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팔자에도 없는 어두운 동굴 탐험이 이어졌다.
“아니, 여기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결국, 걷다 지친 재겸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무슨 동굴에 박쥐나 뱀 한 마리가 없냐.”
이래서야 더 들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법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에 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산짐승이 우는 소리를 괜히 착각해서 신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윤태희에게서 무전이 없는 것을 보니, 저쪽도 아직 딱히 뭘 발견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대충 눈에 띄는 바위에 걸터 앉아서 숨을 돌릴 때였다.
“깽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재겸은 흠칫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재겸은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그러나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바위에 걸터 앉을 때였다.
“깽알.”
또 소리가 났다. 두리번거리던 재겸은 마침내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냈다. 무언가 바위틈에 뒤집혀 있었다. 재겸은 탈을 벗으며 손전등을 비추어 보였다.
이건… 자라 같기도 하고… 아니, 근데 자라치고는 좀 작은 것 같은데…
“…남생이?”
자세히 보니 남생이였다. 재겸은 남생이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근데 원래 남생이가 ‘깽알’ 소리를 내며 울던가?
아무튼 남생이를 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민물에서 사는 남생이는 언뜻 보면 자라와 비슷해 보여서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남생이는 예전에는 왕실의 어보로 쓰이던 귀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이 동굴에 웬 남생이가 있나 싶었다.
재겸은 손에 쥐고 있던 부채로 남생이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그런데 마치 바위를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아주 딱딱했고 미동조차 없었다. 이번엔 발에 힘을 줘서 툭 쳤으나, 마찬가지로 석상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남생이는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죽었나?”
그때였다. 재겸의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깽알.”
남생이가 소리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남생이가 입을 뻐끔거리며 대답을 하자, 재겸은 쪼그려 앉아서 남생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역시 이 녀석이 소리를 낸 게 맞는가 보다.
“야. 소리 낸 게 너냐?”
“깽알.”
“너 왜 그러고 있냐?”
“깽알.”
“너 죽었냐 살았냐?”
“깽알.”
이런저런 말을 붙여 보았으나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깽알’뿐이었다. 뒤집힌 채 굳어있는 남생이는 계속해서 기계처럼 같은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마음에 남생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재겸은 저도 모르게 “깽알.” 하고 말을 따라해 보았다.
그때였다. 여태껏 발라당 뒤집힌 채 꿈쩍도 하지 않던 남생이가 갑자기 덜걱덜걱, 마치 시소처럼 좌우로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흐어억! 도와주시오!”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어씨. 뭐, 뭐야!”
흐어어, 덩달아 재겸은 화들짝 놀랐다. 남생이는 사람 말을 하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오! 나 좀 뒤집어 주시오!”
너무나 절박하게 소리를 질러 대서, 재겸은 일단 재빨리 남생이를 뒤집어 준 다음,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남생이를 바라보았다. 사람 말을 쓰는 것 보니 영물인 것 같은데….
“야, 너 뭔데? 괜찮냐?”
재겸이 물었다. 그러자 남생이가 갑자기 눈물을 콸콸 쏟기 시작했다.
“주인님!! 주인님께서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요!!”
“뭐? 뭔 소리야. 내가 왜 네 주인이냐.”
재겸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저는 덕삿골의 유남생이라고 합니다요! 저는 산신님께 동굴을 지키라는 명을 받고 수백 년간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요.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웬 도사놈이 왔습니다요.”
남생이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적적하던 차에 말동무가 생겨 기쁜 마음에 계속 말을 붙였는데, 그 망할 도사놈이 ‘그놈 참 깽알깽알 시끄럽네.’하며 저에게 주술을 걸고 가버리지 뭡니까요! 그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깽알, 밖에 없었습니다요…….”
남생이가 눈물을 흩뿌리며 발갈퀴를 파닥거렸다.
“몇 번 사람이 온 적도 있었으나 저를 알아봐 준 이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요! 이 고통에서 저를 꺼내 주셨으니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요! 본래 제 주인은 이 산의 산신님이셨으나 산신님께서는 오래 전에 떠나셨습니다요! 그러니 새로운 주인을 모셔도 됩니다요!”
남생이가 엉금엉금 기어오더니 재겸의 발등에 올라왔다.
