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46)화 (146/348)

#146

몇 번이고 무전을 넣어보았으나 윤태희에게선 응답이 없었다.

일단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기로 했다. 재겸은 슬쩍 시선을 돌려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남생이는 발라당 뒤집힌 채 발갈퀴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 좀 데려가 주시오!”

남생이는 여전히 통곡 중이었다.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고 갈까 하다가, 한숨을 쉬며 쪼그려 앉았다.

남생이, 거북이, 자라와 같은 등딱지가 붙은 생물은 한 번 뒤집히면 제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다. 재겸은 마지막 친절로 남생이를 뒤집어 주었다.

“자, 이제 네 갈 길 가라. 앞으로는 뒤집히지 않게 조심하고.”

재겸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남생이는 헐레벌떡,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엉금엉금, 재겸의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점점 벌어지자 남생이가 서럽게 울면서 소리쳤다.

“아! 가취가욥!”

귀찮아 죽겠네, 쟤 왜 저러냐 진짜….

“따라오지 말라고.”

재겸이 짜증스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 따라갑니까요?”

“…….”

재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씨바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오든가.”

“어차피 가는 길도 같은데 저 좀 태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남생이가 훌쩍거리며 애처롭게 덧붙였다.

“오랫동안 굳어있다가 운신을 하려니 힘들어 죽겠습니다요….”

진짜 가지가지 하네…. 재겸은 울컥 열이 뻗쳤다. 성질 같아선 저걸 확 씨 다시 뒤집어 버릴까 생각했으나, 저 멀리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또 마음이 주춤했다. 재겸은 결국 터벅터벅 걸어가서 남생이를 훌쩍 집어 들었다. 남생이는 슈트 재킷 주머니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주인님의 너른 아량에 저 유남생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네 주인 아니라고 했지. 조용히 해, 바위에 확 엎어 버리기 전에.”

재겸은 덕삿골 유남생의 가마가 되어, 조금 전에 윤태희와 찢어졌던 위치로 되돌아왔다. 재겸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남생이를 꺼내 내려주었다.

“자. 너랑 나는 여기까지야.”

“예? 그것이 무슨 말이십니까요?”

“일행이 저쪽에 있어. 나는 저 길로 갈 거니까, 이제 넌 네 갈 길 가라.”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재겸은 곧장 몸을 틀었다. 윤태희가 향한 길로 성큼성큼 들어갈 때였다. 어리둥절해 하던 남생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안 됩니다요,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요!”

남생이의 만류에, 재겸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쪽으로 가면 위험합니다요!”

남생이의 말에, 재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위험하다고?”

“그, 그렇습니다요!”

재겸이 멈칫하며 윤태희가 향한 길을 쳐다보았다.

위험하다고? 윤태희가 이쪽으로 갔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아까 전 유남생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산신으로부터 이 동굴을 지키라는 명을 받아 여기 있었노라 했다. 대체 이 동굴에 지켜야 할 것이 뭐가 있는지 뒤늦게 의문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악귀라든가, 천년 묵은 지네라든가 그런 게 있나?

재겸은 남생이를 덥석 집어서 얼굴 근처로 들어 올렸다.

“왜? 저쪽으로 가면 뭐가 있는데?”

“샘이 있습니다요.”

“샘?”

“예, 이 동굴 안쪽에는 커다란 샘 하나가 있는데, 오래전에 산신님께서 직접 만드신 샘입니다요. 한데 그 샘은 아주 위험하여, 한때 산속에서 길을 헤매던 약초꾼이나 심마니들이 우연히 이 동굴에 들어왔다가 샘에 빠져 죽는 일이 허다했습니다요. 그래서 저는 산신님의 명을 받고, 인간들이 샘으로 가지 못하도록 바위로 변해서 샘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습니다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재겸이 낯을 굳히며 물었다.

“그 샘에 뭐가 있길래?”

남생이가 사지를 버둥거리며 대답했다.

“‘과거’가 있습니다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재겸이 설핏 눈가를 구겼다.

“……과거?”

남생이의 말은 이러했다.

아주 오래전, 산 밑 마을에 나무꾼 부부가 살았습니다요. 그 부부는 성품이 곱고, 심성이 선하여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신님께 열심히 치성을 올리고 비손했습니다요. 산신님께서는 그들을 평소 어여삐 여기셨습니다요.

그런데 어느 날, 나무꾼의 부인이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요.

단짝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나무꾼은 부인을 몹시 그리워했습니다요. 그래서 그는 매일 같이 산에 올라 산신님께 손을 빌었습니다요. 부인을 한 번만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요.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다시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겠노라, 그렇게 빌고 또 빌었습니다요.

안 그래도 그를 가엾게 여기던 산신님께서는 그자의 염원을 들어주고자 이 동굴에 커다란 샘을 만드셨습니다요.

