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5
온몸의 정력을 쪽쪽 빨아 먹힌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 이후로 두 번의 노팅을 더 했지만 처음의 그 강렬한 쾌감을 다시 맛볼 수는 없었다. 아마 지승혁의 페로몬으로 자극받은 조정현의 몸이 가벼운 히트 사이클을 겪은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지만 그 당시에 바로 검사로 알아낼 방법도 없었으니 어디까지나 추론에 지나지 않았다.
지승혁의 러트가 끝나자 폭포처럼 쏟아지던 페로몬이 잠잠해졌다. 손끝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늘어져 있는 조정현을 안아 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뒷정리를 하는 건 지승혁의 몫이었다.
지승혁이 챙겨 주긴 했으나 그의 러트 기간 동안은 만족할 만큼의 식사를 할 틈이 없었다.
결국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육체가 먼저 택한 건 수면이었고, 그다음이 식욕이었다.
잠을 어느 정도 자다가 못 참을 정도의 허기짐에 부스스 일어난 조정현은 온몸의 뼈와 근육이 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지승혁이 재빨리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았더라면 조정현은 아마도 너무 배가 고파 울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배가 고팠다.
지승혁이 조정현에게 가져다준 음식은 삼을 넣고 푹 끓인 삼계탕이었다.
냄새만으로 위가 요란스럽게 꼬르륵, 소리로 합창했다.
“혼자 먹을 수 있겠어요?”
지승혁이 무언가를 물었지만 입에 침이 고여 꼴깍꼴깍 삼키기 바빠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고 수저를 놓치는 조정현이 울상을 짓자 지승혁이 재빨리 나무 수저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조정현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허겁지겁 찹쌀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삼계탕이 뜨겁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 무작정 입에 넣었다가 뱉을 뻔했다.
조정현은 입에 든 음식을 필사적으로 식혀 씹어 삼켰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연신 음식을 떠먹던 조정현은 그릇을 절반 정도 비운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저, 형은 좀 드셨어요?”
너무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나 싶은 민망함에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조정현이 묻자 지승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요. 먼저 먹었어요.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고 정현이 먹어요. 입에 맞아요?”
“네. 이거 사 오신 거예요? 정말 맛있는데요.”
“정현이가 자는 동안 내가 만들었어요.”
입술 옆에 음식이 묻은 건지 지승혁이 조정현의 입가를 엄지로 훔치며 여상하게 말했다. 조정현은 지승혁의 답을 듣고 씹던 걸 멈췄다. 제 앞에 놓인 그릇과 지승혁을 번갈아 보던 조정현이 입을 열었다.
“맛있는데요?”
“그럼 맛있죠. 누가 먹을 건데 맛없게 만들겠어요.”
지승혁이 우스운 듯 대꾸했다.
그간 지승혁이 만들었던 요리들을 떠올린 조정현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 후로도 조정현은 몇 번이고 맛있다는 말을 하며 삼계탕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원체 속이 비어서인지 더 먹지 못한 게 한스러울 정도로 맛있는 삼계탕이었다.
먹고 바로 눕는 게 몸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 이대로 액체가 되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몸이 노곤했다. 배가 차니 몸이 피로를 호소했다.
식기를 밖에 내다 놓고 돌아온 지승혁이 그런 조정현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 베개를 등 뒤에 쌓아 상체를 기대게 만들었다.
“30분만 앉아 있다가 자요.”
“……네에.”
자꾸만 감기는 눈을 가까스로 치뜨며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지승혁은 흔들거리는 조정현의 고개 아래도 제 어깨를 받쳤다. 한결 자세가 편해진 조정현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맛있었어요, 삼계탕.”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워요.”
지승혁은 제 어깨에 뺨을 비비는 조정현의 얼굴을 살살 쓸어내렸다.
“……살이 좀 올랐나 했는데 빠졌네요.”
“괜찮아요. ……맛있었어요.”
그는 아예 눈을 감은 채 웅얼웅얼 대답했다. 잠에 겨워 말이 엉켜 나왔다.
머리를 토닥거리는 지승혁의 손길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좀 쉬고 나서 병원에 함께 가요. 검사를 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으니까.”
