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바이스-2화 (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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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결혼할지도 몰라요.”

멀거니 들여다보고 있던 사진에서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란히 서서 같은 사진을 보고 있던 남자가 내 시선에 눈을 맞추며 웃었다.

“그래? ……축하한다고 말할 타이밍 맞아?”

기쁨도, 설렘도 보이지 않는 얼굴은 평소와 같아서, 아니, 평소보다 더 가라앉아있어서 나는 남자의 결혼이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나가자.”

갤러리 근처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남자는 익숙하게 커피 두 잔을 주문했고, 나는 구석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알 수 없는 커피는 쓰기만 하고 비싸기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차라리 순댓국 한 그릇을 비우고 입가심으로 종이컵에 타 마시는 믹스 커피가 내 취향에 가까웠다.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어 삼키며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새삼스럽게 관찰했다.

정장이나 평상복보다 교복이 어울리는 앳된 얼굴. 색소가 부족한 것처럼 유난히 흰 피부에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옅은 갈색을 띠었다.

핏기 없는 얼굴은 추운 날씨 탓에 더욱 하얗게 질려 백지장 같았고, 살짝 걷어 올린 소매 너머로 보이는 가는 팔목과 움츠린 어깨가 녀석을 왜소해 보이게 했다.

가는 쌍꺼풀에 살짝 찢어진 눈매, 어렴풋하게 삼백안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녀석의 얼굴에서 그나마 날카로운 구석이지만, 그마저도 살짝 입술을 벌리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는 그냥 멍청해 보였다.

색소가 빠진 것처럼 연한 입술, 광대 위에 볼펜으로 찍어놓은 것 같은 볼 점, 웃을 때 보이는 옅은 보조개. 유난히 긴 속눈썹은 깜박거릴 때마다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길게 설명하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짧게 정리하면 그냥 예쁘장한 사내아이였다. 사내라고 하기엔 어리고 소년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청년보다 청소년에 가까운,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가 부족한, 등등의 수식어도 필요했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스무 살에 결혼이라.

이런 상황에서 내뱉을 적당한 말이 무엇일까.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조언을 하기엔 나이도 같을뿐더러 경험이 없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나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사고 쳤냐? 애 생겼어?”

툭 내뱉은 물음에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아뇨.”

“근데 왜?”

“그러게. 왜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이 카페 로고가 찍힌 황갈색의 티슈를 잡아 잘게 찢기 시작했다. 가늘게 찢어 수많은 쓰레기를 생성하고 있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눈에 거슬려 손끝으로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야, 손 좀 가만히 둬. 눈앞에서 짜증나게.”

“죄송해요. ……불안하면 이래요.”

그렇게 손가락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불안함이 얼굴에 충분히 나타나 있음을 본인은 모를까.

“어떤 여잔데?”

“아마도 남자일걸요.”

턱에 손을 괴고 심드렁하게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삐끗, 얼굴이 미끄러졌다. 남자랑 남자가 결혼할 수 있나? 잠시 고민하다 이내 ‘얘 오메가였지.’ 하고 납득했다.

“그건 예상 못 했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결혼. 거기에 더해 상대가 남자일지도 모른다니 더더욱 해줄 말이 없었다.

주름진 미간을 연신 손가락으로 문지르고만 있자, 녀석이 잘게 찢은 티슈를 손으로 꽉 뭉쳐 쟁반 위에 올렸다.

“부모님이 그러라든? 결혼하래?”

“네.”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녀석을 결혼하라고 등 떠미는 부모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조금 궁금해졌다.

알파와 오메가의 문제일까, 아니면 부잣집 가족계획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얘네 부모가 문제일까.

알파나 오메가도 아니고, 부잣집 자식도 아니고, 살아있는 부모도 없어서 셋 중 어느 것의 문제인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상대는 누군데? 아는 사람이긴 하냐?”

“세 명인데 아직 정해지진 않은 것 같아요. 선볼 사람들이라고 사진만 먼저 보여주셨거든요. 점심, 저녁, 중간에 커피. 세 명 만나보는 데 하루면 충분한 거 알아요?”

대단하죠? 하고 녀석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포인트에서 기분이 상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축 처졌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우울해한다거나 하는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서 그냥 모른 척했다.

