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두 사람이 시골집에 돌아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외진 섬이라 그런지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때마침 저 멀리 골목 끝에서 주인집 할머니가 뒷짐을 진 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딜 댕겨오는겨? 시장할 텐디 얼릉 와서 식사들 혀.”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노인의 뒤를 따라갔더니 푸짐한 밥상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커다란 한 상에 재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양은으로 된 동그란 밥상 위에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서리태콩을 넣어서 지은 냄비 밥, 밀가루 옷을 입혀 바싹하게 튀겨낸 삼치구이, 직접 담근 간장게장, 푹 삭은 갓김치, 찐 소라를 다져 넣은 강된장, 데친 오징어 숙회, 섬에서 난 돌미역을 넣고 진득하게 우려낸 미역국….
그 외에도 갖가지 밑반찬과 텃밭에서 딴 푸성귀도 한 소쿠리나 있었다.
“뭣들 허고 있는가? 어서들 앉어.”
재겸과 윤태희는 밥상 앞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다.
잘 차려진 한 상을 살펴보던 재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섬마을 밥상답게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했고, 보기만 해도 아주 건강해 보이는 밥상이었다.
“젊은 총각들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겄소잉.”
노인의 말에, 윤태희의 입맛을 알고 있는 재겸은 윤태희의 표정을 은밀히 훔쳐보았다. 제철 채소와 해산물이 넘쳐나는 밥상은 저에게는 극락이 따로 없었지만, 윤태희에겐 어떨지 몰랐다. 저번에 백반집에 갔을 때도 윤태희는 비린 것이 싫다며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절에서 살았을 시절에 풀떼기를 하도 먹어서 질린다는 핑계로 나물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평소의 식성으로 미루어볼 때, 윤태희가 먹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젊은 총각들 올 줄 알았으면 뭍에 가서 육괴기라도 떼왔을 것인디.”
검지로 빠글빠글한 파마머리를 긁적거리며, 노인이 말했다.
그때, 윤태희가 빙그레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아니에요. 진수성찬인데요. 잘 먹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한 윤태희는 밥 한술을 뜨더니 미역국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재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입맛이 까탈스럽고 편식이 심해서 깨작거릴 줄 알았는데, 윤태희는 의외로 군소리 없이 밥을 먹었다. 음식을 가려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비린 생선이며 나물 반찬이며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덥석덥석 집어서 먹었다.
“…….”
잠시 눈치를 보던 재겸도 수저를 들었다.
맛보기로 미역국을 후루룩 들이킨 재겸은 강된장을 크게 퍼서 밥에 쓱쓱 비볐다. 푸성귀 몇 장을 골라 된장에 비빈 밥을 넣고, 차곡차곡 쌈을 쌌다. 쌈을 통 크게 욱여넣고 여기에다가 풋고추를 아삭 베어먹으니 꿀맛이었다.
“우째 입에는 맞는가?”
“넘흐 마싰어요.”
쌈을 우물거리던 재겸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재겸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푸지게 잘 먹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면서 주름진 손으로 재겸의 등을 슬슬 쓸어주었다.
그때, 조용히 밥을 먹던 시우가 할머니에게 뭐라 귓속말을 했다.
“뭐시? 어떤 삼춘허고?”
그에 시우는 윤태희에게 힐끔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소곤소곤 비밀스레 말을 건넸다. 그러자 노인이 껄껄껄 웃으며 윤태희에게 비밀을 누설했다.
“시우가 방금 뭐란지 알어? 이담에 커서 삼춘허고 결혼한단다.”
게장을 집어 들던 재겸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시우와 윤태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시우가 새빨개진 얼굴로 “왜 말해… 비밀인데….” 하며 울상을 지었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할 법한 순수한 발상이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보는 눈은 똑같나 보네, 라고 재겸은 생각했다.
“어… 정말?”
시우의 포부를 알게 된 윤태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삼촌은 삼촌보다 나이 많은 사람 좋아하는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이 많은 재겸의 어깨가 움찔 튀었다.
“그려어? 올해 나이가 몇인감?”
그때, 주인집 할머니가 헛기침하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저요? 스물여섯입니다.”
노인의 눈이 일순 반짝였다. 노인은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허리춤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화면을 멀리 떨어트리며 눈을 가물가물 떴다.
“내 작은딸이 올해 서른 셋인디… 여적 시집두 안 가고 혼자 살어야.”
“네?”
“지 말로는 요즘 남자들이 맥아리가 없어서 눈에 차들 안 헌다고, 죽어도 시집갈 저기가 없디야. 지가 뭣이 부족해서 모지란 넘이랑 거시기허냐고 지랄 풍신나는 소리나 해쌌는디, 내가 참말로 복장이 터져가꼬….”
방언이라도 터진 것처럼, 노인의 입에서 자식 욕이 줄줄 튀어나왔다.
“…….”
밥을 먹던 윤태희가 작게 기침을 하며 눈썹을 매만졌다.
“아주 지 잘났다고 눈이 가져가지고 양 을매나 뻗대고 다니는지, 근디 야가 공부머리는 있어가꼬 저기 머시냐 변리사여. 돈은 무시게 벌어야.”
“…….”
