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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그깟 약에 휩쓸리는 놈들은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다. 약만 그러할까. 뭐든 다 그 수준이겠지.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끝내야 하는 거다. 그 즐거움에 먹혀버리는 놈들은 그냥 그릇이 작은 거야.”
아, 네. 그러세요? 그래서 작은놈이 말한 것처럼 큰형은 대마초만 십오 년 넘게 피웠구나. 일편단심이냐고 묻던 작은놈의 말이 떠올라서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빠져들 줄은 몰랐지.”
큰형 역시도 뭔가를 떠올리는 듯, 피식거리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꽁초까지 타들어 간 대마초가 테이블 위에 짓이겨졌다.
“그랬다면 조금 더 일찍 알려줄걸. 그럼 재밌는 구경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했을 텐데 말이야. ……망가지는 것도 더 빨랐을 거고.”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큰형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삐죽 솟은 입매와 휘어진 눈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다.
“큰형이 알려준 거예요? 약이라도 대줬어요?”
뉘앙스가 그렇게 들리는데.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처럼 큰형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형제끼리 참 좋은 거 가르치셨네. 우애 깊은 형제야.
“심약한 사람은 의존성에 쉽게 휘둘리지. 약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사랑에 의존하고. 그게 바로 약하다는 증거인데 말이야.”
다른 건 맞는 말이지만 사랑은 글쎄. 긍정해야 하나 부정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늘어진 큰형이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릴 때는 사이 좋았다면서요.”
“제법 똘똘했던 놈이지. 착했고, 순했고, 멍청했고. 커가면서 다 달라졌는데 멍청한 건 달라지지 않더군.”
똘똘했는데 멍청하다는 건 어떤 놈이었다는 거야. 똘똘한데 멍청할 수가 있나. 큰형의 궤변에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둘이서 심오한 대화를 나누자고 나오더니 대마초를 피울 때부터 알아봤지. 술기운과 약 효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 뻔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사고 때문이었으려나. 뭐 그리 큰일이라고 벌벌 떨어대더니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어. 나야 좋은 일이지. 그대로 쭉 컸으면 꽤 괜찮은 놈이었을 뻔했거든. 지나고 생각한 거지만, 하늘은 역시 내 편이더군.”
과거를 회상하듯 그는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말을 흘렸다.
“……사고. 과거에 사람 죽였다는 거요? 자동차 사고. 배 실장이 덮어줬다면서요.”
내 물음에 큰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냐며 쳐다보는 시선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배 실장에게 들었어요.”
“너도 제법이군.”
“작은형이 하도 여기저기 나불거리고 다녀서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입단속 좀 시키라고 조언해드렸죠.”
설마 그런 마음이었겠냐며 코웃음이 돌아왔다. 사실 그런 마음이 아니긴 했지. 그래도 그 일로 배 실장이 경각심은 좀 느꼈을 테니, 나름 조언은 됐을 거 아냐. 양심의 가책 없이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있었죠? 그 사고 일어났던 날. 그때 큰형이 작은형 운전 가르쳐준다며 데리고 다녔잖아요.”
“많이 알고 있네, 우리 동생님. 기억이 돌아오다 못해 세세하게 기억이 나나 봐?”
응, 아니야. 그냥 너 떠본 거야.
오메가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서 물어본 거였는데, 역시나 그날 큰형도 같이 있었던 모양이다. 큰형이라는 놈도 그 사고 묻는 일에 동의를 했다는 거고.
아니, 동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묻어달라고 같이 빌었을지도 모르겠다. 사고를 낸 당사자는 아니지만 동승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나? 책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소식이 퍼지는 걸 큰형이 내켜 하지는 않았을 테니 입막음을 원했을 거다.
“기억할 머리는 없어도, 기억하는 사람은 주변에 있으니까. 그거 좀 듣는 건 일도 아니죠.”
“그래봤자 진짜 아는 놈이 있을까.”
가라앉은 시선으로 나를 빤히 응시하는 큰형은 자신만의 비밀에 취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평소와 비슷한 얼굴에 입매만 올라간 표정은 조금 괴기스럽기도 했다. 확실히 술과 약은 같이 할 게 못 되는 위험한 짓이다.
“지금 내가 알잖아요.”
“멍청한 새끼. 하기야 세상 사람 대부분이 다들 그렇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떠주는 것만 받아먹는 머저리 같은 놈들.”
와, 저 우월감에 찬 얼굴. 진짜 꼴 보기 싫다. 꼴 보기 싫은 거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더 싫다. 대체 저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간절히 알고 싶어졌다. 좀 부숴버리게.
“넌 알고 있나. 아니면 똑같은 머저리인가.”
