼는 감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과거의 경험은 그저 사정의 행위로 격하됐다. 어쩔 수 없이 분출하는 단순한 과정에 다른 이의 체온과 체취가 더해진 것만으로 이런 차이가 가능할까.
그럴 수 없다. 지금이 특별한 건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놋시라서다.
동생의 몸을 끌어안은 채 절정의 여운에 잠겨 있던 테스의 입에서 허탈함과 감탄이 섞인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은 벗어나지 못할 지옥에 발을 들였고 이제는 허리까지 늪에 빠졌다.
“흐으, 하아…….”
그리고 지옥의 수렁에서 테스를 건져 내는 것 또한 놋시다.
테스의 품 안에 붙들려 흥분에 떠올랐던 그의 신음이 어느샌가 변해 갔다. 넘쳐 나던 숨이 줄어든 몸에서 간헐적인 떨림이 늘어났고 이제는 고통이 전해지는 흐느낌이 착각일 수 없게 커져 있었다.
놋시는 어째서 이렇게 된 일인지 몰랐다. 커다랗고 각진 테스의 손이 자신의 온몸을 만지며 주던 쾌감은 어느 시점부터 멀어졌다.
느끼고 취하면서도 떨어져 나온 의식은 무섭게 발기해 있는 자신의 성기에 집중됐다. 테스의 긴 손가락이 끝을 누르고 넓은 손바닥이 몸통을 감싸 조이자 반복적인 자극이 더해지고 높아지며 그가 모르는 끝을 향하다 갑자기 앞이 막혔다.
살을 뜯기는 고통으로 끔찍한 공허가 들어찼다.
“어디가 아픈지 말해라.”
“흐으, 흐윽…….”
“놋시!”
그는 어느새 다시 누워 있었다. 놋시는 자신의 등 아래에 얄팍한 바닥이 있고 그의 가슴 위에는 몸을 굽힌 채 내려다보는 테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형의 초조한 외침이 그를 부르는 이름인 걸 알지만 그렇게 오감을 갖고서도 느껴지는 건 고통뿐이었다.
기묘한 허기가 폭발하는 공허로 터져 끔찍하고 말 못 할 시련으로 놋시의 의식을 점령했다.
텅 비어 있는데도 못 견디게 갑갑한 속을 제 손으로 찢고 싶어진다.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몸부림치는 놋시의 몸에서 여전히 뜨겁고 단단한 성기가 흔들렸다.
그 아래 열린 틈새가 흥건하게 체액을 흘리며 달아오른 속을 주장하지만 놋시는 그런 걸 알지 못했다.
벌어진 놋시의 입안이 말라붙어 목에서 소리가 잠긴다. 가까스로 숨이 터지는 입에 서늘한 혀가 다가와 달래 주지만 그 침을 아무리 받아먹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아, 세상은 까마득하고 그의 육체는 가시덩굴처럼 조여들었다.
끝끝내 밀어내는 손에 얼굴을 뗀 테스가 놋시의 성기를 끈질기게 달래던 왼손으로 덜덜 떨리는 주변의 연한 피부를 어루만졌다.
매끈하던 오메가의 성기는 가느다란 핏줄이 돋을 만큼 팽창하고도 절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마, 막혀 있, 흐읍…….”
“뭐가 막혔지?”
“모르겠…….”
울컥 터진 울음에 놋시의 작은 목소리가 흩어졌다. 흐느낌이 커지자 테스의 심장도 저 밑으로 추락했다.
그는 이제껏 어둠 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 원망스럽지 않았다. 보지 않고도 생김을 알았고 만지고 맡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프다는 말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게 되니 보면 알 수 있을 것처럼 답답함이 커졌다.
바닥을 짚은 테스의 오른팔이 굽혀지며 낮게 눕는다. 길게 늘어진 테스의 팔뚝이 움직이자 그 끝의 오른손이 놋시의 이마를 온통 가린 머리카락을 치워 줬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입술은 계속 동생의 아픈 호흡을 달래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힘들어하는 몸에 무게를 더하지 않으며 엎드려 있는 테스의 아래에서 놋시의 전신이 덜덜 끓어 간다. 후끈거리는 열이 닿지 않은 테스의 피부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라.”
“흐윽, 흐으으…….”
대답은 나올 기미가 없다. 테스는 침을 먹여도 먹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놋시의 성기가 여전히 아프게 곤두서 있는 걸 알았다. 울기 시작한 동생의 온몸을 어루만지며 애타던 그가 문득 심장을 들썩이는 뭔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놋시는 다시 자신의 입에 찾아온 테스의 손이 전과 다른 맛이라는 걸 천천히 깨닫는다. 아주 천천히, 그걸 물고 빨아 삼키며 초조함이 조금씩 가라앉은 뒤에.
지금 테스의 길고 굵은 손가락에 묻어 덩어리로 흐르는 액체는 침처럼 묽지 않았다. 혀 위에서 알갱이 지듯 걸리다 넘어가는 그것에선 흙과 쇠에 가려진 날것의 향이 풍겼다.
놋시의 입안을 가득 채워 주던 손가락은 각진 관절과 길쭉한 마디로 질척한 뭔가를 계속 먹여 주었고 그 맛을 기억할 때쯤 다른 변화들이 하나씩 뒤따랐다.
“흐음, 흐으응…….”
놋시의 정신을 뺏어 가던 무한의 다그침이 이제는 다른 곳에 모여 있다. 어둠 속에서 테스의 손가락에 입이 막힌 채 놋시는 자신의 성기를 훑고 문지르는 다른 손을 느꼈다.
아, 이제는 막힘없이 등줄기로 전율이 흐른다. 자잘하게 쌓이는 자극은 아까의 격렬함과 전혀 다르다.
너무나 부드럽고 느리게, 놋시의 몸을 흔들어 주는 안락한 파도처럼 그렇게 사정이 일어났다.
오메가의 성기가 마침내 배출하며 지친 몸을 쓰러뜨린 순간 그 아래 느슨해진 입구가 새롭게 체액을 쏟아 냈다. 그 위로 흘러내린 묽은 정액과 함께 섞이며 변화를 더했다.
