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외전 (5)화 (122/130)

#외전 1-5

지승혁을 만나면 먼저 할 말이 있었다.

“오늘 알바 면접 보는 거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알바는 왜 하려고 했어요?”

지승혁이 조정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컵을 손으로 만지며 질문했다. 이런 식으로 정곡을 찔러 올 줄은 몰랐던 조정현은 앞에 놓인 수저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돈이 필요해서요.”

“…….”

지승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필요한 데가 있어서, 그랬어요. ……그리고 직접 돈도 벌어 보고 싶어서요.”

“공부를 하는 학생이 왜 일까지 하려고 해요. 시간도 부족할 텐데.”

지승혁의 말대로다. 성적을 유지하려면 공부만 하는 편이 더 좋을 거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렇긴 한데, 제가 잘 할게요. 형 신경 쓰시지 않도록.”

조정현의 말을 듣던 지승혁이 그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신경 쓰게 할 일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조정현은 테이블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던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일하는 건 어때요. 할 만해요?”

조정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질문의 종류가 바뀌었다. 조정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일하는 분들 다 좋은 분들 같아요. 첫날이라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일하다 보니까 시간이 휙 지나가서 깜짝 놀랐어요.”

“오늘 면접 갔다가 바로 일 시작한 거라고 했죠?”

“아, 네. 이전에 일하던 분이 바로 관두시고 오늘 나오기로 하셨던 분이 다치셔서 못 오게 되어서…… 갑자기 부탁을 하셔서요. 매장도 너무 정신없이 바빠 보였고 그래서. 아, 오늘 나오면서 수고했다고, 교통비 하라고 돈도 챙겨 주셨어요. ……그걸 어디에 뒀지……. 아, 이거요.”

조정현이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였다.

경황이 없어서 지갑에도 미처 넣지 못했다. 웃으며 돈을 꺼내 들었던 조정현은 순간 이런 걸 자랑하는 제가 너무 어리게 느껴졌다. 지승혁이 얼마를 벌고 있는데,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쳐 머쓱하게 다시 챙겨 넣을 때 그가 말했다.

“좋은 사장님이네요.”

“그, 그렇죠?”

반색하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연이어 질문했다.

“재미있었어요?”

“재미…… 재미까지는 모르겠어요. 워낙 정신이 없었어서.”

“그러면 됐어요. 일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요?”

“아, 그거. 그거는 내일 출근하고 정하기로 했어요. 오늘 너무 정신이 없던 상태라. 가라고 하셔서 저는 바로 나왔거든요. 아, 그리고 유니폼도 따로 있었어요.”

“유니폼요?”

“네, 지금 형이 입고 계신 거랑 비슷한 거요. 대신에 허리에 줄무늬 앞치마 같은 걸 해요. 그런데 어깨가 좀 껴서 셔츠 단추를 좀 풀렀어야 했어요. 그래도 유니폼은 처음 입어 봐서 좀 재미있었어요.”

지승혁은 한 손에 턱을 괴고 조정현의 말을 들었다.

“어디까지?”

“네?”

“셔츠 단추를 풀렀어야 했다고 했잖아요. 어디까지 풀렀는데요.”

“아. 여기…… 한 이쯤요?”

조정현은 기억을 더듬으며 손으로 가슴팍을 톡톡 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지승혁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뭘 파는 가게라고 했죠?”

“아, 브런치요. 저녁에는 또 살짝 메뉴가 바뀐다고 했는데…… 가볍게 와인 같은 걸 파시나 봐요.”

마지막으로 가게 이름까지 물어본 지승혁은 의자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켜 조정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정현이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긴 한데. 많이 힘들면 괜히 무리해서 버티지 말고 바로 그만둬도 괜찮아요. 알았죠?”

조정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책임감이 강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너무나 고평가되었다는 생각은 지우기 힘들었지만, 지승혁의 의견에 반박하는 대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때맞춰 주문했던 고기가 나왔다.

집게를 집어 들려 하던 조정현보다 빠르게 지승혁이 움직였다.

“내가 구울게요.”

“네? 아니, 괜찮은데. 제가 할게요.”

“나 고기 잘 구워요. 이번에 한번 먹어 봐요.”

지승혁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치이익.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자 맛있는 소리가 났다.

