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서이연은 여느 불행한 아이가 그렇듯, 사연 있는 아이였다.
평범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동안 아역배우로 활동하였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보육원에 맡겨진 후로는 그 커다란 눈에 매번 눈물을 달고 살았다.
일곱 살 때부터 열다섯 살까지 보육원에서 지낸 후 입양됐고, 성인이 된 후에는 바로 독립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간직한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청초하고 맑은 얼굴 덕분에 소속사에는 쉽게 들어갔지만, 성공한 배우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줄 없고 돈 없는 서이연은 무수하게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대학생 3, 사무실 직원 5,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행인 2, 주인공이 머무는 하숙집 아들 2 등으로.
그가 스크린에서 가장 길게 내뱉은 대사는 ‘엄마, 수건 어디 있어요?’였다. 이연은 아등바등하며 간신히 연기자의 꿈을 잡고 있었다. 그가 스물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런 그에게, 기회는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찾아왔다.
“너 스폰 받아라.”
“……네……?”
소속사 사장의 부름에 재빨리 회사로 찾아온 이연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인사치레도 없이 불쑥 스폰을 받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약속은 우리 쪽에서 잡아줄 테니까,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 스폰해 달라고.”
심지어 스폰을 받는 것도 아닌, 스폰을 따내라는 요구였다.
“스, 스폰이요.”
“이 스폰 못 따면, 너 그냥 나가라. 단역만 하는 배우는 필요 없으니까.”
서이연은 소속사 사장의 날 선 눈빛을 받으며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대답은커녕 손에 힘을 꽉 주고, 눈물을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
“까칠한 분이니까, 잘해 봐.”
갓 소속사에 발을 들였을 땐, 거절했다. 연기가 하고 싶은 거지, 몸을 팔고 싶은 게 아니었기에. 하지만 아무도 백 없는 서이연을 써주지 않았다. 냉혹한 배우의 세계에서, 매끈한 얼굴과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싫은 일도 해야 한단 것을 깨달은 서이연은, 그렇게 특급 호텔 로비에 발을 디뎠다. 꼭 잡아야 할 마지막 기회를 향한 발걸음이 무던히도 떨렸다.
매니저에게 받은 카드 키를 꼭 쥐고, 룸 앞에 선 이연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짐했다.
잘할 수 있어……!
띠리릭-
방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한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레 눈을 굴리며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디딘 이연은 넓은 실내를 둘러보며 낯선 이를 찾았지만, 방문을 모두 열어보아도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얌전히 소파에 앉아있던 이연의 시선을, 아름다운 야경이 잡아챘다. 감탄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나 전면 유리창 앞으로 다가가자, 다양한 색의 불빛들이 일렁대는 게 보였다.
“와아…… 진짜 이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온몸을 휘감고 있던 압박감과 초조함이 반짝거리는 불빛들과 함께 휩쓸려 사라지는 듯했다.
서이연은 전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손을 짚었다. 그의 커다란 눈망울 위로 야경의 불빛이 반사되며 빛났다.
“높은 데서 보면 이렇구나…….”
서이연은 한참이나 유리창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유리창에서 이마를 뗀 이연이 뒤돌아 낯선 이를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값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였다. 연세가 있는 까칠한 스폰서를 생각하고 있었던 서이연은, 생각보다 아주 젊은 남자의 등장에 얼어붙어 손가락만 꼼지락댔다. 차주원 전무. 서이연이 오늘 만날 스폰서에 대해 아는 것은 이름 석 자와 직급밖에 없었다.
더는 짙을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흑발이었다. 반듯한 이마가 훤히 보이도록 위로 올린 머리는 그의 까칠한 성미를 대변이라도 하듯 한 가닥 흐트러짐도 없었다. 가지런한 눈썹과 짙은 눈매, 그 사이로 깎아지른 듯한 높은 콧대가 마치 고전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였다.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화려한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 굳어 있던 서이연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남자의 얼굴 위로 짙은 피로와 짜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하세요.”
“….”
남자는 날 선 시선으로 서이연을 훑었다. 새까맣고 깊은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못마땅하게 스쳐 지나갔다.
“배우 서이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이연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지만, 남자는 마치 그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 듯 되물었다.
“……서이연이라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굵고 낮은 목소리에, 이연은 더욱 얼어붙었다.
“네. 서이연이에요.”
서이연의 대답에 남자는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소파에 앉아 거칠게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일단 앉아요.”
이연은 그제야 참고 있던 날숨을 뱉으며 빠른 걸음으로 소파에 다가가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이연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내가 그쪽 사장한테 스폰할 생각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짜증이 난 듯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 저, 저는…….”
“이렇게 계속 배우들 들이미는 거 보면 어지간히 급한가 봅니다. 이번엔 남자를 보냈네요.”
“…….”
경멸스러움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서이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꼭 말아쥐고, 입술을 사정없이 짓씹었지만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사장님이 스폰을 따내라며 보낸 자리이기는 했지만, 이미 그가 몇 번이나 거절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번엔 꽤 봐줄 만한 얼굴이기는 한데…… 스폰 생각 없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고 전해줄래요.”
남자는 이연의 얼굴을 핥듯이 훑어보며 말을 늘어놓더니, 결국에는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딱딱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마자, 서이연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 스폰 못 따면, 너 그냥 나가라. 단역만 하는 배우는 필요 없으니까.’
‘우리 이연이, 티브이에 나오니까 엄마가 병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연아, 아빠가 이연이 팍팍 밀어줄게! 이연이가 연기하고 싶으면 계속해보자.’
서이연에게는 연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백만 가지도 넘게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연기를 계속하기 위한 유일한 열쇠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뭐 해요. 안 꺼지고.”
무심한 얼굴을 한 남자의 입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저 이거 해야 돼요. 전무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남자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차주원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오메가에게 시선을 두니, 이미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하.”
“전무님이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어요. 세, 섹스도 잘할게요.”
무자비하고 냉정한 눈동자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눈물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가 오랫동안 마주했다.
“내가 한가해 보이나 봐요.”
피식 웃는 차주원의 입꼬리에, 가벼운 비웃음이 걸렸다.
“딱히 그쪽이 섹스를 잘할 것 같진 않은데. 스폰을 하면 내가 얻는 게 뭡니까?”
“저, 잘해요.”
차주원은 갑자기 달라진 서이연의 당돌한 목소리에 턱을 괴고 미소를 지었다.
“뭘.”
“섹스요. 잘할 수 있어요.”
“그래요?”
“전무님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제가 다 풀어드릴 수 있어요.”
“…….”
차주원은 갑자기 비타민 음료 광고에서나 들을 법한 말을 하는 서이연 때문에 어이가 없어져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제가 섹스로 기분 좋게 해드리고, 안마까지 해 드릴게요.”
“……서이연 씨는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저 다른 재주도 많아요. 그러니까, 놓치시면 안 돼요.”
서이연은 간절함이 넘쳐 곧 흘러내릴 것만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똑바로 맞춰왔다. 과감한 척하고 있지만, 주먹을 꽉 쥔 채 덜덜 떨리고 있는 새하얀 손이 차주원의 시야에 잡혔다.
차주원은 또 한 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짜고짜 허벅지에 볼을 비비며 버클을 풀려고 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남자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안마까지 해 준단다.
이 순진하고 멍청한 색다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이가 없어 계속 그를 비웃었지만, 이렇게라도 얼굴에 웃음 한 조각을 걸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맷집은 좋아요?”
“매, 맷집이요?”
“내 취향이 딱히 부드럽지는 않아서.”
“네, 네. 맷집, 좋아요. 많이 맞아봤어요.”
실제로 서이연은 보육원에서 많이 맞았다. 입양 후에도 양부모에게 맞았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온 것은, 독립을 가장한 도피였다.
서이연의 얼굴 위로 미소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눈앞의 남자가 스폰을 허락해줄 것 같다는 희망찬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연의 커다란 눈이 남자의 모든 움직임을 좇았다.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와, 손에 턱을 괸 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짙은 눈동자, 무릎을 툭툭 두드리고 있는 긴 손가락까지.
“그래도 싫은데, 어쩌지.”
그러나 남자는 매혹적인 미소를 걸친 채, 혀로 칼을 꽂았다.
“……전무님.”
“그만 나가요. 험한 꼴 보기 전에.”
이 정도로 참아준 것도 오랜만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손을 대도 몇 번을 댔을 텐데.
“…….”
차주원은 저 커다란 눈망울에서 언제 눈물이 떨어질까 생각하며 다리를 꼬았다. 어서 이 아이를 보내고 쉬고 싶었다. 서이연의 감정 변화와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오메가 페로몬이, 계속해서 차주원의 코끝을 찌르며 뇌를 자극했다.
성가시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차주원의 움직임이 거칠었다.
“……그럼, 적어도 제 연기는 한번 봐주세요.”
그러나 서이연은 눈물을 아슬아슬하게 달고도 당돌하게 부딪쳐왔다.
“……뭐라고?”
그리고 그 당돌함은, 차주원이 건방지다 느끼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만약 저한테 정말 스타의 자질이 있는데, 놓치면 후회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연기 한 번은 봐주세요.”
이게 지금 뭐라는 거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지껄이는 건가.
“야.”
차주원에게서 간신히 화를 참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을 넘었다는 경고가 깔린 가차 없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전무님…….”
그의 작은 손이 차주원의 단단한 허벅지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서이연은 한참이나 차주원의 발치에서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우는 모습이 마치 잘못했다고 우는 아이 같기도 했다.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주원은 문득, 푹 젖은 서이연의 긴 속눈썹 모양이 오래전 기억 속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제, 제발요…… 저 잘할 수 있어요…… 흐으.”
……좆같네, 진짜.
“……해 봐.”
체념한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이연은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더니 바로 눈물을 닦고 소파 옆에 자리를 잡았다. 놀랄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차주원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 제가 제일 처음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이에요.”
첫 주연 오디션을 준비하며 수천 번을 연습했던 장면이다. 아쉽게도 주연이 아닌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였지만, 첫 오디션이었던 만큼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대사와 연기였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서이연은 쭈그려 앉아, 옆에 있는 호텔 전화기를 집어 들고 귀에 대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한 후, 천천히 대사를 내뱉는 입술이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앳되지만 성숙한 척하는, 소년과 청년 사이 그 어디 즈음의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나 학교 갔다 왔는데…… 엄마 어디 있어요? 진짜…… 진짜, 떠난 거예요?”
이연의 도톰한 입술이 윗니 아래 짓뭉개졌다.
“아빠는, 엄마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래요. 내가 싫어서 떠난 거래요.”
서이연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숨을 진정시키고 말을 뱉었다. 이미 답을 아는 듯 절망스러움을 담고 있지만, 옅은 희망을 가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엄마…… 어제는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난 아빠 말 안 믿어요. 엄마가 하는 말만 믿을래요.”
애써 울음을 참으려는 억눌린 목소리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끅끅거리는 숨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러니까 이제 집으로 와주면 안 돼요? 아니면, 나도 데려가면 안 돼요? 흐윽, 흐으…… 엄마…… 제발…… 나도 데려가요…… 내가,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말 잘 들을게요…… 제발…… 제발……. 엄마.”
서이연이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애원하다, 천천히 몸에서 힘을 뺐다. 전화기를 잡고 있던 그의 가는 손목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고, 커다란 울음은 잔잔한 흐느낌이 되었다. 그의 얼굴 위로 후회와 비참함, 아픔과 그리움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서이연은 끝까지 감정선을 이어가려 노력하다, 그 선이 점처럼 희미해졌을 때 눈물을 닦고 차주원을 바라보았다. 제발 이 연기가 조금은 그의 마음에 찼길 바라며.
“…….”
그러나 서이연이 마주한 차주원의 얼굴은 마치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 핏기가 없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강한 분노와 치욕스러움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절로 등골이 오싹해져 오는, 소름 돋는 눈빛이었다.
“저, 전무님……?”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이연의 가느다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차주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매섭게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사냥감을 인식한 듯 작아져 있는 그의 동공이 선명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아, 아파…….
그의 걸음걸음마다 질척한 분노를 담은 무거운 페로몬이 자국을 남겼다. 온몸을 가시처럼 찔러오는 남자의 페로몬에 서이연의 엉덩이가 뒤로 도망치고 싶다는 듯 움찔했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으읏.”
순식간에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작은 몸이 저절로 딸려 올라가 이연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덜덜 떨었다.
머리가 뽑힐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 이연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차주원의 표정이었다. 그 모든 분노를 아래에 깔고, 아슬아슬한 이성의 천으로 간신히 가려놓은 듯한 그의 얼굴은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퍽-
그 순간, 차주원의 손이 서이연의 여린 뺨을 강하게 쳤다.
퍽-
단 한 번의 타격으로도 서이연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하얀 볼이 발갛게 부어올랐지만, 차주원은 멈추지 않았다.
퍽-
주먹으로 뺨을 때리는 듯, 손바닥으로 뺨을 치는 듯. 그 중간 어디 즈음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서이연은 머리채를 잡힌 채 추욱 늘어져 있었다. 아래로 늘어뜨린 하얀 팔이 덜덜 떨렸다. 방 안에는 농도 짙은 알파 페로몬과 겁에 질린 듯한 오메가 페로몬만이 가득했다.
그는 서이연을 거칠게 옆으로 내던지고, 곧바로 호텔 방을 나섰다. 여전히 서이연의 주위에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알파 페로몬이 피부를 따끔하게 찌르고 있었다.
이연은 뿌연 시야 속 사라지는 남자의 인영을 눈에 담으며 정신을 잃었다.
*
서이연이 눈을 떴을 때 시야에 잡힌 것은 러그가 깔린 호텔 바닥이었다.
“…….”
왼쪽 볼에서 찌릿찌릿한 고통이 전해져 옴과 동시에, 두려웠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아직도 남자의 흉흉한 눈빛이 자신을 찌르고, 때리는 것만 같았다.
연기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눈물이 하얀 볼을 타고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정말 이대로 연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소속사에서 쫓겨나면, 과연 다른 소속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당장 다음 달 월세도, 억제제값도 없었다. 정말 연기하고 싶은데, 꼭 내 얼굴이 계속 티브이에 나와야 하는데…….
서이연은 한참이나 차가운 바닥에 쭈그려 앉아 훌쩍거렸다. 꿈, 가족, 가야만 하는 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엉켜 뒤죽박죽이었다. 멍청하게도 눈앞에 있던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사장님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고함을 듣기엔, 몸이 너무 안 좋았다. 서이연은 계속 울리는 핸드폰을 애써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서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눕고 싶었다.
힘겹게 걸음을 옮겨 집에 도착했을 즈음, 여전히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정신이 맑아지면 모든 일을 받아들이기로 한 서이연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불을 몸에 돌돌 감고도 한참을 자책하며 훌쩍거리고 나서야, 마침내 지쳐 잠이 들 수 있었다.
*
쾅쾅쾅쾅-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갑자기 큰 소리에 잠이 깨 심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아직 머릿속은 멍하기만 했다. 힘이 하나도 없어 침대에서 몸을 쉽게 일으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연이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어차피 매니저 형이겠지…… 아마 계약 해지에 관해 얘기하려고 온 게 아닐까.
“서이연! 자고 있었어?”
문을 열자, 상기된 표정의 매니저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 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지금 사장님이 좀 보자고 하시는데. 어서 옷 챙겨 입어.”
“아…… 저, 저…… 내일, 가면 안 돼요……? 지금 몸이 좀…….”
“사장님이 지금 샴페인 준비해놓고 기다리셔! 너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네?”
“너 세원전자 스마트폰 광고 들어왔어!”
서이연의 커다란 눈이 더욱 동그래지고, 작은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매니저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만난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도, 마찬가지로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나 꿈만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세원전자에서 이번에 각 잡고 출시한다는 스마트폰 시리즈 독점 광고 모델에, 조연이지만 충분히 신 스틸러로 눈도장 찍을 수 있는 역할로 영화 섭외까지 들어왔어. 너 진짜 큰 건 했다, 이연아.”
