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02)화 (302/348)

#302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초가집 한 채가 버려져 있었다. 몇 군데만 손 보면 겨울을 지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묘정은 엉겁결에 아이와 단둘이 산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를 거둘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혹한의 겨울이었다. 당장은 머물 곳이 필요하니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집을 쓸고 닦느라 바빴다.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구색이 갖춰졌을 때,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바깥에서는 함박눈이 푹푹 내리고, 모든 것이 새하얘져 가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겨울밤이었다. 묘정은 한쪽에 앉아 서책을 읽고, 아이는 불씨를 옮겨 담은 작은 화로 근처에 배를 깔고 누워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화롯불 주변은 위험하여 저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다. 묘정은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아이를 조심조심 안아 들었다. 이부자리에 바르게 눕히자 아이는 뭐라 웅얼거리더니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묘정은 불을 끄고 아이를 따라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들 무렵 묘정은 등 뒤에서 조그만 목소리를 들었다.

“이름이 뭐야……?”

잠결에 눈을 가물거리던 묘정이 몸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멀찍이 떨어져 누운 아이는 등을 보인 채 몸을 말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싶었으나, 묘정은 혹시나 하여 대꾸했다.

“묘정이라고 한단다.”

잠꼬대였나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을 때였다.

“잘 자.”

등 뒤에서 조그맣게 흘러나온 목소리를 들으며 묘정은 생각했다.

날이 너무 추우니까.

봄이 올 때까지만 이대로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

단둘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묘정과 아이는 아주 조금씩, 느리게 가까워졌다.

지내 온 환경 탓인지, 아이는 차마 빈말로라도 얌전하다거나 고분고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천성 자체가 기민한 데다 까칠했다. 무슨 말만 했다 치면 ‘어쩌라고.’, ‘안 궁금해.’, ‘너나 잘해.’, ‘당신이나 신경 써.’,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하며 가시를 세웠다.

묘정이 뒷짐을 지고 산길을 휘적휘적 내려가면, 아이는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다가 묘정의 뒤를 슬금슬금 따랐다. 멀리서 보면 꼭 모르는 사이 같았다. 그러다 묘정이 뒤를 돌아보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땅바닥의 돌멩이를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거나 딴청을 피웠다.

묘정은 그런 아이를 딱히 나무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아이는 서서히 경계를 풀었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아이는 어느 순간 발 뻗을 자리를 찾은 것처럼 묘정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킥킥 웃기도 했다. 잠결에 묘정의 몸에 다리를 올리기도 하고, 놀라울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는 언동을 보여 주었다. 묘정을 상대로 안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자신도 어린 시절을 겪어 보았지만, 어린아이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 구석에 앉아서 땅바닥을 들여다보곤 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벌레를 구경하나, 막연히 생각하며 지나쳤으나 한번은 아이 곁에 가까이 가 보았다.

“뭐 하고 있느냐?”

“흙 먹어.”

“…뭐?”

묘정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니, 흙을 왜 먹는 것이냐?”

“흙 원래 먹는 거 아니야?”

“…….”

“왜? 너는 흙 안 먹어? 나는 예전부터 가끔씩 먹었어.”

“세상에는 먹을 게 있고, 안 먹을 게 있단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냇가에 가서 물을 길어오라고 했더니, 반나절 뒤에 바깥에서 “묘정, 나 왔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묘정은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웃통을 훌러덩 벗은 채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는데, 손에 살아있는 커다란 물고기가 잡혀 있었다.

“이거 봐.”

손쓸 틈도 없이 아이가 방 안으로 물고기를 풀었다. 팔뚝만 한 산천어가 펄떡거리며 방바닥을 휘젓고 다니자, 방 안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묘정은 혼비백산하여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걸 어쩌자고 여기다 풀어놓느냐!!”

“캬하하!”

묘정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방 안을 헤엄치는 산천어를 쫓아다니자, 아이는 깔깔 웃었다.

“물을 떠 오라고 했더니 왜 물고기를 잡아 왔느냐?”

“물 뜨려고 냇가에 들어갔는데 물고기가 보이잖어. 그래서 잡었어.”

“그나저나 물동이는?”

“아. 어. 냇물에 흘러가 버렸어.”

“…….”

“왜? 되찾아 올까?”

