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이유 (3/17)

2. 이유

영화 촬영이 끝나 당분간 휴식기를 가지게 된 서이연은 요즘 하루하루를 꽤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차기작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의 황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박희은 작가의 주말 드라마에 주조연으로 출연하게 된 서이연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존경하고 있던 작가인 박희은 작가님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거기에다 주조연이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아직 구체적인 드라마 촬영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캐스팅이 확정이 난 거라 대본 리딩을 하기까지도 몇 개월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연은 시나리오를 반복해서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꽤 바빴다.

두 번째 이유는 서이연의 첫 스마트폰 광고가 드디어 전파를 탔기 때문이었다.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라고 했다. 광고가 풀리자마자 광고 모델이 누구냐는 반응 글만 수천 개가 올라왔고, 이연의 팬클럽까지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미 다음 광고 스케줄이 줄줄이 잡혀있다는 사장의 말에, 이연은 어리둥절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광고 자체에 대한 반응도 엄청났다고 했다. 세원전자가 야심 차게 내놓은 스마트폰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광고 담당자에게서 새로운 시리즈의 스마트폰이 역대 사전예약률 1위를 달성하였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서이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메인 모델로 출연한 광고가 히트를 쳤다니, 너무나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요즘 그는 동영상 사이트의 댓글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군침이 싹 도는 얼굴이네요.]

[진짜 이렇게 신선한 페이스 처음이에요 ㅠㅠ 광고 처음 봤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ㅠㅠ]

[한 번만… 딱 한 번만. 구매자 소원!]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기가 안 어색하네… 아이돌인가요 배우인가요?]

[그냥 기생오라비처럼 생겼구만 뭐가 그리 잘생겼다고. 남자는 우락부락한 맛이 있어야지.]

찾았다! 서이연은 오늘도 자신의 연기를 칭찬하는 댓글을 찾아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떡해…… 연기 안 어색하대…… 아…….”

서이연은 핸드폰을 품에 꽉 껴안고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했다. 기쁨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서 반응을 이끌어 낸 건 연기를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댓글을 읽던 이연은, 문득 남자에게 감사 문자라도 한 통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벌떡 허리를 세웠다.

스폰서가 되어준 차주원 덕분에 광고에, 영화에, 이제는 드라마까지. 이제껏 살면서 자신이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무님.]

“…….”

하지만 막상 그에게 문자를 보내려 하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드라마 찍게 된 거 정말 감사드린다고 할까…… 아니면 저번에 카드 주신 것 잘 쓰고 있다고 할까…… 광고는, 이미 예전에 감사 인사 드렸고…….”

평소에 그와 하는 연락이라고는 그가 보내는 날짜와 시간이 적힌 문자에 ‘네 전무님. 그때 뵐게요.’라고 답장하는 것밖에 없었다. 서이연은 처음으로 자신이 먼저 보내는 문자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차주원 전무…….

요즘에는 혼자 있을 때 문득문득 그가 생각날 때가 많다. 우성 알파. 세원그룹 후계자. 세원전자 전무. 재벌 3세. 스폰서. 차가운 인상의 흑발. 커다란 체격…… 그는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서이연에게 차주원은…… 뭐랄까. 단순히 겉모습과 사회적 지위로만 정의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생활을 공유하는, 어떤 의미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까.

첫 경험 상대.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섹스 한 번이었을지라도, 자신에게는 첫 섹스였다. 처음 경험해보는 우성 알파 페로몬으로 범벅이 된 채 한 섹스여서 그런지, 많이 아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가 당황할 정도로 많은 물을 흘렸던 게 창피했다.

가장 내밀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보일 수 있고 남들에게 하지 않는 말까지 주절거리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서이연에게 차주원의 의미란 그랬다.

“…….”

이연은 한참이나 차주원의 새까맣고 그윽한 눈매를 상상하다, 마침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차주원 전무님, 서이연입니다. 혹시 저희 다음 만남은 언제인가요? 오늘 전무님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빨리 만나고 싶어요. 이번에는 제가 정말 제대로 된 안마 해드릴게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문자를 보내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서이연의 귀 끝이 붉었다.

*

차주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서이연이 문자를 보내고도 사흘이 지난 후였다. 평소처럼 날짜와 약속 시각을 담은 메시지였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호텔 방 번호가 아닌 다른 주소가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긴 어디지…….”

서이연이 주소를 보고 고민하고 있던 그때, 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사장님.”

-어, 이연아. 너 혹시 이번 주에 차주원 전무 만나냐?

“네.”

-너 그럼 그분 심기 안 건드리도록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지금 세원 세무조사 건으로 국세청에서 난리인가 봐. 뒤로 들어온 비리 자료가 있다는데,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몸 잘 사려라, 이연아.

“네…… 잘할게요.”

-그래. 몸조심하고.

서이연은 사장과의 통화 후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지가 왕자님 걱정하는 꼴이라는 건 잘 알지만, 괜히 그가 곤경에 처했을까 걱정도 되었다.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는 것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일까…….

서이연은 조금 걱정되는 마음을 가슴 한구석에 품은 채 잠이 들었다.

*

“와아……! 진짜 좋다……!”

차주원이 보내준 주소에 도착한 서이연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련된 주택이었다. 도대체 이런 집에는 누가 사는 걸까 생각하던 그는, 그 사람이 차주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전무님 집인가?

“나를 집에 초대해주실 리가 없는데…….”

서이연은 차주원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오메가와의 잠자리를 위해 스폰을 허락했다는 것도, 자신의 성격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본인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가족이나 애인도 아닌 스폰 받는 배우를 초대하다니……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그나저나 왜 여기는 높은 담장만 가득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끼익-

“…….”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에 움찔거린 이연은 꿀꺽 침을 삼켰다. 뭔가 섣불리 움직여 상대를 자극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길고양이일 수도 있지만, 귀신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도 없는 깜깜한 거리에 서 있으려니 왠지 조금 소름이 돋는 듯했다. 어서 밝고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연은 재빨리 초인종을 연타하고, 그가 자신을 바로 알아보고 문을 열 수 있도록 정문 카메라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빕 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이 열리자마자, 이연은 마치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쫓기라도 하는 양 정원으로 뛰쳐 들어갔다. 헉헉거리며 열심히 뛰는 그의 앞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전무님!”

서이연은 현관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차주원을 불렀다. 괜히 등이 시려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힘을 풀면 오줌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전무님!”

서이연이 한 번 더 우렁차게 차주원을 불렀을 때, 문이 열렸다. 그는 차주원의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고 헐레벌떡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차주원은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어이없다는 듯이 서이연을 쳐다보았다.

정문 초인종을 적어도 다섯 번은 울리지 않나, 하얀 미간만 화면에 가득 차게끔 카메라에 바짝 달라붙지를 않나, 정문부터 현관까지는 전속력으로 뛰었는지 정문을 열어주고 채 십 초도 지나지 않아 현관문을 부술 듯 두드리더니, 큰 소리로 자신을 부르기까지. 서이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차주원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허억. 아니, 밖이 너무 어두워서…….”

숨을 할딱거리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서이연을 보고, 차주원은 그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고, 서이연도 재빨리 신발을 벗고 그를 따랐다. 차주원은 주방의 바에 앉아 마시고 있던 위스키 잔을 들었다. 이연은 조금 짜증이 난 듯한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전무님, 저, 화장실, 써도 되나요?”

“……왼쪽.”

“네, 저 손 씻고 올게요…….”

“…….”

이연은 소변도 볼 생각이었지만 그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오싹한 상상을 한 탓인지, 아까부터 아랫배가 찌릿해져 오며 볼일을 보고 싶었다.

서이연이 느릿한 걸음으로 사라진 뒤, 차주원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저 바보가 또 이렇게 사람을 풀어지게 만든다.

배우는 배우라는 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등장하는 꼴이라니. 요 며칠 회사 일로 예민해져 있던 신경 줄이 점점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매일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프로젝트며, 감사 보고며, 협약 조건을 훑던 뇌가 조금은 긴장을 푸는 게 느껴졌다.

곧 서이연이 나타나 제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페로몬이 아닌 은은한 살 내음이 풍겼다.

“전무님, 술 드시고 계셨네요.”

차주원은 그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와인 잔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서이연은 처음 먹어보는 와인에 눈을 빛내며 와인을 관찰하다, 가만히 위스키만 들이켜고 있는 차주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힘든 일 있으셨어요?”

“……그냥 좀 귀찮은 일.”

“아…… 그러셨구나. 오늘 제가 안마 연습해 왔는데, 날을 잘 잡은 것 같아요.”

“…….”

차주원은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들이켤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이연은 그의 잘생긴 옆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전무님, 세원 스마트폰 광고 보셨어요? 저, 잘 찍었죠……?”

서이연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정신이 들자마자 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냈다. 오늘 낮에 확인한 칭찬 댓글들 덕분에 자신감이 붙어서 그에게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차주원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서이연의 눈동자를 보며, 그가 찍은 광고를 최종 승인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 거라 생각하는 건지 궁금했다.

“초기 판매량이 다른 시리즈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보고 올라왔던데. 잘했네.”

선뜻 돌아오는 차주원의 칭찬에 서이연의 볼이 붉어졌다.