“……아…….”
사장님이 하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은 차주원 전무가 자신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같은데…….
“잘했어, 인마. 네가 그런 쪽으로 재주가 있는지 몰랐네. 진작 해보지, 왜 되지도 않는 자존심이나 세우고 있었어.”
“…….”
“이렇게 잘 풀릴걸. 이 정도면, 너 다음 기회엔 주조연, 아니 주연까지 가능할 수도 있어.”
“……저, 정말요?”
주연이라니, 수많은 탈락과 좌절을 겪으며 이미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옅어진 꿈이었다.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 줄은 꽉 잡고 있어라, 너. 대단하신 분이니까.”
남자는 물론 대단해 보였다. 화려한 이목구비부터, 누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정장과 시계. 행동 하나하나가 날 때부터 부유하게 살아온 사람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듯 명령조의 말투부터, 서늘하지만 날카로운 눈빛까지. 이연은 아직도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 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베짱이 그토록 클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너 그분이 세원그룹 후계자인 건 알고 있지?”
“……네? 세, 세원이요?”
하지만 세원그룹이라니.
“어제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길게 설명 안 했는데, 차주원 전무, 세원그룹 회장 맏아들이라 아마 전자 쪽은 그쪽이 물려받을 거야.”
“…….”
서이연은 자신이 너무 거대한 상대를 자극해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보복일 것이다.
“아……”
하지만 꿈에 그리던 광고와 영화 출연이 정말…… 보복일까. 그냥 호텔 방으로 불러서 몇 번 더 때려버릴 수도 있는 일인데.
사장이 축하 파티를 하자며 술자리를 제안했지만, 이연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일찌감치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숨어든 이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몇 번 더 맞고 싶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머리 아픈 일이었다. 더 맞아도 괜찮으니, 남자가 화를 풀어주었으면 싶었다. 그렇게 무서운 페로몬을 내뿜으며 폭력을 행사한 다음 날 갑자기 스폰을 해주겠다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이연은 자신이 어젯밤에 겪은 일이 꿈이 아니었는지 의심해야 했다. 사실 남자는 자신의 애원에 스폰을 약속했고, 그 이후 자신이 연기를 보여준 것과 남자가 자신의 뺨을 때렸던 것은 모두 꿈이 아니었을까.
“…….”
멍청해…… 서이연은 거울 속의 처량한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꿈이 아니다. 누가 봐도 확연히 부풀어 있는 왼쪽 뺨과 터진 입가는 어젯밤의 기억이 현실이었단 것을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사장님과 매니저 형은 상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까칠한 분이니 취향을 잘 맞춰주라는 격려의 말만 건넸을 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이연의 얼굴이 울적했다. 그의 하얀 손에는 차주원 전무의 비서가 들러 전해주었다는, 새까만 스마트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먼저 연락하여 사과하는 게 어떨까…… 자신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거라면…….
하지만 이연은 아직도 왜 남자가 갑자기 그런 눈빛을 하고, 자신을 때렸는지 모른다.
열심히 짐작해본 가장 유력한 이유는 연기 실력이었다. 자신의 연기가 그의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서이연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이유였다.
“……에휴…….”
서이연은 한숨을 푹 쉬며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아무리 깊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이제 그만 생각하자. 깊게 생각해서 잘된 적 없었잖아.
지금 자신의 가방 안에는 두 달 뒤에 크랭크 인 할 영화의 대본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조연으로 출연하게 될.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연이 가방을 품에 꼭 안고 잘게 몸을 떨었다. 그의 하얀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진짜 열심히 해야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옅은 흥분으로 일렁였다.
*
“이번 스마트폰의 컨셉은 일상이에요. 세련되면서도 어디에나 다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라, 스마트폰에 초점을 맞추려면 이미지 소비가 컸던 기존 셀럽을 쓸 수 없었어요. 저희도 신인 배우 섭외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이미지에 맞는 분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서이연은 담당자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문장만은 알아듣고 얼른 감사 인사를 뱉었다.
“메인 모델은 하얀색이랑 옅은 푸른색인데, 서이연 씨 얼굴이랑 조합이 참 잘 맞을 것 같아요.”
담당자가 신제품 모델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 예뻐요.”
“하하, 그렇죠? 이연 씨한테는 론칭일 전에 보내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공짜로 받았으면 하고 일부러 예쁘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선뜻 핸드폰을 보내준다는 담당자의 말에 서이연은 화들짝 놀랐다. 괜히 속물로 보이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잡티도 없고 피부도 화사하니까, 메이크업은 최소로 해줘요. 이연 씨, 촬영 준비되면 데리러 올게요.”
담당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서이연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떴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연은 촬영장 문 옆에서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매니저가 촬영장까지는 데려다주었지만 그 뒤엔 약속이 있다며 떠나버린 탓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촬영장엔 이미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서이연은 기죽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때, 담당자가 서이연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청순하다며 칭찬하는 그녀의 말에, 이연도 조금은 긴장을 풀고 환히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첫 광고 화보 촬영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광고 기획서를 전달받고 난 후,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모른다. 일상 연기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스마트폰을 돋보이게 할지 고민하느라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피부 관리를 위해 매일 밤 여덟 시에 침대에 누웠지만, 결국 걱정으로 뒤척이느라 잠은 열 시 정도에나 들 수 있었다.
차주원과 호텔에서 만난 지 이 주가 흘렀지만, 아직 그에게 받은 새까만 스마트폰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이연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문자를 보내 볼까 고민했다.
[안녕하세요, 차주원 전무님.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하시게 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식사라도 한번 대접할……]
[안녕하세요, 차주원 전무님. 제 연기의 부족했던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최대한 노력하여 기대에 부응하겠……]
[안녕하세요, 차주원 전무님. 도대체 무슨 꿍꿍이이신 거예요.]
하지만 역시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맞는 듯했다. 사장님의 말대로 남자가 세원기업의 후계자라면, 절대로 한가한 사람이 아닐 테니…….
“이연 씨, 준비됐어요?”
“네!”
당장은, 서이연 인생 2막의 첫걸음을 내디디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
“에휴, 진 빠져…….”
무사히 화보 촬영을 마친 서이연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보람이 있었는지, 광고 담당자와 사진작가는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게 첫 화보 촬영을 마친 이연은 꼼꼼히 샤워를 마친 후, 팩 하나를 얼굴에 올렸다.
차주원과의 첫 만남 이후부터, 그에게 스폰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계속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나 폭신한 구름을 밟고 걷는 듯하지만, 곧 발이 빠질 것 같아 계속 불안했다.
“그래도…… 스폰은, 해준다고 하셨으니까…….”
그는 뺨을 때리고, 무거운 페로몬으로 온몸을 날카롭게 찌르고,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었다. 이제는 이 소중한 동아줄을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
다시 한번 열심히 하리라 다짐하는 이연의 얼굴이 조금은 복잡했다.
남자에게서 첫 연락을 받은 건, 첫 광고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이연의 머릿속에는,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남자의 속마음과 그의 아름답지만 무서운 얼굴이 가득 차 있었다.
[세진 호텔 3015호. 21일 21시.]
문자조차도 그다웠다. 아직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연락이었다.
서이연은 12시부터 열심히 손가락을 굽혀가며 21시를 계산한 후, 달력에 표시해두었다.
[저녁 9시 / 차주원 전무님과의 저녁 약속!]
“아 참, 예습, 예습해야지!”
불현듯 그에게 섹스를 잘한다며 자신 있게 떵떵거렸던 것이 생각난 이연은 스마트폰을 들어 조심스레 남성 오메가 첫 섹스, 화난 알파와의 섹스, 강한 페로몬 섹스, 화난 알파를 유혹하는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서이연은 오메가임에도 불구하고, 성 경험이 없었다. 원체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했고, 연기에 인생을 걸고 하루하루 숨이 차도록 달려온 덕에 연애조차 해보지 못했다.
사실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서이연이 영상으로 접한 진실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남자와 자신의 덩치 차이를 생각해 일부러 덩치가 큰 알파와 덩치가 작은 오메가의 영상만 클릭해 보았다. 그런데도 오메가는 아파하지 않고 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커도…… 잘 들어가네…….’
서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체위를 변경할 때마다 수첩에 기록했다.
‘이런 자세도…… 가능한 거구나…….’
‘저 자세는…… 발이 공중에서 저렇게…….’
‘저렇게 기분 좋은가……? 물이 계속 나오네…….’
한참 동안 학구적인 자세로 영상을 시청한 이연은 이렇게 조금 예습한 것만으로도 근본 없는 자신감이 몽글몽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 몸집이 비슷한 저런 작은 오메가도 기분 좋아하며 잠자리를 즐기는 것을 보니, 섹스란 굉장히 재미있는 일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화난 알파 섹스도 보자.”
서이연은 현실적인 예습을 위해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이번에도 알파와 오메가의 몸집이 꽤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전 동영상에서처럼 섹스 전 알파와 오메가가 서로 몸을 어루만지거나 빨아주지는 않았다.
영상의 시작은 알파의 커다란 성기를 오메가가 힘겹게 물고 빠는 것이었다. 확실히 입에 다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성기를 어디에 넣은 거지 하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설마 목구멍은 아니겠지…….’
그래도 목구멍이 아니면 넣을 곳이 없긴 했다.
“……아…….”
포르노 배우들의 딥쓰롯 영상을 보며, 이연은 아연한 신음을 흘렸다.
자신이 하기엔 너무나 고난도 같았다. 저런 건 목구멍이 넓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모르는 척 재생 바를 뒷부분으로 옮겼다.
이번엔 섹스가 한창이었다.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알파가 오메가의 허리를 세게 잡고 뒤에서 성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이미 오메가의 허벅지와 팔에는 울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맞부딪히는 그들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계속해서 투명한 액체가 이리저리 튀고 있는 걸 보니, 오메가도 마냥 아프기만 한 것 같진 않았다.
서이연은 알파가 허릿짓을 할 때마다 오메가의 뱃가죽이 희미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두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건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알파가 성기를 박아넣을 때마다 오메가의 아랫배가 볼록해졌다.
“……아…….”
다시 한번 아연한 신음을 흘린 서이연은 멍하니 앉아있다가, 자신의 티셔츠를 올려 아랫배를 확인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배를 한참이나 멍하니 어루만지던 서이연은, 다시 핸드폰을 들어 젤과 딜도를 구매했다.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잘해야 되니까…….”
그렇게 성인용품 주문을 마친 서이연은, 무언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만족감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스위트룸 안에서는 이번에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이연은 눈치를 보며 방 안을 둘러보다 남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또 유리창에 찰싹 달라붙어 야경을 구경했다.
차주원이 도착한 것은 서이연이 한 시간째 야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푸드덕 놀라며 유리창에서 이마를 뗀 이연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장신의 남자에게 밝게 인사했다.
“저, 전무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
남자는 서이연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차주원의 얼굴엔 무언가 굉장히 거슬리는 듯한 표정이 덧씌워져 있었다. 서이연은 자신의 볼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무언가 묻어있는지 확인했지만, 손가락에는 맨들맨들한 볼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차주원은 계속해서 서이연의 붉은 이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혼자 박치기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섹스하러 온 주제에 광대처럼 이마만 발갛게 물들이고 있는 꼴이 웃기지도 않았다.
“하…….”
차주원은 낮게 한숨 쉰 후 넥타이를 당겨 풀며 소파에 앉았다. 속에서 계속해서 울컥울컥 화가 올라와 무언가 손에 잡히는 건 다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퇴근할 때 즈음에는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다. 견뎌내야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겹고 무거워,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덮쳐오는 두통에, 미간을 문지르며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손에 따뜻한 감촉이 닿았다. 짜증을 참고 눈을 떠보니, 서이연이 자신의 손을 잡고 문지르고 있었다.
그는 언제 여기로 왔는지,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자신의 손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야.”
차주원에 서늘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서이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안 떼?”
그때까지도 핏줄이 돋아 있는 커다란 그의 손을 만지작대고 있던 서이연은,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뱉었다.
“아, 피곤하신 것 같아서…… 손부터 안마해 드리려구요.”
저번에 그에게 안마해 준다고 했을 땐 그도 만족해하는 것 같았는데…… 이연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차주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싫으세요……?”
커다란 눈망울을 맞추며 순진함을 연기하는 서이연에게, 차주원은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이런 속물 자존심 밟아주는 거야, 사람 한 명 죽도록 패는 것만큼 쉽다 생각하며.
“그럼, 싫지. 너같이 걸레 같은 애가 스폰 때문에 다리 벌리겠다고 매달린 게 고작 삼 주 전인데.”
“…….”
“아직 더러운 냄새가 나서, 나한테까지 옮겨붙는 것 같잖아.”
“…….”
차갑게 입꼬리를 올린 차주원은 서이연이 울음을 터뜨리리라 생각했다.
“아…… 제, 제 페로몬이 걸레 냄새 같단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주의할게요. 오늘은 깨끗이 씻고 왔는데… 왜 걸레 냄새가 나지…… 죄송해요. 저 근데 진짜 꼼꼼히 씻었는데…… 옷도 햇볕에 말린 건데…….”
비슷하긴 했다. 서이연은 처진 눈망울을 더욱 늘어뜨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하.”
상처받기는커녕 부산스레 옷을 정리하며 눈치를 보는 서이연과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진 차주원은, 그를 외면하는 것을 선택했다.
서이연은 차주원의 눈치를 보며 킁킁거리다가,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남자는 자신이 본 그 어떤 배우보다 잘생긴 것 같았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마저 우수에 찬 듯 매력적으로 보였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외모로 보나, 명예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모자랄 것 하나 없는 남자가 자신의 부탁을 선뜻 들어준 게 아직도 꿈만 같았다.
“전무님…… 저, 세원전자 스마트폰 광고…… 잘 찍었어요.”
이연은 얼어버린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풀어보려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연습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어요.”
남자가 힘을 써 발탁된 광고 모델이긴 했지만, 서이연은 정말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스폰으로 얻은 기회라 할지라도, 결과물은 완벽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전무님…… 저, 왜, 스폰해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지난 삼 주간 매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
“그때, 제 연기가, 부족했던 것 같은데…… 전무님도 화내시고…… 그런데-”
“괘씸해서.”
그러나 남자는 긴 시간 동안 고민했던 이연을 비웃기라도 하듯 간결한 대답을 내놓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짙고 검은 눈을 똑바로 맞춰오는 그의 눈빛이 매서웠다.
“네?”
“네가 너무 괘씸해서.”
그의 두 눈에, 경멸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의 날 선 페로몬도 이연의 여린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남자는 정말로 연기를 못하는 배우를 싫어하는 듯했다.
“아…….”
“옆에 두고 괴롭히려고.”
그의 후원이 보복성을 포함하고 있을 거란 이연의 짐작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화난 알파 섹스’, ‘분노의 잠자리’와 같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괴롭, 히실 거예요?”
“어. 너 맷집 좋다며.”
차주원이 무심한 눈길로 서이연의 말간 얼굴을 훑었다.
“네…… 거짓말한 거 아니에요.”
서이연은 여전히 속을 다 내보일 듯한 커다란 눈망울을 맞추며 대답했다.
“잘됐네.”
“근데 전무님, 저, 연기 연습 많이 할 거예요. 아직 단역밖에 안 맡아봐서 조연으로는 부족하다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 정말 잘할 수 있어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뭐라는 거야…… 차주원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하게 말을 뱉는 서이연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옷이나 벗어.”
“아, 네, 벗을게요…….”
마침내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한 듯, 이연은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
하지만 소파에 앉은 그대로 상의 단추를 푸는 그는, 마치 스폰서가 앞에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유혹해야 하는 스폰서 앞에서 옷을 벗는다기보다는, 거나하게 취해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려는 사람처럼 느물느물 옷을 벗고 있었다. 그런 서이연을 바라보는 차주원의 눈빛에는 가히 경멸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서이연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리는 차주원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느릿하게 옷을 벗었다. 본인은 나름대로 신속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단추 하나를 풀면서도 몇 번이나 어긋나는 손가락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바지를 벗기 위해서는 소파에서 일어나야 했는데, 차주원은 서이연이 바지를 내리자마자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요즘도 하얀 면 팬티를 입는 사람이 있네.”
