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또 그 소리.”
문서윤은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꼬꼬마 시절부터 우연재가 말버릇처럼 하던 소리 중 하나였다. 문서윤 내 거잖아, 아니면 같이 살자.
“왜애. 너 들어온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도 환영하실걸.”
“너 사고 칠 때마다 내가 말리니까 그러시는 거겠지.”
“문서윤 순진하네.”
우연재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아무튼 진짜 괜찮아. 아버지도 놀라셨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어. 아직 화 덜 풀리신 것 같긴 하지만.”
“자세히 봐.”
우연재가 거리를 좁히며 턱을 낚아챘다. 밀어낼 힘도 없어 문서윤은 잠자코 제 뺨을 내주었다. 힐긋 살피자 집요하게 쳐다보는 눈동자가 보였다. 단정하게 뻗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일그러졌다.
“한 번만 더 손대면 바로 말해.”
“안 그러신다니까.”
“피아노는. 진짜 그만둬?”
문서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건반을 칠 수가 없었다. 악보에 맞춰 관성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기가 어려웠다.
감정 없는 곡조는 곧 종말이었다.
“이제 못 칠 것 같아. 피아노가 싫은 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이상해서.”
“그럼 학교는? 내년에 고등학교 가잖아, 우리.”
“예고 안 가고 일반고 가려고. 피아노 그만두는 대신 공부하기로 했어.”
아버지는 생각보다 순순히 저를 포기했다. 어머니를 잃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자식의 뺨을 때렸다는 죄책감일 수도 있고, 엉망이 된 선율을 듣고 가망성이 없다,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쓸모없는 자식으로 전락한 셈이었다.
피아노를 쳐서 두 분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기대는 저버렸다. 결국 자신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패배자였다.
몰려오는 자괴감에 문서윤은 괜히 손톱 끝을 만지작거렸다. 그 아래로 걸리적거리는 거스러미가 꼭 저처럼 느껴졌다. 억지로 떼어 내려는데 우연재가 하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얽어 왔다.
“…….”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마 외로웠던 모양이다. 미지근하게 변한 체온과 맞닿은 살결이 위로가 되는 걸 보면.
또다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울컥함이 몰려와 문서윤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나만 가는 거지. 너 미국 가잖아.”
“미국?”
우연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아아, 하고 말끝을 늘였다. 눈이 찡그려지자 그러잖아도 긴 눈꼬리가 한층 길게 그어졌다.
“미국 안 가, 나.”
“뭐? 왜?”
“문서윤이랑 같이 학교 다닐 건데.”
“장난하지 말고.”
우연재가 슬쩍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친구를 모르지는 않았다.
“뭐야, 언제 안 가기로 했는데?”
“조금 됐어.”
왜 말 안 했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난 한 달간 문서윤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름방학이 아니었다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설사 우연재가 유학 취소 소식을 알렸어도 그 어떤 반응도 내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피아노 아직 있어?”
우울한 기색을 읽어 낸 우연재가 손쉽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문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뿐, 갑자기 피아노가 꼴도 보기 싫어진 건 아니었다. 손때 묻은 피아노는 여태 옆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응. 엄마도 쓰던 거라 안 치울 것 같은데……. 왜?”
“피아노 쳐 줄게.”
“……너 피아노 못 치잖아.”
문서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연재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얼음찜질을 했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맞잡은 손은 눈꺼풀을 덮던 때와는 달리 조금도 서늘하지 않았다.
“존나 못 치는 거 구경해. 나는 문서윤 웃는 거 구경하게.”
우연재는 제집처럼 문서윤을 끌고 피아노 방으로 들어섰다.
일부러 방문을 꽉 닫아 둔 탓에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문서윤은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한 달간 오도카니 갇혀 있었을 피아노에 햇빛이라도 쐬어 주고 싶었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비 온다. 날씨 좋은데.”
문을 열자 토독 톡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푸른 하늘에서는 빗방울과 함께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여우비네.”
뒤로 다가온 우연재가 어깨에 턱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문서윤은 버릇처럼 우연재에게 안긴 채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했다. 여름의 쨍한 햇살 아래에서 약한 소나기가 흩뿌려졌다. 별 감흥이 없었던지 짧은 한숨과 함께 물러난 우연재가 등을 돌려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진짜 치게?”
문서윤은 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에어컨 바람이 없는 곳으로 오자 공기가 텁텁했지만, 머리와 등 뒤로 떨어지는 햇살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뭐 칠 건데?”
“젓가락 행진곡?”
“초등학생이야?”
“아니요. 열여섯 살인데요.”
키득거린 우연재가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젓가락 행진곡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곡이었다.
하나같이 엉망이라 어이가 없어 문서윤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입꼬리 근육이 굳어 있었는지 웃는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젓가락 행진곡 쳐.”
“왜, 나 피아노에 소질 있는 것 같은데.”
“진심이야?”
우연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구잡이로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다. 소리가 이리저리 튀어 다니며 이상한 불협화음을 잔뜩 만들어 냈지만 그래도 듣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선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치는 거 들어서 그런가.
문서윤은 창가에 기대어 서서 우연재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건반 위를 지나다니던 손가락이 천천히 멎어 들었다. 연주가 끝났음을 알리듯 우연재가 몸을 잔뜩 구긴 채 피아노에 얼굴을 기댔다. 건반이 뭉텅이로 짓눌리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쩐지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들어 문서윤은 또다시 잘게 웃었다.
“이제 웃네.”
피아노에 기댄 이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나 웃으라고 친 거야?”
“존나 못 치는 거 구경하라고 했잖아. 나는 문서윤 웃는 거 감상 좀 하게.”
순간 가슴 한구석이 꿈틀거렸다. 한 번도 쳐 보지 않은 악보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문서윤.”
“왜.”
문서윤은 괜히 짤막하게 답했다. 미지의 악보를 마주한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감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호기심, 미약한 두려움, 그와 함께 동반되는 흥분, 정복하고 싶다는 욕심.
“피아노 못 쳐도 세상 안 무너져.”
그리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설렘.
“이깟 게 뭐라고 우리 서윤이가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굴지.”
그제야 우연재가 저를 이곳으로 끌고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위로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닌 척했지만, 피아노 하나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열여섯의 문서윤을 구성하고 있던 건 피아노가 전부였다. 사고가 난 것도, 손을 못 쓰게 된 것도 아닌데, 고작 마음 하나 때문에 제 의지로 피아노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약함을 증명하는 꼴이 될까 봐.
그래서 문서윤은 괜찮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 자신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피아노 치는 문서윤 좋아하는 거 아닌데. 그냥 문서윤 좋아하는 거지.”
그래도, 어쩌면, 이제는 괜찮아질 것 같기도 했다. 피아노를 안 쳐도 좋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건 곧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비가 그친 듯했다. 환한 햇살이 순식간에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직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눈 부셨는지 우연재가 눈썹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항상 제가 앉아 있던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아.’
또다시 낯선 악보를 목도한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감각들이 거대하게,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닥쳤다. 그 안에 담긴 음표와 쉼표를 단 하나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음자리표는 물론 조표와 박자표, 그 근간이 되는 오선지까지 죄다 엉망인 악보였다.
‘큰일 났다.’
문서윤은 깨달았다. 불현듯, 그리고 기습적으로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안 되는데…….’
인정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순간이었다.
제가 늘 앉아 있던 그랜드 피아노에 저를 대신해 녹아든 우연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