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바이스-93화 (93/170)

93

얇은 천 너머로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던 놈이 불끈거리며 요동쳤다. 화를 내는 얼굴과는 다르게 아래에 달린 놈은 언제나 나를 반긴다. 솔직한 반응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몸으로 때우겠다는 심보로군.”

“아닌데. 화를 내든 밥을 먹든 뭘 하든 일단 먼저 안아보자는 건데. 일주일 넘게 못 봤잖아.”

“못 본 게 누구 탓인데.”

“내 탓인 거 아는데. ……나 그냥 갈까?”

권이강에게 짜증이 난 건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화를 내고 있으니까 지금은 볼 타이밍이 아닌가 싶을 뿐이지. 어느 정도는 나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권이강이 이렇게 퉁명스러운 태도로 응수하는 것도 부당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선 얘기 잠잠해질 때까지 가출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호텔을 알아봐야겠다. 설마 아버지가 찾아와 멱살 잡아 끌어내지는 않겠지. 이번에는 정말 카드를 정지시킬지도 모르니까 미리 선불로 긁어놔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단단한 근육을 더듬는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힐끗, 눈치를 보듯 시선을 움직이자 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권이강이 내 뒷목을 잡아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또 이렇게 연락 끊고 잠수 탈래?”

“미리 연락할게.”

“뭘, 잠수 타겠다고 예고할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마를 손가락이 아프게 때렸다. 연락할 거라고 대답했는데 왜 맞아야 해? 이마를 문지르며 억울한 시선을 보냈지만, 권이강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화난 대상이 나도 아닌데, 나한테서까지 잠수를 타겠다고?”

“너한테서 잠수를 타겠다는 게 아니라……. 가끔은 나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다음부터 그럴 일 있으면 내 눈앞에서 생각할 시간을 갖든지. 너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도 안 되면 내가 멀쩡할 거라고 생각해?”

“……나 걱정했어?”

“말이라고.”

이럴 때면 정말 권이강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싶다.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 한마디에서도 나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나 오늘 마사지 받고 왔는데. 금가루 뿌린 꿀도 발라줬어.”

커다란 손을 잡아 가슴 위에 올려놓으며 피부를 문지르게 했다. 약간의 땀이 밴 손바닥이 가슴 한쪽을 덮으며 온기를 일으켰다.

“어때? 부드러워?”

“……그래.”

“핥아볼래? 꿀맛 날 것 같지 않아?”

물론 몸에 바른 꿀은 샤워로 씻겨 나간 지 오래였지만, 눈 끝을 접어 웃으며 묘한 기대감을 담아 그에게 물었다. 허벅지에 걸쳐진 바지를 벗은 권이강이 내 몸을 들어 몇 걸음 떨어진 침대에 눕혔다.

∞ ∞ ∞

“흐으…… 으…… 그만 좀…….”

침대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발광을 한 탓에 이불은 침대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다섯 번이 넘어가는 사정에 아랫도리에서는 맑은 물만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삽입도 하기 전에 물고 빠는 것만으로 사람 진을 빼놓더니, 삽입한 후에는 지치지도 않는지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연결된 상태였다. 더 이상은 발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라 권이강의 어깨에 매달려 앓는 소리를 흘렸다.

“좀만, 조금만 쉬고……. 응?”

“연락 끊고 잠수 탔을 때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타박을 하듯 여전히 단단한 성기가 내벽을 찔러 올렸다. 구멍은 힘을 잃고 풀어진 지 오래고, 내구력을 자랑하던 내벽도 정액에 절어 흐물거렸다. 안을 찌를 때마다 허리만 움찔움찔 떨어댈 뿐, 다른 반응을 보일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읏, 으응…… 힘들…… 아아…….”

벌어진 입술을 타고 타액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혀로 핥아 올리며 권이강이 다정하게 뺨을 맞붙여 문질렀다.

“수경아, 나한테서 숨지 마.”

“흐응…… 이제 그만……. 힘들, 하앙, 앗…….”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

“으응, 그만. ……응.”

다정하게 묻는 와중에도 아래를 들쑤시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얼굴 위를 누비는 입술과 속삭이는 목소리는 상냥한데, 다리를 벌리고 파고드는 아랫도리는 여전히 난폭하기만 했다.

두어 차례 싸놓은 정액으로 배가 빵빵한데도 더 많은 씨를 뿌리겠다고 팽팽하게 부푼 성기가 날뛰고 있었다. 뜨겁고 단단한 물건이 안을 찌를 때마다 젖은 입구가 마찰되며 쿨쩍쿨쩍 소리를 냈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해. 숨지 않겠다고.”

“안 숨어. 흐읏…… 안 도망가……. 응? 안 가…….”

“다음에 또 숨거나 도망가면 그땐 죽는 거야. 그럴 각오로 숨어.”

다정한 목소리로 내뱉는 살벌한 경고에 흐으, 하고 울음을 흘렸다. 투정을 부리듯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문지르자, 찔끔찔끔 흘린 눈물로 젖은 눈가가 쓰라렸다.

“이제 그만 싸고 쉴까? 수경아, 쉬고 싶어?”

“흐응, 응. 쉬어…… 응? 쉬어.”

제발 좀 쉬게 해달라며 권이강의 목을 끌어당겨 입술 주변에 꾹꾹 입을 맞췄다. 아양을 부리는 것처럼 피부를 문지르고 콧소리를 흘리자, 권이강이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눌러 붙였다.