“네…… 뿌듯해요…… 제 연기는 어떠셨어요…?”

서이연은 차주원에게서 연기 칭찬을 받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그가 자신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광고 촬영에서 자신의 연기가 그때보다는 발전했다는 것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차주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드러나는 서이연의 말간 얼굴과 부산스레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들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잘했다고 말했잖아.”

서이연은 차주원의 대답에, 그제야 고운 눈매를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그의 다정함에 정신이 헤롱헤롱해질 지경이었다.

“저, 오늘 너무 기분 좋아서, 달릴래요.”

서이연은 와인 잔을 들고 차주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무님, 짠 해주세요.”

서이연의 맹랑한 요구에 차주원은 헛웃음을 뱉었지만,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순순히 잔을 부딪쳐 주었다.

“……”

그러나 와인 한 잔을 한 번에 비워버리는 서이연을 본 차주원의 표정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그는 꼴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서이연의 작은 목젖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뱉었다.

그날 하얀 면 팬티를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다. 서이연은 성적 긴장감이라고는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준 카드는 왜 제대로 안 써.”

낮은 목소리가 이연의 귓가를 휘감았다. 차주원은 와인 한 잔에 이미 발갛게 달아오른 그의 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어, 저, 잘 쓰고 있는데요? 감사 인사 드리려고 했는데…… 감사합니다.”

서이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어디에 썼는지 말해봐. 자세하게.”

차주원은 턱에 손을 괴고 물었다. 그의 얼굴에 걸린 나른한 미소가 마치 네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같이 느껴져, 서이연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어…… 자세히요? 맨 처음엔 장 봤어요. 김치볶음밥 해 먹으려고, 김치랑 쌀이랑 대파랑 치즈, 도 사봤구…… 원래 치즈는 안 사려고 했는데, 전무님이 생활비에 쓰라고 하셨으니까…… 과자도 조금 산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이랑…… 그리고 옷도 샀어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셔츠, 새로 산 거예요! 전무님 만날 때 새 옷 입고 싶어서요. 카페에서 와플이랑 핫초콜릿도 사 먹고…… 떡집에서 찹쌀떡도…… 카드 쓸 때마다 전무님 생각하면서 잘 쓰고 있어요.”

차주원은 볼을 발갛게 붉힌 채 재잘대는 서이연의 입술이 오늘따라 더욱 도톰해 보인다 생각했다.

“네 나름대로 잘 쓰고 있는 것 같긴 하네.”

비서를 통해 서이연에게 준 카드 내역을 받아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던 차주원은 기뻐하는 그를 보니, 굳이 카드 사용 금액에 대한 핀잔을 주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보통 블랙 카드를 받으면 명품이나 외제 차를 사지 않나. 차주원은 명세서에 찍혀 있던 말도 안 되는 금액들을 떠올리며 잔을 비웠다.

“전무님, 저도 더 마실래요. 더 주세요.”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천천히 마셔.”

“네…….”

서이연은 오늘따라 부드럽게 느껴지는 차주원이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사장님에게 말을 전해 듣고 굉장히 긴장한 채로 왔는데, 오히려 평소와 다르게 풀어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게 다 자신이 광고를 굉장히 잘 찍은 덕분일까…… 아니, 그러고 보니 그의 페로몬의 느낌도 평소와 다른 것 같았다.

“전무님, 저, 박희은 작가님 드라마 하게 된 거, 너무 좋아요…….”

서이연은 바 위에 놓여있는 차주원의 손을 잡기 위해 슬금슬금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너 울었다며.”

“……네?”

서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드라마 캐스팅 컨펌됐다는 거 듣자마자 울었다며.”

그걸 전무님이 어떻게 알지? 서이연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엔 사장님과 자신, 그리고 차주원의 비서밖에 없었다.

“……아, 그게, 운 건 아니구요, 기뻐서 눈물이 맺혔는데, 그걸 운다고 착각하신 것 같아요.”

서이연은 왜 자신이 이런 변명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남자가 자신이 펑펑 울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의 앞에서는 울기만 하는 것 같아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할까 걱정도 되었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대성통곡했다고 들었는데.”

서이연은 그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이 평소에도 딱히 멋진 사람은 아니지만, 괜히 그 앞에서는 창피한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억울했다. 제일 멋있게 보여야 하는 스폰서 앞에서, 항상 이런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니…….

“……아닌, 데요…….”

서이연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고개는 바닥을 향했다.

“하…….”

“…….”

차주원의 낮은 한숨이 이연의 가슴을 할퀴었다. 또 그를 실망시킨 걸까…….

“왜 자꾸 내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문득 차주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이 강하고 날카로워졌다. 굵은 목소리도 좀 전의 느슨함은 어디로 갔는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서이연은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다. 차주원의 화를 참는 듯한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평소와 다른 그의 페로몬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무님-”

“거짓말하고 싶게 생긴 얼굴인가. 내가.”

서이연이 고개를 들어 마주한 차주원의 얼굴은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짜증을 억누르고 있다는 게 너무나 선명히 느껴져 서러웠다.

이연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얼어붙음과 동시에, 자신의 몸에도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흐윽…… 하아…… 전무님-”

“…….”

“이상, 해요…….”

아까부터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의 알파 페로몬이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서이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리를 세우려 노력했지만, 자꾸만 사타구니가 아릿해져 와 허벅지를 서로 비벼야만 했다.

차주원은 그가 차가운 바 위에 열이 오른 볼을 비비며 자신을 부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별것도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할까…….”

차주원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서이연은 점점 더 강해지는 그의 페로몬에,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리며 말했다.

“흐윽, 차, 창피해서, 흐읏, 그래서, 그랬어요.”

“뭐가 그렇게 창피해.”

“흐으, 맨날, 전무님 앞에서, 울잖아요.”

“하. 그게 창피하다고.”

그거 말고도 창피해야 할 일은 많을 텐데. 차주원은 점점 서이연의 페로몬과 자신의 페로몬이 섞여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오, 오늘은, 잘 보이려고, 새 옷까지 입었는데, 흐윽, 어두운 게, 무서워서 뛰고, 그것도, 창피했는데, 저번에, 운 것까지, 저는, 전무님이, 흐으, 모르는 줄 알았는데…….”

서이연은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계속해서 감정을 쏟아냈다.

“괜히, 다정하게, 말씀하셔서, 흐윽, 오늘은, 멋있는 줄 알았는데, 근데, 다, 마, 망쳤어요. 흐으…….”

“…….”

차주원은 서이연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가 망했다는 건지, 뭐가 다정했다는 건지. 도대체 이 작은 머리통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뻗어 나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미간을 문지르며 아파져 오는 머리를 달래보려는 차주원의 손길이 거칠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에 화가 난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자신의 앞에서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것이었다면…….

“후우…….”

항상 생각하지만 서이연은 싱겁다.

“……그만 울어. 나 러트야.”

계속 소금물을 흘리게 만들고 싶을 만큼.

“……러트요?”

서이연은 아직 커다란 두 눈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시선을 맞춰왔다.

“벌써 힘 빼지 마.”

“……괜찮으세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눈물을 닦았던 서이연의 촉촉한 손가락이 그의 굵은 손가락에 얽혀들었다. 서이연은 아직 온몸에 힘이 풀린 것 같기는 했지만, 누그러진 페로몬에 적응이 되었는지 자연스레 몸을 붙여왔다.

“안마, 해 드릴까요? 저, 연습도 많이 했는데…….”

“누구한테 연습을 해.”

“베개요…….”

“…….”

차주원은 그대로 잔을 들어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이연은 차주원의 알파 페로몬에 점점 자신의 몸이 동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까는 너무나 강한 페로몬에 사타구니에서 고통스러울 정도의 쾌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알파와 살결을 맞대고만 싶었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아랫배에서부터 스멀스멀 퍼졌다.

그가 자신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준다면 너무나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전무님…….”

이연이 스툴에서 엉덩이를 떼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차주원은 여전히 스툴에 앉아있어, 서이연이 그와 닿기 위해서는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연은 정장 바지 겉으로 선명히 느껴지는 그의 딱딱한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의자가 꽤 높아 그의 탄탄한 가슴팍만 시야에 가득했지만, 이연은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보려 발끝을 세웠다.

“…….”

차주원은 서이연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감상했다. 그가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것도, 그 커다란 눈으로 눈치를 보며 자신의 허벅지에 살짝 손을 댄 것도, 자신의 다리 사이로 몸을 집어넣고 이제 입을 맞추려는지 그 뽀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도, 모두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서이연은 부드럽고 통통한 입술을 붙여왔다. 자신의 목덜미를 살짝 감싸고, 입술을 살짝 핥는 그의 행동은 마치 관심을 갈구하는 소동물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주위로 밀도가 꽉 찬 페로몬이 넘실거렸다. 우성 알파인 차주원의 러트 페로몬은 열성 오메가인 서이연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농도였지만, 오늘은 서이연의 욕구가 더 강해 보였다.

다정한 차주원에게 쓰다듬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그는 발끝을 든 채 낑낑대며 자신의 입술을 핥고 있는 서이연의 허리로 손을 내려, 그 가는 허리를 쓰다듬었다.

서이연은 그가 만져주는 게 기분 좋은지 허리를 움찔거리며 그의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으려 했다.

