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샤워 (29)화 (29/139)

29화

문서윤은 멍청하게 서서 제가 피우던 담배를 빨아들이고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숨을 들이마시며 살짝 팬 볼은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연기와 함께 제자리를 찾아갔다. 독한 담배라 그런지 그러잖아도 찌푸려진 눈썹이 한층 더 구겨지며 그 아래 자리한 눈매를 파충류처럼 가늘게 좁혀지도록 만들었다.

처음 담배를 피우는 사람치고는 제법 익숙해 보였다. 어쩌면 손가락 사이에 걸린 하얀 물체가 지나치게 잘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겠다.

문서윤이 정신을 차린 건 반쯤 내리깔린 시선과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뒤늦게야 우연재가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물고 있다는 사실이 의식됐다. 몇 모금 빨지 않았으니 축축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제 혀가 닿았던 물건이었다.

문서윤은 황망하게 우연재의 입술 사이에 자리하던 담배를 뺏어 들었다. 가로등이 어두워 그나마 다행이었다. 붉어진 피부를 어떻게든 감춰 줄 것이다.

“왜, 왜 남이 피우던 걸 피워.”

순식간에 담배를 빼앗긴 우연재가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문서윤은 그의 입술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생각나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새거 피울래?”

우연재가 진심으로 담배를 배우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당황한 나머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나 손은 이미 움직인 뒤였다. 남태은이 주고 간 담뱃갑을 만지작거리자 우연재가 그 물건을 앗아 갔다.

강압적이지도, 고압적이지도 않은, 그저 제 물건을 가져가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서윤아.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함부로 주워 먹으면 탈 나.”

우연재는 제 손에 들어온 담뱃갑을 구기며 주변을 훑어 내렸다. 매끈한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지나 싶더니 곧 무거운 발걸음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긴 그는 시커먼 구멍 안으로 담뱃갑을 툭, 던져 넣었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버리듯 가벼운 행동이었다.

“이딴 거 피워도 기분 좆같은 건 여전하네.”

축축한 담배 필터의 감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빨던 필터니 타액에 젖어 있는 게 당연했다. 우연재는 무의식적으로 혀를 세워 뺨 안쪽을 훑었다. 문서윤이 다른 새끼에게서 별 같잖은 걸 배워 왔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설마 이딴 식으로 나눠 피운 건 아니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서윤.”

우연재는 천천히 돌아섰다. 가라앉은 눈길이 문서윤이 앗아 간 담배를 향했다가 서서히 올라섰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문서윤은 입술을 핥았다. 알 수 없는 긴장감 때문에 목이 말랐다. 우연재가 피운, 제가 피웠던 담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없나 보네.”

다정한 목소리가 나긋하게 내려앉았다.

혹시 마음을 들켰나 싶어 덜컥 무서워졌다.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우연재에게 가장 많은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짝사랑이라 그에 관한 걱정부터 드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아니면 은근히 피하는 거 눈치챘나. 걸리는 게 워낙 많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서 있기만 하자 우연재가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나랑 권태기야?”

“권태기는 무슨 권태기야.”

“친구 사이에도 권태기 있어.”

문서윤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 끝을 떨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간신히 매달린 담배 끄트머리에서 불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다 하다…….”

시커먼 밤공기 위로 오점처럼 도드라진 불티가 가슴에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문서윤이 아버지 핑계 대면서까지 다른 새끼 만나려는 건 처음 봤네.”

갈 길을 잃고 팔랑거리던 속눈썹이 한 방향으로 고정됐다.

“왜. 거짓말한 거 모를 줄 알았어?”

당연하게도, 우연재를 향해서였다.

설마하니 본가에 들르지 않은 걸 들켰을 줄은 몰랐다. 한 가지를 숨기겠답시고 이런저런 거짓말을 붙인 터라 뺨이 홧홧했다. 문서윤은 망설임 끝에 솔직하게 물었다.

“언제 알았어?”

“본가에 안 들른 거? 아니면 교수님이 아니라 다른 새끼 만난 거?”

“아니, 다른 사람 만난 게 아니라……. 하, 본가 안 간 거.”

우연재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의 맥락을 모르니 정확히 정정하기가 어려웠다. 문서윤은 사태 파악부터 나섰다.

“당일에 알았는데. 연락 없길래 걱정돼서 교수님한테 전화드렸더니 문서윤이 안 왔다고 하시네.”

문서윤은 물 밑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처럼 입술만 벙긋거렸다. 우연재가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설마하니 아버지에게까지 연락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나눈 대화가 얼핏 머리를 스쳤다.

‘교수님은 만난 건 어떻게 됐는데. 연락 없어서 걱정했는데.’

알고 있었으면서 왜 떠봤지? 거짓말을 들켜 민망한 것과는 별개로 우연재가 그 일을 들춰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물어봤으면 또 모를까, 이제 와서.

“그러는 너는 그때 왜 모르는 척했는데.”

우연재는 물끄러미 문서윤을 응시했다. 본가에 가지 않은 걸 빤히 알면서도 떠보듯 물었던 일이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다.

“아픈 애한테 화낼 것 같아서.”

본가에 갔다는 거짓말을 들은 순간, 손끝에 달라붙던 찝찝한 불쾌함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만 했다.

“그런 걸로 나한테 거짓말할 줄은 몰랐는데…….”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었다. 거짓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그래서 더더욱 문서윤의 거짓말을 이대로 넘어가 주기가 어려웠다.

“끝까지 발뺌할 줄은 더 몰랐네?”

“발뺌한 게 아니라…….”

