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50)화 (250/348)

#250

신지혜가 돌아온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동안 영귀들을 풀어 신지혜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어디서도 신지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윤태희는 그날 신지혜에게 어떤 변고가 일어났으리라 짐작하여, 애석한 일이지만 앞으로 신지혜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지혜가 이렇게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신지혜는 무사했다.

“자기야!”

윤태희를 발견한 신지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신지혜 역시 윤태희가 무사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윤태희를 보자마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그간의 우려와 걱정이 북받쳤는지, 신지혜가 얼굴을 감싸 쥐며 떨리는 음성을 뱉었다. 그날 귀수산이 깨어나는 과정에서 절벽 틈에 보관해 두었던 짐은 바다로 떠내려가 버렸고,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도 바닷물에 빠져 고장이 나는 바람에 윤태희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전에 한 번 와 봤던 이 집의 위치뿐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째 기다려도 윤태희는 오지 않았고,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왜 이제 와? 하도 안 와서 결국 그날 죽었구나 했단 말이야!”

윤태희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신지혜가 슈트 재킷을 붙잡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신지혜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비를 맞았는지 옷은 흠뻑 젖어 있었으며, 와들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자초지종을 묻기 전에 신지혜를 진정시켜야 했다. 윤태희는 일단 신지혜를 집 안으로 들였다.

우선은 비를 맞은 신지혜가 샤워부터 할 수 있도록 욕실을 내어 주었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마친 신지혜가 욕실에서 나왔다. 목욕 가운으로 몸을 둘둘 말고 소파에 털썩 앉은 신지혜는 아까보다 한결 평정심을 되찾은 상태였다. 윤태희는 소파에 앉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신지혜에게 따듯한 차가 담긴 머그잔을 내밀어 주었다.

“오늘은 다리가 있네.”

“응?”

“쓸개 빠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또 한 명 늘었다는 뜻이고.”

섬에 들어갈 때와 달리 신지혜에게는 멀쩡히 다리가 있었다. 윤태희가 농담기 섞인 말을 건네자, 신지혜가 헛기침을 하며 김이 솟아오르는 머그컵에 입술을 붙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따듯한 차를 홀짝이던 신지혜가 입술에 꾹 힘을 주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결국, 신지혜가 쓱 눈물을 훔쳤다. 또다시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윤태희가 신지혜의 옆으로 나란히 앉으며 신지혜와 눈을 맞췄다. 윤태희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모친을 만나러 바닷속에 들어갔던 그 날, 신지혜는 쉬지 않고 헤엄을 쳐서 약 이틀 만에 인어들이 모여 사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지혜에게는 별다른 위기감이 없었다. 반쪽짜리 인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눈총을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머무를 생각 없이 용건만 전하고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신지혜는 모친을 만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있는데 인어와 연관이 있는지 파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이야기가 다른 인어들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반쪽짜리 인어가 인간에게 협조하고, 그 인간이 과거의 인어 사냥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어들의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어들은 신지혜를 에워싸더니 당장 그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에 신지혜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한다며 거절했으나, 인어들은 모친의 안위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신지혜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인어들은 만약 인어와 연관이 없다면 무고한 인간이니 그때는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끝내 인어들은 돌변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인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려둬서는 안 된다며 두 사람을 공격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당했음을 알게 된 신지혜는 뒤늦게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도망치라고 했지만, 그대로 인어의 손에 붙잡혀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너는 영영 육지로 돌아갈 수 없다.”

인어는 힘이 몹시 세고, 빨랐다. 겨우겨우 저항하여 손길에서 도망치고, 도망쳐도, 인어는 금세 신지혜를 쫓아왔다. 점점 힘이 빠졌다. 더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신지혜가 결국 체념할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신지혜의 눈에 보인 것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북이. 바로 귀수산이었다.

바닷속 깊이 잠수하여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귀수산을 발견한 신지혜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인어에게서 벗어난 신지혜는 부리나케 귀수산의 등딱지 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에 뒤따라온 인어가 신지혜를 데려가기 위해서 귀수산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으나, 하늘은 신지혜의 편이었다. 성격이 포악한 귀수산이 거대한 발갈퀴를 휘둘러 인어를 치운 것이다. 그 틈에 신지혜는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겨우 인어를 따돌린 신지혜는 먼바다를 돌고 돌아 다시 그 섬으로 갔다. 그러나 절벽 인근에 도착했을 때는 인어 하나가 의식을 잃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을 뿐, 나머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크고 작은 바위가 깔린 해안가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절벽은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너희 둘 다 죽었으면 어쩌지 무서웠어.”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신지혜는 몇 날 며칠을 헤엄쳐 거여도에서 육지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머나먼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도 했고, 거친 풍랑을 만나 길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육지에 닿은 후에는 낚시꾼 하나를 홀려서 쓸개를 빼먹고, 겨우 두 다리를 얻어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재겸이는? 재겸이도 무사한 거지?”

“응. 무사해.”

“너네한테는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방심했나 봐.”

그간의 고생을 토로한 신지혜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나 때문에 위험해졌잖아. 전부 내 잘못이야.”

신지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윤태희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양쪽 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누구의 탓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는 양쪽 다 너무 큰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신지혜도 험한 일을 겪었고,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고생을 해 가며 불로불사의 저주를 풀고자 했던 일은 결국 부질없는 짓을 한 셈이 되었으므로 허탈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보며 후회하는 건 어리석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어쨌든 서로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마음의 짐을 한결 덜었다.

“그럼,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이만 쉬도록 해.”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 윤태희가 몸을 일으켰다. 사실, 윤태희는 아까부터 꽤 지쳐 있던 상태였다. 새벽에는 경주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와서 출근했고, 거기다 몸져누운 석주련의 병간호까지 했으니 피곤할 법했다.

“저기, 그… 자기야.”

그때, 신지혜가 윤태희를 불러세웠다. 신지혜는 아직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했으나,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윤태희는 재촉하지 않고 말을 기다렸다.

“그날, 혹시 재겸이 많이 다쳤어?”

신지혜의 질문에, 잠시 말이 없던 윤태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싸우다가 막, 피도 흘리고 그랬어?”

신지혜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러모로 유쾌한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응.”

“그렇구나.”

“왜?”

입술 거스러미를 뜯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신지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때 그거, 기억하고 있어?”

“뭐를?”

“인어의 녹색 피에 인어를 취한 사람의 피가 섞이면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거.”

뜬금없는 질문에, 윤태희가 의아한 눈을 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의 녹색 피와 인간의 피가 섞이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인어를 취한 인간의 피와 섞이면 그 색깔이 파란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그날 신지혜와 윤태희는 재겸의 피와 인어의 피가 섞이며 갈색이 되었던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게, 사실 있잖아.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망설였는데. 그냥 본 대로 사실대로 말할게. 내가 아까 다시 섬에 갔었다고 했잖아.”

“응.”

“그때 바닷가 바위 있는 곳에 인어가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어.”

처음에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그냥 방치해 놓고 육지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혹시라도 인간에게 들키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팔로 기어가서 그 인어 질질 끌어다가 바닷속으로 집어넣었거든.”

말을 흐리던 신지혜가 고개를 들고 윤태희의 눈을 쳐다보았다가,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봤는데,”

이내 김이 폴폴 솟아나는 머그잔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파란색으로 된 피 웅덩이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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