짙게 피어나는 성숙한 향에 테스의 신음이 터지지만 놋시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최초로 겪게 된 완전한 발정의 첫 고비를 힘들게 넘긴 그는 절정의 시작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테스는, 자신의 정액을 받아 마시고서야 마침내 끝을 넘긴 놋시의 곁에서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병의 두 번째 낮에 놋시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훤해져 있었다. 눈뜬 놋시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밝게 드러난 동굴의 천장이다. 서서히 잠에서 빠져나오던 그의 의식은 곧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나뭇가지 침대 위에 벗고 누운 그의 몸을 테스가 닦아 주고 있었다. 놋시가 잘라 놨던 무명천 조각을 적셔 그의 팔과 배를 닦아 주는 테스의 상체는 마찬가지로 벗은 채였지만 하체는 그렇지 않았다.
어두운 천으로 된 그의 바지는 새것인지 깨끗했다. 놋시는 만져 보기도 겁나는 고급스러운 천이, 앉아 있는 허벅지로 팽팽하게 당겨져 반지르르 윤을 냈다.
벌써 몇 번이나 보살핌을 받아 놓고도 놋시는 지금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마치, 병이 없는 것처럼 정신이 명료한 탓이다.
일어났단 말을 못 하고 자는 듯 누워 있던 그는 테스의 신중한 손이 떠나고 넓은 어깨가 뒤돌아볼 때 서둘러 허리께에 밀려나 있는 무명천을 끌어 몸을 가렸다.
재빨리 일어서 앉지 못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어느새 테스의 깊숙한 눈매가 놋시를 바라보고 있다.
“일어났니?”
“…….”
“아침을 먹자.”
“그전에…….”
꿀꺽. 놋시의 목에 없는 침이 모여 삼켜졌다. 어째선지 목구멍이 뻐근했다.
“어젯밤의, 그 일은 대체…….”
무엇이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자신이 미쳐 무서운 꿈을 꾼 것이냐고. 많은 말이 한 번에 떠올라 놋시의 말끝이 흐려졌다. 어쩌면 말하는 게 두려워진 것도 같다.
말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가고 없는 일로 치고 싶었다. 혼자 꾼 꿈처럼 무의미하고 두려운 망상을 현실로 인정하게 될 것이 무서웠다.
그런 그의 앞에서 테스의 단호한 입술이 열렸다.
“독을 먹지 않고 나서 두 번째지?”
“…….”
날짜를 세는 것처럼 눈을 깜박인 놋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버섯 독이 빠지고, 몸이 회복된 거다. 너는 아직 자라는 나이니 앞으로도 계속 달라지는 게 많을 테지만, 이제부터는 독을 먹지 않고서 넘길 수 있다. 내가 오기도 쉬워졌으니 열에 시달릴 일도 적을 테고.”
“어떻게…….”
“지난달부터 시도르에서 지내게 됐다. 거기가 어딘지 아니?”
놋시의 고개가 한 번 더 끄덕여진다. 시도르는 저 위, 레드자의 산맥 줄기 끄트머리에 있는 이름이다. 수도에서는 가는 데 열흘이 걸리지만 산길을 타면 사로나는 3일 거리다.
시도르는 사막과 평야가 만나는 입구로 취급되는 경계선의 구덩이였다. 지도로는 왕국에 포함되면서도 바깥의 것인 양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국경 지대다. 사매로노의 제국과는 멀지만 그만큼 사막과 가까워 도둑과 강도가 들끓는다고 했다.
“한동안은 거기서 경비를 맡고 있을 텐데, 내가…….”
“…….”
“너는 글을 빨리 읽으니, 내가 준 베포로의 책을 다 읽었겠지?”
“네.”
“그러면 체레오의 법도 읽었겠구나.”
“…….”
“왕국의 군대에서는 오메가의 필요를 위해 짝지은 알파를 보내 줘야 하는 법이 있다.”
놋시는 글자로만 읽어 본 말을 형의 입에서 듣는 게 낯설었다. 그 이름이 마지막의 주인과 첫째가는 이를 뜻하는 걸 알지만 사로나에서는 말해 볼 일 없는 말이었다.
저렇게 발음하는 거구나. 새로운 말과 이야기에 집중하며 가만히 기다리는 그의 눈앞에서 테스의 얼굴이 조금 변한다.
이제껏 마주치던 눈을 밖으로 돌리며 흐트러지지 않은 길고 곧은 금발 머리카락을 두어 번 넘긴 테스는 한참 뒤에 어딘가 달라진 눈빛으로 다시 시선을 맞춰 왔다.
“그래서 내가, 레드자의 뱀 부족에 짝을 약속한 이가 있다고 얘기했다. 앞으로는 시간에 늦지 않게 일찍 올 수 있을 거다.”
“일찍 오신다고요.”
“그래. 열이 심하지 않을 때부터 내가 곁에 있으면 너도 그만큼 아플 일이 없다.”
“하지만…….”
놋시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테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한 순간 그의 머리에 떠오른 건 하나뿐이었다.
짝을 만나러 간다고 거짓을 말하며 온다는 것은, 이것이 그래야만 가능한 만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짝이 될 수 없는 형제지간이다.
놋시는 간밤의 기억을 애써 되돌아봤다. 어둡고 새까만 시간은 잊어버린 꿈처럼 흐릿하지만 그의 혀가 맛보고 그의 몸이 느낀 감각은 그렇지 않다.
어젯밤 테스는 이제껏 누구도 만져 보지 못한 놋시의 몸을 만졌다. 아니, 누구도 만져 보지 않던 방법으로 그의 몸에 최초를 알려 줬다.
그전에, 무엇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찬찬히 돌아본다면……. 그의 몸이 어떻게 아파하고, 어떻게 변했는지 직시해 본다면…….
“간밤의 일은, 그렇다면 제가…….”
“…….”
