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우연재가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를 통해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도출해 냈는지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거기까지였다.
문서윤은 그 이상 생각이라는 걸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밤하늘에서는 오점에 불과한 불티가 가슴을 타고 올라가 머릿속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린 것만 같았다. 뇌가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조차 마음대로 까딱이기가 버거웠다.
눈을 깜박이고 있는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와닿는 감각은 오로지 시각뿐이어서, 싸늘하게 굳은 우연재의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뭇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얼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더니 단정하게 뻗은 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성큼 다가온 우연재가 손을 낚아챘다.
“봐.”
손목을 감싸는 체온과 함께 약지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우연재의 시선이 적확하게 달라붙은 곳이기도 했다. 뒤늦은 인지가 붙잡힌 손목에 힘을 싣게 만들었다.
문서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기 위해 우연재를 쳐 내려 했다. 그러나 머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인지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도리어 두 발로 땅 위를 버티고 선 스스로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손목을 움켜쥔 악력이 거센 것도 아닌데 문서윤이 제 의지로 해낸 건 붙잡힌 손을 움찔 떠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약하디약한 움직임에 손가락을 살피던 우연재가 힐긋 시선을 끌어 올렸다. 보잘것없는 반항을 예리하게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런 거.”
문서윤은 목구멍에서 턱 걸리는 말을 간신히 내뱉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과 한층 딱딱하게 경직된 우연재의 표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우선 부정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손부터 보자고.”
호흡이 절로 헐떡거렸다. 문서윤은 제 손을 살피느라 높이가 낮아진 새까만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얇은 피부에서 번지는 아릿함보다 이 상황이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우연재의 물음은 가히 기습적이고 예리했다. 어떡하지. 도저히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치듯 이 자리를 피하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등을 돌린다면 우연재에게 그의 물음이 긍정이라는 답을 돌려주는 꼴이었다.
몰려오는 초조함에 손가락을 움찔거리자 담뱃재가 떨어진 피부 위로 손톱 끝이 스쳤다. 후끈한 통증이 스며들었다.
“뭐 해.”
우연재가 성가신 목소리로 하지 말라는 듯 갈 길 잃은 손가락을 옭아맸다. 말을 주고받는 거리도, 한데 뒤엉키는 손가락도 지나치게 가까웠다.
“우연재. 그런 거 아니라고.”
심장이 뛰는 박동은 발가락은 물론 손가락 끝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데 미친 듯이 질주하는 떨림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우연재를 밀쳐 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고 싶었으나 문서윤은 움직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우연재를 밀어내 본 적이 없으니까.
문서윤도 우연재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장소면 또 모를까,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완강하게 밀어내면 다분히 과민 반응처럼 보일 터였다. 이제 와 손을 쳐 낼 수는 없으니, 목소리로라도 부정해야 했다.
“병원 가야겠는데.”
어린애처럼 연약한 피부도 아니고 고작 담뱃재였다. 병원에 갈 정도로 심한 상처는 결코 아니었다. 괜찮다고 대답해야 할지, 병원을 핑계로 대화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분명한 건 우연재의 입에서 남자를 좋아하냐는 물음이 튀어나온 이상, 언젠가 끝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문서윤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차 세워 놨으니까 병원 가.”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우연재가 빈 어둠을 향해 고갯짓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손 좀 놔.”
손목에 엉켜 있던 체온이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하…….”
한숨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우연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몸을 돌리다 말고 멈춰 섰다. 느긋하게 움직인 검은색 운동화가 문서윤의 하얀 운동화 옆으로 떨어진 담배를 짓밟았다. 이어 천천히 내려간 손이 불티가 스러진 담배꽁초를 주워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문서윤은 우연재가 쥐었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멀거니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짓밟힌 것도, 버려진 것도 담배꽁초가 아닌 저 자신이 된 기분이었다.
성인 남자가 고작 담뱃재에 데어 응급실을 찾자 해괴한 표정을 짓던 의사가 떠올랐다. 그나마 응급실이 한적해 다행이었다. 민폐 덩어리가 될 뻔한 문서윤은 간단한 소독으로 처치를 끝낸 뒤 차에 올라탔다. 병원에 올 때처럼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밴드에 꽁꽁 둘러싸인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길 몇 번,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연재.”
운전을 하느라 정면을 향한 눈동자가 느릿하게 닿았다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야.”
화상을 핑계로 잠깐 시간을 벌었을 뿐, 언젠가 다시 끌려 나올 대화 주제였다. 침묵 속에서 병원까지 오는 동안,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문서윤은 가까스로 결정을 내렸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는 결정이었다.
아닌 척,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척 표정을 꾸며 낼 자신은 없어도 그럭저럭 마음을 다잡은 차였다. 뇌가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자 호흡 역시 나쁘지 않게 조절할 수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달음박질치는 중이었으나 학교에서처럼 손이 닿은 상태는 아니니 어떻게든 감출 수 있을 터였다.
운전에 집중한 우연재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거짓말을 내뱉으면 들킬 게 뻔하니 부정하기에는 지금이 적격이었다. 다행히 목소리는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다.
“네가 왜 갑자기 그런 오해 하는지 모르겠는데……. 하, 사실 아직도 모르겠고. 그래서 어디서부터 해명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문서윤은 힐금 운전석을 살폈다. 우연재는 여전히 정면을 응시한 채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진 걸 보면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건 확실했다. 문서윤은 황급히 해명을 늘어놓았다.
“연애 안 해서 그래? 군대 가야 하는데 스무 살 되자마자 여자 친구 사귀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지금은 학교 다니니까 ……괜찮은 사람 만나면 하겠지.”
“그래서 앞으로 연애하겠다고?”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우연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차가 막 기숙사 앞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누구랑.”
우연재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거리가 이렇게 가까웠었나. 문서윤은 차마 눈을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해 눈꺼풀을 내리깔며 적당한 핑계를 둘러댔다.
“좋은 사람 만나면 하겠지.”
“으응, 좋은 사람…….”
우연재는 문서윤이 내뱉은 단어를 따라 하며 핸들을 감싼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내 잠겨 있던 문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내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문서윤은 자그마한 소음을 듣고 나서야 우연재가 저를 가둬 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오해 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라고. 너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네. ……간다.”
그는 제 행동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길 바라며 문을 열었다. 우연재가 재차 묻기 전에 부정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긴 했으나 불편한 대화 주제를 오래 끌고 갈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구차한 핑곗거리가 떨어진 참이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언제부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는지, 우연재와 눈이 마주쳤다. 어둠에 잠긴 시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거뭇거뭇했다.
“서윤아.”
나긋한 부름에 문서윤은 움찔 어깨를 떨었다.
“내가 지금까지 네 버릇 하나 눈치 못 챌 정도로 너한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평온을 가장하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만약 문서윤이 그렇게 알고 있으면 존나 섭섭할 것 같네?”
“…….”
“우리가 몇 년을 알았는데…….”
우연재가 언뜻 비웃음처럼 들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핸들을 쥔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 말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결국 문서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