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을 만난다.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 예고 없이 닥치니까.
예준은 그런 끔찍한 반전 따위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단 한 번도 미래가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어차피 인생을 좌우하는 건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니까. 드물게 심플한 마인드를 가진 예준의 직업은 아이돌이었다.
“마지막으로 의상 점검할게요.”
콘서트 시작 직전의 대기실은 언제나 혼잡하고 바빴다. 숙련된 직원들도 막상 시작이 가까워지면 실수를 연발하는 게 이곳이었다.
중간에 비는 시간 없이, 3시간 내내 진행되는 콘서트는 생각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만 보조해주는 직원들의 몫도 중요했다. 당연히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그걸 봐주는 팬들이지만.
다들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예준은 홀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응원봉을 매만졌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예쁘다고 소문난 디자인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이리저리 돌리자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예준아, 옷!”
“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스타일리스트의 부름에 예준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마지막 의상 점검이 시작됐다.
MSM에서 방송한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 ‘서바이벌 ID’로 데뷔, 데뷔년도에 신인상 수상, 그 뒤로 4년 동안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대상. 지금까지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쭉 상승세만 유지해온 그룹 레브는 오늘 데뷔 5주년을 맞았다.
앨범 한 번 냈다 하면 밀리언셀러, 음원 줄 세우기는 기본에 뮤직비디오 조회 수도 억 단위로 찍고 있으니 현재 인지도는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소속 가수 케어 안 해 주기로 유명한 소형 소속사에서 시작해서, 5년 동안 레브는 소속사를 대형으로 키워 놨다.
돈을 많이 벌어오니 점점 아티스트에게 투자하는 금액이 늘었고, 일 잘하는 직원들도 한 명씩 늘어가니 돈 귀신으로 유명했던 소속사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반열에 들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사장도 더 이상 예전처럼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형, 오늘 콘서트에서 멘트 뭐 할 거예요?”
“어……. 너 저번 녹음 때 진짜 잘할 거라더니 연습하다가 목소리 갈라진 거?”
“아, 그런 얘기를 왜 해요.”
멤버들 전부 자신들의 인기를 실감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개인 활동이 잘 돼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꼬박꼬박 그룹 활동을 했고, 피곤해도 틈틈이 팬들과 소통하는 건 잊지 않았다.
감사하는 마음만큼 항상 열심히 했고, 당연히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그렇게 데뷔 5주년을 맞이한 지금은 모든 멤버가 평균을 훌쩍 넘기는 능력을 발휘했다.
“30초 뒤에 올라갈게요!”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스태프가 소리쳤고, 이제는 익숙해진 무대 위를 밟았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음악에 대한 커리어는 멤버들에게 모두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초기에는 회사에서 작곡가들에게 받아온 노래를 무작정 받아서 불렀다면 이제는 그룹만의 색깔이 존재했다.
멤버들 각자의 독특한 음색을 최대한으로 살려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매번 다른 콘셉트에 도전하는데도 자신들의 노래처럼 소화해 낸다는 호평을 받았다.
자부심 있는 노래, 춤, 무대. 지난 5년 동안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온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춤 구멍으로 통하던 그룹의 막내 준이 이제 후배 가수들을 가르쳐주고 있으니 말 다 했다.
신인의 신분으로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레브는 어느새 어느 누군가에게는 선배인, 안정적인 5년 차 가수가 되어 있었다.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인 보컬인 지구가 마이크에 대고 인사를 하는 동안 예준은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콘서트장의 열기가 오늘따라 유달리 독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쐬고 있으면 점점 취하는, 몸이 흐물흐물하게 풀릴 정도로 높은 온도. 예준은 이런 열기를 이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5년 전, 5주년 콘서트 때도 이랬지.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빛무리를 바라보며 예준이 살짝 웃었다. 여기에 다시 서기 위해서 5년을 똑같이 달려왔다. 드디어 그때 그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왔구나.