테스의 무응답은 놋시의 눈앞을 까맣게 만드는 확답이었다. 글자가 어려운 책을 읽고 저열한 이들의 꾸며 낸 그림을 보며 혹시나 싶었던 게 정말이었다.
마지막의 주인이 앓는 열병이 후손을 얻기 위한 약속이라는 베포로의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이제는 똑똑히 알 것 같다.
그는 짐승이었다. 새끼를 치려고 발정하는 동물처럼 형제라도 상관없이 침을 흘리는 그런 것, 자신은 바로 그런 짐승이었던 거다.
무명천을 끌어안고 일어나 앉았던 놋시의 고개가 꺾인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무색의 천을 적셨다. 바닥이 없는 물속의 소용돌이처럼 소리 없이 침몰하던 그가 어느 틈에 다가와 위로하는 테스의 손을 느꼈다.
어깨에 얹어진 익숙한 손과 언제나처럼 괜찮다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무심코 기대지던 몸이 다급히 물러선다.
한쪽 다리를 바닥에 내린 채, 침대 곁에 앉았던 테스의 몸도 그를 따르듯 한 손바닥 멀어졌다. 앉아서도 올려 봐야 하는 곧은 얼굴을, 그를 걱정하는 초록색 눈동자를 보며 놋시가 말하고 만다.
“하지만 저희는 형제고……. 간밤의 일은, 그런 것은…….”
그런 것은, 짝이 하는 일이 아니던가? 누구도 만지지 않은 몸을 내주고 맡기며 어울리는 그런 것은, 형제가 할 일이 아니지 않나?
어쩌면 이제까지 한 모든 것이 그렇게 그릇된 짓이지 않을까?
덫에 잡힌 동물처럼 커다래진 동생의 눈이 형을 보고 묻는다.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는 놋시의 입이 아니라 떨리는 눈과 몸이 두려움을 나타냈다.
테스는 그런 놋시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동생의 마른 어깨를 잡고 긴 손가락을 모아 쥐며 대답했다.
“우리는 살을 열고 몸을 섞지 않았다. 그렇다면 된 것이다.”
“…….”
“괜찮다.”
그러나 우리는 입을 열고 혀를 섞지 않았나요. 놋시는 차마 묻지 못했다. 놋시의 깊은 마음은 이것이 죄의 길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마음이었을 뿐이고, 당장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세상은 그렇지 않다.
새어 들어온 햇빛을 등진 테스의 금발 머리카락이 환한 빛을 반사한다. 깊은 눈매 속 초록색 눈동자가 검은 바닥을 보이며 냇가의 물처럼 반짝거렸다. 화려한 옷과 보석이 박힌 칼 없이도 첫째가는 이라고 알아볼 만한 얼굴이다.
차노륵의 맏아들은 어디서나 찬양받았다. 그의 얼굴은 공정하고 침착한 행동으로 사제의 칭찬을 듣고 전쟁에 나가서는 적의 찬사를 받는다는 남자의 얼굴로 모자람이 없었다.
동생은 죄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형의 말을 믿고 싶었고 사실 그 말은 옳은 말이었다.
그들은 살을 열고 몸을 섞지 않았고, 형은 그저, 잠든 동생의 얼굴을 닦아 줄 때처럼 보살펴 준 것뿐이다.
그래야만 한다.
더 이상 캐묻지 않으면서도 놋시는 그날 내내 기운이 없었다. 아직 열병이 끝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미열이 남아 있어 혹시라도 다시 아플지 모르니 하루를 더 지내자는 테스의 말에 알겠다 답한 그는 무명천을 끌어안고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테스는 놋시에게 자신이 가져온 견과류와 과일을 먹였고 남아 있는 과자를 마저 내놨다. 먹겠다 입에 넣고도 쉽게 넘기지 못하던 놋시는 테스가 바깥에서 가져다준 차가운 시냇물을 애써 마셨다.
마치, 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무엇을 마시게 될지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날 저녁 놋시는 다시 열이 올랐고 그때는 어쩔 수 없게 된다.
석양의 기색이 지워지고 나서도 동굴의 벽은 어둡지 않았다. 테스가 화로의 불빛을 키워 놓은 덕이다.
나뭇가지 침대 위 얇은 바닥과 무명천의 색이 구분될 만큼 불빛이 큰 그 저녁에 놋시는 간밤의 흐릿한 기억을 분명한 현실로 다시 겪고 말았다.
처음 열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잠시 후, 옷자락처럼 가벼운 무명천조차 답답해진다.
뒤척거리며 잠을 청하던 놋시는 저도 모르게 하나로 모인 열기가 또다시 일으킨 그의 성기를 깨달았다.
마을의 아이들과 달리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놋시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성기가 몸통을 세우고서 무명천을 들썩이며 위를 향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싫은 마음에 눈물이 차오른 놋시는 누운 몸을 옆으로 돌려 그림자를 향했다.
테스는 그때 말을 살피러 나간 참이었다.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조차 수치스러운 마음이 너무 컸다. 동물처럼 때를 맞아 발정하는 스스로가 끔찍하고 미웠다.
어쩌면 놋시는, 잠자리에 배어든 테스의 체취를 맡으며 그의 몸이 흥분한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과 다를 바 없이 피를 나눈 친형에게도 발정하는 스스로를 처음으로 명확히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놋시는 보지 않으면 사라질 것처럼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을지도 모른다. 무명천을 모아 덮어 불을 끄듯이 자신의 성기를 가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것을 모두 모르고 싶었다.
그러나 높아지는 열기와 답답한 감각을 놋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배 속의 이상한 허기가 좁은 통로에 체액을 흘리기 시작하자 이유 모를 초조함과 다급함이 커져 갔다.
아프고 괴로운 원인의 해결만을 좇기 시작한 놋시의 손이 덜덜 떨리며 무명천을 들추고 파고들었다. 매끄러운 오메가의 성기 표면에 가느다란 핏줄로 구불거리는 줄이 돋아 있다. 뜨겁고 부들거리는 살덩이가 단단한 심을 품은 듯 딱딱해져 있다.