차주원이 이연의 허리를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순식간에 그와 눈높이를 맞추게 된 서이연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지금 술 취해서 이러는 거지.”

차주원은 허벅지 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전무님이야말로 취하셨죠……? 오늘은 왜 안 무서우세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허리에 팔을 감고, 그 넓은 품에 스스로 안기며 중얼거렸다. 차주원은 자신의 왼쪽 어깨에 고개를 묻고 웅얼거리는 서이연의 옅은 숨결이 옷감 안쪽으로 전해지는 걸 느꼈다. 그가 어깨에 볼을 비빌 때마다 마찰되는 감각이 달가웠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

이연은 차주원의 허벅지 위에 앉아 가까이서 그를 보게 되자 괜히 부끄러워, 그의 어깨에 얼굴을 숨기듯 파묻었다. 그러나 터질 듯 뛰는 심장 소리를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귓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차주원의 낮은 목소리가 너무 간지러웠다.

“……전무님이 받아 주시니까요.”

그리고, 너무 다정했다.

“…….”

서이연의 맹랑한 대답에, 차주원이 헛웃음을 뱉었다. 러트 때문인지, 눈앞의 오메가가 한없이 연약하게만 보인다.

너무 연해 보여서 씹어먹고 싶을 정도로.

“아까 하던 거, 계속해봐.”

차주원은 아직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는 서이연의 왼쪽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네?”

이연이 고개를 틀자, 차주원의 입술이 표피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놀란 이연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곧 코끝이 닿겠다고 생각하던 때, 먼저 입술을 붙인 사람은 차주원이었다.

“으응…….”

차주원의 혀가 곧바로 서이연의 좁은 입 안으로 들어가 여린 점막을 쓸었다. 그의 코끝이 서이연의 볼에 닿을 정도로 깊은 삽입이었다.

그는 고른 치아를 쓸어준 후 그대로 입천장에 혀를 댔다. 서이연이 간지러워 고개를 뒤로 물리려 하자, 차주원의 커다란 손이 그의 목덜미를 감싸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하으…….”

이연은 그가 뒷덜미를 매만지자, 가느다란 신음을 뱉으며 품에 더 안겨 왔다. 뒷덜미를 뭉근하게 매만지는 그의 손길로 인해, 사타구니 안쪽이 찌릿해져 왔다. 자극을 견디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차주원의 등허리 쪽 셔츠를 꽉 쥐는 것밖에 없었다.

차주원은 허리를 간지럽히듯 옷을 쥐는 서이연의 행동에, 입술을 떼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옷을 벗기려면 제대로 하든가.”

“제가, 전무님, 벗겨도 돼요?”

이연은 차주원의 가슴팍 부근 단추를 손가락으로 살살 쓸며 물었다. 겉옷 받아주는 것도 싫어했던 그인데, 옷을 벗기는 것을 허락해주다니…… 오늘 그는 정말 이상했다.

“싫으면 내가 벗기고.”

차주원은 서이연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 사 입었다는 새 옷을 빠르게 벗겨버리고는, 다시 입을 맞췄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키스가 이어졌다. 차주원의 허리에 팔을 감고 움찔움찔 떨고 있는 서이연과 달리, 그는 품 안 오메가의 크림 같은 살결을 마음껏 탐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여린 살결 위를 아무렇게나 쓸고, 매만졌다. 목덜미부터 척추 선을 따라 내려오는 그의 손가락에, 서이연은 입술을 떼지도 못하고 벌벌 떨어야 했다. 허리를 잡는 듯하더니 옆구리를 타고 흘러 젖꼭지를 매만지는 그의 행위에, 단단한 허벅지 위에서 움찔 튀어 오르기도 했다.

“가만히 좀 있어.”

차주원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아 몸을 한시도 가만두지 못하는 서이연 때문에, 바지 속에 갇힌 좆이 꺼떡대는 걸 느꼈다. 작고 통통한 엉덩이가 계속해서 사타구니에 비벼지고 있었다.

“흐으…… 그럼, 그만 괴롭히세요.”

이연은 아직 자신의 젖꼭지를 빙빙 돌리고 있는 차주원의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손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전무님, 으읏, 엉덩이 밑에, 몽둥이가 있어요…….”

“…….”

몽둥이.

차주원은 서이연의 단어 선택에 다시 한번 감탄해야 했다. 그는 지금 파트너와 애무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내 좆이야, 그거. 몽둥이가 아니라.”

“……알아요…… 그런데 부끄러워서 몽둥이라 한 거예요.”

이제 차주원은 서이연의 부끄러움의 기준이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고 제멋대로란 것도.

“하아……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귀여워 보이려고.”

얼굴에 분칠하는 새끼들 아양은 알아줘야 한다. 언제 이렇게 능청스러워진 건지…….

“……저 귀여워요……?”

“…….”

그러나 차주원은 서이연이 마치 별이라도 박아놓은 듯 맑고 투명한 눈을 맞춰오자 멈칫하고 말았다. 키스로 인해 더욱더 도톰해진 입술과 발갛게 달아오른 볼, 그리고 팔랑거리는 긴 속눈썹을 마주하자 어떤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러트 때문인가…….

“……왜. 넌 네가 귀여운 것 같아?”

차주원은 서이연의 쇄골을 살살 쓸며 물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아뇨…… 저는, 귀여운 것보단, 조금, 섹시한 매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손가락으로 만져지고 있는 쇄골이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사실 그도 자신이 섹시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귀여운 배우보다는 섹시한 배우가 더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섹시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은, 실제로 섹시해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하.”

섹시. 섹시하다고. 서이연이 생각하는 섹시의 기준에는 하얀 면 팬티도 포함되는 건가.

차주원은 자신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작은 오메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옷을 다 벗겨놓으면 우스운 소리는 지껄이지 않겠지.

차주원은 이연의 가는 허리를 잡고 가볍게 들어 바 위에 앉혔다. 이연은 자신의 바지 단추를 푸는 차주원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알파 페로몬이 한층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그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새롭기도 했다. 괜히 신이 난 이연은 차주원이 바지를 쉽게 벗길 수 있게 엉덩이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린 그가 왜 자신의 성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이연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왜요?”

“너무 젖어있어서.”

프리컴으로 번들거리는 자신의 귀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이연은 볼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페로몬이 너무 강해요…….”

서이연은 조심스레 허벅지를 모았다. 그의 매끄러운 허벅지와 종아리가 하나로 모이고, 그의 두 발끝이 차주원의 허벅지 즈음에 닿았다.

“진짜 그것 때문이야?”

“……아마도요…….”

차주원은 요도 구멍 위로 이슬 한 방울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한 분홍빛 성기를 보며 생각했다.

씹어 먹어버리고 싶다고.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성기를 애무해본 적은 없지만, 이 통통한 성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차주원은 서이연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벌렸다. 그가 다리를 벌리자 사타구니 사이에 고여있던 오메가 페로몬이 풍겨 나오는 듯했다.

“누워도 돼.”

“……네?”

서이연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차주원에게 되물었지만, 곧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읏!”

갑작스레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무는 그의 행동에, 서이연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사실 그가 성기를 물며 허벅지를 잡아당겨서 허리가 무너진 것이었지만, 이연은 바 위에 누워 끙끙대며 지금 이 상황이 정말 현실인지 의심해야 했다.

“아응…… 아아! 하읏…….”

물론 생각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이연은 자신의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꽉 잡고, 성기를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 알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성기가 빨리는 게 이런 기분이었다니, 마치 온몸으로 천둥을 내리 맞고 있는 듯한 감각에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흐으…… 안 돼…….”

“왜 이렇게 흘려.”

차주원은 연한 귀두를 혀로 감아올리기도 하고, 뿌리 끝까지 목구멍에 넣고 조이기도 하며, 첫 펠라를 경험하는 오메가에게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쾌감을 느끼게 했다. 서이연은 그저 허벅지가 잡혀 허공으로 들린 발끝을 오므리며 침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차주원은 한참 동안 통통하고 매끈한 성기를 혀로 괴롭히다, 계속해서 애액을 흘리고 있는 분홍빛 구멍을 엄지로 쓸기 시작했다.

서이연은 자신이 계속해서 뒷구멍으로 싸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자마자 허벅지를 오므려 그 사실을 감추려 했지만, 차주원이 그 구멍에 입을 대는 것이 더 빨랐다.

“지, 지금…… 뭐 하시는, 흑.”

“빨아달라고 계속 싸고 있던 거 아니었어?”

차주원은 혀를 세워 구멍 가장자리 오밀조밀한 주름을 핥더니, 곧바로 물이 질질 새는 내벽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아윽! 하으, 안, 돼…….”

서이연은 허벅지를 덜덜 떨며 눈을 까뒤집었다. 그에게서 전해지는 알파 페로몬이 너무 강했다. 내벽 안을 휘젓고 있는 혀가 곳곳을 자극할 때마다 허리가 덜덜 떨려왔다.

애액이 고여있는 구멍을 쪽쪽 빠는 질척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훌쩍임이 섞인 이연의 신음도 점점 커졌다.

“흐응…… 아, 안 돼요…… 저, 싸요. 정말…….”