서이연은 새하얀 면 팬티를 입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도, 장식도 없는 그야말로 하얀 면 팬티.
서이연의 뽀얀 속살과 잘 어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즐겨 입을 디자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스폰서와의 첫 섹스를 해야 하는 날 입었다는 건…… 차주원은 정말 서이연이 바보가 아닌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차주원은 이미 광고 담당자로부터 서이연과 광고 결과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왔다. 유연하고 센스 있는 연기력과, 그 연기력을 받쳐주는 맑은 미모를 가진 배우. 광고하는 제품이 더 주목받을 수 있도록 똑똑하게 연기한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가득 채워진 보고서를 읽은 차주원은, 서이연에 대한 이미지를 스폰에 안주해 쉽게 연기하려는 능구렁이 같은 배우에서 소속사를 잘못 만나 아직 뜨지 못한 배우로 정정해야 했다.
“부드럽고, 좋아서…….”
차주원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하는 서이연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그냥 바보인 게 분명하다.
“속옷도 벗어.”
어서 저 하얀 면 팬티를 시야에서 치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서이연에게 속옷도 벗으라 말했지만, 이연은 계속 어물쩍거리며 팬티 끝을 꼭 잡고 있었다.
“전무님…… 놀라시면 안 돼요……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
서이연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손바닥의 땀을 허벅지에 닦고 있었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벗기나 해.”
차주원은 서이연의 분홍빛 젖꼭지와 새하얀 허벅지에, 조금은 목이 마른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재촉했다.
“……저, 그래도 잘할 수 있어요.”
차주원은 서이연이 아주 작은 성기라도 가지고 있나 의심해야 했다. 도대체 저 하얀 면 팬티 속에 뭘 숨기고 있길래 저렇게 망설이는지.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큰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는 서이연 때문에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차주원이 한 번 더 한숨을 내뱉자, 서이연은 그제야 팬티를 허벅지까지 끌어 내렸다. 새하얀 팬티가 분홍빛 무릎과 매끈한 종아리를 느릿하게 지나 발끝에 다다르자, 이연은 발끝에서 팬티를 빼 두 손에 고이 모아 잡았다.
“……하.”
서이연의 하체에는 검은 음모가 없었다. 통통하고 뽀얀 성기와 그 아래 작고 탱탱한 불알만이 마치 입에 넣고 굴려달라는 듯 시선을 잡아챘다.
아무리 오메가라도 털이 아예 없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서이연이 그 흔치 않은 경우였나 보다.
“……놀라셨죠…… 그런데, 섹스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요. 전무님…….”
서이연은 털이 없다는 이유로 눈앞의 남자가 스폰을 철회하기라도 할까 봐 겁먹었다. 하지만 애써 침착하게 자신의 무모증은 그를 즐겁게 하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당연히 없겠지.”
차주원은 점점 더 심해지는 갈증에, 셔츠 단추를 풀며 대답했다. 서이연이 나체가 되자 그의 담백한 페로몬이 점점 짙어지는 듯했다. 딱히 어떤 향기라 정의할 수 없는, 그저 ‘연약한’, ‘순수한’, ‘여린’, ‘보송한’과 같은 형용사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향이었다.
“이리 와.”
차주원의 손짓에, 서이연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제 화난 알파 섹스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입 벌려.”
차주원은 작은 입을 벌린 서이연의 턱을 문지르며 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굵은 손가락이 입 안 구석구석을 만지고 혀를 누르자, 서이연의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다.
“너무 작은데.”
서이연은 예상대로 입도 작았다. 귀두도 간신히 들어갈 것 같은 좁은 입 안이었다.
“너을 수 이서여….”
서이연은 차주원의 손가락을 물고 중얼거렸다.
“뭘 넣게.”
차주원은 서이연의 혀를 꾹 누르며 물었다.
“저무닌 조시여…….”
침을 뚝뚝 흘리며, 붉은 혀를 내민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서이연의 야한 얼굴에, 차주원의 성기가 비좁은 정장 바지 안에서 꺼떡였다. 이게 이런 재주는 있네…….
“많이 배고픈가 봐. 침을 질질 흘리네.”
차주원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서이연은 차주원보다 앞서 직접 그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검은 음모 밑으로, 거대한 성기가 퉁 튕겨 나왔다.
예습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너무 큰데…… 서이연은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성기를 바라만 보았다.
“해 봐.”
차주원의 명령과 함께, 서이연의 고개가 흉흉한 성기 쪽으로 짓눌러졌다. 서이연은 자신의 뒤통수를 누르는 차주원의 손길에, 그 거대한 성기에 뺨을 비벼야 했다.
알파의 강렬한 페로몬이 서이연을 감싸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맹렬하게 몸을 달구는 알파 페로몬은 무모한 자신감마저 심어주는 듯했다.
서이연은 거대한 성기를 양손으로 잡고, 입 안으로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다.
마치 수박 빨리 먹기 대회에 참가하기라도 한 듯, 차주원의 귀두를 잡고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한 서이연의 볼은 이미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부푼 자신감이 좁은 입 안을 넓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읍.”
차주원은 전투적으로 성기를 입 안으로 넣더니, 겨우 귀두까지만 넣은 채 멈추어 버린 서이연을 짜증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서이연은 도움을 구하듯 커다란 눈망울을 위로 치켜뜨고 말했다.
“읍읍.”
“……씨발.”
무슨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차주원은 작은 입이 꽉 차도록 자신의 성기를 물고 끙끙대고 있는 서이연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목구멍에 힘 풀어.”
차주원의 커다란 손이 서이연의 여린 목덜미를 살살 어루만졌다. 서이연은 그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숨을 내쉬며 목구멍에 힘을 풀었다.
조금은 여유가 생겨 성기를 조금 더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성기의 반의반도 물지 못한 서이연은, 혀를 움직여 보기로 했다.
혀를 넓게 펴 귀두 밑 움푹 들어간 곳을 문지르고, 기둥 옆 살을 물고 빨아올리듯 애무했다. 예습할 때 수첩에 메모했던 것처럼, 성기를 빨 때 남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값비싼 정장 바지 밑으로 차주원의 허벅지 근육이 움찔대는 것을 느끼며, 이연은 조금 자신감이 붙는 것을 느꼈다.
차주원은 서툴지만 열심히 자신의 성기를 애무하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펠라를 참 더럽게도 못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차주원의 성기는 이미 완전히 단단해져 꺼떡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펠라 때문이 아니라 서이연의 얼굴 때문이었다.
볼록하고 새하얀 이마로부터 앙증맞은 코까지 떨어지는 선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더 고왔다. 커다란 눈은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는데, 기다란 속눈썹이 그늘을 만들어 눈매를 그윽하게 보이게 했다. 새빨간 혀가 입 밖으로 나와 자신의 성기를 핥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점점 페로몬을 갈무리하기가 어려웠다.
얼굴은 봐줄 만하네…….
순간, 차주원의 눈에 성기를 빨며 눈웃음을 짓는 고운 눈매가 담겼다. 이연의 커다란 눈이 곱게 접히자, 차주원에게서 강한 알파 페로몬이 터져 나왔다.
“흐읏…….”
갑작스레 몸을 휘감는 알파 페로몬에, 이연이 흠칫 허리를 떨며 신음을 흘렸다.
구멍 안에서 울컥, 무언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연은 아래를 확인하기가 무서워, 차주원의 성기만 꼬옥 붙잡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 다시 차주원의 성기를 애무하려는 그때, 머리 위에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뒤로 쌌지.”
차주원의 입매가 짙어졌다.
“……네? 뒤, 뒤로요?”
서이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작은 손이 여전히 차주원의 성기를 꼬옥 붙잡고 있었다.
“너 열성이야? 페로몬 좀 풀었다고 싸는 새끼가 어딨어.”
“저, 저 안 쌌는데요. 왜, 왜 사람을 그렇게 의심하세요…….”
서이연은 눈을 내리깔며 괜히 차주원의 성기를 손으로 만지작댔다. 그가 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주기를 바라는 이연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의심?”
“저, 전무님, 우성 알파셨어요……? 저, 우성 알파는 생전 처음 봐요…….”
차주원은 어설프게 화제를 돌리려는 이 맹랑한 오메가가 우스웠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고 있는 서이연의 겨드랑이 아래 손을 넣고, 가볍게 그를 들어 올려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저번에 맞을 때는 안 쌌나 보네?”
차주원은 자신의 검붉은 성기 앞에 얌전히 놓인 서이연의 분홍빛 성기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첫 만남에서도 폭발적인 페로몬을 풀었으니, 그때도 싸지 않았냐는 가정이 깔린 그의 물음에 이연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 지금도 안 쌌는데, 그때도 안 쌌어요…….”
“아아.”
차주원은 맞장구를 쳐주는 듯하더니, 페로몬을 더욱더 강하게 풀었다. 강렬한 알파 페로몬이 서이연을 마구잡이로 휘갈겼다.
“히익.”
서이연은 차주원의 어깨를 꼭 붙잡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는 허리를 움찔움찔하며 목울대를 울렁거리더니, 입을 벌리고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으…….”
서이연이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며 정장 바지에 회음부를 비볐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서툰 허릿짓을 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는 차주원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분홍빛 불알이 허벅지 사이로 사라졌다 나오길 반복했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가는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보았다. 손바닥 아래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손을 떼고 싶지 않게 만드는, 세게 누르면 뭉개질 것만 같은 살결이었다.
“허리가 이렇게 가늘면.”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여린 살을 거칠게 매만졌다. 배꼽에 검지를 넣어 건드리기도 하고, 아랫배 밑의 털이 없는 민감한 부분을 엄지로 거칠게 문지르기도 했다.
“구멍 안도 좁겠네.”
차주원은 서이연의 통통한 엉덩이를 꽈악 잡고 물었다.
“잘 받을 수 있겠어?”
아직 멍한 눈길로 차주원의 허벅지에 엉덩이를 비비고 있던 서이연이, 마치 키스라도 하려는 것처럼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차주원은 성감이 깃들어있는 그의 커다란 눈동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엉덩이를 꽉 쥐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뽀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두 입술의 표피가 닿았을 때쯤이었다. 서이연이 헐떡이며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더니 차주원의 가슴팍에 얼굴을 처박았다.
“하아…… 흐으…….”
흠칫거리며 허리를 떠는 서이연을 본 차주원은, 그제야 자신의 정장 바지에 묻은 하얀 얼룩을 발견했다. 서이연이 회음부를 비비던 그 자리였다.
“얼마나 싼 거야…….”
이렇게 물이 많은 오메가는 차주원도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어이가 없었다.
“이래서야 펠라도 못 받겠네.”
차주원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웃듯 말했다.
서이연은 그제야 차주원의 더럽혀진 정장 바지를 발견하고 커다란 눈에 눈물을 채웠다.
“제, 제가 싸려고 싼 게, 아니라요…….”
“그럼 뭔데.”
차주원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서늘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의 얼굴에 옅은 즐거움이 덧씌워져 있었다.
“우성, 알파, 페로몬은 처, 처음 접해 보다, 보니…… 저, 한텐 좀 강했나 봐요. 제가, 열성이라.”
서이연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더듬더듬 변명해왔다.
“너같이 물 많은 애가 무슨 페로몬 타령이야.”
“……무, 물이요?”
“어. 바지가 축축해서 더는 못 입고 있겠는데.”
차주원의 젖은 바지를 바라보던 서이연은 그제야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스폰서의 바지에 저렇게나 싸다니, 바로 스폰 받을 자격이 박탈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흐윽…… 제가, 너무, 많이 쌌죠…… 저도, 제가, 이럴 줄은…… 흐으.”
차주원은 엉엉 울며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을 닦는 서이연의 분홍빛 팔꿈치에 눈길을 두었다.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시선이 눈앞의 오메가를 훑었다.
이제껏 파트너가 조금이라도 수다스럽다 싶으면 바로 재갈을 물렸던 그였다. 섹스 중에 이렇게 말을 많이 해 본 것도 처음이고 파트너가 말을 많이 하도록 놔둔 것도 처음이지만, 딱히 서이연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우습고 하찮을 수가 있나.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질질 짜지 마. 침대에서 울 거 아니면.”
“흐읍. 네. 끄윽.”
서이연은 차주원의 말에, 울음을 그치기 위해 숨을 골랐다. 눈물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던 서이연은, 눈물을 닦고 차주원의 성기를 잡았다. 다시 그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울음을 그치자마자 자신의 성기를 쥐어 잡는 서이연의 행동에, 차주원이 다시 경멸의 눈빛을 띠며 그의 손을 탁 쳐냈다.
“찝찝해서 씻어야겠으니까, 자위는 혼자 해.”
“네에, 저도, 씻을게요.”
무안하지도 않은지 씩씩하게 대답하는 서이연을 본 차주원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그가 욕실로 향하자, 서이연도 떨리는 다리를 일으켰다. 비록 남자와의 첫 스킨십에 자신만 기분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연이 샤워를 마친 후 침실로 들어가자, 남자는 침대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었다. 그는 하체에만 수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뒤에서 보자 매끈하고 넓은 등이 팽팽한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이연은 말 그대로 우성 알파의 몸을 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침을 꼴딱 삼키며 침대로 향했다.
그러나 뒤에서 침을 꼴딱거리며 다가오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들은 차주원은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폰서와의 잠자리에 하얀 면 팬티를 입고 오질 않나, 펠라를 하다 혼자 흥건하게 싸 바지를 더럽히질 않나, 이제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군침을 삼키기까지.
서이연이 그에게 다가가자, 차주원은 씻고 나니 더욱 뽀얘진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넌 이 상황이 그냥 우습지.”
“……네?”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화난 듯한 차주원의 날 선 목소리에, 서이연은 기가 죽어 조심스레 변명하기 시작했다.
“……전무님, 제가, 바지에 싼 건 정말, 잘못했어요……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믿어 주세요.”
차주원은 자신의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서이연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바보는 제가 그깟 걸로 화를 내는 거라 생각하는 건가. 더는 얘기할 가치도 없다 느낀 차주원이 물기 어린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하…… 됐고, 처음이야?”
차주원의 질문에, 서이연은 움찔하더니 자신 없는 대답을 뱉어냈다.
“……아뇨.”
예습도 많이 했고, 연습도 했으니까…… 이 정도면 경험이 한 번쯤은 있는 거로 쳐도 되지 않을까. 서이연은 혼자만의 기준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
차주원은 태연히 거짓말하는 서이연의 뻔뻔함에, 화를 참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그가 나지막이 내뱉은 욕지거리를 들은 서이연은 모아쥐고 있던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우, 우성 알파랑은, 처음인데…… 저, 제가 잘한다고 했던 건, 그냥, 알파랑 할 때…… 잘, 한다고…… 그런 거였거든요.”
“야.”
“……네.”
“너 내가 병신으로 보이지.”
서이연은 차주원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아, 아뇨. 병신으로 보이지 않아요…….”
양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는 서이연을 눈에 담은 차주원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맷집이 좋다더니, 맞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보네. 너.”
차주원은 침대에서 일어나 서이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더는 이 교활한 앙탈을 두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
계속 거짓말을 하면 맞게 될 거라는 남자의 경고에, 서이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 내 앞에서 거짓말하는 새끼 스폰해 줄 생각 없어.”
차주원이 스폰 관계를 들먹이자, 이연은 그제야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경험 없어도, 저, 잘할 수 있어요…… 제발, 저 계속 만나 주세요…….”
마치 이 관계가 스폰이 아니라 연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뉘앙스로 말하며 계속 만나 달라고 매달리는 이연을 차주원이 짜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작은 손이 차주원의 단단한 손을 살짝 잡아 왔다.
“정말, 잘할게요…….”
서이연은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그 커다란 눈을 맞춰왔다. 차주원은 그 말간 얼굴을 비웃듯 바라보며 말했다.
