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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 내가 눈을 떠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다정했고, 솔직했고, 편했고, 나를 인간으로 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 아까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널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 그래서 말해주는 거야. 나한테서 도망가도 된다고.”
제발 도망가줘. 이렇게 끌어안고 나누는 온기가 좋지만, 그래도 멀쩡한 놈 인생까지 조지긴 싫어. 가질 것 다 가진 놈을 옆에 뒀다가 불똥 튀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다, 내가 권이강을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중하게 여기고, 각별하게 여기고 있다. 그저 몸만 섞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깊게 교감하고 싶고, 보듬어 안아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어졌다. 나란 놈에게서.
“헤어져야겠다, 너랑 나. 그만 만나야겠어.”
“말하는 주제가 너무 널뛰어서 혼란스럽다는 말을 내가 했었나.”
“들었던 것 같네.”
“사람 하나 죽여야겠다로 시작해서 헤어져야겠다는 결론은 어떻게 나온 거지? 화내기 전에 중간 과정을 좀 듣고 싶은데.”
들은 농담이 너무 썰렁해서 웃고 싶지도 않다는 얼굴로 대꾸하는 권이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랑 같이 있는 게 너한테 안 좋을 것 같아서. 널 지켜주고 싶거든. 널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서 헤어지자는 거군.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진짜야. 살인자 애인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안 되잖아. 나중에 뉴스에서 내 얼굴 보고 충격받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차수경 씨와 무슨 관계입니까, 그의 범죄에 동참하셨습니까? 뭐 이런 질문 받으면 어떻게 해?”
넌 농담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너무나도 진심이거든. 그러니까 지금 웃으면서 보내줄 때 그냥 가. 나중에 얽혀서 후회하기 전에.
“농담을 하는 것치고는 묘하게 구체적인 걱정인데…… 진심이군. 그렇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던 권이강이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그는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손끝으로 뺨을 문질렀다. 광대 위의 점을 지그시 눌렀다가 눈가를 쓸어보기도 하고 입술을 눌렀다 떼기도 했다. 고개를 숙인 그가 부드럽게 입술을 빨았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촉,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누군데. 죽이고 싶은 사람.”
“넌 모르는 게 좋아.”
“말해. 내가 죽여줄 테니. 너 연관될 일 없이, 의심받을 일도 없이 깔끔하게 없애줄 테니까.”
이제껏 권이강이 했던 말 중에 가장 웃긴 농담이다. 농담인데 슬프게도 위안이 되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울음을 참았다. 왠지 모르게 서럽고 서글펐다.
“약 기운이 안 떨어졌나 봐.”
내 중얼거림에 그는 조용히 내 뒷머리를 쓸어주기만 했다.
“즐거웠다가 화가 났다가, 네가 너무 사랑스럽다가, ……갑자기 너무 슬퍼졌어. 전혀 연관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
“네가 좋다, 차수경. 네가 아주아주 많이 좋아.”
내 귓가에 바짝 입술을 붙이고 권이강이 속삭였다. 그의 입술 틈으로 흘러나오는 숨결이 귓가를 뜨겁게 적셨다. 이게 그의 진심이라면, 이상할 정도로 슬픈 고백이었다.
“이 이상으로 또 누굴 좋아할 수 없을 것처럼. 네가 내 마지막인 것처럼.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소유하고 싶을 정도로. 나만 바라보게 하고, 내 씨를 쏟아부어 내 아이를 낳게 하고, 평생 내 옆에 있게 하고 싶을 정도로.”
어깨에 기대고 있는 내 얼굴을 들어 젖은 눈가를 입술로 문지르며 그가 속삭였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쳐도 좋을 정도로.”
“넌 나를 몰라.”
“너도 나를 모르지.”
오늘따라 권이강의 당당함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사랑스럽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가슴 속에 작게 피어올랐던 그에 대한 감정이 확신으로 드러나는 순간,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모르겠어. 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지금처럼 내 옆에만 있으면 돼. 내 옆에서 나만 보고, 나에게 의지하고, 내 뒤에 숨어서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럴 수는 없어.”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 억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차수경과 몸이 바뀐 이유는 차동후 때문일지도 몰라. 그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릴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차수경이든, 죽은 내 부모든, 아니면 신이든 내게 시간을 준 것일 수도 있잖아. 그걸 모른 척 넘길 수는 없어. 네가 소중하지만, 네가 너무 좋지만, 그렇다고 너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
“네가 너무 좋아. 널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민재희였을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 처음 느끼는 감정. 낯설고 어색하지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감정. 그 감정의 대상이 너라서 감사한다.
몸을 일으켜 권이강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단정하고 반듯한 얼굴을 향해 고개를 숙여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짙은 눈썹을 훑고 조각상처럼 완벽한 콧날을 따라 입술을 내렸다.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그의 배 위로 옮겨 앉았다.