머리가 선 그것이 자신의 몸인데도 낯설어 징그럽지만 지금 놋시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아니다. 스스로의 발기한 성기를 처음으로 만져 본 놋시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그 뿌리를 감싸 쥐었다.
“흐으, 흐으응, 흐읍…….”
만지고 나자 손을 뗄 수 없어진다. 두 손이 나란히 붙잡으니 끝까지 가려진 살덩이를 조이고 문지르던 놋시의 입에서 신음과 아픈 숨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조급해지는 감각이 커지며 몸속의 장기가 저들끼리 들러붙는다.
꽁꽁 묶인 줄을 풀 때처럼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손등이 당기지만 쾌감도 무엇도 아닌 자극은 약간의 해방도 주지 못하며 억죄는 기운만을 더해 갔다.
놋시의 몸속에 생겨나던 공허가 날카로운 통증으로 번쩍거렸다.
“아! 흐윽…….”
무력함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의지를 잃고 시련에 붙들린 놋시의 입에서 비명과 울음이 흘러나왔다. 소리를 죽이려 입술을 깨문 뺨 위로 방울진 눈물이 떨어진다.
그리고 손이 나타났다. 놋시의 길고 단정한 손 위에 겹쳐진 커다란 테스의 손이 붙잡힌 성기까지 함께 가리며 감싸 쥔다.
갑자기 더해진 힘이 아니라 그 체취가, 체온이, 곁에 다가온 존재감이 고통에 묶여 있던 놋시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놋시가 보게 된 것은 자신의 벌려진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는 형의 손이다. 몸부림치며 무명천을 잃은 놋시의 몸은 어느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길쭉하지만 각지고 마디가 굵은 형의 손은 놋시의 손 하나와 부들거리는 성기까지 한데 모아 쥘 만큼 컸다.
엉킨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웅크린 놋시가 남은 손 하나로 테스의 팔을 밀어 보지만 될 리가 없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하얀 얼굴이 무릎을 꿇고 다가온 상대에게 원망이 없는 한탄을 했다.
“이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입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나 하는, 그런…….”
발정이란 말을 차마 입으로 하지 못하는 놋시의 목소리가 흐느낌에 먹힌다. 하지만 그의 형은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살이 적어 뼈가 만져지는 동생의 몸과 달리 돌로 만든 벽처럼 근육이 새겨진 테스의 벗은 상체가 숙어지며 놋시의 긴 종아리와 젖은 허벅지를 그림자로 덮어 줬다.
“아플 때 돕는 건 형제가 해야 할 일이지.”
“하지만 이건 더러운 열병의…….”
“주인의 열병은 자연의 이치다. 네 탓이 아니고, 더럽지도 않아.”
“그, 그게 동물입니다. 사람은 이럴 수 없습니다.”
“…….”
사람은 이럴 수 없다고. 형에게 발정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놋시의 속이 뒤틀린다. 놋시는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숨을 억지로 막았다.
형의 손 하나가 더해지자마자 줄 하나가 풀어진 것처럼 피를 돌리던 그의 성기가 다시 꽉 막히며 속을 떨었다. 이대로 잘라 내 버리고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흉한 꼴이었다.
하지만 형은 더럽고 추한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놋시의 몸에서 손을 뗀 테스가 자신의 꿇은 무릎에 양손을 놓고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놋시.”
“…….”
“네가 짐승인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일 뿐이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테스의 두 손은 자신의 허리에 묶여 있던 바지 끈을 풀었다. 앞이 열리며 내려진 천이 근육으로 조여들어 있는 아랫배를 보이며 멈췄다.
테스의 한 손이 멈춘 천을 끌어 내리고 다른 손이 그 안에 갇혀 있던 어두운 체모를 헤집고서, 올라서 있던 성기를 완전하게 꺼내 놓았다.
테스의 성기. 검붉게 피가 몰려 머리를 세우고 있는 그것은 놋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첫째가는 이의 은밀한 살이었고 동시에 형의 것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테스의 한 손이 그 뿌리를 잡아도 몸통과 머리가 한참 남았다. 굽혀진 손가락에 가린 밑동 아래로 올라붙은 덩어리가 얼핏 보였다.
노골적으로 발기된 성기의 굵기나 얽힌 줄기와 불룩하게 모이는 끝머리를 보며 놋시의 눈이 커졌다. 충격으로 굳은 그의 앞에서 테스의 말이 이어졌다.
“발정한 것은 너 혼자가 아니니까…….”
속삭이는 테스의 목소리는 땅에 묻힌 것처럼 잠겨 있었다. 원래도 낮은 목소리에 모래가 섞여 끝이 갈라진 그 속삭임으로, 놋시의 정신을 찾아 준 테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으, 흐읏…….”
놋시의 눈앞에서 테스의 기다랗고 굵은 손가락이 더 기다랗고 더 굵은 자신의 성기를 훑고 조였다.
뿌리부터 끝까지 내리질렀다 다시 훑어 가는 손짓에 맞춰 테스의 입에서 억눌린 숨이 새어 나오고 점차 두터워진다.
점차 두터워지는 것은 그의 성기도 마찬가지다. 놋시의 손목만큼 굵어진 테스의 성기 끝에서 묽은 습기가 늘어나자 짐승의 생살 같은 날것의 냄새가 강해졌다.
그리고 놋시는 그의 상상과 악몽을 뛰어넘는 그 형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몸속에 자리를 튼 공허와 둔중해진 통증조차 잊은 그의 의식이 테스의 손안에서 몸을 떠는 알파의 성기에 사로잡혔다.
그 크기, 그 뜨거운 열기, 강렬한 냄새와 본능의 힘으로 꿈틀거리는 테스의 성기를 바라보며 놋시의 목이 바짝 말라 갔다.
테스는 계속해서 놋시의 눈앞에서 움직였다. 그의 큰 손바닥과 성기가 마찰하며 진득하게 처덕이는 소음이 늘어난다.