“잘하겠지. 그 정도 물이면, 주먹을 박아도 좋다고 질질 흘릴걸.”
차주원의 말에 조금 고민하는 듯하던 서이연은, 자신 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주먹은, 안 들어갈 거예요…… 저, 배가 작아서….”
서이연은 가만히 잡고 있던 차주원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차주원은 마치 그 손길이 자신의 주먹 크기를 가늠해보기라도 하는 듯 느껴져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하얀 손을 세게 뿌리친 차주원이 그대로 이연이 입고 있던 샤워가운을 거칠게 벗겼다. 작고 물기 어린 몸을 침대 위로 내던지기 위해서는 딱 책장 한 장을 넘기는 정도의 힘이 필요했다.
“으윽.”
그러나 새하얀 침대에 포옥 파묻혀 엉거주춤 앉아있는 새하얀 나신을 내려다보는 차주원의 얼굴에, 짜증스러움을 누르고 서서히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저 복숭아 같은 통통한 엉덩이에 좆질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사타구니가 뻐근해져 왔다.
서이연이 바보인 것과는 별개로, 그의 외모만은 마치 신이 선물이라도 보내준 양 완벽하게 차주원의 취향이었다.
“아무 단어나 정해.”
“네?”
“세이프 워드.”
“…….”
세이프 워드가 뭔지도 모르는 듯한 서이연의 표정에, 차주원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야.”
“네?”
“아무 단어나 말하라고.”
“어…… 그, 그, 새, 새벽이요.”
꼭 저 같은 것만 말하네. 차주원은 청초한 서이연의 얼굴과 맑은 눈망울이 마치 푸른 새벽녘의 공기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파서 멈추고 싶을 때, 말해.”
“새벽을요……?”
“어.”
이연은 그가 자신을 도대체 얼마나 아프게 할 생각인지 조금 무서워졌다. 그를 꼭 만족시키겠다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생전 처음 하는 섹스라 긴장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엎드려.”
낮고 무심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서이연은 차주원의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 위에 엎드렸다. 나름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으나, 차주원이 보기에 그의 동작은 굼뜨기만 했다. 그는 차주원을 향해 엉덩이를 내민 자세로 엎드렸다.
전혀 색정적이지 않은 서이연의 느릿한 행동에도, 차주원은 고간이 찌르르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서이연이 움직일 때마다 분홍빛의 통통한 좆이 작게 흔들리며 시선을 잡아챘고, 눈앞에서 알짱대는 산호색의 젖꼭지도 빨아달라는 듯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올라있어 입을 대고 싶었다.
“전무님, 엎드렸어요.”
“……알아.”
그가 엎드리자 차주원의 눈앞에 새하얗고 통통한 엉덩이가 벌어졌고, 그 아래 분홍빛 탱탱한 불알과 성기가 달랑거렸다. 곧게 뻗은 허벅지는 뽀얗고 가느다랬다. 차주원은 자신의 앞에 가장 내밀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는 서이연의 페로몬이 점점 진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엉덩이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커다란 손이 엉덩이에 닿자, 서이연은 허리를 흠칫 떨었다. 반사적인 반응이었지만, 마치 매만져 달라는 듯 전해져 오는 진동에 차주원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이연은 보드라운 이불에 한쪽 뺨을 대고, 눈을 깜빡거리며 가만히 차주원의 손길을 느꼈다. 그는 엉덩이를 부드럽게 매만지다, 구멍을 엄지로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미 아까의 자극으로 인해 예민해져 있던 구멍이 움찔거렸다.
“으응…….”
차주원은 산호색을 띠고 있는 서이연의 구멍을 엄지로 문지르며 생각했다.
이런 구멍을 가지고, 경험이 있다는 말을 지껄일 생각을 하다니.
꽉 다물려 있는 구멍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지만, 좆을 받아본 구멍은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도 힘겹게 물 것 같은 연약한 구멍을 한참 동안 어루만지던 차주원은, 발갛게 부어있는 회음선으로 손가락을 내렸다. 자신의 바지에 얼마나 비벼댔으면 이렇게 쓸린 건지.
서이연의 회음부는 그 옆의 다른 살결과는 감촉이 달랐다. 훨씬 부드럽고 연약한 회음부는, 앞으로 다가올 자극을 예감이라도 한 듯 솜털이 바짝 서 있었다.
서이연은 침대 위에 놓인 두 손을 꽉 쥐었다. 그의 손길이 사타구니를 누빌 때마다 온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이번엔 불알이었다. 조그마한 불알 두 개가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 만지작거리는 차주원의 행위에, 서이연에게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으…….”
“아직 좆은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왜 엄살이야.”
“계, 계속 굴리시잖아요…….”
불알을 손에 쥐고 굴리고 있던 차주원은 서이연의 말에,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불알이 왜 이렇게 작아.”
“……저도 몰라요.”
서이연이 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새침하게 말했다.
“그냥 다 작네. 열성은 다 이런가.”
차주원은 서이연의 마른 어깨와 작은 발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서이연은 차주원이 우성 알파라 덩치가 큰 것이니, 자신도 열성 오메가여서 덩치가 작은 것 같다는 나름 논리적인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성기를 꽉 잡아 쥐는 차주원으로 인해 신음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아…….”
“오메가라서 그런가, 좆도 말랑말랑하네.”
“이제, 딱, 딱해질 거예요…….”
“딱딱해져 봤자 계속 싸버리겠지.”
“…….”
서이연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좀 전까지 구멍에서 나온 액체로 남자의 바지를 흠뻑 적셨던 것을 상기해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사타구니의 모든 부분의 감촉을 느낀 차주원은, 그의 구멍에 천천히 손가락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으응…….”
“힘 빼.”
내벽이 손가락 두 개를 쫀득하게 물어왔다. 아까 구멍으로 싼 애액이 아직 마르지 않았는지, 아니면 사타구니를 매만져 준 것에 느낀 건지, 내벽은 여전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손가락을 돌리며 내벽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던 차주원은, 서이연이 이불을 입으로 물고 신음을 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불 뱉어.”
그는 서이연의 구멍 안에 있는 손가락 개수를 세 개로 늘리고, 거칠게 처박기 시작했다.
“……으, 응.”
서이연은 눈치를 보며 이불을 뱉고,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구멍을 쑤실 때마다 내벽 안에서 울컥 터져 나오는 애액을 느끼며 차주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손가락으로 찔러줄 때마다 움찔움찔 엉덩이를 떨며 요도에서 투명한 액을 뚝뚝 흘리는 꼴을 보자니, 거칠게 좆을 처박고 싶은 욕구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아…… 아응.”
서이연은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이불을 꼭 쥐었다. 굵은 손가락이 내벽을 찌를 때마다 성기가 찌릿찌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분홍빛 성기는 힘을 받아 올라붙은 상태였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통통한 발가락이 잔뜩 오므려져 있는 것을 눈에 담고,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구멍에 넣었다.
“아…… 더, 더는-”
“잘 받네.”
차주원이 손가락 네 개를 내벽 안에서 빙그르르 돌렸다. 내벽 전체가 손가락으로 매만져지자, 서이연이 자지러지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의 허리가 잔뜩 휘어져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윽…… 흐앙.”
차주원은 구멍에서 회음부로 주룩주룩 흐르는 애액을 바라보며, 손을 빼냈다. 그의 커다란 손도 서이연의 애액으로 번들번들하게 젖어있었다.
차주원이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내자, 이연의 몸이 침대 위에 털썩 엎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움찔움찔 몸을 떨고 있는 그를 바라보던 차주원은 치밀어 오르는 성감 위에 차가운 표정을 덧씌운 채 그를 뒤집었다.
“다리 벌려.”
딱딱하게 올라붙은 차주원의 흉흉한 성기를 바라보며 서이연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그의 페로몬이 너무나 짙어 숨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지만, 질척한 농도의 페로몬이 피부에 계속 흡수될수록 아랫배가 찌릿하게 아팠다. 기분이 좋은 건지 아픈 건지 모를 정도로 자극적인 감각이었다.
이연은 구멍에서 물을 질질 흘리며 다리를 벌렸다.
차주원이 서이연의 야한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하얀 허벅지를 더욱 벌렸다. 회음부와 불알 사이를 거대한 좆으로 탁탁 치는 그의 행동에, 이연의 허벅지가 벌벌 떨렸다.
“힘 빼.”
뻐끔거리는 연한 분홍빛의 구멍이 주먹만 한 귀두와 힘겹게 입맞춤했다. 오물거리며 귀두를 빨던 연한 점막은 곧 흉흉한 성기를 질척하게 젖은 구멍 안으로 매끄럽게 들여보냈다.
“아으…….”
성기의 가장 굵은 중간 부분까지 삽입한 차주원은, 서이연의 허리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나머지 부분을 뿌리 끝까지 퍽 처박았다.
“하윽.”
성기가 끝까지 삽입되어 내벽 깊은 곳을 찌르자, 서이연의 성기에서 핏 하고 정액이 튀었다. 그는 허리를 뒤틀며 가느다란 신음을 뱉더니,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었다.
“아…… 아으…….”
서이연은 하얀 정액을 뱉어내며 무의식적으로 내벽을 조였다.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그의 풀린 얼굴을 바라보던 차주원은, 그의 입 안에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고 혀를 꾸욱 눌렀다.
“힘 풀랬지.”
서이연이 정액을 싸 내며 오르가즘을 느끼자, 그의 내벽이 성기를 잘라 먹을 듯 조여왔다. 차주원은 손가락으로 그의 좁은 입 안을 휘저으며 덜덜 떨리는 부드러운 허벅지를 느꼈다.
삽입하자마자 싸버리는 오메가라니. 감도가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닌가.
허리를 뒤트는 서이연의 입 안과 목구멍을 손가락으로 충분히 괴롭혀준 차주원은, 질척한 손가락으로 부풀어 있는 젖꼭지를 꼬집었다.
“으응…….”
“젖으로는 자위 안 하나 봐. 너무 작은데.”
차주원이 조금 도톰하게 부풀기는 했지만, 여전히 손톱만 하게 작은 산호색 젖꼭지를 꼬집고 긁어내렸다. 충분히 가슴을 괴롭힌 그는 뿌리까지 박혀있던 성기를 뒤로 천천히 물리기 시작했다.
꽉 차 있던 내벽 안이 비워지자, 심한 이물감이 드는지 서이연의 허벅지가 움찔거렸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허벅지를 꽉 잡은 차주원은, 귀두까지 빼냈던 거대한 성기를 다시 한번 거칠게 퍽 처박았다.
“아읏……!”
전립선을 얻어맞는 듯한 충격에, 서이연의 몸이 크게 덜컹거렸다. 내벽 안도 마찬가지였다. 벌벌 떨며 성기를 조여오는 감각에, 차주원도 입술을 짓씹으며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후우…….”
“아아…… 전, 무님…… 흐윽.”
“왜.”
차주원은 서이연의 가는 허리를 양손으로 꽉 잡고,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데를, 아응, 자꾸, 찔러요.”
차주원이 퍽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성기를 박자, 서이연이 내뱉는 문장도 그에 따라 끊겨 흘러나왔다.
“이상한 데 아니고, 기분 좋은 곳.”
“아응…… 아아… 기분, 좋아요…….”
차주원은 이불 시트를 꼬옥 잡고 허리를 뒤트는 서이연에게 계속해서 성기를 박아넣었다. 눈이 풀린 채 입을 벌리고는, 기분 좋다며 신음을 내뱉는 그가 굉장히 야하게 느껴졌다.
찌르면 찌를수록 내벽이 성기를 조여왔다. 이미 사타구니를 갖다 댈 때마다 애액이 이리저리 튀는 수준이었다.
차주원은 거의 젖다시피 한 자신의 음모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헤프게 질질 흘려서야…….”
“아앙…… 흐으, 좋, 아요 전무님…….”
서이연은 여전히 초점이 나간 눈을 하고는 헤롱대며 연신 구멍을 조여대고 있었다.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오메가 페로몬이 차주원의 피부를 톡톡 건드리듯 자극해왔다.
차주원은 아래서 그 새하얀 다리를 활짝 벌리고 움찔대는 서이연을 보고 있자니, 성기가 더는 단단해질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서이연의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짓누르며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서이연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바로 앞에 두고 허릿짓을 하는 차주원에게서, 강한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흐응…… 싸, 쌀래요…….”
“너 아까부터 싸고 있잖아.”
서이연은 커다랗고 촉촉한 눈망울을 맞춰오며 말했다.
“흐으…… 고, 고추로 쌀…… 거예요…….”
“씻고 나서도 내 좆에서 네 애액 냄새가 날 것 같은데. 어쩌지.”
차주원은 질척질척한 내벽 안에 계속해서 성기를 처박으며 말했다.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을 매달고 싸고 싶다는 서이연을 바라보는 차주원의 얼굴에도, 짙은 성욕이 덧씌워져 있었다.
거대한 성기가 점점 세게 전립선을 쾅 쾅 박자, 서이연의 눈이 다시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차주원은 혀를 내밀고 침을 질질 흘리는 서이연의 입 안에 혀를 게걸스럽게 집어넣었다. 입안 구석구석을 핥아주자, 작은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긴 입맞춤 끝에, 마침내 그가 내벽 깊은 곳에 정액을 싸질렀다.
“히익, 흐으…….”
“하아…….”
차주원은 서이연이 내지르는 신음과 그의 타액을 모두 빨아먹었다. 그의 좁은 입 안을 질척하게 핥아먹으면서도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차주원이 싸면서도 성기를 박아넣는 걸 멈추지 않자, 뒤섞인 액체가 꿀렁거리며 구멍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불 위는 이미 구멍에서 튀고 흘러나온 액체들로 엉망이었다.
차주원이 온몸을 벌벌 떨고 있는 서이연의 어깨를 잡고 누르며, 그와 딱 붙어있던 상체를 뗐다.
“……하.”
성기를 빼내며 시선을 내린 차주원은 헛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배 주위가 엉망이었다.
울퉁불퉁한 배 위에는 서이연이 싼 정액으로 추정되는 하얀 액체가 묻어있었다. 그 아래 검은 음모는 그의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내벽 안에 넣고 있었던 성기는 얼마나 젖었는지 정체 모를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주원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신의 아래에 널브러져 있는 서이연에게 시선을 두었다. 아직도 움찔거리며 몸을 떨고 있는 그는, 여전히 오르가즘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가 좁은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묽은 액체를 빼내며 말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많이 싸지.”
“……마, 많이 좋았어요.”
서이연은 엉덩이를 움찔거리면서도,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누가 오메가 아니랄까 봐.”
서이연은 차주원이 피식 웃자 괜히 민망해져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힘이 없어 계속 허벅지를 훤히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굵은 손가락이 내벽을 건드리며 끊임없이 정액을 긁어내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 하실, 거예요?”
“왜. 못 하겠어?”
차주원이 나른한 미소를 얼굴에 걸친 채 말했다.
“아, 아뇨. 전무님이, 만족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자신과의 섹스가 형편없었다면, 남자는 아마 또 뺨을 때리고 호텔을 떠났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연기를 보고 그랬던 것처럼.
서이연은 그가 섹스를 이어 가려 하는 것에 기뻤다. 스폰을 이어갈 거라는 의미와 같았으니까. 해일처럼 덮쳐오는 오르가즘이 너무 격렬해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황홀한 기분이었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발 한쪽을 들어, 온갖 액체가 묻어있는 자신의 성기를 닦았다. 굴곡이 없어 마치 덜 자란 것 같은 서이연의 발은, 고생 한번 한 적 없는 것처럼 새하얗고 보드라웠다.
오메가들은 다들 이랬던가…….
차주원은 이렇게 온몸이 다 여물지 못한 것 같은 오메가는 서이연이 처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를 뒤집었다.
뒤집고 보니, 섹스 중 자신의 딱딱한 허벅지와 계속해서 부딪힌 서이연의 엉덩이 밑부분이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피부가 너무 약한데.”
차주원이 서이연의 통통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세, 세게 하셔도, 돼요.”
