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바이스-58화 (58/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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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올라오는 길에 보이기에 그냥 당당히 봤는데.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기분 나쁘게 말을 하는 건 큰놈이나 작은놈이나 똑같다. 그럼에도 속내를 감추고 멋쩍게 웃기만 하자, 잠시 나를 보고 있던 작은형이 갑자기 웃으며 다가왔다.

“아, 진짜 좆같은 인간이라니까. 그렇지?”

“항상 그렇죠.”

“오늘따라 마음에 든다?”

딱히 작은형의 마음에 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한 화풀이를 하며 주먹을 날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기분이다. 따라와.”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거칠게 끌어당기며 작은형이 말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든 같이 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내 의사는 상관없다는 듯 질질 끌어 조금 전 내가 올라왔던 정원 계단을 내려간다.

“저 지금 막 집에 왔는데요. 들어가 봐야…….”

“모처럼 마음에 들었는데, 좆같이 굴지 마. 맞아야 말을 듣는 짐승 새끼는 아니지?”

말을 안 들으면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작은형의 뒤를 따랐다.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까지 끌어들여 일만 안 저질렀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대문 밖에 작은형의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끌고 나오는 작은형을 보고 그의 기사 겸 수행원인 사내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막내 도련님과 동행하실 생각입니까?”

“어, 이게 모처럼 마음에 드는 짓을 해서. 좋은 경험시켜주려고.”

“막내 도련님은 두고 가시는 게…….”

“너까지 나 무시하냐? 가뜩이나 기분도 좆같은데 너까지 날 긁어?”

확실히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놈이다. 걱정해서 해주는 말을 저렇게까지 곡해해서 듣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 감상과 달리, 어딜 가는데 날 두고 가는 걸 추천하는지 점점 더 걱정이 커져갔다.

“죄송합니다. 타시죠.”

한두 번의 일이 아닌 듯, 그의 수행원은 뒷문을 열어 나와 작은형을 태웠다. 중간의 자리를 비우고 나란히 앉아 불편한 마음에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기서 다시 어딜 가냐고 물어봤자, 대답은커녕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분명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좆같냐. 아버지는 형만 오냐오냐하고, 형이라는 놈은 진짜 저가 잘난 줄 알고. 첫째라는 것만 빼면, 저가 나보다 잘난 게 뭐냐고. 씨발, 좆같은 세상.”

세상이 좆같이 구는 게 아니라, 작은놈이 세상을 향해 좆같이 구는 것 같은데. 세계 평화를 위해서 없어져야 할 놈이 있다면 아마 작은놈일 거다.

“알파 하나 홀려서 팔자 고친 네 아비는 아무 생각이 없을 거고. 너도 네 아비랑 똑같은 짓을 하겠지. 알파한테 다리 벌려주고 돈이나 받아 쓰는 남창 같은 놈들.”

오메가 아버지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알파 아버지와 결혼해 대단한 돈이라도 받았나. 뭐 얼마나 거창한 것을 해줬기에 팔자 고쳤다는 소리까지 듣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자신이 돈을 대준 것도 아니고, 작은놈 역시 똑같이 알파 아버지의 돈을 축내는 팔자인 걸 떠올리면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어처구니없는 마음을 감추며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의 액정을 살폈다. 이경진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네, 이 기사님.”

―도련님. 어디 계십니까? 혹시 아직 정원에 계십니까?

“아뇨, 올라가다 작은형을 만났어요. 작은형이 어딜 가는 길이었나 본데, 저를 데려가주신다네요. 그래서 작은형 차 타고 이동 중이에요.”

―아……. 집에 들어오셨을 시간인데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대문 들어가는 걸 뻔히 봐놓고 걱정을 왜 해. 우리 집 정원에서 납치당할 일도 없는데. 하지만 이경진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응,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작은형이랑 같이 이동할 것 같으니까, 이 기사님은 그만 퇴근해요.”

―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시는 거 잊지 마십시오.

“이 기사님은 걱정이 너무 과해. 작은형이랑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연락 안 할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둘째 도련님과 따로 오시게 되거나 하면…….

“그럴 일 없다니까. 이 기사님이 정신 놓고 잠들어도 세상은 안 무너져요. 걱정 말아요.”

―세상은 안 지켜도 되지만, 도련님은 지켜야 하는 게 제 일입니다.

뭐지, 이 멘트는. 농담조가 아니라 진지하게 말해서 더 웃겼다.

“지금 좀 웃겼는데. 아무튼 별일 없을 거니까 쉬세요. 내일 봐요.”

통화를 끝내자 옆에 있던 작은형이 쯧쯧 혀를 찼다.

“부리는 놈한테 살살거리기는. 누가 제 아비 자식 아니랄까 봐 기사한테도 꼬리를 치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거지.”

“꼬리 치는 게 아니라, 이 기사님 퇴근하라고 한 건데.”