“왜 하필 남자야? 알파라면 여자도 있잖아. 이왕이면 여자가 낫지 않아? 아니다. 남자한테 박히든 여자한테 박히든, 박히는 기분이 좆같은 건 똑같겠네.”

“여자나 남자나 다를 게 있어요? 어차피 같은 알파인데.”

상스러운 단어 선택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녀석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건 베타와 오메가의 관점 차이겠지.

게이가 아닌 이상 같은 남자끼리 결혼해서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보통은 끔찍해 할 텐데. 베타와 달리 저들은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게 아닌 알파와 오메가로 구분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데 진짜 왜 갑자기 결혼이야? 얼마 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제 대학교 들어간다며. 원래 부잣집은 이렇게 결혼을 일찍 시키냐?”

“집안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오메가는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에요. 아, 그렇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시키는 건 아니지만. 저도 지금 당장 결혼한다는 건 아니고, 결혼 상대를 정하려는 거예요. 약혼부터 하고, 일이 년 정도 뒤에 결혼하겠죠.”

그것도 엄청 빠른 것 같은데. 여러모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려와 현실감도, 공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얘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라잖아. 사랑 어쩌고 하는 건 낯간지럽지만, 아무튼, 뽑기도 아니고 셋 중에 하나 골라서 결혼하라니. 셋 다 마음에 안 들면 어쩌려고.”

“그래도 선택권이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둘 중에 하나도 아니고 셋 중에 하나인데. 이 정도면 신경 많이 써주신 거죠.”

가끔 느끼는 거지만 얜 착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요즘은 시험문제도 답이 다섯 개라고. 심지어 남은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을 선택하는 문제에 답이 셋이라니, 그것도 남이 골라준 답으로.

“다들 괜찮은 집안 사람들이에요. 한 명은 제약 회사 아들이라고 했고, 한 명은 은행장 아들, 다른 한 명은 장관 손자래요. 이 정도면 감사하죠.”

“그걸 왜 네가 감사해? 너한테 득 되는 게 아니라 네 부모한테 득 되는 결혼이고만. 감사는 네 부모가 해야지. 그리고, 괜찮은 집안 사람인 게 그 사람 자체가 괜찮은 놈이라는 근거는 될 수 없지.”

일단 네 부모부터 자식 팔아먹는 쓰레기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삼켰다. 내 부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 욕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개중에 나은 놈 고르길 바란다. 내가 본 알파는 죄다 머리 한쪽이 돌았는지, 제정신인 놈이 없더라고.”

선천적으로 오메가나 베타보다 신체적 기능이 뛰어난 탓에 알파는 ‘우월한 인종’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단순히 신체적 기능만이라면 운동선수를 시키면 좋겠네, 정도로 끝났겠지만 언젠가부터 알파는 두뇌도 평균 이상으로 발달되어있고 정신력도 강하다는 이야기가 돌며 ‘우월한 알파, 열등한 오메가, 평범한 베타’가 무슨 슬로건처럼 퍼져나갔다.

평범한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베타의 입장에서 ‘너는 딱 그 수준’이라고 못 박는 것 같아 별로였고, 더 웃긴 것은 알파와 오메가로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거였다. 개개인의 노력과 결과에 따른 판단도 아닌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베타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알파와 오메가는 알파로 태어났는지 오메가로 태어났는지로 차별한다. 베타든 알파든 오메가든 사람이 하는 짓은 이렇게나 비슷한데.

여하튼 여러모로 다른 인간들보다 우월하다는 알파는 고위층을 서서히 장악해나갔다. 번번이 당선되는 대통령들도 알파, 무슨 장관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도 알파, 기업 회장이란 사람들도 알파, 부와 권력으로 이름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은 알파가 대다수였다.

평등한 세상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자들은 언제나 알파였다.

일반 사람들이 더러워 기피하는 뒷골목 하층민의 밑바닥 세계에서도 알파는 지배하는 자였다. 높으신 양반들은 점잖은 체라도 하지만 이 새끼들은 거칠 것 없는 쓰레기로, 성격도 안 좋고, 포악하고, 거기에 더해 힘까지 좋으니 시한폭탄과 다를 게 없었다.

아, 쓰레기 같은 알파 놈들. 정말 싫다.