“하지 말래도 할 거니까 걱정 마.”
“네…… 걱정 안 할게요.”
서이연은 하얀 이불 위에 볼을 비비며 눈물을 닦아냈다. 이제 곧 남자가 뒤에서 삽입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꼭 부여잡는 서이연의 손끝도 오르가즘의 여운으로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처음인데도 거칠게 하는 걸 좋아하네. 타고났나.”
서이연은 차주원이 말하는 타고났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왠지 칭찬같이 들려 맞장구를 쳤다.
“그런 것 같아요. 저, 타고났나 봐요.”
차주원은 손을 꼼지락대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서이연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태껏 섹스 한 번 못 해본 오메가에게 뭘 바란 건지.
차주원은 한 번 쌌음에도 배꼽에 붙을 만큼 딱딱하게 부풀어 있는 성기를 손에 쥐고, 입구를 뻐끔대고 있는 서이연의 구멍에 맞췄다.
“조이지 마. 아까는 끊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아흑…… 네, 히, 힘, 풀, 게요.”
서이연은 뒤에서 숨이 막힐 만큼 압박을 가해오며 구멍으로 밀고 들어오는 흉흉한 성기에도, 힘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골반을 꽉 잡고 있어서, 좁아진 내벽 안으로 꽉 차는 성기가 한껏 선명하게 느껴졌다.
“흐으…… 후우…… 으응…….”
서이연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구멍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엉덩이에서 힘을 빼고, 그다음은 허벅지, 허리, 어깨, 얼굴 근육까지 천천히 푼 이연의 내벽으로 차주원의 성기가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
차주원은 힘을 풀랬더니 침대에 하얀 해파리처럼 늘어져 있는 서이연의 뒷모습을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이 바보가 또…… 그는 짜증을 삼키며 페로몬을 더욱더 강하게 풀었다.
“히익…… 으으.”
서이연은 온몸을 움찔움찔 떨며 구멍을 조였다.
“야. 허리 들어.”
차주원은 꽉 쥐고 있던 서이연의 골반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해파리처럼 느물거리던 서이연은 주섬주섬 팔을 굽혀 상체를 지지한 후, 엉덩이를 쳐들었다. 힘을 풀래서 다 풀었는데 이게 아니었나…… 짜증스럽게 피부를 찔러오는 남자의 페로몬에, 이연은 자신이 또 실수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거칠게 성기를 쑤셔 박는 그 때문에, 잡생각을 할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차주원의 커다란 손이 이연의 작은 머리통을 짓눌렀다. 통통한 볼이 하얀 시트 위에 짓눌려 뭉개졌다. 차주원은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부드럽고 가는 머리칼을 느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앙, 흐으…….”
“허리, 들고, 구멍에서, 힘 빼.”
거대한 성기는 내벽 안을 쾅 쾅 처박으며 전립선을 짓이겼다. 숨을 제대로 내뱉을 여유조차 없는 서이연과 달리, 내벽은 좋다며 성기를 조이고 물을 흘려댔다.
“아응, 저, 전무님, 빨, 라, 요.”
“질질 흘리지나 말고 말해.”
차주원이 성기를 밀어 넣을 때마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액체가 튀었다. 듣기 민망할 만큼 외설적인 소리가 침실에 울려 퍼졌다. 물이 고여있는 바닥을 맨발로 밟고 뛰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둔탁한 듯하기도 한 소리가 사타구니가 부딪힐 때마다 귓가에 울렸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가슴에 팔을 끼워 그의 상체를 세웠다. 이연은 등에 닿는 차주원의 단단한 가슴팍을 느낌과 동시에, 더욱 깊게 삽입되는 성기에 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그러던 중, 차주원이 뒤에서 서이연의 사슴 같은 목을 쥐고,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자국은 곧 없어질 거야.”
“……네?”
서이연이 힘겹게 반문한 순간, 차주원이 양손으로 서이연의 목을 쥐고 성기를 쾅 쾅 박아넣기 시작했다.
“크윽…… 끄읍.”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친 삽입과 목을 조여오는 남자의 악력에, 서이연은 정신이 나가는 듯했다.
차주원이 성기를 귀두부터 뿌리 끝까지 한 번에 박을 때마다, 목을 조르는 그의 손길도 강해졌다.
“하아…….”
손바닥으로 여린 맥박을 느끼며 성감으로 가득 찬 신음을 내뱉은 차주원은, 덜컹거리고 있는 서이연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성기를 박아넣을 때마다 강하게 흔들리는 그의 볼기가 귀여웠다. 목이 졸리면서도 착실하게 느끼는지 서이연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떨렸고, 가는 허리는 이리저리 뒤틀리며 성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서이연은 처음엔 목을 조르는 단단한 손을 떼려 팔을 긁었지만, 허릿짓이 계속되자 양팔을 추욱 늘어뜨린 채 내벽만 조였다.
차주원은 목을 조르던 손을 풀고, 손을 미끄러뜨려 이연의 상체를 쓸었다. 아래로 내려온 단단한 손이 허리를 감싸 안자, 그가 내벽 깊은 곳에 사정했다. 폭발적인 사정량에, 내벽이 정액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다시금 구멍 밖으로 뱉어냈다.
그는 서이연의 어깨를 깨물고, 목선을 빨며 사정의 여운을 느꼈다. 이연에게서 연약하지만 정숙지 못한 페로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차주원은 서이연의 목을 빨다, 하얀 어깨 너머의 광경에 놀라워해야 했다.
“와…… 같이 간 거였어?”
서이연도 차주원이 사정할 때 오르가즘을 느꼈는지, 그의 통통한 성기가 아직도 묽은 액체를 뚝 뚝 뱉어내고 있었다.
물만 많은 줄 알았더니, 목이 졸리면서도 가는 재주도 있었네.
차주원은 서이연의 턱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하하…….”
마주한 서이연의 얼굴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음탕했다. 얼굴 근육이 다 풀려 혀를 내민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그를 보자, 차주원은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입 밖으로 빼꼼 나와 있는 서이연의 혀를 입술로 물고는, 쪽쪽 빨아들였다. 그 부드러운 혀의 감촉을 느끼며 빨던 차주원은 좁은 입 안으로 혀를 박아 넣고 유린하듯 키스했다. 게걸스럽고 음란한 입맞춤이었다.
그는 정액이 흥건하게 묻어있는 서이연의 탱탱한 불알을 손으로 굴리며, 오랫동안 좁은 입 안 구석구석을 탐했다. 이연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입 안이 휘저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온몸을 움찔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연은 한순간 몸에서 힘을 추욱 빼고 정신을 잃었다. 그의 통통한 입술을 물고 놓지 않던 차주원은 그제야 입술을 물렸다. 천천히 성기를 빼며 몸을 물리자, 사타구니 사이의 흰 실이 주욱 이어지다 끊어졌다.
몸을 떼자 힘없이 무너지는 부드러운 몸을 받은 차주원이 그를 침대 위에 눕혔다. 눈을 감은 서이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작은 콧방울을 툭 건드렸다.
“…….”
가까이서 보니 볼에도 솜털이 있었다.
“네 말대로, 섹스는 나쁘지 않네.”
차주원이 서이연의 붉은 입술을 엄지로 꾸욱 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괘씸한 건 여전하지만.”
그러고는 엄지로 그의 기다란 속눈썹을 살살 어루만졌다. 손가락 밑에서 속눈썹이 사락거리며 흩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봐.”
속눈썹을 만지던 손가락이 부드러운 볼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가느다란 목으로 향했다. 하얀 목에는 이미 손자국이 발갛게 찍혀 있었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목에 남아있는 울혈을 매만지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
서이연은 폭신한 이불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떴다. 포근한 햇살이 그의 눈동자를 밝은 갈색으로 비추고, 볼 위의 솜털들을 부각했다.
“으으…….”
기지개를 쭉 켠 서이연은, 멍하니 침대에 누워 눈을 끔뻑거렸다.
‘다리 벌려.’
‘저, 타고났나 봐요.’
‘자국은 곧 없어질 거야.’
머릿속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마자, 어젯밤의 기억이 삽시간에 서이연의 머릿속을 휩쓸었다.
“……와.”
섹스했다.
첫 경험을 했다.
작은 탄성을 내뱉은 그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현실은 포르노보다 더했다. 남자가 성기를 박아넣을 때마다 볼록해지던 자신의 아랫배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렇게…… 클, 수가 있나, 고추가……?”
아무리 우성 알파라지만…….
서이연은 배를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는 너무 큰 것 같았다. 어깨도 넓고, 가슴도 크고, 고추도 크고, 다리도 길고, 발도 크다.
어젯밤 그의 허릿짓에 계속해서 정액과 애액을 내보낸 것을 생각하니, 절로 볼이 붉어졌다. 그런데 그렇게나 쌌는데도 찝찝한 느낌이 없고, 커다란 티셔츠까지 입혀져 있었다.
서이연은 설마 남자가 자신의 몸에 묻은 액체를 닦고 옷을 입혀주었나 생각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기억 못 하는 사이에 내가 씻고 입었나……?
아무래도 그쪽이 더 현실성 있는 듯했다.
서이연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이제 씻고 집에 가서 대본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서이연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
목 전체가 울긋불긋했다. 마치 붉은 스카프라도 두른 듯.
서이연은 눈앞의 광경에 울먹거리며 목을 더듬었다.
한 달 후에 크랭크 인인데…… 어떡해…….
어젯밤 남자가 뒤에서 자신의 목을 뒤에서 잡고 조이며 거칠게 허릿짓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숨이 막혀오는 감각과 동시에 몸 안에 가득 찬 성감도. 그리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와중에도 성기에서 꿀렁꿀렁 흘러나오던 정액까지…….
“……없어지겠지…….”
남자가 곧 없어질 거랬으니까…… 그는 이런 성 경험이 많아 보였다. 그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이라면…… 믿을 만할 것이다.
서이연은 울혈을 눈에 담지 않으려 애써 외면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격통도,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아릿함도, 다 외면했다.
*
이연은 붉어진 볼을 한 채, 장갑을 낀 손을 꽉 쥐고 분주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왔음을 사람들의 두꺼워진 옷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그는 일찌감치 내복도 꺼내 입고 왔다.
오늘은 서이연이 조연으로 출연하게 될 영화의 첫 촬영 날이다.
작품성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감독이 맡은 이 영화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 의녀의 일생을 그린 영화였다.
양반집 규수로 태어났지만, 의술과 무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장소혜. 그녀는 몸이 허약하여 별채에 가둬두듯 내팽개쳐진 남동생 장소현과 유난히 우애가 좋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져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고, 이를 엿들은 장소현은 자신이 그녀를 대신해 여장하고 명나라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집을 도망쳐 나온 장소혜는 신분을 속인 채 뛰어난 의녀가 되어 전쟁에까지 참여하고, 인체에 치명적인 독초를 발견해 왜군 장수에게 먹이는 것에 성공한다.
영화는 장소현이 대신 떠난 명나라 쪽을 바라보며 엉엉 우는 장소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소혜의 남동생 장소현 역을 맡은 서이연은, 오프닝 시퀀스 십오 분 동안 영화 초반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조연이었다.
서이연은 아직도 자신이 장소현 역을 맡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대본을 처음 받은 날, 서이연은 밤을 꼴딱 새우며 대본을 읽어내렸다. 이런 훌륭한 영화에 자신이 출연할 수 있다니 마치 꿈만 같다 생각하며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그는 하얀 입김을 호호 불며, 장소혜 역을 맡은 신윤서의 촬영을 구경했다.
몰래 의서를 읽으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장소혜 그 자체였다. 서이연은 그녀의 싱그럽고도 강한 에너지를 가진 연기를 관찰하며, 오후에 있을 그녀와의 촬영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연은 죽을 만큼, 아니 죽도록 연습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믿을 수 있었다.
잘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자신을 응원하며 긴장을 푸는 이연의 코끝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누님…….”
“장소현.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안 일어나고 뭐 해.”
“일어났어요…….”
“너 내가 오지 않으면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누워만 있는 거 모를 줄 알아?”
“……아니에요…… 근데, 누님 또 여기 왔다고 아버지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네가 그걸 왜 걱정해. 이거나 받아. 네가 좋아하는 홍시!”
장소현은 새빨간 홍시를 받아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님은 먹었어요?”
“걱정도 많다, 장소현.”
장소현은 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를 받은 것이 기분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장소혜는 몸이 허약하여 아버지에게서 천대받는 동생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케이-
“삼십 분 쉬고 윤서 씨 촬영 들어갈게요.”
*
“안녕하세요, 서이연 씨 맞죠?”
“어, 아! 아, 안녕하세요!”
서이연은 신윤서가 인기척도 없이 다가와 인사하자 깜짝 놀라 푸드덕거리다 인사를 받았다.
촬영이 없어 구석 벤치에 앉아 대본을 읽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울래요?”
신윤서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말했다.
서이연은 그를 정중하게 거절했고, 신윤서는 이연을 향해 작게 미소 짓고는 홀로 담배를 태웠다. 이연은 담배를 피우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이 마치 누아르를 연기하는 사람처럼 멋져 보여, 자신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른 채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신윤서는 하얀 연기를 내뿜고, 담배를 탁탁 털더니 말했다.
“감독님이 장소현 역은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아, 네…….”
“아무래도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한테 임팩트를 줘야 하는 인물이니까…….”
“네…….”
“근데 진짜 장소현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네요.”
신윤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그냥. 난 감독님이 너무 까탈스럽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병약해 보이지만 선한 얼굴에, 누가 봐도 남자지만 여장을 해놓으면 고운, 그런 배우가 어딨어요.”
“아…….”
“진짜 찾을 줄은 몰랐지.”
서이연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신윤서의 눈길에, 어쩔 줄 모르며 이미 붉어진 볼을 더욱더 발갛게 붉혔다. 신윤서는 서이연의 반응이 재밌는지 가볍게 웃었다.
“신인은 아닌 것 같은데, 조연 맡은 건 처음이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서이연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와…….”
신윤서는 자신이 하는 말이면 뭐든 감탄을 내뱉고 보는 서이연이 괜히 웃겨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휴식 시간이 끝나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신윤서의 촬영 시각이 다 되어간다는 스텝의 목소리에 대화를 멈추었다.
“다음에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요.”
“네? 저랑요?”
“다른 사람이랑 마실까요?”
“아, 아뇨…… 저랑 마셔주세요…….”
서이연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하. 이연 씨 진짜 웃긴다. 다음 촬영 때 봐요.”
“네…… 선배님 파이팅……! 이요…….”
서이연은 양손의 주먹을 말아쥔 채 신윤서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고, 신윤서는 그런 서이연을 뒤돌아보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서이연의 볼이 아직 발갛게 익어 있었다.
*
그날 밤, 서이연은 차주원을 만나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아직 첫 촬영을 마친 흥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평소 존경하던 감독님과 악수하며 인사했고, 신윤서와는 대화까지 했다. 이연은 남자를 만난 이후로 꿈만 꿔왔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하며, 어서 그가 도착하기를 바랐다.
띠리릭-
이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차주원은 오늘도 여전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다. 각 잡힌 정장을 반듯이 차려입고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표정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굳어있었다.
“오셨어요…….”
서이연은 그에게 맞춘 듯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과 묵직한 코트를 빤히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 그래도 큰 키에 긴 코트까지 걸치니, 남자의 체구가 정말 커 보였다. 마치 코트 화보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괜히 신기하기도 했다.
차주원은 서이연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박치기 안 했나 보네.
그는 서이연이 커다란 눈망울을 맞춰오며 건네는 인사를 무시한 채, 곧바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서이연도 차주원의 뒤를 졸졸 쫓아 드레스룸으로 따라갔다. 그는 차주원의 옆에 딱 붙어 그가 벗는 코트를 받아들려 했으나, 차주원은 그를 무시하고 직접 코트를 걸었다.
그러나 이연은 굴하지 않고 차주원이 그다음으로 벗는 재킷을 받아들려 했다. 차주원은 이번에도 서이연을 무시하고 직접 재킷을 정리했다.