바로 앞에서 강해지고 분출되는 욕정의 체취를 고스란히 들이마신 놋시가 거기에 취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숨이 어느새 형의 박자에 맞춰지는 것도, 자신의 곤두선 성기 아래 벌어진 그림자에서 새어 나오는 체액이 흥건해져 살을 적시는 것도, 창백하던 뺨에 생겨난 붉은 기운이 쿵쾅거리는 심장이 들추는 가슴까지 내려가 물들인 것도 알지 못한다.
놋시가 보고 아는 것은 테스의 손에 붙들려 달궈지는 거대한 알파의 성기뿐이다.
그러니 그는 테스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형의 손에서 키워지고 달궈지는 성기에 시선을 붙들린 놋시는 테스의 눈이 어느새 벌어진 동생의 입을 바라보는 것도, 붉게 물든 가슴이 커진 숨으로 부풀어 오를 때마다 뾰족하게 솟는 작은 유두를 바라보는 것도, 솜털 하나 없이 매끈한 오메가의 성기 아래에서 체액을 흘리는 살결 사이 어둠을 바라보는 것도 알지 못한다.
테스의 욕망이 어디를 보고 커져 가는지 무엇을 보고 빨라지는지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절정을 맞는지도 놋시는 알지 못한다. 그를 위해 펼쳐진 테스의 욕망에 취한 탓이다.
몸 안의 두려움을 잊게 만든 몸 밖의 세상에 홀린 놋시의 의식이 몽롱해진다. 그러다 훅 퍼진 강렬한 체취와 그보다 먼저 그의 피부를 적신 서늘함에 깜짝 놀라 돌아왔다.
입술을 씹으며 절정의 환희를 삼킨 테스의 손안에서, 알파의 성기가 거세게 토해 낸 희뿌연 정액이 놋시의 맨살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놋시는 자신의 아랫배와 달아오른 성기까지 적실 만큼 넘쳐 난 테스의 욕망이 민감해진 피부 위로 흐르는 걸 느꼈다. 그의 몸은 그때 이미 부옇고 뜨거운 알파의 정액이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데워져 있었다. 사고가 불가능해진 머리로는 살을 적신 미끄러운 습기를 느끼는 게 고작이다.
그때. 세상에 이름이 생겼다. 이름을 부르는 테스의 목소리가 흔적을 보며 벌려진 입을 닫지 못하던 놋시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은 바닥이 짙어져 숲 같은 초록이 가장자리로 밀려난 테스의 깊은 눈동자가 그와 눈을 맞췄다.
“이걸 먹은 거다.”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놋시의 배를 테스의 축축한 손이 훑었다. 쏟아진 정액을 그러모은 형의 손가락이 동생의 벌려진 아랫입술을 누르고 입안에 들어온 순간, 고조된 감각에 떨고 있던 마른 어깨가 긴장을 잃는다.
그대로 등줄기가 녹아내린다. 허리가 풀려 뒤로 넘어가는 뒤통수를 받쳐 준 테스의 다른 손은 바닥에 닿고 나서 슬며시 사라졌다.
하아하아 벌어진 놋시의 입에서 숨이 새지만 곧 알아듣기 힘들어진다. 테스의 손가락 세 개로 가득 차버린 놋시의 입은 숨 쉬는 것도 잊고 있다. 입안을 채운 맛과 향을 삼키느라 급급하다.
테스의 손가락을 빨며 감긴 눈 저 아래에서 아직도 묶여 있던 놋시의 성기는 어느새 큰 손에 잡혀 있다.
놋시의 두 손이 테스의 손목을 잡고 매달리는 동안, 그의 혀가 알파의 정액과 본능을 맛보고 좁은 목구멍으로 삼키는 동안, 향과 맛이 스며든 육체에 정교한 자극이 이어지며 안전하고 느슨한 사정이 일어났다.
“아, 으응…….”
놋시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온 웅얼거림과 함께 사정을 끝낸 그의 성기가 얌전해진다. 날것의 향으로 무거워진 공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처럼 새파란 풋내와 어우러지며 아직도 남아 있는 알파의 긴장을 가라앉혔다.
제대로 된 절정을 모르는 몸을 달래며 잠재운 테스는 그날 밤이 늦을 때까지 뜬눈으로 놋시를 돌봤다.
그의 성기는 한 번의 분출로 만족할 리 없었고 동굴 안의 공기는 숨을 들이쉬기만 해도 발정을 일으키는 오메가의 유혹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테스는 잠든 놋시의 곁에서 혼자만의 쾌락을 찾지 않았다.
첫째가는 이 타게신의 영혼과 육체는 주인을 정했고 앞으로 그가 가질 모든 절정은 마지막 하나까지 놋시의 것이었다.
그 열여섯의 봄부터 여름 사이에 놋시는 변해 있었다. 두건과 천으로 감춰진 얼굴로도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됐다.
겨울 동안 조금 자란 키는 애초에 큰 편이었지만 마을의 여자들과 이웃의 데오기가 말하는 변화는 다른 것이다.
“너, 눈에 하늘이 깊어졌다.”
“어떻게요.”
“새벽하늘 같던 게 이제는 아침 같구나.”
놋시는 웃는 얼굴로 말하는 데오기 앞에서 감춰진 얼굴을 더 깊게 숙였다.
머리 색이 짙어지고 키가 크는 성장기의 변화가 그의 몸에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어깨를 넘겼던 머리카락은 지난달에 손수 잘라 예전의 길이로 목덜미를 덮었지만 그 밖의 것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푸른빛이 늘어난 놋시의 눈동자는 이제 해가 뜨기 직전의 아침 하늘처럼 맑은 청회색이다. 부드러운 살과 매끄러운 피부가 탄력 있는 선으로 다듬어졌다.
투박한 옷을 덧입어도 드러나는 날씬하고 긴 몸은 큰 키에 비쩍 말랐다 불리던 과거와 달리 같은 걸음을 걸어도 남보다 나아 보이는 우아함을 갖기 시작했다.
성숙해진 마른 근육과 유연한 관절이 능숙하게 움직여 산을 타고 길을 걷는 걸 보는 이들이 참지 않고 하는 말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차노륵의 둘째가 부쩍 컸다. 형보다 먼저 짝을 얻겠다.”
