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외전 (4)화 (121/130)

#외전 1-4

“집이세요? 지금요? 혹시 오늘도 일찍 끝나고 오신 거예요?”

-네. 정현이 보고 싶어서요.

자연스럽게 해 오는 대꾸에 조정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빨리 지승혁을 보고 싶었다. 어제 제대로 못 봤던 것만큼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저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여기 집이랑 많이 안 머니까 시간 얼마 안 걸려요.”

-힘들 텐데 데리러 갈까요?

“아니에요. 피곤하실 텐데…… 제가 얼른 들어갈게요. 아, 근데 저녁. 저녁은 드셨어요?”

소란스러운 길거리의 소음 속에서도 수화기 건너편으로 낮게 울리는 지승혁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웃으세요?”

-아뇨. 알바하느라 피곤할 텐데 당장 걱정되는 게 내 식사예요?

“……아…….”

조정현은 조금 멋쩍어져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근처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잠깐만 기다려 줘요.

“아뇨. 정말 괜찮아요.”

-오랜만에 저녁 데이트하려고 그래요.

조정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데이트. 하기야 바깥에서 하는 데이트는 오래된 것 같았다.

그는 주변에 있는 카페 이름을 대고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통화를 끝냈다. 생과일주스 체인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문을 한 뒤 매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에 앉고 보니 다리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척추도 피곤을 호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반쯤 접듯이 불량한 자세를 취하며 스트레칭을 하자 근육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흔든 조정현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슥슥 매만졌다.

저녁을 뭘 먹어야 할까, 고민하며 핸드폰으로 맛집을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네……?”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 조정현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부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면인 여자가 대각선 방향에 서 있었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에 반짝이는 입술을 한 여자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마음을 먹은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정말 막 이러는 사람이 아닌데요. ……혹시 혼자 오셨으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실래요? 그냥 사 달라는 게 아니구, 제가 살게요.”

“네? 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식사를 권유받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자주 있는 일 역시 아니었기에 조정현은 잠시 당황했다. 가끔 길을 가거나 하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긴 했었고, 간혹 남자도 있었다.

말을 건 여자의 양 뺨이 발긋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정현은 눈을 좌우로 한 번 굴린 후 입을 열었다.

“저어, 죄송해요. 일행이 오기로 해서요.”

“……어머, 죄송해요.”

작게 비명을 지른 여자가 연신 사과를 했고 조정현은 덩달아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아니라고 하며 손을 내저었다. 사태는 조정현의 진동벨이 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저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문한 주스를 들고 와 자리에 앉은 조정현은 음료를 한 모금 쭉 빨아 마셨다. 주스가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빨대에서 입을 떼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아서 한숨을 쉬며 컵을 보자 한 번에 절반을 마셔 버렸다.

컵을 한 손으로 잡고 잘 녹으라고 생각하며 흔들거리자 잘그락거리며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지승혁도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 걸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특히나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너무 어리광을 부렸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알바를 하겠다는 계기는 지승혁과 커플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을 하며 조정현은 다시 한번 음료를 쪼로록 빨아 마셨다. 단 음료를 먹으며 조금 쉬고 있으니 조금씩 지쳐 있던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성 오메가로 재발현한 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체력이 좋아졌다는 수준은 아니지만 방전이 되었다가 다시 충전이 되는 시간이 빨라졌다. 물론 운동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지금 같은 극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혹시 우성 오메가가 된 것이 영향을 주었나 싶어 이전에 정태준에게 물어보니 의아한 얼굴로 원래 그런 거 아니었냐고 물어 와 도리어 머쓱해졌었다.

그래 봤자 지승혁에게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페로몬 기관 제거를 한 당시의 지승혁은 전보다 자주 지쳐 보이는 기색을 보이곤 했다. 가끔은 조정현이 먼저 잠에서 깨는 일도 있었다. 지승혁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그 얼굴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다시 극우성으로 발현한 뒤로는 그런 일이 일절 일어나지 않아 내심 아쉽긴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조정현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쪽을 멍하게 쳐다보며 관성적으로 빨대를 물었다. 주스는 다 마셔 그르륵거리는 소리만 났지만 컵을 이리저리 비틀며 조금 남은 것을 마시려고 했다.

그때 계단 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매장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계단 쪽으로 돌아갔다.

모습을 드러낸 장신의 남자는, 조정현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 차림은 남자의 긴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만들었다. 아르바이트에서 입었던 유니폼과 비슷한 차림새였는데 비할 바 없이 태가 고급스러웠다.

표정 없이 매장 내부를 둘러보던 지승혁의 얼굴에 조정현을 발견한 후 미소가 머금어졌다. 조정현은 망설임 없이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지승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지승혁의 손이 가만히 조정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익숙한 행동이었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새삼 참 멋진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생각해 보니 둘이서 이렇게 번화한 곳에 나와 본 지가 오래되었다. 가끔 지승혁이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권했지만 조정현 쪽에서 거절을 했었다. 평일에 워낙 바쁜 지승혁이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가거나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맛집 같은 곳은 자주 다니긴 했었다.

지승혁을 보니 자연스레 어제 일을 떠올린 조정현은 입 안쪽 살을 살그머니 물었다가 놓았다.

“저기, 형. 어제 일은 죄송해요.”

그러고는 지승혁에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또박또박 말했다. 조정현의 말을 들은 지승혁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정현이가 사과할 일을 했었나요? 기억에 없는데.”

“……아시잖아요.”

지승혁의 말은 비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가 생각한 있는 그대로를 말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조정현은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척 뭉개고 눙치며 넘어가는 건 싫었다.

“어제 그렇게 방으로 들어간 건 제가 잘못했어요. 얘기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그런 태도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사과를 하려면 내가 했어야죠.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정현이가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것도 생각했어야 했어요.”

“아뇨, 그건…… 그, 갑작스럽긴 했는데. 갑작스럽게 하는 거니까요, 그런 건. 예고를 미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 그 얘기는 나중에 제대로 얘기해 주세요.”

열심히 말하는 조정현을 보던 지승혁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지는 듯했다.

지승혁의 입에 뽀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뭐 먹고 싶어요?”

“맛집 찾아보던 중이었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멍하게 그의 입술을 응시하던 조정현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흘끔 보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밥이랑 면, 고기 중에 골라 볼래요? 맛있는 밥 사 주고 싶어서요.”

지승혁은 말을 이으며 자연스럽게 조정현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그는 조정현의 머리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듯 킁킁거렸다. 혹시 무슨 좋지 않은 냄새라도 나는 건가 싶어서 조정현이 얼른 몸을 떼자 그가 웃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요.”

“네, 네? 맛있는 냄새요?”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냄새요. 알바하는 곳에서 배었나 봐요.”

“……어, 음. 그,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팔을 들어 킁킁거려 보다가 유니폼이 별도로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조정현으로선 제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괜한 민망함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뜨렸다.

조정현은 작은 목소리로 고기를 먹자고 했고 지승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깃집으로 향했다. 스테이크를 먹을까 묻는 지승혁에게 오늘은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한 조정현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

처음 삼겹살을 입에 올렸던 조정현은 지승혁의 차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저런 옷을 입고 고깃집에 가면 냄새가 밸 텐데 아무래도 너무 눈치가 없었다 싶어졌다.

나중에 과 동기들과 함께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번복하려고 했을 때 지승혁이 가고 싶은 데를 가야 하지 않겠냐며 조정현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가게 내부에도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북적거리는 거리에 비하면야 적은 수였다.

자리에 안내받은 조정현은 직원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서빙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게 됐다. 저렇게 능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어야 했을까.

조르륵,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에 조정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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