서이연은 이제 거의 혼이 나간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입가에서 질질 흐르는 침을 닦을 새도, 풀려버린 얼굴 근육을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혀가 계속 입 밖으로 나와 발음이 샜다.

그저 발가락과 허리를 움찔거리며, 차주원의 혀가 자신의 구멍 안을 휘젓는 음란한 소리를 듣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흐으, 으응…… 제발-”

차주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구멍과 회음부를 빨았다. 성감으로 인해 발갛게 달아오른 분홍빛 회음선을 따라 입술을 찍자 서이연의 작은 발가락이 더욱 곱아들었다. 차주원은 그의 페로몬이 잔뜩 고여있는 사타구니를 핥고 자국을 남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연은 그가 잡아 벌리고 있는 허벅지가 점점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서이연의 발간 성기에서 정액이 핏- 하고 내뱉어졌다.

“아앙…… 흐으…….”

그는 온몸을 벌벌 떨며 엉덩이를 움찔거렸고, 차주원은 자신이 빨아들이고 있는 구멍에서 다시 한번 애액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애액이 구멍 밖으로 질질 흘러 그의 턱을 타고 뚝뚝 흘렀다.

그리고 그가 서이연의 구멍에서 입을 떼고 허리를 세웠을 때 본 광경은, 꽤 구미가 당기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불알까지 받겠는데.”

서이연의 커다란 눈은 나른하게 풀려있었고, 작은 입은 그 안의 붉은 혀가 보일 정도로 벌어져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사슴 같은 목은 땀이 맺혀 번들거리고 있었고, 산호색 젖꼭지는 단단히 서 있었다. 아직 움찔거리고 있는 가는 허리와 묽은 액을 힘겹게 토해내고 있는 말랑한 성기, 넓게 벌어져 떨리고 있는 허벅지까지.

“꽤…… 봐줄 만하네.”

차주원은 입 주변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내며 말했다. 서이연의 구멍에서 샌 번들거리는 액체가 손등에 묻어났다.

“저, 전무님…….”

서이연은 오르가즘의 여운에 몸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왜. 못 하겠어?”

차주원이 벨트를 풀어내며 물었다. 철컥철컥. 이연은 금속이 부딪혀 내는 소리에도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힘겹게 허리를 세워 앉았다.

“러트는, 러트는…… 아파요?”

서이연은 처음으로 남에게 성기를 빨리자 괜히 자신의 다짐이 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스폰서를 위해서는 어떤 아픔도 참고,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할 거라는 다짐. 이 정도의 쾌감을 앞으로도 계속 느껴야 한다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무겁고 낯선 자극이었다.

“너 맷집 좋다며.”

차주원은 어쩐지 펠라를 받고 의기소침해진 것 같은 서이연에게 차갑게 말했다.

“네…… 근데 마음의 준비는 하려구요…….”

“글쎄. 좋아서 기절한 사람도 있었고, 살려달라고 빈 사람도 있었고.”

그 말에, 서이연이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흐윽…… 저, 저도, 빌어도 돼요? 흐으…….”

“빌어도 못 멈춰.”

풀이 죽은 성기마저 파르르 떨며 훌쩍이는 이연에게 차갑게 일갈하는 차주원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차주원은 러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몸을 지배하는 게 싫었다. 예를 들면, 오메가의 페로몬 같은 게.

감히.

우성 알파로 태어나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우성 알파는 일반 알파보다 자제력이 꽤 높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월등한 힘과 체력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러트 기간에는 오메가에게 너그러워지기도 했다. 아마 일반 알파처럼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가는 죽일 수도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러트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서 훌쩍이는 이 오메가가 자꾸 신경이 쓰이고, 저 부드러워 보이는 볼에 손을 대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건.

“힘 빼지 말라고 했잖아.”

“아까, 아까처럼, 다정, 하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서이연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

차주원은 그의 작은 손 밑의 푹 젖은 속눈썹에 시선을 두었다. 몇 가닥은 눈 밑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고, 몇 가닥은 눈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넌.”

차주원의 엄지가 서이연의 왼쪽 눈가를 쓸어 눈물을 닦아냈다.

“놀랄 거야.”

그는 솜털이 다 보이는 서이연의 볼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빨갛고 도톰한 입술을 매만졌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무른지 알게 되면.”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달뜬 신음이 서로의 입 안을 드나들었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허리를, 서이연은 차주원의 목덜미를 꼭 안고 있었다. 닿아도 닿아도 서로의 페로몬이 모자라 집착적으로 몸을 더욱 가까이 붙여야만 했다. 빨간 점막에 피멍이 들 정도로 세게 빨아들여야 했다.

“흐읍.”

차주원이 이미 오래전부터 발기해 있던 성기를 서이연의 내벽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의 혀가 이연의 입천장을 쓸었을 때였다. 이연은 부르르 떨며 허벅지를 살짝 벌렸고, 차주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귀두를 붙였다.

“하아…… 전무님, 천, 천히…….”

“이렇게 젖었는데, 빠듯한 것도 이상하네.”

“오, 오늘은, 더, 큰 것 같아, 요…….”

“그럴 리가.”

차주원은 피식 웃었고, 그의 미소를 본 서이연도 그를 따라 살포시 웃음 지었다.

“흐읏.”

거대한 성기는 한 번에 뿌리 끝까지 밀려 들어왔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페로몬을 갈구하듯 그의 입술과 목선, 쇄골과 가슴에 입 맞추기를 멈추지 않았다. 바짝 서 있는 산호색 젖꼭지가 차주원의 이 사이에서 뭉개졌다.

서이연은 만약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섹스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게 내벽 안을 자극하는 성기와 계속해서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손길, 오늘따라 너무나 안정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페로몬까지.

“전무님, 안아 주세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목덜미에 팔을 감으며 말했고, 차주원은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그의 행동에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엉덩이를 받쳐 들었다.

“아흐…….”

허공에 들리자 삽입이 더욱더 깊어졌다. 더군다나 아직도 바지 지퍼만 연 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그에게 나체로 안겨 있으려니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심지어 차주원은 셔츠 단추 하나조차 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서이연은 그에게 더욱 몸을 붙였다. 그의 목덜미를 꼭 껴안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꽁꽁 감았다.

“저, 너무 좋아요. 전무님이, 너무 좋아요…….”

“…….”

“전무님 덕분에, 연기도, 계속하고, 칭찬도 받고…… 너무 좋아요…….”

“…….”

차주원은 서이연을 안고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목 근처를 약한 숨결로 간지럽히며 중얼대는 것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너무, 좋아요…….”

“……뭘 믿고 그런 고백을 해.”

차주원은 서이연을 침대에 눕히고, 그의 얼굴 옆을 손으로 짚었다.

“전무님을 믿고요…….”

“내가 어떤 놈일 줄 알고 믿을까.”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한없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지던 때,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만 싶었을 때, 그가 자신을 살려주었다. 다시 연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서이연에게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차주원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에는.

“너는 어때. 내가 보기엔 넌 나쁜 쪽인데.”

차주원이 부드러운 허릿짓을 시작했다. 커다란 성기가 내벽 안을 꽉 채우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하으…… 전, 전,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쁜 사람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아는 서이연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

차주원은 서이연의 선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에게로 몸을 숙였다. 성기가 내벽을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고, 서로의 입술이 포개졌다.

부드럽지만 집요한 키스였다. 차주원은 좁은 입 안을 쓸고, 목구멍까지 혀를 박아넣기를 반복했다. 숨이 부족해진 이연이 어깨를 밀어내도 소용없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을 때까지, 당장이라도 산소를 들이마시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차주원은 입술을 물리지 않았다.

이연은 그의 넓은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위로는 집요한 키스를, 아래로는 격렬한 허릿짓을 견뎠다.

“아앙…… 흐으…….”

굵은 성기가 계속해서 전립선을 짓눌렀다. 이연은 허리를 뒤틀며 조금이라도 엉덩이를 뒤로 빼려 했으나, 이미 그의 하얀 허벅지는 차주원의 커다란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다.

차주원은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서이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성기를 쾅쾅 박아넣었다. 그의 눈이 까뒤집히고, 드러난 붉은 혀 아래로 침이 질질 흐를 때까지.

서이연은 이제는 꼼지락거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축 늘어져 엉덩이만 움찔대고 있었다. 그리고 차주원이 작게 벌린 그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 붉은 혀를 꾸욱 눌렀을 때, 서이연이 허리를 뒤틀며 정액을 싸 냈다.

“흐으…… 으응…….”

차주원은 가는 허리가 뒤틀리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번처럼 막아줘야 하나…… 왜 이렇게 빨라.”

그는 묽은 액을 싸 내고 있는 서이연의 통통한 성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튕기며 말했다. 성기가 튕길 때마다 정액이 옆으로 튀었다. 사정 중 성기를 맞자 자극이 강한지, 이연의 신음이 가빠졌다.

“흐읏…… 마, 마그면, 안 돼요…….”

아직 혀를 정리하지 못한 이연의 발음이 샜다.

“왜.”

“벌어, 졌단 말이에요… 오줌, 오줌 싸는 시간, 줄었단, 말이에요…….”

“……하.”

차주원은 정액을 다 싸 낸 서이연의 성기를 잡고, 요도 구멍을 살폈다. 매끄러운 분홍빛의 귀두 사이에 숨어있는 요도 구멍은 여전히 개미 눈물만큼 작았고, 꽉 다물려 있었다.