그렇게 차주원이 옷을 벗을 때마다 그의 커다란 몸에 치이고 낑낑거리며 옷을 받으려던 이연은, 결국 무시만 잔뜩 받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욕실로 들어간 그를 뒤로하고 드레스룸을 나서는 서이연의 얼굴에서 풀죽은 기색은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른 씻고 나와야지.
차주원이 씻기 전에 자신이 먼저 나와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연은 빠르게 다른 방의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연이 뽀얀 얼굴을 반짝이며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차주원이 리빙룸에서 야경을 보며 위스키를 들이켜고 있었다.
“전무님…… 빨리 씻으셨네요.”
이연은 재빨리 그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촉촉하게 젖은 앞머리를 내린 차주원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했다. 말을 걸어도 돌아봐 주지 않는 그이지만, 이렇게 옆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참 좋다고 생각하며.
“…….”
차주원은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그가 기분이 좋을 때는 거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견뎌내며 버티고 있는 차주원의 기분은 대체로 언짢은 상태와 매우 화난 상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술 마시고 계세요……? 그거 와인 아니죠……?”
서이연은 괜히 차주원이 마시는 술이 어떤 술인지 궁금해 물었다.
“왜.”
“네?”
“너 술 못 마시잖아.”
차주원은 커다란 유리창에 비치는 서이연의 하얀 얼굴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아…… 못 마시는 건 아니고…… 잘 안 마셔요. 술 마시면 페로몬 조절이 힘들어서…….”
차주원은 서이연의 종알거림을 들으며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그런데…… 제가 술 잘 안 마시는 건 어떻게 아세요?”
차주원은 자신이 서이연의 뒷조사를 했다는 것을 말하기 귀찮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차주원이 대답하지 않고 술만 들이켜자, 서이연은 괜히 그에게 가까이 붙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소주는 써서 별로 안 좋아하구요… 맥주는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어요. 막걸리는 나무잔에 먹으면 괜히 옛날 사람들처럼 먹는 것 같아서 좋아하고요…… 와인은 아직 못 먹어봤어요.”
“…….”
“전무님은 무슨 술 제일 좋아하세요?”
차주원은 가까이 붙은 서이연에게서 흘러나오는 담백한 페로몬이 신경 쓰여 날카롭게 말을 뱉었다.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전무님은 어떤 술 좋아하시는지 알고 싶어서…….”
“…….”
차주원은 자신에게 끼를 부리는 서이연을 가만히 응시했다. 하얗고 매끈한 피부가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어 촉촉해 보였다. 자신과 같은 샤워가운을 입고 있는데 한참 품이 남는 그의 몸을 보자, 괜히 목이 말라 남은 위스키를 한 번에 들이켰다.
아무래도 서이연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먼저 내놓고 질문하는 습관이 있는 듯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오메가의 대화 방식이었다.
차주원이 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자, 서이연은 또 괜히 그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저, 영화 첫 촬영 했어요. 제가 나오는 장면이 많지는 않아서, 앞으로 세 번만 더 찍으면 될 거래요.”
“…….”
차주원은 서이연의 느릿느릿한 재잘거림을 들으며 그를 외면하고 있던 고개를 돌렸다. 다시금 서이연의 커다란 눈동자와 조막만 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찼다.
넌 뭐가 그렇게 즐거워.
뭐가 그렇게 좋아.
차주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서이연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감독님도 너무 좋으신 분이고…… 아, 오늘 저, 신윤서 선배님이, 말도 걸어주셨어요!”
“…….”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내뱉는 서이연의 모습에, 차주원의 가지런한 눈썹이 위로 추어 올랐다.
“그분은 제가, 예전에 단역으로 촬영할 때도, 친절하게 인사 받아주셔서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알파?”
서늘함을 담은 물음이 입 밖으로 샜다.
“네? 신윤서 선배님이요?”
“어.”
차주원은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는 서이연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차주원은 말간 얼굴로 순순히 대답하는 서이연을 향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너, 여자한테도 세울 수 있었나.”
“네……?”
“넣기도 전에 미끄러질 텐데.”
물이 많아서.
“아…….”
서이연은 차주원이 하는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아 아연한 탄성만 흘렸다. 갑자기 여성 알파와의 관계 얘기는 왜 꺼내시는 걸까…….
“뒤로 박히면서, 앞도 쓰고 싶다는 거지.”
서이연의 커다란 눈동자가 차주원의 표정을 읽기 위해 간절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싸늘한 미소로 덮인 남자의 표정을, 이연은 결코 읽어낼 수 없었다.
차주원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날 선 페로몬과 목소리에, 서이연도 냉큼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뾰족하게 가시를 세운 알파 페로몬이 또다시 피부를 따끔하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욕심이 많네.”
차주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이연이, 그의 굳은 표정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의 단단한 팔뚝을 조심스레 잡았다. 왜 갑자기 그가 화나 보이는지, 아니 정말 화난 게 맞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알파 페로몬이 숨 막힐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가면을 쓴 듯 무심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소원이면, 들어줘야지.”
차주원이 자신의 팔을 살포시 붙잡고 있는 서이연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아…….”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신음을 뱉으며 내쳐진 손을 붙잡았다. 차주원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동자에, 불안함이 담기기 시작했다.
이연은 서서히 목을 졸라 오며 숨통을 막는 듯한 알파 페로몬 때문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금방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힘을 주느라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차주원은 고개 숙인 서이연의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대답해. 박고 싶어?”
차주원이 손가락으로 어깨를 밀치자, 서이연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아……!”
“…….”
뒤로 밀릴 줄만 알았지, 서이연이 엉덩방아를 찧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차주원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물들었다. 이게 지금 연기하나…….
이연은 바로 벌떡 일어나 다시 차주원의 앞에 섰다. 넘어지면 안 됐는데 넘어졌다는 자책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 전무님…… 질무,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더듬더듬 말을 내뱉는 서이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스폰서 앞에서 감히 실수했다는 강박으로 인해 손까지 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
차주원은 강한 우성 알파 페로몬에 짓눌려,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고 있는 눈앞의 작은 오메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벗어.”
차주원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서이연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오늘은 그와 웃으며 잠자리를 시작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항상 자신은 남자를 화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자책으로 물든 이연의 얼굴 위로 서러움이 퍼졌다.
가운이 벗겨지며 서서히 드러나는 새하얀 나신을 바라보는 차주원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열감이 일기 시작했다.
“전무님…… 화나셨어요?”
서이연은 천천히 차주원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말했다.
차주원은 한쪽 입꼬리를 차갑게 올리며, 또 끼를 부리기 시작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화났으면 어쩌려고.”
“풀어드리려구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가슴팍에 턱을 대고는 그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서이연은 어떻게 하면 남자의 화를 풀 수 있을지 짧은 시간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화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서이연은 보통 사람들이 화가 났을 때 어떤 식으로 화를 푸는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네…… 제가, 뽀뽀, 해드려도, 될까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 볼에 입맞춤 받을 때 기분이 그리 좋았다. 일곱 살 이후로는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누군가 자신의 볼에 뽀뽀해 준다면,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렇지 않을까.
“…….”
서이연은 차주원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자,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촉-
부드러운 입술이 볼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차주원은 우습게도 입맞춤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서이연은 여전히 차주원의 허리에 팔을 감은 채 그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차주원은 달큼한 페로몬을 풍기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서이연과 눈을 맞췄다.
그러다, 투명한 피부 위에 고운 선을 그리고 있는 그의 눈썹과 기다란 속눈썹이 신경을 거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아랫배가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넌 내가 너무 쉽지.”
“…….”
서이연은 자신이 또 무언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차주원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차주원은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서이연의 가느다란 팔을 잡고 떼어내며 말했다. 가소롭다는 듯한 그의 표정에, 서이연은 다급히 말을 뱉었다.
“저, 전무님 안 쉬워요. 저한텐 너무, 많이 어려워서, 항상,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단 말이에요…….”
실제로 요즈음의 서이연은 차주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의 까탈스러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가 이런 애들 장난만도 못한 입맞춤인가?”
물론 서이연의 고민에 대한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
“안기면서 툭하면 물이나 질질 싸대는 오메가에게서 나온 생각치곤, 꽤 순진한 것 같은데.”
“…….”
서이연은 가만히 차주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비웃음이 섞인 듯한 그의 말투에, 서이연은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전무님도 안 멈추고 몇 번이나 계속 섹스했으면서…….
자신만 변태로 만드는 것만 같은 그의 말에, 괜히 반항심이 일었다. 물론 항상 자신은 그를 유혹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막상 섹스하면 자신은 딱히 하는 게 없다.
차주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는 서이연을 보며, 그도 드디어 자신처럼 기분이 더러워졌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서이연은 천천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차주원의 샤워 가운 매듭도 풀었다.
“그러면 여기에, 뽀뽀하는 건요…….”
이미 딱딱하게 올라붙어 있는 좆에 살짝 키스하며 차주원을 올려다보는 서이연의 눈빛이 묘했다. 성기 옆 부분을 살짝 물듯 입에 무는 그의 행동에, 차주원의 눈썹이 꿈틀댔다.
“하…… 아주 사람을 갖고 놀지.”
피식 웃는 차주원의 우둘투둘한 복근이 움찔댔다. 서이연은 그의 성기 뿌리부터 기둥까지 천천히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주원은 몸을 유리창에 기대고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서이연은 작은 입으로 열심히 성기를 물고 빨았다.
츄읍-
혀를 넓게 펴서 귀두 밑 움푹 들어간 곳을 핥고, 요도 구멍 주위도 사탕을 빨아들이듯 물었다.
그러나 성기를 애무하던 서이연의 집중력은 곧 깨져버리고 말았는데, 자꾸만 차주원의 손가락이 그의 귓바퀴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흐으…….”
귓바퀴를 쓸고,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펠라를 받는 남자는 꽤나 태연하고 느긋해 보였다. 그를 애타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혼자 흥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이연은 조급함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돼……!
서이연은 그의 굵은 허벅지를 꼭 붙들고 있던 손을 움직여 그의 손을 잡았다. 작은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차주원의 다른 손이 멈칫했다.
서이연은 그의 손에 깍지를 꼭 꼈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굵고 긴 손가락과 맞물렸다.
차주원은 서이연이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전무님…… 저 잘하고 있어요……?”
서이연은 차주원의 성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손을 꼭 잡은 채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망울이 너무나 울멍하고 반짝여서, 차주원은 허탈함을 느꼈다. 얼굴을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잘 아는 그가 영악하게만 느껴졌다.
차주원에게서 강한 페로몬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서이연은 몸을 흠칫 떨며 허리를 뒤틀었다. 페로몬이 날카로운 것을 봐서는, 그의 화가 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리면, 너도 솔직해지겠지.”
차주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뱉고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작은 손을 탁 쳐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이연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침실로 향하는 차주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연도 그의 뒤를 따르기 위해 서둘러 다리를 세웠다.
“아!”
그러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그는 다리를 세우자마자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퍼덕 넘어진 서이연의 무릎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혹시라도 차주원이 침실 문을 닫고 잠가버릴까 걱정돼 재빨리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쥐가 난 다리로 절뚝거리며 침실로 들어온 서이연은, 차주원이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놓는 것을 눈에 담았다.
그는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차주원에게 다가갔다.
그는 가까이 다가온 서이연을 보고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혼자 해봐.”
“……네? 혼자요?”
“어.”
“……혼자, 뭘요?”
설마 혼자 자라는 것일까. 이렇게 넓고 낯선 방에서 혼자 자면 무서울 것 같은데…… 저번에는 기절하듯 잠들어 몰랐는데 괜히 혼자 자기가 싫었다. 아니, 그보다 오늘은 섹스하지 않겠다는 의미일까? 혼자 너무 많이 싸서 질린 것일까…… 이미 자신은 스폰서에게 버려졌는데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오늘 드디어 영화의 첫 신을 찍고 왔는데, 이제 갑자기 하차해야 하나. 아마 사람들은 자신이 하차하는 줄도 잘 모를 것이다. 난 무명 배우니까…….
차주원은 갑자기 울먹이며 무릎을 꿇을 준비를 하는 서이연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며 일갈했다.
“자위.”
그의 말에, 서이연은 순식간에 표정을 풀고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닦았다.
“아, 자위요…… 저, 저는 또…… 다른 건 줄 알고…… 침대에서, 할까요?”
괜히 걱정했네…….
서이연은 괜히 말을 늘리며 시간을 벌었다. 자위. 여태껏 몇 번 하지 않았던 자위. 남자의 앞에서는 어떤 야한 생각을 해야 자위를 할 수 있을까. 아까는 그의 페로몬에 성기가 힘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조금 전 울먹인 탓에 완전히 풀 죽어 있었다.
지금 다시 성기를 세울 방법이라면…….
“전무님, 저, 전무님, 생각하면서, 자위해도 될까요?”
이연이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하.”
차주원이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굳은 표정에, 서이연은 그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이유를 설명했다.
“……기분, 나쁘시겠지만…… 저는 전무님이랑만 섹스해봐서, 다른 사람은 생각이 안 나요…… 마지막 자위는, 스무, 스물두 살 때였는데, 그때는 히트 사이클 때, 약값이 없어서 혼자 한 거였거든요…… 다행히 그 뒤로는 약값을-”
“야.”
낮은 목소리로 한 음절을 내뱉는 차주원의 목소리가 시렸다.
“……네.”
“끼 부리지 말랬지.”
차주원은 서이연을 노려보며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밀었고, 그는 한 번 더 팔랑거리며 뒤로 털썩 넘어갔다.
“…….”
다행히 이번에는 뒤에 침대가 있어 엉덩방아를 찧진 않았다. 차주원은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거칠게 앉았다.
짜증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어디 해 보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차주원의 눈빛에, 서이연은 주섬주섬 자신의 성기를 잡았다.
어차피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을 남자가 알 수는 없을 테니, 이연은 그와의 섹스를 몰래 상상하며 자위하기로 했다.
그의 페로몬은 마치 숨을 참다 물 밖으로 건져내질 때의 감각 같았다. 다급히 산소 같은 페로몬을 들이마시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다른 무엇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감각. 그 향기를 맡으면 절로 허벅지가 떨리고, 구멍 안이 질척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껏 알파 페로몬은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마주했지만, 우성 알파의 것은 처음이었다.
무심한 표정을 한 아름다운 남자가 그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골반을 잡고 허릿짓을 할 때면 허벅지가 마찰하여 아릿하긴 하지만, 그 약한 고통 역시 자극이 되어 애액을 내보내게 된다.
그가 그 굵은 손가락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어 내벽을 자극할 때면, 엉덩이가 절로 흔들리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이연은 문득 그가 손가락을 구멍에서 뺐을 때, 그의 단단한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던 자신의 애액이 기억나 볼을 붉혔다.
차주원은 침대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서이연을 눈에 담았다. 달아오른 볼을 하고는, 자신의 성기를 수줍은 듯 살짝살짝 매만지는 그는 그야말로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한 입 깨물면 과즙이 흘러넘칠 것만 같은.
차주원은 하얀 시트 위에서 꼬물거리는 서이연의 분홍빛 발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끼발가락이 성인치고는 너무 작아 신기하기까지 했다.
“으으…… 아으…….”
이연은 남자와의 성교를 상상하며 조금씩 힘을 받는 자신의 성기를 아래위로 매만졌다. 이미 성기 끝에는 프리컴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그 아래로 내렸다. 통통하게 올라붙은 불알을 매만져 주고,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회음부도 살살 쓸어주었다.
이연이 애액이 방울방울 새어 나오기 시작한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것은, 차주원의 맹렬한 눈동자를 눈에 담았을 때였다.
“전무님…….”
서이연은 애가 타 어쩔 줄 모르며 남자를 불렀다.
제 손가락은 너무 가늘어요. 꽉 차게 만들어주세요…….