“화상을 입었어도 식구를 굶기지는 않을 테니 못 할 것도 없지!”
칭찬이 이어져도 놋시는 모른척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 가는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성숙하게 만드는지 알 것만 같다. 부끄럽고 추악한 죄가 그의 속을 빨아먹고 겉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 봄의 열병이 지나간 얼마 뒤. 타게신이 마을에 왔다. 5월의 보름달에 맞춰 나이 많은 사제가 은퇴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놋시는 테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죄지은 사람처럼 걱정했지만 얼굴을 본 시간은 얼마 되지 못했다. 사제와 관리를 만나느라 종일 바쁘던 테스는 밤늦게 놋시에게 선물이라며 상자 하나를 준 뒤 식사도 하지 않고 시도르로 돌아갔다.
내가 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한 걸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홀로 잠든 그 밤, 열여섯의 놋시는 꿈을 꿨다.
붉고 노란 모호한 따뜻함이 아닌 그 꿈은 어둠을 틈타 놋시가 외면하고 무시해 온 본능의 욕구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밤에 찾아온 놋시의 꿈은 그림을 흉내 내듯 흐릿하고 불분명하지 않았다. 그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단단한 허리를 눕히고 근육으로 선이 뚜렷한 가슴을 보이는 테스의 육체는 확고한 실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는 테스의 거대한 성기가 놋시의 속을 뚫고 들어와 찔러 대고 있었다. 놋시가 뜬눈으로 보고 잊을 수 없게 된 검붉고 커다란 알파의 성기가 체액으로 흥건히 젖어 열려 있는 놋시의 육체에 파고들었다.
그 뜨겁고 딱딱한 살덩이를 쥐었던 커다란 손이 놋시의 속살인 것처럼, 살을 파고든 성기에 마찰과 반복이 일어나게끔 테스의 허리가 움직였다.
뜨겁고 굵은 성기가 들어오고 나가며 만들어질 상상 속의 감각이 놋시의 잠든 몸을 조이고 흔들었다.
놋시의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간직하는 테스의 목소리가, 거친 호흡이, 강한 육체와 굵고 긴 손가락이 그의 온몸을 점령하고 의식마저 차지해 허리를 흔들게 만들고 신음을 쏟게 했다. 아, 아, 아, 아…….
그 목소리가 커지다 잠든 몸을 깨웠다.
바람이 거세게 벽을 두들기는 그 새벽에 눈 뜬 놋시는 흥분으로 흠뻑 젖어 풀어진 것이 자신의 다리 사이 살결 틈새만이 아닌 걸 알게 됐다. 악몽에 취해 부풀었던 성기도 묽은 정액을 토해 놓았다.
하지만 적나라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했다. 이제껏 배출만을 위해 존재하던 놋시의 육체 일부가, 열병에 취했을 때만 질척해지던 그의 입구가, 동굴의 밤이 아닌 곳에서도 허기를 주장하며 다른 목적의 의미를 자각시켰다.
열병이 아닌 때 일어난 적 없던 육체의 변화는 성장의 지표겠지만 놋시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성숙은 테스의 기억으로 찾아 왔고 놋시는 태연히 잠든 밤중에 형을 떠올리며 발정한 자신의 육체가 끔찍했다. 더러운 죄의 길이 깊어지고 있었다.
추악한 욕구를 품은 자신이 증오스러워 놋시는 더 부지런해졌다.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다니며 수액을 모으고 약초를 캤다. 겨울에는 쓸모없던 밭을 가꿔 새로운 작물을 길렀다. 먼 길을 아랑곳 않고 시내를 나가 약초상에 들렀다.
잠이 없는 이처럼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놋시의 몸이 버티다 자리에 누울 때는 기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섭고 황홀한 꿈은 반복되는 열병처럼 계속해서 놋시를 찾아 왔다.
찾아오는 꿈을 피해 산길을 다니던 놋시는 결국 다시 다가온 열병의 날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 며칠이나 잠을 설치는데도 시간은 태평히 흘러갔다.
이대로 전처럼 동굴에 가서 또 테스를 만나면 어떻게 될지 무서웠고,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격렬한 열로 죽게 된다면 그게 낫지 않을까. 이치를 잃은 머리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던 놋시는 차노륵의 집에서 그렇게 죽을 수 없다는 걸 깨우쳤다. 지독한 단내가 독을 품으면 마을 사람 모두가 알게 될 터였다.
그렇다면 산으로 가야 할까. 절벽에 올라 떨어져야 할까.
그러나 아직도 가슴이 아픈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생각이 이런 짐승도 자식이라고 살리겠다며 버섯 독을 같이 마시다 죽은 어머니에 닿자 메마른 통곡이 내질러진다.
결국에는 테스를 생각하게 되고 애정과 자책이 차오른다. 이런 짐승도 동생이라고 살리겠다며 더러운 몸을 달래 주고 죄악을 받아 준 테스의 곧고 옳은 얼굴이 떠오르자 놋시의 눈에 눈물이 흥건해졌다.
수도에 갔어야 할까. 이제라도 아무도 모르게 수도로 가 체레오의 관리를 찾아갈까. 그래서 먼 나라로 짐승이 팔리듯 떠나면 모든 게 바로잡힐까.
하지만 놋시는 알고 있었다. 그와 살아서 이별하기 싫어 죽음을 각오했던 어머니처럼 형도 그럴 터였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져도 테스가 그를 버릴 리 없었다. 타게신의 이름으로 왕에게 칭찬받는 명예를 다 버리고 비난과 오물을 뒤집어쓰며 놋시를 지킬 게 분명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발을 들인 죄악에서 도망칠 길은 죽음뿐이지만 놋시는 그럴 수 없었다. 죽음의 막막함보다 테스의 상심과 아픔이 더욱 두려웠다.
아들을 살리겠다고 독을 먹은 어머니처럼 동생을 살리겠다고 몸을 더럽힌 형이 고맙고도 끔찍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놋시는 알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달력의 날짜를 세던 그가 결국 동굴로 출발한 것은 열병이 찾아올 게 예정된 그날의 아침이었다.