“…….”

그의 피해망상에 대답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한 차주원은 천천히 귀두를 구멍 가장자리까지 물린 뒤, 뿌리 끝까지 한 번에 처박았다.

“하윽!”

차주원은 성기를 움직이지 않고 내벽 안의 조임을 느끼기만 했다. 축축한 내벽이 성기를 꽉 잡고 있는 듯했다. 방금 사정한 탓에 빠듯한 느낌이 드는 내벽이 벌벌 떨리며 성기를 조였다.

“힘 빼.”

그는 서이연의 무릎 뒤에 손을 넣고, 다리를 활짝 벌렸다. 말랑해 보이는 성기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작은 불알도 마찬가지로 훤히 드러나며 흔들렸다. 서이연은 다리가 벌어짐에 따라 성기가 더욱더 깊게 파고들자 고개를 젖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흐…… 으응.”

차주원의 음모가 그의 회음부에 꾹 눌렸다. 여린 살 위에 까슬한 음모가 짓눌러지자, 이연은 따가움에 내벽을 조였다.

“너무, 깊어요…… 흐으.”

굵은 성기가 내벽 안을 거칠게 드나들었다. 서이연은 방금 사정한 탓에 예민해진 내벽을 찔러오는 성기를 더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차주원의 단단한 어깨를 손으로 밀어냈다.

“어딜.”

그러나 차주원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이연의 양 손목을 한데 모아 올려잡고, 허릿짓을 계속했다. 서이연은 체모가 없는 겨드랑이를 훤히 드러낸 것이 부끄러운지 꼼지락거렸지만, 손목을 넉넉하게 조여 잡고 있는 단단한 손은 미동도 없었다.

“흐으…… 안 돼, 방금 쌌어요…….”

“신기하네…….”

차주원이 뽀얀 겨드랑이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솜털이 바짝 서 있었다.

“흐읏…… 으응…….”

“원래부터 이랬어?”

서이연은 엄지로 겨드랑이를 살살 쓰는 차주원의 행동에 몸을 뒤틀며 저항했지만, 차주원은 성기를 더욱 조여오는 내벽의 반응에 입꼬리를 올렸다.

“겨드랑이 만져주는 게 좋나 봐. 끊어먹으려고?”

“간지러워요…… 놔주세요…… 히익!”

갑자기 전립선을 쾅 받아버리는 그의 성기에, 서이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차주원은 곧게 드러나는 그의 가느다란 목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서이연의 목과 겨드랑이에서 진한 오메가 페로몬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러트인 알파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야한 향기였다.

차주원의 콧대가 이연의 겨드랑이 사이에 파묻혔다. 코와 입을 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빨아 자국을 남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흐…… 빠, 빨지 말아요…….”

차주원이 아플 정도로 겨드랑이를 세게 빨아버리는 바람에, 이연은 수치스러움과 자극을 동시에 느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손목을 단단히 잡고 있어 팔을 내리지도 못해 더욱더 부끄러웠다.

“하아…… 힘 빼. 아플 거야.”

차주원은 서이연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던 손을 풀고, 그의 가는 허리를 꽉 잡았다. 이제야 겨드랑이를 감출 수 있음에 안심한 서이연이 자유로워진 팔을 살짝 내린 그 순간이었다.

“아흑! 아아! 저, 전무님……!”

내벽 깊숙이 박힌 그의 성기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깊은 곳에서부터 그의 성기가 커지는 감각에, 서이연은 다리를 버둥대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이게 뭐예요! 흐윽.”

차주원은 공포에 젖어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서이연을 품에 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힘주지 마. 괜찮아.”

“흐으, 아파, 아파요…… 빼주세요.”

서이연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도 필사적으로 허리를 세우며 그의 단단한 복근을 밀어냈다. 그의 성기가 점점 커져 내벽을 한꺼번에 짓누르고 있었다. 전립선까지 한꺼번에. 서이연은 숨이 막히도록 입과 코로 밀고 들어오는 농도 짙은 알파 페로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아…… 서이연.”

“흐으… 배, 꽉, 찬단 말이에요… 안 돼, 빼주세요…….”

실제로 엄청난 양의 정액이 내벽에 쏟아부어지고 있었다. 정액 한 방울도 새어 나갈 길 없이 구멍을 꽉 막은 채 정액을 내보내는 그의 성기로 인해, 서이연은 마치 자신의 배가 부푸는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는 차주원이 허릿짓을 하지도 않는데 계속 전립선이 자극되는 느낌에 발끝을 세우며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해.”

“흐으…… 어, 어떡해, 오줌…… 흐윽, 화장, 실…….”

서이연은 엉덩이를 움찔대며 중얼거리더니, 한순간 축 늘어져 몸에 힘을 뺐다. 차주원이 서이연의 성기에서 내뿜어지는 맑은 액체를 눈에 담은 것은, 자신의 어깨를 밀어내던 그의 손이 침대 위로 툭 떨어진 순간이었다.

“아앙…… 흐으, 흐응…….”

서이연은 다리를 훤히 벌린 채 축 늘어져 맑은 액체를 싸 냈다. 차주원의 성기를 힘겹게 물고 있는 구멍 주위, 사타구니만이 덜덜 떨려왔다. 서이연은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방금 갔는데 또 싸면 어떡해.”

“흐윽…….”

“이렇게 물이 많아서야…….”

차주원은 조금은 즐거워 보이는 기색으로 서이연의 성기를 톡톡 튕겼다. 아직도 맑은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는 분홍빛 성기가 그의 손길에 파르르 떨리며 흔들렸다.

무언가를 싸 내고 있는데 성기를 건드리는 자극에, 이연은 자지러졌다. 얼굴을 가리고 덜덜 떠는 그의 발가락이 곧게 펴졌다. 더는 성기에서 액체가 나오지 않자, 이연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훌쩍였다.

“흐으…… 오늘, 흐윽, 새 옷 괜히 입고, 왔어요…….”

“무슨 말이야, 그건 또.”

“저, 저, 지금, 하나도… 안, 멋있잖아요…….”

“…….”

차주원은 서이연이 자신에게 한 번도 멋있게 보였던 적이 없었다는 말은 조용히 삼켰다. 평소였다면 그대로 말을 뱉었을 텐데, 정말이지 러트는 여러모로 성가시다.

“흐으… 이제, 이제, 오줌도, 쌌어요…….”

“…….”

“다, 다 망했어요…….”

“……뭐가 망했는데.”

서이연은 차주원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듯 나지막이 물어오자 더욱더 서러워졌는지 크게 울음을 토해냈다. 차주원은 놀라 그를 품에 안으려 했지만, 서이연은 반항하듯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물론 두 번이나 연속으로 싸버린 탓에 어깨를 밀어내는 손길은 솜방망이보다 못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서럽게 우는 그를 보자 괜히 신경이 쓰였다.

차주원은 품 안에서 계속 훌쩍이며 자신을 밀어내는 서이연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등을 매만져 주자, 그는 천천히 버둥거림을 멈추고 몸을 잘게 떨기만 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축 처져 움찔거리는 서이연을 보자, 차주원은 괜히 눈물로 젖은 그의 볼에 입을 맞춰주며 그를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미쳤구나, 차주원.

이제껏 러트 때 오메가와 잠자리를 가질 때는 한 번도 노팅을 할 만큼 이성을 잃은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잃었다기보다는 그냥 서이연의 새하얀 겨드랑이와 가는 목에서 풍겨오는 페로몬을 맡고 있었을 뿐인데 의식하기도 전에 성기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차주원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원래의 크기로 돌아온 성기를 빼냈다.

주먹만 한 귀두가 빠져나가자, 구멍에서 점도가 높은 하얀 액체가 왈칵 터져 나왔다.

“으으으…….”

서이연은 허리를 뒤틀며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성기가 빠져나가며 내벽을 긁는 감각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작은 발로 시트를 밀기도 하였다.

차주원은 정액으로 푹 젖어있는 자신의 성기와 서이연의 구멍 주위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뭐…… 러트 페로몬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물이 많은 것 같은데.

자신의 아래에 누워있는 서이연은 발갛게 익은 자두 같았다. 즙이 너무 많아서 다 빨려버린, 그런 자두.

차주원은 이제껏 걸치고 있었던 정장을 모두 벗어낸 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침대 위에 훌쩍이며 늘어져 있는 서이연을 몸 위에 올리고, 품에 안은 건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가슴팍에서 전해져오는 부드러운 볼살의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명치 쪽에서 느껴지는 오메가의 심장 박동도. 젖은 그의 머리칼에서 풍겨오는 순한 땀 냄새도, 양손에 딱 맞게 차는 통통한 엉덩이도. 모두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차주원은 서이연에게서 흘러나오는 작은 목소리에, 또 한 번 냉담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봐야 했다.

“흐으…… 저, 으, 은퇴 안, 할 거예요… 안 돼요…….”

“무슨 소리야.”

“흐으…… 안 돼…… 아기 안 돼요…….”

서이연은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

“흐으…… 안 돼…….”

“너 히트야?”

차주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서이연을 향해 짜증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흐윽. 아니, 아닌데요…….”