시선을 내려 그를 응시하며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던 욕의를 끌어 내렸다. 매듭이 풀어진 욕의는 한 번의 움직임으로 떨어져 나갔고, 나는 알몸이 되어 권이강의 몸을 끌어안았다.
“내가 위에서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
“네가 원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네 옷을 벗기고, 널 핥고, 널 먹어치우고 싶어.”
“오늘 처음으로 의견이 통일된 것 같은데.”
작게 코를 울려 웃으며 내 말을 증명하고자 권이강의 옷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셔츠를 벗기고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려 알몸으로 만든 뒤, 발기한 상태인지 원래 그런 상태인지 불룩한 성기에 엉덩이를 느리게 문질렀다.
“알파는 다 너같이 커?”
“비교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놈들을 붙잡고 확인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말이야.”
“나 그렇게 파렴치한 아니거든.”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궁금해하지도 못하나.
별것을 하지 않았는데 안쪽이 젖는 것이 느껴졌다. 오메가란 참 특이한 인종이란 말이야. 남자인데도 어떻게 뒤가 젖을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별것을 하지 않았는데 흥분한 것은 밑에 깔린 인간도 마찬가지인지, 슬슬 문지르고 있던 성기가 한껏 발기해 엉덩이를 쿡쿡 찔러댔다.
기둥을 붙잡고 살짝 허리를 들어 구멍에 성기 끝을 가져다 댔다. 구멍의 주름이 벌어지며 천천히 귀두가 빨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뻑뻑하고 빠듯한 감각에 숨을 몰아쉬면서도 꾸역꾸역 밀어 넣어 기어코 권이강의 사타구니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네 좆을 기어코 삼키는 내 엉덩이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네 입이 더 존경스러운데.”
무릎에서 허벅지로 올라와 엉덩이를 잡아 쥐는 손을 꽉 붙잡아 눌렀다.
“그냥 만지기만 해. 움직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허리를 구부려 손으로 침대를 짚고 권이강과 시선을 마주했다. 뜨겁게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좋았다. 오롯이 내게 집중하고, 그의 눈에 나만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를 흥분이 치솟았다.
“네가 날 보는 게 좋아. 흥분돼.”
입술을 마주하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느리게 엉덩이를 움직여 삼키고 있던 성기를 끄트머리까지 잡아 뺐다가 주저앉듯이 하체를 붙여 다시 욕심껏 삼켰다. 엉덩이를 움직일 때마다 마주한 그의 가슴이 움찔거리며 쾌감에 반응을 보였다.
“이런 자세도 나쁘지 않네. 내가 널 범하는 것 같잖아.”
내 중얼거림에 권이강이 낮게 웃었다. 엉덩이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떡 반죽하듯 주무르며 손가락으로 슬쩍슬쩍 이어진 부분을 문지른다. 팽팽하게 벌어져 있는 주름이 반응하듯 오물거리며 성기를 조여댔다.
“아아, ……하지 마. 내가 할 거라니까…… 흐으…….”
“난 그저 만지기만 하고 있는데. 만지지도 말라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거긴 하지…… 으응, ……하지 마.”
“어딜 만지지 말라고는 안 했던 것 같아서 말이야.”
일부러 이러는 것이 틀림없다. 권이강의 가슴에 엎어져 나는 무력하게 신음을 흘렸다. 원을 그리듯 둥글게 움직이고 있는 허리를 콱 붙잡은 권이강이 순식간에 몸을 뒤집었다. 침대로 등을 붙이고 눕게 된 내가 놀라 올려다보자, 그는 옅은 미소를 띠며 내 뺨에 입술을 붙였다.
“네 속셈이 너무 뻔하게 보여서. 이건 뭐, 이별 섹스쯤 되나?”
“……귀신같은 새끼.”
“방금 전에 헤어지네 어쩌네 말해놓고 몸을 붙여오면, 눈 뒤집혀서 그냥 쑤셔 박는 단순한 놈으로 보였나 보군.”
알고 있으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척 장단을 맞춰줬나 보다. 무엇을 하든 권이강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 좋게 헤어져주면 얼마나 좋아. 마지막을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헤어져서 더는 연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넌 개새끼야.”
“다정해서 내가 좋다며.”
“다정한 척하는데, 내 뜻대로 해주는 건 하나도 없어.”
“아닐걸. 네가 싫어하는 것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고.”
아래를 밀어 올리며 권이강이 강조하듯 말했다. 몽둥이처럼 굵은 물건이 힘주어 파고들자 안쪽이 들쑤셔지며 요동쳤다. 반박을 하고 싶은데 내벽에서 전해지는 자극에 몸이 굳었다.
“흐으, 으응…… 나쁜 새끼…… 하으읏…….”
“네가 욕하는 것도 나쁘지 않군. 흥분돼.”
“변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