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때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이었다.
환한 달빛을 벗 삼아 어두운 산길을 굽이굽이 걸어온 묘정이 초가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기는 했으나,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으리라. 묘정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창호지 문을 닫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깊게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목소리를 냈다.
“묘정, 왔어?”
어둠 속에서 들려온 아이의 음성은 차분하면서도, 물기가 어려 있는 듯했다. 그에 기묘함을 느낀 묘정은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다가, 그대로 낯을 굳혔다. 아이의 꼴이 엉망이었다.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묘정이 낯을 굳혔다.
“겸아, 얼굴이 왜 이러느냐?”
집을 떠나 있던 며칠 동안 바깥에서 시비가 붙거나, 안 좋은 일에 휘말리기라도 한 걸까. 아이의 낯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한참이나 입을 떼지 못했고, 묘정은 대답을 채근했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끄집어낸 말은 예상 밖이었다.
“묘정, 나자였다며…….”
그 순간, 묘정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묘정에겐 정인이 있고… 내 부모를 죽였다면서….”
숨이 멎는 듯했다. 묘정은 아이의 얼룩덜룩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선을 떨구고 있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게 사실이야?”
아이는 자존심이 강했다. 여태 눈물을 보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애처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묘정은 가슴 한구석이 도려져 나가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는가였다.
“수향을 만났어.”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묘정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수향이 어떻게…….
어느 순간, 불쾌한 예감이 뒷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에 묘정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벽 속에 보관해 두었던 물건들을 전부 꺼내서 헤집어 보았다. 그런데 묘정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은 보이질 않았다. 황금사목이 들어 있던 자개함이 사라진 것이다.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싹 빠져나가는 듯했다.
“말해 봐. 정말로 나를 속인 거야?”
묘정은 넋이 나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묘정이 알던 아이는 더 이상 이곳에 없었다. 예전에는 허리춤에 오던 아이는 어느덧 훌쩍 자라서, 제 어깨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자라 있었다. 아이는 날카로운 소년이 되어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를 망연히 응시하던 묘정은, 불현듯 자신이 여전히 운명의 거대한 손아귀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벌일지도 모른다.
“묘정이 내 부모를 죽였다는 게 사실이야?”
아이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짰다.
“정말, 나를 죽일 생각으로 데리고 있는 거였어?”
비수처럼 날아든 질문이었다. 묘정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진실은 묘정의 가슴을 아프게 할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반사적으로 부정할 뻔하였으나, 묘정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수향이 전해준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저는 나자였으며, 이 손으로 직접 아이의 부모를 죽였고, 휘림이라는 정인이 있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너는 본디 재앙신의 그릇이 되기 위해서 태어났고, 날 때부터 잘못되어 있었으며, 사실은 진작에 죽였어야 했다고. 너를 살리고자 했으나 봉인에 실패하여 결국 망가트렸노라고…….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네 부모는 틀림없이 너를 사랑했을 것이다. 네가 배 속에 있을 적부터 어서 태어나거라, 하고 배를 문질러 주며 네가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너 같은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겸아, 참으로 잘하였다. 참으로 잘 태어났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너를 위해서…….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던 묘정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뭐라 말하더라도 변명일 뿐이다. 아이는 때때로 부모에 대하여, 그리고 묘정에 대하여 궁금해하곤 했다. 그것을 모른 척하며 지내 온 세월이 거진 십 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먹이고 씻기며 정을 주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묘정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죄책감을 덜고자 너를 곁에 두었고,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누군가에 필요한 존재로 있고 싶어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래서 살려두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네가 나를 등질 것이 두려워 내내 속여 왔으나, 용서받고 싶었다. 이것이 진실이었다.
‘묘정, 운명을 비틀어 보지 않겠습니까?’
운명을 비트는 것. 아주 사소한 어긋남이 삶을 변혁시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혁의 끝에 이르러 묘정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몇 번이고 기회가 있었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한 저 자신이었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두려워한 탓이다.