“……성교육 시간에 뭐 했는데.”

“……아기, 안 생겨요?”

“어.”

“……노티, 노팅, 하셨잖아요…….”

“알파가 러트일 때 히트인 오메가에게 노팅하면 확률이 높지.”

“…….”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저는…….”

“네가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게 뭔지 궁금하네.”

차주원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 쉬듯 말했다.

“저는, 저는, 안마, 하는 방법이랑…….”

서이연은 차주원의 단단한 가슴에 붙이고 있던 볼을 떼고 눈을 맞춰왔다.

“안 궁금하니까 그만해.”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차주원의 차가운 눈동자뿐이었지만.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왜. 싸고 나니까 말대꾸할 자신감이 좀 생겨?”

그는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서이연에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싸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는 거예요…?”

“…….”

차주원은 더는 입을 열고 싶지 않아 그를 외면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이연은 그의 가슴에 볼을 비비며 슬쩍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의 눈치를 보며 살짝 손을 잡기도 했다.

“전무님…… 저 영화 찍는 거 너무 재밌었어요…… 저 칭찬도 들어봤어요. 감독님한테요. 영화랑 광고 덕분에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너무 좋아요.”

“…….”

“그런데…… 그래도 전무님을 만나게 된 게 제일 좋아요.”

“…….”

그는 차주원의 허리를 양팔로 끌어안고 가슴에 고개를 묻어 얼굴을 숨기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작게 웅얼거렸다. 가만히 그의 체향을 맡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진심을 고백할 용기가 났다.

“저도 저 멍청한 거 알아요…….”

서이연은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를 뱉었다.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러트 페로몬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그리고 차주원은 그 여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불쾌함을 느꼈다.

“자꾸, 까먹고…… 잘 이해 못 하고…… 그런 거 알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

“전무님이 부족한 저한테,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차주원은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고 얼굴을 숨기고 있는 서이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가 부끄러운지 계속 얼굴을 숨기고 있는 동그란 정수리가 웃기지도 않았다. 멍청하다니. 그리고 그걸 알고 있다니. 잘도 그런 말을 내 앞에서 하다니.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지껄여 봐.”

의식하기도 전에 딱딱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차주원은 천천히 고개를 드는 서이연의 겁먹은 듯한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자, 더욱 기분이 더러워지는 걸 느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서이연은 갑자기 평소대로 돌아온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처진 눈매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

풀죽은 얼굴로 대답한 이연이, 다시 단단한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하아…….”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리는 차주원의 얼굴에 답답한 기색이 서렸다. 어서 이 귀찮은 러트가 끝나기를 바랐다. 이 변덕스러운 오메가의 페로몬에 함께 휘둘리려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따뜻해요…….”

그러나 서이연은 언제 기가 죽었냐는 듯 다시 말을 걸어왔다. 슬쩍 가슴에 손을 올려 살살 문지르기까지 하는 그에게서 시무룩한 기색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차주원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넌 부드러워.”

“헤헤…….”

순하게 웃는 서이연의 눈매가 곱게 접혔다. 처진 눈꼬리가 둥글게 휘어지는 듯했으나, 커다란 눈은 곧 졸린 기색을 담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차주원은 오메가가 자신의 가슴팍에서 고롱고롱 잠이 들 때까지 가만히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 자신조차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

서이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커튼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폭신한 침대 위에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있던 그는 차주원의 페로몬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베개 위에 얼굴을 비볐다.

“전무님…….”

서이연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를 찾았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침실 안의 욕실을 확인한 후, 조심히 방문을 열고 나가 복도를 걸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그의 하얀 발바닥 아래 밟혔다.

“전무님…….”

서이연은 전면 유리창 밖으로 정원이 보이는 거실과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주방까지 모두 탐색했지만 찾을 수 없는 그의 모습에 엄마 잃은 강아지처럼 낑낑댔다.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다 어제 차주원이 앉았던 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가 출근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면서도 자신을 깨워 내쫓지 않았다면, 이 집에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일까.

“배고파…….”

일단 서이연은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그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그와 함께 저녁을 먹는 건 어떨까.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잘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이연은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혹시 몰라 챙겨온 티셔츠와 반바지를 백팩에서 꺼내 입었다. 그의 집에서 하루를 지새우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옷으로 가져온 옷이었는데, 정작 잠을 잘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이연은 새삼 그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볼을 붉혔다.

어젯밤의 잠자리는 뭐였을까. 세간에 알려진 알파의 러트는 심한 수준으로 왜곡된 게 아닐까. 이렇게나 좋았는데. 어제의 다정한 그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지만, 너무나 포근했다.

“헤헤…….”

그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던 것이 생각나 실없이 웃음을 터뜨린 서이연은, 주방으로 가 냉장고 안을 살폈다.

“와…….”

냉장고에는 온갖 음식 재료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알고 보면 남자는 요리하는 걸 꽤 즐기는 편일지도 모른다.

서이연은 그 음식 재료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용인이 채워놓은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들 재료들을 꺼냈다.

밥솥에 밥이 없어 급하게 쌀밥을 조금 안친 후, 돼지고기를 볶았다. 김치도 함께 볶다 쌀뜨물을 넣은 후 국이 끓기를 기다리며 계란말이를 준비했다. 당근과 파를 썰어 넣은 두툼한 계란말이가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져 기분이 좋아진 서이연은 그 위에 케첩을 하트 모양으로 조심스레 뿌렸다.

“오늘은 다 잘되려나 봐…….”

그러나 뿌듯한 얼굴로 계란말이를 바라보던 이연은, 갑자기 누군가 현관문을 벌컥 여는 소리에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설마 전무님이 벌써 퇴근하신 걸까?

토독토독-

이연이 맨발로 대리석 바닥 위를 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러나 그가 현관에서 마주한 남자는, 어젯밤 자신을 품에 안고 토닥여준 다정한 알파가 아니었다.

“너 뭐야.”

“……누구세요?”

그는 차주원처럼 길고 커다랬지만,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짙은 흑발인 그와 달리 머리카락이 조금 밝은색이었지만, 피부색은 그와 마찬가지로 희었다. 확연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날 선 눈빛만큼은 왠지 모르게 차주원과 느낌이 비슷했다. 이상한 점은 그가 큰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의심스러운 행색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의 집에서 뭐 해? 도둑인가.”

서이연은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을 낯선 이가 내뱉자, 폴짝 뛰며 반박했다.

“도둑, 아닌데요! 그쪽이야말로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예요?”

차도윤은 차주원의 페로몬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오메가가 털을 세우며 자신을 경계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형 취향이 이런 오메가였다니. 꽤 의외네.

“…….”

“왜, 대답, 대답 안 해요?”

차도윤은 짧은 반바지 밑의 새하얗고 곧은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주제에 앙칼지게 눈을 치켜뜬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차주원 어딨어?”

“……전무님은 왜 찾으시는데요.”

“요즘 세상 무섭네. 동생이 형 찾는 것도 안 되나.”

“……동생이요?”

전무님의 동생이라니. 눈빛이 조금 닮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가족이었을 줄이야.

“어. 그나저나…… 몇 살이야?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지?”

“저, 스물여섯이에요!”

서이연은 그쪽이야말로 어려 보이시는데, 왜 첫 만남부터 무례하게 반말을 하세요?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감히 스폰서의 동생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연상이네? 음…… 그럼 존댓말 해야 되나?”

“……그, 그럼 좋죠…….”

“그럼 그럴게, 형.”

씨익 웃으며 친한 척을 하는 그의 태도에, 서이연은 생각보다 그가 무례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으, 응…… 그래…….”

서이연은 그의 존댓말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놓고는, 스스로 놀라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바로 말을 놓아버리면 저 사람과 다를 바 없어지는 건데…….

“편하게 말하니까 좋네요.”

차도윤은 작게 웅얼거리는 서이연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미국에서 입국하고 바로 본가로 가기 싫어서 찾아온 건데, 형이 떡하니 오메가를 숨겨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 발그레한 볼을 보니 꽤 괴롭힐 맛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백미 고압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치치--]

“…….”

“…….”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알림음에, 차도윤과 서이연의 눈이 마주쳤다.

“……밥했어요?”

“응…….”

“같이 먹어도 돼요? 점심 못 먹었는데.”

불과 세 시간 전 일등석 기내식을 먹은 차도윤은 그 사실을 숨긴 채 뻔뻔하게 말했다.

“응? 응…….”

차주원의 동생이라면 밥을 같이 먹지 못할 이유도 없어, 서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손만 씻고 나올게요, 그럼.”

차도윤은 커다란 캐리어를 거실 한쪽에 놔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서이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괜히 오늘 잘된 식사를 칭찬해줄 누군가가 생긴 것이 기쁘기도 했다. 음식을 바로 해서 따뜻하게 먹는 거라, 분명히 맛있다며 칭찬을 해줄 것 같은데, 정말로 그러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와. 계란말이네? 하트 모양까지 그렸네?”

부엌으로 들어온 차도윤이 의자를 빼 식탁에 앉으며 장난스레 웃었다.

“응…… 이쁘지……?”

서이연도 살포시 마주 웃으며 괜히 계란말이를 차도윤 쪽으로 밀어주었다.

“김치찌개예요? 한식 먹고 싶었는데.”