“때 되면 저 알아서 다 퇴근해. 돈 받고 일하는 놈들은 붙잡아도 안 남는데 걱정하는 척하기는. 왜? 그 새끼한테 대줬냐? 잘 쑤셔주디?”

“그거 성희롱인데요.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배려하는 거잖아요.”

내 말에 작은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 대 인간? 배려? 웃기는 소리. 우리가 주는 돈을 받고 그놈들은 시키는 걸 하는 거지. 물라면 물고, 기라면 기고, 엎드리라면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는 개새끼. 그게 그놈들이야. 개새끼한테 인간 대우를 해주면 안 돼. 그럼 정말 지들이 사람인 줄 알거든.”

와, 개새끼는 그냥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은데? 짐승이라서 그런가,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주변 사람도 다 저 같은 개인 줄 안다.

작은형의 수행기사가 바로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은가. 사람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을까. 작은형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경악스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정장 재킷의 안쪽 주머니에서 동그랗고 작은 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살짝 손등에 덜어낸 것은 하얀 가루였다.

이 자식은 왜 갑자기 용각산을 꺼내고 있어.

의아한 생각을 하기 무섭게, 작은형이 손등에 던 가루 위에 코를 대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루가 순식간에 콧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손등과 코 주변으로 희미한 흔적을 남겼다.

“아…….”

간지러운지 코를 몇 번 문지른 작은형이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 지금 뭘 본 거지. 뭔가 엄청난 일이 눈앞에서 지나간 것 같은데.

입을 쩍 벌리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눈만 치켜떠 나를 본 작은형이 왜? 하고 물었다.

“너도 하고 싶냐?”

“……아뇨.”

그게 뭔데요, 라는 물음도 나오지 않았다. 들으면 안 될 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 슬며시 시선을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작은형은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두는 게 여러모로 좋을 성싶었다.

차는 어두운 도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작은형의 허밍이 고요한 차 내부에 흘렀다. 지독히도 음치인 탓에 고막이 아파왔다.

“기사님, 오래 가야 해요?”

“이십 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차는 서울을 빠져나가 어느새 광주시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 밤에 어딜 가는 걸까. 그나마 경기도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지만, 점점 인가가 드문 산 쪽으로 향하는 차에 불안감이 더해졌다.

“어디 가는 건데요?”

작은형의 눈치를 보며 운전석의 헤드 레스트에 바짝 붙어 속삭이듯 물었다.

“작은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도련님께서 가끔 쉬러 가시는 곳입니다.”

잘난 재벌 아들이 해외도 아니고, 으리으리한 호텔도 아니고, 겨우 광주에 있는 작은 별장으로 쉬러 간다고? 그것도 이 밤중에 갑자기?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안심해. 좋은 경험시켜주러 가는 거라니까. 네 기사 놈이랑 붙어먹을 때보다 더 좋을 거다. 오줌 지리지 않게 마음 준비나 해. 워밍업으로 너도 빨래?”

용각산 통을 내게 내밀며 작은형이 낄낄거렸다. 용각산을 정중히 거절하며, 아무래도 작은형과의 동행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작은형과 함께 올 때부터 좋은 일일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하긴 했다.

어두운 산길로 접어든 차가 덜컹덜컹 흔들리더니 이내 불빛이 새어 나오는 한 채의 집 앞에 섰다. 또 다른 방문자가 있는지 그곳에는 몇 대의 차가 이미 도착해 주차된 상태였다.

“또 누구 오는 거예요? 전 얘기도 안 하고 온 거라서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게 뭐? 내가 데려오겠다는데 어떤 씨발놈이 뭐라고 할 건데. 좆 까라고 해.”

한층 기분이 고조된 작은형이 빽 소리를 질렀다. 차가 멈추고 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지옥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먼저 내려 휘청휘청 걸어가는 작은형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의 수행기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까 죄송했어요.”

“무엇을 말씀입니까.”

“아까 작은형이 한 말이요. 형이 좀…… 평소에도 말을 과격하게 하잖아요. 아마 진심은 아니었을 거예요.”

대부분의 수행기사들이 그러하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사내가 희미하게 입 끝을 올려 웃었다.

“둘째 도련님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압니다. 아마도 진심이셨을 테지만, 막내 도련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일주일만 같이 지내도 저 새끼 성질머리를 모를 수가 없는데, 꽤 오랫동안 옆에서 지내온 사내라면 나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거다. 작은놈 성질에 할 말 못 할 말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마구 지껄였을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아무리 월급을 준다고 해도 매일 운전해주고 따라다니고, 그러면서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말이 아닐 거다. 작은형의 옆에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내는 위로받을 자격이 있었다.

“왜 빨리 안 오고……. 뭐야, 내 기사한테까지 꼬리 치고 있어? 이거 무슨 기사 킬러야? 왜? 붙어먹고 싶어서 구멍이 근질근질하냐? 재경아, 너 쟤 한번 따먹어볼래?”

아, 이 쓰레기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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