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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직원복을 입은 남자가 쩔쩔매며 어딘가로 연락을 하는 사이 가만히 서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몇 가지 짐작되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녀석의 형이라고 생각한 남자가 사실은 녀석의 또 다른 부모일 수도 있다는 게 첫 번째였고. 녀석의 부모가 둘 다 남자라는 것에 두 번째, 그럼 녀석을 낳은 게 저 남자가 된다는 것이 세 번째, 마지막으로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시체’라는 단어였다.
나는 녀석이 살아서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육교에서 떨어졌고, 심지어 나는 떨어질 때 달려오는 차에 부딪히기까지 했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죽어버렸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체라니.
“들어오시죠.”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었는지 직원은 커다란 철문 앞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활짝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 전보다 공기가 더 서늘해졌다. 나는 한눈에 이곳이 시체 안치소임을 알아차렸다.
직원은 대형 냉장고처럼 칸칸이 달린 문 중에 하나를 열어 안에 있던 것을 쭉 끌어당겼다. 평평한 철제 테이블과 그 위에 놓여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를 덮은 하얀 천.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시체임을 알 수 있었다.
“걷어봐. 그럼 네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미친 소리인지 너도 깨닫게 될 테니까.”
남자는 손가락으로 시체를 덮고 있는 흰 천을 가리키며 말했고, 나는 이끌리듯 다가가 천의 끝부분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조금씩 당겨 끌어 내려진 천 너머로 푸르게 변한 피부가 보였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다리, 복부, 팔, 가슴. 그리고 하얀 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나타났다.
뭉개지고 깨지고 엉망이 된 사체였지만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껏 이십 년을 살면서 매일 거울 너머로 보던 얼굴이었다. 나는 나의 시체를 앞에 두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서 있는데, 내 앞에 누워있는 내 시체를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다리가 휘청거려 시체가 누워있는 테이블을 붙잡아야 했다.
“내가…… 왜…… 내가 왜 여기 있어? 이거 뭔데? 이거 뭐냐고! 난 여기 있는데, 왜 내 시체가…… 녀석이 죽어서 얼굴을 바꿨어?”
“제발! 제발 그 미친 소리 좀 그만할 수 없겠니.”
“그럼 이건 뭔데! 왜 내가 여기…….”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나는 분명히 이렇게 살아있는데, 내 시체가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 혹시 녀석이 죽어서 녀석과 내 얼굴을 바꿔놓은 건가. ……그럼 저들이 얻는 건 뭔데. 그렇게까지 해서 저들이 얻는 건 대체 뭔데.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은 뭐냐고.
“이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어. 넌 차선 위로 떨어졌고, 이 사람은 달려오던 차가 받은 모양이더라. 다행스럽게도, 아니, 지금 네 상태를 보면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사람과는 달리 네게는 큰 상처가 없었지. 그게 지금 이 사람은 시체로 여기 누워있고, 넌 멀쩡하게 서 있는 이유다. 그러니 이제 네가 이 사람이라는 그 미친 소리는 그만하는 게 어때.”
“…….”
“왜? 또 다른 헛소리를 지껄일 궁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집안 먹칠을 하는 건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어떠니. 네가 어디까지 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구나.”
남자의 신랄한 지적에도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나는 여기 있는데, 내 시체를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 역시도 막막했다.
테이블을 붙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 너머에서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넘어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쏟아내자, 그것을 지켜보던 남자가 쯧쯧, 혀를 찼다.
“내 가슴에…… 암이 있어요.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거 알고 있어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한테는 그 어떤 병도 없어.”
“아니, 난 곧 죽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신들이 나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거든.”
하아, 크게 한숨을 내보낸 남자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원한다면 가슴 사진도 찍어보자. 그래서 네가 그 헛소리를 그만두겠다면 뭐든 해주마.”
“헛소리가 아니야! 나는…….”
나는 정말 차수경이 아니라고. 나는 민재희라고. 그런데 그러한 주장이 목에 눌려 나오지 않았다.
힘이 빠진 어깨를 곁에 있던 의사가 가볍게 감싸 토닥거렸다. 낯선 타인의 온기에 왠지 모르게 울음이 치밀었다.
“나는…… 그러니까 내가, 당신하고는 무슨 관계인데.”
“이젠 다중인격에 기억상실까지 주장하려고?”
“제발! 그냥 내가 묻는 거에 답이나 해줘요. 당신이 나하고 무슨 관계냐고. 당신하고 차수경이 무슨…….”
“널 낳아준 사람. 네 아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나 역시도 그러하니 그건 넘어가자꾸나.”
“하…….”