그 샘은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샘물로, 샘물을 마시면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서 소중한 사람의 환영을 볼 수 있었습니다요.

그리하여 나무꾼은 샘물을 마시고, 꿈에 그리던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요. 그런데, 부인과 만나게 된 나무꾼은 열심히 살아가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실감을 잊지 못하고 스스로 샘에 빠져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요. 그는 귀신이 되어 샘에 그대로 녹아들었고, 이후 샘에 오는 사람을 홀려서 덩굴로 발목을 휘감고, 끌어당기며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요.

영원히 행복할 수 있도록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입니다요…….

저에게 주술을 걸었던 도사 놈은, 샘에 사는 귀신을 퇴치하러 왔던 인간이었습니다요. 귀신을 없애주겠다 하여 들여보내 주었는데, 그는 결국 귀신을 없애지 못했습니다요. 샘 자체가 귀신인 셈이라 형태가 없기 때문에, 샘을 없애지 않는 한 퇴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간 것입니다요.

그러니 가시면 안됩니다요. 그 어떤 강한 힘을 가진 귀재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요. 그 누구라도, 과거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그렇게 지금까지 빠져 죽은 사람만 수십입니다요. 그래서 산신님께서는 저를 불러 이곳을 막아라 명을 내리셨고, 저는 본래 바위로 변하여 이 샘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요.

하지만 힘이 약해진 산신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을 떠나셨고, 때문에 저 혼자 남아서 산신님의 명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때 그 빌어먹을 도사 놈에게 당해서 오랫동안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요…….

“……뭐?”

남생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재겸이 하얗게 굳은 낯으로 샘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윤태희는 아까부터 무전이 없었다. 설마 그 샘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검이 있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렇게 약한 애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다. 재겸이는 남생이를 덥썩 잡아서 수트 자켓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다.

“어? 주, 주인님! 뭐하시는 겁니까요!”

재겸은 샘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

비좁은 통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머지않아 광활하게 트인 공간이 나왔다. 재겸은 숨을 몰아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남생이는 ‘샘’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어떻게 봐도 샘이라고 말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호수였다.

“윤태희!”

재겸이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목청을 높였다.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어딨어….

그러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딨어, 자신이 낸 목소리만 메아리로 돌아올 뿐, 어디에도 윤태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재겸은 호수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재겸의 눈에 뭔가 띄었다. 물가에 떨어져 있는 이매탈이었다.

“…….”

재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설마…….

재겸이 덜컥 숨을 들이켰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재겸은 입고 있던 슈트 재킷을 뒤로 확 젖히며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다. 곧바로 물에 뛰어들려는데, 남생이가 황급히 비명을 지르며 재겸을 막아섰다.

“흐어억! 주인님! 안 됩니다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요!”

“괜찮아, 난 안 죽어!”

“그래도 안 됩니다요!”

정황상 윤태희는 귀신에게 홀렸고, 샘에 빠졌다고 봐야 한다. 물에 빠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물에 빠진 게 맞는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한시가 위급한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물속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르니 지금 당장 구해야 했다. 재겸이 몹시 동요하며 소리쳤다.

“씨발, 저리 비키라니까!”

“아악! 알, 알겠습니다요! 정 물에 들어가셔야겠다면, 알겠습니다요! 대신에 진, 진정하시고! 우선 제 말부터, 이거 하나만 명심해 주셔야 합니다요!”

남생이가 재겸을 부여잡고 헐레벌떡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가면 주인님께서 원치 않으셔도 저절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것입니다요. 이 샘이 위험한 이유는 과거의 행복한 순간에 갇히기 때문입니다요. 그러니 주인님! 환상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요. 전부 다 지나간 일이고,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염두에 두고 벗어나셔야 합니다요.”

재겸이 멈칫하며 남생이를 쳐다보았다. 남생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덩굴에 묶이면 과거의 기억 속에 잠들기 시작합니다요. 그때 무엇을 보시든 절대로 홀리시면 안 됩니다요. 만약 덩굴에 묶이는 순간이 온다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셔야 합니다요. 앞으로 있을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며 과거의 기억을 밀어낸다면 덩굴의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요.”

미래에 있을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여 과거의 기억을 덮어라. 그것은 일견 쉬운 듯하면서도, 몹시도 어려운 주문이었다. 적어도 재겸에게는 그랬다.

오랫동안 불로불사로 살아온 재겸은 묘정이 떠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앞날을 기대해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지겨움’이다. 영영 끝나지 않는, 형벌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는 지겨움. 재겸은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이런 삶일진대, 앞으로 일어날 행복한 일은 상상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미래에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나 죽음, 죽음뿐이었다.

따라서 남생이의 조언은 사실상 들으나 마나 한 무용한 조언인 셈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재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헌데 저는 뭘 해도 죽지 않는 몸이니, 최소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 당장은 그거면 되었다.

재겸은 곧바로 차갑고 깊은 호수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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