“방금 한 거야.”

서이연은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를 시작했지만, 차도윤이 김치찌개를 한 번 떠먹을 때마다,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밥을 한입 떠먹을 때마다 눈동자가 따라가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큭…… 아, 요리 정말 잘하네요, 형.”

서이연의 커다란 눈이 자신의 수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눈치챈 차도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칭찬 하나 받았다고 곧바로 붉어지는 볼이 우스웠다. 형이 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차도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응? 정말……?”

“계란말이는 부드럽고, 김치찌개는 얼큰하고. 진짜 맛있네요.”

“고마워…….”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이미 서로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 묻기엔 꽤 늦은 질문이긴 했지만, 그저 차주원의 일회용 장난감이라 생각했던 좀 전과 달리 차도윤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난 서이연이야. 차주원 전무님에게 스폰 받고 있어. 직업은 배우야.”

“아…… 반가워요. 난 차도윤.”

보통 스폰 받는 건 숨기지 않나? 차도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스폰 받는 배우라 소개하는 그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이연은 처음 보는 차주원의 동생과 이렇게 식사를 하고 있자니, 마치 스폰서와 좀 더 친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차도윤과의 식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국 캠퍼스 라이프를 들으며 마무리되었다.

그는 서이연에게 자신이 미국 대학을 다니다 휴학한 후, 한국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볼을 붉히며 은근슬쩍 미국의 대학 생활에 관해 물어보는 서이연에게 이것저것 대답해주다 보니, 어느새 둘은 차도윤이 미국에서 가져온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걔가 샐린 전 남자친구라서요.”

“하지만,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랑 사귀면 안 되는 거잖아…….”

“전 남자친구이긴 하지만…… 뭐, 걔네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치만…… 애인이 있는데 바람도 피웠다며.”

“흔한 일이죠.”

“……그럼 샐린은 어떡해?”

“술 먹고, 클럽에서 춤추고, 마약 좀 하면 괜찮아지죠.”

서이연은 아침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인 차도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서이연에게 대학 생활 이야기는 언제나 꿈만 같이 느껴져 들어도 들어도 모자랐다.

데릭 앞에서 그의 여동생을 들먹이며 성적인 농담을 한 프랭크가 도로 한복판에서 넝마가 되도록 처맞은 이야기는 왠지 통쾌했다. 마크와 제임스 형제 모두와 잠자리를 하다가 들킨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쿵쿵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몇 번이나 목을 축여야 했다.

차도윤은 뻔한 이야기를 들으며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는 서이연이, 이제는 정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반응이 얼마나 즉각적이고 격렬한지, 친구 커플이 싸운 후 각자 다른 사람과 원나잇을 한 얘기를 해줄 때에는 마치 유치원생을 작정하고 울리려고 무서운 얘기를 해주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틀어막는 서이연을 감상하는 차도윤의 얼굴이 즐거움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형이야말로…… 이런 이야기, 익숙하지 않나?”

차도윤은 소파에 완전히 기대 턱을 괴었다.

“연예계에 비하면 이런 얘기들, 어린애들 장난 같지 않아요?”

“아니……? 장난 같지 않아…… 난, 아직 이쪽으로 친한 사람은 많이 없어서…….”

단역만 맡아왔던 서이연에게 주연 배우들의 사생활은 아주 먼 얘기였다. 촬영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말이 돈다 해도, 서이연은 굳이 끼지 않은 채 눈치만 보았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수다를 가장한 뒷말에도 참여하지 않는 단역배우 서이연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전무님 덕분에, 이제 좋은 분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 것 같아…….”

“형이 밀어주는 거면, 잘 되겠죠. 세원인데. 그렇죠?”

“응…… 짱이야.”

서이연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오메가였다. 차도윤은 성격 더러운 우성 알파한테 걸린 불쌍한 오메가를 내려다보며 슬쩍 웃었다.

“어제 형한테 페로몬 샤워라도 받았어요? 몸에 그렇게 범벅을 하고 돌아다니면, 안 불편해요?”

“좀, 나른하긴 해…… 그런데 어제는 전무님이 러트여서…… 어쩔 수 없었어. 진짜…… 좋았구…….”

차도윤은 볼을 붉힌 채 손을 꼼지락대는 서이연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아. 형 섹스 얘기는 별로 안 듣고 싶은데.”

차도윤의 얼굴에 드러난 날카로운 기색에, 서이연은 아차 싶었다.

“미안…… 네 형인데, 내가 미안해…….”

서이연은 괜히 자신이 데릭 앞에서 그의 여동생 얘기를 꺼낸 못된 프랭크가 된 기분이라 면목이 없었다.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섹스 몇 번 했다고 벌써 변한 걸까……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서이연이 조용히 자책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낯선 이의 체향이 훅 느껴졌다. 차도윤은 기척도 없이 얼굴을 들이민 채 서이연의 새하얀 목에 코를 묻었다.

“얼마나 묻혀놨으면…… 오메가 페로몬이 안 느껴질 정도네. 궁금한데.”

목에 입을 가까이 댄 채 말하는 그의 입술 표피가 자꾸 목을 건드려서, 서이연은 움찔거리며 목을 물렸다.

“간지러워…….”

차도윤은 목에 손을 갖다 댄 채 몸을 움츠리고 있는 서이연의 목과 볼에 시선을 두었다. 가까이서 보니 뽀얀 피부 위의 하얗고 짧은 솜털이 선명히 보였다.

이게 스물여섯…….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하는 짓이나 말투가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이런 주제에 러트인 우성 알파를 받는다고.

서이연은 자신이 몸을 물렸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눈을 치켜뜬 채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차도윤의 눈빛이 조금 낯설다 생각했다. 마주친 눈동자가 마치 피부를 찌르는 듯해 불편했다.

“도윤아…….”

그러나 차도윤은 서이연이 생각과 말을 끝맺기도 전에 산뜻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전 이제 올라가 볼게요. 형은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아, 응. 난 전무님 기다리려고.”

“알겠어요. 나중에 저랑 밥 먹어요.”

“응! 그러자. 피곤할 텐데 쉬어…….”

“알겠어요. 형 번호만 따고.”

서이연은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가 만지는 차도윤의 옆에서 우물쭈물하며 서 있다가 핸드폰을 다시 돌려받았다.

“번호 저장해놨어요. 연락하면 받아요.”

“응.”

“착하네.”

차도윤은 씨익 웃으며 말을 뱉고는,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이연은 그의 커다란 뒷모습을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주원이 올 때까지 무얼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1. 정원에서 풀잎과 나무 구경하기 (썩은 나뭇잎 떼어내기?)

2. 냉장고 안의 재료로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빵 만들어 보기

3. 욕조에서 이불 빨래하기

4. 감사의 표시로 따뜻한 집밥을 준비해놓고 전무님 기다리기 (전무님이 들어오면 앞치마를 두른 채 밝게 웃으며 반긴다.)

“……마지막이 괜찮은데……?”

서이연은 빠르게 결정을 마친 후 몇 시간 동안 인터넷에서 집밥 메뉴와 레시피를 찾아보다 본격적으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부엌 서랍 구석에서 하얀 배경에 분홍색 꽃들이 그려진 앞치마 하나를 찾은 서이연은 앞치마를 야무지게 챙겨 매고 요리를 시작했다.

*

집으로 발을 디뎠을 때, 차주원은 평소와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항상 차갑게 가라앉아있던 공기가, 따스함과 부산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거기에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까지.

“난, 맛있는 거 같은데…….”

“좀 밍밍해요.”

“미국인들은, 짜게 먹는다고 들었어…….”

“나도 한식 먹을 줄 알거든요.”

“삼삼하고 담백한 건데…….”

“밍밍하다니까요.”

“차도윤.”

웅얼거리던 목소리와 즐거운 듯한 목소리 사이로, 낮고 무감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형.”

“전무님!”

서이연은 차주원을 보자마자 집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차도윤은 커다란 눈을 곱게 접고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달려가는 서이연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엉덩이에서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게 보이는 듯했다.

“전무님, 언제 오셨어요…… 마중 나가고 싶었는데…….”

차주원은 자신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볼을 붉히는 서이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표정 없는 얼굴이 차도윤을 향했다.

“아, 말하자면 긴데…… 말해야 돼?”

그는 귀국하여 형의 집으로 말없이 쳐들어온 게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응수했다. 오랜만에 본 형은 여전히 경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오늘은 혐오도 한 가닥 비치네.

“됐어. 들으나 마나 시답잖은 이유겠지.”

차도윤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재혼했을 때부터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차주원은 오늘따라 그가 평소와 다르게 거슬린다 생각했다. 러트일 때 다른 알파가 자신의 영역에 비집고 들어온 터라, 꽤 비위가 상했다.

“오늘 집에 왔는데 이연이 형이 있더라고. 형이 점심도 만들어 주더라.”

서이연을 형으로 지칭하는 차도윤의 말에, 차주원의 가지런한 눈썹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살짝 꿈틀댔다.

“네, 제가 김치찌개랑, 계란말이 해서 같이 먹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전무님이 없어서요…… 그런데 전무님, 제가 저녁 만들었는데 같이 드실래요? 된장찌개 방금 끓였는데…… 맛있는 것 같아요.”