예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편안하게 눈을 살짝 감았다. 팬들의 환호 소리가 귓가를 끊임없이 점령했다.
* * *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함에, 몰려오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은 그 상태로 이불을 더 끌어당겼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콘서트장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는데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틀림없이 침대였다.
온몸을 끌어당기는 푹신한 감촉에 아무 생각 없이 끝났구나…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예준이 눈을 번쩍 떴다.
예준은 자신이 분위기에 너무 취했거나, 정신이 없어서 콘서트가 끝나고 숙소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이 잘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눈에 담기는 익숙한 풍경은 틀림없이 예전 숙소였다. 달랑 두 개뿐인 방에서 쫓겨나 거실로 나와 있는 침대도, TV 앞 게임기도, 탁자 중앙에 올라가 있는 신인상 트로피도.
“설마.”
예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실에 순서대로 전시해 놨던 대상 트로피들이 모두 증발했다. 첫 대상을 받았을 때 찍은 사진을 넣어 벽에 걸어놨던 커다란 액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2년 전에 이사한 넓은 평수의 새 숙소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씨발…….”
머리맡에 놓여 있는 오래된 기종의 휴대폰으로 인해 예준은 현실을 강제로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 또, 돌아왔네. 예준이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아침부터 왜 그래.”
마침 방문을 열고 나오던 지구가 바닥에 떨어진 예준의 휴대폰을 주워 건넸다. 마주친 얼굴은 어제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20대 중반으로 가면서 뼈가 자라 조금 더 남자답게 변했던 얼굴이 확 어려져 있는 것이, 틀림없이 시간이 다시 되돌려졌음을 증명해 줬다.
현실부정을 포기하기로 한 예준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야…… 오늘 며칠이냐?”
“벌써 까먹었어요? 우리 오늘 1주년 기념 파티하기로 했잖아요.”
소란을 듣고 거실로 나온 준이 케이크를 사 오자며 네모난 입 모양을 만들며 웃었다.
어제까지 5주년이었는데, 1주년? 누가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해맑은 얼굴에 대고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었던 예준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젊은 얼굴을 바라보며 예준은 속으로만 욕을 했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세 번째 마주하는 스물다섯의 자신이었다.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하고 예준은 일단 양치를 했다.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면서 거울에 있는 자신과 끊임없이 눈싸움을 했다. 4년이나 젊어진 얼굴이었지만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조금 더 어린 시절로, 선택을 되돌릴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면 정말 잘 살 수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되돌리는 삶을 꿈꾸지만, 예준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은 항상 풍족했고 모자란 것도, 딱히 과거로 돌아가서 지우고 싶은 오점도 없었다. 그냥 발 닿는 대로 살아온 인생이 여기였고 스스로 즐겁다고 생각했다. 선택을 후회하고 어떻게든 되돌리려고 발을 구르는 건 예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은 너무했다. 예준은 이미 5년 전에 한 번 데뷔 날로 회귀한 경험이 있었다. 충격 때문에 데뷔 쇼케이스를 완전히 망칠 뻔한 위기를 겨우 모면했고, 해탈한 상태로 힘겨운 신인 시절을 다시 견뎌냈다.
그중에서도 겨우 고쳐 놓은 쓰레기 같은 소속사-이름은 ATM이다-가 다시 초심을 되찾은 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것 말고도 꼭대기에 위치해 있던 5년 차 정상급 가수에서 다시 신인이 되니 힘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순간에 모든 영광들을 잃어버린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집에 들이닥친 날강도에게 살림을 모두 뺏긴 것 같았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겨우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더니 신은 가차 없이 예준을 다시 1년 차 아이돌로 붙잡아 내려놨다. 이번에는 데뷔 날도 아니고 1주년이라니, 뭔가 시기도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나 보내 주지.”
예준이 물로 입을 헹구고 신경질적으로 이미 난장판이 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밖에서는 리더의 참담한 심정을 알 리가 없는 멤버들이 1주년 기념 방송 주제를 어떤 걸로 할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냥 댓글 읽으면서 소통 방송할까?”