이보다 더 웃긴 촌극이 있을까. 눈앞에 내 시체를 두고, 차수경의 얼굴을 한 채로 차수경의 아비라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슴…… 확인해봐. CT를 찍든 MRI를 찍든, 내 가슴에 암이 있는지 확인해. 피검사도 하고, 당신이랑 유전자 검사도 해야겠어. 그 결과까지 조작하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모든 과정을 다 내 눈으로 확인할 거야.”
“그래야 네 미친 짓을 끝난다면 뭐든지. 그 뒤에 이 미친 짓의 수습을 어떻게 할지는 지켜보도록 하마.”
남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눈앞에 놓인 내 시체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 ∞ ∞
“오늘은 기분이 어떻습니까?”
“오늘도 좆같아요.”
“……날이 살짝 풀렸는지, 오늘은 그렇게 춥지 않더군요.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때요. 너무 병실에만 있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 봤어요?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데, 그런 감시를 달고 내가 어디를 가겠어요.”
나는 힘없이 웃었고, 의사는 한층 안쓰러운 얼굴이 되어 나를 동정했다. 아마도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진짜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다.
여러 검사를 통해서 나는 지금 내 몸이 차수경의 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가슴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던 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첫날 본 남자가 내 몸의 생물학적 부모임을 확인했으며, 내 혈액형 또한 내가 알고 있던 B형이 아닌 A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조작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나는 지금 내 몸이 차수경의 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인정의 과정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한때 정말 내가 미친 것은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다. 의사의 말처럼, 나는 원래 차수경인데 어떤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했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를 거쳐 다른 인격이 생성되었다는 얼토당토않은 가설은 내가 진짜 민재희라는 주장보다 더 현실성이 있긴 했다.
그럼 내가 기억하는 민재희의 삶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아원에서의 기억, 조직으로 보내져 앵벌이를 하고 소매치기를 했던 생활, 암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 그 상황 속에서 내가 느꼈던 처절한 좌절감. 그것들을 모두 상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하고 자세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민재희의 삶은 거짓이 아니었고, 지금의 상황은 꿈이 아니었으며, 내가 차수경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누구의 이해도 구할 수 없지만, 그게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었다. 차수경의 몸속에 민재희의 영혼이 들어와 버렸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제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도록 하죠. 차수경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여기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내가 민재희라고 주장하며 차수경의 몸이긴 하지만 민재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면 그냥 차수경의 몸으로 차수경의 삶을 사는 것.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있을까.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 암은 사라졌고, 더 이상 길거리를 전전하며 남의 지갑을 훔쳐 생계를 이어나갈 필요도 없다. 가족도, 돈도 없는 민재희와는 달리 차수경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생계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든든한 지갑, 아니, 부모도 있었다.
어차피 차수경은 죽었잖아. 차수경의 영혼이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이 몸에 들어와 있는 건 민재희잖아. 무당을 찾아가 차수경의 영혼을 찾아달랄 수도 없고 죽은 내 몸에서 차수경의 영혼을 뽑아와 다시 바꿔치기할 수도 없는 이상, 내가 차수경으로 사는 것밖에 방도가 없지 않은가.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어떤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나는 차수경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차수경으로 살아야 했다.
“없어요. 아무것도.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좋아요. 일단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우리는 아주 중요한 첫걸음을 뗀 겁니다. 아주 훌륭해요.”
의사의 의미 없는 칭찬을 나는 대충 웃어넘겼다. 차수경의 아버지가 병원장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갖은 막말과 쌍욕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매우 정중했다.
“지금의 감정은 어떻습니까. 막 화가 나고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뇨, 아주 차분해요. 그동안 제가 선생님한테 과하게 화풀이를 하긴 했지만, 그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냥…… 기분이 좋네요.”
사실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며칠 전처럼 울분이 솟구친다거나 미칠 것처럼 답답하지는 않았다. 의사의 말대로 나는 현재 상태를 인정하는 단계를 거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스스로는 매우 합리적으로 이 상황을 수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고요?”
“여전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없어요.”
의사는 여전히 내가 자살 충동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나는 여느 때보다 강하게 삶에 대한 의욕을 느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을 달리하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더는 그런 충동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요. 선생님과의 상담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네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환자분의 상태도 충분히 좋아질 거라고 장담합니다. 보호자분도 기뻐하시겠네요. 그럼 내일부터는 보호자와 함께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죠. 현재 환자분의 기억이 불안정하니,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환자분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네, ……무척 필요할 것 같아요.”
천둥벌거숭이 같은 민재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차수경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차수경의 가족, 차수경의 일상, 차수경의 상황. 그 모든 것을 알고 내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