뺨을 문지르는 다정한 손길에 수마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 들어가던 조정현의 정신이 퍼득 돌아왔다. 지승혁이 말하는 검사가 뭔지 바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지승혁과 눈이 마주쳤다.
불안이 덩치를 키우나 싶었는데 지승혁을 보고 있자니 불쑥불쑥 치솟아 오르던 두려움이 입에 넣은 솜사탕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따뜻하고 큼직한 손이 차분하게 누그러지는 조정현의 눈가를 천천히 문질렀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힘들 테니까 좀 자 둬요.”
“……네…….”
지승혁에게서 페로몬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제 오메가를 안정시키는 페로몬이었다.
조정현의 몸을 감싸듯 지승혁의 페로몬이 퍼졌다. 그걸 폐 속 깊숙이 들이마신 조정현의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조정현의 숨소리가 곧 잦아들었다.
조정현이 눈을 떴을 때에는 지승혁의 한쪽 어깨가 제가 흘린 침으로 푹 젖어 있었다.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조정현에게 지승혁은 웃으며 자신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러지 말고 얼른 갈아입고 오라며 등을 떠미는 조정현의 얼굴은 한동안 잘 익은 사과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뭐 좀 먹으러 가요.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데.”
지승혁이 병원을 나서며 하는 말에 바닥을 보고 걷던 조정현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아, 죄송해요. 잘, 못 들었어요.”
어딘지 멍했다.
며칠간 시달려 걷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던 조정현은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병원에 왔다. 몸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 이물감은 그 후로도 며칠간 계속되어 얼굴이 붉어지곤 했었다.
지승혁은 그간 쓰지 않았던 연차를 다 끌어모아 사용하고 조정현의 곁을 지켰다. 정말로 야단스럽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조정현의 몸을 챙겼고 집 안에서조차 스스로 걷지 못하게 했다.
과보호가 너무 심해서 결국 조정현이 정색을 하며 사양하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테스트기를 사용할까 했지만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같았고, 그렇다면 차라리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확인 가능한 최소한의 날짜를 채우고 아침 일찍 지승혁과 병원을 찾았다.
전날 밤, 긴장되어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승혁의 페로몬 덕분에 그러지는 않았다. 단지 새벽같이 일어났을 뿐이다.
조정현도 일찍 일어나긴 했는데 그보다 더 빨리 지승혁이 일어나 있었다. 그 모습이 지승혁도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따로 테스트기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채혈을 한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검사 결과, 임신하지 않았다.
결과를 전해 듣자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기 전이라 만약 임신을 했다고 한다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았을 거다. 솔직히 조정현도 제 마음이 어떤 걸 원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아니란 말을 들으니 실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마음 한편에서 임신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지승혁과의 사이에 무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관계에 어떤 불만이 있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당치 않았다. 지금의 생활이 주욱 이어져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승혁과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습게도 가능성이 사라지고 나서야 제 진심을 깨달았다. 인식을 한 순간 그런 바람이 수면 위로 불쑥 떠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껏 의식하지 못했던 게 이상할 만큼 강렬한 바람이었다.
지승혁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쉽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
조정현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이리 와 봐요.”
지승혁이 가만히 조정현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옅게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기분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는 조정현의 등을 투박하지만 다정한 손길로 토닥였다.
“이번만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이번만 가능한 것도 아니고 다음이라는 기회가 둘에겐 있었다.
계속 생각한다고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현재의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조정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이 안고 있던 몸을 떼고 조정현의 이마에 덮여 있는 머리카락을 치웠다.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다정한 뽀뽀에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아 조정현은 도리어 웃었다.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겼어요.”
조정현은 저번에 지승혁과 함께 가게에서 먹었던 음식 이름을 댔다. 양갈비. 그저 음식 종류만 말했을 뿐인데 지승혁이 눈썹을 위로 들어 올리며 웃었다. “거기 맛있었죠.” 하는 말과 함께.
그때 깨달았다.
그래. 아이라는 형태뿐만이 아니었다. 지승혁과의 관계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별다른 추가 설명이 없어도 서로 알아듣는 것의 종류가 늘어난다. 그건 그 자체만으로 서로가 함께 지낸 시간의 증명이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지승혁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자고 했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좋아져 조정현은 다시 한번 웃었다.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