“너무 식상한데. 뭔가 진행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예준은 일부러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구가 형은 아무 의견도 없냐고 물었을 때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1주년 때 뭘 했더라. 눈을 한 번 느리게 깜빡인 예준이 드디어 결정한 듯한 멤버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앉았다.
“요리 방송할까요? 요즘 많이 하던데.”
“어, 괜찮다.”
팬들한테 줄 요리를 만드는 걸 주제로 삼자며 신나게 회의를 시작한 멤버들을 바라보며 예준이 두 눈을 살짝 찡그렸다.
기억났다, 그 음식물 쓰레기 같은 요리. 심지어 마지막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바람에 반강제로 선물 받았던 그 음식.
“아, 탄다. 이거 타는데 어떡해요?”
“뭘 어떡해, 불을 꺼야지!”
해맑게 뒤집개를 들고 묻는 준에게 하현이 경악을 하며 후다닥 달려갔다.
결국 정말로 회사에서 급하게 잡아준 음식점 주방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별 난리가 다 났다. 이래서 요리도 못하는 것들한테 주방 기구 쥐여주면 안 되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멀찍이 떨어져서 반죽만 하던 예준이 뒤늦게 다 자신이 먹어야 할 음식이라는 걸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형. 맛있죠?”
어떻게 가위바위보 결과까지 안 바뀌냐. 예준이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으며 억지로 웃다가,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준의 입을 벌려 강제로 한입 먹였다.
“아…….”
썩어들어 가는 표정을 보며 예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데뷔하고 연예계에서 10년, 애석하게도 철은 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 * *
아직까지 예준은 현실을 자각할 수 없었다.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나 싶었는데 한 번 더 하라니. 전부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무리 해도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서 도무지 일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건 단순한 소망이고, 예준은 10년 차 아이돌답게 조금도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스케줄을 하러 갔다. 관계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 예준이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형 왜 오늘따라 자꾸 넋을 놔요.”
왜 자꾸 넋을 놓냐며 타박하는 준을 향해 예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워놨는데.
준은 순하고 착한 그룹의 막내였다. 실력은 좀 부족해도 열심히 하고, 항상 밝고 활발해서 어딜 가나 사랑받는 준은 예준과 가장 친한 멤버였다. 동시에 제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멤버이기도 하고.
마냥 해맑기만 한 애를 겨우 세상 물정 아는 스물셋으로 키워놨더니……. 또다시 순진해 빠진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준을 쭉 훑어보던 예준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이냐.
“내가 지금 육아를 하는 건지, 아이돌을 하는 건지.”
예준이 한숨을 쉬다가 급하게 준의 팔을 잡아당겼다. 막 양손에 커피를 두 잔씩 쥐고 지나가던 빨간 머리의 남자가 메이크업이 된 얼굴을 구겼다가 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기억력이 좋은 예준은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봤다. 이맘때쯤 곡이 하나 떠서 반짝 올라온 그룹의 리더였다.
“조심 좀 해주세요.”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간 머리카락이 멀어져 가는 걸 보던 하현이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일부러 이쪽으로 걸어와 놓고 뭐라는 거야.”
“내버려 둬요, 형. 괜히 피곤하게 화내지 말고요.”
신인에게 날아오는 선배들의 갑질은 흔했다. 잘 알고 있는 지구가 발끈한 하현을 뒤에서 끌어안고 살살 달랬다.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예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옷 안으로 살짝 들어가는 손을 발견하고 몰래 혀를 찼다.
열애설 하나 없는 깨끗한 그룹으로 유명한 레브의 이미지를 박살 내는 게 바로 이 둘이다. 능력치가 높아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은 그룹에 없어선 안 될 멤버지만, 예준이 보기에는 그저 불안한 존재들이었다.