“아니, 되었다…”

기상천외한 일상이었다. 아이는 사고뭉치였다. 매일이 시끄러웠다.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거나, 쥐를 잡는다고 부지깽이를 들고 난리를 치다가 집을 홀라당 태울 뻔한 적도 있었다. 뒷수습은 늘 묘정의 몫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것이 왔나 싶다가도, 나중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하하하, 이마를 치며 웃게 되었다.

끼니가 되면 밥을 짓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땔감이 떨어지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마실 물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길어온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인 만큼 그날 하루가 윤택해진다. 단조롭고 시시한 일상이었으나, 아침 이슬처럼 투명하고 건강했다.

어쩌면 살아가는 데 있어 거창한 꿈이나 원대한 사명 같은 건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묘정에게는 그랬다. 이러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막막하고 두려울 테지만, 나례청의 울타리 속에서 살았던 묘정에게는 하루하루 텃밭을 일구는 듯한 생활이 꽤 즐겁기만 했다.

“이건 뭐야?”

“경면주사라는 것이다.”

“어디에 쓰는 건데?”

“부적을 쓰는 것이다.”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이지.”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해 볼래.”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다. 귀신을 분별하는 법부터 시작하여 귀기를 운용하는 법, 부적을 쓰는 법, 비방을 행하는 법 이외에도 귀재로서 알아야 하는 여러 가지를 알려 주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차피 곧 죽을 아이인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봄이 가까워질수록,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나갈수록 묘정은 점차 초조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봉인된 재앙신의 혼은 영토를 넓혀 가듯이 아이의 생혼을 야금야금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생혼이 완전히 잠식당하여 재앙신의 혼과 하나가 되어버리면 재앙신은 완전한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봉인의 그릇인 아이는 사라지고, 재앙신은 봉인에서 풀려날 것이다. 핵심은 어떻게 하더라도 봉인의 주체가 된 아이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재앙신의 혼과 하나가 되기 전에 아이의 목숨을 끊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면, 쓰임이 헛되지 않게 재앙신과 함께 없애는 게 이로운 방향일 터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묘정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마주하면, 당장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모른 척하고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묘정으로서도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당장의 할 일은 재앙신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재앙신을 없애고 나서 무얼 해야 하느냐 하면 머릿속은 금세 백지가 되었다. 방상시도 나자도 아닌 평범한 한 인간의 삶은 처음이었다. 일평생 주어진 운명을 따라 살아온 묘정에게는 당장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묘정은 어느 틈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에게 자꾸만 애정을 쏟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이건 그저 죄책감일 뿐이라고, 묘정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와중에 뜻밖의 계기가 찾아왔다.

“얘야, 괜찮으냐?”

묘정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좀 떠 보거라.”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은 처음이라 묘정은 몹시 당황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배앓이인가 싶었으나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열이 펄펄 끓다 못해 나중에는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고 헛소리를 했다.

묘정은 곁에서 아이를 간호했다. 간호라고 해봤자 물수건을 갈아주고 땀을 닦아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겨울이라 약초를 구할 수도 없고, 상비하고 있는 약도 없었다. 이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가, 밤이 깊어 약을 지어오는 일도 요원했다.

아이를 내려다보던 묘정은 어느 순간 생각했다. 아이가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묘정은 물수건을 비틀어 짜던 손을 멈췄다.

“…….”

묘정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는다면,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직접 죽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가 이 별것 아닌 병에 무참히 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것으로 모든 시련이 끝나기를, 세상의 노여움과 짧은 생애의 슬픔일랑 저 푹푹 쌓인 눈에 전부 묻어두고, 이대로 깊은 잠에 빠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떠나주기를 바랐다.

열꽃이 핀 얼굴을 바라보던 묘정은 눈을 감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아이를 살려두는가?

마침내 서늘한 손이 아이의 목을 감싸 쥐었다.

‘인간이 아니다. 악신을 담은 그릇이다.’

열에 달뜬 아이의 목은 몹시 뜨거웠다. 이대로 손에 힘을 준다면, 연약한 목은 아주 손쉽게 부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묘정은 끝내 아이를 죽이지 못했다.

“…….”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묘정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마침내 묘정은 줄곧 외면해 왔던 보잘것없는 진실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죽이지 않고 계속 곁에 두는 이유. 그것은 아이가 가엾어서도, 불쌍해서도 아니었다.

묘정이 너무나도 외로운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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