고아원에서 지낼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게 많은 터라, 알파라고 하면 이부터 갈렸다. 그런 짐승 같은 놈들하고 어떻게 같이 살지? 밑바닥 알파와 상류층의 알파는 뭐가 좀 다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알파랑은 같이 못 살 것 같은데. 아니, 억만금이면 고민 좀 될지도.

“그보다, 얼굴이 안 좋아요.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도 더 빠진 것 같고. 어디 아파요?”

의식의 흐름에 따라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내 주의를 환기하며 물었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살이 빠져 홀쭉해진 뺨에 손끝이 닿자 포동포동한 살이 아니라 거칠거칠한 가죽이 느껴졌다. 마치 죽어 뻣뻣해진 짐승의 가죽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프긴 뭘 아파, 항상 똑같지. 내가 뭐, 잘 먹고 잘 사는 너랑 같겠냐? 돈 있으면 먹고 돈 없으면 굶고 그러니까 살이 쪘다 빠졌다 그러는 거지.”

“점심은 먹었어요? 같이 먹으러 갈래요?”

두 시.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나야 시간 상관없이 먹을 수만 있다면 일단 먹고 보는 스타일이지만 이 녀석은 다를 텐데, 그런데도 식사를 청하는 녀석은 착했다. 멍청하기도 했고.

“나 바쁜 사람이야. 너랑 밥 먹어줄 시간 없어. 가서 일해야 돈을 벌지.”

“……훔치는 게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뭐래. 그것도 나름 직업이거든?”

“그게 정말 직업이라면, 이직하는 건 어때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권하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역시 얜 착하지만 멍청해.

자기 지갑을 훔치다가 걸린 사람이랑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자고 청하고 걱정까지 해주다니. 속이 없는 놈이다.

“네가 결혼하는 거,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듯이 나도 이 짓거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거야. 그런 면에서 우리 조금 닮은 것 같지 않냐.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쥐뿔도 없다는 거.”

나는 부모도 없고 돈도 없어서 이렇게 산다지만, 넌 돈도 많은 집 자식이 왜 그렇게 사냐. 괜스레 올라오는 타박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누구한테 충고를 해. 내가? 쟤한테? 한 달, 아니, 하루에 쓰는 돈의 단위가 다른 저놈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도 우습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 간다.”

“벌써요? 조금만 더 얘기하다 가요.”

“바쁘다니까. 넌 돈도 많으면서 친구는 없냐? 왜 나를 붙잡고 이래. 너 얘기 들어줄 사람이 그렇게 없어?”

녀석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우울에 젖은 얼굴은 상처받았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걸 신경 써주기에는 내 여유가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게 말 상대가 필요하면 저기, 너 지켜주는 기사님이랑 손잡고 사이좋게 대화라도 하든지.”

카페 앞에 차를 대놓고 유리창 너머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를 턱짓했다.

알파도 아닌 놈이 쓸모없이 운동신경은 좋아서. 저놈만 아니었으면 이런 덜떨어진 오메가 주머니를 털다가 걸릴 일도 없었을 텐데.

이 녀석의 부모가 운전과 경호가 가능한 수행원을 뽑아 붙여줬다고 나중에 듣기야 했지만, 처음에는 고작 운전기사에게 들켜 반항도 못 하고 붙잡혔다는 것에 엄청 자존심이 상했었다.

“고용인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 해요.”

“뭐야, 그거. 선민의식이냐? 감히 부리는 사람하고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싫어하세요. 가깝게 지내는 걸 보면 내보내셔서, 그렇게 그만둔 사람도 여럿이에요. 말을 섞지 않는 건,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들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참 어렵게 산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면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 편히 살 것 같았는데. 역시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 너무도 많다.

“아무튼. 네 푸념 들어주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다음에 해.”

“내일도 올 거죠?”

“글쎄.”

내가 문화생활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도 아니고, 똑같은 사진전을 매일 보러 올 만큼 그 사진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을 향해 ‘아니’라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

나중을 기약하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착하고 바보 같아서 만날 답답한 소리만 지껄인다고 타박을 해도, 녀석은 나와 유일하게 편견 없이 대화를 하는 상대였다.

“뭐, 내일 봐서 한가하면 올게.”

“고마워요.”

확답도 아니었는데 녀석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찰흙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놓은 것처럼 살짝 팬 보조개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훌쩍 카페의 문을 열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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