7월 중순의 아침은 건조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놋시는 예고처럼 찾아온 미열을 무시하고 우물물을 뒤집어썼다. 갈등하다 시간을 보내 어느새 아침 해가 눈앞에 떠 있었다.
습관처럼 두건을 두르고 소매 긴 옷을 입은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마을을 등지고 집 뒤의 산길을 걸었다.
서늘한 숲을 헤치고 올라간 절벽에서 길이 아닌 허공을 내려다보던 놋시는 이 위에서도 보일 만큼 큰 백마를 알아봤다. 테스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
수많은 말이 담긴 침묵을 삼키며 그 자리에 선 놋시가 한참이나 망설이다 길을 선택한다. 휘청거리는 마음과 달리 흔들림 없는 그의 발이 아는 길을 홀로 따라갔다.
놋시는 절벽 아래 동굴의 입구보다 테스를 먼저 봤다. 저편에 말을 묶어 놓고 돌아오던 길인지 입구 근처에 서 있던 금발 머리카락이 발소리를 듣고 놋시를 돌아본다.
보석이 박힌 허리띠도 없고 왕이 줬다는 칼도 없이, 망토조차 벗고 서 있는 가벼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사로나의 관리도 입지 못할 값비싼 옷감들이었다. 놋시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사로 인정받은 타게신은 귀족의 오메가 주인을 얻게 될 첫째가는 이였다.
테스가 군대를 부리며 저 위의 시도르에 머무른 뒤로 사로나에는 그의 소문이 더 자주 들려왔다. 큰 싸움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타게신이 사막의 도적을 물리친 뒤 날이 갈수록 평화로워지고 있다고 했다.
“놋시.”
“…….”
놋시는 자신을 반기는 형의 얼굴에 약하게 떠오른 미소를 알아봤다.
테스의 아름다운 얼굴은 어린 시절부터 사원을 다니며 엄격한 표정으로 굳어졌고 남들에게는 공정하지만 냉랭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놋시는 집에 올 때마다 막일을 나서 하던 테스를 기억했다. 그에게는 차노륵의 집수리를 돕고 에기의 신을 고쳐 주던 테스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어린 자신에게 책을 가져다주고 글자를 알려 주던 어느 날의 추억도 꿈처럼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진지했던 테스는 농담을 하거나 떠들지 않았지만 항상 부모의 말을 존경했고 높아지는 신분으로도 하찮은 마을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놋시의 눈이 어두운 동굴 입구를 힐끗 바라봤다. 저 안에 들어가면 자신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미열만 남은 몸이 언제 미쳐 버릴지 두려우면서도 용기를 낸 그가 환한 낮의 산 공기를 들이마셨다.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하늘이 있는 이곳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저는, 이제 열여섯입니다.”
“그렇지.”
“짝을 맞아도 되겠다고 남들이 그럽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니까요.”
“…….”
놋시는 테스의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봤다.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금실처럼 눈부신 머리카락이다.
“이제라도 수도로 가서 말하면 숨긴, 숨겼던 줄도 모를 겁니다.”
“……뭐라고?”
“제가, 제가 마지막의 주인이라고 밝히면, 체레오의 법을 따라 높은 분이 알아서 하시겠죠.”
“…….”
“그러면 더 이상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 놋시의 머릿속에 못다 한 말이 떠오르지만 그보다 먼저 테스의 입이 열렸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니.”
“…….”
“사로나의 산 밑 마을에서 태어난 마지막의 주인이 수도에서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는 말이다.”
“먼 곳으로 보내질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짝을 맺겠지요.”
“그래.”
그래. 짧은 대답을 씹어 뱉는 테스의 얼굴에서 초록색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너는 체레오의 왕이 정하는 나라로 보내져 짝을 맺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다.”
“…….”
“정치를 위해 보내는 선물처럼 쓸모를 위해 처리되는 끝이지.”
“먼 곳으로 병사도 보내지 않습니까.”
“병사는 살아남으면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오메가는 그렇지 못해.”
“…….”
뜻을 알아도 낯선 이름으로 자신을 부른 형의 앞에서 놋시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사로나의 시내에서 유명한 오메가 주인님도, 먼 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체레오의 왕국에 와 짝을 맺고 제 몫을 다해 자식을 낳았지만 모두 잃은 뒤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나라끼리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며 어깨를 떨기 시작한 놋시의 앞에서 테스는 입술을 깨물어 치미는 말을 참았다.
산 밑 마을 하찮은 출신의 오메가가 얼마나 멀고 위험한 곳에 보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왕의 기사로 직위를 얻었으니 조금 낫기를 기대하기에는, 체레오의 왕국이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어릴 때 테스는 에기가 무엇을 그리 두려워 놋시를 숨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고 수도를 다니며 그가 알게 된 현실은 그 또한 겁먹게 했다.
전사로 인정받는 알파의 탄생은 드문 일이었지만 오메가는 그보다 더 드물게 태어났다. 역사가 거듭될 동안 알파와 오메가의 결합이 왕과 전사를 낳으며 찬양받을수록 짝을 맞추기 위한 싸움과 전쟁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과 제왕들이 약속을 맺었다.
왕국과 제국, 나라와 나라 사이로 보내진 오메가들은 평생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상대가 죽어 짝을 잃어도 새로운 나라에서 살며 또 다른 짝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 놋시가 수도로 간다면 분명 여름에 사매로노의 제국에 보내지는 사절단에 묶여 끌려갈 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테스는 말도 전할 수 없는 먼 곳에서, 다른 이의 손에 절정을 얻고 다른 이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알파, 다른 첫째가는 이가 놋시의 젖은 살을 열고 몸을 섞게 된다면…….
테스는 그런 미래를 견딜 수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살의가 치밀어 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권리가 없는 질투임을 알지만 마음은 알아서 고쳐지는 게 아니다. 그는 이미 죄의 길을 걷고 있었고 자신의 주인을 다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다.
