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얼떨결에 포대기를 건네받은 묘정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찌나 작고 가벼운지, 그저 품에 안아 드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묘정은 난생처음으로 생경한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서 있던 묘정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설마 이 아이…….”
분명 여인과 아이는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휘림은 오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 건 이월댁과 처음 보는 갓난아기뿐이다. 그리하여 묘정은 깨달았다.
“묘정이 약속해 준다면, 나도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휘림 또한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민란 세력은 어느 산골 골짜기에 숨어들어서 임시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오래전, 화전민이 모여 살다가 버리고 떠난 땅이었다. 그곳에서 휘림은 조산으로 아이를 낳았다. 하필이면 거사를 앞둔 시점에서 예상보다 훨씬 이른 해산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몸을 풀게 된 탓에 산파를 부를 겨를조차 없어 이월댁은 자신이 직접 아이를 받았노라고 말했다.
아기를 낳은 직후, 휘림은 생사의 문턱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산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 역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보였으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월댁의 노련한 보살핌 덕분인지 두 사람은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았으니 당분간은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장은 나서기가 어려워졌으나 그래도 다행히 거사 일까지는 시일이 남아 있었고, 휘림은 조금씩 몸을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안심하며 겨우 한시름 놓았을 때였다.
거사일을 보름 앞둔 날, 관군의 기습이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이미 바깥은 전쟁통이었다. 본거지는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였으며 도주로 또한 막혀 있었다.
곳곳에서 각개전투가 벌어지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평화롭던 산촌은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관군은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명령을 내렸으나, 민란군은 여인과 아이를 모아서 한 곳에 피신케 한 뒤, 관군과 맞서 싸우기로 결의했다.
세력의 중추이자 행동대장 역할을 맡고 있던 휘림은 원래대로라면 전력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운하게도 운신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휘림은 이월댁의 손에 끌려 쓰개치마를 머리에 둘러쓴 채 여인과 아이들 틈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전투의 결과는 처참했다.
관군과 맞서 싸운 이들 대부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포로가 되었다. 그런데 관군은 잡아들인 수뇌의 숫자를 세더니, 눈에 불을 켜고 남은 이들은 수색했다.
“사내 복장으로 검을 쓰는 신출귀몰한 여인이 있는데, 그자가 보이질 않습니다.”
내부의 밀고를 통하여 휘림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던 관군은, 살아남은 이들의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당장 나오라 명령했다. 쓰개치마를 뒤집어쓴 채 여인들 틈에 숨어 있던 휘림은, 그 말에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이월댁에게 넘기고 몸을 일으켰다. 그에 이월댁이 울면서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으라고 호소하였으나, 휘림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월댁에게 아이를 맡긴 휘림은 반드시 무사히 살아남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품에 지니고 있던 주머니를 전해주었고, 이월댁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휘림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노비로 끌려가는 행렬에 잡혀 있던 이월댁은, 몇 날 며칠을 걷다가 관군의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월댁은 하루하루 젖동냥을 다니며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이야기를 마친 이월댁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젖 한 번 물려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이월댁이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먹거릴 때였다. 묘정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잠에서 깼는지 응애,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흘리던 이월댁이 서둘러 아이를 옮겨 안았다.
“아이고, 가엾은 것아… 울지 마라, 울지 마….”
아이를 어르고 달래던 이월댁은 휘림이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주머니를 묘정에게 전해 주었다. 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손에 쥐는 순간, 안쪽에서 무엇인가 만져졌다.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제일 먼저 종이로 몇 겹 감싸놓은 조그만 물건이 보였다. 종이에 꽁꽁 싸매여 있는 것을 풀어 보았더니, 엽전 한 푼 정도 되는 크기의 어둡고 푸르스름한 경단이 나왔다.
묘정은 알아차렸다.
이것은 휘림이 말한 인어의 ‘환’이라는 것을.
제 손안의 인어환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묘정은 주머니 안에 아직 무언가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머지 하나는 노리개였다. 언젠가 묘정이 선물로 주었던 그 노리개였다.
노리개는 처음 선물한 모습 그대로였다. 여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지 새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검집에 매달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검집에 달고 다녔더라면 이렇게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노리개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묘정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정한 사람…….”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를 위해서 살다가 갔다. 휘림답다면 휘림다운 결말이었다. 그가 남겨놓고 간 것은 인어환과 고운 노리개, 그리고 자신을 빼닮은 아이였다.
아이는 어느샌가 울음을 그친 상태였다. 이월댁은 다시 아이를 묘정의 품에 건네주었다. 묘정은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울음 끝이 짧은 것을 보아 아이는 몹시 순하고 얌전한 듯했다. 묘정과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포대기 속에서 손을 휘적거리며 배냇짓을 했다.
생김새는 저보다는 휘림 쪽을 많이 닮은 듯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이는 없지요. 출생은 불가피할지라도, 죽음으로 가는 길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거지요. 그러니 운명을 비틀어 봅시다. 세상을 상대로 어떻게든 꼼수라도 내보자는 겁니다. 섭리에서 벗어난 일일지라도요.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마침내 묘정의 눈에서 도르륵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
이월댁은 어차피 자신은 딱히 오갈 데도 없는 처지라며, 묘정이 허락해 준다면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보살펴주겠다고 했다. 본인 손으로 직접 받아낸 아이였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젖먹이를 겨우 살려냈다는 사실에 이월댁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젖먹이 아기를 사내 혼자서는 돌보기 힘들 것 같았다.
“허락해 주신다면은, 제가 이곳 나으리 댁에서 머물며…….”
이월댁은 묘정의 곁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묘정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묘정이 머무는 집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월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면 이 집은 누구의 집이냐고 물으려는데, 묘정이 한발 앞서 말했다.
“이제는 주인이 없는 집이니, 원한다면 이곳에서 지내도 됩니다.”
주인이 있다면 휘림일 것이다. 그러나 휘림은 이제 이 땅에 없었다. 조금 낡은 집이기는 해도 세간만 갖춘다면 제법 살만할 것이다. 물가도 가까이 있고 마당에 작은 밭도 있으니, 허름한 집이라도 이를 밑천으로 삼는다면 그럭저럭 앞길을 도모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예? 허, 허나…….”
이월댁은 난색을 보였다. 민란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월댁은 이제 완전한 자유의 몸이었다. 묘정은 만약 내키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가서 자유롭게 살아도 좋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 사람도 그러기를 바랐을 겁니다.”
이월댁은 그래도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이고 묻더니, 젖을 뗄 때까지만이라도 유모가 되어 주겠노라, 그것이 정 힘들다면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겠노라고 말했다.
“아이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묘정은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는 그럼 앞으로 어쩌실 건지요?”
묘정은 말없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품에 안은 아기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묘정을 붙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묘정은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묘정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올해가 지나고 다음 해가 되면 약속된 서른세 살이 된다. 휘림은 밑져야 본전이라고 했다. 운명을 비틀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묘정은 그 기회를 아이에게 쓰고 싶었다.
휘림과 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였다. 휘림이 남겨준 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자신이 직접 키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키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이의 치열함보다 단 하나 남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절박함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왜 이 땅에 왔느냐?’
‘방상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허면 너는 나처럼 살겠구나.’
‘헌데, 나는 너를 낳고 싶지 않았단다.’
작은 손아귀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아기가 묘정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아가.”
묘정은 코끝에 눈물을 매단 채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토록 험한 땅에 너를 놓아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아이가 뻗은 손에 입술과 코를 묻으며 묘정이 속삭였다.
“어서 오렴.”
묘정은 이 여정이 자신의 마지막 여정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