“주인님! 존귀하신 분이 틀림없습니다요!”
눈물을 철철 흘리던 남생이는 재겸의 발등에 대고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지랄하네. 누구 마음대로 네 주인이래?”
재겸이 냅다 인상을 쓰며 구두 앞코에 얹힌 것을 훌훌 털어냈다. 그러자 발등에 올라타 있던 남생이가 데굴 떨어졌다. “에구구!” 발라당 뒤집어진 남생이가 버둥버둥 오열했다.
“저를 데려가 주시오! 더 이상 이곳은 싫습니다요, 두고 떠나지 마시오!”
재겸은 그 옛날 얼굴도 모르는 도사놈이 왜 주술을 걸고 떠났는지 알 것 같았다….
“아, 시끄러워 죽겠네. 조용히 안 하냐?”
여태껏 재겸을 알아보고는 주인으로 모시겠다, 하는 존재는 여럿 있었다. 그러나 재겸은 더이상 식구를 늘릴 생각이 없었다. 같이 살고 있는 여우와 산삼만으로도 족했다.
“주인님! 제가 잘 하겠습니다요!”
남생이는 눈물을 흩뿌리며 주인으로 모시게 해 달라, 꽥꽥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재겸은 남생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성가신 표정으로 귀를 후볐다. 이 동굴에서 소리를 낸 것은 귀신이 아니라 남생이었다. 일단 이쪽에서 먼저 알아냈으니, 무전을 넣었다.
“야. 여기 웬 깽알이… 아, 아니, 남생이가 있는데?”
-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무전 핀은 잠잠하기만 했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뭐지? 혹시 고장났나? 아까는 잘 됐는데. 재겸은 무전 핀을 톡톡 건드리며 몇 번이고 윤태희에게 말을 걸어보았으나, 윤태희는 말이 없었다.
***
마침내 사방이 고요해졌다.
선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무신도가 있던 그 방 안이었다.
“…….”
잠시 낮잠에 빠졌던 선오는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예전에 보았던 풍경 그대로였다. 선오는 헐레벌떡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은 푸르렀으며, 길고양이들 몇 마리가 한데 뒤엉켜서 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마당 한쪽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고, 잡귀들은 구석에 모여 참새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고개를 확, 확, 돌려가며 주변을 살펴보던 선오가 제 손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작고 꼬질꼬질한 손이었다.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 마당에 나갔느냐!”
그때, 집 안에서 엄하게 꾸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뉘집 손주가 할애비 말을 이리 안 들을꼬! 누구긴 누구야, 암! 우리 선오지!”
선오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마당에 있던 선오는 손등으로 눈을 닦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문을 열자마자 전신에 흉터를 두른 윤 노인이 보였다. 윤 노인은 장기판 앞에 앉아 책을 보면서 홀로 장기를 두는 중이었다. 수살귀는 그런 윤 노인 곁에 앉아서 장기 말을 뒤적거리며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
선오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울었다.
“아니, 선오야. 왜 우는 게야.”
윤 노인이 놀란 눈으로 선오에게 손짓을 했다.
“왜 우느냐. 응? 누가 우리 귀한 선오를 울린 게야.”
윤 노인이 선오를 무릎에 앉히고, 어르듯이 물었다.
“이상한 꿈을 꿨어요.”
이상한 꿈을 꿨어요… 너무 무서운 꿈이었어요…. 선오가 울면서 말했다. 윤 노인이 괜찮다, 괜찮아, 하며 주름진 손으로 선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에 옆에 앉아 있던 수살귀도 손을 뻗어서 선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손주가 뚝 그치려면 이 할애비가 선물을 줘야지.”
윤 노인은 무릎에 앉힌 선오를 일으켜 세우더니, 사탕이 담긴 통을 가지고 왔다. 윤 노인이 통 안에서 사탕을 꺼냈다. 훌쩍이던 선오가 아, 입을 벌렸다. 입 안에 사탕이 들어왔다. 수살귀도 선오를 따라서 입을 아, 벌렸다.
“할애비랑 장기 한판 두자꾸나. 나쁜 꿈일랑 얼른 날아가 버리게.”
수살귀의 입에도 사탕을 넣어준 뒤, 윤 노인이 인자하게 웃었다.
“응…….”
선오는 눈물을 닦으며 장기판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