차주원은 맹랑하게도 눈빛으로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표정이 다 드러나는 서이연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한순간 서이연을 끝없이 괴롭히고 싶을 만큼 머리끝까지 열 받다가도, 저 간절한 눈망울을 마주하면 어느 순간 팽팽했던 신경줄이 느슨하게 풀어진다. 이제껏 자신 앞에서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일부러 그러는 거면.”
“아으…….”
“꽤 똑똑한데…….”
차주원은 서이연의 자위를 보며 꺼떡거리는 자신의 성기를 느꼈다. 서이연은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전립선을 찔러보려 노력했다. 차주원은 그가 느끼는 지점이 꽤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마 그가 손가락만으로 절정에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런 자각 없이 이러는 거면.”
“흐응…….”
“타고난 건가.”
차주원이 천천히 서이연이 앉아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이연은 조금 전 자신이 풀어 둔 차주원의 가운 매듭 사이로 꼿꼿이 솟아있는 흉흉한 성기를 눈에 담았다. 그의 성난 페로몬이 온몸을 쿡쿡 찌르는 것만 같았다.
차주원은 한쪽 무릎을 침대 위로 올리고, 젖어있는 구멍에 손을 갖다 댔다. 서이연은 그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흠칫 떨며 신음을 뱉었다.
“아흐…….”
“뭘 잘했다고 또 혼자 싸.”
차주원은 서이연의 손가락이 들어가 있는 구멍에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흣, 전무, 님!”
서이연은 구멍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굵은 손가락에 놀라 자신의 손가락을 빼려 했지만, 차주원은 그의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어딜.”
서이연은 같은 구멍에 동시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알파와 눈을 맞췄다.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나른한 미소를 걸치고 있는 그를 보자,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차주원은 이미 빠듯한 내벽을 퍽퍽 쑤셨다. 서이연은 그가 손가락을 박아넣을 때마다 같이 휩쓸려 움직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차주원이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을 때였다. 서이연은 발개진 볼을 한 채 물었다.
“싸, 싸도 돼요……?”
참 어이없는 질문에, 차주원은 그를 비웃듯 말을 내뱉었다.
“싸지 말라고 하면, 참을 수나 있나?”
그러나 서이연은 그의 말에 수긍한 듯 수줍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아뇨…… 그냥, 그냥 쌀래요…….”
서이연은 몸에 힘을 풀고 불알에 고여있는 정액을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차주원이 그의 좆 뿌리를 꽉 잡았다. 순식간에 막혀버린 통로에, 서이연이 울먹울먹한 눈을 들며 말했다.
“전무님…… 싸도, 된다면서요…….”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태연한 척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차주원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불분명한 말을 뱉고는, 협탁 위 작은 상자를 열고 동그란 고리가 달린 가느다란 막대를 꺼냈다.
서이연은 그의 커다란 손에 잡힌 성기가 강한 악력으로 조여오자 못 참겠다는 듯 허리를 뒤틀었다. 정액을 싸고 싶기도 했지만, 고통이 더 컸다. 그의 덩치를 보면 힘이 세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만…… 연약한 부위를 조여오는 손길에, 서이연은 하마터면 그의 어깨를 밀어낼 뻔했다. 어차피 밀리지 않았겠지만.
“전무님, 그거, 뭐예요……? 저, 귀, 귀 가렵지 않은데…….”
서이연은 흐린 시야 속 차주원이 귀이개를 꺼낸 거라 생각해 물었다. 정액도 못 싸게 하면서 갑자기 귀를 파주겠다니, 이런 방면으로 까탈스러운 거라면 도저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좀 닥쳐.”
차주원이 으르렁거리듯 일갈하고는, 서이연의 요도 구멍에 막대를 갔다 댔다.
“힘 풀어.”
“그걸 왜 거기-”
푸욱- 연약한 요도 구멍에 카테터가 꽂혔다.
“아악! 흐으, 으으, 아…… 전, 전무님!”
서이연은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활짝 벌어진 새하얀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흐윽…… 으으…… 전무님…… 이거, 이거 아파요…….”
“왜. 앞도 쓰고 싶어 했잖아. 박고 싶다며.”
“아흐…… 아, 저, 전무님…… 제발…….”
“박아주잖아.”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남자의 태도에, 서이연은 커다란 눈물방울을 퐁퐁 내보내며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막대를 밀어 넣었고, 이제 거의 동그란 고리만 남겨둔 채였다.
“이, 이상하단 말이에요…… 이거 아니에요…… 빼주세요…… 흐으, 안 해요, 안 할래요…….”
“듣기 싫으니까 울지 마.”
“끄윽…… 빼, 빼주세요…… 안 돼요…… 이상해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자신의 팔뚝을 잡고 애원하는 서이연의 모습에, 차주원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연의 속눈썹은 눈물을 한가득 매단 채 젖어있었다.
“……그래, 너도 싫잖아. 이제야 솔직해지네.”
차주원은 막대를 밀어 넣던 손에 힘을 빼고,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불안정한 날숨을 뱉는 그의 얼굴에 짙은 체념이 깔려 있었다.
“……흐윽, 흐으…….”
서이연은 차주원의 표정을 마주하고, 훌쩍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시린 그의 표정에, 서이연은 밑에서 올라오는 아픔도 잠시 잊은 채 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주원의 매끄러운 입술이 열린 것도 그때였다.
“말해.”
“…….”
“새벽.”
“…….”
순간, 서이연의 커다란 눈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눈물방울이 순간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주원은 추락하는 눈물방울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전무님…….”
서이연은 눈물로 얼룩진 볼을 손으로 아무렇게나 닦아내며 말했다.
“이제, 이제 안 아파요…… 안 싫어요.”
말을 뱉고 나니, 정말로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사실 좀 전에는 너무 놀라서 엄살을 부린 것도 있었다.
“…….”
“이제, 이제 전무님이랑 섹스할래요. 앞은, 막았으니까…….”
서이연이 차주원의 허벅지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
“뒤도 막아주세요…….”
“……하.”
차주원은 생각했다. 이건 페로몬 때문이겠지. 서이연이 이렇게 자신을 원한다는 듯 구는 건, 그가 우성 알파 앞 열성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그저 호르몬에 충실하고 영악하게 반응하는 것뿐.
차주원은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말했다.
“엎드려.”
서이연은 차주원의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몸을 뒤집었다. 큰 용기를 내 야한 말을 뱉었지만, 그의 반응을 보아서는 이번에도 실패한 듯했다. 역시 경험은 노력을 이길 수 없는 건가…….
몸을 움직이자 요도에 이물감이 심해졌다. 이제껏 소변과 정액을 내보내면서도 이 구멍에 무언가 넣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주 가는 막대이긴 했지만, 정액을 내보내려다 막힌 구멍이 아릿해져 왔다.
차주원은 눈앞의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그 밑으로 흔들리는 성기 끝에서 카테터와 연결된 고리가 달랑거리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그의 허벅지는 새하얗고 통통했다. 붉게 물든 모습도 잘 어울릴 듯한 뽀얀 살결이었다.
“영화 찍는 게 그렇게 좋아?”
차주원은 서이연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아무렇게나 문지르며 말했다.
“네? 아, 네, 네! 너무, 너무 좋아요…… 꿈만 같아요…… 다 전무님 덕분이에요.”
서이연은 고개를 번쩍 들고 허리까지 세우며 재잘거렸다. 이 주제야말로 그가 차주원과 나누고 싶은 대화 주제 1순위였다.
“좋아하는 배우 만나서?”
“네, 좋아요! 사실 감독님도 평소에 정말 존경하는 감독님이셨는데, 역시 촬영장에서도 대단하시더라구요. 디렉팅이 정말 날카로우셔서 깜짝 놀랐어요. 전무님, 혹시 제 마음 읽으신 건 아니죠……? 저 그 감독님이랑 영화 같이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서이연은 아예 돌아앉고는 차주원과 눈을 맞췄다. 그의 성기 끝으로 삐져나온 고리가 흔들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니. 못 읽지. 네 마음 같은 건.”
차주원은 서이연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의 작은 턱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가 서이연의 볼을 꾹 눌러, 통통한 입술이 오리처럼 나왔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으우…….”
“뭐라는 거야…….”
차주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이연의 볼을 놔주었다.
“그러니까,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뭘.”
차주원은 초롱초롱한 서이연의 눈빛이 조금 과하게 반짝거리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페로몬을 퐁퐁 뿜어내는 침대 위의 오메가는, 정말 위험했다.
“전무님이 제 마음 못 읽으시니까, 제가 먼저 말할 거예요.”
“…….”
“제, 은인이시니까요.”
차주원은 끊임없이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서이연이 우스웠다. 이 작은 머리통 안에는 정말 무지개와 연못, 꽃밭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관도.
“……난 네 스폰서야. 은인이 아니라.”
“전무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그런데 저한테는 정말 은인이나 다름없어서…….”
“아니지. 그렇게 포장하려 들면 안 되지.”
차주원의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네?”
이연은 그의 심기가 또다시 뒤틀린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한쪽만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촉촉이 젖은 새까만 머리칼도 입술을 묻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를 볼 때마다 이렇게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건 다 페로몬 때문일까.
“난 너한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 건데, 감히 은인 따위에 비교하면 안 되지.”
“……네…… 제, 제가 말을 잘못했나 봐요. 전무님은 제 스폰서예요.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폰서예요…….”
서이연이 머뭇거리며 차주원의 손을 잡았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차주원의 손가락을 살짝 밀어 넣으며 깍지까지 끼우려 했다.
“…….”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차주원은 문득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어지기 시작했다. 섹스하기 위해 온 호텔 침대에 걸터앉아 파트너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신이라니. 이제껏 파트너와 침대에서 했던 일이라고는 박고 싸는 것뿐이었다.
거기다 눈앞의 파트너는 분홍빛 성기에 카테터까지 끼우고 있으면서도 재잘재잘 입을 잘만 움직였다.
“그래, 그럼.”
차주원은 서이연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 깍지를 끼우려 애쓰던 서이연은, 손이 내쳐졌는데도 차주원의 눈을 피하지 않고 순순히 다리를 벌렸다.
“잘 해봐. 그 감사한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궁금하네.”
서이연은 차주원이 정말 까탈스러운 스폰서가 맞다 생각했다. 그가 하는 말의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그 이상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으응…….”
차주원이 알파 페로몬을 풀며 성기를 구멍에 꾸욱 누르자, 서이연이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구멍 가장자리의 쫀득한 살이 성기에 달라붙었다.
“하아…… 좁아.”
차주원은 애액이 흘러 진득진득한 내벽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물이 많지만, 원체 몸집이 작아서인지 빠듯한 느낌이었다. 그 좁은 구멍에 성기를 밀어 넣자, 허벅지가 아릿해질 정도로 성감이 차올랐다.
“힘, 풀고, 아으…… 있어요…….”
거대한 성기가 아래부터 뚫고 들어오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연은 침대 시트를 꼭 잡고 숨을 내뱉어보려 애썼다.
차주원은 오르내리는 작은 흉통을 눈에 담은 채, 커다란 손을 들어 그의 젖꼭지를 쓸었다. 이전부터 생각해왔지만,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워 보이는 가슴이었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고.
힘을 받아 젖꼭지가 딱딱해졌지만, 여전히 손으로 누르면 푸욱 들어가는 유륜을 만져주자 서이연이 허벅지를 조이며 신음을 냈다.
“흐응…….”
“넌 가슴만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시험해볼까.”
차주원이 꼿꼿이 서 있는 이연의 젖꼭지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말했다. 이연은 따끔한 고통과 함께 젖꼭지가 더욱 힘을 받는 것을 느꼈다. 단단하고 커다란 손바닥이 연한 살을 내리치자 젖꼭지가 파르르 떨렸다.
차주원이 허리를 움직이자, 구멍 안에서 찌걱거리는 민망한 소리가 들렸다. 서이연은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차주원의 복근을 훔쳐보았다.
우둘투둘한 배 밑으로, 검은 음모가 자신의 성기와 맞닿아있었다. 털이 없는 자신의 사타구니와 짙은 색의 음모가 계속해서 부딪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열이 올라 더워졌다.
“아으, 전무님…… 천천히요…….”
“천천히 하고 있는데. 물이 많아서 미끄러지는 거야.”
“……전무님, 고추…… 에서 나온 물일 수도 있잖아요…… 아앙!”
서이연은 차주원의 눈치를 보며 항변하다, 성기 뿌리 끝까지 한 번에 박아버리는 그의 허릿짓에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우니까 입 닫아.”
차주원은 서이연의 비명에 머리가 아픈 듯 미간을 찌푸렸다.
“죄, 죄송해요…… 갑자기, 쌀, 뻔했어요…….”
“막혀있는데 어떻게 싸.”
서이연은 격렬한 성감에 숨을 할딱이면서도, 아직 마개로 막혀있는 자신의 성기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그가 언제 이 마개를 빼줄지 궁금했다. 정액을 싸고 싶다는 욕구는 커져만 가는데, 이대로라면 정액을 쌀 때 어떻게 되는 걸까. 안에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힘 빼.”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던 잡생각도 거기까지였다.
계속해서 귀두부터 뿌리까지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박아버리는 그의 난폭한 허릿짓에, 서이연의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차주원이 성감에 못 이겨 작은 발로 시트를 밀어내고 있는 이연의 다리를 잡고, 위로 벌렸다. 두 발이 허공에서 흔들리며 꼼지락댔다. 서이연은 몸이 반으로 접히자 더욱더 깊게 삽입되는 그의 성기를 느끼며 침을 질질 흘렸다.
“흐으…… 아으…….”
“앞이 막히니까, 더 느끼는 것 같네.”
차주원은 성기를 밀어 넣을 때마다 볼록해지는 그의 아랫배를 쳐다보며 말했다. 성기를 뒤로 물릴 때마다, 구멍 가장자리가 오물거리며 열심히 귀두를 빨았다. 빨간 속살이 밀려 나오며 쫀득하게 잡아채는 탓에, 점점 더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이 들었다.
“아흑, 거기…… 안, 돼요…….”
마치 폭력과도 같이 전립선을 퍽퍽 내리치는 허릿짓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을 때, 결국 서이연은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아읏, 으응…….”
차주원은 그의 눈이 뒤집히고, 내벽에서 애액이 한차례 뿜어져 나와 성기를 진득하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아래로 쌌으니 이제 위로 쌀 차례인데…… 요도가 막혀있어 발개진 성기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 정액을 내보내지는 못했다.
꿈틀거리는 가는 허리를 꽉 잡은 차주원은, 성기를 깊이 박아넣고 정액을 내뿜었다. 단단한 목이 뒤로 넘어가고,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입술에서 깊은숨이 샜다.
“하아…… 씹.”
서이연의 페로몬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연약한 향기라 더욱 유연하게 온몸 구석구석을 쉽게 파고들어 버린다.
“뒤로 싸는 걸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 자주 싸. 차주원은 침대 위에 추욱 늘어져 움찔거리고 있는 서이연을 내려다보았다. 싸지 못해 퉁퉁 불어버린 성기가 그의 민둥한 사타구니 위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힘을 받아 꼿꼿이 서 있던 성기는 드라이 오르가즘으로 인해 이미 말랑해져 있었다.
“흐읏…… 따끔, 거려요…… 흐윽.”
서이연은 여전히 앞 구멍을 막고 있는 카테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빼.”
차주원은 훌쩍거리기만 할 뿐 여전히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서이연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성기를 빼지 않고 있었다. 차주원은 뿌리까지 밀어 넣은 성기 끝으로 서이연의 연약한 내벽을 문지르며 자극했다. 그가 아래에서 다리를 훤히 벌린 채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잔인하게도, 차주원은 이연의 요도에 꽂혀있는 카테터를 검지로 꾹꾹 누르며 전립선을 자극했다.
“아흑.”
드라이 오르가즘에 이어 요도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전립선을 자극당하자, 이연은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을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얀 허벅지가 덜덜 떨리며 벌어졌다가 오므라들었고, 바짝 선 젖꼭지가 가슴과 함께 부풀어 올랐다 꺼지길 반복했다.
“앞으로도 박히니까 좋아?”