“그래, 수향을 만난 것이로구나.”
몇 년 동안 소식도 없었고, 그저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하여 안심했던 건지도 모른다. 설사 수향이 다시 저에게 접근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목적이 황금사목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이를 해하려 들거나 저를 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 방상시의 탈을 노린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걸 간과했던 것이 문제였다. 묘정은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나례청이 사라진다면, 그 또한 섭리가 아니겠습니까.”
“예, ‘묘정의 나례청’이라면 그러하겠지요.”
이제야 비로소 그 말의 뜻이 무언지 알 것 같았다.
“하하…….”
묘정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 버러지 같은 것이 기어코 모든 것을 망쳤구나…….”
황금사목은 아마도 수향의 손에 있으리라.
우선은 침착해야 한다. 묘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수향의 계획이 황금사목을 명분으로 내세워 다시 나례청을 재건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또다시 아이에게 접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전에 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재앙신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일을 꾸밀 수도 있었다.
숨을 가다듬던 묘정은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황금사목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되찾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위태롭게 흔들리던 묘정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황금사목을 되찾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위였다. 이대로라면 수향이 아이를 꾀어내 이용하려 들거나, 재앙신을 끄집어내려고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수향이 재앙신의 봉인을 풀거나, 아이가 수향에게 놀아나는 인형이 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전에 재앙신에게 이중 봉인을 걸었을 때, 재앙신의 이름을 부르고 복속시켰으므로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오히려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네 말이 옳다. 전부 참이다.”
줄곧 침묵으로 일관하던 묘정이 소년을 차갑게 뿌리쳤다.
“나는 네 부모를 죽였다.”
묘정은 아이를 향해 검을 집어 던졌다.
“기회를 주겠다. 도망칠 테냐?”
일부러 도발을 한다면 틀림없이 정면에서 맞서 올 것이라고, 묘정은 생각했다. 오랫동안 곁에서 함께한 묘정은 소년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은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호기(豪氣)가 있었고, 열세의 상황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묘정의 예상대로 소년은 눈물을 닦고 검을 들었다.
묘정은 소년에게 생기를 나눠준 대가로 전에 비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묘정은 소년의 검을 손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소년의 검에는 일말의 미련과 망설임이 있었다. 당장 눈앞에서 배신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정을 한순간에 떨쳐버리고 마음을 버릴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었다. 묘정의 눈앞에 있는 건 재앙신의 그릇 따위가 아니었다. 상처받은 앳된 소년은 너무나도 평범한,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묘정은 소년의 옆구리에 칼을 꽂아 넣었다.
“내가 없었다면 너의 생은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다.”
소년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바닥에 엎어져 신음을 흘렸다.
“겸아, 명심하거라.”
“…….”
“너는 나를 만나서 잘못된 것이다.”
“…….”
“알겠느냐?”
“…….”
“가엾은 나의 제자야, 부디 운명을 거슬러 보거라.”
말을 끝낸 묘정은 허리를 굽히고 소년을 들여다보았다. 안광은 흐릿했고, 의식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정신을 놓을 게 분명해 보였다. 묘정은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렇게 소년으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몇 발자국 멀어졌을 때였다.
재앙신의 기운을 느낀 묘정이 걸음을 멈췄다.
등 뒤에서 재앙신의 기운이 날뛰고 있었다. 육체가 위태롭게 되자 재앙신이 깨어난 것이었다. 붉은 귀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폭주가 시작되었다. 묘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의 머리칼이 푸스스 솟구치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아이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흰자위를 내보인 채 귀신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묘정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좌정.”
꾸물꾸물 몸을 일으키려던 재앙신이 무언가에 속박된 것처럼 멈칫하더니,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이름을 한 번 부른 뒤, 묘정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명자의 권능으로 이르되…….”
묘정이 눈을 꾹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는, 네 주인이 아닌 자의 말을 듣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