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뒷좌석에 올라탄 승객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기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다.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냉기와 기백을 느낀 탓이다.
“종로 성당으로 가 주세요.”
여자는 간결하게 행선지를 밝힌 뒤,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기사는 곧바로 차를 몰았다. 퇴근 시간이 지난 평일 저녁의 종로 일대는 적당히 한산했다.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올리고 운전석 창문을 조금 내렸다.
“거기 창문은 내리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그때, 내내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여자가 대뜸 입을 열었다.
“예?”
“운전석 말고, 조수석 창문을 여세요.”
“아, 예….”
기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자의 말을 따랐다. 그의 말투는 더할 나위 없이 정중했지만 어딘지 고압적이었다. 꼭 명령하는 일이 익숙한 사람 같았다. 기사는 운전하는 내내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질 법한데도 여자는 고개 한 번 들지 않았다. 택시가 종로 성당 근처에 도착하자, 여자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기사에게 건넸다.
액수를 확인한 기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택시비는 고작 칠천 원 남짓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건넨 돈은 오만 원짜리 두 장. 총 십만 원이었다.
“거스름돈은 됐습니다. 나머지는 세차비로 쓰세요.”
“예?”
“세차가 끝나면 차에 소금 뿌리시고.”
알 수 없는 말에, 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여자는 기사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태연하게 대꾸했다.
“차가 더러워서요.”
더럽다고? 반나절 전에 세차한 차인데? 당황한 기사가 뭐라 말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차에서 내린 여자가 가차 없이 뒷좌석의 문을 닫았다. 쾅, 하는 소리에 놀란 기사가 펄쩍 뛰었다. 여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가방 안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어 안에 든 내용물을 택시 위로 쏟아 부었다. 정체 모를 검붉은 액체가 차체를 타고 콸콸 쏟아져 내렸다.
“어? 저기, 손님! 이, 이봐요! 무슨 짓이에요!”
차 안에서 기사가 뭐라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낯빛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구겨진 정장을 정리하던 여자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옷소매에 액체가 튀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기사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창문 바깥의 사이드 미러에 입 없는 귀신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차에 탈 때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붙었는지 모를 일이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귀신은 입이 없는 대신 눈을 기괴하게 찌푸려 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지(理智)가 없는 것을 보니 하찮은 잡귀가 분명했다.
별다른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운전에 훼방이라도 놓는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건 곤란했다. 본래대로라면 귀신은 사멸시키는 것이 원칙이나 민간의 사람 앞에서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귀신을 사멸시키기 위해서는 귀기(鬼氣)를 사용하거나 부적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엔 적당히 축귀하는 편이 최선이었다.
입청 전에 잡귀가 꼬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사나울 모양이라고, 석주련은 생각했다. 그간 축적된 경험을 미루어 볼 때 그러했다. 노련함이 빚어 낸 예감은 여간해서는 틀린 적이 없었다.
“쯧.”
나례청 축역부 부장, 석주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해가 지면 귀신이 활개를 친다.
그 말은 어둠이 내리면 나자들 역시 바빠진다는 뜻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귀가하는 시간이었지만 나자에겐 예외였다. 오히려 고단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출근 시간대라고 할 수 있었다. 종로 성당으로 향하던 석주련은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종로 성당은 눈속임이었다.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할 것. 보안 유지야말로 나례청에 입청할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였다. 석주련이 진짜로 향하는 곳은 그 건너편에 있었다. 바로 조선 왕가의 사당, 종묘였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나례청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은 이백여 년 전의 일이었다. 기나긴 공백 이후, 현대에 이르러 새로이 재건된 나례청은 종묘 한쪽에 터를 잡았다. 수많은 건물이 스러지고 서다보면 땅의 정기가 점차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종묘는 기운이 정결하면서도 안전한 장소였다. 도시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일반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했다.
관람 시간이 끝난 지 오래인 종묘 인근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석주련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묘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석주련은 무쇠로 된 반지 모양의 커다란 손잡이를 잡고, 마치 노크를 하듯 나무로 된 문에 다섯 번 두들겼다.
탕, 탕, 탕, 탕, 탕.
“개문(開門)을 청합니다.”
석주련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고리가 철커덕거리는가 싶더니 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서자 등 뒤에서 저절로 문이 닫혔다. 꼭 누군가 문을 여닫아 주는 것 같았다. 불빛 하나 없는 종묘 내부는 지나치게 어두웠음에도 석주련은 훤한 대낮에 활보하듯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석주련이 멈춰 선 곳은 종묘의 정전이었다.