욕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식 자랑으로 이어졌다. 한참 동안 흉인지 자랑인지 모를 내용을 토로하던 노인이 윤태희에게 말하고자 했던 핵심인즉슨, 자신의 딸과 맞선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결혼보다 본인 인생이 중요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다 그래요.”
“암만 그래두 좋은 사람 만나서 애도 놓고 혀야지. 그게 효도여!”
노인은 인자하고 정겨웠지만,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결혼 생각도 없는 분한테 실례될 것 같아서요.”
윤태희는 에둘러 거절을 표했으나, 노인은 그에 굴하지 않고 지금 통화라도 한번 해보라며 자꾸 딸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인물도 훤칠한 데다 살갑게 구는 윤태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난감해진 윤태희는 ‘번호를 알려주시면 나중에 연락해 보겠다’라는 말로 당장 위기를 모면했다.
“그려, 꼭이여. 꼭.”
그 사이, 재겸은 고봉밥 한 그릇을 싹 비워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뒷정리를 도왔다. 재겸은 상을 치우고, 윤태희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에 나섰다. “아따, 참말로. 내가 할 판여. 내비둬어.” 그에 노인은 몇 번이고 됐다며 만류를 했으나 두 사람은 말끔히 정리를 마쳤다. 정성 가득한 밥상을 받았으니 이 정도 보은은 해야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쉬세요.”
노인과 시우는 대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때, 윤태희가 “아, 참.” 하더니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꺼냈다. 민박비를 지불하는 걸 깜빡했다. 윤태희는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를 몇 장 꺼내서 반으로 곱게 접었다. 그대로 노인의 손에 쥐여주려고 하니, 노인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핏 보기에도 돈뭉치의 두께가 상당했다.
“얼레? 뭘 이리 많이 준디야.”
그러자 윤태희가 흡사 국어책이라도 읽듯이,
“아이, 감사해서 그려요.”
노인의 사투리를 장난스레 따라 하며 손에 지폐를 쥐여주었다. 뺨에는 볼우물이 쏙 패여 있었다. 둘은 한참을 돈이 많네 적네 실랑이를 벌였다. 그 결과, 노인은 금액이 너무 많다며 끝내 오만 원 두 장을 돌려주었다.
완강한 태도에 윤태희는 돈을 돌려받았다가, 시우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건 시우 용돈. 쪼꼬렛 사 먹어.”
윤태희가 씩 웃으며 아이에게 돈을 건넸다. 그러자 노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찌나 살랑거리고, 사근사근하게 구는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젊은 양반이 어째 능구렁이가 따로 없구먼. 보통내기가 아니여.”
결국, 한풀 꺾인 노인이 껄껄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사람을 구워삶는 윤태희의 모습을, 재겸은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을 대하는 데 능숙하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싹싹하게 굴 줄은 몰랐다.
너는 아이에게는 다정하고, 노인에게는 친절하구나.
***
두 사람은 노인의 배웅을 받으며 황토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여덟 시도 안 된 시각이었으나 섬에는 칠흑같이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슬슬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그럼 나 먼저 씻을게요.”
“마음대로 해.”
윤태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직행했다. 윤태희가 먼저 씻으러 들어간 동안, 재겸은 안방에 퍼질러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손때가 탄 뚱뚱한 텔레비전은 재겸의 집에 있는 텔레비전과 달리 채널이 많지 않았다.
볼 게 없네.
뒹굴뒹굴하던 재겸은 하염없이 리모콘을 누르며 하품을 했다.
‘번호 알려주시면 제가 나중에 따로 연락해 볼게요.’
그런데, 윤태희는 정말로 그 사람한테 연락하려나?
통화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윤태희가 궁금해질 거다. 왜냐하면, 윤태희는 목소리가 좋으니까. 목소리를 들어보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겠지. 그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고. 직접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윤태희를 좋아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
갑자기 뭔 잡생각을 하고 있나 싶었다.
그때, 때마침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품이 커다란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윤태희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에 들어왔다.
재겸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나 씻는다.”
재겸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쓸데없는 상념을 흘려보냈다.
몸도 머리도 개운하게 씻고 나왔을 때는 윤태희는 방 안에 없었다 재겸은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마루로 나왔다. 힐끔, 마당을 내다보니 돌담에 팔을 괴고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윤태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야.”
재겸은 운동화를 꺾어 신고 윤태희에게 가까이 갔다.
“왜 나왔어? 담배 냄새나.”
윤태희가 곧바로 검지로 담뱃불을 툴툴 튕겨내며 말했다.
“줘 봐. 나도 한번 피워보게.”
그에 재겸이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
윤태희가 멈칫하며 재겸을 바라보았다. 재겸은 뭘 그리 보냐는 듯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윤태희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갑을 꺼내 새 담배 한 대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윤태희는 새로 꺼낸 담배는 재겸에게 담배를 주는 대신 본인의 입으로 가져갔다. 윤태희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뭐 해? 나 달라니까.” 그에 재겸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윤태희를 바라볼 때였다.
재겸의 코앞으로 다가온 윤태희가 재겸의 어깨에 양팔을 걸쳤다.
“피워보고 싶다며, 담배…….”
그렇게 말하며,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 윤태희가 한 손으로 재겸의 목덜미를 감싸 쥐고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분위기가 뒤바뀌는 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