“그래, 쉬자. 이번에 싸고 쉬자.”

벌어진 다리 사이로 성기를 깊게 밀어 넣고 권이강이 상냥하게 웃었다.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되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싫어. 그거 말고……. 그거 말고 그냥 싸. 응?”

“마지막이야. 마지막인데 싫어? 그냥 계속할까?”

선택권을 주는 척 물었지만, 아래를 채운 성기가 서서히 부풀고 있었다. 힘없이 풀어진 내벽을 조금씩 압박하며 둥글게 부푼 성기는 찔끔찔끔 정액이 흘러내리던 구멍을 콱 틀어막았다.

“아파, 힘들어.”

훌쩍, 코를 마시며 울음을 흘리자 관자놀이를 입술로 문지르며 권이강이 눈을 휘어 웃었다.

“이제 안 아플 텐데. 우리 수경이, 이거 좋아하잖아.”

그렇지? 달콤한 물음과 함께 부푼 성기가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물거리는 내벽을 누르며 공처럼 부푼 성기가 쾌감점을 짓눌러댔다.

“하앗, 아…… 아아…….”

“마지막으로 싸는 거니까. 우리 수경이, 그거 잘 받아서 예쁜 아기 만들어야지. 잘할 수 있지?”

눈앞이 번뜩거리는 자극에 귓가로 흘러들어온 말소리가 반대편 귀로 흘러나갔다. 단어가 되지 못한 신음을 내뱉으며 구멍을 움찔거렸다.

압박하듯 밀어붙이며 내벽을 자극하던 성기가 뜨거운 액을 콸콸 쏟아냈다. 더부룩할 정도로 배를 채우는 것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내벽을 적시는 감각에 몸을 파들거리자 권이강이 사정하지 못하고 떨고 있는 내 성기를 손에 쥐었다. 더는 쏟아낼 것도 없어 맑은 물만 찔끔거리던 성기는 한껏 예민해져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아플 정도였다.

“좋아, 수경아?”

“아파, 아…… 아파.”

“싸면 괜찮아질 거야. 부드럽게 문질러줄까?”

정액으로 젖은 손이 작은 성기를 쥐고 슬금슬금 문질러댔다. 사정을 한다는 느낌도 없이 톡, 하고 터져 흐르는 것은 거의 물에 가까웠다. 권이강의 팔뚝에 매달려 몸만 바들바들 떨다가 힘없이 침대로 쓰러졌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못 해. 진짜 죽을 거야. 권이강이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게 분명했다. 이런 걸 복상사라고 하나. 섹스하다 왜 죽나 했는데 진이 빠져 죽나 보다.

사정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아래를 틀어막고 있는 권이강을 원망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함께 뒹굴었는데도 나와는 달리 지친 기색 없이 너무나도 멀쩡한 얼굴에 원망이 솟구쳤다.

몇 시간을 계속 세우고 쑤시고 싸고 또 세우고 쑤시고 싸고. 인간일 리가 없다.

“괴물.”

낮게 중얼거린 말에 권이강이 웃음을 터뜨렸다. 부푼 부분이 서서히 줄어들며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늘어진 내벽 틈새로 찔끔 빠져나왔다.

“나 기저귀 차고 다니면 기저귓값 대줘.”

마흔도 되기 전에 똥을 지리면 어쩌지. 늘어진 장도 수술로 고칠 수 있을까.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

몇 시간 동안 안을 채우고 있던 성기가 드디어 빠져나갔다. 늘어진 구멍으로 휑한 바람이 불었다. 진짜 안 다물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걱정 마. 그럴 일 없으니까.”

“남의 구멍이라고 걱정 안 하지?”

“그런 일 생기면 평생 기저귓값도 대주고 기저귀도 갈아줄게.”

어쩜 대꾸하는 말도 저렇게 얄미울 수 있을까. 원망을 담아 노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움직여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짓무른 눈가가 쓰라렸다.

“너무해, 진짜.”

왠지 서러워져 또다시 찔끔 눈물이 솟았다. 내 구멍이 너무 불쌍했다.

“수경아, 싫었어? 다음에는 하지 말까.”

진심이라고는 한 톨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권이강이 물었다. 그래서 더 얄밉고 짜증이 났다. 발로 까고 싶은데 늘어진 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더욱더 서러워졌다.

“적당히 해, 적당히. 이게 뭐야, 진짜. 내 구멍의 안위를 좀 생각해주면 안 돼? 한 번씩 하든가. 아니면 쉬는 시간을 좀 갖든가. 니 구멍 아니라고 막 혹사시켜도 돼?”

“알았어, 알았어.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쉬는 시간 줄게. 울지 마.”

달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지?

권이강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힘없는 손에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며 권이강이 아파, 하고 엄살을 부렸다.

“계속 이렇게 할 거면 나 갈 거야.”

“일주일 못 봤던 탓에 그랬어. 미안하다. 물 가져다줄까? 조금 쉬고 씻겨줄게. 그리고 푹 자자.”

“나 집 나왔는데. 가출했는데. ……그냥 집에 들어갈 거야. 너랑 있다가 내가 먼저 죽겠어.”

내 우는소리에 토닥토닥 가슴을 쓸어주던 권이강이 “왜?” 하고 물었다.

“가출이 무슨 말이야. 내가 잘못 들었나?”

“당장 토요일에 선 잡아놨다고 나가라잖아. 그래서 가출했어. 그런데 넌 이렇게 괴롭히기만 하고.”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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