종묘의 정전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안치해 둔 곳으로, 옆으로 길쭉하게 19개의 문이 나 있었다.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는 그랬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19개의 문만 보였으나 나자의 눈에는 총 20개의 문이 보였다. 제일 마지막 칸이 나례청과 통하는 스무 번째 문이었다.
문 앞에 선 석주련이 목에 매고 있던 카드키를 집어 들었다. 카드키를 기둥 틈 사이로 꽂아 넣자, 카드키 안에 새겨진 부적이 번쩍거렸다.
나무로 된 문을 열자 석주련의 눈 앞에 드넓고 쾌적한 공간이 펼쳐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낡은 목조 건물에 불과했지만, 나례청의 내부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흡사 여느 대기업과 다를 게 없는 모양새였다. 나례청 로비를 수선스럽게 돌아다니던 나자들이 방금 입청한 석주련을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석주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화부에 연락해서 종로 일대 한 번 씻으라고 해. 잡귀가 돌아다니더군.”
“네.”
“암행부에도 순찰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석주련의 지시에 나자 두 명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나례청은 총 다섯 개의 부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신분을 위장하여 민간 곳곳을 순찰하는 ‘암행부(暗行部)’와 부정이 깃든 것을 씻어 내리는 ‘정화부(淨化部)’는 현장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부서였다.
과거의 나례청은 궁궐을 수호하는 명목으로 세워졌으나, 현대의 나례청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간을 수호하는 기관으로 변모했다. 양지에 경찰이 있다면 음지엔 나자가 있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례청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정재계를 통틀어도 소수의 고위층 인사들뿐이었다.
물론, 같은 부류 사이에서야 나례청을 모르는 귀재는 없었다. 그러나 귀신을 믿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민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라면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범인(凡人)은 이 세계를 몰라야 했고, 모르는 게 나았다. 그편이 서로에게 좋았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부장님! 석 부장님!”
축역부 제2팀의 선임 나자이자 석주련의 직속 부하인 한주영이었다. 사무실에서부터 로비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모양인지, 한주영은 가슴팍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직 전달 못 받으셨습니까? 어린아이의 혼이 납치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역시나,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싶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입청한 지 5분도 안 됐건만…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던 석주련이 차분하게 물었다.
“정황은?”
상관의 물음에, 헉헉거리던 한주영은 곧바로 절도 있게 허리를 세웠다.
“일,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식 불명에 빠졌다는 점. 이, 친부가 아이를 빼앗기는 꿈을 꾸었다는 점. 삼, 친부가 꿈속에서 넘어져 생긴 멍 자국이 현실에서도 외상으로 남았다는 점입니다.”
“일리 있네. 축역부 선임급으로 두 명 대기 시켜. 현장 조사 대충 마무리되면 바로 출동할 수 있게. 정화부에 협력 요청했나?”
“예. 이미 조사는 끝났고, 축역부 제2팀 대기 중입니다.”
제법이었다. 한주영은 이미 빠르게 조치를 취해 놓았고, 그 조치는 석주련이 지시한 내용과 그대로 일치했다. 한주영의 판단은 깔끔하고도 정확했다. 이제 막 입청한 상관을 붙잡고 굳이 헐떡거리며 보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했네. 그런데 왜 호들갑을 떨어?”
석주련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 그게….”
한주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골랐다.
“그 아이의 친부가… 주경 건설사 사장입니다.”
“뭐?!”
석주련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한 선임, 상황 파악 제대로 못 하나?”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어떡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방금만 해도 잘했다며 슬쩍 칭찬을 건네던 석주련이 벌컥 화를 냈다. 당황한 한주영이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주경 건설은 자수성가한 젊은 사장으로 유명세를 탄 회사였다.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례청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정보가 흘러들어 오기 마련이었다.
음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현대의 나례청은 총리 산하의 국가 기밀기관이었고,
“타 부서에 협력 요청한 거 전부 철회하고, 입단속 철저히 하라고 전 부서에 공지 띄워.”
자수성가로 유명한 주경 건설의 젊은 사장은 총리의 사생아였다.
“그, 그럼 혼을 되찾는 건 어떻게….”
“나자 한 명만 보낸다. 윗선에 정보 새지 않으려면 별수 없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가족이 해코지를 당했다. 만약 이 사실을 총리가 알게 된다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며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했다. 관리 소홀을 명목으로 나례청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바깥에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사건을 해결해야만 했다.
“네? 하지만 부장님, 한 명은 너무 적습니다.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을 녀석으로 보낼 거니까 하라는 대로 해.”
이럴 때는 입이 무겁고, 그 누구보다 실력이 확실한 사람을 써야 한다.
“윤태희 지금 어딨어?”
석주련이 굳은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