이연이 차주원의 손을 살짝살짝 주무르며 말했다. 차주원은 손에 닿는 서이연의 보드라운 손바닥의 감촉에 눈을 살짝 찡그렸다.

“생각 없어.”

차주원은 고요하고 낮은 목소리로 거절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여전히 시선 한 톨 받지 못한 채 손이 뿌리쳐진 이연의 눈망울을 울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차가움이었다.

“배고프실 텐데… 저녁 드시고 오셨어요?”

그러나 서이연은 이 층으로 향하는 차주원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말을 걸었다. 여전히 그는 아무런 대답도 내어주지 않았지만.

“피곤하실 텐데 푹 쉬세요… 전무님, 그런데 씻고 나오시면, 제가 안마해드릴까요?”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정장이 걸쳐진 넓은 등을 바라보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걸어보는 서이연은 마치 준비된 노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적어도 차도윤이 보기에는 그랬다.

“…….”

서이연은 차주원을 쫓아가다, 그가 계단을 밟고 오르자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돌릴 뿐이었다.

“형, 우리끼리 먹을까요?”

차도윤은 서이연의 축 처진 어깨에 손을 감으며 말했다. 한쪽 팔 아래 쏙 들어오는 오메가의 몸에는 딱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배고프지……? 근데 요리는 거의 다 됐으니까, 너 혼자 먹어. 간장 더 넣어도 돼…….”

서이연은 축 처진 눈망울을 숨기지도 못한 채 순하게 대답했다.

“형은 안 먹을 거예요?”

“아…… 내가, 너무 오래 있어서, 전무님 화나셨나 봐…… 나 이제 집에 갈래.”

“형, 꼭 차주원 전용 노예 같아요. 왜 그렇게 굽실대요?”

차도윤은 일부러 서이연의 신경을 긁을 만한 말을 내뱉었다. 그가 어떻게 반응할까 탐색하는 듯한 뱀 같은 눈빛이 서이연의 매끈한 볼을 훑었다.

“어……? 나 굽실댄 적 없는데…… 그리고 나 노예 맞아.”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차주원에게 굽실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애원하고, 부탁하기는 했어도 지금은 그저 그에게 조금이라도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뭐라고요?”

차도윤은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없는 서이연의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물었다.

“노예 맞잖아…… 책에서 읽었는데, 이 사회에서는 다 노예래.”

“……풉.”

“왜 웃어…….”

“그럼 형이 주인인 건가.”

“아, 나 그거 연습했었는데…….”

“연습?”

“응…… 막 잠자리할 때 주인님 그러는 거.”

“형은 섹스도 연습하고 해요?”

“응? 나한텐 일이잖아…… 잘해야 계속 연기할 수 있어.”

섹스를 잘해야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며 태연하게 말하는 서이연의 얼굴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순진했다.

“형. 섹스 잘해요?”

“아니…… 전무님이 잘해.”

“…….”

서이연은 차도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지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또 한 번 프랭크 같은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는 자책이 머릿속을 꿰뚫었다.

“아, 미안…… 나 왜 이러지…… 나 진짜 집에 갈게…….”

서이연은 어쩔 줄 모르며 주섬주섬 가방을 찾았다. 어제 가져온 백팩을 메고 핸드폰을 챙긴 후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커다란 손이 어깨를 잡아챘다.

순식간에 뒤로 돌려진 서이연은 어느새 허리를 굽혀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는 차도윤과 눈을 마주했다.

“형. 나도 섹스 잘하는데. 나랑도 해 볼래요?”

그는 매혹적인 미소를 얼굴에 건 채 속삭였다. 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에 서이연은 볼의 솜털이 다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보고 클레어가 되라는 거야……?”

그는 마크와 제임스 형제 모두와 잠자리를 한 클레어처럼 행동하기는 싫었다. 더군다나 스폰서 계약을 맺은 건 차주원뿐이니, 그가 요구하지 않는 이상 차도윤과 잠자리를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음…… 그건 아니고. 형이 나랑 자보고 싶으면.”

차도윤은 씨익 웃으며 서이연의 커다란 눈망울과 기다란 속눈썹을 훑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하하. 알겠어요.”

“응…… 이제 놔줄래……? 나 집에 갈래.”

서이연은 자신의 허리에 손을 감은 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차도윤에게서 벗어나려 그의 팔뚝을 잡고 밀었다.

“잠깐만.”

차도윤의 커다란 손이 서이연의 허리 뒤를 슬쩍 매만졌다. 그는 옆구리를 쓰는가 싶더니, 앞치마의 매듭을 풀어냈다.

“벗고 가야죠.”

“응…….”

차도윤이 서이연의 목에 둘린 앞치마를 빼내기 위해 손을 올렸다. 일부러 희고 가는 목과 귓불을 느릿하게 매만졌지만, 서이연은 그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가 앞치마를 빼낼 때까지 가만히 고개를 숙여주었다.

맛있겠네…….

차도윤은 솜털이 돋아있는 서이연의 뽀얀 목덜미를 가만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혀를 대면 단맛이 날 것만 같은 살결이었다.

“연락할게요, 형. 들어가요.”

“응. 만나서 반가웠어…… 저녁 맛있게 먹어. 그리고 혹시나 전무님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으니까, 네가 한 번만 더 물어봐 줄래?”

“하하. 별걱정을.”

차도윤은 차주원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은 생전 처음 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야무지게 백팩을 메고 씩씩하게 정원을 가로지르는 서이연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이 층으로 올라가 차주원을 찾았다.

“형.”

인상을 쓴 채 패드에 시선을 두고 있던 차주원의 얼굴이 방 안에 갑자기 들이닥친 차도윤으로 인해 한층 험악해졌다.

“이연이 형이 저녁 먹을 거냐고 한 번 더 물어보라던데.”

“꺼져.”

차주원은 차도윤을 쳐다도 보지 않고 일갈했지만, 차도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산뜻하게 되물었다.

“걔 언제부터 만났어?”

“하…… 씨발 뭔 좆같은…….”

차주원은 패드를 탁 소리가 나도록 내던지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러트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불안정한 페로몬이 그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나도 써도 돼?”

“야.”

“평소엔 관심도 없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사나워.”

“관심받기 싫으면 눈에 띄지 마.”

“나도 써도 되냐고. 저 오메가.”

“미국에서 굴러먹다 온 더러운 좆이랑 같이 쓰자고?”

“이번엔 양보 안 해줄 건가 보네…….”

동생한테 양보하거라. 어차피 넌 세원을 가질 거잖니. 차주원이 아버지에게 항상 듣던 말이었다. 딱히 물건에 애착이 없었던 차주원은 그렇게 동생이 가지고 싶다는 것은 다 주었다. 어차피 자신은 세원을 가지게 될 테니까.

“이제 그 연기도 지겨워질 때 되지 않았나.”

차주원은 가만히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차도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진짜 내 동생이라도 되는 양 구는 거. 그만하지?”

첩 따라 들어앉은 자식 주제에.

차주원이 생략한 말을 그의 눈빛에서 읽기라도 한 듯, 차도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는 차도윤의 얼굴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빈정거림이 묻어있었다.

“그렇지. 내가 형처럼 고귀한 혈통은 아니지.”

“꺼지라고.”

“그런데 그거 알아? 잡종이 순혈보다 교배는 더 잘 되는 거.”

“교배할 수 있을 때나 그렇지.”

차주원은 표정 없는 얼굴로 신랄한 말을 내뱉었다.

“……하. 좆같은 건 여전하다.”

“이제 그만 나가지? 네 페로몬, 역겨운데.”

“더러운 잡종은 꺼져줄게. 오메가 관리 잘 해봐. 언제 잡종이랑 붙어먹을지 모르잖아.”

차도윤은 그를 도발하듯 능글거렸지만, 차주원에게는 한낱 어린 알파의 우스운 치기일 뿐이었다.

“먹어봐. 다치는 건 네 쪽이 아니겠지.”

피식 웃으며 말하는 차주원의 태도에, 차도윤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너 아직도 섹스할 때 목 조르냐?”

차주원이 섹스할 때 목을 조르는 걸 즐긴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와 붙어먹은 오메가들이 세원 후계자와 섹스했다는 것을 자랑처럼 늘어놓으며 얘기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핏줄 돋은 커다란 손으로 어떻게 목을 졸라주었는지 묘사하며 황홀해하는 오메가들은 서이연 같은 순진한 오메가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글쎄.”

“걔도 진짜 불쌍하다…… 얼마나 운이 없으면 차주원한테 걸리냐.”

“시끄러우니까 꺼져.”

차주원은 그대로 담배를 집어 들고 테라스로 나갔고, 차도윤은 그의 커다란 뒷모습을 노려보다 그대로 방을 나섰다.

차주원은 붉은빛에서 흑색으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퇴근 후 문을 열었을 때 들리던 서이연의 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머무르고 있는 듯했다. 단둘이 있을 때는 한 번도 내지 않던 무른 목소리. 차도윤을 정말 동생이라도 되는 양 대하던 그 모습도 눈꺼풀 뒤쪽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눈을 곱게 휘며 달려오던 그 모습은.

“……씹. 좆같네.”

차주원의 입 밖으로 한숨처럼 흩어지는 하얀 연기가 욕설을 머금고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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