사실이나 진실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지만 나를 보며 멍청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큰형의 꼴이 보기 싫어서 보란 듯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 검색 창에 적어 누르자 휴대폰 화면 가득 검색 내용이 떴다. 휴대폰의 화면을 돌려 보란 듯이 내밀었다.
“요즘은 검색 기능이 잘 되어있어서요.”
내 답이 정답은 아니었는지 형이 고개까지 내저으며 쯧쯧, 혀를 찼다. 아니, 왜? 요즘 휴대폰 검색으로 안 나오는 게 어디 있다고. 휴대폰 화면을 쭉 내리며 검색 결과를 살폈다.
사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진실. 거짓이 없는 사실.
비슷하면서도 오묘한 차이가 있는 단어였다. 거짓이 없는 사실. 그럼 거짓이 있는 사실도 존재한다는 건데, 거짓이 섞인 게 어떻게 사실이 될 수 있지. 미간을 문지르며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멍청한 놈.”
깔보듯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머리를 굴렸다.
거짓이 있는 사실. 거짓이 섞여 있는 사실. 사고에 관해 알려진 사실 속에 섞인 거짓.
뭘까. 뭐가 거짓일까.
처음엔 큰형이 뭔가 비밀이 있는 얼굴로 낄낄거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름 똑똑한 척을 해보려고 머리를 굴렸는데, 생각을 할수록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차 사고는 확실히 일어난 것.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것도 확실히 일어난 일. 차에 있던 사람은 큰형과 작은형, 두 사람.
“뭐 감춘 거 있어요? ……아버지나 배 실장도 모르는 거?”
“글쎄.”
입술을 올려 웃으며 쉽사리 답을 주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는 꼬락서니가 괘씸하다. 올라간 입매는 숨기고 있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데, 내 반응을 살피는 것이 즐거워 애써 다물고 있는 모양새였다.
말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며 무시하고 일어나도 되지만, 내 부모님 사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결국 내가 져야 했다.
“뭘 속인 거예요?”
“글쎄, 뭘 속였을까. 내가 왜 속여야 했을까.”
내 반응을 관찰하는 눈동자에 즐거움이 어렸다. 기괴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머리를 굴리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끄집어냈다.
“운전…… 큰형이 했어요?”
“…….”
“작은형은 자기가 한 거라고 말하던데.”
내 말에 큰형의 입가에 스민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 저 뱀 같은 새끼. 제가 생각하는 것은 입에 내지 않고, 기어이 상대방의 입에서 원하는 답을 끌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정신을 반쯤 놓고 있어도 여전한 모양이다.
“작은형이 대신 뒤집어써줬어요? ……아니네. 작은형 성격에 그럴 리 없고, ……큰형이 덮어씌운 건가.”
큰형이 그러하듯, 나 역시 큰형의 표정을 살피며 이런저런 가설을 내뱉었다. 그는 내 말에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호오,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며, 마치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반응을 보였다.
“큰형이었네요. 그때 사고 내고 사람 죽인 거.”
탁, 하고 맥이 풀렸다. 예상치도 않은 타이밍에 벽을 마주한 기분, 아니, 마주한 벽에 뚫린 구멍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걸…… 어떻게 아무도 몰랐어요?”
“완전히 멍청한 놈은 아니었나 보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야.”
“어떻게 작은형까지 속였어?”
“그놈이 완전히 곯아있었거든. 술이랑 대마초에 진탕이 되어서 말이야. 딱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아니, 술도 약도 처음이어서 더 정신을 못 차렸던 모양이다. 해롱거리는 상태라 바꿔치기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
“뭘 바꿔치기해요?”
“운전자.”
“…….”
놀란 내 표정의 변화를 지켜보며 큰형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마치 내 반응이 기꺼워죽겠다는 듯. 그래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별일도 아닌데 하얗게 질려서는. 어차피 깨끗하게 처리될 텐데 말이야. 저 혼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구석에 처박혀있더니 그 뒤로 완전히 망나니처럼 굴기 시작했지. 아버지도 이해하는 듯했지만, 서서히 포기하시더군. 웃기지? 필요도 없는 죄책감으로 결국 제 인생을 망친 놈이.”
“별일도 아닌데, 왜…… 작은형에게 뒤집어씌웠어요?”
“내 커리어에 먼지를 묻힐 수는 없잖아.”
“…….”
사람이 죽은 사고가 별일로 취급되지 못했다. 별일도 아닌 그것은 기껏해야 먼지와도 같았다.
무릎 위에 놓인 손이 떨려 주먹을 쥐었다. 떨림은 팔 전체로 번져 금방이라도 몸 전체에 발작이 올 것 같았다.
큰형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콧속으로 들어온 공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꽉 막힌 숨통은 도통 트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걸 완전범죄라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