“그럼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비밀이랄 게 존재하지 않았다. 문서윤도 우연재도 서로를 가장 잘 알았다. 17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느닷없는 거짓말이 관계의 균열을 고하기 시작했다.

우연재는 말없이 서 있는 친구를 관찰하듯이 훑어 내렸다. 1년 6개월이라는 공백이 존재했으나, 문서윤은 예전 그대로였다. 여전히 하얗고, 여전히 순하고, 여전히 말갰다. 분명 제가 아는 문서윤인데, 관계에 미묘한 티끌이 느껴졌다.

일방적으로 추궁당하는 상황에서도 문서윤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우연재는 선한 느낌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그 속내를 파헤치기 위해 집중했다. 여태 덮어 두었던 거짓말의 이유를 찾아낼 심산이었다. 알게 되면 허탈할 정도로 별것 아닌 이유여야만 했다.

“선주 때문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자 친구였다. 친구의 여자 친구와 함께하는 자리가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낯가리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김현승처럼 넉살이 좋고 사교성이 뛰어난 건 아니어도 사람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편은 아니었다.

“뭐? 네 여자 친구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갑작스레 화두에 오른 김선주의 이름에 문서윤은 입을 벙긋거렸다. 무의식적인 부정에 가까웠다. 김선주가 편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만큼 비겁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연락을 핑계로 자리를 피한 건 어디까지나 우연재 때문이었다. 가슴을 찔러 대는 노골적인 혐오 발언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연인이니, 나름대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아무도 몰라줄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우연재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그녀 역시 좋은 사람일 테니 무례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을 혼자 간직할 마음이었다. 우연재 옆에 누군가가 설 때마다 질투를 느끼면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산산이 부서질 터였다. 문서윤은 자멸보다는 스스로를 눌러 죽이는 방향을 택했다. 단순히 우연재가 좋아하는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선주 때문은 아니겠지. 네가 내 여자 친구랑 노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문서윤은 뺨 안쪽을 약하게 깨물었다. 학창 시절 이야기였다. 여자 친구라 해도 사실상 조금 더 친한 이성 친구 정도의 느낌이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처럼 멋모르는 미성년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어엿한 성인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불현듯 우연재의 너른 침실에 놓여 있던 진주 귀걸이가 떠올랐다. 사선으로 깎인 뾰족한 침이 가슴에 틀어박힌 것처럼 숨통이 막혔다.

“그래서 더 모르겠네, 왜 그런 쓸데없는 거짓말을 했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문서윤은 이번만큼은 비겁하게 우연재에게 책임을 돌렸다. 어쩔 수 없었다. 너 때문에 그 자리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남은 건 이 방법뿐이었다.

“나한테 안 중요할 건 뭔데.”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듯, 우연재의 얼굴 위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교수님 핑계 대면서 빠져나갈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는데. 내가 널 몰라?”

신랄한 말투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비죽이 올라가는 입매를 따라 뺨이 꿈틀거렸다.

“사소한 일이 아니니까 교수님 핑계 댔겠지. 그런데 그게, 하…… 씨발, 나한테 안 중요하다고?”

우연재는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욕설을 짓씹었다. 문서윤에게 중요한 문제라면 제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같이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한 이유도, 끝까지 숨기려 애쓰는 이유도, 지금처럼 미묘하게 선을 긋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연애 문제인가. 숨길 만한 사적인 문제는 그뿐이었다.

그러나 문서윤은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여섯 살부터 함께해 왔으니, 저 몰래 연애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지난 1년 6개월을 제외하면.

눈꺼풀이 느릿하게 내리깔리며 검은 시선이 새하얀 손가락으로 향했다.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가 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피아노를 치던 손가락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불쾌한 물건이었다.

우연재는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모르는 1년 6개월.

다른 핑계도 아닌 아버지를 핑계로 빠져나간 자리.

그리고 만난 누군가.

담배를 가르친 남자.

잇새로 팽팽하게 힘이 실리며 턱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설마.

우연재는 지난 시간들을 되새김질했다. 그간 문서윤에게 접근하는 새끼들이 많기는 했다. 여자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라 그리 신경 쓰지 않았으나, 이상하게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별 같잖은 남자 새끼들이 많이 꼬였다.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어 접근하는 부류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번거롭기는 해도 우연재는 손수 그들을 쳐 냈다. 학교라는 자그마한 사회는 그리 크지 않아서 어린애 몇 명쯤이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쳐 낼 수 있었다.

문서윤이 군대라는 폐쇄적인 집단에 언질도 없이 홀랑 들어가 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득 문서윤에게 전화를 건 날이 떠올랐다.

‘응, 형.’

평소처럼 제가 아닌 다른 연상의 누군가가 걸었으리라 생각한 대답이었다.

‘너 없어도 돼.’

문서윤에게서 평생 들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발언이 그 뒤를 따랐다.

‘원래 친한 형이라 그래.’

아무리 친하다 해도, 성인 남자의 뺨을 쥐고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다.

‘지금 옆에서 자고 있으니까 전화하지 마라.’

두 사람의 관계에 남태은이라는 남자를 끼워 넣자 아귀가 착착 들어맞기 시작했다.

“문서윤.”

우연재는 울렁이는 속을 억누르며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솔직히 말해.”

완전히 싸늘해진 낯에 문서윤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우연재가 덜컥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몰라 무서웠다.

“너……. 씹, 남자 좋아해?”

손가락 사이에서 홀로 타들어 가던 담배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오물처럼 늘어지던 회색 담뱃재가 연약한 피부를 스치며 붉은 자국을 만들어 냈다. 경미한 화상이었다.

그러나 가슴에 내려앉은 불티는 경미한 화상으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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