* * *

정말 맛있었다.

고기를 잘 굽는다던 지승혁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적당하게 구워져 육즙이 살아 있어 정말로 맛있었다. 어쩜 이렇게 잘 굽느냐, 정말 대단하다며 연신 감탄을 하는 조정현의 접시 위에 다 익은 고기를 올려 주며 많이 먹으라고 하던 지승혁은 정작 얼마 먹지 않았다.

가게를 나올 즈음에는 갑작스레 일을 해서 쌓였던 피로가 싹 없어져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밤 10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조정현은 곧바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엎드렸다. 폭신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침구에 얼굴을 문지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노곤노곤하게 졸음이 몰려왔다.

딱 잠이 올락 말락 한 상태가 몹시 기분 좋았다. 제대로 누워서 자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바로 누워서 자요.”

언제 왔는지 지승혁이 나직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그가 올라오는 기색이 느껴졌다. 뽀뽀라도 하고 싶은데 감은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는지 몸을 안아 들어 제대로 뉘여 주었다.

그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근력이 좋았다. 극우성이고 말고가 아닌 문제 같았다.

형은 어떻게 이렇게 힘이 세어요.

“…….”

하지만 질문은 제대로 된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고 입속의 웅얼거림에 그쳤다. 지승혁이 웃는 기척이 났다.

그는 조정현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치우며 뽀뽀를 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안, 깨웠어요? ……괜찮아요. 좀 더 자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지승혁에게서 페로몬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결국 조정현은 그쪽으로 몸을 살짝 돌렸다. 지승혁의 따끈한 체온이 좋아 품에 파고들 듯 움직였다.

지승혁의 큼직한 손이 조정현의 등을 쓰다듬듯 토닥였다.

일정한 박자로 토닥이는 것에 조정현의 가물거리던 의식은 금세 수면에 빠져들었다. 너무나 좋아서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얼마나 그렇게 자고 일어났을까. 조정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아직 지승혁과 함께 침대 위에 있었다. 피곤한 나머지 숙면을 취한 덕분에 도리어 새벽 일찍 깬 것 같았다.

바로 옆에 지승혁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확인한 조정현은 침이라도 흘리진 않았는지 입가 근처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만졌다. 그 뒤에는 느긋하게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에서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과 비례하게 지승혁이 점점 더 잘생겨져 보였다. 참 곤란했다. 출근할 때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그의 앞머리를 보는 건 저뿐이라고 생각하자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졌다.

눈가를 가리고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옆으로 치웠다.

내일이 평일이 아니라 쉬는 날이었다면 깨우고 싶다는 충동에 무너졌을 거다. 하지만 내일도 지승혁은 새벽같이 출근할 테고 그런 사람을 굳이 이 시간에 깨우고 싶지 않았다.

하긴. 따지자면 내일이 아니라 이제 몇 시간 뒤일 터지만.

조정현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쌍꺼풀이 없이 옆으로 길쭉하게 찢어진 눈은 자칫 사나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살짝 위로 올라간 눈꼬리가 얼마나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지 조정현은 알고 있었다. 오뚝하게 솟은 콧대와 그 아래의 입술. 그 입술의 온도가 어떤지. 얼마나 탄력 있는지 역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승혁을 보던 조정현은 그를 만지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고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잠이나 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였다.

“나 이제 눈 떠도 괜찮아요?”

“……!”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나온 낮은 목소리에 조정현은 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하던 조정현은 허리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기는 지승혁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깨, 깨어 계셨어요? 언제부터요?”

“언제부터라고 하기가 좀 애매하네요. 정현이가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웠을 때?”

“……아, 정말요? 아니, 일어나셨으면 말씀이라도 해 주시지.”

뭐라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빤히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걸 들켰다는 생각에 뺨이 뜨끈해졌다. 조정현의 목소리가 불퉁해지자 지승혁이 작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해 왔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정현이 웅얼웅얼 “사과는 안 하셔도 되는데요.” 같은 말을 주워섬겼다.

“그런데요, 그, 저어.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하신 거예요?”

“그런 말? 아, 그거요.”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그는 조정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정현이가 너무 걱정되어서요.”

“걱정요?”

“혼자 둘까 봐.”

이어진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은 얼굴을 굳히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는 ‘혼자 둘까 봐.’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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