메인 보컬인 지구와 메인 댄서인 하현은 데뷔 초에 연애를 시작해서 5주년까지 헤어지지 않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했다. 서로 좋아 죽으면서도 겉으로 막 티 내고 다니는 편은 아닌지라, 두 사람의 연애를 시작부터 지켜본 예준은 그 둘을 응원하는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지구의 스킨십을 무려 10년이나 봐 온 예준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박수를 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무시해.”
레브는 아이돌들 사이에서 딱히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몇 년의 연습생 생활,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 수많은 시간. 그 노력 끝에도 결국 이름을 알리지 못한 무명들이 수두룩한 이곳에서 시작부터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데, 질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연차가 조금 쌓이고, 멤버들이 다른 아이돌들과 친목을 쌓기 시작했을 때 뒤통수를 맞은 경험도 있었다. 멤버도 똑같이 다섯 명이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친해졌던 다른 그룹이 사실 다른 지인과 뒤에서 실력 운운하며 까고 다녔던 일.
첫 번째 인생은 그냥 넘겼지만 한 번 회귀하고 나서는 예준이 친히 한 번 까줬다. 잘난 게 없으면 연습이나 더 하라고.
이번에 함께 촬영하게 된 그룹도 똑같았다. 솔직히 처음 인사할 때부터 쳐다보는 시선이 아니꼽게 느껴졌다. 단순한 추측이나 감은 아니었다. 예준은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니까. 잠깐 쉬는 시간이 오자마자 예상대로 우르르 몰려서 이쪽으로 왔다.
“미안한데 우리 차례에 조용히 해 주면 안 될까요?”
황당한 요구에 예준은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토크쇼인데 차례가 어디 있어. 어이없다는 시선들을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레브 분들은 조용히 계셔도 분량 나오잖아요.”
“아…… 네.”
준과 휘영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예준이 아래로 떨어지는 얼굴들을 양손으로 붙잡아 들어 올렸다. 이런 억지에 고개를 숙이긴 왜 숙이냐고.
“죄송하지만 선배님들. 이거 토크쇼인데요.”
“네?”
“토크쇼요. 자유롭게 대화하는 토크쇼. 토론도 아니고, 순서대로 발언하는 거 아니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받아치는 예준에 조금 당황한 듯 상대방의 말문이 막혔다. 3년 차면 대선배도 아닌데 당당하게 갑질 하려고 하네. 연예계에서 10년을 구른 예준의 눈에 웬만한 아이돌은 다 신인이었다.
착해 빠진 멤버를 넷이나 데리고도 레브가 연예계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예준의 덕이 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예준은 리더였고, 본인의 위치에 책임감을 느꼈다. 빠른 상황판단으로 그룹에 해가 될 만한 것들은 쳐내고, 옳지 못한 일에는 대표로 목소리를 냈다. 예준이 없었다면 나머지 멤버들은 전부 길가에 널린 돌처럼 쉼 없이 남의 발에 차였을 게 분명했다.
“네. 그럼 뭐.”
대충 얼버무리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예준이 여유롭게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신랄하게 저 그룹의 미래를 씹어줬다.
이번 활동 끝나고 콘셉트 잘못 잡아서 망했잖아. 쟤는 여자 그만 만나야 할 텐데, 팬들이 준 선물 갖다 바치는 새끼가 어떻게 뜨겠어.
예준은 기억력이 무척 좋았고, 호락호락한 성격도 아니었다.
* * *
예준은 몇 달간 휴대폰도 멀리하고 연습에만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쉴 시간이 생기면 자꾸만 현실로 돌아가기 전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검색하면 대상 받을 때의 수상소감이 나올 것 같고, 여러 콘서트 영상들이 나올 것 같았다.
[‘레브 콘서트’로 검색.
└ 레브 콘서트 빨리해줬으면 좋겠다ㅠㅠㅠㅠ 언제오지
└ 티켓님 모셔놓고 백날천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번에 첫 콘서트인데ㅜㅜ 현기증나서 콘서트 가기전에 죽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