“흐으…… 히익, 아, 아파요…….”
“난 물속에 박은 것 같아.”
차주원이 성기로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내벽 안에서 애액과 정액으로 인해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으, 그, 그만…….”
“어딜.”
이연은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으나, 차주원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연의 작은 무릎을 잡고 힘을 주었다.
“넌 다리 벌리고 있는 게 예뻐. 힘 빼.”
오르가즘으로 인해 오메가의 몸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 몸을 구석구석 핥듯 바라보는 차주원의 시선은 음탕한 정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흐읏…… 전무님, 잠, 시만, 요…… 빼지, 마세요…….”
“뭘.”
“고추, 고추요…….”
“……왜.”
차주원은 서이연이 또 무슨 멍청한 이유를 내뱉을까 생각하며 물었다.
“가, 갑자기 빼면, 무서워요…….”
서이연의 대답에, 차주원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성기를 뒤로 물려 천천히 구멍에서 빼냈다.
“하으…….”
서이연은 굵고 긴 성기가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가자 허리를 띄우며 가냘픈 신음을 뱉었다. 아래가 뻥 뚫려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감히 벌어진 다리를 오므릴 생각도 못 했다.
차주원이 슬쩍 눈을 내려 확인한 아래는 마치 홍수라도 난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투명한 액과 섞인 하얀 정액이 구멍 밖으로 꾸물꾸물 흘러나오다 못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자신의 성기 또한 정액과 애액 범벅이 되어 무엇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묽은 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네 애액으로 다 젖었잖아.”
짜증스러운 목소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깔려 있었다. 차주원은 하얀 점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그의 구멍 위, 회음부를 꾸욱 눌렀다. 이연의 발목 한쪽을 잡아 든 채였다.
“으응……!”
“부었네.”
다리를 훤히 벌려놓고 회음부와 불알 사이를 일자로 문지르는 차주원의 행동에, 이연의 허리가 움찔움찔 떨리며 뒤틀렸다. 그는 발갛게 쓸린 회음부 중심의 회음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댔다.
“그, 그만…… 으으…….”
“너무 흘리니까, 짜내 주려고.”
“흐으…….”
실제로 차주원이 손가락으로 회음부를 괴롭힐수록, 내벽 안에 고여있던 정액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찌익 찌익 흘러나오기를 반복했다.
침대 위는 이미 점성이 높은 액체로 엉망이었다. 원래는 하얀색이었던 시트가 물을 머금고 짙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많이도 쌌네.”
“하아…… 으윽.”
차주원이 손을 놓자, 그가 잡고 있던 이연의 가는 발목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이연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얌전히 누워있었다. 그저 움찔움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도 벅찼다.
“흐으, 흐윽…… 안, 에서, 터진 거, 아니죠……?”
“…….”
몸을 잘게 떨며 실없는 소리를 내뱉은 이연의 말에, 차주원은 그를 외면하고 담배를 찾아 물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물음이었다.
“느낌이, 이상, 한데…… 흐윽.”
서이연은 여전히 몸을 세우지도 못하고 추욱 늘어져 중얼거렸다. 차주원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은숨을 빨아들였다 내뱉을 때까지.
“쌌는데…… 안, 쌌잖아요…….”
“그만 일어나지.”
“힘이, 없어요…….”
차주원은 담배를 태우며 서이연을 가만히 응시했다.
침대 반대 방향으로 누워있는 그의 작은 발이 제일 먼저 시야에 담겼다. 여태 벌어져 움찔대는 그의 곧은 다리는 털 한 올 없이 매끈했다. 하얀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는 구멍과 카테터가 꽂힌 성기는 시선을 두기만 해도 가학심이 솟아나는 광경이었다. 하도 꼬집고 때려서 붉어진 젖꼭지도 작은 가슴 위에서 마치 파르르 떨리고 있는 듯 보였다.
고운 목선이나 곧은 쇄골도 보기 좋았지만, 역시 제일 봐줄 만한 건 그의 얼굴이었다. 땀에 젖어 하얀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그의 앞머리는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얼굴을 더욱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처음 봤을 땐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긴 속눈썹은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팔랑거리며 그림자를 만들어, 시선을 잡아채고 놔주질 않았다.
그리고 눈. 저 커다란 눈. 끝이 아래로 처져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강아지의 것 같은 유순한 눈매는, 그가 어떤 영악한 짓을 해도 무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좆을 물 때는 또 어떤가. 펠라를 못하면 손부터 나가던 차주원이 서이연의 오랄을 받고도 아직 그를 가만히 놔둔 이유는, 다 저 도톰하고 섬세한 입술 때문이었다.
“……하아. 씨발…….”
차주원은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에, 욕지거리를 짓씹으며 헛웃음을 뱉었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그를 관찰하고 있었는지…….
그때, 서이연이 주섬주섬 일어나 앉았다. 이연은 차주원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그가 기대 앉아 있는 침대 헤드 쪽으로 다가갔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 차주원의 옆에 팔이 맞붙을 정도로 꼭 붙어 앉은 이연은,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전무님…… 이거 전무님이, 빼주시면 안 돼요? 무서워서, 못 만지겠어요…….”
서이연은 담배를 태우는 차주원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빼면 더 아플 텐데.”
“……안 아프게 빼주세요…….”
차주원은 표정 없는 얼굴로 서이연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울먹거리는 눈으로 간절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네……? 안 아프게 빼주세요…….”
자신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기까지 하는 서이연의 행동에, 차주원의 입에서 헛웃음이 샜다. 그는 담배를 협탁 위의 재떨이에 비벼 끄고, 서이연의 성기를 손에 쥐었다.
“히익!”
“엄살 부리지 마.”
차주원은 서이연의 요도 깊숙이 박혀있는 마개 끝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흐으…… 이상해요…….”
차주원이 마개를 돌리다 위로 살짝 잡아 올리자, 서이연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그는 살짝 빼냈던 마개를, 완전히 구멍 밖으로 꺼냈다.
“아흑!”
서이연은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움찔움찔 떨었다. 요도 내부를 꽉 막고 있던 이물감이 갑자기 사라지자, 그 뒤로 화끈거리는 통증이 뒤따랐다.
“흐으, 지금, 지금 뭐 하시는-”
“빼 달라며.”
차주원은 한참 동안 온몸을 움찔거리다, 커다란 눈에 눈물을 매달고 자신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서이연을 차갑게 응시했다.
“흐윽…… 안 아프게 해달라고, 제가, 부탁, 드렸는데-”
“내가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나.”
차주원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고, 서이연은 그 얄미운 모습에 입술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흐으…… 흐윽, 진짜, 진짜…….”
“뭐.”
서이연은 그의 서늘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가 활짝 웃고 있어도 무자비해 보일 것이라 생각하며.
“아니에요…….”
못됐어, 전무님…… 얄미워…… 서이연은 스폰서에게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연은 성기를 조심스레 손으로 잡고, 요도 구멍을 살펴보며 말했다.
“구멍…… 벌어졌어요…… 흐윽.”
발개진 귀두 중간의 구멍이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커진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요도 구멍을 자세히 살펴본 일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벌어졌을 것이다. 저런 막대기를 넣은 채 정액을 내보내지도 못했는데, 벌어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안 벌어졌어. 지금 다 닫힌 거 안 보여?”
차주원은 또다시 울먹거리려 하는 서이연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까, 뽁 소리, 들으셨어요? 무서웠단 말이에요…….”
“하아…… 씹.”
뽁 소리는 무슨. 분명 카테터를 빼낼 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서이연의 벌렁거리는 요도 구멍에 계속 시선을 두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이연이 입술이 오물거리며 뽁 소리의 입 모양을 만들어내는 순간, 차주원은 욕지거리를 짓씹으며 손에 들고 있던 카테터를 거칠게 내던졌다.
탁-
카테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이연이 큰 눈을 굴리며 차주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진짜, 났는데…….”
거짓말 아닌데…….
“그런 소리 안 났어.”
“……알았어요…….”
차주원의 차가운 일갈에, 서이연은 확연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하였고, 그 뒤로는 그저 자신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요도 구멍을 관찰했다.
서이연이 입을 닫자 정적이 흘렀다. 소리가 사라지자, 차주원은 옆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었다.
이연은 한참 동안 요도 구멍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다리를 쭉 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발가락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자신의 발 가까운 곳에서 움직이는, 확연히 작은 크기의 뽀얀 발에서 차주원은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도 말이 없는 이 상황이 어색한지, 한참 발가락을 움직인 다음에는 손가락을 꼼질대며 또 자신의 손을 잡으려 했다.
틈만 나면 손을 잡고, 깍지를 끼우려는 그의 행동에 차주원의 표정이 조금 어이없다는 듯 풀어졌다.
이렇게까지 겁이 없어도 되나…….
차주원은 슬쩍 자신의 손을 잡으려는 서이연의 손을 끝내 잡아주지 않은 채 말을 뱉었다.
“문 옆 협탁에 카드 놔뒀어.”
서이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또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맞장구를 치려고 하는, 속이 훤히 다 보이는 그의 표정에 차주원은 어디 해 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 카드요.”
“어.”
차주원은 옆에서 서이연이 작은 머리통을 굴리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축하해야 할, 일이라도 있어요……?”
“…….”
마침내 내놓은 대답이었지만 차갑게 식은 차주원의 표정에, 이연이 쩔쩔매며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저도 카드 적어왔을 텐데!”
서이연은 양 손바닥을 맞대며 괜히 밝은 기색을 띠었다. 아무런 호응도 돌아오지 않는 외로운 원맨쇼였다.
“…….”
“……지금이라도, 쓸까요?”
서이연은 차주원이 계속 아무 말도 꺼내지 않자 불안해져 말을 얼버무렸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차주원의 눈빛에 괜히 볼이 더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아…….”
차주원은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을 내뱉으며 몸에 힘을 풀었다. 바보 옆에 있으면 그 기운까지 전염되는 걸까. 괜히 마음이 편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헤헤…….”
서이연은 그의 눈치를 보다, 올라가 있는 차주원의 입꼬리를 눈에 담고는 따라 웃었다.
“후…… 생활비로 써. 그 카드가 아니라, 신용 카드.”
“아…….”
“한도는 신경 쓰지 말고.”
차주원의 말에, 서이연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퍼졌다.
“저기, 전무님, 저는, 전무님이 연기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시면, 제가 너무 면목이 없어요…….”
“하. 면목.”
그럼 이제껏 했던 짓들은 다 면목을 염두에 두고 했던 행동들이었단 말인가. 하얀 면 팬티를 입고 왔던 그날도.
“네…….”
“신경 쓰지 말고 쓰라면 써.”
“……정말 괜찮은데…….”
“너 이뻐서 주는 거 아니야. 그 정도 급은 돼야 하니까 주는 거지.”
이제껏 차주원에게는 그저 가벼운 만남을 지속하는 파트너만 있었을 뿐, 실제로 무명 배우를 스폰하며 광고나 영화에 힘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스폰서가 된 배우에 대해 어지간히들 궁금해할 테니, 미리 카드 하나 쥐여주고 다른 데 눈을 못 돌리게 할 참이었다. 모자란 생활비를 번답시고 이리저리 번잡하게 눈에 띄어, 자신의 이름까지 호사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건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아, 저는, 전무님이 저를 이뻐해서 주시는 줄 알았어요…….”
서이연은 만약 차주원이 저를 아껴서 카드를 주는 것이었으면,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정말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제대로 된 성과 하나 낸 것도 없는데, 괜히 돈 잡아먹는 식충이가 될 수는 없었다.
“…….”
마치 자신이 서이연을 이뻐해서 카드를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라도 한 듯 말갛게 웃는 그의 얼굴에, 차주원의 표정이 한층 사나워졌다.
그는 거칠게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뒷모습을 보이는 그의 태도에, 이연도 덩달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무님! 저도, 같이 씻어도 될까요?”
차주원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며 묻는 서이연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욕실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은 채 욕실로 들어가 버리자, 서이연은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손잡이만 만지작댔다.
열어볼까…….
사실 함께 씻고 싶었지만, 허락하지 않았는데 불쑥 욕실로 들어가면 분명 그가 화를 낼 것이라 생각한 이연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다른 방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
“다리 힘 풀려…….”
리빙룸을 지나고 있는데, 문득 협탁 위에 놓인 검은 카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연은 바로 협탁으로 다가가 카드를 손에 들었다. 겉이 맨들맨들한 카드는 기존에 쓰던 카드와는 달리 단단하고 무게감이 있었다.
“이쁘다…….”
신기하게 카드를 바라보던 이연은 카드를 지갑 안에 고이 넣어두고 욕실로 향했다.
*
“이연 씨! 좋은 아침이에요~”
신윤서는 이른 아침부터 밝은 목소리로 인사해왔다.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촬영지에 도착한 탓인지, 아직 잠이 덜 깨 촬영장 구석에 앉아 졸고 있던 이연은 신윤서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비몽사몽 한 서이연의 모습을 본 신윤서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언제 잠들었지…….”
“오늘 촬영이 좀 이른 시간에 시작하긴 했죠.”
“네…….”
이연은 괜히 신윤서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볼을 붉혔다. 거의 매일 촬영이 있는 그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촬영 분량인데도, 자신과 달리 그녀는 굉장히 쌩쌩해 보였다.
이게 대배우의 체력 관리인가…….
이연은 인사를 마치고 멀어져 가는 신윤서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오늘은 장소현으로서의 마지막 촬영인 만큼, 단단히 각오를 마치고 왔다.
“잘할 수 있어, 서이연!”
이연은 자신에게 작은 응원을 속삭이며 촬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누님…… 저, 저 한 달도 못 산대요…… 장 씨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이제 명이 다했다고, 아버지한테 그랬어요…….”
장소현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더듬더듬 장소혜에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엿들은 직후였다. 장소혜는 그가 늘어놓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저, 누님한테 마지막으로 보답 한 번만 하게 해주세요…… 누님은, 누님은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잖아요…….”
장소현이 장소혜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장소혜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너무나 커버린 동생의 앳된 얼굴을 눈에 담았다.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해 항상 애틋하고 안쓰러웠던, 사랑하는 동생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카메라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울음을 터뜨리는 남매를 천천히 줌아웃했다.
*
“아씨, 준비는 마치셨습니까.”
엑스트라의 대사를 시작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였다.
카메라는 두꺼운 예복으로 몸과 얼굴을 모두 가린 여인이 방에서 걸어 나와 그대로 가마에 오르는 장면을 담았다. 그 옆으로는 장씨 집안의 하인들이 모두 눈물을 참으며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었다.
장규호는 끝까지 장녀를 배웅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방 안에서 서책을 읽는 그의 뒷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곧이어 가마꾼의 어깨에 가마가 들리고, 길지 않은 행렬이 그 앞과 뒤를 따랐다.
기척 하나 나지 않던 가마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마차가 출발하고서도 한참이 흘렀을 때였다.
쓰개치마를 내리자, 수척하고 앳된 얼굴을 한 장소현의 말간 얼굴이 화면에 커다랗게 잡혔다.
그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집을 떠났다는 옅은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알량한 위안이 얼굴 전체로 퍼지기도 전에, 커다란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끄윽.”
그는 새어 나가는 울음을 막기 위해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었지만, 떨리는 마른 어깨와 입술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앳된 그의 얼굴에 선명한 두려움과 그리움이 떠오른 후 찾아온 건 결국 감정의 분출이었다. 소리 없이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그의 애달픈 얼굴이 오랫동안 화면에 비쳤다.
장소현은 애처롭게 얼굴을 구기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하얀 볼의 솜털이 다 젖을 정도로 펑펑 울고 있었지만, 울음소리는 마이크에 겨우 잡힐 정도로 가늘었다. 그리고 두꺼운 혼례복의 소매가 거의 다 젖었을 때였다.
오케이-
“이연 씨, 감정 좋았어요! 마지막 풀 컷 찍고 넘어갑시다.”
감독의 칭찬에, 연기를 이어가던 서이연이 눈물이 맺혀있는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