테스의 몸이 돌아선다. 놋시에게 등을 보인 목덜미에 힘이 들어가 고개가 뻣뻣하다.
그는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부신 것처럼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큰 손이 떨리고 있었다. 거칠고 빠른 걸음으로 동굴의 그림자를 따라간 테스가 부드럽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속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테스의 폐를 채우던 공기가 달라진다. 머뭇거리는 걸음으로 쫓아 들어온 놋시가 그의 등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테스…….”
저 목소리가 부를 때 테스는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해를 등지고 어둠에 발 디딘 눈앞의 소년은 그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피를 나눈 친동생이다. 테스는 생각했다. 설사 자신이 이런 더러운 욕망에 빠져 죄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사매로노의 제국으로 놋시를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왜 갑자기 수도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
“…….”
“내가 싫어서?”
“네?”
“열을 가라앉히는 상대가 나인 게 싫어서, 그래서 떠나겠다는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짐승인 것은 저인데…….”
두건에 가려진 놋시의 고개가 덜컥 흔들리며 테스의 추궁을 부정했다. 빛을 등지고도 크고 맑게 빛나는 청회색 눈동자가 바깥의 하늘을 품은 것처럼 투명하다.
짐승은 자신이라고, 더러운 것도 다 자신 혼자라고 말하는 놋시의 목소리가 굴러떨어질 돌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테스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놋시를 품에 안았다. 날개를 접은 하얀 새처럼 안긴 몸이 어린 나뭇가지같이 생생하고 애처롭다.
붙들린 몸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불안으로 떨림이 남은 동생을 끌어안고서, 턱 끝에 닿은 두건에 코를 묻고 체취를 들이켜던 테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짐승이 아니다. 우리는 살을 열고 몸을 섞지 않았어.”
“…….”
“그러니까 괜찮다.”
“하지만…….”
“괜찮아.”
단호하게 끝을 자른 테스의 팔에서 힘이 풀린다. 저를 보려고 젖혀지는 고개에 맞춰 얼굴을 기울인 테스가 투명한 놋시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지금 그 눈에는 두려움이 절절하다.
테스는 놋시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번의 일이 무서웠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보인 탓에 동생이 겁을 먹었다. 발정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놋시에게 알파의 성기를 보이고 정액을 먹였으니 놀란 게 당연했다.
그는 순간의 충동으로 적나라한 욕망을 내보인 과거를 후회하며 스스로를 탓했다. 죄인의 욕심에 취해 아직 어린 동생에게 흉측한 꼴을 보이고 만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참회와 슬픔으로 낮아진 테스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가 싫어할 짓은 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두건에 가려진 이마 아래 놋시의 커다란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테스는 동생의 하얀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 가슴이 욱신거렸다.
“몸에 열이 보이는구나. 먼저 씻어라.”
“…….”
말을 그리하고도 테스의 손은 한 박자 늦게 놋시를 풀어 줬다.
망설이는 걸음으로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물가로 걸어간 동생이 형을 돌아보다 보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걸 알아차린 테스는 밖으로 나가 자리를 피해 줬다.
멀리 묶여 있는 말에게 다가간 테스가 새하얀 갈기를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놋시가 보면 좋아할 것 같아 일부러 타고 온 귀한 백마였지만 이번에는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 것 같다.
일찍 도착한 테스는 그사이 나뭇가지 침상에 또다시 값진 천을 깔아 놨다. 가장자리에 수가 놓이고 노란색으로 빛나는 두툼한 천이 얇은 바닥을 덮고 있는 걸 보며 놋시는 거기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망설이는 동안 젖은 몸을 감싼 흰 무명천이 물기에 끌려 어깨와 등에 들러붙었다.
그렇게 서 있던 놋시는 갑작스러운 물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조금 전 몸을 담근 온천 물가에서 테스가 손과 발을 적시며 씻고 있었다.
“……앉아라.”
“…….”
바닥만 보고 서 있던 놋시는 어느새 곁에 온 테스가 말하는 대로 나뭇가지 침대 위에 앉았다.
놋시의 왼쪽에 나란히 앉은 테스의 어깨가 그와 닿기 직전에서 멈춰 있었다. 더운물로 데워졌던 놋시의 몸은 이미 식어 있었지만 테스의 벗은 상체에서는 아직도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앉아서도 놋시는 계속 바닥만 봤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도로 떠나겠다는 말에 막아선 테스의 대답은 놋시도 이미 짐작한 내용이지만 실상을 알고 있을 형에게 듣자 더욱 두려워졌다. 자신이 싫어 그러냐는 형의 질문도 놋시를 당황시켰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테스를 싫어한 적 없었다. 형제간의 경쟁이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할 만큼 전혀 다른 사이였기도 하고, 두 살 차이로도 일찌감치 어른스러움을 보인 형의 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놋시는 열이 차오르지 않는, 잠에 취하지도 않은 맑은 정신으로 이곳에서 테스와 함께한 경험이 적었다.
자신의 말에 괴로워하던 얼굴이 생각나자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움츠러들게 됐다. 이대로 열병이 시작하길 기다리는 걸까. 혼란스러워하던 놋시가 마침내 떨어진 형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라. 열을 봐야지.”
“네…….”
놋시는 웅크리고 앉아 무명천을 붙잡은 손을 풀지 않고서 얼굴을 들었다. 어느덧 몸을 돌려 앉은 테스의 눈이 정면으로 그를 마주했다. 여느 때처럼 침착해진 깊은 눈매였다.
막연히 형을 바라보는 놋시의 눈가에 테스의 오른손이 다가왔다. 이마를 지그시 누른 손바닥이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 주고 목덜미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체온을 재듯 펼쳐졌다.
“심하지 않구나.”
“아직은, 아침부터 미열뿐입니다…….”
“…….”
테스는 오래도록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은 계속 놋시의 목덜미를 감싼 채였다.
이어진 침묵에 긴장하게 된 놋시의 심장이 서서히 빨라졌지만 그는 함부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생각이 많은 테스의 깊은 눈매 역시 놋시의 시선을 놔주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